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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제재 北 미술품, 국내 쇼핑몰서 버젓이 판매 중

“그림 판매 수입 대부분 김정은에게 상납”

글 : 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gasou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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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 간 그림 거래도 가능… “10점에 200만원”
⊙ “위작 가능성 높아 투자 가치 전혀 없어”라는 주장도
⊙ 만수대창작사 작가, 대북 제재 이후인 2018년 광주 비엔날레 참가
⊙ “北, 작가 소속 숨기는 방식으로 해외 전시·판매 돕고 있어”(이현승 글로벌피스재단 북한전략수석위원)
⊙ “국제사회에 대북 제재 이행 안 하는 걸로 비쳐”(박충권 국민의힘 의원)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2018년 9월 19일 평양 만수대창작사를 찾아 방명록에 글을 남기는 모습이다. 사진=뉴시스
  최근 북한의 미술 창작 단체인 만수대창작사의 그림이 국내 온·오프라인상에서 거래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만수대창작사는 1959년 북한 김일성의 지시로 설립된 단체로, 지난 2017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만수대창작사를 대북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이들은 아프리카나 동남아 등지에서 대형 조형물 혹은 동상 건립 사업 등을 도맡아 수천만 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이기도 한다. 이렇게 벌어들인 외화가 핵개발 등에 활용될 수 있다는 게 유엔 안보리 판단이었다.
 
  9월 29일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화방은 만수대창작사 소속 황영준이 그린 그림을 95만원에 판매하고 있다고 파악했다. 국내 온라인 미술품 경매 사이트도 2017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만수대창작사 소속 작가들의 그림 150점을 경매에 부쳐왔다.
 
 
  “280만원까지 할인 가능”
 
  기자는 이 화방을 찾아 해당 그림의 유통 경위에 대해 물었다. 화방 관계자는 “의뢰인 측이 그림을 화방에 위탁해 판매가 이뤄진 것”이라며 “의원실의 문제제기 후 의뢰인이 그림을 회수해갔다”고 했다. 이어 “우리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그림 판매를 중지했다”며 “더는 북한 그림을 취급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럼에도 “진품임을 보증한다”고 강조하며 북한 미술품을 판매하는 업체들이 인터넷상에서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기자가 확인한 미술품 판매 업체 2곳은 ‘만수대창작사 단장’ ‘만수대창작사 실장’ 등 북한 내 이들의 계급을 그대로 홍보하며 그림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 중 A 업체는 김성민의 그림 한 점을 350만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김성민은 1992년 북한 최고 예술가에게 주어지는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았다. 1994년 김일성 사망 당시엔 영결식용 대형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1999년 만수대창작사 단장에 오른 김성민은 현재 부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18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당시 만수대창작사를 찾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직접 안내하기도 했다. 문 전 대통령은 만수대창작사 방명록에 ‘예술이 남과 북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기를’이라는 메시지를 적었다. 같은 해 9월부터 11월까지 광주 비엔날레가 열렸는데 이런 사회 분위기 덕인지 이 행사에 김성민의 그림 〈어머니, 막내가 왔습니다〉가 출품됐다. 이 그림은 대북 제재가 시작된 이후인 2018년 제작된 것임에도 당시 정부는 이를 국내에 반입했다.
 
  A 업체는 그의 이력을 홍보하며 “김성민은 ‘김일성상계관인’ 칭호를 받았다. 우리로 치면 최고 훈장을 받은 것” “여러 나라에서 열린 미술전람회에서 금메달을 수여하는 등 조선화(북한 그림)를 널리 알리는 데 이바지했다”고 썼다. 다만 A 업체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대북 제재가 시작되기 한참 전에 들어온 그림”이라며 “2010년 이후로는 북한 그림이 못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해당 그림 구매가 가능한지 묻는 질의에 “가능하다”며 “280만원까지 금액을 낮춰줄 수 있다”고 했다.
 
 
  금융위, ‘금융거래 등 제한 대상자’ 지정
 
서울 인사동 일대 화방을 통해 확인한 만수대창작사 소속 오영성의 그림이다. 사진=월간조선
  B 업체는 800여 점이 넘는 북한 그림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일부는 판매가 완료됐다며 현재 ‘품절’ 표시가 돼 있었다.
 
