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건희 여사 납북자 가족 만나 “늦게 찾아와 죄송”
⊙ “北에서 내려온 간첩이 아들 잘살고 있다고 전해”
⊙ “이명박 정부 때 납북자에게 편지 전해주려 했다”
⊙ “납북자 문제 해결 위해 정부 전담 부서 신설해야”
⊙ “北에서 내려온 간첩이 아들 잘살고 있다고 전해”
⊙ “이명박 정부 때 납북자에게 편지 전해주려 했다”
⊙ “납북자 문제 해결 위해 정부 전담 부서 신설해야”
-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인 김건희 여사가 2023년 4월 12일 경기 파주시 국립 6·25전쟁납북자기념관에서 납북자·억류자 가족 김태옥 할머니의 손을 잡으며 위로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우리 가족들은 기시다 일본 총리의 파란 리본을 보고 너무나 부러웠어요. 총리까지도 납북자 문제를 잊지 않고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고 한국과 너무 비교됐어요.”
납북자 가족 박연옥씨의 말이다.
지난 5월 7일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방한했다. 첫날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고 용산 대통령실을 방문해 공동 기자회견을 가질 때 눈에 띄었다. 양복 재킷 오른쪽 옷깃에 단 파란색 리본 말이다.
블루리본은 일본인 납북자가 일본 정부의 공식 발표인 17명이 아니라 많게는 100명에 달할 가능성을 제기한 시민단체 ‘스쿠우카이’의 상징물이다. 일본 총리와 주요 각료들은 공식석상에 나설 때마다 이 리본을 달곤 한다. 납북 일본인 전원의 석방과 구출을 촉구하는 의미다. 일본은 1970~80년대 실종된 일본인이 북한에 납치된 것으로 드러나면서부터 줄곧 일본인 납북자 송환에 힘쓰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는 대조적이다. 정부가 6·25전쟁 이후 북한에 강제로 끌려가 억류된 국민에 대한 송환 노력을 하지 않고 있고, 북한에 끌려 다니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인 납북자·억류자 문제 처음 논의”
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납북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먼저 작년 11월 13일 한·미·일 정상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3국 정상회담을 갖고 납치자 문제의 즉각적 해결을 위한 공동의 의지를 재확인했다. 정상과의 회담에서 한국인 납북자·억류자 문제가 논의되고, 이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성명이 발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윤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 중 채택된 한·미·일 3국 정상의 ‘프놈펜 공동성명’에 북한 내 한국인 억류자와 납북자 문제가 언급된 건, 정부가 이들의 송환을 대북 정책의 우선순위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에 집중했던 문재인 정부와 달리 북한 인권, 남북 간 인도적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루겠다는 것이다.
이어 지난 4월 12일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경기도 파주시 국립 6·25전쟁납북자기념관에서 납북자·억류자 가족 10명을 만났다. 김 여사는 “너무 늦게 찾아뵈어 죄송하다”면서 “이제는 정부가 국제사회와 힘을 모아 납북자·억류자의 생사 확인과 귀환을 위해 힘쓰겠다”고 위로했다.
김건희 여사를 만난 가족들은 “그동안 역대 어느 대통령이나 영부인도 우리를 만나주지 않았는데 우리의 아픔을 잊지 않고 만나준 것만으로도 희망이 생긴다”며 “오늘의 따뜻한 위로가 버텨낼 힘이 될 것”이라 입을 모았다.
하지만 《한겨레》 신문은 이튿날 신문 사설을 통해 김 여사가 납북자·억류자 가족을 만난 것을 비판했다. 사설 내용의 일부다.
〈김 여사가 어려운 처지의 이들을 만나 위로하는 것을 탓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납북자·억류자 관련 사안은 남북 실무회담 등에서 ‘전쟁 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 등의 우회적 표현을 사용할 만큼 남북관계에서 민감한 문제다. 이처럼 예민한 사안에 대해 대통령 배우자가 자신의 입장을 ‘천명’하고, 나아가 북한을 향한 ‘강한 태도’까지 주문한 것은 이례적이고 선을 넘은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신문이 말하는 ‘전쟁 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이라는 표현은 북한이 주장하는 내용과 일치한다. 신문의 이러한 비판에 대해 납북자 가족들은 분노를 표출했다.
