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Trend] 걷잡을 수없이 추락하는 일본의 잡지들

구태의연하고 무엇이든 다 담긴 일본의 월간지,
주간지는 수명이 다해 숨이 깔딱거리는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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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토키 마사히코(元木昌彦) 前 週刊現代 편집장
⊙ 1945년생.
⊙ 와세다(早稻田)대학 상학부 졸업.
⊙ 고단샤(講談社) 입사, 편집장, <週刊現代>편집장, <週刊現代> 편집장 겸 제1편집국장 역임.
⊙ 현재 ‘편집자의 학교’를 각지에서 개최. 조치(上智)대학, 호세(法政)대학, 다이쇼(大正)대학,
    메이지(明治)학원대학 등에서 편집학 강의.
⊙ 저서 : 편저 <편집자의 학교>(고단샤), <일본의 모든 룰은 편집현장에 들어있다>(나쓰메쇼보)
잡지 王國 일본이 잡지 판매부수 급감으로 잡지사들이 존폐위기를 겪고 있다.
아사히신문사(朝日新聞社)에서 발행하는 종합 월간지 <論座>(논좌)가 10월호를 끝으로 휴간이 확정됐다. 편집부는 휴간 이유를 “인터넷의 보급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가운데 종합지로서의 역할 수행이 이미 끝났다”고 설명했다. 아사히신문사는 1995년 오피니언 잡지 <론자>(Ronza)를 창간, 2년 후에 명칭을 <논좌>로 변경했다.
 
  소문에 의하면 <논좌>의 발행부수는 2만부 정도였다고 한다. 아사히의 잡지 만드는 솜씨가 서툴다는 것은 업계에서는 이미 정평이 나 있지만, 계층 격차 문제 등을 적극 취급했던 잡지인 만큼 휴간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높다. 아사히신문사는 올 봄에 출판부분을 독립시켜 分社(분사)했으나 기대만큼의 성과를 얻지 못했다. 아사히신문사 내부자의 말에 의하면 만을 남겨두고, <주간 아사히>(週刊朝日)도 휴간하는 쪽으로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이미 10년 가깝게 지속되어 온 출판계의 불황 중에서도 특히 잡지부문의 매출 감소는 제동이 걸리지 않을 정도다. 지난해의 출판 총 매출액은 2006년보다 2.8% 감소한 2조2000억 엔에 조금 못 미친다. 이는 전성기인 1996년의 2조7000억 엔보다 5000억 엔이나 감소한 액수다. 도서 매출액은 9700억 엔이 조금 넘어 전년도 대비 3.4% 감소했고, 잡지는 1조2000억 엔이 조금 넘어 전년 대비 2.4%의 감소하는 등 출판계는 심각한 불황에서 탈출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섹스ㆍ돈ㆍ출세로 주간지 전성시대 열어
 
일본 시사 주간지 <아에라>의 30대 여성들을 위한 특집호의 표지. 아사히신문이 발행하는 시사주간지다.
  특히 종합주간지의 매출 저하가 심각한데, 1위인 <주간 분?>(週刊文春)조차 52만부, <주간겐다이>(週刊現代), <주간 포스트>는 35만부 전후에 불과해 고단샤(講談社)와 쇼각칸(小?館社) 내부에서는 휴간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편집장이던 1995년경에는 <주간 겐다이>의 실판매 부수가 70만부를 넘었는데, 최근 10년 사이에 반 이상 줄어든 것이다.
 
  <주간 아사히> 등 신문사가 발행하는 주간지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주간 신초>(週刊新潮)가 창간된 1956년경 <주간 아사히>는 이미 100만부 이상 발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출판사가 발행하는 주간지는 취재기자가 적은 관계로 게릴라식 취재와 스캔들을 중심으로 두고, 사건화하지 않은 의혹단계에서부터 추적 보도하는 ‘선택과 집중’ 방식을 취하면서 순식간에 신문사 계열 주간지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주간 신초>에 이어 <주간 분?>과 <주간 겐다이>가 창간됐고, 그 10년 후에는 <주간 겐다이>의 편집장과 스태프들이 뛰쳐나와 <주간 포스트>를 창간했다. 또 <주간 조세이>(週刊女性)와 <조세이 지신> (女性自身) 등의 여성 주간지와 만화 주간지인 <쇼넨(少年) 매거진>과 <쇼넨(少年) 선데이>가 창간되면서 출판계통 주간지 붐을 조성했다. 이러한 출판사 계열의 종합주간지는 신문 비판이 주특기의 하나였다. 특히 아사히 신문을 중심으로 엄격한 미디어 체크 기능을 발휘했다.
 
