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북자 이민복·박상학씨 등이 對北 삐라 살포 앞장
⊙ 북한 주민들은 KBS사회교육방송이 약화된 후 자유아시아방송 즐겨 들어
⊙ 탈북자, 前 主思派들이 對北 민간방송 주도
⊙ 북한 주민들은 KBS사회교육방송이 약화된 후 자유아시아방송 즐겨 들어
⊙ 탈북자, 前 主思派들이 對北 민간방송 주도

- 지난 11월 5일 자유북한연합과 납북자가족모임은 경기도 파주 임진각에서 삐라 10만장을 대형 풍선에 달아 북한으로 날려 보냈다.
金正日(김정일) 정권의 이 같은 강경대응은 역설적으로 탈북자들이 보내는 삐라의 효과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효과가 특히 좋은 지역은 황해도 지역이다. 이곳은 60만명의 인민군이 밀집해 있고, 곡창지대로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金日成(김일성)·김정일 父子(부자) 관련 비난을 한번도 듣거나 본 적이 없는 젊은 세대 군인들에게 삐라는 偶像(우상)숭배를 허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민복(50) 기독탈북인연합회 대표는 북한 농업과학기술원 연구원 출신으로 1995년 脫北(탈북)해 한국에 정착했다. 그는 정보기관의 신문 과정에서 일부 탈북자들에 대한 가혹행위가 발생하자 ‘자유북한인협회’를 결성해 정부와 맞섰다.
외곬 성격의 이 대표는 작업복 차림으로 대북삐라 살포용 풍선 관련 자료가 담긴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풍선을 이용해 북한에 삐라를 살포하는 것은 탈북자들이 김정일 정권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역설해 왔다.
![]() |
| 북한으로 보내는 삐라. |
하지만 金大中(김대중)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직전인 2000년 4월 “삐라 살포를 금지해 달라”는 북한 측의 요구를 받아들여 사실상 삐라 살포를 전면 중단했다.
식량난으로 북한의 민심이 흔들리고 있던 중요한 시기에 한국 정부가 삐라 살포를 중단한 것에 크게 실망한 이민복 대표는 끈질긴 연구 끝에 2003년부터 원시적인 방법으로 풍선을 날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 대표에게 선뜻 동의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국방부가 대북 심리전 차원에서 하던 정교한 작업을 개인이 할 수 있겠는가”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풍선에 사용되는 헬륨가스의 가격이 비싼 것도 문제였다. 이 대표는 비교적 값이 싼 수소가스를 넣어 대형 비닐로 애드벌룬을 만들었다. 단계별로 高空(고공)에서 삐라 주머니가 터질 수 있도록 하는 타이머도 개발했다. 노트북 컴퓨터로 바람의 방향을 측정할 수 있는 노하우도 터득해 북한으로 날려보내는 풍선 대부분이 북한 땅에 진입할 수 있게 됐다.
“당신들 통전부 요원이야, 통일부 직원이야?”
![]() |
| 이민복 기독탈북인연합회 대표. |
2003년 북한민주화운동본부 창립에 참여하면서 북한인권운동에 뛰어든 박 대표는 盧武鉉(노무현) 정권 시절 각종 보수단체 행사에 앞장서 소위 ‘수구 꼴통’으로 낙인 찍혔다. 작년 大選(대선)을 앞두고는 유화적인 對北(대북)정책을 立案(입안)한 鄭亨根(정형근) 前(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에게 계란을 투척했다.
2004년부터 이민복 기독탈북인연합회 대표의 풍선 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그는 북한민주화운동본부 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이 대표의 풍선 사업에 적극 동참했다. 풍선 기술을 전수 받은 것도 이때였다. 당시 일부 북한민주화운동본부 회원들은 “별 효과가 기대되지 않는 풍선사업에 너무 치중한다”고 비판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후 박 대표는 “선교보다 김정일을 타도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에서 이민복 대표와 헤어져 올 1월 ‘자유북한운동연합’을 결성, 풍선 사업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崔成龍(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회장이 가세했다. 최 회장은 “삐라를 통해 민간인을 납치한 북한정권을 규탄하고, 북한에 있는 납북자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풍선 사업을 돕는다”고 말했다.