최성룡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이사장은 “수십 년간 가족의 생사도 모르고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 무슨 큰 잘못인가. 신문사 사장이나 그 임직원들의 가족 중에 납북자나 억류자가 있어도 이런 비판을 할 수 있는가”라며 “북한 노동당 선전 기관지가 아니라 대한민국 언론이라는 것을 명심했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납북자 가족 박연옥씨는 “지난 50년간 그 어떤 대통령이나 영부인도 우리 얘기를 들어준 적이 없었다”면서 “김건희 여사가 우리를 찾아와 한 위로의 말 한마디에 50년 쌓인 응어리가 다 풀린 것 같았다”고 말했다.
아들 생존 소식 20년 만에 北 간첩한테 들어
박씨는 “나는 일반 주부라 정치를 잘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일을 놓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고, 비판하는 이는 과연 어느 나라 사람인지 궁금하다”면서 “북한에 대해 옹호할 거면 차라리 그 사람들을 북으로 보내고 우리 가족들을 데리고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건희 여사는 민간인이라 활동을 하면 안 된다고 했던데 그러면 그 전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은 민간인이 아니었나요? 그분은 민간인 신분에 국민의 혈세로 심지어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타지마할까지 가서 관광하다 왔는데, 이것에 대해선 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지 궁금하군요.”
박씨 아버지는 1971년 연평도 인근 바다에서 조업하던 중 북한에 의해 납북됐다. 당시 박씨는 겨우 중1 어린 학생이었다.
이미일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명예이사장은 “김 여사가 납북자 가족들을 만난 것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은 어느 나라 사람인지 궁금하다”면서 “그 사람들도 부모 형제가 있을 텐데 만약 자신이 당사자라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고 했다.
납북자 가족들과 김건희 여사의 만남 이후 진보 매체와 인사들의 비판이 이어지자 가족들은 할 말이 많은 듯 보였다. 기자가 만난 납북자 가족의 사연은 모두 절절했다. 이 중 40년 전인 1977년 수학여행 중 전라남도 홍도에서 북한에 의해 납북된 이민교씨의 어머니 김태옥씨의 얘기는 유독 기억에 남았다. 김씨는 올해 91세다. 나이 탓에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것 빼곤 건강한 편이었다. 그는 기자를 만나 이 말만 반복했다.
“이 늙은이, 이제 살아야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아들 민교가 살아 있는 것은 확인됐고, 평양에서 잘 살고 있다고 하니 굳이 데려오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거기서라도 잘 살면 되지요. 그런데 내 죽기 전에 얼굴이라도 꼭 한번 보는 것이 늙은이 평생소원입니다.”
김씨의 아들 이민교씨가 북한에 생존해 있다는 사실은 의외의 인물로부터 알게 됐다. 바로 1995년 10월 부여에서 우리 군경(軍警)과 총격전 끝에 검거된 대남공작원 김동식씨다. 김씨는 당시 일을 이렇게 회고했다.
“당시 우리 지역구 국회의원이 저를 찾아왔었어요. 어디로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나섰죠. 함께 간 곳은 경기도 성남시 인근인 것으로 기억나는데 인적이 드문 외딴집으로 갔죠. 그곳에서 한 남성을 만났는데 그분이 북한에서 내려온 간첩이라고 하더군요. 그분 말이 우리 민교가 키도 크고 잘생기고 착하게 자랐다면서 2000년대 초까지 평양 용성구역에 있는 이남화(以南化) 환경관에서 일을 했다고 말해줬어요.”
이남화 환경관은 간첩들이 남파(南派)되기 전 남한 내의 생활 경험을 위해 만든 일종의 교육시설이다.
“아들에게 피해될까 소식도 전하지 못했다”
김씨는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아들의 생사를 확인했지만 만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아들을 한 번만이라도 만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현재까지 만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중 이명박 정부 때 아들에게 소식을 전할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북한에 있는 휴민트(내부 협조자)를 이용해 이민교씨와 또 다른 납북자에게 가족의 소식을 전하려고 했다. 김씨는 편지를 전할 수 있다는 마음에 기뻤지만 이내 포기했다.
“아들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다는 얘기에 아주 기뻤지요. 편지를 쓰려고 보니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편지가 전달되는 도중 북한 당국에 적발된다면 나보다 아들이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차마 편지를 쓸 수가 없더군요.”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던 정부 한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모자(母子) 만남을 성사시키지는 못했지만, 북한 내부 협조자를 통해 소식을 전달해주려 노력했다”면서 “그래서 여러 차례 편지를 써보라고 권했지만 김씨는 아들의 안전 때문에 포기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한다며 한창 들떠 있을 당시 김씨는 이 기회에 아들을 만날 수 있겠다는 작은 희망이 생겼다. 문 대통령에게 절절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다. 김씨가 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내용의 일부다.
