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 반찬

  • 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hanal@chosun.com
  • 업데이트 2003-11-16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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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내려갔는데 어머니께서 메뚜기 튀김을 반찬으로 내 놓으셨습니다. 초등학교 때 보고 처음으로 보는 나락 메뚜기(벼 메뚜기) 반찬이었습니다. 제가 이곳 기자수첩에서 요즘 시골에 생태계가 살아 나는 것 같다고 한 적이 있는데 메뚜기가 꽤 많이 늘어 났음을 증명하는 일이라 무척 반가웠습니다. 나는 한 두 마리 그냥 맛을 보기 위해 먹어 보았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지난 10여년간 논에 농약을 치지 않고 농사를 지어 왔습니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농약치는 것이 번거롭기도 하지만 노인네 둘이 하기에는 보통 벅찬 일이 아니라서 그냥 포기하고 농사를 지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농약치지 않고 지은 그 쌀을 더 비싸게 파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일반 수매장에 일반 쌀과 같은 값으로 수매 하기 때문에 용케 그 쌀을 먹는 사람은 운이 좋을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농약을 치지 않은 우리 논은 해마다 가을이 되면 나락 메뚜기 뿐만 아니라 골뱅이를 비롯 미꾸라지 붕어 개구리 등이 제법 많이 돌아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릴 때는 주위에 걸리는 것이 모두 우리들의 간식거리였습니다. 만만한 게 개구리라고 죄없는 개구리가 주로 많이 당했고 그 다음이 메뚜기 골뱅이 등입니다. 우리는 연못이나 무논에 사는 물방개도 먹었습니다. 그냥 방개(똥방개)는 못 먹고 배때기 주변에 노란 띠가 둘러쳐진 참방개는 먹을 수가 있습니다. 참방개를 잡아서 물그릇 속에 넣고 잿불에 올려 놓아 삶아 먹거나, 아예 잿불 속에 묻어 구워 먹기도 했습니다. 원래 시골 아이들이 별것을 다 먹고 자라지만 제가 방개도 잡아 먹었다고 하면 도시나 타 지역 시골에서 자란 친구들은 도저히 못 믿겠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하루는 학교 선배와 TV를 보다가 물방개가 나오기에 제가 『와 맛있겠다』하고 엉겹결에 말했습니다. 제 말을 들은 선배가 어이 없다는 듯이 쳐다 보더니 『왜 바퀴벌레는 안 잡아 먹냐』하고 말하더군요. 저는 더러운 바퀴벌레와 맛있는 물방개를 어떻게 같이 비교 할 수 있느냐고 말했지만 그 선배 눈에는 바퀴벌레나 물방개나 똑 같이 못 먹을 벌레로 보였나 봅니다. 그래도 제말이 못 미더운지 그 선배는 저와 고향이 비슷한 지역에 사는 사람을 찾아 나서서 확인을 하자는 것입니다. 학교를 한참 돌아 다닌 후에 경북 북부에서 온 학생을 한 명 만났습니다. 그 선배는 『혹시 어릴 때 개구리 먹어 보셨죠?』하고 묻자 그 학생은 『예』하고 대답했습니다. 이번에는 그 선배가 『그러면 물방개도 먹어 보았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 학생은 놀라는 투로 『예? 물방개를 어떻게 먹어요?』하는 것입니다. 선배는 「거 봐라」하는 투로 더욱 저 말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 선배는 『네가 바퀴벌레를 먹으면 내가 믿어 주마』하며 저를 놀려 댔습니다. 저는 답답했지만 어떻게 증명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러서 그 사건을 잊어 버리고 있었는데 제 자취방으로 고향친구가 한명 찾아 와서 그 선배와 셋이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선배는 물방개를 진짜로 먹었는지 못내 궁금했던지 제 고향 친구에게 『어릴 때 진짜 물방개 잡아 먹었어요?』하고 묻는 것입니다. 그러자 제 친구는 『물방개가 얼마나 맛있는데요. 잡기가 힘들어서 여간해서는 맛도 못봐요』하고 말했습니다. 그 선배는 자기가 마치 바퀴벌레를 씹은 듯한 인상을 하며 우리를 쳐다봤지만 결국은 제 말을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우리 부모세대들은 풀뿌리 나무뿌리 산나물 등에 양식을 많이 의존했습니다. 특히 소나무 가지를 뚝 잘라 껍질을 벗겨내고 속 껍질을 벗겨서 먹기도 했는데 이를 「송구」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어릴 때 산에서 놀면서 재미로 많이 먹기도 했습니다. 송구로 떡을 만들어 먹거나 그 자체를 많이 먹으면 변비에 걸려 대변을 보기 쉽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무척 고생을 했습니다. 아기를 낳았으나 젖이 나오지 않는 어머니들은 젖동냥을 다녀야 했고, 쌀 한줌에 나물을 잔뜩 넣어 죽을 끓여 먹는 것이 보통 서민들의 밥상이었습니다. 요즘 부모님들이 굶주렸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면 우리는 무슨 월남 이야기를 하느냐고 하겠지만, 시골에 있는 어머니 아버지들에게는 굶주림에 대한 기억이 어제일 같이 생생할 것입니다. 생쌀을 먹으면 어머니가 일찍 죽는 다, 맹물을 많이 마시면 커서 장군이 된다하는 등의 이야기도 다 굶주림에서 나왔던 안타까운 이야기 들입니다. 전국민이 굶주림의 공포에서 근본적으로 벗어 나기 시작한 것이 1971년 통일벼(정부미)가 농가에 보급된 후라는 것을 아는 젊은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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