 
  운동권 학생들 주간지 기자로 몰려
 
  필자는 주간지 편집장 시절, ‘할 말 못하는 신문’, ‘할 말 못하는 TV’를 대신해 국민의 알 권리를 만족시켜 주는 것이 잡지, 특히 주간지의 역할이라고 공언했다. 신문사 계열 잡지가 신문 본연의 논조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출판사 계열의 주간지가 황금시대를 구가할 수 있었다.
 
  특히 고도성장기에 직장인들을 위한 주간지를 표방한 <주간 겐다이>와 <주간 포스트>는 직장인들의 3대 관심사인 ‘섹스, 돈, 출세’를 컨셉트로 해서 부수를 비약적으로 늘려갔다. 필자가 고단샤에 입사한 것은 1970년인데, 이때는 ‘컴퓨터를 모르면 당신은 출세할 수 없다’는 등의 출세 경쟁을 부추기는 타이틀이 범람했다. 오늘보다 내일이 좋아진다. 올해보다 내년이 좋아진다. 출세하면 회사 돈으로 긴자(銀座)의 술집에서 얼마든지 마실 수 있다…. 이런 것들을 무작정 믿었던 시절이었다.
 
  당시 <주간 겐다이> 편집부에는 50명 정도의 데이터 맨(취재기자)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1970년대 안보투쟁에 가담해 학원쟁투나 미 제국주의 반대운동을 하던 운동권 출신이었다. 1969년 1월의 도쿄대 야스다(安田) 강당이 함락됨과 동시에 학생운동도 종말을 맞았다. 많은 운동권 출신들이 퇴학을 당하거나 취직을 하지 못한 채 주간지 현장으로 들어왔다.
 
  당시 일이 끝나고 신주쿠(新宿)에서 밤을 새워 술을 마시다 보면 반드시 언쟁이 시작되고, 심하면 고성이 오가며 술병이 날아다니다 결국 서로 피를 흘리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까짓 주간지, 그렇지만 (무시할 수 없는) 주간지’등의 말을 곱씹으면서 비록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했지만 당시 잡지의 세계에는 1970년대 안보투쟁의 열기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반체제, 反(반)권력적인 정서가 잡지의 지면을 통해서도 잘 드러나고 있었다.
 
  여기서 잠깐 필자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해보자. 필자의 대학시절은 안보투쟁과 학원분쟁의 거센 바람이 몰아치던 때지만, 필자는 그런 것들과는 동떨어져서 낮에는 학교 근처의 영화관에서 3편 동시상영의 야쿠자 영화를 보고, 밤에는 취객을 상대로 한 바텐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청춘을 즐기고 있었다. 가끔 수업에 참석하면 과격파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소동을 일으키기 시작하고, 교수는 포기한 듯 고개를 숙인 채 강의실을 나간다.
 
  기말시험은 거의 대부분 리포트로 대체하고, 몇 개 안 되는 시험도 벼락치기로 공부하면 낙제하는 일은 없었다. 이런 논폴리(non policy) 학생들의 유일한 낙은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찻집에서 잡지를 보는 것이었다. 매거진 하우스의 <헤이본(平凡) 펀치>는 우리 같은 가난한 고학생들의 꿈이었던 ‘자동차, 여자, 패션’을 컨셉트로 하여 인기를 얻었다. 잡지에서 소개된 멋진 자동차와 쇼난(湘南)의 바닷가에서 즐기는 크루즈, 미국에서 들어온 ‘스케이트 보드’라는 스포츠 기사를 한숨을 쉬면서 학교 근처의 찻집 구석에 앉아서 잡지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한 기세로 읽어댔다.
 
  잡지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당시 정부나 미국 비판을 중심으로 하는 강경한 논조로 학생들에게 인기를 얻은 잡지가 아사히신문사의 <아사히 저널>이었다. 당시에 아직 터부시되던 여성들의 全裸(전라)에 가까운 사진이나 ‘빨갛고 빨간 아사히’ 등, 출판처인 아시히신문을 조롱하는 듯한 표지도 화제가 됐다.
 
