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입수

조총련 비밀문건에서 드러난 金正日 친위대 朝總聯의 행적

조총련계 5만여 명, 2012년 대한민국 總選ㆍ大選에 합법적으로 개입

  • 글 : 백승구 월간조선 기자  eaglebs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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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은 영광스러운 ‘金日成민족’을 아로새기는 뜻깊은 해”
⊙ 이념교육사업ㆍ조국통일사업ㆍ조국지원사업 매진
⊙ 조총련 간부 6명,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
⊙ 조총련 회원 1명이 在日동포 다섯 가구 포섭ㆍ경제시찰단 파견해 북한지원ㆍ평양역 앞에
    조총련식당 열어
⊙ 대한민국 國會, 조총련계 入ㆍ出國 허용하는 여권법 개정안 계류 중
⊙ 조총련의 은밀한 선거개입, 현재로서는 별다른 대책 없어
2010년 12월 28일 조총련 중앙상임위원회 의장 서만술이 작성한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중앙상임위원회 제22기 제6차 회의 결정서>.‘총련의 2010년도 사업총화와 2011년도 주력과업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북한 김정일(金正日)의 지령을 받는 조총련(재일본 조선인 총연합회)은 과연 2012년 대한민국 총선(總選)과 대선(大選)에 어떤 식으로 개입할까.
 
  2009년 공직선거법 개정에 따라 재외국민(在外國民)에게 선거권이 부여되면서 한국 국적을 취득한 5만여 명의 조총련계 교민이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뽑는 데 합법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됐다. 현재 재일동포 유권자는 46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정부 당국은 친북(親北)ㆍ종북(從北) 성향인 조총련계 교민의 투표권 행사에 마땅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金正日의 敎示 충실히 따르는 조총련
 
  한때 50만명이 넘는 회원 규모를 자랑하던 조총련은 현재 10만명 이하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월간조선》이 최근 입수한 조총련 비밀문건에 따르면, 조총련은 여전히 김정일(金正日)의 교시(敎示)를 충실히 따르는 북한 정권의 핵심 친위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월간조선》이 입수한 문건은 2010년 12월 28일 조총련 중앙상임위원회 의장 ‘서만술’이 작성한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중앙상임위원회 제22기 제6차 회의 결정서>이다. ‘총련의 2010년도 사업총화와 2011년도 주력과업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문건 분량은 A4용지 32매 분량이다. 이 문건은 조총련 중앙상임위 제22기 6차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2010년도 조총련 사업에 대한 자체 평가와 2011년도 사업계획이 담겨 있다.
 
  문건에 따르면, 조총련은 김정일에게 충성을 다하기 위해 일본 내(內) 교육이념사업과 조국지원사업 등을 꾸준히 벌여왔다. 조총련은 또 김정일의 지령을 받아 조직 재건과 동포 포섭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조총련계 회원 1명이 재일동포 다섯 가구를 포섭하는 등 구체적인 활동계획까지 포함돼 있다. 조총련 산하 상공연합회는 경제시찰단을 조직해 중국 선양, 단둥, 다롄, 옌지, 지린 등을 둘러보고 ‘조국(북한)돕기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조총련은 또 “김정일 장군님의 사상의도를 높이 받들고 조국인민들에게 특색 있는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2010년 12월 평양역 앞에 ‘역전총련식당’이라는 음식점을 열기도 했다.
 
  조총련은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해외 전위조직으로서 대남(對南)공작 거점 역할을 해왔다. 조총련은 중앙기구와 지방본부, 지부, 분회로 구성돼 있다. 중앙기구는 3년마다 열리는 최고의결기관인 전체회의, 전체회의가 열리지 않는 동안의 최고의결기관인 중앙위원회, 제반 사업을 조직 지도하는 중앙상임위원회로 나눠져 있다. 위원회에는 의장, 제1부의장, 책임부의장, 부의장 등이 있다. 현재 의장은 2001년 한덕수(韓德銖)가 죽은 뒤 서만술이 맡고 있다. 서만술을 비롯한 조총련 간부 6명은 지난 2009년 북한의 입법기관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기도 했다.
 
