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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바로 아래 기자수첩 '서울의 역사가 겨우 600년?'이란 글 5번 글입니다. 여기에 다시한번 올립니다. 요즘 고구려 문제로 떠들썩 한데 삼국사기 한줄 읽지 않고 고구려 어쩌고 하면 큰일 납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고구려 역사의 99%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것입니다. ---------------------------------------------- 5.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지어 역사를 왜곡하고, 심지어 많은 역사책을 없애버렸다"는 오해. 김부식이 없었으면 삼국의 역사 전체가 전해지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생각만 해도 눈앞이 캄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전해준 것 하나를 가지고도 우리민족은 그에게 너무나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삼국사기를 지을 당시 김부식의 말을 잠시 들어 보겠습니다. “(전략) 생각컨대 성상폐하께옵서는 唐堯(당요)의 문사를 갖추시고 夏禹(하우)의 근검을 본받으사 바쁘신 여가에 전대의 사서를 博覽(박람)하셔서 말씀하시기를, '지금의 학사대부가 오경, 제자의 서라든지, 진한역대의 사기에 대하여는 혹 널리 통하여 자세히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우리나라의 사실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망연하여 그 시말을 알지 못하니 매우 유감된 일이다. 더구나 신라, 고구려, 백제의 삼국이 정립하여 능히 예로써 중국과 교통한 때문에 원엽의 漢史라든지 宋那(송나)의 당서에 다 그 열전이 있지만, 그 사서는 자기 국내에 관한 것을 상세히 하고 외국에 관한 것은 간략히 하여 자세히 실리지 아니하였고, 또 그 古記로 말하면 글이 거칠고 졸렬하고 사적의 遺漏(유루)가 많아, 이런 까닭에 임금의 선악이라든지 신자의 忠.邪, 나라의 안위, 인민의 치란에 관한 것을 다 드러내어, 써 후세에 勤戒(근계)를 보이지 못했으니, 마땅히 三長의 材를 얻어 일가의 역사를 완성하여 이를 만세에 끼치어 일성과 같이 환하게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신과 같은 자는 본래 삼장의 재도 없고 또 깊은 지
獨島 斷想 -「독도 우표」를 발행한 대한민국 정부의 우둔함; 기회만 있으면 獨島 문제를 국제분쟁화하려는 日本에게 싸울 빌미를 준 어리석은 행동. -日本 정부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 우리의 역사서가 아닌 그네들의 史料로서 獨島를 대한민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 감정적 대응보다 사료적 대응을 일본인들은 가장 두려함. 실제 일본 문헌에 독도가 우리 영토라는 것이 존재. -한국민들의 일본 대사관앞 「獨島 시위」에 대해; 일본인들이 駐日 대한민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하는 것은 있을 수 있으나 땅을 갖고 있는 사람이 시위할 이유는 없음. -獨島 노래를 禁止曲으로 정한 全斗煥 대통령의 조치; 「하와이는 미국땅, 대마도는 일본땅,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가사는 후손들이 벌일지도 모르는 대마도 영토분쟁에 치명적인 가사내용임. 작은 독도를 얻느라 큰 대마도를 잃는 小貪大失의 전형. 고로 전대통령의 조치는 타당했다는 설. -獨島에 특수부대를 투입해 경계를 하자는 주장에 대해; 독도에 군인이 파견돼 경계한다는 것은 국제적 시각에서 보면 「분쟁지역」임을 자인하는 것. 현재 경찰이 파견돼 경계하는 것은 「우리 땅」에 대한 「治安」의 개념. -예전 KBS 동경특파원 모씨의 모리 총리 인터뷰에 대해; 인터뷰 말미에 『독도는 어느나라 영토라고 생각하느냐』는 愚問. 그럼 일본 총리가 『한국땅』이라고 할 줄 알았나? -독도 문제에 대한 정부와 국민의 대응 방법에 대해; 무대응이 최선의 대응. - 韓日관계를 연구하는 崔書勉 국제한국연구원장은 日本에서 강연 도중 韓日關係를 걱정하는 한 日本人으로부터 『다케시마(竹島)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崔書勉씨는『다케시마(竹島)는 일본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예상 외의 반문에 놀란 그 일본인은 『그럼 왜 한국은 日本 영토라는 데 동의 안 하냐』고 물었다. 崔씨는 『우린 獨島(독도)를 우리 것이라고 했지, 언제 다케시마를 우리 것이라고 했느냐. 자기 마누라를 남에
추적보고 - 송두율의 배후세력; 송두율ㆍ 서동만(국정원 기조실장)ㆍ 이종석(청와대 NSC 사무차장)은 「내재적 접근법」으로 맺어졌다; 吳 東 龍 月刊朝鮮 기자 프랑크푸르트發 「KAL 906편」 2003년 8월29일 오후 7시30분경, 개인 사업을 하는 A씨는 유럽 출장을 마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行 「KAL 906편」에 탑승했다. 보잉 747機는 오후 7시45분 프랑크푸르트 상공을 날아올랐다. 그는 2층 비즈니스석에 자리를 잡았다. 11시간의 비행 끝에 그는 8월30일 오후 1시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가 계류장에 도착했고, 짐칸에 있는 자신의 짐을 챙겨 2층(Upper Deck) 통로에서 1층에 있는 1등석 복도로 내려왔다. 순간, A씨는 그곳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2003년 4월 高泳耉(고영구·64) 국가정보원장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했던 徐東晩(서동만·47) 국정원 기조실장이 비행기 트랩을 빠져나가기 위해 복도에 서 있었던 것이다. 70석에 불과한 일등석과 비즈니스석은 일반석과 出口가 다르다. 徐실장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일등석에 탑승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테 안경을 낀 徐실장은 베이지색 드레스 셔츠, 紺色(감색) 양복 상·하의에 노타이 차림이었다. 그는 짐칸에서 여행용 서류가방을 내려 일등석 출구를 통과해 트랩으로 걸어나갔다. 이때 수행원으로 보이는 사람도 그를 뒤따랐다. 짐을 찾기 위해 徐씨가 手荷物(수하물) 컨베이어벨트에 도착하자 손에 무전기를 든 사람이 나타났다. 徐실장에게 깍듯이 예의를 갖춘 그는 徐씨가 여행용 가방을 찾는 동안 어디론가 분주히 무전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徐씨는 그들의 안내를 받으며 공항청사를 총총히 빠져나갔다고 한다. 徐東晩 기조실장이 독일을 방문한 시점은 현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북한 노동당원 宋斗律(송두율)씨가 국내에 들어온 2003년 9월22일보다 20여 일 앞선 시점이었다. 宋씨의 귀국은 9월22~26일까지
