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거 백지화된 세운상가,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부활할 수 있다”
⊙ 이공계 창업 돕는 활동 같이 하자는 제의 거절한 안철수
⊙ “언젠가 평양에서 창업 캠프 열고 싶다”
⊙ 이공계 창업 돕는 활동 같이 하자는 제의 거절한 안철수
⊙ “언젠가 평양에서 창업 캠프 열고 싶다”
1986년 1월 28일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발사된 챌린저호는 발사 73초 만에 공중에서 폭발했다. 발사부터 폭발까지 전 과정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불꽃과 함께 사라진 챌린저호와 승무원 7명의 마지막 모습은 현실이 아닌 흥행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련히 가슴 속 깊은 곳에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다.
지난 4월 19일은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이 무사히 지구로 돌아온 지 딱 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지난 2008년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 배출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두면서 한국 우주산업 발전에 국민들의 관심이 본격적으로 쏠렸다. 당시 우주인으로 선정된 인물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이소연씨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소속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고, 현재는 미국으로 유학을 가 있다.
우주인으로 선발됐지만 마지막 순간에 우주인 후보로 교체된 고산(高山)씨의 근황이 궁금했다. 유학을 갔다가 비영리 법인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를 만나보기로 했다.
고산씨를 만나러 가는 길에 문득 챌린저호를 떠올렸다. 그는 지난 2007년 한국 최초의 우주인으로 선발됐지만, 훈련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이듬해 3월 후보였던 이소연씨와 교체됐다. 우주선 탑승을 불과 한 달 앞둔 시점이었다.
교체 이유를 두고 여러 가지 설이 나돌았다. 러시아 정보기관인 KGB 개입설까지 거론됐다. ‘외부 유출이 금지된 교재를 소지하고 있어서’라는 것이 후에 나온 공식 설명이다. 소유즈호는 지금으로부터 딱 5년 전인 지난 2008년 4월 8일, 한국 최초의 우주인을 싣고 지구를 떠나 4월 19일 돌아왔다.
한국의 실리콘밸리 잠재력 갖춘 세운상가
아직도 고산씨의 이름 앞에는 ‘미완의 우주인’이라는 수식이 붙는다. 그의 선명한 이목구비와 독특한 이름 때문일까, 아니면 카운트다운 직전 불발된 그의 우주행에 대한 동정 때문일까, 아직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우주인 프로젝트가 끝나고 5년이 흘렀다. 그동안 그의 행보는 폭이 넓었다. 유리 가가린 우주인 훈련센터에서 돌아온 후, 그는 2년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일했다. 2010년에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로 유학을 떠났다가 1년 후 귀국했다.
지난 2011년에는 타이드 인스티튜트(TIDE Institute·이하 타이드)를 만들었다. 청년들의 창업을 돕는 비영리 단체다. 기술(Technology), 상상력(Imagination), 디자인(Design),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을 뜻하는 영단어의 앞글자를 조합해 이름을 지었다.
서울 종로 세운상가 5층에 있는 타이드 사무실은 분주한 분위기였다. 곳곳에 각종 기계가 놓여 있는 사무실에서 예닐곱 명의 젊은 스태프들이 캐주얼한 복장으로 각자 자유롭게 작업을 하고 있었다. 법인의 사무실이라기보다는 공과대학의 실습실 같기도 하고, 발명동아리 모임을 연상하게도 하는 모습이었다. 구석에 놓인 스피커에서 쉬지 않고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과 곳곳에서 들리는 기계음 소리를 배경으로 고산씨와 마주 앉았다.
고산씨는 이 사무실을 팹랩(Fab lab)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팹랩은 각종 장비를 이용해 시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공간을 뜻한다. 제조업 분야에서 창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처음 부딪히는 난관이 바로 시제품 제작이다. 팹랩은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시제품을 제작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다. 왜 제조업인지 고씨에게 물었다.
“요즘 창업 지원 단체들이 꽤 있죠. 그런데 대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이나 웹비즈니스 등 주로 IT 분야를 지원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제조업 창업이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제조업이 경제 근간이잖아요. 그 위에 서비스업이 얹히는 것이죠. 그래서 타이드는 제조업 창업의 첫 번째 문턱인 시제품 제작이 가능하도록 워크숍을 합니다. 4월 1일에 팹랩도 문을 열었고요.”
—세운상가에 자리를 잡은 것도 그 때문인가요?
