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오카다 구니히코 前 숙두가 말하는 마쓰시타정경숙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인간의 가능성을 믿었다”

  • 글 : 유민호 퍼시픽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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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쓰시타, 선견지명과 혁신적인 아이디어 가진 천재형 요구”
⊙ “마쓰시타, ‘이대로라면 일본은 위험… 그 키잡이를 할 수 있는 뛰어난 지도자를 만들어 두지 않으면, 죽어도 죽을 수 없다’고 생각”
⊙ “정경숙의 교육방식은 자습자득(自習自得)”
⊙ 故 김우중 회장이 ‘한국의 정경숙’ 만들려다 포기한 이유는?
⊙ “권력욕·금전욕·과시욕 때문에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아무리 키워도 의미 없어”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現 워싱턴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마쓰시타 정경숙 1기생과 숙주 마쓰시타 고노스케(앞줄 가운데). 앞줄 맨 왼쪽이 오카다 전 숙두, 서 있는 사람 맨 왼쪽이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 사진=오카다 구니히코 제공
우크라이나 전쟁, 베네수엘라 전쟁, 이란 전쟁이 이어지면서 외교·안보·군사와 관련된 일본의 독자(獨自) 노선이 한층 선명해지고 있다. 트럼프 2.0 시대의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 충격, 중국의 대만 위협, 호르무즈발(發) 에너지 공급망 붕괴에 이르는 글로벌 초대형 사건들이 발 빠른 일본 행보의 배경이다.
 
  이러한 일본의 행보를 진두지휘하는 인물이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다. 다카이치는 일본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로 70% 이상의 지지율을 자랑하면서 수많은 난관들을 ‘하나씩 확실히’ 헤쳐 나가고 있다.
 
  다카이치는 ‘영감(靈感)을 주는 정치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설명하는 정치인’ ‘청년의 모범이 되는 리더’라고 할 수 있다. 2030 청년층의 다카이치 지지율은 무려 90%대에 달한다. 청년이라면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다카이치 ‘갓코이이(かっこいい)’로 반응한다. ‘멋있다, 세련됐다, 매력적이다’라는 의미다. 보는 순간 배우고 따르며 흉내 내고 싶은 인물 다카이치라는 것이다. 유행어로 자리 잡은 이른바 ‘사나카쓰(サナ活)’라는 말에서 보듯, 다카이치의 패션, 취미, 표정, 행동이 일본판 ‘최애(最愛)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인이 보면 이상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현상이다. 수많은 한국 정치인 가운데 진정으로 배우고 따르고 흉내 내고 싶은 인물이 누구일지, 있기나 한지 의문이다.
 
 
  ‘정치 지도자 양성소’ 마쓰시타정경숙
 
  다카이치는 ‘정치 지도자 양성소’로 알려진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출신이다. 1984년 제5기생으로 입숙(入塾)해 5년간 정경숙에 머물면서 정치가의 꿈을 키웠다. 정경숙에서 공부하는 도중 미국 의회 연구원으로 유학하고, 이후 TV 평론가로 활동하다가 1993년 32살 나이로 중의원(衆議員)에 당선됐다. 당시 정경숙 출신 13명이 주로 신당 소속으로 당선되면서 ‘마쓰시타정경숙=정치가 양성소’라는 별명을 갖게 된다. 2011~12년 당시 총리를 지낸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도 정경숙 1기생 출신으로, 다카이치와 함께 1993년 중의원으로 당선됐다.
 
  필자는 그런 분위기가 지배하던 1994년에 정경숙 15기생으로 입숙했다. 다카이치와 함께 공부한 적은 없다. 10년 선배인 다카이치와는 이런저런 행사장에서 가끔 접했을 뿐이다.
 
  다카이치를 보면서, 그가 정경숙에 몸담고 있을 당시 정경숙이 지향한 지도자론의 방향과 목표가 궁금해졌다. 또 숙생(塾生)을 지도하면서 리더를 길러 낸 정경숙 숙주(塾主·창설자)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1894~1989년)의 지도자론과 사상도 자세히 재음미하고 싶었다.
 