  이 업체는 오영성의 그림을 70만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오영성은 화조화(花鳥畵)의 대가로 불리며 인민예술가보다 한 단계 아래인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았다. 그 역시 만수대창작사 소속으로 활동하는 작가다. 묘향산 풍경을 그린 김철의 그림도 30만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김철은 공훈예술가보다 한 단계 낮은 등급인 ‘1급 화가’ 칭호를 받은 인물로, 그의 그림 〈눈 속을 달리는 범〉 또한 2018년 광주 비엔날레에 출품된 바 있다.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인사동 일대 화방의 도움을 받아 북한 그림을 판매한다는 개인 수집가와 접촉할 수 있었다. 이 수집가가 판매를 희망하는 그림은 10점으로 모두 오영성의 그림이었다. 그는 “20여 년 전 중국을 오가며 장사를 하던 지인의 권유로 그림을 샀다”며 “당시 이 지인이 ‘오영성은 북한에서 유명한 작가니 몇십 년 뒤 비싼 값에 되팔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림 10점 전부를 총 200만원에 판다고 했다.
 
  그러나 유엔 회원국들은 만수대창작사 작품 구매·소유·이전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도 지난 2016년 12월 테러자금금지법에 따라 만수대창작사를 ‘금융거래 등 제한 대상자’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금융위 허가 없이 해당 그림에 대해 거래를 하거나 거래 상대방이 제한 대상자임을 알면서 허가 없이 거래를 하면 형사처벌 대상(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이 된다.
 
 
  인천시 1억5000만원 후원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만수대창작사는 북한 정권의 외화벌이 앞잡이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 상품 박람회가 열렸는데 이들의 그림이 전시됐다. 평양에서 러·북 정상회담이 열린 지 일주일 만이었다. 당시 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유엔 안보리에서 주도한 무기한 대북 제재는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고사 직전에 놓인 북한 경제에 숨통을 틔워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었다. 이 박람회에서 조선백호무역회사는 오영성의 그림을 포함한 만수대창작사 소속 작가들의 그림을 전시했다. 조선백호무역회사 또한 유럽연합(EU)과 우리 정부의 대북 제재 대상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에는 만수대창작사 소속 작가 그림이 여러 차례 국내에 소개되며 논란이 일었다.
 
  2018년 인천시가 후원한 전시 〈조선화의 거장전-인천, 평화의 길을 열다〉에 만수대창작사 그림 100여 점이 전시됐다. 인천시는 이 전시에 남북교류협력기금 1억5000만원을 후원했다. 같은 해 경기도 고양시가 주최한 전시 〈남북 평화미술전 남북, 북남 평화를 그리다〉에도 김성민 등 만수대창작사 작가 6명의 작품이 전시됐다. 앞서 언급한 2018년 광주비엔날레에는 〈북한미술: 사회주의 사실주의의 패러독스〉라는 북한 미술 섹션을 만들어 김성민, 김철 등 만수대창작사 작가 그림을 대대적으로 전시했다.
 
  북한 노동당 39호실 산하 선박무역회사 부대표를 지내다 탈북한 이현승 글로벌피스재단 북한전략수석위원은 “러시아는 대북 제재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니 해외 판매 루트로 좋은 선택지”라며 “합작회사나 러시아 대리인을 통해 유럽에 그림을 팔려는 의도가 깔렸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림 판매 수입 대부분은 혁명 자금(충성 자금)으로 김정은에게 상납된다”며 “작가들에게는 식량이나 식품, 조금의 생필품 보상이 있다. 작가들에게 공식적으로 작품 수입을 공유하는 일은 없다”고 밝혔다.
 
  이 위원은 “만수대창작사가 국제 제재를 받으면서 북한 당국이 작가들의 소속을 숨기는 등 제재를 우회하는 방식으로 이들의 해외 전시 활동이나 그림 판매를 돕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엔이 북한 선박회사에 제재를 가하니 북한은 선박 1척당 회사 1개를 만들어 운영한다”며 “그러면 회사가 제재를 받아도 그 선박만 영향을 받을 뿐 다른 선박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같은 방식으로 미술 관련 회사도 여러 개 만들어 만수대창작사 작품임을 밝히지 않고 판매할 확률이 높다”고 덧붙였다.
 