추적보고 - 송두율의 배후세력; 송두율ㆍ 서동만(국정원 기조실장)ㆍ 이종석(청와대 NSC 사무차장)은 「내재적 접근법」으로 맺어졌다; 吳 東 龍 月刊朝鮮 기자 宋의 초청으로 「통일학술회의」에 참석한 徐東晩ㆍ李鍾奭 宋斗律 사건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宋斗律은 1995년 1월28일부터 3월11일까지 북한에 들어가 金容淳(김용순·對南 담당비서 재직 중 2003년 사망)과 남북 해외학자들이 참여하는 통일학술회의 개최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金容淳으로부터 통일학술회의에 북한의 학자를 파견하겠으며 회의장소는 北京으로 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같은 해 6월4일부터 6월6일까지 宋斗律은 사회과학원 산하 통일문제연구소 부소장으로 위장한 통일전선부 소속 공작원 김경남, 사회과학원 연구사로 위장한 통일전선부 소속 공작원 김관기와의 예비회담에서 남북한 통일 관련 공동세미나 명칭은 「남북 해외학자 통일학술회의」로 한다고 합의했다. 1995년 7월31일부터 8월1일까지 중국 北京 「長城대반점」(쉐라톤호텔)에서 제1차 「남북 해외학자 통일학술회의」가 개최됐으며, 북측단장인 김구식(통일문제연구소 부소장)은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사상과 리념, 제도와 신앙을 달리하는 북남 해외의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치고 발걸음을 맞추어 나가기 위해서는 공동의 통일강령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조국통일강령에 대해 말할 때 민족의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 金日成 주석님께서 밝혀 주신 조국통일강령을 생각하게 됩니다』라며 金日成이 제안한 조국통일 3大 헌장(조국통일 3大 원칙, 全민족대단결 10大 강령, 고려민주공화국 창립방안) 등 북한의 통일방안에 대해 선전했다. 토론 과정에서 북한 노동당 비밀당원 宋斗律은 『그러한 전반적인 문제를 볼 때 역시 연방제적 구조라는, 체제와 민족국가라는 우리의 공통의 이상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그러한 두 개의 체제와 하나의 민족국가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구성적인 조건을 이제는 마련해야 되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합니다…』 등의 발언을 했다.
북한군 비밀 문서 입수; 2003년 모내기철용 북한군 내부 문건 「학습참고자료」 분석; 吳 東 龍 月刊朝鮮 기자 『쌀을 다른 나라에서 들여오고 있다』 月刊朝鮮은 북한군이 지난해 농촌 지원 활동에 앞서 병사ㆍ사관 교육용으로 만든 「학습참고자료」 한 권을 입수했다. 2003년 11월1일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이 보도한 이 자료는 「조선인민군출판사」에서 「주체92(2003)년」에 출간한 것으로, 부제는 「농촌전투기간용」이다. 북한군은 인민군 창건일인 2003년 4월25일 직후부터 6월 말까지 약 두 달간 농촌 지원 활동을 벌인다. 이 자료를 작성한 「조선인민군출판사」는 인민무력부 총정치국 산하 기관이다. 인민무력부 총정치국은 북한군의 정치ㆍ작전ㆍ조직ㆍ선전을 담당하는 핵심부서로, 총정치국장은 북한 권력서열 2위 趙明祿(조명록) 차수이다. B5 용지로 표지를 포함해 40장 분량인 이 「학습참고자료」는 거무스름한 갱지에 인쇄돼 있다. 이 자료를 복사하면, 전체 지면이 검게 변해 인쇄된 글자를 解讀(해독)할 수 없을 정도다. 군단, 사단, 중대 등에 배치된 정치학습교원(정치지도원)들은 이 문서에 기초해 북한군 병사와 하사관, 軍官(군관)들에게 黨(당)의 사상이나 「생활 總和(총화, 시험)」 등 정치학습을 시킨다. 이 「학습참고자료」는 군사 규율, 전투준비 태세, 飮酒(음주) 문제, 부적절한 여자 관계 등 북한군 전반에 대한 문제도 포괄하고 있다. 金正日의 지시 중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북한 군대에 쌀을 우선적으로 공급한다는 발언이다. 이 책자에 실린 金正日의 어록 중엔 이런 대목이 있다. 『人民들에게는 쌀을 공급하지 않더라도 절대로 인민군은 굶겨서는 안 된다』는 金正日의 지시가 북한군 내부문서를 통해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 것이다. 金正日은 『지금 인민생활에서 제일 걸린 것은 먹는 문제이다』라며 외국에서 식량지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밝혔다. 사병들이 알면 큰 충격 金正日은 외국에서 쌀을
민주당이 고민에 빠졌습니다. 열린우리당의 鄭東泳 당의장 때문입니다. 50년 야당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있는 민주당은 사실상 호남 유권자들을 主된 지지세력으로 여겨왔습니다. 그런데 鄭東泳 당의장이 호남 출신이면서 여당의 강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부상할 가능성 때문에 현재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입니다. 민주당의 출입기자는 『鄭의원이 당선된 후 당내에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지도부 등 당관계자의 얼굴에서 그런 느낌을 읽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교섭단체 실현 가능성에 대한 우려까지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鄭東泳 의원이 호남을 찾아가 「호남의 호프(희망)ㆍDJ 이후 새로 나타난 차기 대통령감」 등을 집중 부각시킬 경우 호남 民心은 어떻게 변할까요? 민주당으로서는 한나라당-열린우리당의 양강 구도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부분도 큰 고민거리입니다. 盧武鉉 대통령이 이같은 구도로 4월 총선을 치를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鄭東泳 당의장 출범과 함께 방송인 박영선씨가 당초 민주당에 입당하기로 했다가 열린우리당에 전격 입당한 것을 두고, 열린당 내부에서는 鄭東泳 당의장의 첫 작품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鄭東泳 체제에 대한 고민은 杞憂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호남 출신의 한 기자는 『아직까지는 알 수 없다. 鄭東泳 당의장이 전북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민심의 변화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전남지역은 여전히 민주당이 우세한 상황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기존의 민주당 호남 의원들이 총선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습니다.