  그래서 만난 인물이 오카다 구니히코(岡田邦彦) 전 정경숙 숙두(塾頭·교장 역할)다. 그는 도쿄대 법학과 졸업과 함께 정경숙 1기생으로 입숙했고, 10년간 정경숙 숙두를 지냈다. 지금도 지도자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필자가 1994년에 입숙할 당시에도 그가 숙두였다. 그는 숙두 재직 중 김우중(金宇中) 전 대우그룹 회장과의 협력 관계를 적극화한 국제파이기도 하다. 인터뷰는 정경숙에서 동쪽으로 10km 떨어진 가마쿠라(鎌倉)의 엔카쿠지(圓覺寺) 앞 작은 찻집에서 3시간 정도 이뤄졌다.
 
 
  “지도자, 선천적 요소가 우선”
 
오카다 구니히코(岡田邦彦)
1955년생. 도쿄대 법학부 졸업, 마쓰시타정경숙 제1기생 / 재단법인 마쓰시타정경숙 숙두, 美 존스홉킨스대 고등국제문제연구대학원(SAIS) 객원연구원, 하버드대 퍼블릭리더십연구소(Center for Public Leadership) 객원연구원, 와세다대 대학원 공공경영연구과 객원교수, 아세아대학 객원교수 역임. 現 오카다 어소시에이츠 대표. 사진=유민호

  ― 지도자는 천부(天賦)의 재능으로서 태어나는 건가, 교육에 의해 만들어지는 건가?
 
  “경험으로 보면, 선천적(先天的)인 요소가 강하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교육에 의해 만들어지는 부분도 있지만, 본질적인 건 바꿀 수 없다. 교육보다 경험, 경험보다 선천적인 게 우선인 듯하다. 다만, ‘지도자가 이런 경우에 이런 판단을 했다’는 과거의 경험을 배우는 건 중요하다. 한 사람이 일생 동안 경험할 수 있는 건 매우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군대 지휘관이 2000년도 더 전에 있었던 칸나에 전투(기원전 216년 한니발이 이끄는 카르타고군이 로마군을 무찌른 전투)를 배우는 것도 그래서이다.”
 
  ― 근본적인 의문이지만, 21세기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지도자가 필요한가?
 
  “어느 나라에서도 교육 레벨은 올라가고 있지만, 정치적 지도자는 한층 더 필요하다. 대혼란기에 있는 현대에는 지금까지보다 더 뛰어난 지도자가 필요하다. 지도자는 그 어떤 시대에도, 보이스카우트, 소방단, 군대, 기업, 정치 어디에도 필요하다. 시험 삼아, 지도자가 없는 보이스카우트가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면 된다.”
 

  ― 역사상 모델로서 지도자를 한 사람 꼽는다면?
 
  “존 F. 케네디, 간디,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연합함대 사령장관), 도고 헤이하치로(東郷平八郎·러일전쟁 당시 일본 연합함대 사령장관),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가 떠오른다. 그러나 그들도 자기 분야나 영역에 어울릴 리더십을 발휘한 인물들이고, 모든 시대나 상황에 통용되는 지도자는 아니다. 한 사람으로 좁히는 건 어렵다.”
 
  ― 지금까지 실제로 만난 가운데 ‘진짜 지도자’라 느낀 사람은?
 
  “굳이 개인적 경험에 기초하자면, 마쓰시타정경숙 이사장이었던 아라이 마사아키(新井正明·1912~2003년·스미토모생명 명예회장)이다. 무한(無限)의 지혜를 가지고 있었고, 맹자(孟子)의 환생(還生) 같은 분이었다. 나는 당시 숙두로서 매월 오사카까지 가서 업무 보고를 하는 게 즐거웠다. 살아 계시다면 지금도 상담받고 싶다. 물론 정경숙 숙주 마쓰시타 고노스케도 인간 영역을 넘어선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쓰시타 고노스케
 
마쓰시타정경숙 5기생들. 뒷줄의 여성이 다카이치 사나에 현 총리. 사진=오카다 구니히코

  ― 숙주 고노스케는 어떤 사람이었나? 그는 왜 정경숙을 창설했나?
 
