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기술로 딥러닝 기반 약물 설계 모델이 실제 독성 물질까지 효율적으로 설계
⊙ ‘공공보건의 문제’가 아닌 ‘국제 안보의 핵심 변수’로 병원체 다뤄야
⊙ 중국, “미래 전쟁은 생명과학이 좌우한다”… 군민(軍民) 융합 체계 구축
⊙ 소련, 미국과 생물무기금지협약 맺었지만 생물무기 개발
⊙ 생물무기, 만들기도 은폐하기도 쉬워
박한슬
1991년생. 차의과학대 약학과 졸업, 연세대 통계·데이터사이언스 석사 / 《중앙일보》 《주간조선》 칼럼니스트, 서울시 청년정책자문단 / 저서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 《숫자 한국》 외 다수
⊙ ‘공공보건의 문제’가 아닌 ‘국제 안보의 핵심 변수’로 병원체 다뤄야
⊙ 중국, “미래 전쟁은 생명과학이 좌우한다”… 군민(軍民) 융합 체계 구축
⊙ 소련, 미국과 생물무기금지협약 맺었지만 생물무기 개발
⊙ 생물무기, 만들기도 은폐하기도 쉬워
박한슬
1991년생. 차의과학대 약학과 졸업, 연세대 통계·데이터사이언스 석사 / 《중앙일보》 《주간조선》 칼럼니스트, 서울시 청년정책자문단 / 저서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 《숫자 한국》 외 다수

- 2015년 8월 18일 서울 서초구청 광장에서 열린 전시 감염병 테러 대비 훈련. 사진=조선DB
이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실험실 기원설’을 집요하게 고집하는 중이다. 대중(對中) 협상을 위한 블러핑 카드일 수도 있고, 트럼프 대통령 본인이 실제 이런 음모론을 믿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 이면(裏面)이다. 음모론이든 전략적 계산이든, 어느 순간부터 ‘바이러스’가 생물학의 언어를 넘어 외교와 안보의 상징으로 변모했다는 점이다.
질병은 겉보기엔 예기치 못한 자연 재앙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느냐에 따라 정치적 대상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한 세기 동안 병원균은 백신 확보를 둘러싼 외교 전쟁, 발병 정보 공개를 둘러싼 국제 분쟁, 균주(菌株) 보유에 얽힌 특허 갈등의 중심에 있었다. 감염병은 점점 더 공중보건의 문제가 아닌, 국가 안보의 쟁점으로 확장되어 왔다. 생물학이 안보를 뒤흔들고, 실험실이 외교의 최전선이 되는 시대다. ‘생물 안보(biosecurity)’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도, 세계는 병원균을 두고 다퉈왔다. 이 긴 이야기의 시발점에는 ‘이름 붙일 수 있는 병’의 출현과 ‘측정 가능한 병원체’를 확보하려는 조용한 전쟁이 있었다.
박물학, 정의하는 권력의 기원
사람이 왜 병에 걸리는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예전에는 ‘기운이 허하다’ ‘신(神)의 노여움을 샀다’ 같은 주술적(呪術的) 해석이 일반적이었다. 세균이나 바이러스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병원체가 병의 원인이라는 사실이 정립된 건 19세기 후반, 고작 150년 남짓 전의 일이다.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 독일의 로베르트 코흐가 미생물학의 기틀을 닦으며 의학은 실험 가능한 과학으로 전환됐다. 병을 눈으로 보고, 시험관에 담고, 실험용 쥐에게 유발시킬 수 있게 되자, 의학은 전례 없이 실증적(實證的)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새로운 기준이 등장한다. 표준균주(標準菌株)다. 세균도 살아 있는 생명체인 이상, 균마다 미세한 개체 차이가 존재한다. 이 때문에 동일 조건에서 실험 결과를 비교하려면 기준이 되는 표준균주가 필요하다. 유전자 정보와 감염력, 항생제 감수성 등이 확정된 살아 있는 표본(標本) 말이다.
‘표본’이란 표현에서 미루어보듯, 현대 미생물학의 기원은 박물관에 가깝다. 18세기 제국주의 시대, 유럽 각국은 식민지에서 동식물 표본을 수집하고 분류해 이름을 붙이는 작업에 열을 올렸다. 이른바 박물학(博物學)의 시대였다. 병원균도 예외는 아니었다. 파스퇴르 이전의 초기 미생물학자들은 현미경으로 물 한 방울, 썩은 고기 조각에서 미생물을 관찰하고 형태와 움직임을 기록했다. 균은 실험 대상이라기보다는 표본 수집의 대상이었다. 박제(剝製)처럼 채집되고, 이름 붙여지고, 보관되었다. 오늘날의 표준균주 시스템은, 바로 이 박물학적 세계관 위에 실험실 중심의 과학이 덧대어진 결과다.