![]() |
| 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회장. |
박 대표는 삐라에서 김정일의 여인들과 家系圖(가계도)를 도표로 만들어 설명하고, 김정일의 호화생활을 고발하는 한편, 북한이 망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金 父子(김부자)의 책임이라고 비판한다.
박상학 대표는 올 초부터 북한에 풍선을 날릴 때면, 삐라 사이에 1달러와 10위안 지폐를 끼워 넣고 있다. 중국 돈 5위안이면 북한의 한 달 생활비다. 10위안이면 두 달을 살 수 있다. 박 대표는 “이 사실을 알면 북한 사람들은 풍선 찾아 산이고 들이고 몰려다닐 것이다. 풍선이 하늘로 오르면 노동당의 권위는 땅에 떨어진다. 풍선은 자유의 폭풍과 같다”고 말한다. 비용은 5000원, 1만원 하는 식으로 지지자들이 푼푼이 보내 준 후원금에 의지한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정부로부터는 지원은커녕 제지만 들어온다. 10월 10일 풍선날리기 행사를 앞둔 지난 10월 초, 통일부 공무원 두 명이 박 대표를 찾아왔다. 그들은 “남북관계가 경색되니 풍선을 날리지 말아 달라”고 주문했다. 이들에게 박 대표는 이렇게 쏘아붙였다.
“남북관계 경색? 금강산에서 赤手空拳(적수공권)인 박왕자씨를 쏘아 죽인 노동당이 남북관계 경색의 主犯(주범)인데, 누가 무얼 경색시켜? 당신들 누구야? 대한민국 헌법 지키자는 통일부 직원이야? 노동당 통일전선부 요원이야? 날래 신분증 까 보라우!”
통일부 공무원들은 일단 돌아갔지만, 며칠 후 “정말 갈 거냐?”고 전화를 걸어왔다. 10월 10일 이후 박 대표는 열흘 사이에 수신처 불명의 怪(괴)전화를 네 번이나 받았다. 인근 송파경찰서에서는 박 대표에게 24시간 경호를 붙였다.
KBS를 대신한 RFA와 VOA
![]() |
| 지난 10월10일 서해상에서 북한인권운동가 수잔 솔티 여사(오른쪽)와 함께 북한으로 보내는 삐라를 날려 보내는 박상학 자유북한연합 대표. |
북한 주민들도 모르는 북한의 실상을 생생하게 전하면서 사회교육방송은 북한의 ‘인민방송’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김대중 정권이 출범하여 김정일 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이 차츰 사라지면서 KBS사회교육방송의 인기도 떨어졌다.
2003년 7월 11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한 측은 상호비방 방송 중단을 요구했다. 같은 해 8월 1일, 북한은 대남비방 방송인 ‘구국의 소리’ 방송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먼저 이런 제안을 한 것은 수백만명이 굶어 죽은 ‘고난의 행군’ 이후 외부 정보에 눈뜨기 시작한 주민들의 욕구를 방치할 경우 커다란 체제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이 ‘구국의 소리’ 방송을 중단키로 한 것은 이 방송이 한국 국민들에게 전혀 영향력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유북한방송
![]() |
| 자유북한방송 앞으로 몰려와 방송중단 요구 시위를 벌이는 통일연대 등 좌파단체 회원들. 뒤쪽에서는 자유북한방송 직원들이 북한의 실상을 담은 사진을 들고 좌파단체들에게 항의했다. |
그 공백을 대신한 것이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과 미국의 소리(VOA)방송이었다. 특히 북한을 겨냥한 RFA는 KBS사회교육방송 수준의 전파 出力(출력)으로 북한 전역에서 청취가 가능했고, 김대중·노무현 정권 이후 KBS대북방송이 포기한 대북 비판에 앞장섰다.