1995년쯤인가 일본의 어느 고위인사가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망언을 했습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한 바로 그때입니다. 당시 저와 친한 선배 한명이 있었습니다. 이 선배는 운동을 좋아하기 때문에 평소 청바지 등을 입고 다니며 옷차림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 선배가 평소 입지 않던 양복을 빼 입고, 이마를 훤히 보이는 머리 모양을 하고는 나타났습니다. 무슨 결혼식인지 모임인지 갔다 왔다는 데, 머리 모양이 일본 역사극에 나오는 영락없는 일본사람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머리를 뒤로 올린 선배의 모습이 우스워 배를 잡고 한참을 웃은 뒤, 『선배 일본 사람이요? 머리는 왜 그렇게 뒤로 바짝 넘겼어요』하고 놀렸습니다. 그러자 그 선배 하는 말, 『야, 제발 좀 그만해라. 오늘 모임 갔더니 만나는 친구마다 「독도 너 거냐?」고 한마디씩 하는 바람에 아주 혼이 났다. 일본놈들 괜히 헛소리하는 바람에 애꿎은 나만 욕을 봤다』 우리가 흔히 독일은 과거를 잘 반성하는데 일본은 왜 반성할 줄 모르냐고 합니다. 독일은 전범 히틀러가 제거 되었고, 일본은 전범 히로히토가 살아 남았습니다.이로써 일본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과거를 단절시키고 반성할 할 수 없는 구조적인 모순을 안게 된 것입니다. 일본이 망하지 않는한 그들에게 과거사 사과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각종 망언도 계속 될 것입니다. 일본의 한마디 한마디에 너무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은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는 일본이 독도를 자기땅이라고 하는 것보다 더 풍부하고 객관적인 자료를 대마도에 대해 가지고 있다는 것만 잊지 맙시다.
최근 한 人士로부터 들은 얘기입니다. 높은 지위에 있었던 前職 人士에 관한 내용입니다. 『뭐, 남자 사회에서 흔한 일 중에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사회활동을 하다보면 여러 사람들과 술을 마실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여자가 나오는 술집에도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前職 高位인사 A씨는 조금 달랐습니다. 여자를 좋아했습니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A씨를 포함해 몇몇 知人들끼리 술집에 갔습니다. 물론 여자도 있었습니다. 그 여성는 술집에 근무하는 여자가 아니라 B씨의 소개로 알게 된 여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 나이가 좀 어렸습니다. 당시 나이로 21세였습니다. 그러니까 A씨와는 나이 차이가 좀 많이 났죠. 그런데 한참 술을 마시고 있는데 그 여성이 눈물을 흘리더군요. 알고 봤더니 A씨가 동거를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 여자는 A씨의 사회적 지위에 눌려 거절을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 人士는 사회 고위층의 도덕성을 거론하는 도중에 A씨를 사례로 들었습니다. 『A씨는 그 후 또다른 여성문제로 곤욕을 치렀습니다. 결국 그는 돈 문제로 그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술자리에서도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 비밀은 절대 없습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추천권을 요구한 열린우리당의 「뜻」 河炅喆(하경철)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1월28일 임기가 만료됩니다.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헌법재판소는 국회에서 세 명을 선출할 수 있습니다(대통령 3명ㆍ대법원장 3명). 후임 재판관 추천권은 민주당 몫으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이 후보추천권을 요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민주당이 分黨되기 전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각 1명을 추천했고, 나머지 한 명은 與野 합의 下에 1명을 추천했습니다. 민주당이 分黨이 된 상태라 이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당연히 자신들의 몫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열린우리당은 원내교섭단체인 만큼 이번에는 자신들이 추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1월7일 한나라당 홍사덕 총무, 민주당 유용태, 열린우리당 김근태 원내대표, 자민련 김학원 총무 등이 朴寬用 국회의장 주선으로 회동을 가졌습니다. 참석자들은 FTA 비준안 등 쟁점법안 처리 및 정개특위 구성방안 등에 대해 각 당의 견해를 조율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河炅喆 재판관의 후임에 대한 인사청문회 등을 논의했다고 합니다. 현재 후보추천권은 민주당 몫으로 사실상 결정됐습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이 후보추천권을 요구한 것에 대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그 底意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관장하고 있습니다. 1)법원의 제청에 의한 법률의 위헌여부 심판 2)탄핵의 심판 3)정당의 해산 심판 4)국가기관 상호간,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간 및 지방자치단체 상호간의 권한쟁의에 관한 심판 5)법률이 정하는 헌법소원에 관한 심판 이처럼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盧武鉉 대통령의 탄핵을 거론한 적이 있습니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 대한 선거무효소송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4월에 있을 17대 총선 이후 정치권이 어떻게 재편될지 모릅니다. 아울러 선거무효소송의 결과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으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 몇 개 1. “600년 역사를 가진 도시 서울” 새해 첫날 이명박 서울시장은 신년사에서“600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서울은 자랑스런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고…”라는 말을 했습니다. 