“외국에서 아티스트나 창업하는 사람들이 이 부근에 오면 정말 놀라요. ‘어떻게 이런 공간이 있을 수 있느냐’ 하면서요. 외국에서는 당장 부품을 사려 해도 눈으로 확인할 수 없어요. 인터넷으로 주문을 해야만 가능하죠. 정확한 명칭이나 사이즈를 모르면 주문조차 할 수 없어요. 그런데 여기는 상가로 내려가서 이러이러한 것을 사고 싶다고 하면, 이런 게 더 좋다고 추천까지 해주는 정도예요. 이런 곳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요즘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디지털 제조, 피지컬 컴퓨터 이런 것들이 제조업에 큰 영향을 미칠 거예요. 세운상가가 다시 한 번 제조업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봐요.”
—단체 운영비는 어떻게 충당하나요?
“타이드 자체가 지정기부금단체예요. 후원을 받고 있고요. 또 중소기업진흥청과 각 창업선도대학에서 프로젝트를 아웃소싱 받아서 일하고 있어요. 팹랩도 소정의 이용료를 받고 운영할 예정이고요.”
세운상가와 인근 지역은 지난 2006년 세운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됐다. 재정비는 차일피일 미뤄졌고 지난 2월 서울시는 세운상가를 철거하는 대신 리모델링해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고씨는 세운상가 5층에 타이드 말고도 또 다른 벤처업체가 사무실을 냈다고 귀띔했다.
—우주인 도전 당시 서울대에 두 번 입학한 이력도 화제가 됐지요?
“원래는 1995년에 원자핵공학과에 들어갔다가, 96년에 자연대학으로 다시 입학했어요. 공대보다 자연대가 더 학문적인 느낌이 있어서요.”
—결국 지금은 공과 쪽 일을 하고 있네요.
“그러게요. 고등학교는 외고를 나왔어요. 인생이 지그재그인 셈인데 재밌어요.”
장기 계획 없던 우주인 프로젝트
![]() |
| 2006년 12월 러시아 가가린우주센터에서 무중력 테스트를 하기 위해 준비 중인 이소연과 고산. |
—‘미완의 우주인’이라는 수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아마 그 말은 죽을 때까지 따라다닐 것 같아요. 하지만 괜찮아요. 왜냐하면 한순간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게 아니라 1년 동안 여러 가지가 쌓여 있던 게 수면위로 드러난 거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이제 우주에 가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민간에서 우주선도 만들었고, 위성을 발사해 주는 회사도 있어요. 페이팔(Paypal) 창업자가 만든 스페이스엑스(SpaceX)가 그런 회사지요. 저는 러시아 우주선 못 타서 아쉬워한다거나 하지 않아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하지요.”
—우주인 탈락 직후에는 아쉬웠을 것 같은데요.
“그런 건 있었어요. 우주인 훈련을 받으면서, 우주에 갔다오면 어떻게 사회에 환원할까 계속 머리에 그려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뻥 공중에 뜬 상태가 됐잖아요. 우주인 이전에도 계속 쌓아온 게 있었고, 훈련하면서 새롭게 생각했던 방향이 있었는데, 이제는 또다시 완전히 다른 걸 쌓아가야 하는 상태가 된 거예요.”
—가가린센터에 있던 13개월 동안 고산씨 인생의 방향이 많이 바뀐 거군요.
“사람이 태어나서 꼭 한번만 살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저는 한번 태어나서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가가린센터에 있을 때 다시 태어난 거죠. 저는 원래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었어요. 인지과학을 전공하면서,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식이라는 게 뭔지, 고민하는 사람이었어요. 우주인 프로젝트에 지원하지 않았다면 아마 공부를 계속했을 거예요. 운동 좋아하니까 산에 가서 암벽등반도 하고, 나름 굉장히 행복하게 살았을 거예요. 그때 이후로 인생이 180도 바뀌었어요. 이제는 광장에 나와 있잖아요.”
고씨는 러시아에서 귀국한 후 강연을 다녔다고 한다. 주로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한 강연이었지만, 돌아보면 스스로를 치유하는 강연이었다고 한다.
