阿Q의 시 읽기 〈3〉 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철〉

사탄일망정 죄에 몸부림치는 인간이여!

  •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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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의 ‘탕자의 귀향’과 닮은 신앙 고백서
⊙ 죄에 빠져 ‘꿱’ 하고 죽기 직전 발버둥치는 인간의 모습 그려
⊙ 1873년 폴 베를렌과 헤어지며 쓴 마지막 시 … 이후 유랑생활하다 행려자로 사망
구에르치노의 〈탕자의 귀향〉.
지옥에서 보낸 한철
  - 아르튀르 랭보(김현 번역)
 
  옛날,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의 삶은 모든 사람들이 가슴을 열고 온갖 술들이 흘러 다니는 하나의 축제였다.
 
  어느날 저녁 나는 미(美)를 내 무릎에 앉혔다.
  - 그러고 보니 지독한 치(痴)였다 - 그래서 욕을 퍼부어 주었다.
  나는 정의에 항거하여 무장을 단단히 했다.
  나는 도망했다. 오 마녀여, 오 불행이여, 오 증오여, 내 보물을 나는 너희들에게 의탁했다.
 
  나는 내 정신 속에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온갖 희망을 사라지게 하기에 이르렀다. 그 희망의 목을 비트는 데 즐거움을 느껴, 나는 잔인한 짐승처럼 음험하게 뛰었다.
  나는 죽어 가면서 그들의 총자루를 물어뜯으려고 사형집행인을 불렀다. 나는 피와 모래에 범벅이 되어 죽기 위해 재앙을 불렀다. 불행은 나의 신이었다. 나는 진창 속에서 팍 쓰러졌다. 나는 죄의 바람에 몸을 말렸다. 나는 광대를 잘 속여 넘겼다.
  봄은 나를 향해 백지처럼 무시무시한 웃음을 웃었다.
 
  그런데, 요즘 마지막 껄떡 소리를 낼 찰나에, 나는 옛날의 축제를 다시 열어 줄 열쇠를 찾으려 했다. 그러면 아마도 욕망을 되찾을지 모른다.
  자애가 그 열쇠이다 - 그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내가 전에 꿈을 꾸었나 보다.
  “너는 잔인한 놈으로 남으리라 …” 따위의 말을, 그토록 멋진 양귀비꽃을 나에게 씌워준 악마가 다시 소리친다. “네, 모든 욕망과 이기주의와 모든 너의 죄종(罪宗)을 짊어지고 죽으라”
 
  오! 내 그런 것은 실컷 받아들였다. 하지만. 사탄이여, 정말 간청하노니, 화를 덜 내시라! 그리고 하찮은 몇 가지 뒤늦은 비겁한 짓을 기다리며, 글쟁이에게서 교훈적이며 묘사적인 능력의 결핍을 사랑하는 당신에게 내 나의 저주받은 자의 수첩에서 보기 흉한 몇 장을 발췌해 준다.
 
 
  UNE SAISON EN ENFER
  -Arthur Rimbaud
 
  Jadis, si je me souviens bien, ma vie était un festin où s’ouvraient tous les coeurs, où tous les vins coulaient.
 
  Un soir, j’ai assis la Beauté sur mes genoux.
  - Et je l’ai trouvée amère. - Et je l’ai injuriée.
  Je me suis armé contre la justice.
  Je me suis enfui. O sorcières, ô misère, ô haine, c’est à vous que mon trésor a été confié !
  Je parvins à faire s’évanouir dans mon esprit toute l’espérance humaine. Sur toute joie pour l’étrangler j’ai fait le bond sourd de la bête féroce.
  J’ai appelé les bourreaux pour, en périssant, mordre la crosse de leurs fusils. J’ai appelé les fléaux, pour m’étouffer avec le sable, avec le sang. Le malheur a été mon dieu. Je me suis allongé dans la boue. Je me suis séché à l’air du crime. Et j’ai joué de bons tours à la folie.
  Et le printemps m’a apporté l’affreux rire de l'idiot.
 
  Or, tout dernièrement, m’étant trouvé sur le point de faire le dernier couac ! j’ai songé à rechercher la clef du festin ancien, où je reprendrais peut-être appétit.
  La charité est cette clef. - Cette inspiration prouve que j’ai rêvé !
  "Tu resteras hyène, etc..." se récrie le démon qui me couronna de si aimables pavots. "Gagne la mort avec tous tes appétits, et ton égoïsme et tous les péchés capitaux."
 
  Ah ! j’en ai trop pris : - Mais, cher Satan, je vous en conjure, une prunelle moins irritée ! et en attendant les quelques petites lâchetés en retard, vous qui aimez dans l’écrivain l’absence des facultés descriptives ou instructives, je vous détache des quelques hideux feuillets de mon carnet de damné.
 
 
   아르튀르 랭보의 산문시 〈지옥에서 보낸 한철〉은 나쁜 주문(呪文) 같은 시다. 뒤틀려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일그러진 목소리가 끔찍이 배어 있다. 길이가 서로 다른 9편의 연작시 중에서 첫 번째 시(일종의 序詩)에 등장하는 ‘나’는 정의에 항거하고, 재앙을 부르며, 불행을 신(神)으로 섬긴다.
 