  이 문건은 2010년도 사업 총화와 관련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올해에도 새해벽두에 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의 명의로 된 축전을 보내주시어 총련이 나아갈 길을 명확히 밝혀주시었다”며 아래와 같이 서술하고 있다.
 
  “올해 총련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사상의도를 높이 받들고 주체위업이 전면적으로 완성되어 나가는 현시대의 요구에 맞게 조직 안에 주체의 사상체계를 더욱 확고히 세우고 각급 조직들을 활성화하는 조직사상 건설을 철저히 선행하면서 올해를 ‘민족교육을 강화하는 해’로 정하여 민족교육을 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에 총력을 다하였다.”
 
  조총련이 각급 학교에서 민족교육을 강화했다는 것은 김정일 정권을 선전하기 위해 인전대(引傳帶ㆍtransmission belt) 양성에 힘을 쏟았다는 얘기다.
 
 
  조총련, ‘동포 되찾기 운동’ 등으로 조직 재건 꾀해
 
조총련은 김정일의 일본 내 친위대 역할을 하고 있다. 조총련 핵심인사들이 2005년 도쿄에서 열린 조총련 발족 50주년 기념식장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뒤로 김일성과 김정일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다.
  조총련은 ‘동포 되찾기 운동’을 통해 조직 재건도 꾀하고 있다. 1960년대 초반 50만명에 가까웠던 조총련 회원은 2010년 현재 10만명 이하로 줄어들었다. 김일성ㆍ김정일 우상화 교육, 북한의 공작활동 지원, 대북(對北) 불법송금 등에 실망한 회원들이 조총련을 등졌기 때문이다. 일본 내부에서도 조총련을 ‘범죄집단’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어서 조총련계의 진학, 취업 또한 어렵다.
 
  문건에 나타난 조총련의 조직 재건 사업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에 따라 ‘동포 되찾기 운동’을 애족애국사업의 항구적이며 종합적인 운동으로 벌렸다. ‘동포 되찾기 운동’을 동포들이 주인이 된 범동포운동으로 본격화, 활성화하기 위하여 본부, 지부의 ‘추진위원회’를 정비ㆍ강화하고 그 기능과 역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였다.”
 
  조총련은 회원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화 상영 모임’이다.
 
  “위대한 장군님의 배려에 의하여 조국과 총련이 협동하여 제작한 예술영화 〈동해의 노래〉 상영모임을 연초부터 중앙과 지방 단위에서 진행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령도를 충성으로 받들고 총련을 결성하고, 애족애국운동을 굴함 없이 발전시켜 온 고 한덕수 의장 동지를 비롯한 애국 선대들에 대한 의리와 후대들에 대한 책임을 다할 새로운 결심을 다지었다.”
 
  <동해의 노래>는 재일교포 북송사업 50주년을 기념해 북한과 조총련이 공동제작한 2부작 영화로, 주인공은 한덕수를 비롯한 조총련 1세대들이다. 경북 경산 출신인 한덕수는 1955년 조총련을 결성해 초대 의장을 맡았다. 그는 45년간 의장으로 있으면서 재일교포 북송(北送)ㆍ육영수(陸英修) 여사 저격 등을 비롯해 대남 간첩사건, 일인(日人) 납치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문건에 따르면, 조총련은 조직 강화 차원에서 각종 강연회를 개최하고 ‘조국방문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또 열성회원 1명이 재일교포 다섯 가구를 맡아 적극적인 포섭활동도 벌이고 있다.
 
  “신춘강연회와 정세강연회에 연 17,000명의 동포들을 망라하였으며 총련본부와 지부, 단체들에서는 조국방문사업을 일군들과 동포들의 중요한 교양마당으로 틀어쥐고 대표단, 방문단을 조직함으로써 올해 2,323명의 일군들과 동포들, 새 세대 청년 학생들이 조국을 방문하였다. 일군들과 열성자들은 각계각층의 동포들 속에 들어가 5호 담당 선전원 체계를 가동시키는 데서 경험을 창조하였다.”
 