〈수학여행을 보낸 이 어미의 죄요, 그래서 북에 납치된 것도 어미의 죄입니다.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에게 북에 납치된 사건을 용서할 테니, 죽기 전에 아들 얼굴 한 번 보게 해달라는 것이 그렇게 죄가 되나요. 나도 이제 나이가 많아서 얼마 살지 못할 것 같아요. 죽기 전에 아들을 한 번만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정부와 문재인 대통령은 하루속히 아들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문재인 정부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 지옥에서 늦게 해방시켜드려 죄송합니다”
기자가 만난 납북자 가족 중 이민교씨의 어머니처럼 자녀가 북한에 납치된 이들은 많지 않았다. 가족들 대부분이 아버지가 납북된 경우였다.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성의 이사장도 아버지가 6·25전쟁 중 북한으로 끌려갔다.
이 이사장의 아버지는 1949년 충주지방검찰청 검사로 일하다가 전쟁이 일어나기 한 달 전 퇴직했다. 그 후로 변호사로 일했다.
북한은 6·25전쟁 당시 남한에서 활약하던 지식인과 사회 지도층 등을 강제로 북한으로 끌고 가는 끔찍한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당시 납북된 사람은 약 10만 명으로 추정된다. 졸지에 사랑하는 가족과 생이별하게 된 이들의 소식은 전쟁 발발 7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뚜렷이 알 길이 없다.
그럼에도 북한에 끌려간 가족을 잊을 수 없었던 이들은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를 구성해 지금까지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이사장은 “아버지는 9명의 가족을 모두 데리고 피란 가기 어려워 서울에 남으셨다. 아버지는 북한군을 피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시다 당시 북한을 지지하던 친구의 밀고로 잡히셨다”면서 “처음엔 잡히신 것도 몰랐다. 어느 날 서대문형무소에 아버지와 함께 있었다던 사람이 아버지가 쓴 편지를 건네줘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이사장의 넷째 언니는 마당에서 놀던 중 북한군이 쏜 총탄에 맞아 죽었다. 그리고 형편이 어려워지자 둘째 언니와 오빠 한 명을 당시 개성 외가로 보냈는데 지금껏 소식을 모르고 있다. 큰오빠는 6·25전쟁 당시 경찰관으로 지리산 토벌에 동원됐다. 전쟁 이후 파출소장으로 근무하다 지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얼마 전까지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으로 일했던 이미일 명예이사장의 아버지도 6·25 때 납북됐다. 이미일 명예이사장은 김대중 정권 시절이던 2000년 11월 6·25사변납북자가족회(협의회의 전신)를 만든 이후 지난 17년간 6·25 납북자 진상 규명 활동에 앞장서 왔다. 2010년에는 ‘6·25전쟁납북피해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명예회복에 관한 법률’ 제정을 이끌어냈다.
이 명예이사장은 “북한 정권이 하루빨리 끝나야 한다. 우리 납북자 가족뿐만 아니라 현재 북한에서 고통받고 있는 북한 동포들을 위해서라도 김정은 정권이 막을 내려야 한다”면서 “만약 북한이 무너지고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면 지옥 같은 북한에서 늦게 해방해드려 죄송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고 했다.
“납북자 전담 부서 만들어 국제사회에 적극 알려야”
70년 가까이 정부의 무관심 속에 살아온 납북자 가족들은 윤석열 정부의 관심에 감사할 뿐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관심이 일회성으로 끝날까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가족들은 우리 정부가 일본처럼 납북자 송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한편 국제사회에 알리는 노력도 함께해 주길 바라고 있다. 이성의 이사장은 “정부나 역대 대통령들마다 5·18이나 4·3사건에는 관심을 가지면서도 6·25전쟁 피해자인 납북자들에 대해선 아무 관심이 없다”면서 “많은 사람이 북한에 끌려갔는데 학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고 역사책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우리 납북자 가족들은 역사적인 사실을 외면하지 말고 다시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후대들에 잘 전달해야 한다”면서 “그리고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 이사장은 윤석열 정부의 노력에 대해서 “프놈펜에서 대통령이 납북자들을 언급하고 영부인께서 우리를 찾아와 위로해줘서 너무 감사하고 그동안 가슴에 맺혀 있던 한(恨)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다”며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관심이 여기서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일 명예이사장도 같은 의견이었다.