질병에 대한 해석의 주도권
자연스레 박물학의 중심이던 영국은 1920년대 표준균주보관소(NCTC)를 설립했고, 미국도 1925년부터 미국 표준균주보관소(ATCC)를 만들어 균주 보관을 제도화했다. 결핵균, 장티푸스균, 황색포도상구균 등 주요 병원균마다 식별(識別) 번호가 부여됐고, 전 세계 실험실 또한 이를 따라 같은 균을 공유(共有)하게 됐다.
실험 일관성을 위한 과학적 장치였지만, 정치적으로는 균에 국적(國籍)을 부여한 행위이기도 했다. 이때부터 균을 수집하고 이름 붙이고 보관하는 일은 단순한 기술 행정을 넘어섰다. 어떤 국가가 균을 정의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는 건, 질병 자체에 대한 해석의 주도권을 쥔다는 뜻이다. 백신을 만들고 진단 키트를 개발하려면 반드시 표준균주가 있어야 한다. 그 균주에 대한 접근성과 명명권(命名權)을 놓고,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표면적으로는 과학적 정합성(整合性)을 위한 기술 경쟁이지만, 그 이면은 그렇지 않다. 국제세균분류위원회(ICSP)는 병원균의 이름과 계통, 표준균주를 공식적으로 승인하는 기구지만, 누가 먼저 발견했는지, 균주가 어디에 기탁되었는지가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표준균주의 명명권을 선점(先占)한 국가는 해당 병원체를 기반으로 하는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에서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 말하자면 ‘병을 정의할 권리’를 둘러싼 과학계의 패권(覇權) 전쟁이다.
이런 긴장감은 시간이 흐르며 더 뚜렷해졌다. 표준을 둘러싼 다툼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학술 논문과 실험실의 경계를 넘어섰다. 병원균이 실제 무기로도 활용되기 시작해서다. 과학이 병을 치료하는 도구였던 시대는 점차 사라지고, 병원체가 외교와 전쟁의 언어로 전환되는 길목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731부대
![]() |
| 731부대장 이시이 시로. |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제국은 미국, 루마니아, 아르헨티나 등에 사보타주 요원을 파견해, 동물용 탄저균(炭疽菌)과 괴저균(壞疽菌)을 퍼뜨렸다. 병사를 직접 겨냥하기보다는, 적국의 말과 소를 감염시켜 병참선과 물류망을 마비시키는 방식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세균전’ 개념이 아직 본격화되진 않았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그 여파는 무시할 수 없었고, 1925년 제네바 의정서가 세균 무기의 사용을 국제적으로 금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의정서는 ‘사용’만 금지했을 뿐, ‘개발’이나 ‘보유’ ‘실험’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았다. 노골적으로만 쓰지 않으면, 뒤에서는 만들어도 괜찮다는 식의 허점을 암묵적으로 전제했다. 이 빈틈을 파고든 국가는 적지 않았고, 이 중에서도 단연 악명이 높았던 건 일본 제국이었다.
1930년대 중반, 일제는 만주 하얼빈 인근에 ‘관동군방역급수부(關東軍防疫給水部)’라는 이름의 기관을 설치했다. 명칭만 보면 급양·급수 부대처럼 보이지만, 실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로 그 731부대였다. 탄저균, 페스트균, 콜레라균 등 고병원성(高病原性) 병원체를 은밀히 배양하고,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까지 감행한 악명 높은 생물무기 개발 부대다. 군의관 출신인 이시이 시로(石井四郞)가 총책을 맡았고, 실험 대상은 포로와 죄수는 물론 민간인까지 포함됐다.
탄저균 실험 섬, 수십 년간 출입 금지
더 충격적인 사실은, 이러한 실험이 단지 실험실 수준에서 머문 것이 아니라 실제 전장에까지 투입되었다는 점이다. 1939년 하이라얼(海拉爾) 전투, 그리고 1942년 저장성(浙江省) 일대에서 벌어진 세균무기 살포 작전은 일본군이 생물무기를 실전에서 사용한 최초의 사례라 할 수 있다. 작전의 정확한 규모나 인명 피해는 지금도 완전히 파악되지 않았지만, 일본이 병원균을 ‘연구 대상’이 아닌 ‘전술 수단’으로 간주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조선인들도 이 실험의 대상이 되었다.