 
  “남조선 단체와 련대해 남조선의 죄행 규탄”
 
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는 2002년 김정일을 만나 국교정상화에 합의하며‘평양선언’을 발표했다. 그러나 일본은 일본인 납치문제 등을 이유로 김정일 정권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최근까지 조총련은 이른바 ‘3대 애국과업(조국통일사업ㆍ조국지원사업ㆍ대외사업)’에 역점을 두고 활동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문건은 3대 애국과업을 위한 활동상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먼저 조총련이 말하는 ‘조국통일사업’이란 남한의 대북정책 및 통일정책을 ‘반민족적ㆍ반통일적 책동’으로 격하한 뒤 북한체제와 통일방안을 선전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반도 적화(赤化)통일을 위한 활동이다. 문건에 따르면, 조총련은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 아래 조국통일운동을 힘있게 벌렸다”며 이렇게 밝히고 있다.
 
  “6ㆍ15 공동선언 발표 10돐을 맞는 올해(2010년) 남조선과 해외 동포들 속에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인상과 선군 조선의 진모습을 널리 알리며 북과 남, 해외의 련대련합을 더욱 강화하는 데 주동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광기 어린 모략 날조극과 전쟁도발책동으로 북남관계를 파탄시키고 조선반도에 전쟁의 검은 불구름을 몰아온 미국과 남조선괴뢰패당을 철저히 단죄 규탄하기 위한 정치선전사업을 여러 가지 방향으로 진행하였다. 총련은 리명박 패당의 부추킴 밑에 동포사회에 대결을 조성하고 일본의 우익반동세력과 한짝이 되여 반총련 책동에 앞장서는 민단 중앙의 용납 못 할 반민족적 죄행을 폭로규탄하고 지역 단위에서 민단 동포를 비롯한 각계각층 재일동포들과의 단합사업을 벌렸다.”
 
  문건에 언급된 ‘모략날조극’은 천안함 폭침을 가리킨다. 2010년 5월 조총련은 22차 전체대회에서 “한국의 천안함 사건 조사 결과는 날조됐다”고 주장했다. 책임부의장 허종만은 “사건과 조사 결과는 미국의 승인과 비호에 따른 것이고 (이명박 정부가) 선거에서 패배를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벌인 날조극”이라고 했다.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 우리 군의 해상사격훈련에 대해서도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朝鮮新報)는 “연평도 사태가 발생했을 때 남측이 준비하고 있었던 전투항공기에 의한 대북(對北)폭격이 도중에 취소되지 않았더라면 국지전의 틀을 벗어나 전면(全面)전쟁으로 확대될 수도 있었다”며 위협했다.
 
  조총련은 ‘조국지원사업’도 활발히 펼쳤다고 자랑하고 있다. 조국지원사업이란 조총련의 대북지원 사업으로, 모금ㆍ헌금ㆍ물품 보내기ㆍ합영(合營)사업을 말한다. 이른바 ‘애국사업’이다. 조총련은 충성헌금ㆍ선물을 조총련계 상공(商工)인으로부터 갹출하고 조총련계 가정을 방문해 모금활동을 펼쳐왔다. 1994년까지 조총련은 매년 6억~8억 달러를 김정일 정권에 송금했다.
 
  애국사업 중 하나인 ‘합영사업’은 1980년대 이후 김일성이 경제난을 타개하고자 ‘합영사업’을 벌인 것에서 비롯됐다. 당초 외국기업을 유치하려 했지만, 투자유치 실적이 저조하자 목표는 조총련계 기업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인프라 부족, 북한 당국의 시장경제에 대한 무지(無知)와 지나친 간섭으로 1990년대 130여 개였던 합영회사는 현재 20여 개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日北 평양선언 이행 위한 공작활동
 
재일교포 민단 중앙본부 관계자들이 2010년 11월 조총련 중앙본부 앞에서 “조총련은 북한의 만행을 직시하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조총련의 ‘대외사업’이란 일북(日北) 국교정상화 실현과 조총련의 합법적 지위를 보장받기 위한 활동을 말한다. 일본의 강경 대북정책을 유화(宥和)노선으로 전환하기 위해 일본 정치권ㆍ언론계ㆍ사회단체와의 사업을 강화하고, ‘일북 평양선언’을 이행하도록 공작을 펴는 것이다.
 
