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북한 당대표자회와 김정은 후계체계의 공식 출범

김정은, 이미 김정일과 거의 대등한 권력 행사

  • 글 :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글자 크기 조정
  • 스크랩
  • 본문 음성 듣기
  • 글자 크기 조정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 김정남ㆍ장성택에 대한 과대평가, 김정은과 북한 후계체계의 안정성에 대한 과소평가,
    후계자의 권력기반에 대한 무시가 후계체계 관련 誤判 불러
⊙ 2006년 말 후계자 선정, 2007년부터 김정은 혁명사적지 건설, 작년 하반기 김정은의 정책적
    지도체계 구축
⊙ 2010년 신년공동사설 작성 관여, 박남기 계획재정부장 해임 주도, 평양시 10만 가구 주택 건설 지휘,
    지난 5월 김정일 訪中 시 ‘수령대행’ 역할
⊙ 국방위는 군 지휘권 없어, 당중앙군사위 장악이 중요, 군은 이미 ‘김정일-김정은의 군대’로

鄭成長
⊙ 1963년생.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佛낭테르대 박사.
⊙ 경희대·서울대·이대·동국대·북한대학원대학교 강사 역임.
⊙ 저서 : <한국의 국가전략 2020: 대북·통일>(편저), <김정일의 북한, 어디로 가는가?>(공저) 등.
지난 9월 28일 북한 노동당 대표자회 개최 전날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는 김정일(金正日)의 3남 김정은(金正恩)의 이름이 당대표자회에서 언급될 가능성과 김정은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懷疑的)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필자는 <월간조선> 2010년 2월호에 기고한 글을 통해 상세하게 밝힌 것처럼 김정은의 후계체계 구축이 작년 1월 이후 급속도로 진전되었고, 이번 당대표자회가 김정은의 후계자 지위를 대외적(對外的)으로 공식화하기 위해 개최되는 것인 만큼 김정은의 이름이 대회 첫날부터 언급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필자가 예측했던 것보다 조금 더 빠르게, 즉 당대표자회가 개최되기 직전인 9월 28일 새벽에 북한은 김정은에게 전날인 9월 27일 인민군 대장 칭호를 수여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로써 북한은 후계체계의 대외적 공식화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외부세계의 시각을 일거에 일소했다. 그리고 9월 28일 김정은에게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라는 군사 분야의 제2인자 직책을 주고, 이를 다음 날 새벽에 발표함으로써 김정은이 김정일의 명실상부한 후계자임을 국제사회에 명확히 드러냈다.
 
  이번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이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직에 임명된 것과 관련하여 다수의 전문가는 김정은이 이제부터 군부(軍部) 장악에 본격적으로 착수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합동참모본부가 발간하는 계간지 <합참> 제44호에 올해 필자가 게재한 ‘김정은의 군부 장악 실태’에 대한 논문에서 이미 밝힌 바와 같이 김정은의 군부 장악은 작년부터 시작되었고, 북한군은 이미 ‘김정일의 군대’에서 ‘김정일과 김정은의 군대’로 바뀌어 가고 있다.
 

 
  김정은 후계구도, 공고화 단계 진입
 
  이처럼 김정은의 후계체계 구축 진전 실태에 대해 우리 사회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김정은의 권력 장악력에 대해 과소평가하면서 권력승계 과정의 ‘불안정’ 가능성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는 것은 적실성 있는 대북 전략 수립과 관련하여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당대표자회를 통해 북한 당중앙군사위원회는 육해공군을 실질적으로 지휘할 수 있는 최고군사지도기관으로 체제를 새롭게 완비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북한군 총참모장뿐만 아니라 육해공군의 핵심 지휘관들도 들어가 있지 않은 북한 ‘국방위원회’를 여전히 최고군사지도기관으로 간주하는 등 북한 권력체계 실상과 현격하게 괴리된 판단을 하고 있어 유사시 북한의 군사위협에 과연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김정은의 후계체계 구축이 ‘공고화 단계’로 진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축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한국정부가 안이하게 판단하고, 가능성이 희박한 북한 ‘급변사태’에만 대비하고 있다면 한국정부는 시간과 국력(國力)을 허비하고 있는 셈이 된다. 그리고 그 사이에 북한이 군사지도체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여 대남(對南) 공세에 본격적으로 나선다면 한국정부가 적시(適時)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김정남은 ‘庶長子’에 불과
 
