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부처님오신날 앞두고 만난 김희옥 前 동국대 총장·헌법재판관

“헌법과 원효의 화쟁 사상, 갈등을 조화롭게 없애고 통합으로 나아가자는 점에서 일치”

  •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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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법권 남용은 헌법상의 가치, 특히 공동체 보장 정신에 위반”
⊙ “특검의 공소취소는 헌법 위반 가능성… 죄가 없다면 법에 따라 재판받고 무죄 입증해야”
⊙ “정치권과 사회지도층, 법 집행의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사회 갈등 증폭시켜”
⊙ “헌법은 다양한 정치적 이익들 사이에서 대립과 갈등을 규범의 틀 속에서 없앨 수 있도록 하는 것”
⊙ “원효 스님이 살았던 시기와 현재의 대한민국 비슷”

金熙玉
1948년생. 경북고·동국대 법학과 졸업, 동국대 대학원 법학 석·박사, 인도 힌두스탄대 명예과학박사 / 대전지검·서울동부지검 검사장, 법무부 차관, 헌법재판소 재판관, 동국대 총장, 대학윤리위원회·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한국프로스포츠협회(KPSA) 회장, 한국농구연맹(KBL) 총재 역임. 現 헌법적가치연구원 원장 겸 법무법인 해송 변호사 / 저서 《언론자유와 개인의 사생활보호》 《인신의 자유와 보석제도》 《판례 형법》 《판례 형사소송법》 《주석 형사소송법》 등. 청조근정훈장 수훈
사진=뉴시스
헌법과 원효(元曉·617~686년) 스님은 별다른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김희옥(金熙玉) 전(前) 동국대학교 총장은 “헌법이 추구하는 가치와 원효 스님의 화쟁(和諍) 사상은 ‘융화’와 ‘통합’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가 대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어느 때보다 원효 스님의 화쟁 사상이 필요하단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김희옥 전 총장을 지난 5월 7일 만났다. 30여 년간 검사로 지냈고 법무부 차관,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지낸 그는 동국대 총장, 새누리당 혁신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한국농구연맹(KBL) 총재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해 왔다. 얼마 전에 ‘헌법적가치연구원’을 만들어 헌법을 또다시 연구하는 그는 최근 들어 ‘화쟁 사상과 헌법적 가치’에 심취해 있다.
 
 
  헌법과 원효 스님
 
  ― 헌법과 원효 스님의 조합이라니,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헌법은 1948년 제정 이래 1987년 까지 아홉 차례나 개정했지만, 한결같이 유지하는 헌법정신과 헌법적 가치가 있습니다. 민주적 기본질서와 국민의 행복 추구 등 기본권 보장,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존속·유지·발전을 위한 공동체 통합 정신입니다.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국가를 창설하며, 국가권력을 조직 및 제한하고, 공동체를 유지·통합하는 기능을 합니다. 원효 스님의 화쟁 사상은 어느 종파에 구애됨이 없이 서로 대립적인 교설(敎說)을 비판과 분석을 통해 융화해 보다 높은 가치의 차원의 통합으로 올라서자는 이론입니다. 불교의 교의(敎義)는 물론이고, 국가·사회 공동체로서도 서로 다른 입장과 주장을 조화롭게 통일하고 대립·갈등을 없애 보다 높은 가치인 공동체의 통합과 발전으로 나아가자는 것이 핵심입니다.”
 
  ― 둘 다 공동체의 통합을 꾀한다는 것이군요.
 
  “맞습니다. 대립·분열과 갈등을 조화롭게 없애고 보다 높은 가치인 융화와 통합으로 나아가자는 점에서 일치합니다. 원효 스님이 활동했던 시기와 오늘날의 상황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원효 스님의 화쟁 사상을 다시금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효 스님은 신라의 삼국통일 전인 진평왕대에 태어나 선덕–진덕–무열왕대를 지나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을 거쳐서 신문왕 6년까지 활동한 승려다. 7세기 신라는 불교가 공인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여서 다양한 불교사상과 학파가 유입되면서 불교계 내부의 갈등과 대립이 심했다. 7세기 신라를 둘러싼 국제정세를 보면, 강력한 당(唐)제국이 존재했고, 신라는 고구려·백제와 수시로 크고 작은 전쟁이 있었다. 일본에 근거지를 둔 해적 집단이자 반(半)정규군인 왜구(倭寇)의 빈번한 침입으로 신라 백성이 큰 피해를 받던 때였다. 신라 사회는 골품(骨品)제도를 기반으로 한 신분·귀족사회로서 상당한 갈등과 대립·분열이 있었다. 6두품 출신으로 난세인 삼국통일전쟁 시기에 생의 대부분을 보냈고 통일신라의 탄생을 본 원효 스님은 불교를 대중화하고 분열된 국민정신을 통합하기 위해 노력했다.
 