 
  “‘테러방지법’에 저촉될 수도”
 
  이와 관련해 박충권 의원은 “만수대창작사가 제작한 그림을 사들이는 등 금융거래를 할 경우 테러자금금지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엔 제재 대상이자 국내법에서 금지한 만수대창작사의 그림이 유통된다는 것은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이 대북 제재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것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며 “유통 경로와 매수인 등의 현행법 위반 여부를 자세히 검토하고 안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9월 30일 정례 브리핑에서 “만수대창작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371호에 따른 자산 동결 및 재원 제공 금지 대상이자 우리 정부의 독자 제재 대상으로 지정돼 있다”며 “만수대창작사와 외환·금융 거래 시 한국은행 총재와 금융위원회의 사전 허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구 대변인은 또 “특정한 전제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일반론적으로 만수대창작사의 그림임을 알고 북한에서 국내로 반입하는 행위가 안보리 제재 위반이 될 수 있다”며 “이를 인지하고도 개개인 간 매매하는 행위 자체는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를 이행하기 위한 국내 법률인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에 저촉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수십 년 전에 구매했고 우리 국내법에 저촉되는 사항이 없다면 문제가 없을 수 있다”면서 “저촉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할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미술 전문가들은 만수대창작사뿐만 아니라 북한산 미술품 판매 자체가 북한 정권의 외화벌이 수단 중 하나라고 말한다. 덧붙여 북한 당국의 지시를 받은 화가들이 북한 내 보관 중인 유명 그림이나 유명 화가의 그림을 모방해 수출하거나 북한 화가들이 중국 등 해외에 머물면서 수요에 따라 위작을 만들어 판매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100% 넘어 200% 위작”
 
골동품 수집가 박모씨가 중국 창바이에서 구매한 북한산 그림. 박씨는 이 그림을 고려 시대에 그려진 관음보살도라고 믿고 샀으나 가짜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사진=월간조선
  한 화방 관계자는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도 중국 브로커를 통해 북한 내 미술품을 가져올 순 있다”고 말했다. 골동품 수집가가 브로커와 접촉한 뒤 이 브로커가 중국 국경수비대 내 지인과 연락, 북·중 국경에서 북한 측과 만나 그림을 넘겨받아 이를 국내로 들여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이런 식으로 북한산 작품을 얻는다고 해도 이는 100%를 넘어 200% 위작(僞作)”이라고 강조했다.
 
  2000년대 중반 중국 창바이로 건너가 북한 그림을 산 골동품 수집가 박모씨는 “창바이엔 미술품 브로커가 많은데 이들과 접선해 ‘북한에 있는 이런 그림을 갖고 싶다’고 말하면 며칠 뒤 구해다 준다”면서 “압록강 폭이 좁은 구역에서 한밤중에 브로커와 북한 군인이 만나 고무 대야 같은 것에 그림을 넣어 강 반대편으로 전달해준다”고 말했다. 박씨는 “고려 시대 제작된 관음보살도라고 믿고 우리 돈 약 180만원에 이를 사들였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자세히 알아보니 실력 좋은 화가가 근래에 그린 가짜였다”고 말했다.
 
  대한명인 배첩장(서화에 종이·비단 등을 붙여 족자·액자·병풍 등을 만드는 기능 보유자) 출신의 한 미술품 복원 전문가는 “북한에 실제 국보, 보물급 작품이 여럿 존재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북한 당국도 유명 작가의 산수화나 불교화 등이 우리나라와 해외 시장에서 수십억, 수백억원에 거래된다는 것을 잘 알 텐데 몇백만원 헐값에 판매하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종종 중국에서 귀한 북한산 그림을 샀다며 복원을 요청하는 손님을 상대한다. 그런데 그간 본 모든 북한산 작품은 위작이었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인민예술가 지위에 올라도 당국으로부터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니 본인의 위작을 만들어 암암리에 해외에 판매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런 이유로 국내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만수대창작사 그림 역시 위작일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의 한 화방 관계자는 “북한 그림이 향후 값이 오를 가능성은 ‘제로’”라며 “투자 가치가 전혀 없고 대부분 위작이니 절대 사지 말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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