  시의 화자인 ‘나’는 시쳇말로 악질이다. ‘희망의 목을 비트는 데’ 즐거움을 느끼는 ‘나’는 진창에 팍 쓰러져, 젖은 몸을 ‘죄의 바람’에 말린다. ‘나’는 광대를 잘 속인다. 여기서 광대는 말 없는 신이다.
 
  ‘나’는 사탄 내지 악마와 다름없다. 사탄이 주인공으로 분(扮)하는 시를 당대 프랑스 교양사회가 상상이나 했을까. 시를 읽다 보면 사탄과 ‘나’의 경계가 모호하다. 그러나 ‘나’는 죄에 빠진 악마일망정 죄에 몸부림치는 운명을 타고난 인간이다.
 
  4연 첫 행에 ‘그런데, 요즘 마지막 껄떡 소리를 낼 찰나에’라는 표현이 나온다. ‘껄떡’ 소리는 ‘꿱’ 소리, ‘꼴딱’ 소리다. 죽을 때 나는 외마디다. ‘나’는 죄에 빠져 ‘꿱’ 하고 죽기 직전, ‘자애의 열쇠’를 찾으려 한다. 죄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탕자와 같다.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철〉.
  〈지옥에서 보낸 한철〉은 어쩌면 성경에 나오는 ‘탕자의 귀향’과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17세기 화가 구에르치노(Guercino)의 그림 〈탕자의 귀향〉은 루카(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죄를 뉘우치는 탕자에게 새 옷을 건네는 아버지를 그리고 있다.
 
  그러자 4연 마지막 줄에 화가 난 악마가 이렇게 저주를 퍼붓는다.
 
  ‘《네, 모든 욕망과 이기주의와 모든 너의 죄종을 짊어지고 죽으라》’
 
  여기서 죄종(罪宗)이란 가톨릭에서 말하는 죄 7종 세트를 의미한다. 교만과 태만, 사음(邪淫), 분노, 질투, 탐심, 탐욕이다. 시인은 마지막 연, 첫 행에서 이렇게 소리친다.
 
  ‘오! 내 그런 것은 실컷 받아들였다.’
 
  영화 〈친구〉의 장동건 버전으로 말하면 “고마해라. 마이 무따(많이 먹었다)”의 뜻이다. 그러면서 사탄에게 하는 말.
 
  ‘사탄이여, 정말 간청하노니, 화를 덜 내시라!’
 
  사탄의 화를 더 돋우는 말이다. 하지만 탕자의 ‘나’는 귀향을 선언한다 ‘내’ 죄를 ‘아듀(adieu, 고별)’하기 위해 시인은 고통스럽게 보낸 지옥의 날들을 처절히 들여다본다.
 
 
  폴 베를렌과의 만남이 낳은 〈지옥에서의 한철〉
 
폴 베를렌.
  아르튀르 랭보(1854~1891)는 프랑스 샤르빌에서 군인인 아버지와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방랑벽이 심했는데 부모의 냉정한 양육태도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16살부터 시를 썼고 이를 폴 베를렌(Paul verlaine·1844~1896)에게 보낸 것이 인연이 되어 두 사람은 1873년까지 그와 광적인 동성애를 나눈 것으로 전해진다. 어느 날 랭보가 떠나겠다고 선언하자 베를렌이 랭보에게 권총 두 발을 쏘았고 랭보는 그와 결별한 후 고향집으로 돌아와 쓴 시가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다. 이후 랭보는 죽을 때까지 17년간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키프로스, 에티오피아 등지에서 유랑생활을 했다. 유럽문명을 거부하고 아프리카로, 미지의 세계로 탈출한 것이다. 랭보는 행려병자로 사망했다. 어쩌면 랭보의 이 산문시는 탕아의 고백서다.
 
  랭보의 ‘지옥’과 연상되는 공간을 한국에서 찾는다면 어딜까. 아무래도 ‘유배지’가 아닐까. 정일근의 시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와 임동확의 시 〈유배지에서 보낸 내 마음의 편지Ⅱ〉(1987년 작)를 소개한다. 정일근의 시에 등장하는 시적 공간은 전남 강진이고, 임동확의 시에 등장하는 공간은 1980년 광주다. 장시여서 일부만 소개한다.
 
  〈아직은 미명이다. 강진의 하늘 강진의 벌판 새벽이 당도하길 기다리며 죽로차를 달리는 치운 계절, 학연아 남해 바다를 건너 우두봉을 넘어오다 우우 소울음으로 몰아치는 하늬바람에 문풍지에 숨겨둔 내 귀 하나 부질없이 부질없이 서울의 기별이 그립고, 흑산도로 끌려가신 약전 형님의 안부가 그립다. (이하 생략)〉
  -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중에서
 
  〈무엇이었을까, 떠나간 그대와 홀로 남은 내가, 그 산마루턱 바람재에 키 큰 장승이 되어 꿈꾸던 하늘의 빛깔은. 하얀 들찔레꽃이 눈발처럼 쏟아지던 그해 봄, 땅까시 자욱한 길에서 영원히 갈라서듯, 제각기 누런 베수건을 감아쥐고 얼굴을 가린 채, 남남처럼 뒤돌아선 모습들은. (이하 생략)〉
  - 〈유배지에서 보낸 내 마음의 편지Ⅱ〉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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