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을 볼 때마다 저는 마치 싸늘한 시신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일제는 총독부 건물을 지은후 광화문을 헐어 버리려 했습니다.
그러자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일본인 학자가 「헐리려고 하는 광화문을 위하여」라는 詩를 지어 일본인의 야만성을 통렬하게 나무라며 광화문 철거 반대 여론을 주도했습니다.
여론에 밀려 헐릴 위기에서 벗어난 광화문은 경복궁 동쪽 건춘문 옆으로 옮겨져 해방을 맞았습니다. 그러다가 6.25 전쟁 때 불타 버린 것을 1969년 故 박정희 대통령이 현재의 위치에 철근 콘크리트로 새로 만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이 콘크리트 건물이 우리나라 제일 왕궁의 정문의 임무를 완수하기에는 역부족인가 봅니다. 남대문이나 기타 왕궁의 문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나 위엄, 혹은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로 이어주는 생명력이 풍기지 않습니다.
광화문 앞의 해태상은 길가 인도로 치워져서 온갖 매연과 분진을 뒤집어 쓰고 있습니다. 도로는 광화문에 바짝 붙어 지나가고 있어 이 나라 정궁의 정문이 숨을 쉴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도 주지 못하는 살벌한 인심을 보여 주는 듯 합니다.
광화문만이 경복궁의 슬픈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눈을 오른 쪽으로 돌리면 괴물 같은 민속박물관이 버티고 있습니다. 이런 요상한 건물이 우리 손에 의해, 그것도 경복궁 한복판에 지어 졌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지만 현실입니다.
시선을 경복궁 뒤 쪽으로 돌리면 주변 경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청와대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청와대라는 이름은 「푸른 기와 지붕의 臺(대:사방을 볼 수 있게 높이 쌓아 만든 곳)」라는 말로 사실상 아무 의미 없는 이름입니다.
대통령이 사는 집에 왜 臺자가 들어가야 하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청와대가 「잘 지은 위엄 있는 건물」이라느니 「한국의 美를 표현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경복궁과 연계시켜 볼 때 자화자찬의 말 잔치에 지나지 않습니다.
산채만한 청와대 건물이 경복궁을 오만하게 짓누르고 있어 궁궐의 모습을 결정적으로 망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복궁 안을 거닐면 온갖 불탑과 불상을 만나는데 마치 어느 절간에 와 있는 듯 합니다. 유교를 받들어 4대문 안에 승려의 출입까지 막았던 조선 왕조에 대한 이만저만의 실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근정전 난간은 어린 아이들의 미끄럼틀이 되기 여사입니다. 신혼 부부들의 사진촬영은 조선왕조의 상징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이 아무 곳에서나 이루어 집니다.
경복궁 동쪽의 東십자각은 따로 뚝 떨어져 제 기능을 잃고 있고, 西십자각은 아예 흔적도 없습니다. 때문에 정면에서 볼 때 경복궁은 마치 날개 꺾인 독수리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옆 뜰에는 아예 고층 빌딩을 지어 놓고 관리사무소로 쓰고 있습니다.
거의 100년 만에 돌아온 흥례문이 입이 있어 말을 한다면 「勿忘國恥(국치를 잊지 말라)」라는 한마디 일 것이나, 그런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는 표식도 없습니다.
궁궐은 무엇보다 오늘의 서울을 서울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에너지 원입니다. 궁궐은 500년 왕조의 혼이 모여 있는 곳이자, 오늘날 우리에게 이어지는 조선시대의 풍부한 문화를 탄생시킨 産室(산실)과 같은 곳입니다. 궁궐은 감히 돈으로 환산 할 수 없는 가치를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서울 시는 큰 돈을 들여 청계천을 복원하고 시청 앞 광장을 유리로 뒤덮어 공원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궁궐을 불구로 둔 채 그 어떤 것을 요란하게 꾸며도 공허함은 남습니다.
다행히 경복궁 장기 복원계획에 광화문과 동ㆍ서십자각을 복원하는 것과 현재의 민속박물관을 철거하는 계획이 잡혀 있습니다.
시작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왕 시작한 복원 사업이라면 화단의 풀 한 포기라도 오로지 경복궁을 위해 존재하게 해야 합니다.
경복궁 훼손도. 일제는 경복궁에서 각종 박람회를 개최하면서 궁궐을 파괴했다. 해방 후 우리가 경복궁을 망친 것도 만만치 않다.
글쓴날짜 3월22일
경복궁 훼손도. 일제는 경복궁에서 각종 박람회를 개최하면서 궁궐을 파괴했다. 해방 후 우리가 경복궁을 망친 것도 만만치 않다.
글쓴날짜 3월22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