  만화도 학생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거인의 별’과 ‘내일의 조’(明日のジョ)를 연재한 <주간 쇼넨 매거진>은 좌파 학생들도 즐겨 읽었는데, 1970년대에 발생한 적군파에 의한 요도호 하이제킹 사건의 주모자가 “우리들은 내일의 조”라고 선언한 후 북한으로 망명한 일은 유명한 일화다.
 
 
  <文藝春秋>를 따라잡아라
 
  반체제, 혁명 등의 단어가 신문과 잡지, 영화에 범람했으며,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하던 시절이다. 이와나미(岩波)서점의 <세카이> (世界)나 주오코론샤(中央公論社)의 <주오코론>(中央公論)이 좌파 학생들뿐 아니라 필자와 같은 논폴리 학생과 사회인들 사이에서 지지를 얻었던 시대였다.
 
  필자의 주변에서 <분게이슌슈>(文藝春秋)를 읽는 학생들은 거의 없었다. 1965년에 고분샤(光文社)가 창간한 월간 <호세키>(?石)는 <헤이본 펀치>적인 요소와 <분게이슌슈>와 같은 살롱풍의 읽을거리를 적절히 조합한 잡지였다. 고뷴사가 발행한 <두뇌체조>, <영어에 강해지는 책>, <관혼상제>와 같은 책들이 연속해서 밀리언 셀러가 되었다. 고분샤는 당시에 가장 인기 있던 출판사였다. <호세키>의 창간호를 사러 집 근처 서점으로 뛰어간 기억이 있다.
 
  취직할 마음이 없던 필자는 바텐더 생활을 하며 그저 마음 편하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신문사에 근무하던 부친으로부터 “신문사 시험을 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고 같은 인쇄매체라면 차라리 잡지사가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도, 그 당시가 주간지와 월간지 등의 잡지가 빛을 발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잡지의 시대’였다. 고단샤라는 출판사에 입사해서 처음 배속된 곳은 월간 <겐다이>(現代)였다. <겐다이>는 1966년에 창간된 잡지로 새롭게 꾸려진 편집부에서는 <분게이슌슈>(文藝春秋)를 따라잡는 것이 지상목표였다. 편집장은 입버릇처럼 “이 잡지에는 단행본 10권의 내용이 들어있다고 독자를 믿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겐다이>는 우메사오 다다오(梅棹忠夫)와 구사야나기 다이조(草柳大藏) 등의 인기 작가들이 연재한 에세이와 평론도 인기였지만, <분게이슌슈>와 비교하면 르포기사를 많이 채택했다. 당시는 논픽션의 여명기로 전 요미우리 신문기자인 혼다 야스하루(本田靖春), 전 NHK 기자인 야나기다 도시오(柳田邦男), 전 아사히신문 기자인 우에마에 준이치로(上前淳一郞), 세계 여행에서 막 귀국한 젊은 작가인 사와키 고타로(?木耕太郞) 등이 차례로 등장하던 시절이었다.
 
 
  다나카 총리를 낙마시킨 시사 월간지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일본 전 총리가 검찰의 수사끝에 록히드사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1977년 재판정에 들어서고 있다. 다나카 총리를 낙마시킨 것은 일본의 시사월간지 보도였다.
  이 논픽션의 1세대들이 수많은 걸작을 발표하여 조사보도란 무엇인가를 잡지 편집장들에게 알려주었다.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는 <분게이슌슈>를 그만두고 신주쿠에서 작은 술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생각하는 바가 있어 중동을 중심으로 해서 세계를 둘러보기 위한 여행을 떠났다. 귀국한 그는 <분게이슌슈> 편집장인 다나카 겐오(田中健五)로부터, 고졸 출신에서 총리대신의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 당시 절대권력을 자랑하던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총리에 대해서 기사를 써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았다.
 