서울 시장이 서울의 역사가 몇년인지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태조 이성계가 서울을 수도정한 것이 약 600년 전입니다. 기록된 서울의 역사만도 백제의 온조 왕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따라서 서울은 최소 2000년이 더 된 도시입니다. 신도시를 제외하고 우리나라에서 600년의 역사가 안 되는 도시는 없습니다. 도시가 고려 전기에만 생겼다고 해도 기본 1000년의 역사는 먹고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2. “절대 왕권을 휘두르던 조선시대” 조선시대 왕들은 절대 왕권을 휘두르지 못했습니다. 사대부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왕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절대 왕권을 대표하는 '짐이 곧 국가다’란 말은 유럽에서 생겼습니다. 외국의 어느 학자는 “서양에는 폭군이 늘 곁에 있었지만 동양에는 그 많은 왕들 중에 폭군이 거의 없었다”고 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차기 왕이 될 사람은 철저한 성리학 교육을 받고, 왕이 된 후에도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에 구조적으로도 폭군이 나오기가 힘들었습니다. 세종이나, 영조, 정조 등 조선의 많은 왕들은 당대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는 대학자이자 영민한 철학자들이었습니다. 왕 자체가 그 나라의 통치 이념(우리는 성리학 이념) 을 이행할 만한 수준의 인격체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를 한 역사를 가진 나라를 세계사에서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3. “조선 봉건왕조” 우리나라 역사에서 봉건시대가 없었습니다. 조선이 ‘의회민주주의 국가’였다고 말하면 안 되듯이 ‘조선 봉건왕조’란 말은 그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조선은 철저한 중앙집권사회, 관료사회, 사대부와 양반들이 다스리던 사회였습니다. 사전적 의미로 ‘봉건적인’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하는
최근 북한군인을 소재로 한 영화 '동해물과 백두산이'가 개봉됐습니다. 본의 아니게 강원도 해수욕장까지 표류하게 된 두 북한병사의 한국 탈출기를 다룬 코미디 영화입니다. 상황설정은 어설프지만 작품 구성도 측면에서는 관객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다음은 탈북자동지회 소식지 '탈북자들'에 실린 글입니다. 필자 주성하씨는 김일성大를 졸업한 탈북자입니다. 필자는 북한을 소재로 한 한국 영화에는 정작 북한에 관한 솔직한 얘기는 없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탈북자동지회 홈페이지(WWW.NKD.OR.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에 북한이 없다. 주성하(김일성대 졸업) 어제는 김정일의 딸과 국정원장의 아들이 연애를 하더니(휘파람공주) 오늘은 북한 고위간부의 딸과 남한 정보책임자의 아들이 중국에서 연애를 한다(남남북녀). 남남북녀라는 말을 신조처럼 떠받들어 시나리오 작가들은 아름답고 활달한 북한아가씨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실제 직장동료들은 남·여 가림없이 나보고 북한여성들이 이쁜가고 묻는다. 이들의 머리에는 부산과 대구에 다녀간 응원단의 표상이 곧 북한여성의 이미지인 것 같다. 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북한여성들도 따져보면 다 남한의 공주님보다 더한 공주들이다. 이럴 때마다 나는 작가들을 죄다 어느 한 북한 기차역을 무작위로 선발해 그 앞에 반나절만 앉혀놓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면 아마 2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씩씩하게 걸어다니는 북한의 여성들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저번에 부산에 응원단이 왔을 때 인터넷 게시판들에 과연‘남남북녀’라고 난리들이 나자 여성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북녀는 인정하겠는데 남남은 인정할 수 없다고 말이다. 50kg이상은 여자 몸무게가 아니라는 얼토당토한 남자들의 주장에 얼마나 오늘도 수많은 여성들이 다이어트에 구슬땀을 쏟고 있고 마취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성형외과를 찾아가는 줄 아느냐, 지들은 하나도 안 가꾸면서 남남북녀라는 남자들 어처구니 없다는 등...
「진실 그리고 소통」을 방문해주신 네티즌 여러분, 甲申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시는 일은 성공하시고, 바라는 일은 꼭 이루시길 眞心으로 기원합니다. 지난 한 해는 마음만 바빴던 것 같습니다.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일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새해를 맞이해서 각오를 새롭게 다져봅니다. 취재도 열심히 하고, 사람들도 더 많이 만나고, 공부도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새해에는 반드시 장가 갈 겁니다. 새해에는 「진실 그리고 소통」을 좀 다른 방법으로 운영할 생각입니다. 우선 형식에 상관없이 자유로운 내용의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기사는 물론이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을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할까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의견도 적극 반영할 생각입니다. 아무튼 하나하나, 조금씩 탈바꿈해 나갈 것을 약속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크리스마스 전날, 날씨가 포근하다 못해 안개까지 짖게 끼었습니다. 12월초,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자 기상청은 전국에 한파주의보를 발령했습니다. 날씨가 진짜 추워서라기 보다 전날보다 10도 이상 기온이 떨어져서 발령한 것입니다. 「한파주의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만 가지고 봤을 때 이날 발령한 한파주의보는 약간 우습기도 했습니다. 