김정남은 서장자(庶長子)라는 위치 때문에 당초부터 후계자가 되기 어려웠다.
  그동안 한국에서의 북한 후계 문제 연구에서 나타난 문제점으로는 ‘장남’ 김정남(金正男)에 대한 과대평가, 김정일의 매제 장성택(張成澤)에 대한 과대평가, 김정일의 3남 김정은에 대한 과소평가, 북한 후계체계의 안정성에 대한 과소평가, 후계자의 권력기반에 대한 무시, 북한체제의 성격에 대한 부정확한 평가 등이 있다.
 
  먼저 오랫동안 다수의 전문가와 언론들은 북한에서 왕조시대의 ‘서장자(庶長子)’에 상응하는 위상밖에 가지고 있지 못한 김정남에 대해 ‘장자’이기 때문에 김정일의 후계자로 유력시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도 장자가 왕위를 계승한 경우는 실제로 그리 많지 않다는 점에서 이른바 ‘장자 승계의 원칙’은 순수한 이상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다. 김정남이 김정일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김정일이 세 아들 중 김정남을 총애해야 하고, 김정남을 후계자로 내세우려는 파워 엘리트 그룹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다수의 전문가는 이 같은 점들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고, 오직 김정일의 ‘숨겨진 아들’로 성장해 온 김정남을 ‘장자’이기 때문에 김정일의 후계자로 지명될 가능성이 높다고 무책임하게 주장해 왔다.
 
 
  장성택의 한계
 
국내 언론은 그동안 장성택의 역할을 과대평가해 왔다.
  김정일의 매제 장성택에 대해서도 그가 김정일 사후 이른바 ‘섭정왕(攝政王)’이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객관적 조건에 대해서는 엄밀히 검토하지 않은 채 그의 ‘정치적 자질’과 ‘능력’에만 주목하여 다수의 전문가와 언론은 그동안 그를 북한의 ‘명실상부한 2인자’로 묘사해 왔다. 그리고 마치 김정일 이후 장성택의 결단에 의해 김정은의 미래가 결정될 수 있을 것처럼 과대평가해 왔다.
 
  그러나 장성택이 ‘섭정왕’이나 차기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군부에 대해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김정일은 장성택이 ‘딴마음’을 먹는 것을 우려하여 2004년 장성택의 직무정지 이후 그의 큰형 장성우를 평양 방어를 책임진 3군단장직에서 중앙당 민방위부장으로 옮기고 다시 이 직책에서도 해임했다.
 
  장성택은 2006년 초 정치에 복귀한 후 2009년 4월 국방위원에 선출되고, 2010년 6월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승진하였으며, 지난 9월 당대표자회에서는 당중앙군사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런데 장성택이 이들 직책에 임명된 것은 어디까지나 군사조직인 국가안전보위부 등 공안기관을 당적으로 지도하는 중앙당 행정부장 자격으로이지, 군대에 대한 지휘 권한을 주는 인사는 아니었다. 이는 지난 9월 27일 장성택의 부인 김경희가 김정은과 함께 대장의 군사칭호를 받을 때 장성택은 어떠한 군사칭호도 받지 못한 데서 명확하게 확인된다.
 
  다수의 전문가는 이번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의 이름이 공식적으로 언급되지 않을 수 있다거나 당대표자회를 계기로 김정은의 후계체계 구축은 ‘준비 단계’에서 비로소 ‘구축 단계’로 넘어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리고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이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라는 군사 부문의 제2인자 직책에 임명된 후에는 여전히 “후계자의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데다 주민 지지기반이 약해 다소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김정은의 권력 장악력에 대해 과소평가하고 있다.
 