  일북 평양선언은 2002년 9월 고이즈미 당시 일본 총리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가진 후 발표한 합의문이다. 선언문의 요지는 ‘국교정상화’ 교섭을 재개한다는 것이었다. 수교(修交) 후 일정시간이 지나면 일본이 북한에 무상자금협력, 저(低)금리 장기차관 제공,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조총련은 문건에서 “격동하는 정세 속에서 대외사업에 큰 힘을 돌렸다”며 이렇게 기술했다.
 
  “일본정부가 ‘조일 평양선언’에 따라 국교정상화에 본격적으로 나서도록 하기 위하여 여야 국회의원들을 비롯하여 중앙과 지방에서 각계 유력인사들과 사회단체들과의 사업을 폭넓게 진행하였다. ‘일조 국교정상화 연락회’를 비롯한 중앙과 지방의 친조단체, 연대성조직들이 (북한)제재 조치의 철회와 국교정상화를 촉구하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도록 하였다.”
 
  문건에 따르면, 조총련은 2011년도를 ‘영광스러운 김일성 민족의 한 세기 연륜을 아로새기는 뜻깊은 해’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과 재일 조선인운동 발전에서 결정적 전환을 가져와야 할 중요한 해’ ‘재일 조선인운동의 새로운 전성기의 돌파구를 열어야 할 관건적인 해’로 규정했다.
 
  문건에 나타난 2011년도 조총련 사업의 목표는 “조직 안에 주체의 사상체계와 조직을 강화하고 새로운 전성기를 열기 위해 3대 과업에 힘을 쏟는 것”으로 돼 있다. 2010년도 사업에 이어 “교육을 통한 동포 포섭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고도 했다.
 
  “민족교육의 고수ㆍ발전은 재일 조선인운동과 동포사회의 존속과 관련되는 사활적인 문제로 나서고 있다. 총련 동포들은 물론 민단, 미조직동포, 일본국적을 가진 동포, 국제결혼을 한 동포에 이르기까지 명단을 장악ㆍ정리하여 사업방법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재정적 지원자인 상공인 관리에도 역점을 뒀다. 문건은 “상공회의 역할을 높이며 동포상공인들이 총련의 새로운 전성기를 여는 사업에 앞장서도록 할 것이며 동포상공인 3만명을 회원, 연계자로 망라하여 상공회 활동을 상승궤도 위에 올려 확고한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고 기술했다.
 
 
  연방제 사변, 民團이 조총련에 항복한 사례
 
조총련은 반국가단체인 ‘한통련’과 결탁해 조총련 출신 인사를 민단 단장에 앉히기도 했다. 서만술(오른쪽) 조총련 의장은 2006년 5월 17일 민단 단장을 만나 ‘민단-조총련 공동성명’을 내놓았다. ‘연방제 사변’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재일교포 사회에 충격을 던져줬다.
  조총련은 문건 말미에서 “미제와 리명박 패당이 발광적으로 감행하는 무모한 새 전쟁도발 책동을 규탄하고 6ㆍ15 공동선언과 10ㆍ4 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거족적인 통일운동에 기여할 것”이라며 ‘강성대국 건설’을 재차 강조했다.
 