 
  원효의 화쟁 사상
 
원효대사

  “원효 스님이 살았던 시기와 현재의 대한민국은 정말 비슷합니다. 우리나라를 둘러싼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과의 국제관계는 마치 신라 7세기의 당나라 등과의 관계와 유사하고, 고구려·백제·신라의 관계는 우리나라와 북한의 관계와 갈등의 면에서 비슷합니다. 이런 시대적 배경과 우리의 갈등 현상을 보면 현재 우리 사회에 가장 중요한 어젠다는 화쟁 사상의 실천이 아닌가 싶습니다.”
 
  ― 화쟁 사상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주시자면요.
 
  “원효 스님은 화(和)의 실천 원리를 중시한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진속일여(眞俗一如·진리와 평범한 세속이 본질적으로 별개가 아니라는 사상)를 주장한 대승(大乘)불교의 정신에 이르기까지, 실천을 중시하면서 화쟁 사상을 내어놓고 실행했습니다. 모든 현실과 사상은 결국 하나의 마음 일심(一心)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서로 대립하는 다른 견해를 부드럽게 녹여서 하나로 통합해야 하고,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도 사실은 같은 진리의 다른 측면일 수 있어 결국은 하나이므로, 양극단을 모두 포용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어서는 더 높은 가치의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화쟁 사상입니다. 저는 화쟁 사상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기제(機制)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화쟁 사상이 오늘에 주는 메시지가 있군요.
 
  “화쟁 사상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주는 메시지는 소통과 대화의 중요성, 다양성 존중과 중도적(中道的) 관점, 개방적 자세와 변화의 수용을 통한 갈등·대립·분열의 보다 더 높은 가치로의 해소와 사회 통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부 갈등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는 쇠퇴하거나 멸망”
 
  김희옥 전 총장은 우리 사회 여러 가지 이슈 중에서도 특히 ‘사회 갈등’에 관심이 많다. 사회 전반의 갈등 수준을 수치로 나타내는 지표인 ‘갈등지수’가 조사될 때마다 매년 빼놓지 않고 추이를 살핀다고 했다.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는 한정된 자원인 동식물·열매·조개 등을 획득해서 생활했기 때문에 치열한 경쟁이 있을 수밖에 없고, 우리를 ‘호모 컴피티션(Homo competition)’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갈등은 자원, 가치, 이익, 권력 등의 분배에서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지고 충돌하는 현상 아닙니까. 사회적 갈등은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집단 사이의 대립과 긴장, 이해관계와 신념·가치관이 충돌하는 균열 상태이지요.
 
  갈등은 적절하면 창의성을 도모하고 혁신을 가져올 수 있지만, 적절하게 조정·관리되지 않으면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내외부의 분열과 갈등이 쇠퇴와 멸망으로 이어지는 것이 역사의 과정 아닙니까. 로마 제국이나 당나라가 멸망한 것도 결국 내부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것이 주요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회 갈등 해결에 실패하면 국가·사회의 쇠퇴가 가속화될 수 있고, 이를 없애 보다 높은 가치의 사회 통합으로 나아가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조사 결과는 김 전 총장의 기대보다 훨씬 녹록지 않다. OECD가 2025년에 발표한 국가별 갈등지수에서 한국은 4위를 기록했다. 반면 갈등관리지수는 27위로, 사회 갈등을 해결하는 역량은 지극히 낮은 수준이다. 문화체육부관광부가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한 ‘2025년 한국인의 의식, 가치관 조사’ 중 ‘집단 간 갈등에 대한 인식 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82.7%가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가장 심하다’고 답했다. 뒤를 이어 기업가와 근로자의 갈등(76.3%), 부유층과 서민층(74%), 수도권과 지방(69%),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67.8%·이상 복수응답) 순이었다.
 
 
  “헌재, 국민 신뢰도 가장 높은 국가기관이었는데…”
 
지난 2008년 4월 25일 헌법재판관 시절에 동국대 경주캠퍼스 30주년 행사에 초청돼 강연하는 김희옥 전 총장. 사진=김희옥

  “정치·경제 환경의 불확실성이 늘고 소득 격차가 심화하는 것이 사회 갈등을 부추기는 요인입니다. 정치권과 사회지도층, 법 집행의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사회 갈등을 증폭시키고요. 공공기관과 법집행기관의 공정성에 대한 불신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정치권은 서로 혐오하고 비판하고 싸움과 분쟁을 일으킵니다.
 
