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은 있어도 사실에 기초한 진정한 보도는 없어.
정확한 보도, 균형 잡힌 보도를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한국 언론의 미래는 없다.”
“편집국장 선거제도나 임명동의 제도는 간부들의 지휘 감독권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킨 요인으로 작용했지요. 그로 인해 기사의 게이트키핑 기능을 하는 데스크작업이 소홀해져 함량이 부족한 기사, 요건을 갖추지 못한 기사, 사실을 왜곡한 기사, 의견을 내세운 부실한 기사들이 충분한 내부적 체크를 받지 않고 그대로 보도되었습니다.”
南時旭
⊙ 1938년 경북 의성 출생.
⊙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외교학 석사.
⊙ 동아일보 정치부장·편집국장·논설실장·상무이사,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장, 문화일보 사장 역임.
⊙ 現 고려대 석좌교수, 세종대 언론홍보대학원 석좌교수.
⊙ 저서: <항변의 계절> <체험적 기자론> <인터넷 시대의 취재와 보도> <한국보수세력연구>
<한국진보세력연구>.
⊙ 수상: 위암 장지연상, 임승준 자유언론상, 인촌상 등.
A형. 편집자가 내게 준 제목은 <한국 언론에 주는 元老(원로) 언론인의 苦言(고언)>이었습니다만, 나는 형에게 보내는 공개편지를 쓰는 것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정확한 보도, 균형 잡힌 보도를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한국 언론의 미래는 없다.”
“편집국장 선거제도나 임명동의 제도는 간부들의 지휘 감독권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킨 요인으로 작용했지요. 그로 인해 기사의 게이트키핑 기능을 하는 데스크작업이 소홀해져 함량이 부족한 기사, 요건을 갖추지 못한 기사, 사실을 왜곡한 기사, 의견을 내세운 부실한 기사들이 충분한 내부적 체크를 받지 않고 그대로 보도되었습니다.”
南時旭
⊙ 1938년 경북 의성 출생.
⊙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외교학 석사.
⊙ 동아일보 정치부장·편집국장·논설실장·상무이사,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장, 문화일보 사장 역임.
⊙ 現 고려대 석좌교수, 세종대 언론홍보대학원 석좌교수.
⊙ 저서: <항변의 계절> <체험적 기자론> <인터넷 시대의 취재와 보도> <한국보수세력연구>
<한국진보세력연구>.
⊙ 수상: 위암 장지연상, 임승준 자유언론상, 인촌상 등.
古稀(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아직 각종 매체에 이것저것 칼럼이랍시고 글을 쓰고는 있습니다만 나는 아직 한 번도 스스로를 이른바 ‘원로 언론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한국 언론 전체를 향해 발언하기에는 어쩐지 부담감을 느끼기 때문에 되도록 말을 아끼고자 합니다. 자칫하면 잘못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우려도 있거니와, 지금부터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바로 자신에 대한 비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안한 마음으로 평소 내가 아끼는 형에게 드리는 편지 형식으로 이 글을 쓰는 것을 양해해 주기 바랍니다.