  이렇게 해서 다치바나의 지휘하에 많은 데이터 맨과 숫자를 분석하는 전문가들이 모여 다나카 가쿠에이의 베일에 싸여 있던 권력구조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1974년 일본의 조사보도의 최고 걸작으로 불리는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그의 金脈(금맥)과 人脈(인맥)’이 <분게이슌슈> 11월호에 실려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필자의 개인적인 취향으로서는 당시 같은 호에 게제되었던 고다마 다카야(兒玉隆也)의 ‘외로운 에쓰잔카이(越山?)의 여왕’이 논픽션으로서 보다 재미있는 기사였다고 생각한다. 이 기사는 고다마가 <주간 조세이> 시절부터 추적해 온 사건으로 신바시(新橋)의 카바레에서 호스티스로 일하던 사토 아키라(佐藤昭)라는 여성이 다나카 가쿠에이의 총애를 받아 에쓰잔카이(越山?)라고 하는 가쿠에이의 정치자금 단체의 금고지기까지 올라간 이야기인데, 이 기사를 읽은 가쿠에이의 딸 마키코(?紀子)가 부친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진노하여 다나카가 결국 총리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고 알려져 있다.
 
  자리에서 물러난 다나카는 그 후 정계의 首長(수장)으로 군림하려 했으나 록히드 사건이 발발하면서 체포되어 무대 뒤편에서 다나카派(파)를 이끌었지만 두 번 다시 총리의 자리를 되찾지는 못했다. <분게이슌슈>의 이 호는 발매 직후 매진됐지만, 이상하게도 증쇄를 하지 않은 채 끝났다.
 
 
  논픽션의 시대
 
지난 100년을 100권의 주간지로 엮어내 대히트시켰던 일본 기록문화의 결정판 잡지 <20세기>.
  다치바나는 이를 계기로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여 수많은 걸작들을 내놓으며 ‘지식의 巨人(거인)’으로 불리게 된다. 다치바나를 중심으로 혼다, 야나기다, 우에마에, 사와키 등 제 1세대들의 활약으로 논픽션은 활황을 구가했다. 고단샤는 논픽션 전문잡지 출간을 검토했으며 발행준비가 진행되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창간되지는 못했다.
 
  1970년대는 논픽션의 시대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분게이슌슈>보다 논픽션에 힘을 쏟았던 <겐다이>는 최고 발행부수 35만부 근처까지 성장하면서 숙적인 <분게이슌슈>를 따라잡기 직전까지 가 있었다. 종합 월간지도 논픽션 단행본을 배출하는 그릇이 되어 취재비와 재료비를 지불해 가며 1회 30장(400자 원고지)부터 많으면 100장 정도 되는 기사를 일거에 게재하는 등 논픽션 대량생산의 공급원이 되어 수많은 걸작을 세상에 선보였다.
 
  여기서 잠시 <분게이슌슈>를 포함해 월간지의 역사에 관해 살펴보자. 일본에서 현재와 같은 종합잡지의 형태가 생긴 것은 1874년에 발행된 <메이로쿠(明六)잡지>부터라고 일컬어진다. 이 잡지는 모리 아리노리(森有札)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등이 중심이 되어 만든 학술 근대잡지의 선구자 격이 되는 잡지로 개화기의 일본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현재 주오코론사에서 발행하고 있는 <주오코론>은 니시혼간지(西本願寺:교토시에 위치한 사원)계의 보통학교(현 류코쿠 대학의 전신) 학생 간부들의 기관지인 <반성회(反省?)잡지>로 1887년에 발간됐다. 1899년 1월부터 <주오코론>으로 이름을 변경한 뒤 소설과 논평 등을 중심으로 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일본 다이쇼 시기에 유행한 민주주의적, 자유주의적 풍조) 시대의 언론을 주도했다. 편집장인 다키타 조인(田樗陰)은 명편집자로 이름을 날렸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요코하마 사건이 발발, 1944년 군부의 권고에 의해 월간지 <가이조>(改造)와 함께 폐간됐다가 1946년 복간됐다.
 
  <분게이슌슈>는 1923년 1월 기쿠치 칸(菊池寬)이 사재를 털어서 만든 잡지다. 처음에는 문예수필집으로 창간했으나 편집방침을 바꿔 광범위한 독자층을 위한 종합잡지로 변신했다. 한편으론 아쿠타가와상(芥川賞)을 주최하며 신인작가 발굴에 공헌해 왔다. 평론가 마쓰우라 소조(松浦혉?三)는 <분게이슌슈>가 戰後(전후)에 발행부수를 급격히 늘려가며 1952년에 70만부를 인쇄할 정도로 급성장한 이유를 “첫째 志(지)를 버리고 가벼운 중간문화를 철저히 지킨 종합잡지였으며, 둘째 반공 집필자를 지면의 중축에 확실히 포진시켰으며, 셋째 역사물 관련기사에 압도적인 강점을 가지고 있다”(<전후 저널리즘사론> 중에서)고 분석했다.
 