  제가 4기 헌법재판관(2006~10년)으로 있을 때 모든 국가기관 중에서 국민의 신뢰도가 가장 높은 기관이 헌법재판소였고, 그런 신뢰도 높은 기관에 몸담고 있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긍지였습니다. 최근에는 많은 정치적 사건, 대통령 관련 사건을 처리하면서 헌법재판소에 대한 신뢰도가 어떠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 헌법재판관들이 자초한 일 아닙니까. 정치 성향에 따라 판결이 판이하지 않습니까.
 
  “헌법재판관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라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헌법재판소에서는 소수의견을 반드시 기록을 남기도록 합니다. 저 역시 헌법재판관 시절에 소수의견을 많이 내기도 했고, 시대가 바뀌면서 소수의견이 다수의견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언론에서 보수·진보 헌법재판관이라고 칭하지만, 저는 재판관들이 정치적인 성향 때문에 서로 다른 의견을 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헌법재판의 심판 대상은 정치적 사건이지만, 심판은 헌법에 비추어서 규범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헌법재판 결정이 가장 중요한 것은 헌법에 비춰 논리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결정문입니다.”
 
  ― 예전에는 헌법재판소에 가는 것이 굉장히 특별한 경우라고 여겼는데 요즘은 너무 흔한 일이 되어 버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현행 1987년 헌법에 따라 출범한 헌법재판소가 40년 동안 국민의 기본권 보장 기관으로 자리매김한 결과 아닌가 생각됩니다. 대통령 두 분의 탄핵심판을 거치면서 더더욱 영향을 준 점도 있을 것으로 봅니다.”
 
 
  “헌법은 공동체의 유지ㆍ통합 위한 규범”
 
  ― 헌법이란 한마디로 뭡니까?
 
  “헌법은 국가와 공동체 및 구성원들 생활의 근본과 질서를 형성하는 공동체의 근본법이자 최고법입니다. 헌법은 국민이 안전하게 살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가지고,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다 할 수 있으면서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요한 근본적인 가치와 질서를 정합니다. 또 이런 것들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에 대한 기본적인 요소와 사항의 설계를 규정하는 최고의 법규범입니다. 근본법이자 최고법인 헌법을 만들어 내는 힘을 ‘헌법제정권력’이라고 하는데, 국민주권 원리에서 이 헌법제정권력은 언제나 해당 공동체의 구성원인 국민이 보유합니다.”
 
  ― 헌법은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존재하는군요.
 
  “네. 헌법은 개인의 행복추구권과 자기결정권을 포함한 기본권을 보장하고, 국가를 창설하며, 국가권력을 조직하고 제한하며, 정치적 정의와 평화의 실현 및 공동체의 유지·통합을 위한 규범의 기능을 합니다.
 
  헌법은 공동체의 정치활동 가운데서 태어납니다. 물론 사회 현실에서는 공동체 구성원 간에 국가권력을 둘러싸고 항상 경쟁과 대립이 있기 마련이 죠. 헌법은 일정한 규범을 정해서 정치활동이 헌법 안에서 합리적으로 이뤄지도록 합니다. 헌법은 국가기관을 설치하고, 선거, 정당, 재판 등 제도를 마련해 ‘권력의지’가 규범 속에서 순화되도록 합니다. 또 국가권력을 장악한 세력이 그 권력을 자의(恣意)로 행사할 수 없도록 제한합니다. 결국, 정치활동이 적나라한 권력투쟁이 아니라 헌법이 정하는 자유와 권리의 행사 속에서 이뤄지는 건전한 경쟁이 되도록 합니다. 다양한 정치적 이익들 사이에서 대립과 갈등을 규범의 틀 속에서 없앨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삼권분립도 공동체 통합을 위한 규정”
 
김희옥 동국대 총장이 2014년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국가 운영 방안을 정하는 거군요.
 