  “한마디로 말하긴 어렵지만, 천재적인 경영자였다고 생각한다. 직관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고, 인간 본질을 극히 잘 이해한 지도자다. 사람을 움직이는 천재였다고 생각한다. 생전인 50년 이상 전부터 지금 일본 문제를 예언하고 있었다. 나도 나이가 들수록 숙주의 생각을 잘 알 수 있게 됐다. ‘이대로라면 일본은 위험하니까, 그 키잡이를 할 수 있는 뛰어난 지도자를 만들어 두지 않으면, 죽어도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32년 전 필자의 정경숙 공부는 숙주 마쓰시타 고노스케로부터 시작됐다. ‘무세(無稅) 국가론’과 ‘수돗물 경제론’은 그의 세계관을 압축한 테마다. 경제를 저가(低價)의 수돗물처럼 운용하면 세금이 필요 없는 국가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념으로써 나아가는 사회주의 유토피아론과 결이 다른, 수돗물이라는 ‘생활경제 관점에서 본 국가’가 그의 이상(理想)이자 생각이었다. 세금 문제는 지금도 정경숙 출신들의 핵심 정책 중 하나다. 다카이치가 주장하는 ‘소비세 감세(減稅)’의 출발점도 마쓰시타의 ‘수돗물 경제론’에서 찾을 수 있다.
 
  ― 마쓰시타 고노스케에게 ‘지도자’란 어떤 존재였나?
 
  “그는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 같은 천재 무도인(武道人) 유형의 인물을 좋아했다. 선견지명과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천재형 사람을 요구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걸출한 사람 하나가 나오면 달리 많은 사람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을 듯하다. 그가 조정형(調整型)·팔방미인형(八方美人型) 인물을 원치 않았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가 평이사에서 25명의 선배를 제치고 마쓰시타전기 사장으로 발탁한 야마시타 도시히코(山下俊彦) 씨는 매우 심플하게 사물을 파악하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반면 과묵하고 참으로 붙임성 없는 사람이었다. 묵묵히 일을 하는 구도자(求道者) 같은 지도자였다.”
 
 
  마쓰시타와 점술사
 
  ― 정경숙 제1기생으로서, 마쓰시타 숙주의 교육철학이 가장 선명하게 나타난 체험이나 에피소드는?
 
  “1981년, 미국 지미 카터 대통령 당시 〈서기 2000년의 지구〉라는 글로벌 보고서가 나왔다. ‘인구 폭발이 일어나 지구 자원은 없어질 것’이라는 내용의, 카터 행정부의 미래 예측서였다. 숙생이었던 나는 이 보고서에 대한 숙주의 생각을 물었다. ‘그런 비관적 생각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는 말이 돌아왔다. ‘교토(京都)의 정원은 매우 깨끗하게 청소돼 있어서 사람 눈에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끔 새와 곤충이 오기도 하고 바람도 분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새로운 자원이 〈반드시〉 발견될 것이다.’ 그는 미국 정부나 과학자가 말하는 것은 처음부터 신뢰하지 않았다. 대신 인간의 가능성을 믿고 지지했다.”
 
  그는 이런 일화도 얘기해 줬다.
 
  “마쓰시타 숙주는 항상 유명한 점술사(占術師)를 고용하고 있었다. 당시 마쓰시타전기 본사는 오사카 시내에 있었다. 숙주는 오사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좋은 토지가 있어서 거기로 본사를 이전하려 했다. 점술사와 상담하자 그는 ‘회사를 이전하려는 북동 방향은 귀문[鬼門·흉(凶)의 방향]에 해당하니까 그만두라’고 말했다. 하지만 숙주는 아무래도 그 토지가 좋다고 생각했고, 결국 그곳으로 이전했다. 그 후 마쓰시타전기는 단번에 세계적인 회사로 급부상했다고 한다. 자기 직감(直感)을 신뢰하라는 것이 숙주의 생각이었다.”
 