  1925년에 고단샤에서는 사장인 노마 하루오(野間淸治)가 진두 지휘한 <킹>이라는 잡지가 발간됐다. ‘값싸고 재미있고 유익한 잡지’라는 캐치 프레이즈로, 충성과 애국을 편집강령으로 한 <킹>은 전후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아 단숨에 100만부를 돌파했으나 敗戰(패전)과 함께 주역의 자리를 <분게이슌슈>에게 물려주고 1957년에 휴간됐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이 조사한 ‘독자들이 자주 읽는 잡지’라는 앙케트에서 1947년 남성독자 랭킹에서는 <세카이> 2위, <주오코론> 3위, <분게이슌슈>가 10위였으나, <분게이슌슈>가 1949년에는 2위, 1951년에는 1위로 올라섰다. 여성독자 사이에서는 <분게이슌슈>가 9위를 차지했다.
 
 
  잔혹한 잡지 시장에서 고군분투 중인 <文藝春秋>
 
일본사회에서 주간지들이 저명인사의 여성스캔들을 연일 폭로하고 있다. 사진은 일본의 주간지 <프라이데이>.
  앞서 서술한 것처럼 1960년대에는 진보적인 지식인들이나 학생들에게 인기 있었던 <세카이>나 <주오코론>이 건투했으나, 1970년대에 들어오면 학생운동도 잠잠해지고 일본 사회가 고도성장의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부수가 격감하기 시작했다.
 
  지금 필자의 눈앞에 잡지부수 조사기관인 ABC의 1986년~2000년까지의 리포트가 있다. <세카이>와 <주오코론>은 나와 있지 않지만, <분게이슌슈>는 1986년에 실판매 부수가 55만부 조금 못되었으나, 88년에는 64만4000부까지 오른 후 조금씩 발행부수가 줄면서 2000년에는 44만8000부로 집계됐다. 최신 조사에서는 46만부 대로, 다른 주간지나 월간지가 급격하게 발행부수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과 비교하면 아직도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세카이>와 <주오코론>의 발행부수는 대략 2만부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종합지계에 겨울이 도래한 것을 예고한 것은 월간 <호세키>의 휴간(1999년 8월호)이었다. 고분사는 2001년 1월에 종합주간지 <주간 호세키>(週刊?石)도 휴간 결정을 내렸다. 필자의 옛 둥지였던 월간 <겐다이>는 당시에는 10만부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최근에는 5만부까지 떨어지면서 社內(사내)에서 휴간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종합지가 고전하는 가운데 발행 부수는 미미하지만 수년 전에 우익 성향의 오피니언 잡지가 활황을 구가하던 시절이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 시대에 야스쿠니(靖?) 참배문제로 중국과 한국에서 비판의 소리가 높아졌을 무렵이다. 고바야시 요시노리(小林よしのり)와 나카니시 데루마사(中西輝政) 등의 보수논객을 기용하여 일본적 저널리즘을 선동했던 분게이슌슈사의 <쇼군>(諸君)과 산케이(産經)신문사의 <세이론>(正論), 쇼각칸(小?館)의 등이 부수를 늘리면서 주목을 받았다.
 
  전 <분게이슌슈> 편집장인 하나다 가즈요시(花田紀凱)가 창간한 도 강한 우익 논조로 인기를 얻었다. 고이즈미 정권의 뒤를 이어 탄생한 아베 신조(安倍晋三)정권에서도 우익계열의 오피니언지는 계속 활황을 이어갔으나 아베가 돌연 총리의 자리에서 내려오면서부터 이런 유의 잡지도 쇠퇴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원래의 부수로 돌아갔다.
 
  <분게이슌슈>는 특히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 실린 호는 초강세를 보이는데, 19세기 소년인 와타야 리사(綿矢りさ)와 가네하라 히토미(金原ひとみ)의 수상작이 실린 2004년 10월호는 100만부 매진 기록을 달성했다.
 
