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이야기 - 고도리

  • 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hanal@chosun.com
  • 업데이트 2003-10-02  21:9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고도리」는 우리 집에서 17년 가까이를 산 고양이 이름입니다. 이 놈은 제가 중학교 3학년 때인 1986년 이웃 동네에 있는 친구 집에 갔다가 얻어 왔습니다. 몸에 털 한 올도 흰색이라고는 없는 완전 새카만 고양이 였습니다. 가져올 때 가위 뼘으로 한 뼘이 채 되지 않은 놈이었습니다. 그 때 우리집은 쥐로 득실거렸습니다. 쥐방울 만한 고도리에게 시범으로 자기 덩치만한 쥐를 잡아서 던져 주었습니다. 그러자 이놈의 표정이 일순간 변하더니 「골골골」 하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쥐를 꽉 물고는 아무도 접근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쥐만 보면 주인도 몰라보고 할퀴어 댔습니다. 저는 「됐다」 싶어 이 놈을 쥐가 많은 뒤주에 집어 넣었더니 뒤주의 쥐가 금새 사라졌습니다. 천장 위를 우르렁 거리며 지나 다니던 쥐도 일순간 사라졌습니다. 집에 쥐가 사라지자 이제는 집 마당의 짚단과 수출 등지를 돌아 다니며 쥐를 잡았습니다. 어찌나 쥐를 잘 잡던지 하루에 제 덩치 만한 놈을 한마리씩은 꼭 잡아 먹는 것입니다. 하루는 마당에 폼을 잡고 한참이나 앉아 있더니 물을 마시려고 수돗가에 잠시 앉은 재비를 잽싸게 낚아 채는 것입니다. 짝을 하나 잃은 재비에게는 다섯 마리의 새끼가 있었습니다. 암놈인지 수놈인지는 모르지만 제비 한 마리가 새끼 다섯 마리를 한 마리의 낙오도 없이 훌륭하게 키워 가을에 같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또 하루는 논에서 나락을 베는데 고도리를 데리고 갔습니다. 고도리는 개구리와 메뚜기를 잡기 위해 온 논바닥을 뛰어 다녔습니다. 저는 열심히 나락을 베고 있었는데 그만 고도리의 꼬리까지 같이 뭉텅 잘라 버렸습니다. 그래서 고도리의 꼬리는 손 가락 한마디 정도가 잘려 나갔습니다. 우리나라 고양이 수놈은 다 자라면 집을 나가 들 고양이가 되는 것이 고양이로서 정상적인 일생입니다. 암 놈은 다 커도 집을 잘 나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고도리는 수놈이었는데도 죽을 때까지 대문 밖에도 잘 나가지 않은 특이한 놈입니다. 제가 군에 갔을 때에도, 도시에서 학교에 다닐 때도 고도리는 변함없이 우리집에 있었습니다. 늙은 고도리는 털 색깔이 회색처럼 되고 뻣뻣해 졌지만 제가 집 마당을 들어서면 자신의 존재를 알리듯 어디선가 훌쩍 뛰어나와 마당을 잠시 어슬렁 거린 다음 다시 잠을 자러 갑니다. 특히 겨울에 고도리는 소죽을 끓이거나, 방에 굼불을 때는 아래채의 가마솥 부근에서 잠을 자기를 좋아 합니다. 불을 땐 후 따뜻한 온기가 가마솥 주변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고도리는 가끔 아예 부엌 아궁이 안에 들어가 잠을 자기도 합니다. 그 안이 더 따뜻하기 때문입니다. 재 작년 초 고도리는 잠을 자기 위해 역시 가마솥이 걸려 있는 아궁이 안에 들어 갔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이런 사실을 모른 채 평소와 다름없이 굼불을 때기 위해 아궁이 입구에 장작을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아궁이 밖을 이렇게 막을 동안 안에서 잠을 자던 고도리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지금 생각해 보니 고도리가 아버지를 무서워 했기 때문이라고 보입니다. 아버지께서 집 짐승을 괴롭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따뜻하게 대해 주지도 않습니다. 특히 고도리는 방에 있는 밥상 위에서 음식을 훔쳐 먹다 아버지에게 자주 걸렸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밥상 위에서 음식을 훔쳐 먹는 고도리를 보면 소리를 버럭 지르시거나 발로 걷어 차버리기 때문에 고도리의 머리에는 아버지가 항상 두려운 존재로 각인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뭔가를 훔쳐 먹을 때 사람이 들어서면 고도리는 놀라서 후다닥 도망을 치다가도 상대가 저인 것을 알면 창문 턱에 걸터앉아 「야옹」하며 꼬리를 칩니다. 저는 고도리가 음식을 훔쳐 먹는데 한번도 야단을 친 적이 없기 때문에 저를 보고는 도망을 가지 않고 오히려 먹던 것을 끝까지 먹습니다. 고도리가 아궁이 입구가 막히는 데도 그 안에 계속 있었던 것은 밖에 아버지라는 자신에게 때리거나 소리치는 두려운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아버지는 아궁이 안에 고양이가 있다는 것은 전혀 생각도 못하고 입구를 막아 놓고 불을 지폈습니다.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한 고도리가 소리를 치며 입구로 나오려고 했지만 불은 이미 활활 타고 있었고, 아궁이 입구가 장작에 막혀 고도리가 빠져 나올 공간이 없었습니다. 밖에 있는 아버지도 놀라서 어떻게 손을 써 보려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고도리는 불에 심하게 탔습니다. 겨우 고도리를 꺼내어 놓았지만 이미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 다음날 고도리는 죽었습니다. 그 사고만 아니었으면 최 장수 고양이의 기록을 세우는 것을 볼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 스크랩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많이 본 뉴스
  • 세계속 코이카'
  • 배진영의 '어제 오늘 내일'
  • 김태완 'Stand Up Daddy'
  • 권세진 ‘별별이슈’
  • 정혜연 ‘세상 속으로’
  • 박희석 ‘시시비비’
  • 이정현 ‘블루오션을 찾아서’
  • 박지현 ‘포켓 저널리즘’
  • 하주희 ‘블루칩’
  • 이경훈 현장으로’
  • 김광주의 뒤끝
  • 백재호의 레이더
  • 고기정의 特別靑春
  • 슬기로운 지방생활
  • 이상곤의 흐름
  • 서봉대의 되짚기
  • 국제상인 장상인의 세계, 세계인
  • 취재본부는 지금’
  • 조갑제 기자의 최신정보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