  김정은이 현재 만 27세이기 때문에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김정은의 리더 자질과 그를 뒷받침하는 엘리트 그룹의 존재 유무, 북한의 봉건적 정치문화, 그의 군 장악 정도 등 다른 중요한 변수(變數)들을 다 무시하고 오직 나이와 경험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사회주의적 군주제’
 
  김정은의 ‘나이’와 ‘경험’에만 집착하고 다른 변수들을 전혀 보지 못하는 좁은 시각으로는 북한군이 이미 작년부터 ‘김정일의 군대’에서 ‘김정일과 김정은의 군대’로 변화해 온 사실을 직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김정은의 후계체계 구축이 ‘대외적 공식화 단계’로까지 진전된 현재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김정은 후계체계의 미래에 대해서도 현실성 있는 전망을 제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남한과 같은 자유민주주의체제에서는 북한에서와 같이 ‘절대적 지위’를 누리고 ‘결정적 역할’을 하는 ‘후계자’라는 지위가 존재하지 않으며, 특정 정치인이 아무리 유능하다고 해도 27세의 나이에 제2인자의 지위를 차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북한은 일반적인 사회주의체제와도 다른 ‘사회주의적 군주제’ 또는 ‘군주제적 사회주의체제’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김정일의 후계자는 그의 아들 가운데서 나올 수밖에 없고, 후계자의 나이는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자유민주주의체제에서 27세라면 ‘어린’ 나이라고 할 수 있지만, 군주제 국가에서 27세의 나이라면 ‘왕세자’에 임명되거나 왕위를 계승하는 데 결코 어린 나이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광복 직후 북한체제는 레닌주의적 집단지도체제를 부정하고 최고지도자(수령)를 절대시하는 스탈린식 체제로 출발하였다. 그런데 1974년 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로 결정되면서 군주제 국가에서처럼 수령(김일성)과 후계자(김정일)의 생일이 ‘최대의 명절’로 기념되고, 모든 파워 엘리트에게 김일성과 김정일의 ‘충신과 효자’가 될 것을 강요하는 ‘사회주의적 군주제’ 체제로 변화되었다.
 
  게다가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부 등 공안기관들이 북한의 파워 엘리트들과 주민들을 24시간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황장엽씨는 <월간조선> 2003년 3월호와의 인터뷰에서 3대 권력세습에 대해 북한 내부에서 반발이 없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반발을 할 수 없는 체제요. 김정일이 빨리 죽는다면 모를까”라고 답한 바 있다.
 
 
  김정철, 능력 보여주지 못해 탈락
 
김정철은 능력부족과 2006년 독일여행이 일본 후지TV에 노출된 것 때문에 후계자 경쟁에서 탈락했다.
  김정일은 자신을 닮아 적극적인 성격의 김정은을 세 아들 중 가장 총애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정일의 요리사로 11년간 일했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는 북한에 있었을 때 한번은 식사 후 두 아들이 농구장으로 나가자 김정일은 간부들에게 “정철은 마음이 여려서 안 된다. 정은은 나하고 닮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들들을 군인처럼 씩씩하게 키우고자 어려서부터 군복을 입혔던 김정일이 김정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면 그의 마음이 대담한 성격의 3남 김정은에게 더 기운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후계자로 최종 결정된 것은 김정은이지만, 2000년대 상반기까지만 해도 차남 김정철이 후계자로 결정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높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3년 12월 말경, 김정일은 당중앙위원회와 국방위원회 책임일군들 앞에서 “내년(2004년)은 내가 김일성(金日成) 주석의 위업을 이은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지나간 10년은 우리에게 간고하였지만 우리의 선군(先軍) 영도가 천만 번 지당한지 알게 해 주었다”고 말하면서 김정철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고 한다.
 