“강연을 많이 다녔어요. 보육원도 가고, 소년원도 가서 다른 사람한테 희망을 주는 이야기를 했지요. 그런데 사실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뇌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우주인 교체된 게 굉장히 안타깝다고 느끼잖아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저는 여전히 가진 게 많잖아요. 우주인 훈련도 받아봤고 사회적인 인지도도 생겼고 러시아어도 할 수 있게 됐고. 강연에서 여러 가지 얘기를 하는데 그게 결국 나한테 유용한 말들이더라고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제 갈 길을 찾아나간 거 같아요.”
—가가린센터에서 돌아온 후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에서 일했는데, 우주인 훈련에서 배운 걸 우리나라 정책이나 연구에 반영할 수 있었나요?
“제가 배운 걸 반영하기 위해서 항우연 정책기획부로 갔는데, 제가 정책에 대해서 뭘 알아요. 그래서 더 배우려고 하버드 케네디스쿨에 간 거죠.”
—항우연에서 정책보다는 우주인 훈련에서 배운 실무적인 부분을 연구하고 반영해야 했던 게 아닌가요?
“참 안타까워요. 제 생각에도 그런 걸 했어야 했는데 체계적으로 준비되어 있지 않더라고요. 우주인을 왜 선발하는지, 나로호를 왜 쏘는지 그런 게 체계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어요. 과학기술정책은 긴 플랜이 짜여 있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미흡하더라고요. 관련된 종사자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국력이 거기까지 못 올라간 거예요. 그런 부분이 안타까워서 정책 분야 공부를 하고 싶었던 거죠.”
고씨는 우주인 프로젝트에 지원할 당시 삼성종합기술원에서 인공지능(AI) 분야를 연구하고 있었다. 우주인 선발 후 항우연 측에서는 고씨에게 휴직을 권유했다고 한다. 고씨는 ‘국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건데 사기업에 소속되어 있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다’며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다고 한다. 항우연 측은 ‘조직 내에 우주인 티오(자리)가 없어서 안 된다’고 답했다. 다행히 후에 자리를 만들어줘 항우연 연구원 신분으로 가가린센터에서 훈련을 받을 수 있었다.
—‘진짜 우주인’ 이소연씨와 연락하며 지내나요?
“잘 안 해요. 별로 안 친해요. 경쟁관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 저와 이소연씨는 사람의 종류가 정말 달라요. 1년이라는 기간 동안 매일 수업도 같이 들으면서 함께 지냈는데… 안타까운 부분이에요. 우주인 선발 당시에도 팀워크가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팀을 구성하면 좋겠다고 했거든요. 팀을 다르게 구성했다면 훨씬 더 많은 걸 얻어올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새누리당 비례대표 제의 거절
![]() |
| 미 하버드대에서 돌아온 직후인 2011년 7월, 12개국에서 모인 해외교포 대학생과 국내 대학 이공계 학생 120명을 대상으로 강연 중인 고산. |
—비례대표 영입 제의는 왜 거절했나요.
“제가 가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제가 정치인이 돼서 뭘 하겠어요.”
—과학기술계를 위해 적어도 상징적인 존재로 일정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쉬운 게 아닌 것 같아요. 정치인의 정치란 당과 당 사이의 정치가 아니라 당내의 정치가 80% 이상이라는 얘기도 있잖아요. 국회에서 다른 데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보다 직접 현장에서 만들어내는 게 낫지 않을까요?”
—현장에서 일하다 아 이게 아닌가, 싶었던 적은 없었나요?
“일선에서 진행하다 일이 잘 안 될 때는 그런 생각을 했죠. 아 이건 이렇게 푸는 게 아닌가. 결국 내린 결론은 이렇게 가는 게 맞다는 거예요.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때 막혔던 부분들도 시간을 많이 안 들여서 그렇지, 1년, 2년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나니까 해결되더라고요. 여러 군데에서 저희가 하는 활동에 대해 알아봐 주고, 협력사업도 많이 생기고 점점 더 잘 돼요. 전문가가 되려면 그만큼 집어넣어야 해요.”
—앞으로도 정치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을 건가요?
“정치는 현실 속에서 이미 참여하고 있는데, 정치를 하기 위해 뭘 하겠다, 이런 건 아닌 것 같아요. 똑똑한 사람들이 저 위에 가서 국가의 틀을 잡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해요. 어떤 게 좋은 정책인지, 어떤 방향으로 가야 될지 다 나와 있어요.