그날 서울의 아침 기온이 영하 3~4도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겨울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이제 새로운 것이 못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작년만해도 한 1주일 가량 춥더니, 한강이 얼듯말듯하자 곧 날이 풀려 이듬해 봄까지 추위다운 추위가 제대로 오지 않고 지나갔습니다. 작년 겨울에는 눈은 오지 않고 비만 엄청나게 왔습니다. 재작년 겨울에는 눈은 많이 왔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춥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원래 우리나라의 겨울은 「살을 에는 추위」라는 표현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닐 정도로 매서운 것이 특징입니다. 임진왜란 때 가등청정(加藤淸正)이 함경도로 들어갔다가 추위와 굶주림에 거의 죽다가 살아 나왔고, 6.25 때는 미군도 장진호 전투 등에서 추위 때문에 많은 병력을 잃었을 정도입니다. 춥지 않은 겨울의 기억을 더듬다 보니 1980년대 후반 어느 겨울이 생각납니다. 저는 여느 해처럼 흔히 시골에서 ‘시게토(스케이트의 일본어)’라고 부르던 썰매를 만들며 겨울을 준비했습니다. 우리 집 앞에 작은 도랑이 있는데 겨울에 한번 얼면 이듬해 3월이나 되어야 얼음이 녹는 시늉을 하기 때문에, 썰매를 한번 만들어 놓으면 한 겨울 내내 좁은 도랑에서 썰매를 탈 수 있습니다. 어쨌든 신나게 썰매를 만들어 놓았는데, 12월이 지나고 1월이 되어도 도랑에 얼음이 얼지 않는 것입니다. 이상하다며 고개만 갸웃거리는 사이 결국 봄이 되었고 그 해는 결국 썰매를 탈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기억하는 이상한 겨울의 첫 기억입니다. 그 후로는 그런 일이 해를 걸러 한번씩 일어 나더니 급기야 몇 년 전부터는 아예 얼음
「닭을 잡다」 할 때 닭의 발음은 「닥」이 아니라 「달」- 「달」에 강세가 들어가며 짧게 발음함, 강세가 들어가지 않고 길게 발음하 달(月)이 됨-이라고 발음해야 합니다. 흙도 마찬가지 입니다. 「흙을 퍼 나르다」 할 때 흙은 「흘글」퍼 나르다가 됩니다. 그런데 요즘 이 발음을 지키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발음하듯 「닥을 잡다」고 발음하면 이때 「닥」은 닥나무란 뜻이 됩니다. 「흑을 퍼 나르다」라고 발음하면 흙이란 뜻이 사라집니다. 국어사전에서는 닭이나 흙이 단독으로 쓰일 때는 「닥」과 「흑」이라고 발음된다고 돼 있지만, 실상 시골 노인들이 발음하는 것을 보면 닭이나 흙이나 단독으로 발음할 때도 「달(강세를 높게 두면서 발음을 끌어당기듯이 혀를 매우 긴장해서 발음함)」, 「흘(역시 끌어당기면서 혀를 긴장해서 발음함)」로 발음하고 있습니다. 이때 「ㄱ」 발음은 거의 들리지 않지만 혀를 긴장해서 끌어당기는 자체가 「ㄱ」 발음이 살아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대신 이 닭이나 흙이 다른 말과 이어질 때는 반드시 「ㄱ」 발음이 확실히 살아 납니다. 국어사전에 닭고기는 「닥꼬기」로 발음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시골 노인들 중에 닭고기를 「닥꼬기」로 발음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예외없이 「달꼬기」라고 발음합니다. 경상도와 전라도 등 남도지방에서는 아예 속편하게 닭을 「달구(새끼)」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닭과 「ㄹ」발음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요즘은 아예 닭의 모든 발음이 「닥」 하나로 통일되고 있습니다. 얼마전 TV에서 일기예보를 보고 있는데 여자 일기 예보관이 『오늘은 날씨가 맑겠습니다』를 『오늘은 날씨가 막겠습니다』라고 발음했습니다. 날씨가 어떻게 「막겠는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막겠습니다」가 아니라 『날씨가 「말껬습니다」』라고 발음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국어사전을 보면 「밟다」란 발음은 「밥따」라고, 똑 같은 형인 「떫다」란 발음은 또 「떨따」라고 발음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말리다」라는 단어는 발음을 어떻게 하느냐 따라 뜻이 달라지는 신기한 단어입니다. 2002년 대선하루 전의 일입니다. 정몽준 후보가 갑자기 노무현 후보와의 공조를 파기한다고 하면서 김행 대변인이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김행 대변인이 발표한 담화문 가운데는 노무현 후보가 유세장에서 『미국과 북한이 싸우면 우리가 말린다』라고 말했다는 표현이 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미국과 북한이 싸우면 우리가 싸움에 말려 들어간다」는 뜻으로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김행 대변인이 「말린다」를 발음할 때 장단음을 명확하게 구별하지 않고 모호하게 발음했기 때문입니다. 싸움을 「말린다」라고 할 때는 타동사가 되어 「리」 발음을 길게 빼면 안되고 짧게 발음해야 합니다. 반대로 「말려든다」는 의미로 말할 때는 수동사가 되어 「리」 부분을 길게 발음해야 합니다. 같이 TV를 보던 사람들은 대체로 「싸움을 말린다」라는 뜻으로 들었으나, 저를 비롯해 일부 사람은 「우리가 싸움에 말려 들어간다」는 뜻으로 듣기도 했습니다. 청취에 이런 오해가 생긴 것은 말하는 사람이 「말리다」란 단어의 장단음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리다」란 말은 발음의 장단에 따라 뜻이 달라지지만, 「날리다」란 말은 수동이냐 사동사로 사용하냐에 따라 발음의 장단을 다르게 해야 하는 단어입니다. 「무엇이 바람에 날리다」라고 할 때는 「날다」의 수동 됩니다. 그러나 「내가 연을 날리다」라고 할 때는 「날다」의 사동이 됩니다. 수동일 경우에는 「리」자를 길게 빼야 하고 사동일 경우는 짧게 발음해야 합니다. 「홀리다」란 단어도 이런 경우에 속합니다. 특히 한자로 구성된 우리말에서 장단음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흔히 「호국(護國) 보훈의 달」이라고 할 때 호국은 「호」자를 길게 발음해야 합니다. 짧게 발음하면 호국(胡國)이 되어 「야만인의 나라」란 뜻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외에도 제국(帝國:장음)과 제국(諸國:단음), 수학(數學;장