  그는 그 자리에서 “우리 군대와 인민이 백전백승의 력사와 전통을 이어 위대한 김일성 동지의 사상과 위업을 끝없이 빛내어 나가야 할 신성한 임무가 나서고 있다. 이를 위하여 나처럼 김정철을 잘 받들어 보좌할 것”을 지시하였다.
 
  당시 김정철은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간부부 과장으로 막 승진하여 중앙당 내부에서 사업하고 있었다. 이는 김정일이 내심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세우고 싶지만 나이가 위인 김정철에 대한 어느 정도 배려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그 후 김정철이 김정일의 뒤를 이을 정치적 능력을 보여주지 못함에 따라 김정일의 마음이 3남 김정은에게로 기운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국의 정보기관들은 이미 2006년 초부터 “대북 소식통의 정보를 감안할 때 김 위원장에게 가장 많은 총애를 받고 있고 자질과 리더십에서 우수한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목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김정일이 김정은을 총애하고 있는 상황에서 2006년 6월 3~7일 김정철이 프랑크푸르트 등 4개 도시에서 개최된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 독일을 방문한 것이 일본 후지TV를 통해 보도됨으로써 당 지도부에서 김정철에 대한 이미지가 악화되었다. 주민들은 모두 경제난으로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데 지도자의 아들이 콘서트에 참석하기 위해 해외를 돌아다닌다는 것에 대해 지도부 내에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된 것이다.
 
 
  “김정은이 GPS 수신기 좌표 이용해 작전지도 작성”
 
지난 10월 10일 당 창건 기념일 열병식장에서 김정은이 박수를 치고 있다.
  김정은이 친형 김정철 대신 후계자로 내정된 시점은 2006년 말경인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스위스 베른에서 2001년에 귀국한 후 2002년부터 2006년 12월까지 군 간부 양성기관인 김일성군사종합대학에서 군사학을 공부했다. 북한 군대에서 2009년 5~6월경 작성되어 배포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외비 문건인 <존경하는 김정은 대장동지의 위대성 교양자료>(이하 <위대성 교양자료>로 약칭)는 “의미 깊은 2006년 12월 24일, 존경하는 김정은 대장 동지는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졸업증서와 기장이 기여된 자리에서 주체의 선군혁명위업을 빛나게 이으실 것을 바라시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북한이 김정은의 졸업식 날과 ‘주체의 선군혁명위업 계승’ 의지를 연결시키고 있는 것은 이때가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내정되는 결정적인 순간이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위대성 교양자료>는 2006년 12월 24일 인민군 지휘성원 모두가 김정은이 북한에서 최초로 인공위성 자료와 GPS 수신기 좌표를 이용해 만든 작전지도를 보고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군사전략 사상이 빛나게 구현된 기상천외하고 천변만화하는 만점 계획에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 문건은 또한 김정일도 이 작전지도를 보고 “작전계획이 아주 창조적이고 착상이 기발하여 1~2번 감복한 것이 아니라고 의미 있게 말씀하셨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북한의 일반 대학생이 인공위성 자료와 GPS 수신기 좌표를 가지고 작전지도를 만든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김정은이 이처럼 첨단정보를 가지고 작전지도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김정일의 아들로서 특권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김정은이 이 같은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그가 김정일에게 인정받기 위해 군 간부들과 동료들을 동원할 수 있는 정치적 수완을 가지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2007년 김정은 사적지 건설 시작
 