  오카다 전 숙두는 “어느 날 숙주가 신뢰하던 점술사가 정경숙에 왔기에 나도 감정을 받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면 될 수 있지만, 싫어져서 곧 그만둘 것’이라고 말했다. 나도 이미 그럴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충분히 납득했다. 나는 정치가가 되는 것보다 교육가가 맞다고 생각했다.
 
  점술사 관련 에피소드는, ‘권위 있는 의견’이라도 참고 정도로 하고 자기 직감이나 생각을 우선시하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마쓰시타 철학의 근본이기도 하다.”
 
 
  정경숙의 교육 방식
 
  ― 1979년 설립 당시 목표·목적과 2026년 현실을 비교해 볼 때, 숙주는 지금의 정경숙을 보면서 몇 퍼센트나 성공했다고 평가할까?
 
  “지금 시점에서는 50~60점 정도 아닐까. 졸업한 숙생들 모두 나름대로 활약하고 있지만, 숙주가 기대했던 결과를 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 미국의 케네디스쿨, 프랑스의 그랑제콜 등 외국의 지도자 양성 기관과 비교해서 정경숙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나는 그랑제콜은 잘 모른다. 케네디스쿨은 현지에서 연구를 한 덕분에 조금 안다. 케네디스쿨과 정경숙의 결정적인 차이라고 하면, 자습(自習) 방식에 있다. 케네디스쿨은 철저한 연습 방식에 주목한다. 저명한 정치 연구자나 정부 고관, 전 대통령 등이 강사이고, 세계 각국에서 온 정부 관계자, 학자, 비즈니스맨, 국제기구 직원 등이 학생이다. 정경숙은 자습자득(自習自得)이 먼저다. 나는 정경숙 방식과 케네디스쿨을 합쳐서 반반 나눈 방식이 좋다고 생각한다.”
 
  ― 19세기 말 도쿠가와막부(德川幕府) 말기에 수많은 영웅적인 지도자가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가 위기 상황이 되면 어느 나라에나 뛰어난 지도자가 나오기 마련이다. 막부 말기는 ‘일본이 서양 침략으로부터 어떻게 나라를 지킬 것인가’라는 큰 테마가 있었다. 영웅적인 지도자가 많이 등장할 상황이었다. 국민과 국가의 생존을 항상 생각하는 한, 개발도상국에서도 놀랄 정도로 훌륭한 지도자가 등장할 수 있다.”
 
  ― 지도자 양성 기관에 의한 인재 양성이 단순한 인맥(人脈) 만들기나 폐쇄적인 집단으로 변질돼 버린다는 우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 보신(保身)을 최우선시하기 마련이다. 출세하기 위해서 인맥을 만들고 폐쇄적인 집단을 만든다. 정계, 경제계, 학계 모두 똑같다. 항상 발전·변화·진화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회사든 정경숙이든 마찬가지다.”
 
 
  ‘슈하리(守破離)’
 
  ― 정경숙은 이미 두 명 총리를 배출했는데, 앞으로 정경숙 전망은?
 
  “2030년에 설립 50년이 된다. 나는 1979년 설립 때부터 20기까지 직접 관여해 왔다. 간단히 말하면, 마쓰시타 숙주가 살아 있었던 처음 10년간은 ‘마쓰시타 스쿨’이었다. 숙주가 직·간접적으로 지도하는 걸 중심으로 하고, 많은 강사를 초빙해서 강의했다. 당시에는 경영을 배운다는 취지 하에 마쓰시타그룹에서의 제조·판매 실습도 했다. 이후 정경숙은 ‘마쓰시타연구소(Institute)’로 명칭을 바꿨다. 숙생의 자발적인 연구를 지원·지도하는 걸 중심으로 하면서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
 
  숙생들의 정경숙에 대한 기대나 요구는 처음 20년 정도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최근은 밀레니얼 세대가 되고 있어서 조금 변하는 듯하다.”
 