  “맞습니다. 우리 헌법은 모든 국가조직의 정당성을 국민의 행복 추구와 자기결정을 포함하는 기본권의 보장에 두고 있습니다. 동시에 공동체의 유지·존속·안전의 보장, 법치국가 원리, 자유민주적 원리, 복지국가·문화국가·평화국가 원리 등의 핵심 가치 체계를 헌법적 가치로 담고 있습니다. 헌법 자체가 공동체와 그 구성원이 존재함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공동체의 유지·존속과 안전은 모든 헌법 규정이 전제로 하는 가치입니다. 헌법이 구성원들의 대립·갈등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 어디까지가 헌법에서 보장하는 공동체의 범위입니까?
 
  “헌법은 공동체의 보장을 명확히 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에는 이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기본권을 제한함으로써 공동체의 존속과 안전을 명시하거나, 국가에 공동체의 보장 의무를 부여하는 것을 정합니다. 헌법 제37조 2항에서 기본권 제한의 목적으로 정하는 국가안전보장, 질서 유지, 공공복리 등의 가치는 공동체의 존속과 안전의 보장을 의미합니다. 국민의 헌법상 의무로 규정한 납세(38조), 국방(39조), 근로(32조 2항)의 의무도 공동체 보장을 위한 규정입니다. 삼권분립도 공동체 통합을 위한 규정입니다.
 
  또 국민은 공동체 내에서 삶을 영위하기 때문에 공동체의 존속·유지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기본권이 제한당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공동체의 보장을 위한 일반적인 규정인 제37조 2항의 해석에는 ‘국가권력은 정당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범위에서만 행사되어야 한다’는 과잉제한 금지의 원칙이 적용됩니다.”
 
 
  “배분된 권능 벗어나면 국민과 대립하고 갈등”
 
  김희옥 전 총장은 “헌법은 공동체인 국가·사회의 갈등과 대립·분열을 배제하고 통합으로 가야 한다는 정신을 담고 있다”며 “근간 입법권이 화쟁의 가치를 배제하고 과도하게 행사되는 경향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권력 분립은 권력의 집중과 남용으로 인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억압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나온 겁니다. 헌법은 권력 분립 원칙을 개별 조항으로 명시하지 않지만, 국회의 입법권(40조),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의 행정권(좁은 의미의 행정권·66조), 법원의 사법권(101조), 헌법재판소의 헌법재판권(111조)으로 분할하고, 각 국가기관이 배분된 권한에 따라 기능을 수행하도록 합니다. 입법권의 국회, 행정권의 대통령, 사법권의 법원은 물론이고, 헌법재판권의 헌법재판소도 배분된 권한의 한계를 헌법적 가치의 범위 안에서 가지는 겁니다. 만약에 배분된 권능의 한계를 벗어나서 권한을 행사하면 그것이 국회든 대통령이든 법원이든 헌법재판소든, 최고의 권력인 국민과 대립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겁니다. 그건 바로 헌법의 정신에 위반되는 것이고, 원효 스님이 주창한 화쟁 사상에도 반하는 것입니다.”
 
  ― 국회에 엄밀히 입법권이 있고,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권한을 행사할 뿐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입법권은 법률을 제정하거나 개정 또는 폐지하는 국회의 권한이 맞습니다. 하지만 국회의 입법권에도 당연히 헌법상의 한계가 있습니다. 입법권에도 헌법과 법률, 기본권의 존중과 공동체 보장, 공공질서 유지 등의 헌법적 가치, 과잉 금지의 원칙 등의 한계가 적용됩니다. 근간의 국회는 여야(與野)의 화합을 위한 절차 없이 다수결로만 운영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입법권이 한계를 넘어서 행사되면 헌법에 반하는 법률로서 무효가 되는 등 헌법재판소의 위헌법률심판 대상이 됩니다.”
 
  ― 국회가 권한이라며 휘두르는 입법권도 헌법의 가치에 어긋나면 제재 대상이 된다는 겁니까?
 
  “한계를 넘은 입법권에 대해 사후적(事後的)으로 대통령의 법률안 재의(再議)요구권, 헌법재판소의 위헌법률심판 제도 등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헌 여부를 따지는 데 몇 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국가와 국민이 손해를 입습니다. 국민에게 혼란을, 국가적으로는 갈등과 손실을 끼칠 수밖에 없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주는 교훈
 
나치는 1933년 3월 23일 “민족과 국가의 위한을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수권법’을 통과시켜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사진=퍼블릭 도메인

  ― 국회가 만든 법률이 헌법을 어기는 것을 사전에 방지할 수는 없습니까?
 