그런데 일본 의학사 자료를 들여다보면 더 미묘한 풍경도 관찰된다. 당시 경성제대 출신 의학자 일부가 만주 지역의 병리(病理) 연구에 참여한 것이다. 일본 본토가 연합군의 집중 공습을 받던 전쟁 말기, 일부 실험 인프라가 조선 지역으로 분산됐다는 설 역시 존재한다. 어쩌면 우리 또한 자의든 타의든 ‘후방 실험지’로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생물무기 개발이 일본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나치 독일 역시 곤충을 매개로 병원체를 확산시키거나, 식수원을 오염시키는 방식의 세균무기를 연구했다. 다만 실제 전장 투입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히틀러는 화학무기와 비교해 세균무기는 통제가 어렵다는 점을 들어 신중한 태도를 보였고, 군 내부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비해 연합군, 특히 영국과 미국은 더 조직적인 방어적 연구에 집중했다. 1942년 영국은 스코틀랜드 북서부의 그뤼너드섬(Gruinard Island)에 탄저균을 살포하고 수십 마리의 양을 풀어놓는 실험을 진행했다. 양들이 빠르게 폐사(斃死)하며 탄저균의 치명성이 바로 확인됐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섬 전체가 심각하게 오염돼 이후 수십 년간 출입이 금지될 정도였다. 생물무기의 진정한 위력이다. 미국도 비슷한 시기인 1943년, 메릴랜드주의 포트 데트릭(Fort Detrick)에 대규모 생물무기 연구소를 세우고, 보툴리눔 독소, 브루셀라균, 말라리아균 등을 이용한 실험에 착수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일과 일본의 생물무기 개발 자료는 거의 고스란히 연합군의 손에 들어갔다. 미국과 영국은 물론 소련까지도 관련 자료를 확보하게 되면서, 이후 냉전기 생물무기 경쟁의 서막이 조용히 열리기 시작했다.
냉전기의 생물무기 개발 경쟁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일과 일본이 비밀리에 개발했던 생물무기 자료는 고스란히 승전국의 전리품이 되었다. 미·소 양국은 이 기술을 바탕으로 냉전이 본격화되던 1950년대에 각자 생물무기 개발에 착수했다. 표면적으로는 방어적 연구로 불렸지만, 공격과 방어의 경계는 점점 흐려져갔다. 포트 데트릭을 중심으로 고위험 병원체를 배양하고, 탄저균 살포 실험과 동물 감염 실험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전장 감염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하는 과정에서 어떤 실험은 마치 실전(實戰)처럼 진행됐다. 가령 1950년, 미국은 샌프란시스코 앞바다에서 병원균 두 종을 살포하는 ‘해양살포작전(Operation Sea-Spray)’을 비밀리에 수행했다. 해양 도시에 대한 감염 취약성을 평가한다는 명목이었다. 1966년에는 뉴욕 지하철 환풍구를 통해 무해한 세균을 뿌리는 방식으로 도시 내 확산 실험도 진행했다. 이 모든 실험이 ‘공공 안전을 위한 예방적 조치’로 포장됐지만, 정작 그 실험 대상이 된 미국 시민들은 어떤 고지(告知)도 받지 못했다. 특히나 흑인 인구를 대상으로 자행한 몇 차례의 인체 실험은 현재까지도 미국 흑인 인구 집단이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부작용을 만들었다. 냉전의 그림자 아래 벌어진 조용한 내전(內戰)이었다.
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당연히 소련의 경계심을 자극했다. 냉전은 본질적으로 ‘보이지 않는 공포’가 지배하는 정보 비대칭(非對稱)의 체제였고, 상대방의 기술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불안은 곧 ‘더 많이, 더 먼저’라는 경쟁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다. 생물무기 분야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런 경쟁의 긴박함을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병원체가 바로 천연두(Smallpox)였다. 세계보건기구는 1960년대 후반부터 천연두 박멸 캠페인을 전개했고, 2025년 4월호 본지 〈트럼프의 국제개발처 해체〉에서도 언급했듯, 이는 국제 보건 협력이 거둔 첫 성공 사례로 기록된다.
