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미동맹의 핵심 축이 된 한국의 제조업 역량

  •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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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주한 미군 7사단이 철수했다. 1974년에는 베트남이 공산화됐다. 이어 1976년에는 주한미군 철수를 공약으로 내세운 지미 카터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애가 탄 박정희 정부는 주한미군 철수 관련 동향을 파악하고, 반대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민관(民官) 사절단을 여러 차례 미국에 보냈다. 이들을 만난 미국 요로의 인사들이 많이 하는 말이 있었다.
 
  “미국은 베트남과 같은 농업국가는 버리지만, 선진 공업국가는 결코 버리지 않는다.”
 

  마침 박정희 정부는 1973년부터 중화학공업 건설에 매진하고 있었다. 당시 중화학공업 건설을 총괄하고 있던 오원철 경제제2수석비서관은 한국을 방문한 미국 의원들에게 울산 현대조선소 등을 보여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한국이 공산화되면 소련 태평양 함대가 이 조선소를 이용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좋겠나?”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은 5월 12일 하와이에서 열린 태평양지상군(LANPAC) 심포지엄에서 행한 기조연설에서 “한국의 첨단 제조 역량은 억제력으로 바뀔 수 있다”고 강조했다. 브런슨 사령관은 이 자리에서 “한국의 조선소들은 미 해군 수송함 월리 쉬라호와 세자르 차베스호의 창정비를 성공적으로 완수했으며, 이미 두 척의 선박이 추가로 정비 대기 명단에 올라와 있다”며 “한국의 GM과 파트너십을 맺어, 장비를 디트로이트로 보내지 않고 한국 내 1만 5000명의 인력을 활용해 바로 고치는 것, 락아일랜드(미 육군 병기창)를 전방으로 끌어오는 것이 우리가 하려는 일”이라고 말했다.
 

  브런슨 사령관의 이런 발언은 이제 대한민국의 제조업 역량이 한미동맹의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50여 년 전 한국에 우호적이었던 미국인들이 해 준 적절한 충고와, 우리의 선대들이 그에 앞서 중화학공업과 방위산업 건설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던 것이, 지금 알찬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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