  “현재로서는 없습니다. 우리 헌법은 법률의 위헌 여부가 ‘구체적인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 한해 헌법재판의 대상이 되도록 함으로써 구체적·사후적 규범 통제를 합니다. 반면 프랑스는 추상적·사전적 규범 통제를 합니다. 쉽게 말해 국회가 입법하기 전에 법안이 나오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소지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독일·오스트리아·스페인 등은 추상적·사후적 규범 통제를 취하기도 합니다.”
 
  ― 우리나라도 사전적인 통제, 혹은 구체적인 재판과 무관하게 추상적인 통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국회에서 입법권을 둘러싸고 논란이 이는 것을 보면 논의를 해봄직하지 않나 싶습니다. 분명한 것은 입법권을 남용하는 것은 헌법상의 가치, 특히 공동체 보장 정신에 위반된다는 사실입니다.
 
  다수당이라는 점을 앞세워 헌법적 가치를 몰각한 사례를 우리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헌법에서 여실히 봤습니다. 바이마르 헌법은 가장 선진화된 민주 헌법이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여러 국가가 이를 모델로 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왜 바이마르 헌법으로 인해 의회민주주의가 무너지고 나치 히틀러 정권이 생겼습니까? 바로 입법권의 한계를 일탈한 헌법 위반적, 반(反)공동체적, 반화쟁적인 공권력 행사였기 때문입니다. 이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은 1919년 독일 제국을 무너뜨리고 수립되어 1933년 나치가 집권할 때까지 존속했다. 바이마르 헌법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민주화되고 사회권까지도 규정한 최선진화된 헌법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여러 국가가 모델로 삼았다. 하지만 “민족과 국가의 위난을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나치당이 소위 ‘수권법(授權法·Enabling Act)’을 의회에서 통과시켜 히틀러 독재 체제를 탄생시켰다.
 
 
  “특검의 공소취소는 모순 담긴 발상”
 
  김희옥 전 총장은 최근 정치권의 논란이 되는 ‘특별검사(이하 특검)에 의한 공소(公訴)취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형사소송법에서 ‘공소취소’는 검사가 이미 제기한 공소를 철회해 재판을 종결시키는 행위다. 공소가 취소되면 재판을 더는 하지 않는다. 공소취소 사례는 매우 드물다. 검찰이 공소제기를 잘못했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특검에 ‘공소취소’ 권한까지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공소취소를 통한 사실상 사면’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김 전 총장의 얘기다.
 

  “형사소송법 제255조 1항에 따르면 형사사건에서 검사의 공소는 제1심 판결 선고 전까지 취소할 수 있습니다. 또 제329조에 의하면 공소취소에 의한 공소기각 결정이 확정된 때는 ‘공소취소 후 그 범죄사실에 대한 다른 중요한 증거를 발견한 경우’에 한해 다시 공소제기를 할 수 있죠. 검사의 공소취소 사유에는 법률상 제한이 없지만, 극히 예외적으로 운용됩니다. 공소제기 후에 사정의 변화로 처벌 가치가 감소하거나, 공소제기 자체에 위법이 있거나, 공소 후 소송 조건이 결여되는 등의 경우입니다. 그런데 현재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을 ‘공소제기된 사건이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면서 특별검사가 다시 수사해서 공소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앞뒤 안 맞는 정합성(整合性)을 상실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특검의 공소취소’의 4가지 문제점
 
김희옥 전 총장이 인도의 간디 생가를 방문했을 때 석가모니와 간디가 함께 있는 그림 앞에서 찍은 사진. 김 전 총장은 독실한 불교 신자다. 사진=김희옥

  ― 어떤 측면에서 그렇습니까?
 
  “첫째, 법은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법의 일반성 원칙에 어긋납니다. 평등의 원칙과 일반성 원칙에 비춰볼 때 개별인의 개별적 사건을 대상으로 공소를 취소할 수 있는 특검법을 입법하는 것 자체가 극히 예외적인 것으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둘째, 모든 국민은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는데 특정인이 이 권리를 갖지 못한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얘기하면, 재판을 통해 특정인이 무죄(無罪)를 받을 기회를 특검이 없애는 겁니다. 특정인이 죄가 없고 떳떳하다면, 법이 정한 원칙에 따라 재판을 받고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는 것이 맞습니다.
 
  셋째, 공직자윤리법상의 이해충돌 금지에 어긋납니다. 특정 사건에 대해 공소를 취소할 수 있는 특검을 특정인이 임명한다고 해 봅시다. 이것은 모순이고, 위법 가능성이 있습니다.
 