  ― 스승을 고를 때 선정 기준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말하면, 장래 모델로 삼고 싶은 사람일 거다. 그 사람의 일부분일 수도 있고 전부일 수도 있다. 일본 전통 수행 과정에 ‘슈하리(守破離)’라는 개념이 있다. 배우고 지키는 단계인 ‘슈(守·지킬 수)’, 이어 ‘하(破·깰 파)’는 숙련 이후 자신에 맞게 응용·수정하는 단계, 마지막으로 독창적인 경지에 이르는 ‘리(離·떠날 리)’로의 길이다. 지키고, 깨고, 떠나는 3단계 수행법이다. 처음에는 스승의 전부를 모방한다. 기침하는 방식이나 걷는 방식까지. 다음에 그 스승을 넘어선다. 그리고 자기 나름의 방식을 확립한다. 다도, 가부키, 스모, 검도, 음식 어디 가도 볼 수 있는, 일본 가치의 원형(原型)이 슈하리다.
 
  설립 당시 정경숙은 일본 최고의 지식인이자 경영자·창업자가 강사였다. 어느 정도 상황과 환경이 변했겠지만, 기본은 슈하리의 기준이자 모델로서의 스승이다.”
 
 
  AI 시대의 지도자
 
현 정경숙 재학생들과 함께한 필자(오른쪽에서 세 번째).

  마스시타정경숙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인터넷을 도입한 곳이다. 근처 게이오(慶應)대학 SFC 캠퍼스가 아시아 인터넷 허브였기 때문에 1993년 큰돈을 투자해 광(光)케이블망을 끌어들였다. 당시만 해도 필자가 이용하는 ‘이메일’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한국인이 거의 없었다. 마쓰시타 숙주가 전자회사 경영자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정경숙은 테크놀로지를 이해하는 것을 리더의 조건 중 하나로 본다. 여기서 ‘테크놀로지’란 입이나 이념이 아닌, 현장과 실체로서의 테크놀로지다.
 
  ― 1994년 숙두로 있을 때 인터넷을 빨리 도입했는데, 테크놀로지를 리더십에 연결하면?
 
  “테크놀로지는 엄청 빠른 속도로 발달하고 있다. 안전보장에서 농업, 경제, 교육까지, 테크놀로지가 크게 영향을 준다. 지도자는 어느 정도 테크놀로지를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시대에 맞는 대응을 하기 어렵다. 테크놀로지에 의해 사회의 룰이나 거버넌스 방식도 급변하고 있다. 그러나 지도자의 존재 방식 자체는 그렇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다만 대의제(代議制) 민주주의나 관료제도와 같은 집단적 차원의 구도와 구조는 AI의 진보와 함께 크게 변할 것이다. 대의제가 사라지고 직접민주제가 될 수도 있다. 정책 입안(立案) 등은 AI가 잘하니까, 관료 규모도 최소화될 수 있다.”
 
  ― AI 시대에 지도자의 ‘판단력’은 어떤 의미를 갖나?
 
  “AI 때문에 의사·변호사·회계사가 불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제 AI가 기술적 특이점(特異點)을 넘어 인간 능력을 넘어설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AI가 이미 무능한 지도자의 머리 위에 올라서 있다고 보면 된다. 이번 이란 전쟁에서도 미군은 AI를 이용해 공격작전을 한순간에 완성했다고 한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1968년 만든 영화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보면, 우주선 컴퓨터 HAL 9000이 임무 수행을 위해 우주비행사를 우주선 밖으로 추방하는 장면이 나온다. 앞으로 AI 시대의 윤리 기준에 맞지 않는 지도자도 정치계에서 추방될 수 있다고 본다. AI 세계의 영향력은 생산적이고도 효율적인 머리만이 아닌, 도덕과 윤리 문제까지 확산될 것이다.
 
  AI는 이미 수천 년간 축적된 세계의 정치철학, 경제학, 종교학, 문학, 역사 등을 읽고 있다. 두뇌 면에서 AI를 이길 수 있는 인간 지도자는 없다. 인간은 이지적(理智的)인 면에서는 AI에 못 미치고, 애교라든가 인간으로서 공감이라든가 하는 부분에 한해 우위를 유지하게 될 듯하다. 창조성에서도 인간의 우위가 유지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바둑이나 장기 대국(對局)을 이해한 AI 로봇에 인간 명인들이 당하는 것과 똑같다. 진짜 인간을 상징적인 지도자로 두고, 실제로는 AI가 판단하는 구조가 될지도 모르겠다.”
 