“김건희 여사를 만나 많은 얘기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납북자 가족들의 애환을 조금이라도 전달한 것 같아요. 이번을 시작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가 더 노력해주길 바랍니다.”
이 명예이사장은 덧붙여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일본처럼 정부부처에 납북자 관련 전담 부서를 만들어 국내와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된다”며 “여러 차례 통일부에다 납북자 전담 부서 문제를 건의하고 있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납북자 가족 박연옥씨의 말이다.
지난 5월 7일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방한했다. 첫날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고 용산 대통령실을 방문해 공동 기자회견을 가질 때 눈에 띄었다. 양복 재킷 오른쪽 옷깃에 단 파란색 리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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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총리를 비롯해 일본 정치인들이 옷깃에 다는 푸른색 리본은 납북일본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사진=뉴스1 |
반면 한국 정부는 대조적이다. 정부가 6·25전쟁 이후 북한에 강제로 끌려가 억류된 국민에 대한 송환 노력을 하지 않고 있고, 북한에 끌려 다니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인 납북자·억류자 문제 처음 논의”
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납북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먼저 작년 11월 13일 한·미·일 정상은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3국 정상회담을 갖고 납치자 문제의 즉각적 해결을 위한 공동의 의지를 재확인했다. 정상과의 회담에서 한국인 납북자·억류자 문제가 논의되고, 이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성명이 발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윤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 중 채택된 한·미·일 3국 정상의 ‘프놈펜 공동성명’에 북한 내 한국인 억류자와 납북자 문제가 언급된 건, 정부가 이들의 송환을 대북 정책의 우선순위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에 집중했던 문재인 정부와 달리 북한 인권, 남북 간 인도적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루겠다는 것이다.
이어 지난 4월 12일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경기도 파주시 국립 6·25전쟁납북자기념관에서 납북자·억류자 가족 10명을 만났다. 김 여사는 “너무 늦게 찾아뵈어 죄송하다”면서 “이제는 정부가 국제사회와 힘을 모아 납북자·억류자의 생사 확인과 귀환을 위해 힘쓰겠다”고 위로했다.
김건희 여사를 만난 가족들은 “그동안 역대 어느 대통령이나 영부인도 우리를 만나주지 않았는데 우리의 아픔을 잊지 않고 만나준 것만으로도 희망이 생긴다”며 “오늘의 따뜻한 위로가 버텨낼 힘이 될 것”이라 입을 모았다.
하지만 《한겨레》 신문은 이튿날 신문 사설을 통해 김 여사가 납북자·억류자 가족을 만난 것을 비판했다. 사설 내용의 일부다.
〈김 여사가 어려운 처지의 이들을 만나 위로하는 것을 탓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납북자·억류자 관련 사안은 남북 실무회담 등에서 ‘전쟁 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 등의 우회적 표현을 사용할 만큼 남북관계에서 민감한 문제다. 이처럼 예민한 사안에 대해 대통령 배우자가 자신의 입장을 ‘천명’하고, 나아가 북한을 향한 ‘강한 태도’까지 주문한 것은 이례적이고 선을 넘은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신문이 말하는 ‘전쟁 시기와 그 이후 소식을 알 수 없게 된 사람’이라는 표현은 북한이 주장하는 내용과 일치한다. 신문의 이러한 비판에 대해 납북자 가족들은 분노를 표출했다.
최성룡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이사장은 “수십 년간 가족의 생사도 모르고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 무슨 큰 잘못인가. 신문사 사장이나 그 임직원들의 가족 중에 납북자나 억류자가 있어도 이런 비판을 할 수 있는가”라며 “북한 노동당 선전 기관지가 아니라 대한민국 언론이라는 것을 명심했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납북자 가족 박연옥씨는 “지난 50년간 그 어떤 대통령이나 영부인도 우리 얘기를 들어준 적이 없었다”면서 “김건희 여사가 우리를 찾아와 한 위로의 말 한마디에 50년 쌓인 응어리가 다 풀린 것 같았다”고 말했다.
