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6월 16일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의 영웅광장에서는 임레 너지(1896~1958년) 전 총리의 장례식이 열렸습니다. 임레 너지는 공산주의자였지만 1956년 헝가리 반공 혁명 당시 탈소(脫蘇) 개혁 노선을 추진하다가 소련군에 체포된 후, 친소적인 야노스 카다르 정권에 넘겨져 비밀리에 처형됐던 인물입니다.
장례식에는 20만 명이 운집했습니다. 31년간 입에 올릴 수조차 없었던 개혁파 공산주의자의 장례식은 공산 정권을 성토하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촉구하는 장(場)으로 변했습니다. 현장 상황은 TV로 생중계됐습니다. 그날의 마지막 연설자가 단상에 올랐습니다. 수염을 기른 젊은이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힘을 믿는다면, 공산주의 독재를 끝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충분히 용기를 낸다면, 당(黨)에 자유선거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오르반 빅토르. 그때 나이는 스물여섯 살이었습니다. 영웅광장에서의 용감한 연설로 오르반은 일약 정치 스타가 됐습니다. 1991년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는 헝가리에서 세 번째로 인기 있는 정치인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유명세를 바탕으로 2년 후 그는 신생 정당인 피데스(청년민주동맹)의 당수가 됐습니다.
독재자가 된 민주투사
1998년 총선에서 피데스는 148석을 차지, 원내 제1당이 됐습니다. 오르반은 35세의 젊은 나이로 총리 자리에 올랐습니다.
정권을 잡은 오르반은 경제 성장, NATO 및 EU 가입 등 상당한 업적을 냈지만, 국영기업의 민영화 과정에서 발생한 부패 사건 때문에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이 결과 2002년 총선에서 피데스는 사회당을 중심으로 하는 야당 연합에 근소한 차이로 패하면서 정권을 내줘야 했습니다.
8년간 야당 생활을 하면서 오르반은 좌우 기성 정치인들을 부패한 기득권 세력으로 싸잡아 비판하면서, 중도 자유주의자에서 극우 포퓰리스트로 변신했습니다. 2010년 총선에서 오르반이 이끄는 피데스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경제난과 집권 사회당의 부패 스캔들 덕분에 압승했습니다. 전체 의석 386석의 3분의 2가 넘는 263석을 차지했는데, 이는 개헌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의석이었습니다.
오르반은 재집권하자마자 압도적 의석을 이용해 개헌에 나섰습니다. 새 헌법이 헌법재판관 지명권을 다수당에 부여하면서, 헌법재판소는 정권과 코드를 같이하는 재판관들이 다수를 차지하게 됐습니다. 법관 정년 단축을 통해 사법부도 물갈이했습니다. 사실상 행정부와 입법부가 한 몸이기 마련인 의원내각제 국가에서 헌법재판소와 사법부마저 정권의 손아귀 안에 들어간 것입니다.
다음 수순은 언론 장악이었습니다. 정권에 비판적인 레거시 미디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재정난’을 이유로 차례로 폐간됐습니다. 그 ‘재정난’은 사실 오르반 정부가 ‘광고 탄압’을 통해 조장한 것이었습니다. 비판적인 라디오 방송은 미디어위원회로부터 ‘주파수 갱신 신청’을 거부당해 문을 닫았습니다. 존경받는 언론인이었던 아틸라 몽은 오르반의 피데스가 다수를 차지한 국회가 통과시킨 신언론법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방송 시간 중 1분간 침묵 시위를 했다가 해고당하고, 결국은 헝가리를 떠나야 했습니다. 반면에 공산 정권 시절 이래 자유주의자였다가 변절해 오르반의 나팔수 노릇을 하는 지식인도 나타났습니다. 2019년 헝가리 기자 랜드바이 파울은 “지금 모든 언론 매체가 정권의 통제를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2020년 코로나19가 발병하자 오르반은 ‘코로나19 비상사태’를 빌미로 의회를 대신해 법률을 제·개정하고 코로나19 방역과 관련된 ‘가짜 뉴스’를 처벌할 수 있는 권한까지 손에 넣었습니다. 1933년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 이후 ‘국가와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수권법(授權法)을 통과시켜 독재 체제를 수립했던 나치 독일의 경우를 연상케 합니다.