하지만 문제는 박멸 이후에 터졌다. 이제 더는 인류를 감염시킬 일이 없어진 균주를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세계보건기구는 모든 국가에 천연두 균주의 완전 폐기를 권고했다. 그러나 미국과 소련은 이를 거부했다. 공식 입장은 같았다. ‘백신 개발 및 연구 목적에 따른 보관’이라는 것이었다. 이 결과, 오늘날 합법적으로 천연두 균주를 보관하고 있는 장소는 단 두 곳, 미국 질병통제센터(CDC)와 소련 시절부터 이어진 러시아 벡터연구소(Vector Institute)다. 양국 모두 언젠가 이 병원체를 무기화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것이다. 상대를 믿지 못하니 벌어진 일이다.
이런 식으로 생물무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미국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닉슨 대통령은 1969년 “모든 공격용 생물무기 개발을 중단하겠다”라고 발표했고, 세계보건기구와 협력하여 균주 보유 수를 제한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리고 1972년, 제네바에서는 생물무기금지협약(Biological Weapons Convention)이 공식 체결됐다. 이는 1970년의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같은 흐름 위에 놓인, 인류 역사상 최초의 생물무기 전면 금지 조약이었다. 서명국에는 미국과 소련을 비롯해 주요 강대국이 모두 동참했다. 국제사회는 이를 두고 큰 진전을 이룬 듯 환영했지만, 정작 협약의 실효성은 미약했다. 현재의 핵확산금지조약과는 달리, 생물무기금지협약에는 실사(實査) 메커니즘이 없었기 때문이다. 각국이 실제로 병원체를 폐기했는지, 관련 연구소를 폐쇄했는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신고는 자율이었고, 허위 보고나 미보고에 대해 제재할 수단도 없었다.
냉전기 기준으로는 이것이 ‘최선의 타협’이었는지 모르지만, 제도적 허점은 명백했다. 그리고 소련은 이 허점을 너무도 치밀하게 활용했다. 겉으로는 조약에 서명하고 협력하는 듯 보였지만, 그 이면에서는 완전히 다른 게임을 준비하고 있던 것이다.
소련의 비밀 생물무기 개발
![]() |
| 소련의 생물무기 프로그램을 폭로한 카나트잔 알리베코프. |
하지만 이 환상은 머지않아 깨졌다. 1992년, 소련 출신 생물학자 카나트잔 알리베코프(Kanatzhan Alibekov)가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단순한 생물학자가 아니었다. 냉전 시기 내내 소련의 생물무기 프로그램을 총괄한 핵심 인물이었고, 국가 최고 기밀 등급의 실험실들을 관리한 고위 간부였다. 그가 망명 후 내놓은 증언은 전 세계를 경악게 했다. 소련은 생물무기금지협약(BWC)에 서명하고도 20년 가까이 단 한 해도 생물무기 개발을 멈춘 적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 중심에 있던 조직은 비오프레파라트(Биопрепарат). 명목상으로는 의약품 개발과 백신 생산을 위한 민간 연구기관이지만, 실상은 고병원성 병원체의 대량 배양과 무기화를 목표로 설계된 군산(軍産)복합체였다. 약 40여 개의 시설로 구성된 이 거대한 조직은 정규직 과학자만 3만 명에 달했다. 탄저균, 천연두, 마버그, 에볼라, 흑사병균 등 고위험 병원균들이 실험 대상이었고, 탄두에 탑재 가능한 형태로 분말화하는 기술 연구까지 병행됐다.
더 놀라운 건, 냉전이 공식적으로 막을 내린 이후에도 이 거대한 생물무기 개발 조직이 몇 년간 해체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1991년 소련은 해체되었지만, 비오프레파라트의 냉동고 속에는 여전히 위험한 병원균들이 잠들어 있었고, 연구소에 남겨진 과학자들은 월급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됐다. 위험한 균과 그 균을 다룰 역량을 갖춘 고급 인력이 붕괴된 소련의 잔해 속에 내팽개쳐져 있던 것이다.
북한, 소련 생물학자들과 접촉설
이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자 국제사회는 긴급히 대응에 나섰다. 미국과 유럽은 구소련 지역 국가들과의 협력 아래 협력적 위협감축(Cooperative Threat Reduction)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요컨대 자금과 기술을 지원할 테니, 병원균을 폐기하고 시설을 폐쇄하라는 조건부 제안이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냉전 말기의 혼란기에 고위험성 병원체들이 일부 유출되지 않았다는 확신은 누구도 할 수 없었다. 북한이나 리비아가 잔존 소련 생물학자들과 접촉했다는 보도도 있고, 주변국이 균주(菌株)를 빼돌렸다는 의혹도 나돌았다.