  출판 불황이라 불리기 시작한 지 어언 10년째, 대부분의 잡지는 판매부수가 떨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종합잡지는 ‘잔혹하다’는 형용사가 걸맞을 정도로 심각하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잡지와 단행본이 팔리지 않고 있는 시기에도 신간도서의 발행종수는 점차 증가하여 연간 8만점의 신간서적이 매일같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는 상황을 들 수 있다.
 
 
  세븐 일레븐에 어울리지 않는 잡지는 퇴출?
 
1923년 2월 일본에서 월간잡지 ‘<분게이슌슈>가 창간되었다. 이 잡지는 처음엔 문예잡지로 출발, 종합지로 성격이 바뀌었다.
  출판계에 정통한 필자의 친구는 작년 신서(新書) 붐과 인터넷의 보급으로 정보가 공짜가 된 것이 출판계 불황의 근본 원인이 됐다고 지적한다. 그의 말을 소개한다.
 
  “과거 교양신서라 불리는 이와나미, 겐다이가 시장을 독점하던 시대의 신서는 아카데미즘에 입각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출간 붐을 이루고 있는 신서들은 아카데미즘이라기보다는 저널리스틱한 시점으로 그 중심축이 이동했다. 독자들로서는 자신의 관심테마를 집중적으로 취급하는 신서를 월간지를 사보는 감각으로 사고 있는 것이다. 또 인터넷의 보급으로 정보를 공짜로 입수할 수 있으니 논리보다는 실용의 시대로 이동한 것이다.”
 
  최근 도서관에서는 잡지를 충실히 구비해 놓았기 때문에, 잡지의 주독자 층인 단카이(?塊)세대가 정년을 맞이해서 (잡지를 사지 않고) 도서관에서 읽고 있는 것도 잡지발행이 줄어든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또 다른 업계 전문가는 인터넷의 영향이 크다고 지적한다. 그는 “과거 잡지는 일정한 시장규모를 가지고 정보적 기능과 언론적 기능 등 다양한 장르의 기능을 달성해 왔으나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정보 제공자가 출현하면서 크게 타격을 받았다”고 말한다.
 
  출판 전문지의 편집장은 세 가지 원인을 지적해 주었다.
 
  “첫째, 종합월간지에 등장하는 논객의 대부분이 지금은 거대 출판사의 신서 시리즈를 집필하느라 여념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테마 설정이나 문장 등을 젊은 사람들도 이해하기 쉽도록 신경 쓰는 곳이 많습니다. 종합지를 사지 않더라도 그런 필자들의 글을 보고 싶으면 신서를 사면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문예지도 마찬가지지만 원래 많은 종합지가 적자 베이스로, 최종적으로는 거기에 등장하는 논객의 단행본을 출판하는 것으로 적자를 회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출판사 경영상황이 어려워지면서 계단을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듯 착실히 필자를 양성하는 것이 어려워졌습니다. 실력과 명성을 겸비한 사람에게는 처음부터 신서 원고를 받는 것이 빠르고 싸게 먹힌다는 거지요. 신서는 정형화된 폼이 있으니까 편집자는 저자와 내용만 조종해 나가면 작업이 손쉽게 끝납니다.
 
  셋째, 유통 사정상의 문제도 있습니다. 잡지도 도서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출판중개회사는 최근 엄청난 취급종수로 반품 과잉이 된 상태라서 ‘팔리지 않는’ 물건을 취급하기를 꺼립니다. 반품작업은 운반비용을 포함해 출판중개회사의 비용부담이 되니까요. 거래처 서점에 반품하지 말아달라고 계속 주문하면서 잘 안 팔리는 잡지의 취급부수를 줄이지 않는 것은 모순입니다. 이러한 효율화 지향은 종합월간지 장르를 점점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더구나 최근 20년간 잡지판매의 톱은 서점이 아니라 세븐 일레븐을 비롯한 편의점이었습니다. 편의점에 어울리지 않는 잡지는 형편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종합지의 미래는 불투명
 
<주간분슌>의 표지.
  이제 종합지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흔히 신세대들이 활자와 멀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맞지 않는 말이다. 왜냐하면 휴대폰이나 블로그 등에서 텍스트(활자)를 쓰거나 읽는 기회는 예전과 비교해서 압도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내가 가르치는 대학생들에게 문장을 써보도록 시키면 말도 안 되는 엉터리는 거의 없다.
 