A형. 그렇기는 하나 이 글을 쓰는 나의 마음은 결코 편치 않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어딘가 참담한 심경으로 이 글을 쓴다고 하는 것이 솔직한 고백일 것 같습니다. 왜 참담한 심경인가를 먼저 설명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은 1950년대 말 자유당 정권 때 내가 언론에 입문한 이래 언론 탄압이 없는 시기에 지금처럼 언론이 위기에 처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까지 한국 언론의 위기는 주로 정치권력의 언론 탄압으로 인해 빚어졌지만, 언론 자유를 옥죄는 어두운 그림자가 걷히자 이제는 새로운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한국 언론은 지난 1960년대부터 나라의 산업화에 힘입어 규모 면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구가했지요. 언론인들도 다른 직종 못지않게 풍요를 누린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경제위기를 맞게 되자 언론산업에 찬바람이 불면서 언론인들의 어려움은 일찍이 없던 상황이 되었습니다. 대우가 나빠지고 직장의 장래가 불투명해지자 사기가 떨어진 언론인들이 自意(자의)로 혹은 他意(타의)로 언론계를 떠나는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A형. 그러나 이런 현상은 우리 국민들이 현재 모두가 겪는 어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언론인들만 특별히 언짢아 할 이유는 없지요. 내가 참담한 심경에 빠진 진정한 이유는 그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 언론에 대한 비판과 비난은 한계점을 넘고 있습니다. 한국 언론은 심지어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많은 사람은 지금 우리 언론에는 선동은 있어도 진정한 저널리즘, 즉 사실에 기초한 진정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과 의견이 뒤섞여 객관성·공정성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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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정권의 언론사 세무조사는 보수언론과 진보언론 간의 대립을 부추겼다. 사진은 2001년 2월 조선일보 세무조사를 하는 국세청 직원들. |
그러나 문제는 대세지요. 한국 언론의 대세를 관찰해 보면 언론에 대한 그런 비난의 소리에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한국 언론의 보도에는 너무도 사실과 의견이 뒤섞여 객관성과 공정성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작년 2월 李明博(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특히 전파매체에서 자주 보는 현상입니다만, 기자가 어떤 뉴스를 전하고는 기사 끝에 “(이 문제로) 논란이 예상됩니다” 또는 “파란이 예상됩니다”라는 멘트를 잘 붙이고 있습니다. 하기야 사안에 따라서는 논란이나 파란이 일어날 것이 명백한 경우도 있겠습니다만, 문제는 그럴 정도가 못 되는 사안에 대해 이런 멘트를 붙이는 것은 기자가 논란과 파란을 유도하려는 의도라고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A형. 내가 보기에 우리 언론이 이렇게 된 데는 여러 원인이 있겠습니다만 한국 언론이 정치에 오염되고, 정치화한 데 있다고 봅니다.
형께서도 잘 알다시피 1987년 민주화를 계기로 진보적 성향의 신문이 발간되기 시작하고 언론노조가 결성되면서 한국 언론계의 판도에 변화가 왔지요. 민주화 직후의 언론노조에는 386 운동권도 상당수가 들어와 기성세대를 적으로 대하는 경향도 있었지요.
이 같은 언론계 내부의 갈등은 l990년대 말 이후 金大中·盧武鉉(김대중·노무현) 두 정부가 들어선 데 이어 2004년 총선에서 左派(좌파)정당인 민주노동당 후보가 10명이나 원내 진입에 성공함으로써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이 무렵에는 또한 진보적 인터넷 신문들이 연이어 창간되어 상당 기간 동안 사이버 공간을 장악했지요.
문제의 발단은 김대중·노무현 두 정부가 추진한 언론개혁이었지요. 두 정부에 우호적이던 방송과 일부 진보신문이 보수신문들을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언론계의 보수-진보 대립이 빚어졌습니다. 물론 보수신문도 방송과 진보신문을 맹렬하게 공격하고 나섰지요.
김대중 정부는 언론사 세무조사를 단행해 보수신문의 대주주를 구속하고 노무현 정부는 법 제정을 통해 언론계의 판도 자체를 바꾸려고 했지요. 이때 親與的(친여적)인 방송과 진보신문, 그리고 언론노조가 이에 가세함으로써 보수언론사 측과의 사이에 격렬한 대결의 戰線(전선)이 형성되었지요.
정치오염은 저널리즘의 독약
언론계의 내부 갈등은 상호간 많은 소송사건으로 발전할 정도로 격화되었지요. 요즘 들어서는 미디어법안 강행 통과를 계기로 정당과 상대방 진영의 언론 사이에 전례 없는 攻防戰(공방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정당이 언론의 비판을 받기는 해도 언론사를 정면으로 공격하는 일은 없었지요.
A형. 이 같은 언론과 정치의 결합은 한국 언론을 망가뜨리는 독약으로 작용했습니다. 신문·방송 할 것 없이 사실보도보다는 이념과 주장이 앞서 진실과 사실의 추구와 검증을 게을리하는 경향이 일상화했습니다.
언론계가 이렇게 된 데는 다른 이유도 있지요. 민주화 이후 결성된 언론노조의 과격투쟁과 이에 영합하는 경영진과 편집간부들의 무책임도 한 원인이 된 것으로 나는 생각합니다.