『연좌제로 인해 더 이상 고통받을 수 없다.』 지난 3일 서울 을지로1가 국가인권위원회를 방문한 납북자가족 11명이 7층 회의실을 점거하고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최성룡(51)씨를 대표로 한 이들은 납북자가족모임의 회원들로 60, 70대의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국가인권위 관계자를 만나 1년 전 인권위에 제출한 연좌제 피해보상과 인권침해 진정에 대한 해결책을 요구했으나, 인권위 측으로부터 만족할 만한 대답을 얻지 못하자 회의실을 점거하고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납북자 즉각 송환을 위한 정부의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노력과 납북자가족 지원법 제정 등의 요구사항을 내세우고 있다. 그 속에는 납북자 가족에 대한 연좌제 폐지에 관한 사항도 포함돼 있다. 연좌제로 인해 이들이 받고 있는 피해와 고통은 가혹하리 만큼 크다. 요시찰 인물로 분류돼 경찰에 신고없이는 이사도 마음대로 하지 못할 만큼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고 있으며, 연좌제에 얽힌 자식들은 취업도 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최대표는 “盧武鉉 대통령이 해양수산부장관 시절 납북자 송환과 연좌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 만큼 이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납북자 문제에 관한 조속한 해결을 요구했다. 국가인권위는 “정책권고에 시간이 걸리고, 19일 이 문제와 관련된 공청회를 열 예정이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농성 중인 이들을 달랬다. 하지만 최대표를 필두로 회원들 모두가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이대로 물러나면 다시는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킬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어 단식농성이 언제 끝날지는 미지수다. 회원들의 대다수가 60, 70대의 노인들인 탓에 이들의 단식농성은 자칫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盧武鉉 대통령의 약속이행만이 불행한 결과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왕따’란 말은 원래 중고등학생 사이의 은어로 쓰였습니다. 이 말이 언론에 소개된 것도 채 5년이 넘지 않습니다. 중고등학교 내에 횡행하던 따돌림 현상을 보도하면서 언론도 이 말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왕따란 말이 생겨나게 된 것은 일부 연예인들이 왕미녀, 왕초보 등의 말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 연장선상에서 중고등학생들이 왕따란 말을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아예 표준말처럼 이 말을 쓰고 있습니다. 요즘은 중학생이나 씀 직한 ‘얼짱’이란 단어도 언론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얼짱은 「얼굴짱」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얼마 가지 않아 왕따처럼 얼짱이란 말도 표준말처럼 쓰이리라고 봅니다. 국민의 말과 언어를 선도해야 할 언론과 방송이 이런 초등학생 수준의 은어와 비속어와 타협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그 동안 대학생들의 노력으로 새로 탄생한 우리말이 몇 개 있습니다. 동아리, 새내기 등과 같은 단어입니다. 1980년대 말 대학에서는 ‘서클’이란 말 대신 ‘동아리’란 말을 만들어 썼습니다. 지난 십여 년간 서클과 동아리란 말이 치열한 경쟁을 하다가 이제는 ‘동아리’라는 말이 서클이란 말을 거의 대치 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서클보다 동아리란 말이 더 우세하게 쓰입니다. 대학생들은 그 외에도 신입생이란 말을 ‘새내기’란 말로 대치 했습니다. 그 외 ‘총학생회 출범식’이니 하는 것도 ‘해오름식’이란 말로 바꾸어 쓰고 있습니다. 대학생들이 만든 이런 우리 말 중에 일부는 동아리란 말처럼 살아서 생명을 얻을 것이고 일부는 살아 남지 못할 것입니다. 언론은 최근 ‘프리터族’이란 일본식 조어를 대단한 말을 발견한 듯 쓰고 있습니다. 영어 프리(free)와 독일어 아르바이트(arbeiter)의 합성어인 이 단어는 ‘일정한 직업을 갖지 않고 필요에 따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을 뜻한다고 합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란 말도 최근에 누구나 즐겨쓰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프리터족이
시골에 내려갔는데 어머니께서 메뚜기 튀김을 반찬으로 내 놓으셨습니다. 초등학교 때 보고 처음으로 보는 나락 메뚜기(벼 메뚜기) 반찬이었습니다. 제가 이곳 기자수첩에서 요즘 시골에 생태계가 살아 나는 것 같다고 한 적이 있는데 메뚜기가 꽤 많이 늘어 났음을 증명하는 일이라 무척 반가웠습니다. 나는 한 두 마리 그냥 맛을 보기 위해 먹어 보았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지난 10여년간 논에 농약을 치지 않고 농사를 지어 왔습니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농약치는 것이 번거롭기도 하지만 노인네 둘이 하기에는 보통 벅찬 일이 아니라서 그냥 포기하고 농사를 지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농약치지 않고 지은 그 쌀을 더 비싸게 파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일반 수매장에 일반 쌀과 같은 값으로 수매 하기 때문에 용케 그 쌀을 먹는 사람은 운이 좋을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농약을 치지 않은 우리 논은 해마다 가을이 되면 나락 메뚜기 뿐만 아니라 골뱅이를 비롯 미꾸라지 붕어 개구리 등이 제법 많이 돌아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릴 때는 주위에 걸리는 것이 모두 우리들의 간식거리였습니다. 만만한 게 개구리라고 죄없는 개구리가 주로 많이 당했고 그 다음이 메뚜기 골뱅이 등입니다. 우리는 연못이나 무논에 사는 물방개도 먹었습니다. 그냥 방개(똥방개)는 못 먹고 배때기 주변에 노란 띠가 둘러쳐진 참방개는 먹을 수가 있습니다. 참방개를 잡아서 물그릇 속에 넣고 잿불에 올려 놓아 삶아 먹거나, 아예 잿불 속에 묻어 구워 먹기도 했습니다. 원래 시골 아이들이 별것을 다 먹고 자라지만 제가 방개도 잡아 먹었다고 하면 도시나 타 지역 시골에서 자란 친구들은 도저히 못 믿겠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하루는 학교 선배와 TV를 보다가 물방개가 나오기에 제가 『와 맛있겠다』하고 엉겹결에 말했습니다. 제 말을 들은 선배가 어이 없다는 듯이 쳐다 보더니 『왜 바퀴벌레는 안 잡아 먹냐』하고 말하더군요. 저는 더러운 바퀴벌레와 맛있는 물방개를 어떻게 같이