RFA 등은 해마다 4월에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북한 인권의 날’ 행사 때 미국을 방문하는 탈북자단체 회원들을 초청해 그들로부터 “북한 주민들의 입장에서 어떻게 방송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
미국에서 북한인권법이 통과된 이후 대북방송에 대한 지원이 확대되면서 RFA와 VOA 등은 대북방송을 확대하고 있다. 이들은 開局(개국) 이래 처음으로 서울지국을 개설하고 KBS 등에서 근무한 베테랑급 작가들과 기자들을 영입해 대북방송을 강화하고 있다.
2004년 4월 김정일 정권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탈북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자유북한방송이 문을 열었다. 그러자 한총련 등 親北(친북)단체들은 연일 자유북한방송 앞에 몰려가 시위를 벌였다. 김정일 정권은 노동신문·중앙방송 등을 통해 ‘반역자들의 개소리’라며 연일 자유북한방송을 비난했다.
이들의 맹공으로 출범한 지 한 달도 안돼 자유북한방송은 중단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보도되자 독지가들이 나섰고, 이들의 도움으로 자유북한방송은 방송을 이어갈 수 있었다.
![]() |
|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
탈북자동지회 사무국장으로 일하던 그가 대북방송에 모든 것을 걸기로 결심한 것은 북한이 남북간 상호비방 중단을 요구하던 2003년이었다. 그는 “김대중 정부의 대북방송 중단으로 이제 당분간 북한 주민들에게는 암흑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때 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와 함께 손잡고 대북방송을 추진했지만, ‘미숙해도 탈북자들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내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해 자유북한방송을 개설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갖은 어려움을 겪었고, 직원들에게 얼마 안 되는 월급조차 제대로 주지 못해 좌절하기도 했다. 다행히 2004년 4월 미국에서 북한인권법이 통과되고, 미국민주주의진흥재단(NED)을 통한 대북방송 지원이 확대되면서 자유북한방송은 자리를 잡게 됐다.
옛 主思派들이 운영하는 자유조선방송과 열린북한방송
![]() |
| 한기홍 자유조선방송 대표. |
북한 전문 인터넷신문 데일리NK를 창간한 한 대표는 2003년부터 대북방송 준비작업을 시작했다. 과거 주사파 시절 대남 흑색방송인 한민전(한국민족민주전선) 방송을 통해 주체사상과 북한의 지도를 수용했던 이들은 방송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남한판 한민전 방송을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 자유조선방송(RFC)을 설립했다.
김윤태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사무총장은 “RFC는 철저히 북한 주민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방송하기 위해 북한式(식) 발음과 방송 어법을 그대로 본떠 방송하고 있다”고 말했다.
RFC와 쌍벽을 이루는 것이 북한인권활동가 하태경씨가 대표로 있는 ‘열린북한방송’이다. 그는 서울대 물리학과 재학시절 총학생회 조국통일위원회 정책위원으로 활동했던 주사파였다. 그는 중국 지린대에서 국제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중국通(통)으로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해 북한인권 관련 NGO들의 대외 활동에 많은 도움을 줬다.
하 대표는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남북한 간의 상호비방 중단 약속을 이명박 정부가 갑자기 되돌리기는 어려운 만큼, 힘들더라도 이제 대북방송은 민간이 주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북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정부는 직접적인 대북 비판을 자제하는 대신, 민간이 그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북한으로 흘러 들어가는 CD·DVD
![]() |
|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 |
남한 영상물들의 북한 유입은 2003년 이후 남북한 상호비방이 중단되고, 북한이 외부 정보 통제를 강화하던 시기부터 시작됐다.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中古(중고) 전자제품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자 중국 장사꾼들은 이를 북한에 팔아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 이와 함께 영상물에 대한 수요도 함께 폭발했다. 한 在中(재중) 동포는 “중국 국경지역에 한국 드라마를 불법 복제 유통하는 회사까지 생겨났다”고 말했다.