편집국장 선거제도나 임명동의 제도는 언론사의 기강을 흐트러뜨리고 간부들의 지휘 감독권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킨 요인으로 작용했지요. 그로 인해 기사의 게이트키핑 기능을 하는 데스크작업이 소홀해지고, 허위보도 등 잘못을 저지른 기자에 대한 징계조치가 어려워진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한국 언론계는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인 것입니다. 함량이 부족한 기사, 요건을 갖추지 못한 기사, 사실을 왜곡한 기사, 의견을 내세운 부실한 기사들이 충분한 내부적 체크를 받지 않고 그대로 보도되었습니다. MBC의 ‘PD수첩’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입니다.
언론계의 정치오염과 기강해이가 끼친 해독은 또 있습니다. 지난 18대 총선 때 역대 국회의원 선거 사상 가장 많은 언론인이 政界(정계) 진출을 위해 與野(여야) 각 당에 공천을 신청한 사실은 이미 널리 보도되었지요.
하기야 기자들의 정계 진출 러시는 비단 언론계의 기강해이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언론계의 풍속이 변한 것도 한 원인이지요. 언론인들의 의식이 바뀌어 샐러리맨화함으로써 힘든 취재를 기피하고 생활인으로서 웰빙을 추구한 결과 어느새 언론인으로서의 직업적 소명감도 사라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난날 언론인들이 지녔던 자긍심과 패기도 없어질 수밖에 없겠지요.
직업언론인들의 정체성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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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정보도의 대명사였던 월터 크롱카이트. |
최근 미국의 저명한 TV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의 別世(별세) 소식은 수준 미달의 기사로 국민들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한국 언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확하고 균형 잡힌 뉴스보도의 대명사인 크롱카이트는 일생 동안 공정한 보도를 위해 노력했지요. 앞으로 한국에도 크롱카이트 같은 언론인이 많이 나오도록 한국 언론계는 노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A형. 또 하나 언급해야 할 것은 인터넷혁명으로 인한 언론인의 正體性(정체성) 문제입니다. 종래의 오프라인 언론매체의 영향력을 위협하는 각종 인터넷매체의 등장은 우리 같은 직업언론인의 위상에 큰 변화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시대를 맞아 양산된 비전문 기자들의 범람은 언론 전체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나아가 직업언론인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들었습니다.
많은 아마추어 언론인이 부정확하거나 허위의 정보를 퍼뜨려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거기다가 인터넷 누리꾼들의 저질 댓글까지 홍수를 이루어 지금 사이버 공간은 바야흐로 春秋戰國(춘추전국)시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혁명은 나쁜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훌륭한 비전문 논객들의 등장으로 인터넷 언론에는 지금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있습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정치·경제·사회·문화·안보·통일 문제 등 국가적 현안들에 대해 수준 높은 분석과 의견을 표명함으로써 직업언론인들을 무색하게 하는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가 하면 과거 언론사에서 경력을 쌓은 직업언론인이 혼자 힘으로 1인 인터넷언론을 운영하면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예도 있지요. 이들의 활동은 아마추어 인터넷 언론인들의 역기능을 상당히 교정하는 역할을 하지만 아직은 좀 더 두고 볼 일입니다.
여하간 인터넷매체의 등장으로 舊(구)매체의 영향력은 그만큼 줄어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언론은 현재 중요한 전환기를 맞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보도의 공정성’을 위한 객관적 기준
A형이 대신문의 편집 책임을 맡은 지 이제 1년 가까이 되었지요. 감히 말하건대, 정확한 보도, 균형 잡힌 보도를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한국 언론의 미래는 없습니다. 우리 언론이 더 이상 선동꾼이라는 비난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MBC의 광우병 ‘PD수첩’은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이를 반면교사로 하여 재출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다면 문제의 ‘PD수첩’을 한번 평가해 볼까요. 나는 <워싱턴 포스트>의 윤리강령에서 규정한 공정보도의 기준을 준거로 삼고자 합니다. 이 윤리강령은 “객관성을 둘러싼 논쟁은 끝이 없지만 공정성의 개념은 기자와 편집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공정성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실천에서 가능하다”고 전제하고 다음과 같이 규정했습니다.
①(기사에서) 아주 중요하거나 특별한 요소를 제외시킨다면 어떤 기사도 공정하지 않다. 공정성은 포괄성을 내포하고 있다.
