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전날, 날씨가 포근하다 못해 안개까지 짖게 끼었습니다.
12월초,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자 기상청은 전국에 한파주의보를 발령했습니다. 날씨가 진짜 추워서라기 보다 전날보다 10도 이상 기온이 떨어져서 발령한 것입니다. 「한파주의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만 가지고 봤을 때 이날 발령한 한파주의보는 약간 우습기도 했습니다. 그날 서울의 아침 기온이 영하 3~4도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겨울이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이제 새로운 것이 못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작년만해도 한 1주일 가량 춥더니, 한강이 얼듯말듯하자 곧 날이 풀려 이듬해 봄까지 추위다운 추위가 제대로 오지 않고 지나갔습니다. 작년 겨울에는 눈은 오지 않고 비만 엄청나게 왔습니다. 재작년 겨울에는 눈은 많이 왔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춥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원래 우리나라의 겨울은 「살을 에는 추위」라는 표현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닐 정도로 매서운 것이 특징입니다. 임진왜란 때 가등청정(加藤淸正)이 함경도로 들어갔다가 추위와 굶주림에 거의 죽다가 살아 나왔고, 6.25 때는 미군도 장진호 전투 등에서 추위 때문에 많은 병력을 잃었을 정도입니다.
춥지 않은 겨울의 기억을 더듬다 보니 1980년대 후반 어느 겨울이 생각납니다. 저는 여느 해처럼 흔히 시골에서 ‘시게토(스케이트의 일본어)’라고 부르던 썰매를 만들며 겨울을 준비했습니다. 우리 집 앞에 작은 도랑이 있는데 겨울에 한번 얼면 이듬해 3월이나 되어야 얼음이 녹는 시늉을 하기 때문에, 썰매를 한번 만들어 놓으면 한 겨울 내내 좁은 도랑에서 썰매를 탈 수 있습니다.
어쨌든 신나게 썰매를 만들어 놓았는데, 12월이 지나고 1월이 되어도 도랑에 얼음이 얼지 않는 것입니다. 이상하다며 고개만 갸웃거리는 사이 결국 봄이 되었고 그 해는 결국 썰매를 탈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기억하는 이상한 겨울의 첫 기억입니다. 그 후로는 그런 일이 해를 걸러 한번씩 일어 나더니 급기야 몇 년 전부터는 아예 얼음 어는 겨울이 도리어 이상한 겨울이 되었을 정도입니다.
기억을 조금만 더 되돌려 국민학교 시절로 돌아가 보면...
이때만 해도 우리의 외출 복장은 귀마개, 벙어리 장갑, 양말 두 켤레는 기본이고 여기에 내복, 「돗바」라고 부르던 두툼한 외투, 목도리, 방울 달린 빵모자 등으로 완전히 중무장을 한 후에야 밖에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껴 입고 놀아도 손가락과 손등이 갈라지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학교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 용의검사 할 때 『이놈아, 까마귀가 네 손보고 「할배요」 하겠다, 손 좀 씻어라』하며 대나무 자로 손등을 탁탁치던 기억이 납니다.
산중턱과 그늘진 언덕에는 바람결에 날려온 눈이 언제나 한길씩 쌓여서 굳어 가고 있었고, 저 멀리 약간 높은 산봉오리는 새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집 앞 담장 아래는 첫 눈 올 때 만들어 놓은 눈사람이 채 녹지 않은 채 몇 주일이나 서 있었습니다. 겨울 방학 전에 이미 수북하게 쌓인 눈을 밟으며 학교를 다니던 것과, 동네 구멍가게에서 매일 아침 얼어서 깨진 콜라, 사이다 병을 버리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심지어 아침에 마당에서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몇 발자국 걸어서 방에 들어가면 머리에 벌써 고드름이 생기곤 했습니다.
학교 오가는 길에 조그만 연못이 있는데 이곳은 동네 아이들 아이스하키 대항전이 열리는 곳이었습니다. 아이스하키 장비라야 주변의 나뭇가지 대충 꺾어 만든 막대기에 얼음 조각을 「퍽(공)」으로 썼습니다. 이 얼음 공에 얼굴을 맞아 몇 바늘이나 꿰매야 했던 친구도 있었습니다.
하교 길에 어느 한 동네 아이들이 얼음이 꽝꽝 언 연못에 들어가 아이스하키를 하고 있으면, 다른 동네 아이들이 지나가다 합세를 합니다. 곧 동네별 아이스하키 경기가 펼쳐지고 연못은 즐거운 놀이터가 되곤 했습니다.
얼음이란 놈은 참 신기합니다. 한때 우리 동네 주변에 학교 운동장 반 만한 크기의 연못이 하나 있었습니다. 가장자리는 얼음이 제법 두껍게 얼지만 연못 안쪽으로 살살 걸어 들어가면 얼음은 「짜랑 짜랑」 소리를 내며 금이 가 곧 깨어질 듯이 위태해 보입니다.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발로 얼음을 굴리며 연못 안쪽으로 전진해 들어갑니다. 조심조심 연못 한가운데까지 와서 얼음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는 연못은 놀이터가 됩니다.
표면에 수많은 금이 가있고, 군데 군데 숨구멍으로는 물이 출렁거리며 솟아나지만 우리는 아랑곳 하지 않고 썰매도 타고 미끄럼도 탑니다. 얼음은 마치 고무줄로 서로 얽혀 있는 것 처럼 출렁거리기는 할지언정 좀처럼 깨어지지 않은 것이 신기합니다.(요즘얼음은 장담 못하겠으니 얼음 언 연못에는 들어가지 않은 것이 최상일 듯 합니다)
그러나 논바닥의 얼음은 숨구멍을 잘못 디디면 발이 그대로 푹 빠집니다. 이런 숨구멍은 주로 「소(沼)」 주변에 형성되는데 「소」 주변은 얼음이 잘 얼지 않습니다. 논에서 얼음이 푹 꺼져 발이 빠진 친구들에게는 『메기 잡았다』며 놀려대곤 했습니다.
겨울과 관련한 우리나라 말 중에 「아랫목」 「윗목」이란 말이 있습니다. 굼불을 때면 아궁이에서 가장 가까운 아랫목이 제일 따뜻하고 윗목으로 갈수록 차갑기 때문에 아랫목에는 항상 이불을 깔아 놓아 난방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 아랫목은 집안에 제일 어른의 공간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랫목에 앉아 있다가도 어른이 들어오면 이 자리를 양보 해야 합니다. 추운 밖에서 한참 놀다가 집에 후다닥 들어와 손을 집어 넣어 녹이던 곳이 바로 따뜻한 아랫목입니다. 갑자기 아랫목에 손을 집어 넣으면 동상 걸린다고 어머니에게 혼이 나기도 합니다.
윗목은 대체로 불이 잘 들지 않기 때문에 싸늘한 경우가 많습니다. 위풍이 심한 집에서는 윗목에 물그릇을 떠 놓으면 아침에 밥그릇에 살얼음이 어는 경우도 심심찮게 일어 납니다. 이 위풍을 막기 위해 문풍지를 바르지만, 무거운 솜이불을 덮지 않고는 긴 겨울을 나기 힘들었습니다.
올 겨울은 춥지는 않더라도 눈이라도 한번 봤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