  문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조총련은 지금도 김정일 정권의 재일(在日)친위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조총련 회원들은 주체사상(主體思想)으로 무장돼 있고, 지속적인 정치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조총련은 조직 규모에서 민단(民團ㆍ재일한국민단)의 10분의 1에 불과하지만 결속력과 영향력 측면에서 결코 민단에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조총련은 민단 내에 잠입한 반국가단체 ‘한통련’과 결탁해 조총련 출신을 민단 단장으로 선출되게 한 경험도 갖고 있다. 2006년 이른바 ‘연방제 사변’이 그것이다. 당시 민단 지도부와 조총련은 ‘5ㆍ17 민단-조총련 공동성명’을 내놓았다. 성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민단과 총련은 회담에서 6ㆍ15 공동선언이 천명한 우리 민족끼리의 이념에 따라 민족적 단결과 통일에로 나가는 민족사의 흐름에 맞게 두 단체 간에 오래 지속되어 온 반목과 대립을 화해와 화합으로 확고하게 전환시킬 것을 서로 확인하였다. … 6ㆍ15 남북공동선언을 실천하기 위한 민족적 운동에 적극 동참해 나가기로 했다.”
 
  6ㆍ15 선언 실천이 의미하는 것은 대남 적화전술인 ‘연방제 통일’을 말한다. ‘연방제 사변’이라 불린 이 사건은 민단이 조총련에 항복을 선언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재일교포 사회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국내 친북ㆍ종북 성향 단체와 연계된 조총련은 공직선거법에 의해 2012년 총선ㆍ대선에서 합법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이에 대한 정부당국의 대책은 과연 무엇일까.
 
  2011년 7월 이경재(李敬在ㆍ한나라당) 국회 정치개혁특위 위원장은 “조총련계 교민 중 5만여 명이 한국 국적을 회복해, 이들이 북한 지령(指令)에 따라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 11월 7일 서울에서 열린 ‘재외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 회의’에 참석한 일본 도쿄 재외선관위원장 김기봉 선관위 국장도 “일본 재외선거의 가장 큰 문제는 친북 성향의 조총련계”라며 “대사관 쪽에 확인한 결과 5만여 명 정도로 파악됐는데 핵심 멤버는 2만여 명이고 나머지는 그들의 가족”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총련계의 입ㆍ출국을 완전히 허용하는 여권법 개정안이 국회 외통위 법안심사소위에 계류돼 있다. 강창일(姜昌一) 민주당 의원이 2010년 7월 대표 발의한 ‘여권법 일부 개정안’은 ‘조선적(籍)’을 유지한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여행증명서’를 의무적으로 발급하고, 체류기간도 현행 3개월에서 3년으로 한다는 내용이다.
 
  조선적이란 재일동포 가운데 대한민국이나 북한 국적을 갖지도, 일본에 귀화하지도 않은 이들에게 부여된 일본 외국인 등록제도상 편의를 위해 분류하는 적(籍)으로, 무국적자를 말한다. 우리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조선적’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조총련계다.
 
  강창일 의원을 비롯한 발의자들은 법안 발의 배경에 대해 “외국 거주 동포에 대하여 체류기간을 제한할 합리적인 이유가 없음에도 여권법에서 여행증명서의 유효기간을 일률적으로 1년 이내로 정하여 평등에 반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법안이 통과된다면 조총련계 인사들은 자유롭게 국내를 드나들면서 각종 정치활동을 벌일 수 있다.
 
  이미 ‘조선적’을 가진 이○○라는 여성이 최근 광화문 사거리에서 “(남한은)미친 등록금의 나라”라며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 여성은 조총련 산하 고급교육기관인 조선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했고 그녀의 남편은 남한의 민노당 당원이다. 그녀의 남편은 이적단체 ‘한총련’에 가담해 북한의 ‘우리민족끼리’에서 내려받은 게시물을 인터넷에 유포 및 게시한 혐의로 복역하기도 했다.
 
 
  조총련의 선거개입 대책 無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북한의 선거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법무부, 외교통상부, 대검찰청과 논의했지만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이미 국적을 회복한 상태에서 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은 위헌(違憲) 소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선거권 제한이 아닌 북한이나 조총련에 의한 불법 선거운동이나 개입을 막기 위해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선거사범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애로사항은 없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조총련에 의한 은밀한 선거개입에 현재로서는 사실상 별다른 대책이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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