  필자는 어린 시절에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당시 내 주위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던 것은 아니다. 교과서 외에는 책을 읽은 적이 없으며, 수업시간 이외에 문장을 써본 적이 없는 채로 사회에 나온 사람들도 많았다. 확실히 책을 읽지 않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으며, 잡지나 만화조차도 읽지 않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휴대폰이나 인터넷을 통해 활자를 보지 않는 날이 거의 없다. 총체적으로 보면 활자를 읽는 사람의 수는 줄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필자가 활자 미디어의 장래에 낙관론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분게이슌슈>와 같은 고전적인 종이잡지는 독자의 대부분이 단카이 세대이기 때문에 이들 세대가 끝나지 않는 한 부수는 떨어지겠지만 한동안은 명맥을 유지할 것이라 본다.
 
일본 주간지 <주간분슌>이 2002년 8월 김정일 위원장 일행의 러시아 방문 당시 모습을 게재한 사진.
  하지만 현재 출판되고 있는 다른 월간지와 오피니언 잡지는 지금 이상의 부수를 확보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된다. 문예지도 과거에는 30만부 이상의 부수를 자랑하던 시대가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수만 부부터, 순문학을 취급하는 잡지의 경우는 수천 부까지 부수가 떨어졌다. 그래도 발행되고 있는 것은 출판사측에서 단행본을 만들기 위한 모태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화잡지도 마찬가지로 600만부까지 팔렸던 <쇼넨(少年) 점프>가 400만부대로 떨어졌으나, 연재를 묶어 출판하는 단행본은 이전보다 높은 판매부수를 기록하고 있다. 독자는 매주 잡지를 사서 읽는 것보다 몰아서 읽는 편을 선택했다는 말인데, 이는 휴대폰이나 닌텐도 등 잡지를 읽는 것보다 즐거운 놀이문화가 늘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것도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종합지의 역할도 마찬가지로 연재된 논픽션이나 평론의 단행본화의 모태로서 생각되어 온 종래의 사고를 가지고 계속 발행하는 것은 우수한 작가진 양성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는 점은 말할 필요 없다.
 
 
  구태의연한 잡지는 모두 사라질 것
 
<분게이슌슈>가 주간하는 일본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의 2004년 수상자인 와타야 리사(왼쪽)와 가네하라 히토미 (마이니치신문 사진제공). <분게이슌슈>는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품이 실리는 호는 발행부수가 크게 는다.
  아사히신문은 7월 30일자 지면에서 미국의 신문업계가 광고부진과 부수감소로 지면과 기자의 축소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도, 대부분의 거대 신문들이 구조조정을 감행하면서 조사보도 기자 수는 늘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사보도와 권력감시는 어느 시대에서도 우리들의 가장 주요한 업무”라고 많은 편집간부들이 말하고 있다(아사히신문 보도).
 
  과거에는 불황에 강한 업종이라 불리던 출판계도 장기화되는 출판 불황을 견디지 못하고 비용만 들고 판매이익은 오르지 않은 채, 더구나 소송이나 트러블이 많이 발생하는 종합잡지를 휴간시키고 광고유치가 쉬운 여성지나 패션지로 옮겨 타는 경향이 늘고 있다.
 
  그러나 출판사가 잡지를 내는 것은 단순히 이익만을 위한 것은 아니며 권력감시와 훌륭한 논픽션을 세상에 내놓는 매체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 사명을 지니고 있다. 경영이 어렵다고 이를 소홀히 하는 출판사가 늘고 있는 점은 예삿일이 아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지만 편집자는 취재비와 경비 등의 사용에 있어 무척 안이해 편집장 이외에는 코스트 의식이 희박하다,
 
  현장의 편집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잘 팔리는 기획, 화제를 부르는 특종을 만드는 것은 물론, 지금보다 절박한 코스트 의식을 가지고 어떻게든 채산성을 맞춰 잡지가 지속될 수 있도록 노력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회사의 수명은 30년이라고 말하는데 잡지에도 수명이 있다. <분게이슌슈>는 예외라 치더라도 많은 월간지, 주간지는 이미 수명이 도래하여 피로를 일으키고 있으며, 숨이 깔딱거리는 상태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잡지들은 일단 휴간하고 새로운 컨셉트로 새로운 독자를 획득할 수 있는 잡지를 만드는 것이 독자들도 바라는 바가 아닐까?
 