②특별한 사실을 희생시키면서 본질적으로 관련 없는 정보를 포함한다면 어떤 기사도 공정하지 않다. 공정성은 형평성을 의미한다.
③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독자를 誤導(오도)하거나 심지어 기만까지 한다면 어떤 기사도 공정하지 않다. 공정성은 독자에 대한 정직성을 포함한다.
④기자가 “거부했다”, “~에도 불구하고”, “말 없이”, “시인했다”, “대량의” 등의 교묘하게 멸시적인 단어들 뒤에 편견이나 감정을 숨긴다면 어떤 기사도 공정하지 못하다. 공정성은 교활성이 아닌 솔직성을 요구한다.
A형, 공정성을 이처럼 기사의 포괄성·형평성·정직성·솔직성의 기준에서 판단할 때 문제의 ‘PD수첩’은 최악의 프로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념적 배경은 달라도 객관성·공정성은 지켜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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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우병 촛불사태를 야기한 MBC |
오늘날과 같은 이념의 다양성 시대에 어떤 언론매체가 보수든 진보든 중도든 자신의 이념적 성향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민주국가에 항상 있기 마련인 여론의 다양성은 서로 다른 이념적 배경을 가진 언론매체들이 複數(복수)로 존재하면서 상호 善意(선의)의 경쟁을 통해 국민적 합의로 통합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바람직하기로는, 정치적·이념적 배경이 다른 여러 언론매체가 보도에서는 공정성과 객관성을 지키는 것이 핵심적인 과제가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언론매체가 사설이나 칼럼에서 政派性(정파성)을 띤 주장을 하더라도 보도면에서는 공정하게 객관적으로 보도해야 합니다.
언론인이 정파성과 공정성의 문제를 어떻게 조절하느냐는 것은 A형 같은 편집책임자에게는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독립해야 할 직업언론인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숙제이기도 합니다.
다시 <워싱턴 포스트>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미국의 탁월한 언론인 가운데 하나인 <워싱턴 포스트>의 레오나드 다우니 부사장은 올 2월 미국의 전국언론재단에서 수여하는 ‘올해의 편집인’ 상을 받았지요. 오하이오 주립대학과 그 대학원에서 신문학과 정치학을 공부한 다우니는 대학 재학 때부터 학교신문의 편집국장을 맡아 기자 훈련을 쌓고 1964년 여름 <워싱턴 포스트>에 인턴으로 들어가 바로 정식기자로 채용되었습니다.
그는 입사 후 1년 만에 범죄·재판·주택·도시문제에 관련된 탐사보도 시리즈로 여러 개의 언론상을 수상함으로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그 유명한 워터게이트사건 취재 때는 밥 우드워드 등 담당기자들을 지휘 감독했습니다.
다우니는 수도권부장·런던특파원·전국부장을 거쳐 편집국장으로 7년간 일하다가 1991년부터 2008년까지 17년간 편집이사로 이름을 날리고 부사장으로 물러앉았습니다.
2000년 10월의 일이지요. <워싱턴 포스트>는 관례에 따라 그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사설을 통해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에 대한 지지 선언을 했습니다. 후보 지지 선언은 社主(사주)의 뜻을 헤아려 논설위원실에서 결정하지요.
社說과 보도의 엄격하고 완전한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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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설과 보도의 엄격하고 완전한 분리’를 강조한 레오나드 다우니 워싱턴 포스트 부사장. |
인상적인 것은, 다우니는 보도에 공정을 기하기 위해 편집국장이 된 이래 투표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심지어 나는 보도면의 최종결정자로서 어느 후보가 더 좋은 대통령이 될지를 개인적으로 결정하는 것조차 거부한다”고 밝혔습니다. 다우니는 2004년 大選(대선)에서 <워싱턴 포스트>가 민주당의 존 케리에 대해 지지 선언을 했을 때도 같은 입장을 취해 내용이 비슷한 칼럼을 실었지요.
흥미 있는 사실은 이때 <워싱턴 포스트>가 지지를 선언한 두 사람의 민주당 후보들은 모두 공화당의 부시에게 패배한 점이지요. 여담이지만 한국에서는 특종이나 좋은 기획기사를 쓴 기자와 좋은 칼럼을 쓴 논객에게는 언론상들을 주지만 탁월한 편집책임자에게 주는 상은 없는 것이 아주 아쉬운 점입니다.