특히 소련의 본토(本土)인 러시아는 2000년대 이후에도 생물무기 전면 폐기 선언에 대해 국제적 인증을 받지 못한 상태다. 일부 비오프레파라트 시설은 민간 백신 센터로 개조되었지만, 그 내부에 고위험 병원체가 여전히 보관돼 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미국과 러시아는 상호 불신 탓에 상호 검증을 거부했고, 생물무기금지협약하의 검증 프로토콜은 2001년 이후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이 사건은 옛 소련이 생물무기금지협약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고발하는 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대체 어떻게 했기에 이토록 대규모의 생물무기 계획이 망명자 한 명의 증언이 있기 전까지 서방 정보기관에 거의 포착되지 않았냐는 것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도, 영국 비밀정보국(MI6)도 비오프레파라트 산하의 실험 시설을 ‘소규모 백신 연구소’ 정도로 오판(誤判)했고, 세계보건기구 역시 소련 측이 제출한 공식 보고서를 그대로 수용했다.
결국 냉전기 소련의 비밀실험이 알려준 건 두 가지다. 생물무기는 기술적으로 만들기 어렵지 않고, 은폐하기는 훨씬 더 쉽다는 것. 이 말이 뜻하는 바는 명확하다. 국가 간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생물무기는 언제든 다시 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국제적 공조의 필요성이 비로소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병원균을 둘러싼 정보 공유, 균주 저장소의 관리 표준, 백신 개발의 투명한 절차 등에 있어 ‘공공보건의 문제’가 아닌 ‘국제 안보의 핵심 변수’로서 병원체를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바이러스 주권’
![]() |
|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이 병은 ‘중국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혹은 ‘우한 폐렴’으로 불렸다. 사진=조선DB |
국제 보건 거버넌스도 예외는 아니다. 생물무기 감시와 감염병 대응이라는 명분 아래 구축된 글로벌 협력 체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개발도상국의 생물 자원을 선진국이 착취하는 구조로 변질됐다.
바이러스는 주로 가난한 열대 지역에서 출현하고, 백신은 선진국의 자본과 기술력으로 만들어진다. 이상적으로는, 세계보건기구의 회원국들은 자국에서 분리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샘플을 세계보건기구에 제공하고, 세계보건기구는 이를 집계해 백신 제조사에 정보를 넘겨 인류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병원체 샘플을 제공한 국가는 아무런 대가를 받지 못하는 건 물론 만들어진 백신을 구매할 돈도 없다. 하지만 그 병원체를 이용해 백신을 개발한 선진국 제약사는 막대한 이윤을 벌어들인다. 생물 자원이 일방적으로 강탈되는 셈이다. 이 불균형 구조에 대해 불만이 폭발한 적도 있었다.
2006년, 인도네시아 보건당국은 자국에서 발생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5N1) 바이러스를 세계보건기구에 제공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우리가 바이러스를 제공하는데, 그 바이러스를 바탕으로 만든 백신은 만져보지도 못한다”면서.
이 사건을 계기로, 바이러스 주권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국제 공론(公論)의 장(場)에 등장했고, 이에 세계보건기구는 2011년 새로운 체계를 도입한다. 팬데믹 인플루엔자 대비 체계(PIP Framework)다. 샘플 제공국에 대한 ‘이익’을 보장, 백신·기술·재정의 형태로 보상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실제 위기 상황이 닥치자 제도의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당장 근래의 코로나19 사태가 대표적이다.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자 선진국들은 백신을 선점했고, 개발도상국에 대한 몫은 턱없이 부족했다.
‘탄저균 테러’
이런 구조적 균열은 테러에 의해 더 깊어지고 말았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미국 전역에 흰 가루가 든 봉투가 배달되었고 봉투를 연 이 중 수십 명이 탄저균에 감염됐다.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탄저균 테러’다. 이 결과, 단지 병원균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해당 국가는 잠재적 테러 국가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생화학 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의심받던 이라크는 곧 ‘악의 축’으로 규정됐고,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
문제는 당시 유통된 탄저균이 외부 테러 단체의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조사 결과, 사용된 균주는 미국 육군 산하의 한 연구기관에서 관리하던 표준균주였다. 다시 말해, 이 사건은 외부 공격이 아닌 내부 균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탄저균 사건 이후, 미국은 생물 안보 관련 입법에 박차를 가했다. 생물방어법(BioShield Act)을 포함해 수십 건의 법안이 통과됐고, 실험실 보안 강화, 균주 관리 시스템 정비, 연구 윤리 기준 재정립 등이 이뤄졌다. 동시에 생물 위협 대응 전담 조직이 신설되었고, 민감한 균주 정보의 국제 공유는 대폭 제한되었다.