宋총장, 『수사 사건에 대해 직원들끼리 묻지도 말라』 내부공문 보내 政局이 檢察에 따라 좌지우지 되고 있습니다. 현대ㆍSK 비자금, 盧武鉉 대통령 측근 비리 그리고 大選자금. 정치권은 물론 재계까지 좌불안석입니다. 檢察의 힘이 어느 때보다 막강해졌습니다. 그러나 檢察의 성격이 과거와 약간 달라보입니다. 脫정치화, 脫권력화 여부를 떠나 現 검찰은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新檢察 시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守勢(수세) 입장에 있는 한나라당이 『검찰을 못믿겠다』며 특검법 3개 법안(정치권 불법자금 의혹ㆍ열린우리당 大選자금 불법모금 의혹ㆍ대통령 측근 비리 의혹)을 내놓았습니다. 정치권이 特檢을 운운하니 檢察 입장에서는 억울할 것입니다. 大檢 文孝男(문효남) 수사기획관은 『대통령 측근비리에 대해 檢察이 적당히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SK비자금의 정치권 유입 외에 李相洙·鄭大哲 의원에 대해 언론이 제기한 의혹도 수사한다.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같은 차원에서 철저히 수사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新檢察 시대」의 주인공으로 宋光洙(송광수) 검찰총장과 安大熙(안대희) 大檢 중수부장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최근 宋총장은 全 검찰공무원을 대상으로 내부공문을 보냈습니다. 공문은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내부직원들끼리도 서로 물어보지 말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직무교육 할 때나 거론되는 사항을 검찰총장이 공문을 통해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 수사내용에 대해 물으면 묻는 사람이 「이상한 놈」으로 취급받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이 같은 조치는 검찰 내부나 외부로부터의 압력을 막기위한 宋총장의 의지라고 합니다. 『宋총장은 최고 지휘관으로서 조직을 보호, 총괄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바람막이 역할을 잘 한다. 역대 검찰총장의 행태와는 다른 면이 있다. 그는 성격上 부하 직원들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간섭하는 스타일이 아니다』(大檢 관계자) 安大熙 중수부장은 핫 이슈인 大選자금, 기업 비자
『우리는 憲法에 忠誠한다』 최근 만난 국군기무사령부 소속의 한 장교는 宋斗律(송두율)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며 기무부대의 對共업무는 어떤 성격의 권력이 들어서더라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1사단장, 한미연합사 부참모장을 지내는 등 機務(기무) 업무와 동떨어졌던 宋永勤(송영근ㆍ56ㆍ육사 27기) 기무사령관도 사령관으로 부임해 부대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고 『對共업무의 프로들』이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기무사 장교는 몇 해 전 月刊朝鮮 趙甲濟 편집장이 기무부대를 찾아 강연했던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습니다. 당시 趙편집장이 기무부대의 訓(훈) 중 「忠誠(충성)」을 가리키며, 『기무부대 출신 군인 중 두 명이 대통령(全斗煥, 盧泰愚)이 됐고, 기무부대를 거쳐간(?) 민간인 중 두 명(金泳三, 金大中)이 대통령이 됐다. 機務司(기무사)는 현대 한국정치사의 흐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며, 『여러분들이 충성해야 할 유일한 대상은 憲法(헌법)』이라고 언급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습니다. 최근 軍 장성급 인사에서 中將으로 진급한 宋永勤 장군도 부임직후 부대원들에게 『여러분들이 충성해야 할 대상은 사령관이 아니라 조국, 대한민국이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광화문을 볼 때마다 저는 마치 싸늘한 시신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일제는 총독부 건물을 지은후 광화문을 헐어 버리려 했습니다. 그러자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일본인 학자가 「헐리려고 하는 광화문을 위하여」라는 詩를 지어 일본인의 야만성을 통렬하게 나무라며 광화문 철거 반대 여론을 주도했습니다. 여론에 밀려 헐릴 위기에서 벗어난 광화문은 경복궁 동쪽 건춘문 옆으로 옮겨져 해방을 맞았습니다. 그러다가 6.25 전쟁 때 불타 버린 것을 1969년 故 박정희 대통령이 현재의 위치에 철근 콘크리트로 새로 만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이 콘크리트 건물이 우리나라 제일 왕궁의 정문의 임무를 완수하기에는 역부족인가 봅니다. 남대문이나 기타 왕궁의 문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나 위엄, 혹은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로 이어주는 생명력이 풍기지 않습니다. 광화문 앞의 해태상은 길가 인도로 치워져서 온갖 매연과 분진을 뒤집어 쓰고 있습니다. 도로는 광화문에 바짝 붙어 지나가고 있어 이 나라 정궁의 정문이 숨을 쉴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도 주지 못하는 살벌한 인심을 보여 주는 듯 합니다. 광화문만이 경복궁의 슬픈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눈을 오른 쪽으로 돌리면 괴물 같은 민속박물관이 버티고 있습니다. 이런 요상한 건물이 우리 손에 의해, 그것도 경복궁 한복판에 지어 졌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지만 현실입니다. 시선을 경복궁 뒤 쪽으로 돌리면 주변 경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청와대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청와대라는 이름은 「푸른 기와 지붕의 臺(대:사방을 볼 수 있게 높이 쌓아 만든 곳)」라는 말로 사실상 아무 의미 없는 이름입니다. 대통령이 사는 집에 왜 臺자가 들어가야 하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청와대가 「잘 지은 위엄 있는 건물」이라느니 「한국의 美를 표현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경복궁과 연계시켜 볼 때 자화자찬의 말 잔치에 지나지 않습니다. 산채만한 청와대 건물이 경복궁을 오만하게 짓누르고 있어 궁궐의 모습
