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추석 연휴가 시작되던 10월 3일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경찰에 긴급 체포됐습니다. 그는 경찰서로 끌려 들어가면서 수갑 찬 손을 들어 보이면서 “이재명 대통령이 시켰습니까, 아니면 ‘개딸’들이 시켰습니까”라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TV를 통해 이 장면을 보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나치에 저항했던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민당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다음에 그들이 노조원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조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이 내게 왔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제가 〈편집장의 편지〉 등을 통해 여러 번 소개했던 글이기 때문에 기억하는 독자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10월 10일에는 특검 조사를 받고 돌아온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장 정희철씨가 특검 수사관들의 강압과 회유, 모멸감을 주는 언사 등을 고발하는 메모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저는 작년 12·3 계엄 사태 이후 〈편집장의 편지〉를 통해 끊임없이 ‘전체주의 사회의 도래’를 경고해 왔습니다만, 이런 사회가 실제로 목전에 닥치는 것을 보니 가슴이 먹먹하기만 합니다. 정말이지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편 가르기’
최근 《나치 마인드》(책과함께 펴냄)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30여 년간 나치와 제2차 세계대전사를 추적해 온 영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로런스 리스입니다. 그는 전직 무장친위대원 등 나치 체제에 가담했던 사람들을 비롯해, 그 시절을 살았던 여러 사람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은 후 ‘역사가 주는 12가지 경고’를 도출해 냅니다. 결론에서 저자는 “이 책에서 설명한 끔찍한 범죄는 ‘나치가 독일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인간이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나치의 도래(到來)와 같은 일은, 인간이 사는 세상 어디에서든 되풀이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심리학자들의 주장을 많이 소개하는데, 인간의 본성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것을 시사(示唆)하는 장치인 것 같습니다.
12가지 교훈 중 하나는 “‘그들’과 ‘우리’를 구별하기”입니다. 저자는 ‘그들과 우리’를 구별하는 것은 생존을 위해 위협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상대가 적인지 친구인지를 즉시 판단해야 했던 아득한 옛날부터 이어져온 특질이기 때문에, “누구를 그들로 여기고 누구를 우리로 여길 것인지에 관해 사람을 조종하기란 믿을 수 없을 만큼 쉽다”고 말합니다. 악명 높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도 ‘아리안족인 우리’와 ‘인간 이하의 존재인 유대인’을 구별하는 데서 비롯되었지요.
좌파도 ‘그들과 우리’의 구별을 통해 사람을 조종하는 데 능숙합니다. ‘반동분자’니 ‘적폐 세력’이니 ‘내란 세력’이니 하는 말들이 바로 이런 ‘편 가르기’를 위한 용어들이죠.
저자가 꼽는 교훈 중 하나로 ‘인권 공격하기’도 있습니다. 나치 치하에서 인권이 얼마나 짓밟혔는지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독재자가 안전하다고 느끼려면 언론의 자유, 법치, 공정한 선거는 전부 폐기해야 한다”는 말은 새삼 등골을 서늘하게 합니다.
민주당은 최근 “특정 국가 출신, 특정 인종, 장애인 등 사회적 집단을 향해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집회·시위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내놓았습니다. 세간에서는 이 법안을 ‘반중(反中)금지법’이라고 하더군요. 이재명 대통령과 김민석 총리도 연일 ‘혐중(嫌中)’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반중금지법’을 내놓은 민주당은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도 타인의 인권과 존엄을 침해하는 경우까지 무제한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도대체 그들은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제21조 ②항)고 명시하고 있는 대한민국헌법을 읽어보기나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걸핏하면 소위 ‘민주화운동’ 경력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집회·시위를 원천적으로 금지’한다는 발상을 하고, 그런 소리를 자신 있게 할 수 있는지…. ‘반중 금지’와 ‘반정부 금지’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을 것입니다.
‘인권 공격하기’와 그 부역자들
독재 정권이 인권을 공격할 때, 손발이 되는 것은 경찰 같은 공권력입니다. 나치 독일의 게슈타포는 악명이 높지요. 이 게슈타포의 수장(首長)은 나치가 집권한 1933년 이전부터 좌파 단체 탄압 업무를 수행했던 하인리히 뮐러라는 경찰관이었습니다. 나치당 보고서는 그에 대해 “그러나 뮐러가 우파를 탄압하는 임무를 맡았다면 분명히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라면서 “야심이 크고 추진력이 강한 그는 누가 지배자가 되든지 주어진 체제에서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뮐러는 나치 독일의 패색(敗色)이 짙어지자 소련과 내통해 목숨을 건졌고, 전후(戰後)에는 소련 비밀경찰을 위해 일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도 뮐러 같은 경찰관이나 검사, 수사관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 책에는 이 밖에도 나치에 부역(附逆)했던 법조인이나 지식인들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후 폴란드·소련 등지에서 유대인 학살을 자행했던 악명 높은 특수기동대(Einstzgruppen)의 지휘관이었던 오토 올렌도르프는 이탈리아 파도바대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은 경제학자였고, 그의 휘하 최상급 지휘관 17명 중 11명이 변호사, 9명이 박사 학위 소지자였습니다. 이들에 비하면, 말도 안 되는 억지와 궤변을 일삼는 이 나라의 ‘진보적’ 지식인이나 법조인, 정치인들은 그나마 양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권 공격하기’의 끝판은 ‘사법부 장악’입니다. 히틀러는 1934년 6월 정적(政敵)들을 학살한 ‘장검(長劍)의 밤’ 사건 이후 “내가 독일 민족의 최고 재판관”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고명한 헌법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인 카를 슈미트는 〈퓌러(총통)가 법을 보호한다〉는 글을 써서 히틀러의 궤변을 옹호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대통령이 “권력에는 서열이 있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고, 여당 의원들이 대법원장을 국회에 불러 조리돌림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여당이 주장하는 ‘사법개혁’의 종착점은 어디일까요?
‘끓는 물의 개구리’
이 책에서 가장 섬뜩했던 말 중 하나는 “홀로코스트로 가는 과정이 점진적이었기에 가해자들이 그 범죄를 더 쉽게 실행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자는 “연구에 따르면, 하나의 큰 결정을 내리는 것보다는 작은 결정을 연이어 내리는 것이 더 쉽다”면서 “이렇게 단계적으로 강도를 높여가는 의사결정 과정의 한 가지 귀결은 애초 단번에 최종적인 결정이 내려졌을 경우보다 더 완벽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끓는 물의 개구리’를 떠올렸습니다. 개구리가 갑자기 뜨거운 물에 들어가면 즉시 뛰쳐나오지만, 물의 온도를 서서히 높여가면 개구리는 결국 끓는 물에 익어서 죽게 된다는 유명한 이야기 말입니다.
이 나라에서 지금 당장 유혈 낭자한 ‘혁명’이나 ‘숙청’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란 척결’ ‘검찰개혁’ ‘사법개혁’이 진행되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뭐가 올까요? 벌써 거리에는 ‘언론개혁’을 요구하는 플래카드들이 나붙어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재벌개혁’이나 ‘부동산개혁’이 오겠지요.
‘나는 검사도, 법관도, 언론사 사주(社主)도, 재벌도 아니고, 부동산 부자도 아니니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요? 이렇게 생각하는 분은 이 글 앞머리에서 소개한 니묄러의 말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