이제는 똑똑한 사람들이 바닥으로 내려와서 현장에서 혁신을 일으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플레이어(행위자)가 되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제가 만약 국회의원이고, 창업 진흥에 뜻이 있다면 저희 같은 기업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아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정치를 한다고요?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그냥 지금 바꾸면 돼요.”
안철수에게 자문 구하러 가기도
![]() |
| 타이드 인스티튜트는 지난 4월 1일 서울 종로 세운상가에 있는 사무실에 팹랩(Fab lab)을 열었다. |
“사실 타이드를 시작하기 전에 안철수 교수를 찾아갔어요. 카이스트에 계실 때였죠. 그때 안철수 교수가 멘토의 이미지로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후였거든요. ‘아, 이공계 계통 창업을 돕는 일을 이런 사람이 함께하면 파급력이 엄청나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자문도 받을 겸 찾아가서 ‘이공계 창업을 돕는 일을 하려 한다. 도와주지 않겠느냐’ 했죠. 그런데 성사가 안 됐어요.”
—왜 안 됐나요?
“모르지요. 안철수 교수 본인의 생각이니까요. 그냥 유야무야됐습니다. 안타까워요. 지금은 재단을 만들어서 여러 일을 한다고 하잖아요. 실제 실무단계에 안철수 교수가 관여하면 좋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잖아요. 정치인이 됐으니까 다 정치적으로 해석이 될 거 아닙니까. 그전이었으면 모든 게 호의로 받아들여졌을 텐데.”
—요즘도 길을 가면 사람들이 알아보나요?
“네. 신기하죠. 저를 알아보고 말을 거시는 분들은 주로 ‘그때 응원했었다’ 같은 말씀을 많이 하세요. 감사하죠. 힘이 많이 돼요. 저를 알아보셨다는 걸 전혀 티를 안 내고 있다가 갑자기 옆 사람한테 ‘여기 그때 우주인 했던 분 오셨어’라는 등의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럴 때 정말 깜짝 놀라죠.”
—고산씨의 인생 어느 특정 시기를 대중이 다 알고 있는 거잖아요. 영향을 안 받을 수 없겠네요.
“그게 제가 이런 일 하기에 적당한 사람인 이유예요. 이런 창업 지원 활동을 그런 배경 없이 했으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어쨌거나 유명세를 잘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저한테 주어진 숙명이겠지요. 이런 활동을 통해 낭비하지 않고 활용하고 있어서 참 좋아요.”
인터뷰 중간중간 그는 말을 멈추고 직원들에게 ‘저 기계는 밖에 내놔도 될 것 같다’, ‘책상 위치를 너무 가까이 옮겨놓은 것 같다’는 등의 말을 했다. 이루고 싶은 일이 참 많은 사람처럼 보였다.
—꿈이 뭔가요.
“일단 타이드를 잘 정착시키고 싶고, 개인적으로 창업도 하고 싶어요. 그것 외에 꿈이 또 있는데요, 서울과 런던 실리콘밸리에서 열던 타이드 스타트업 스프링보드 행사를 북한 평양에서 열고 싶어요. 밖에 나가 보니 한국 젊은이들처럼 북한을 모르는 젊은이들도 없는 것 같더라고요. 미국 MIT에서는 평양의 공과대학과 교류도 하고 교재도 기증하고 그러잖아요. 언젠가 남한과 북한 청년이 함께 아이디어도 나누고 창업도 고민하는 캠프를 여는 게 꿈입니다. 통일에도 기여할 수 있겠죠.”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오는데 ‘반전(反轉)’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고산씨의 첫 번째 반전은 키였다. 기자는 우주인 시절 영상이나 사진으로 접한 고산씨의 키가 매우 컸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우주복을 입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사진 속 이미지, 혹은 그의 이름에서 풍기는 느낌 때문이었을까. 실제 만나보니 그의 키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170센티미터였다.
두 번째 반전은 고산씨의 삶에 대한 태도였다. 유명인에 대한 세간의 관심에는 약간의 악의와 동정이 섞여 있는 법이다.
기자 역시 주로 그의 ‘좌절’만을 기억하고 있었다. 실제 만나보니 그는 지난 5년간 좌절의 대극(對極)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만의 연금술로 세상의 관심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꿔 그 힘으로 미래를 향해 가고 있었다.
위에서 바닥으로 내려가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토양을 가꾸고 있는 고산. 세상이 그에게 탑승을 허락하지 않은 비행선을 그는 지금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날아오를 그의 비행선이 어디로 향할지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