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창제 연구」 독일인 라이너 도멜스 박사

『저승의 세종대왕은 한글전용을 개탄할 것이다』

  • : 이동욱  pollster7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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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은 한글전용을 위해 한글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한글전용은 漢字란 뿌리를 잘라버린 꽃다발입니다. 우선은 화려하게 보이겠지만 얼마 안가 시들어버리지요. 한글전용은 韓國語를 결정적으로 약화시킬 것입니다』
독일의 「코리아 포럼」
 
  지난 3월6일 오후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꽁지머리를 한 紅顔(홍안)의 독일인을 만났다. 도멜스(Rainer Dormels·43) 박사. 그는 15년 전 우연히 한국말의 매력에 끌려 한국말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한국어 박사가 된 사람이다. 그는 1990년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에 유학와 4년 뒤 국어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다시 독일로 돌아간 도멜스 석사는 웬만한 한국사람들도 잘 모르는 조선 세종 때의 「洪武正韻譯訓(홍무정운역훈)」을 연구, 함부르크대학에서 한국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박사논문을 끝낸 뒤인 1997년 12월, 독일에서 발행되는 「코리아 포럼」 겨울호를 통해 독일어로 쓰여진 「훈민정음 창제에 대한 새로운 고찰」이란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지난 15년간 독일 내 한인사회와 독일 주민 사이를 잇는 가교역할을 해온 「코리아 포럼」은 지금까지 주로 한국 정치상황에 대한 한국 학자와 독일 학자들의 글을 많이 실어왔다.
 
  이 잡지에 게재된 도멜스 박사의 논문은 세종대왕의 한글창제의 「동기」나 「목적」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국내외적 요인인 「자극」에 초점을 맞춰 연구한 글로서 주목된다. 그는 明(명)나라의 公式(공식) 韻書(운서)인 「洪武正韻(홍무정운)」과 이를 번역하여 세종 때 편찬한 「洪武正韻譯訓(홍무정운역훈)」과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홍무정운」이란 운서는 元帝(원제)를 멸한 朱元璋(주원장·洪武帝라 칭함)이 국호를 明(명)이라 칭한 뒤 학자들을 동원해 몽골식 漢字(한자)발음표기법이 가미된 元代(원대)의 韻書(운서)를 폐지하고 明代(명대)의 표준적인 운서를 공포하기 위해 洪武 8년(1375년)에 간행한 책이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韻書(운서)란 무엇인가. 韻書란 글자대로 해석하면 韻(운)을 모은 책이란 뜻이다. 그렇다면 韻이란 무엇인가. 예를 들어 「文」의 경우 발음은 「문」이다. 기자가 쓴 「문」은 발음기호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한글과 같은 표음문자가 없던 중국의 경우 한자의 음을 표시하기 위해서로 다른 두 한자의 음을 절반씩 따서 발음을 표기했다. 이를 反切式(반절식) 표기라 한다.
 
  가령, 「文」의 발음을 표시할 때 「文 無分折」로 기록한다. 읽는 이들은 無의 초성인 「ㅁ」과 分의 中聲 및 終聲인 「ㅜㄴ」을 합쳐 읽도록 한다. 이때 聲(성)에 해당하는 것이 「ㅁ」音(음)이고 韻에 해당하는 것이 중성과 종성인 「ㅜㄴ」音이다. 결국 韻書란 韻을 중심으로 편찬한 한자 발음사전이란 의미이다. 고대 중국엔 206개의 韻이 있었으나 14세기에 와서는 76개로 간편화했다. 이를 토대로 만든 韻書는 科擧(과거) 응시생들에게 중요한 詩作(시작)의 典範(전범)이 되었다. 새로 창건된 왕조는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한 취지하에 韻書의 개편을 단행하곤 했다. 洪武帝(홍무제)의 「홍무정운」도 마찬가지이다.
 
  세종은 1448년경 집현전 학자들을 통해 명나라의 韻書인 「홍무정운」에 한글로 音(음)을 표기한 「홍무정운역훈」을 편찬토록 했다.
 