이처럼 생물 안보 체계는 공동의 위협에 대한 협력이라는 이상 아래 구축되었지만, 실제로는 자국의 자원을 보호하면서도 타국의 정보를 취득하려는 정보전의 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누가 먼저 균주를 확보했는가, 누가 그것을 바탕으로 백신을 개발했는가, 그 기술과 수익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그리고 자국이 보유한 위험한 균주에 타국이 접근할 가능성을 얼마나 차단할 수 있는가. 이런 현실적인 질문들 앞에서 다양한 국제기구가 내세우는 다자협력(多者協力)이라는 원칙은 힘을 잃는다.
앞으로 이 균열은 더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압도적 영향력이 유지되던 단극 체제가 붕괴되고, 복수의 강대국이 경쟁하는 다극(多極) 체제가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 자체가 아닌, 국제정치적 변화가 위협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신흥 바이오 위협
냉전 종식 이후 한동안 미국이 주도하던 국제 질서는 점차 무너지고 있다. 안보, 무역, 과학, 보건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세계는 세력권(勢力圈) 체제로 재편되고 있으며, 생물 안보 또한 예외가 아니다. 과거에는 세계보건기구, 미국 질병관리본부(CDC), 유럽 질병관리본부(ECDC) 같은 기관들이 규범을 주도하고 기준을 설정했다. 그러나 지금은 각국이 제각기 전략을 수립하고, 자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방어 체계를 강화하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중국이다. 중국은 “미래의 전쟁은 생명과학이 좌우한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생물방위·생물공격·생물경제를 통합한 국가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군과 민의 경계를 허문 군민(軍民) 융합 체계가 방역 역량과 생물무기 기술, 유전자 편집 등 생명공학 전반을 동시다발적으로 육성하며, 사실상 하나의 생물 주권 체제를 구축 중이다. 2020년 이후 중국이 자국 바이오 기업에 대한 데이터 통제력을 급격히 높인 것도 이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감염병 정보는 이제 더 이상 단순한 보건 문제가 아니라, 전략적 자산이자 외교 카드다. 러시아도 다르지 않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는 다자협력 체계에 대한 불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자국 내 고위험 병원체 연구소들은 여전히 극도의 보안 아래 보호되고 있다. 생물무기금지협약의 검증 메커니즘을 줄곧 반대해 온 주체가 바로 러시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전략은 일관되기조차 하다.
‘디지털 생화학무기’
그러나 다극 체제하에서 가장 우려되는 변수는 오히려 비국가 행위자(non-state actors)들이다. 요즘은 굳이 병원체가 없더라도, 유전체(遺傳體) 정보와 생물학적 합성 기술만 있다면 언제든 ‘국가 위협’ 수준의 생물무기를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공상과학 소설 얘기가 아니다. 2002년에는 미국에서 천연두와 유사한 바이러스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고, 2018년 캐나다 앨버타대 연구진은 불과 10만 달러와 두 달의 시간으로 새로운 바이러스 병원체를 복제(複製)했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이 결합하면서 상황은 훨씬 더 복잡해졌다. 단백질 구조 예측, 병원체 변이 분석, 독성(毒性) 물질 설계 같은 작업들이 이제는 자동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딥러닝 기반 약물 설계 모델이 실제 독성 물질까지 효율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며, ‘디지털 생화학무기’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생물무기의 위험은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외려 현대에 들어와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현재진행형 위협인 것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한국은 어떤 전략을 취해야 할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독자 생존이라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감염성 병원체에 대한 정보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고 교환되는 네트워크 속에 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 병원균 정보, 백신 플랫폼, 유전체 데이터, 병리 모델 등을 독자적으로 축적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서다.
결국 한국이 취해야 할 방향은, 미국·유럽·일본 등 전통적 보건 안보 파트너들과의 정보 공유, 대응 훈련, 공동 백신 개발, 실험실 데이터 연계 같은 다층적(多層的) 협력 체계에 깊숙이 들어가는 일이다.
보수 세력의 실책(失策) 탓에 정권이 교체된 마당에, 현 정부에 이런 당부를 하는 것이 다소 어색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안보의 관점에서만큼은, 과거 어느 보수 정권보다도 더욱 확고하게 글로벌 가치 동맹에 기반한 협력 구조를 수립해야 할 시점이다. 국제 질서의 재편 상황에서 감염병 정보의 교환은 단순히 의학적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략의 문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