아들 생존 소식 20년 만에 北 간첩한테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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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 가족들이다. 왼쪽부터 최성룡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이사장, 납북자 이민교씨 어머니 김태옥 할머니, 1971년 1월 납북된 휘영37호 선원 박동순씨의 딸 박연옥씨다. |
“김건희 여사는 민간인이라 활동을 하면 안 된다고 했던데 그러면 그 전 문재인 전 대통령 부인은 민간인이 아니었나요? 그분은 민간인 신분에 국민의 혈세로 심지어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타지마할까지 가서 관광하다 왔는데, 이것에 대해선 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지 궁금하군요.”
박씨 아버지는 1971년 연평도 인근 바다에서 조업하던 중 북한에 의해 납북됐다. 당시 박씨는 겨우 중1 어린 학생이었다.
이미일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명예이사장은 “김 여사가 납북자 가족들을 만난 것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은 어느 나라 사람인지 궁금하다”면서 “그 사람들도 부모 형제가 있을 텐데 만약 자신이 당사자라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고 했다.
납북자 가족들과 김건희 여사의 만남 이후 진보 매체와 인사들의 비판이 이어지자 가족들은 할 말이 많은 듯 보였다. 기자가 만난 납북자 가족의 사연은 모두 절절했다. 이 중 40년 전인 1977년 수학여행 중 전라남도 홍도에서 북한에 의해 납북된 이민교씨의 어머니 김태옥씨의 얘기는 유독 기억에 남았다. 김씨는 올해 91세다. 나이 탓에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것 빼곤 건강한 편이었다. 그는 기자를 만나 이 말만 반복했다.
“이 늙은이, 이제 살아야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아들 민교가 살아 있는 것은 확인됐고, 평양에서 잘 살고 있다고 하니 굳이 데려오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거기서라도 잘 살면 되지요. 그런데 내 죽기 전에 얼굴이라도 꼭 한번 보는 것이 늙은이 평생소원입니다.”
김씨의 아들 이민교씨가 북한에 생존해 있다는 사실은 의외의 인물로부터 알게 됐다. 바로 1995년 10월 부여에서 우리 군경(軍警)과 총격전 끝에 검거된 대남공작원 김동식씨다. 김씨는 당시 일을 이렇게 회고했다.
“당시 우리 지역구 국회의원이 저를 찾아왔었어요. 어디로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나섰죠. 함께 간 곳은 경기도 성남시 인근인 것으로 기억나는데 인적이 드문 외딴집으로 갔죠. 그곳에서 한 남성을 만났는데 그분이 북한에서 내려온 간첩이라고 하더군요. 그분 말이 우리 민교가 키도 크고 잘생기고 착하게 자랐다면서 2000년대 초까지 평양 용성구역에 있는 이남화(以南化) 환경관에서 일을 했다고 말해줬어요.”
이남화 환경관은 간첩들이 남파(南派)되기 전 남한 내의 생활 경험을 위해 만든 일종의 교육시설이다.
“아들에게 피해될까 소식도 전하지 못했다”
김씨는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아들의 생사를 확인했지만 만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아들을 한 번만이라도 만나기 위해 노력했지만, 현재까지 만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던 중 이명박 정부 때 아들에게 소식을 전할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북한에 있는 휴민트(내부 협조자)를 이용해 이민교씨와 또 다른 납북자에게 가족의 소식을 전하려고 했다. 김씨는 편지를 전할 수 있다는 마음에 기뻤지만 이내 포기했다.
“아들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다는 얘기에 아주 기뻤지요. 편지를 쓰려고 보니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편지가 전달되는 도중 북한 당국에 적발된다면 나보다 아들이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차마 편지를 쓸 수가 없더군요.”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던 정부 한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모자(母子) 만남을 성사시키지는 못했지만, 북한 내부 협조자를 통해 소식을 전달해주려 노력했다”면서 “그래서 여러 차례 편지를 써보라고 권했지만 김씨는 아들의 안전 때문에 포기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한다며 한창 들떠 있을 당시 김씨는 이 기회에 아들을 만날 수 있겠다는 작은 희망이 생겼다. 문 대통령에게 절절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다. 김씨가 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내용의 일부다.