 
  김우중 회장이 정경숙을 포기한 이유
 
고 김우중(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대우그룹 회장은 마쓰시타정경숙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사진은 1996년 정경숙을 방문했을 때의 모습. 김 회장 왼쪽이 오카다 전 숙두.

  오카다 전 숙두는 고(故)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과 가깝게 지냈다. 숙생들을 인솔해 한국에 들러 김 회장의 강의를 듣고, 숙생들의 대우자동차 현장 체험도 주도했다. 김우중 회장은 평소 인재 양성에 남다른 관심과 열정을 가졌다. 현재 동남아시아에서 운영 중인 ‘글로벌 청년비즈니스인력양성 프로그램(GYBM)’은 김 회장의 생애 마지막 사업이다. 지금까지 배출된 졸업생은 1400여 명으로, 이들은 21세기 동남아시아 한국계 기업의 허리로 활용되고 있다.
 
  ― 한국에서 리더 양성 기관을 만들 경우 장애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예전에 김우중 회장이 한국에서 마쓰시타정경숙 같은 기관을 만들려고 한 적이 있다. 나도 몇 번 상담해 주었다. 김 회장은 ‘자금은 있다. 하지만 한국에는 고노스케 숙주처럼 좌와 우, 경영자와 노동자 모두에게 존경받는 사람이 없다. 정경숙 같은 곳을 만드는 건 어렵다’고 말했다.
 
  돈이나 강사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정치적 사상을 조금이라도 넣으려고 한다면, 국민 전부는 아니라고 해도 많은 이들의 지지가 필요하다. 정치 리더를 만드는 조직이라면 그런 중립적이고 상징적인 인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진짜 지도자’
 
오제키 겐지(尾關健治·왼쪽) 현 숙두와 필자.

  ― 일본에서 성공한 교육 방식 중 한국에서도 활용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좀 옛날식일 수도 있지만, 앞에서 말한 ‘슈하리’다. 교육만이 아니라 예술·기술·경영 모두 그렇다. 한국에도 그런 전통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뭔가 배우려면, 스승의 전부를 흡수하려는 자세가 없으면 발전하기 어렵다. 존경하는 스승의 무덤에 가서 ‘스승이라면 어떻게 대응할까?’라고 자문자답(自問自答)하는 식의 자세다. 항상 자기보다 높은 존재를 찾아 나서는 겸허함을 통해 자신의 인격을 다듬을 수 있다. 슈하리를 통한 교육은 한국과 전 세계에 응용할 수 있다.”
 
  ― 지도자 양성 기관을 만들려는 한국인에게 조언은?
 
  “나는 최근 10여 년간 한국을 방문하지 않았다. 많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정치적으로 어려운 나라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반도 국가에다 지금도 남북 분단 상태이고, 일본·미국·중국·러시아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면서 5000만 명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만 한다. 이건 초인적(超人的)인 노력과 감각이 필요한 일이다. 반면에 섬나라인 일본은 어떤 의미에서는 고립돼 있어서, 좋든 나쁘든 정치 하기 쉬운 면이 있다.
 
  나카무라 데쓰(中村哲·1946~ 2019년)라는 의사가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시골에서 오래 의사로 봉사했다. 현지인 치료를 계속하다가 오염된 물이 만병의 원인이라는 걸 깨닫고 직접 불도저를 운전해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수로(水路)를 만들었다. 그는 ‘1000개 진료소보다 1개 수로’라 말했다. 나중에 테러리스트에게 살해됐지만, 지금도 아프가니스탄에서 매우 존경받고 있다. 이처럼 실제로 사회에 기여하는, ‘땅의 소금’ 같은 사람이 많다. 권력욕·금전욕·과시욕 때문에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아무리 키워도 의미 없다. 실제로 세계를 진화시키는 사람을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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