이번 당대표자회에서 당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발탁된 리영호 총참모장.
  김정은이 태어난 평북 창성의 고영희 관저는 김정은의 ‘혁명역사’를 칭송하기 위한 사적지로 지정되어 2007년 3월부터 2009년 1월까지 2년여에 걸쳐 극비리에 확장 개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정일의 백두산 밀영 집과 같이 주민들에게 나중에 ‘혁명의 성지’로 교양하기 위한 김정은 고향집 사적지는 김정일의 명령으로 당중앙위원회 역사연구소의 지도하에 북한군 제1여단 연대의 특별건설대에 의해 완공되었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은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세우기 위한 사업이 적어도 2007년 3월 이전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김정은의 북한사회 전반에 대한 정책적 지도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치, 경제, 문화, 군사 분야 등의 40~50대 최고 실력자들로 구성된 실무팀이 활발히 활동하기 시작한 시점은 2009년 초부터지만, 이 실무팀이 구성된 것은 2007년이다. 이 같은 사실도 2006년 말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내정되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고영희 생존 시에 김정일의 군부대 시찰에 자주 동행했던 김정은은 2004년 고영희 사망 후 한동안 동행을 중단했다가 2007년부터는 다시 김정일의 공식 활동에 동행하기 시작했다. 김정은은 김정일의 후계자로 내정된 상태에서 후계수업을 받다가 2008년 여름 김정일이 뇌혈관계 이상으로 쓰러진 후 서서히 회복되면서 2009년 1월 8일 자신의 생일 날 후계자로 결정되었다.
 
  <도표 3>에 간략하게 정리하여 소개한 바와 같이 2009년 상반기에 북한 지도부에서는 김정은의 정치적 지도체계가 기본적으로 구축되었다. 이때부터 김정은은 군 총정치국을 통해 군대를 장악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북한군은 서서히 ‘김정일의 군대’에서 ‘김정일과 김정은의 군대’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김정은의 군부 장악과 관련하여 초기에는 김정각 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고, 리영호 총참모장도 곧 적극적으로 가세하였다. 그 결과 리영호 총참모장은 김정일과 김정은의 두터운 신임을 받게 되어 지난 9월의 당대표자회에서 군 원로인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을 제치고 파격적으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직에 임명되었다.
 

 
  김정일과 거의 대등한 파워 구축
 
  2009년 하반기에 김정은의 정책적 지도체계도 구축되어 핵문제와 대미, 대남 정책 등 김정일이 직접 챙겨야 할 핵심적인 사안들을 제외하고는 김정은이 장성택 중앙당 행정부장과 리제강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과 합의하여 군대와 당의 중요 정책을 결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김정은 주도의 개혁개방 전략 수립 팀도 구성되어 김정은의 정책 결정을 지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군대와 공안기관들에서부터 김정은에 대한 직보(直報) 체계도 수립되기 시작하여 김정은은 이들 기관을 서서히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2010년에 들어와서는 김정은이 신년공동사설 작성에도 관여하여 김일성 사망 이후 처음으로 인민경제 향상을 한 해의 핵심 목표로 제시하는 신년공동사설이 나오게 되었다. 작년에 있었던 화폐개혁의 부작용으로 민심이 이반되자 김정은은 박남기 중앙당 계획재정부장의 해임을 주도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평양시 10만 가구 주택 건설도 김정은이 지휘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5월 김정일의 방중(訪中) 때에는 김정은이 ‘수령 대행’ 역할을 할 정도였으며, 현재 외교 부문을 제외하고는 김정일의 파워와 거의 대등해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또한 9월의 당대표자회 준비 작업도 지휘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대표자회에서 군사 부문의 제2인자 자리인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직에 임명됨으로써 김정일의 유고시 안정적으로 권력을 승계할 수 있는 물리적, 제도적 기반까지 확보하게 되었다.
 

 
  당중앙군사위 역할 강화
 
  지난 9월의 당대표자회를 통해 북한 노동당의 당중앙위원회 정치국과 비서국 그리고 당중앙군사위원회에 대폭 충원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인물들이 대거 진출하는 등 주목할 만한 파워 엘리트 변동이 있었다. 그중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할 것은 당중앙군사위원회의 위상과 역할 강화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당대표자회에서 당중앙군사위원회에 모두 19명이 지명되어, 외형상으로는 1980년 제6차 당대회 때 구성된 인원과 같은 규모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제6차 당대회 때와 가장 큰 차이점은 부위원장 직제가 도입되어 김정은이 부위원장에 임명되었다는 사실이다. 리영호 군 총참모장도 부위원장에 임명되었지만, 그는 김정은의 군부 장악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김정은이 사실상 ‘제1부위원장’에 임명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당중앙군사위원회에는 군 총참모장을 비롯하여 총참모부 작전국장, 해군사령관, 공군사령관 등 군부 핵심 지휘관들이 포함되어 있어 그렇지 않은 국방위원회보다 군대의 지휘에 적절하게 인적 구성이 이루어졌다.
 