  『홍무정운역훈은 타협의 결과입니다. 홍무정운은 反切(반절)만 있고, 홍무정운역훈은 반절도 있고, 한글로도 표기되어 있습니다. 홍무정운역훈의 音의 근거는 홍무정운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홍무정운역훈의 음을 한글로 표기했을 때 편찬자들이 홍무정운 이외에 고려시대에 즐겨 사용한 문서인 古今韻會擧要(고금운회거요)도 참고했습니다. 고금운회거요란 파스파 문자를 발음기호로 사용하여 한자(중국어)를 읽도록 표기한 蒙古韻略(몽고운략)을 참고한 책이지요』
 
  碧眼(벽안)의 외국인이 우리나라 中世(중세) 국어학의 전문서적들을 줄줄이 나열하며 자신이 발견한 학문적 성취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연구과정에서 世宗大王(세종대왕)과 集賢殿(집현전) 학자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고 한다. 더 들어보기로 했다.
 
 
  파스파 문자
 
  『홍무정운역훈이 편찬된 연도는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가 건국(1368년)된 지 87년이나 지나 있을 때(1455년)였고, 1392년에 개국한 조선도 63년째 되던 해입니다.
 
  명은 그 당시 이미 초강대국으로 동양을 지배하고 있었고 이들과 국경을 맞대고 살아야 했던 조선도 국내적으로는 정치적인 안정기로 접어들 때였습니다. 강대국과 연접했던 조선으로서는 명나라의 정책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또 고려에서 朝鮮으로 국호가 바뀌고 왕조가 바뀌었지만 고려 6백년 동안 내려온 문화는 서민 사회 속에 그대로 지속되고 있었다는 점도 조선왕조로서는 부담이었을 것입니다. 말과 글이란 정권이 바뀐다고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거든요.
 
  세종은 고려를 지배했던 몽골(元)의 한자발음 표기법이 조선의 지식사회에 지속되고 있음을 간과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표음문자인 파스파 문자로 쓰여진 蒙古韻(몽고운)이 조선시대에도 알려졌다는 사실은 「홍무정운역훈」의 序文(서문)과 「四聲通攷(사성통고)」의 범례에서도 찾을 수 있고, 최세진(崔世珍·1478~1543)의 「四聲通解(사성통해)」도 「蒙古韻略(몽고운략)」으로부터 많은 인용을 했습니다. 「몽고운략」은 파스파 문자를 발음기호로 사용해서 한자를 읽을 수 있게 한 책입니다.
 
  거슬러 올라가 몽골이 고려를 지배했던 무렵에 고려인들이 즐겨 보던 중국 한자의 韻書(운서)는 元(원)나라 때 黃公紹(황공소)가 지은 「古今韻會擧要(고금운회거요)」였습니다. 이 책은 조선시대에도 인기 있는 책이었지요. 그렇다면 고려인들이나 조선인들이 「고금운회거요」의 音(음)을 읽을 때 무엇으로 읽었을까요. 표음문자 없이 표의문자를 읽는다는 것은 발음기호를 모르고 영어를 읽는 것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당시에는 파스파 문자로 쓰여진 蒙古韻(몽고운)을 보조수단으로 사용했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금운회거요」는 「몽고운략」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조선시대 초기에도 파스파 문자로 쓰여진 발음서인 韻書가 중국어 학습시 공개적으로 혹은 비공개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결론을 낼 수 있습니다』
 
  파스파 문자는 元나라 世祖(세조)가 넓은 제국의 문자 통일을 위해 라마교 승려를 시켜 만들게 한 데서 유래한다. 파스파란 聖者(성자)란 뜻으로 중국의 자료에는 「八思巴」로 표기되고 있다. 웬만한 백과사전들을 보면 파스파 문자가 「몽골민족의 통치하에 있었던 여러 민족들은 1백여년 동안 이 문자를 사용했다」고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문화유산 속에 파스파 문자를 사용해 제작된 책은 아직 발견된 적이 없다.
 
  ―고려시대 말엽이나 조선시대에 파스파 문자를 사용해 만든 책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 책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발음기호가 있다고 해서 발음기호로 책을 만들 수 없지 않습니까. 고려인이나 조선인이 파스파 문자로 된 발음기호를 애용했다는 뜻입니다』
 
  ―훈민정음이 파스파의 영향을 받은 것이란 주장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世宗(세종)도 중국어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틀에 한 번씩 중국어를 배우기도 했지요. 그렇다면 世宗도 파스파 문자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에게는 파스파 문자가 하나의 고민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계속해서 파스파 문자로 된 책을 중국어 학습시간에 사용하면 곤란했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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