「고도리」는 우리 집에서 17년 가까이를 산 고양이 이름입니다. 이 놈은 제가 중학교 3학년 때인 1986년 이웃 동네에 있는 친구 집에 갔다가 얻어 왔습니다. 몸에 털 한 올도 흰색이라고는 없는 완전 새카만 고양이 였습니다. 가져올 때 가위 뼘으로 한 뼘이 채 되지 않은 놈이었습니다. 그 때 우리집은 쥐로 득실거렸습니다. 쥐방울 만한 고도리에게 시범으로 자기 덩치만한 쥐를 잡아서 던져 주었습니다. 그러자 이놈의 표정이 일순간 변하더니 「골골골」 하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쥐를 꽉 물고는 아무도 접근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쥐만 보면 주인도 몰라보고 할퀴어 댔습니다. 저는 「됐다」 싶어 이 놈을 쥐가 많은 뒤주에 집어 넣었더니 뒤주의 쥐가 금새 사라졌습니다. 천장 위를 우르렁 거리며 지나 다니던 쥐도 일순간 사라졌습니다. 집에 쥐가 사라지자 이제는 집 마당의 짚단과 수출 등지를 돌아 다니며 쥐를 잡았습니다. 어찌나 쥐를 잘 잡던지 하루에 제 덩치 만한 놈을 한마리씩은 꼭 잡아 먹는 것입니다. 하루는 마당에 폼을 잡고 한참이나 앉아 있더니 물을 마시려고 수돗가에 잠시 앉은 재비를 잽싸게 낚아 채는 것입니다. 짝을 하나 잃은 재비에게는 다섯 마리의 새끼가 있었습니다. 암놈인지 수놈인지는 모르지만 제비 한 마리가 새끼 다섯 마리를 한 마리의 낙오도 없이 훌륭하게 키워 가을에 같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또 하루는 논에서 나락을 베는데 고도리를 데리고 갔습니다. 고도리는 개구리와 메뚜기를 잡기 위해 온 논바닥을 뛰어 다녔습니다. 저는 열심히 나락을 베고 있었는데 그만 고도리의 꼬리까지 같이 뭉텅 잘라 버렸습니다. 그래서 고도리의 꼬리는 손 가락 한마디 정도가 잘려 나갔습니다. 우리나라 고양이 수놈은 다 자라면 집을 나가 들 고양이가 되는 것이 고양이로서 정상적인 일생입니다. 암 놈은 다 커도 집을 잘 나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고도리는 수놈이었는데도 죽을 때까지 대문 밖에도 잘 나가지 않은 특이한 놈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가 장에만 갔다 오시면 「강아지를 사왔냐」고 졸랐습니다. 어느날 어머니께서 장에 갔다 오셨는데 플라스틱 휴지통 안에 검정 강아지 한 마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팔짝팔짝 뛰며 좋아했습니다. 제가 강아지를 사달라고 노래를 한지 거의 일년 만에 얻은 선물이었습니다. 8000원 주고 산 한 뼘 남짓한 이 암놈 강아지가 제가 처음으로 키워본 애완견입니다. 물론 똥개였지만 저에게는 그 어떤 명견도 부럽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시 초등학생이었지만 개 이름을 외국 이름으로 짓는 것에 불만이 많은 상태였습니다. 저는 강아지에게 「재롱이」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학교에서 한달음에 돌아와서 재롱이를 찾으면 이놈은 어떤 날은 볏 집 속에서 튀어나오고, 어떤 날은 밭에서 흙장난을 하다가 줄달음을 치면서 내려 옵니다. 저는 강아지를 자주 방에 들여놓고 안고 잤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께서 보시면 아버지는 강아지를 베개 잡듯이 집어 들고 창 밖으로 휙 던져 버립니다. 재롱이가 아버지에게 걷어차이고, 집어 던져지는 날이면 괜히 방으로 들였다는 후회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재롱이는 얼마나 똑똑한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았습니다. 특히 눈치가 빠르고 충성심이 강했습니다. 친구와 칼 싸움을 하거나 가짜로 쿵후 대련을 하면서 제가 맞아서 쓰러지는 흉내라도 내면 재롱이는 친구에게 짖으면서 물듯이 달려듭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면 재롱이는 동구 밖 높은 곳에 앉아 있다가 날듯이 달려와 깡총깡총 뛰면서 반가와 합니다. 하도 반갑게 달려들면서 인사를 하기 때문에 제가 입은 옷은 금새 개발바닥의 흙이 묻어 더러워 집니다. 재롱이는 아침마다 제가 학교가는 것을 몹시 궁금하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학교에 따라오려는 재롱이를 떼어내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돌을 던지기도 하고, 소리를 치고 하면 재롱이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집에 돌아가는 척하다가 어느 사이 제 꽁무니 뒤에 바짝 다가와서 졸졸 따라 옵니다. 하루는
한강포럼 9월 강연 誌上 중계 韓中日 三國은 장기가 아닌 바둑을 두어야 한다 최서면(崔書勉) 在日국제한국연구원장은 지난 9월19일 오전 7시 세종문화회관 소연회장에서 한강포럼 주최로 월례 조찬 강연을 했다. 이 기사는 崔원장이 행한 강연 「오늘의 일본―일본인,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요약한 것이다. -------------------------- 崔書勉 국제한국연구원장 약력 1926년 강원 原州 출생. 연희전문 文科 수료, 충남大 대학원 문학박사, 단국大 명예문학 박사. 大東新聞 기자, 고아원 「聖방지거의 집」 원장, 서울천주교총무원 사무국장, 日本 아세아大 교수, 日本 도쿄 한국연구원 원장, 安重根 의사 숭모회 이사, 全國아리랑보존연합회 초대회장 역임. 現 국제한국연구원장, 한국몽골친선협회 회장, 韓日포럼 자문위원. 저서:「安重根 사료」, 「7년전쟁(임진, 정유왜란)」, 「몽골기행」, 「새로 쓴 安重根 의사」 등. 한일합방, 타당한 용어인가 얼마 전 휴전 50주년이 되는 날, 일본 언론계의 중진과 함께 식사를 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오늘이 휴전회담 50주년인데 그 동안 고생 많았다』는 말씀에 그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반세기나 되었나, 참으로 세월이 빠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때 저는 『휴전 50년은 어제처럼 느껴지는데, 일제 36년은 그보다 짧은데도 불구하고 왜 훨씬 길게 느껴지는 것일까, 이것이 바로 아무리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한일관계의 기본 같다』고 했더니 일본 언론인들도 『치욕(恥辱)의 1년은 치욕이 없는 10년보다 더 길다』고 동조해 주셨습니다. 그 치욕의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 일본의 외교사료관(外交史料館)입니다. 그곳에는 우리가 갖지 못한 귀중한 자료들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그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한일 관계와 관련, 한국사람이 가장 많이 입에 올리는 말이 「한일합방(韓日合邦)」입니다. 이 용어가 타당한 것인가. 「합방(合邦)」이라 하면 두 나라가 연방국(聯邦國)을 만드는
1. 마징가 제트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정답 : 낫 참고 : 낫 하나면(나타나면) 모두모두 덜덜덜 떠네...무쇠팔 무쇠다리 로케트 주먹.... 2. 미닫이를 소리나는 대로 쓰시오. 정답: 드르륵 3. '적토마가 엄청나게 빨리 달린다'를 여섯 자로 표현하면? 정답: 따그닥 따그닥
'지방선거 구인난' 국민의힘, 추미애에 맞설 경기도지사 후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