  국방위원회에서 제1부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조명록, 부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오극렬과 리용무, 위원직을 맡고 있는 주상성 인민보안부장은 당중앙군사위원에 포함되지도 못했다. 그리고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김영춘 인민무력부장과 장성택 행정부장이 당중앙군사위원회에서는 단지 위원직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 같은 국방위원회의 ‘수모’는 소련과 중국에서처럼 사회주의체제에서 군대는 곧 ‘당의 군대’이기 때문에 ‘국가기구’인 국방위원회는 군대의 지휘와 관련해서는 실권이 없는 기구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회주의체제에서 국방위원회와 같은 국가 군사지도기관은 전시(戰時)에 주민 동원과 내각경제를 군수경제로 전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데, 중앙당 군수공업부장을 맡았던 전병호 국방위원이 이번에 내각 정치국 국장, 당 책임비서에 임명된 것은 바로 전시에 내각에 대한 국방위원회의 통제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국방위는 당중앙군사위의 하위 존재
 
  이번 당대표자회에서 당중앙군사위원회가 국방위원회보다 실질적으로 북한군을 지휘할 수 있는 육해공군의 핵심 지휘관들로 구성됨에 따라 국방위원회가 북한군을 지휘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기존 <국방백서>의 북한 군사지휘기구도는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필자가 올해 1월에 발간된 <합참> 제42호에 기고한 글을 통해 지적한 바와 같이 북한 국방위원회는 과거 소련 국방위원회와 마찬가지로 주로 전시 주민동원과 민간경제의 군수용 전환 임무 등을 수행하고 있고, 중국 중앙군사위원회와 마찬가지로 ‘국가기구’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군사작전이나 군 지휘와 관련해서는 지시나 명령을 하달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 국방위원회의 군사 및 안보 관련 명령을 분석해 보면 국방위원회 직속 기관인 인민무력부의 개편, 국가안전보위부의 비상경계태세 발령, 민방위 및 군 복무와 관련한 명령들만이 하달되고 있다. 반면 당중앙군사위원회는 <전시사업세칙> 제정 등 전쟁준비와 군사훈련, 부대관리 등과 관련한 중요한 결정을 하달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실증적인 분석을 통해서도 북한 당중앙군사위원회가 군대를 직접 지휘하고 있는 것이 입증되고 있고, 이번 당중앙군사위원회 인사 개편을 통해서도 그 같은 기능이 확인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국방부가 대외용 문건인 북한 헌법의 조문에 현혹되어 여전히 국방위원회를 최고군사지도기관으로 내세운다면 이는 적실성 있는 대북 군사전략 수립을 어렵게 할 것임이 분명하다.
 
  올해 통일부에서 발간한 <북한 기관·단체별 인명집>, 203쪽을 보면 당·국가체제인 북한에서 ‘국가기구’인 국방위원회가 ‘당중앙위원회 직속기관’인 군 총정치국을 지도하는 것처럼 북한에서는 있을 수 없는 지도체계 그림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군 총참모부가 인민무력부의 지휘를 받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당중앙군사위원회에서 리영호 군 총참모장이 김영춘 인민무력부장보다 높은 지위에 있으므로 이 같은 부적절한 그림도 수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한이 이번 당대표자회를 통해 군 지휘체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조치를 취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정부 발간 공식 문서를 통해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도 못한다면 그 피해는 결국 대한민국 국민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다. 정부의 자성과 문제점의 신속한 수정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 스크랩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