  넷째, 헌법상의 권력 분립 원칙에도 위반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특검이 공소취소라는 형식으로 심리(審理) 중인 법원으로부터 그 사건을 빼앗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헌법상의 입법·사법·행정권의 분립 원칙에 위배되어 위헌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미 기소되어 법원이 재판 중인 사건을 중단시키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만일 특정인의 특정 사건을 염두에 두고 이런 법을 추진한다면 더욱 문제가 있습니다.”
 
  ― 추진 밑바탕에는 ‘검찰 불신’이 깔렸겠지요.
 
  “검찰의 지난날 잘못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느 국가가 어떤 제도를 운영하더라도, 모든 제도가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큰 틀에서 긍정적으로 운영된다면 좋게 평가해야 합니다. 한 국가조직의 극히 일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모두를 없애 버리면 국가 형벌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게 되고 국가를 운영할 수 없습니다. 결국 공동체 내에서의 지나친 갈등과 대립은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해하고 공동체 구성원인 국민의 행복을 빼앗을 따름입니다.”
 
 
  제헌헌법과 같은 날 태어나
 
 
제공=파카(PARKER) 만년필
김희옥 전 총장은 1948년 7월 17일에 태어났다. 이날은 대한민국헌법(제헌헌법)이 처음으로 제정된 제헌절이다. 나이뿐 아니라 생일까지 우리나라 헌법과 똑같다. 남들이 다 자는 어두운 새벽에 공양미를 머리에 이고 절에 올라가 불공을 드린 어머니로부터 이어진 독실한 불교 신자인 그에게 법조인의 삶은 어찌 보면 예견된 일이었는지 모른다.
 
  “동국대에 입학해서 대학 생활 중에도 부처님 법을 공부하고 수행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두려움 없는 당당한 삶’에 대한 법문(法問)을 많이 듣고 새기면서, 탈속 출가(脫俗出家)를 하지 않고 재가자(在家者)로 살아가려면 무슨 일을 하면서 사회와의 관계를 설정해야 하나 고민 끝에 사법시험을 보게 됐습니다. 부처님의 가피(加被)로 시험에 합격하고 검사로 전국 검찰청에서 근무했습니다. 공직자는 개인의 종교를 위하는 듯한 공적(公的) 활동을 해서는 아니 되기에 어디까지나 사적으로 종교 생활을 했습니다. 공직자 개인의 종교로 수행된 좋은 성향을 가지고 공적 업무를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요.”
 
  ― 공직을 떠난 이후에도 끊임없이 법을 연구하는 것도 이 때문일까요?
 
  “법조 공직을 수행하면서도 10권이 넘는 책, 200편이 넘는 논문을 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다 부족하고 한편으로는 무상하고 부질없다는 생각도 들지만, 공부를 소홀히 여길 수가 없네요.”
 
  ― 헌법이며 원효 스님의 화쟁 사상이 모두 좋은 얘기이지만, 요즘과 같이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통할지 모르겠습니다.
 
  “소귀에 경 읽기 아니냐는 지적이시겠지요. 하지만 ‘소귀에도 자꾸 경을 읽히다 보면 소가 빤히 쳐다본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웃음) 저는 거의 평생 공직에 종사하고, 또 법률가로 활동하면서 우리 사회의 혜택을 충분히 받아 왔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 저로서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심한 갈등 현상은 너무나 안타깝고, 작은 힘이라도 갈등을 줄이고 통합으로 나아가는 데 보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숲에는 갈등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갈(葛)’은 칡이고 ‘등(藤)’은 등나무입니다. 칡 줄기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고, 등나무 줄기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감아 올라가기 때문에 서로 얽히게 되면 떼어 놓기도 어렵고 뒤엉켜서 대책 불능인 상태가 됩니다. 그것이 바로 갈등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숲에서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혀 있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숲에서 칡은 칡대로, 등나무는 등나무대로 얽히지 않고, 즉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조화롭게 각기 자라면서 숲이 형성된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도 이러한 자연현상을 보고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갈등·대립 극복해 통합으로”
 
  ― 우리 사회에 지금 필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정치든 경제든 사회, 문화든 국민의 행복과 안전이 추구되는 모든 영역에서 갈등과 분열, 대립과 혼란이 발생하거나 확대되지 않도록 하고, 모든 국민, 사회단체, 국가기관이 갈등과 대립을 극복해 통합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국민이 행복을 추구해서 누리고 기본권이 똑바로 서는 공동체의 나라, 나아가서 헌법적 가치가 구현되고, 원효 스님의 화쟁 사상이 실현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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