  1956년에 출판사 계통 주간지인 <주간 신초>가 발간되었을 때, 처음 읽은 독자는 신선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매거진하우스에서 출판한 <앙앙>과 <뽀빠이>가 등장했을 때 새로운 세대의 잡지가 탄생했다고 업계와 독자 모두 놀라워했다. 1981년 신쵸샤(新潮社)에서 ‘TV시대의 잡지’라고 하는 컨셉트로 사진 주간지인 (2002년 휴간)가 창간됐을 때 큰 화제가 됐다.
 
  그러나 그 후 새로운 컨셉트의 잡지는 나오고 있지 않다. 확실하게 말하자면 구태의연하고 뭐든지 들어있는 종합지는 주간지고 월간지고 간에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이러한 잡지가 지금까지 권력감시와 일본의 미래에 대한 방향성의 제언, 논픽션 라이터의 육성과 좋은 논픽션 단행본을 출판하기 위한 모태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는 것을 출판사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새로운 오피니언 잡지의 등장
 
  많은 부수를 노리지 않고, 엄격한 코스트 의식을 가지고, 잡지가 하지 않으면 안될 역할을 수행해 가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래도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잡지가 휴간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럴 경우에도 차세대를 위해 새로운 저널리즘을 담당할 잡지를 편집자가 생명을 걸고 생각하고, 출판사가 이를 서포트하지 않는다면 매년 야위어만 가는 일본의 저널리즘은 불황으로 인해 사라져 버릴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위기감이 현장의 편집자들은 희박하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새로운 오피니언 잡지가 차례로 등장하면서 화제가 되고 있는 점에 대해 언급해 보자. 이들 잡지는 부수는 아직 미미하지만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신문화> 7월 10일자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6월 10일에 창간한 잡지 <로스제네>는 초판 300부가 발매됐는데 10일 후에 3쇄로 들어가면서 9000부가 판매됐다. 4월에 창간한 <m9>는 초판 2만부로 실판매는 1만부 정도였으며, 역시 4월에 창간된 <시소치즈>(思想地?)는 초판 1만부로 출발하여 현재 1만5000부로 늘어났다. 최근 2년 동안 창간된 20대 후반~30대를 대상으로 하는 오피니언 잡지인 , <후리타즈 프리> 등이 발신하는 목소리가 이제 겨우 사회에 알려지면서 미디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로스제네(로스트 제네레이션)란 1970~1980년대 초반에 태어나 장기불황 속에서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고학력에 후리타(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나 파견사원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세대를 말한다. 불황과 함께 노동시장의 글로벌화, 시장원리주의가 진행되면서 기업의 노동조건이 열악해지는 가운데 그 직격탄을 맞은 이들은 니트족, 은둔형 외톨이, 우울증, 자살 등이 많은 세대다.
 
  그 원인은 개인의 의욕이나 노력의 결핍으로 돌리는 위 세대의 ‘자기책임론’이 그들의 정신적인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기존의 좌익은 이에 대해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자아실현이나 승인의 대상으로 내셔널리즘에 빠지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는 점도 지적됐다.
 
  이런 상황 속에서 <로스제네>는 ‘좌와 우는 손을 잡을 것인가’라는 제목의 창간 특집호를 꾸며 좌익과 우익에 손을 뻗어 상황을 개선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지금까지 무시되었던 로스제네 세대의 목소리를 모아 발신함으로써 사회 변혁을 시도하는 언론의 장을 창출하려는 시도는 새로운 잡지 형태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잡지는 영혼에게 말을 거는 퍼스널한 매체”
 
  종합지가 위험하다는 말이 들리기 시작한 지 벌써 많은 세월이 흘렀다. 전쟁(2차 세계대전) 전 잡지의 영향력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큰 것이었다. 당시에 비하면 현재 잡지가 갖는 영향력은 지극히 미미하다. 그러나 두 번 다시 일본을 그 시절로 돌려보내지 않기 위해서도 어떤 편집방침을 관철할 것인가, 어떤 새로운 잡지를 만들 것인가는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TV가 확성기라면 잡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에게 말을 건네는 퍼스널한 전달 매체다. 지금처럼 새로운 잡지를 만들어 내고 거기에 편집장의 의지를 담아서 독자들 손에 건네주는 것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는 없었다고 생각된다.●
 
  <번역 金敬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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