〈수학여행을 보낸 이 어미의 죄요, 그래서 북에 납치된 것도 어미의 죄입니다.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에게 북에 납치된 사건을 용서할 테니, 죽기 전에 아들 얼굴 한 번 보게 해달라는 것이 그렇게 죄가 되나요. 나도 이제 나이가 많아서 얼마 살지 못할 것 같아요. 죽기 전에 아들을 한 번만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정부와 문재인 대통령은 하루속히 아들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문재인 정부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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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룡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이사장은 1960~1970년대 납북된 것으로 추정되는 납북어부 31명이 1985년 9월 강원도 원산에서 사상교육을 받으면서 ‘라진혁명전적지’를 답사한 뒤 찍은 단체사진을 입수해 2008년 5월 19일 공개했다. 사진 속 33명 중 2명은 북한 지도원이라고 최 이사장은 설명했다. 사진=최성룡 이사장 |
이 이사장의 아버지는 1949년 충주지방검찰청 검사로 일하다가 전쟁이 일어나기 한 달 전 퇴직했다. 그 후로 변호사로 일했다.
북한은 6·25전쟁 당시 남한에서 활약하던 지식인과 사회 지도층 등을 강제로 북한으로 끌고 가는 끔찍한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 당시 납북된 사람은 약 10만 명으로 추정된다. 졸지에 사랑하는 가족과 생이별하게 된 이들의 소식은 전쟁 발발 7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뚜렷이 알 길이 없다.
그럼에도 북한에 끌려간 가족을 잊을 수 없었던 이들은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를 구성해 지금까지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이사장은 “아버지는 9명의 가족을 모두 데리고 피란 가기 어려워 서울에 남으셨다. 아버지는 북한군을 피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시다 당시 북한을 지지하던 친구의 밀고로 잡히셨다”면서 “처음엔 잡히신 것도 몰랐다. 어느 날 서대문형무소에 아버지와 함께 있었다던 사람이 아버지가 쓴 편지를 건네줘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이사장의 넷째 언니는 마당에서 놀던 중 북한군이 쏜 총탄에 맞아 죽었다. 그리고 형편이 어려워지자 둘째 언니와 오빠 한 명을 당시 개성 외가로 보냈는데 지금껏 소식을 모르고 있다. 큰오빠는 6·25전쟁 당시 경찰관으로 지리산 토벌에 동원됐다. 전쟁 이후 파출소장으로 근무하다 지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얼마 전까지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으로 일했던 이미일 명예이사장의 아버지도 6·25 때 납북됐다. 이미일 명예이사장은 김대중 정권 시절이던 2000년 11월 6·25사변납북자가족회(협의회의 전신)를 만든 이후 지난 17년간 6·25 납북자 진상 규명 활동에 앞장서 왔다. 2010년에는 ‘6·25전쟁납북피해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명예회복에 관한 법률’ 제정을 이끌어냈다.
이 명예이사장은 “북한 정권이 하루빨리 끝나야 한다. 우리 납북자 가족뿐만 아니라 현재 북한에서 고통받고 있는 북한 동포들을 위해서라도 김정은 정권이 막을 내려야 한다”면서 “만약 북한이 무너지고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면 지옥 같은 북한에서 늦게 해방해드려 죄송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고 했다.
“납북자 전담 부서 만들어 국제사회에 적극 알려야”
70년 가까이 정부의 무관심 속에 살아온 납북자 가족들은 윤석열 정부의 관심에 감사할 뿐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관심이 일회성으로 끝날까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가족들은 우리 정부가 일본처럼 납북자 송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한편 국제사회에 알리는 노력도 함께해 주길 바라고 있다. 이성의 이사장은 “정부나 역대 대통령들마다 5·18이나 4·3사건에는 관심을 가지면서도 6·25전쟁 피해자인 납북자들에 대해선 아무 관심이 없다”면서 “많은 사람이 북한에 끌려갔는데 학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고 역사책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우리 납북자 가족들은 역사적인 사실을 외면하지 말고 다시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후대들에 잘 전달해야 한다”면서 “그리고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 이사장은 윤석열 정부의 노력에 대해서 “프놈펜에서 대통령이 납북자들을 언급하고 영부인께서 우리를 찾아와 위로해줘서 너무 감사하고 그동안 가슴에 맺혀 있던 한(恨)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다”며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관심이 여기서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일 명예이사장도 같은 의견이었다.
“김건희 여사를 만나 많은 얘기를 하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납북자 가족들의 애환을 조금이라도 전달한 것 같아요. 이번을 시작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가 더 노력해주길 바랍니다.”
이 명예이사장은 덧붙여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일본처럼 정부부처에 납북자 관련 전담 부서를 만들어 국내와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된다”며 “여러 차례 통일부에다 납북자 전담 부서 문제를 건의하고 있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