A형. 다우니 이야기를 한 것은 우리의 언론 현실을 성찰하기 위한 참고자료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한국 언론도 지난 1996년의 신문윤리강령 개정으로 미국 언론처럼 특정후보 지지를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후보지지 선언을 시도한 언론사는 없었으며, 앞으로도 당분간은 별로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 어느 언론사가 그런 시도를 한다면 과연 워싱턴 포스트처럼 보도면은 철저하게 중립적 입장을 취할 수 있을까요? 가정적인 경우를 상정해서 판단을 내리는 것은 현명하지 않은 일입니다만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국 언론은 공개적인 지지 선언 대신 陰性的(음성적)으로 특정 후보를 밀어주는 편파보도를 해 말썽이 일어났지요. 이제 곧 10월 재·보선과 내년의 지방선거가 다가옵니다. 형께서는 다우니의 교훈을 되새겨 신문의 이념적·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공정한 선거보도를 할 것을 당부 드립니다. 그것이 한국 언론이 汚名(오명)을 씻고 재출발하는 길이자 언론인들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역사를 만드는 사람,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
A형. 자존심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나는 몇 년 전 어떤 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석했다가 한 저명한 교수가 언론인을 폄하하는 모욕적인 발언을 해서 대단히 분개한 적이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언론개혁을 내걸고 보수언론을 옥죄려 하던 때였습니다.
보수언론의 저항으로 진보개혁이 방해를 받아 이른바 민주주의의 공고화가 지체되고 있다고 주장한 그는 “찰나적 현상에 부심하는 본성을 지닌 언론이 국가대계를 짊어지는 엘리트집단으로 등장했다”고 언론의 위상을 깎아내렸습니다. 본래 엘리트가 아닌 언론인들이 엘리트 행세를 한다는 의미지요.
그는 이어 유력언론사의 언론전문인들은 보수주의에 반하는 담론을 공격하여 無力化(무력화)시키는 첨병이라고 보수적 언론인들을 反(반)개혁세력으로 몰아붙였습니다.
이 같은 내용의 주제발표문을 미리 읽은 나는 세미나 자리에서 교수라는 사람이 자신이 인용한 참고문헌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인용을 잘못했다고 지적함으로써 분풀이를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자존심이 너무 상해 차마 “왜 언론인을 그렇게 비하하느냐”는 말은 꺼내지 못했습니다.
A형. 그의 말대로 언론인은 찰나적 현상에만 관심을 가진 직업인입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舊韓末(구한말) 나라의 운명이 위기에 처했을 때 눈부신 활약을 한 申采浩(신채호)·朴殷植(박은식)·張志淵(장지연) 같은 대논객들을 보세요. 그들은 이 경솔한 대학교수의 말과는 달리 국가의 위기를 맞아 민족의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훌륭한 글들을 쓴 우국지사였습니다.
A형. 세상에는 역사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고,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언론인과 학자는 後者(후자)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같은 역사의 기록자이면서도 언론인은 역사의 현장에 직접 뛰어드는 목격자·관찰자·증언자·기록자·전달자라는 점에서 대체로 주어진 자료를 토대로 연구하고 서술하고 분석하는 학자들과 다른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언론인의 사명과 책임은 막중합니다. 이런 말이 있지요.
“논설은 사람이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지만, 뉴스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다.”
논설과 달리, 보도는 기자의 의견이 들어가서는 안되는 신성불가침의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말이지요.
한국 언론의 르네상스를 위하여
A형. 한국 언론은 오직 진실만을 보도하는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회생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형을 비롯한 자존심 있는 언론인들이 한국 언론의 르네상스를 위해 분투하기를 빕니다.
그렇게 하자면 의식 있는 언론인들은 다음과 같은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말을 참고로 해야 할 것입니다.
“진실로 좋은 한 건의 신문기사를 쓰는 일은 최소한 학자의 (학문적) 연구만큼 知的(지적)으로 어려운 작업이다. 이것은 그 기사가 현장에서 쓰이거나 학문적 연구와 완전히 다른 조건 아래서 작성되었더라도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음을 상기할 때 특히 그렇다. 기자의 실제적인 책임이 학자의 그것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간과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