남한 영상물들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국가안전보위부는 ‘남조선 영상물과의 전쟁’까지 선포하고 대대적인 단속에 들어갔지만, 만연한 부패 때문에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북한에서도 ‘有錢無罪(유전무죄)’ ‘無錢有罪(무전유죄)’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는 상황에서 보위부 요원들은 “돈 없이 남조선 테이프를 보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탈북자들에 의하면, 이런 영상물들이 유입되면서 라디오에 대한 단속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고 한다.
최근 입국한 한 탈북자는 “라디오가 소형화되고 이어폰까지 나오면서 라디오를 휴대하기가 편해져 예전보다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면서 “대북방송도 중요하지만 라디오를 북한에 대량으로 보내는 일도 함께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라디오 전파를 많이 보내도 주민들에게 라디오가 없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일부 탈북 단체들이 라디오를 중국을 통해 보내는 일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예산부족 등으로 본격적으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전파송신소 국내 설치 논의 중
북한군 당국이 삐라 문제를 거론하자 국내 일각에서는 전단지 살포를 자제하거나 중단할 것으로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대중 정권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던 朴智元(박지원) 민주당 국회의원은 “가스사용안전법을 적용해 탈북단체들의 전단지 살포를 중단시켜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다.
박상학 대표는 “정부와 국내 친북세력들은 북한의 주장을 되풀이하듯 삐라가 남북관계 경색의 원인인 것처럼 말하지만, 북한 당국이 먼저 핵개발을 하고 금강산에서 민간인을 조준 사살하는 바람에 남북관계가 경색된 것”이라고 말했다. 탈북자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인권에 대해서 거론했다는 이유로 북한이 한국 정부를 의도적으로 배척하고 있는 것을 남북관계 경색의 근본 원인으로 보고 있다.
한 탈북자는 “한국 정부와 국민들은 북한에 대한 쓸데없는 공포를 가지고 있으며 너무 휘둘리고 있다”면서 “북한 당국이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인 알 권리를 박탈하고 라디오조차 듣지 못하게 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삐라 살포를 자제시키려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북한은 삐라 살포에 대해서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아직 대북 민간방송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이는 대북방송이 북한내부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대북 민간방송들의 파급효과가 크지 않은 것은 북한으로 송출되는 전파의 출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북 민간단체에 주파수를 대여하는 미국의 한 관계자는 지난 10월 한국을 방문해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 전파송신소를 한국에 설치하는 문제를 논의했다. 전파송신소가 한국이나 일본 등 주변국가에 설치되면 민간방송의 대북 전파 송출능력이 향상돼 북한 주민들의 청취율을 높일 수 있게 될 것이다.
한 방송전문가는 “대북 민간방송은 많아도 북한주민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송을 듣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너도나도 대북 민간방송을 설립해 운영하면서 효율성보다 상징성에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수정권이 등장하면서 KBS 한민족방송이 과거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고, 미국의 RFA, VOA도 대북방송을 강화하고 있다. 이제는 민간 북한방송들도 그에 못지않은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문했다.
“對北 비판은 민간인과 탈북자들이 맡아야”
舊(구) 소련의 붕괴 경험을 지켜본 북한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대북방송이나 삐라 전단지는 북한 변화에 매우 중요한 수단으로, 이를 지속적으로 확대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시대적 변화에 따라 북한에 대한 비판적 역할은 정부보다 민간이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 민간이 북한체제를 비판할 때, 훨씬 더 자유롭게 북한을 비판할 수 있어 효과적이다”라고 말했다.
黃長燁(황장엽)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0월 7일 북한민주화위원회 주최 통일강좌에서 이렇게 말했다.
“탈북자들이 주도해서 삐라와 대북방송을 더욱 확대해 김정일 정권을 압박하고 북한 주민들을 우리 편으로 돌려세우는데 온 힘을 다해야 한다. 한국 사람들은 너무 배불러서 자기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고, 북한 사람들은 너무 굶고 비참하게 살아서 자신들이 얼마나 못 살고 비참한지 모르고 살고 있다. 남과 북을 경험한 탈북자들이 앞장서서 진실을 알려야 한다. 김정일은 탈북자들을 두려워하고 있다. 탈북자만큼 북한 내부에 영향을 크게 미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