비자유민주주의
이렇다고 해서 오르반이 국민적 동의 없이 독재 권력을 잔인하게 휘둘렀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오르반은 “헝가리인을 위한 헝가리”를 외치면서 난민 등 외국인 유입을 거부했고, 미국이나 서유럽 국가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PC(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주의와의 ‘문화전쟁’을 선포했는데, 이러한 어젠다는 국민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노선은 대외 정책으로도 연결되었습니다. 오르반은 서유럽 민주주의 국가들과는 척을 졌지만, 러시아의 푸틴, 미국의 트럼프 등과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오르반 식의 정치 이념과 행태를 ‘비(非)자유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라고 합니다. 선거를 통해 집권하지만, 권력분립, 언론의 자유, 법치주의 등 자유주의적 요소를 제한하는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을 말합니다. ‘선거가 있는 권위주의’ ‘자유가 삭제된 민주주의’인 셈입니다. 실제로 오르반은 2014년 “헝가리는 ‘비자유 국가(an illiberal state)’이고 ‘자유국가가 아니다(a non-liberal state)’”라고 공언하기까지 했습니다.
헝가리의 이웃 나라인 폴란드에서 2014~2023년 집권했던 법과정의당(PiS) 정권도 오르반의 피데스 정권과 흡사한 통치 행태를 보였습니다. 튀르키예(터키) 에르도안 정권, 인도 모디 정권의 행태도 비슷합니다.
‘비자유민주주의’ 정권들이 주장하는 국가와 국경의 중요성 강조, 전통의 수호, PC주의와의 문화전쟁 등에 대해서는 저도 정서적으로는 어느 정도 공감합니다. 하지만 ‘자유를 삭제한 민주주의’라는 발상,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아 정권을 잡기만 하면 그게 곧 민주주의이고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망상,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인간 이성(理性)의 산물인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무력화(無力化)하고 민주주의를 사리사욕(私利私慾)·당리당략(黨利黨略)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는 작태에는 결단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액튼 경(卿)의 말처럼 오르반의 절대 권력도 부패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 언론인 기디언 래크먼은 《스트롱맨(The age of the strongman)》에서 “흔히 그렇듯 독립 언론과 사법부에 대한 억압은 부패로 이어졌다”라면서 “오르반의 옛 친구들 상당수가 부유한 기업가가 됐다”라고 꼬집었습니다.
16년 만의 정권 교체
철옹성처럼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오르반 정권이 16년 만에 무너졌습니다. 지난 4월 12일 머저르 페테르가 이끄는 티서당이 개헌선을 넘는 압승을 거둔 것입니다. 더 이상 퍼줄 돈이 없을 때까지 계속된 퍼주기식 포퓰리즘으로 인한 경제난과 오르반 측근들의 부정부패에 환멸을 느낀 국민들은 오르반과 피데스에 등을 돌렸습니다. 이에 앞서 2023년에는 오르반의 피데스와 쌍둥이 같던 폴란드의 법과정의당 정권이 총선에서 패해 무너졌습니다.
헝가리와 폴란드의 사례는, 아무리 장기 집권하면서 사법부와 언론을 손에 넣고, 포퓰리즘으로 국민을 속이고, 공공 자원을 나누어 주면서 친위 세력을 만들어내도, 민주공화국이라는 국체(國體)를 유지하고 자유선거가 살아 있는 한, 자유와 민주주의는 불사조(不死鳥)처럼 부활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6·3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놈 저놈 다 꼴 보기 싫다고요? 그래도 투표는 해야 합니다. 존 스튜어트 밀의 말처럼 “악당들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것은 오직 선량한 사람들이 방관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함석헌 선생도 “투표를 포기하면 결과적으로 더 나쁜 놈들을 두둔하는 꼴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악당이나 더 나쁜 놈들에게 내 고장, 내 나라를 넘겨주고 싶지 않다면, 투표장으로 가야 합니다. “투표하지 않는 사람은 불평할 권리도 없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