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간첩 원정화를 일본에서 도운 세력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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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간첩 원정화가 일본에서 접촉했던 황철홍 회장은 육상자위대의 對空미사일 발사 프로그램을
    빼돌린 재일본조선인과학기술협회(科協) 회장.
    이○○ 사장은 이 단체의 오사카 支部 핵심 간부.
⊙ ‘科協’은 평양의 지시에 따라 일본에서 기술자료 등을 평양에 보내는 사실상의 스파이 조직

洪熒 와세다大 현대한국연구소 객원연구원
⊙ 1948년 서울 출생.
⊙ 육군사관학교 졸업(26기), 육군 복무(월남전 참전), 駐日 한국대사관 참사관 및 공사 근무.
⊙ 국가정보대학원을 거쳐 現 와세다大 현대한국연구소 객원 연구원.
지난 9월 10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직파 간첩 원정화가 첫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수원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경기지방경찰청과 국군기무사령부가 지난 2005년 탈북자로 위장한 간첩 원정화(여·34)와 그의 계부 김동순(63)에 대해 內査(내사)에 착수한 지 3년만인 지난 8월 두 사람을 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방첩수사 당국이 모처럼 포착해낸 이번 간첩사건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은 ‘女(여)간첩 원정화’의 性(성)을 이용한 간첩 행각에 쏠려있는 듯하다.
 
  일각에선 원정화와 김동순이 간첩 활동 과정에서 보인 일부 어설픈 행각을 놓고 ‘과연 이들이 진짜 對南(대남)공작원으로 볼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마저 제기하고 있다. 검찰의 기소로 재판이 시작된 만큼 두 사람의 실체를 둘러싼 논란은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 일각의 이런 분위기를 보며 필자는 金大中(김대중)·盧武鉉(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약화된 우리 사회의 안보의식을 되돌아볼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원정화가 그간 대남공작 업무를 담당해온 노동당 대외연락부나 작전부 소속이 아닌 국가안전보위부 출신이란 점이다. 원정화가 보위부 소속이란 사실은 그의 간첩 여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의 주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한국사회의 무신경
 
  그러나 간첩 원정화가 보위부 출신이란 점은 그다지 놀랄 일도, 의문을 가질 일도 아니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현재 1만5000여명으로 알려진 국내 입국 탈북자 출신 중 金正日(김정일) 독재체제의 폭압기관인 국가안전보위부의 지시를 받고 활동했거나 현재도 활동 중인 공작원은 더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엉성해 보이는 원정화의 간첩 행각을 통해 붕괴하고 있는 김정일 체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 것인지, 격동의 시대가 어떻게 다가오는 지에 대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필자는 일본에서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우선 한국사회가 전반적으로 안보 문제에 대해 피로감에 빠져있는 것 아닌가 하는 당혹감에 빠졌다. 원정화의 그간 행적과 이 사건에 대한 언론보도 양태,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응을 보며 이런 당혹감은 더 절실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이해관계가 없는 公共(공공)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깊이 생각도 하지 않는, 즉 공동체의 안전이나 公益(공익)에 대해서는 무신경한 현상이 정말 심각하다는 우려마저 갖게 됐다.
 
  원정화 간첩사건의 본질은 그가 대한민국의 법을 어기고 간첩 활동을 했으며, 이런 위법행위를 통해 대한민국 공동체와 구성원의 안전에 위협을 가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바라보는 한국 내 분위기는 본질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원정화를 가리켜 ‘한국판 마타하리’ 라거나 ‘性(성)을 이용한 공작 수법’ 등 흥미 위주의 언론보도나 사회 분위기, 특히 원정화를 제대로 된 공작원으로 볼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식의 의문을 제기하는 게 대표적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런 논란은 그 동안 평양 측의 대남공작에 영향을 받은 우리사회의 편견과 선입견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예다. 많은 사람들이 원정화 간첩사건의 본질을 그녀가 어떤 공작 훈련과정을 거쳤는지 하는 부차적인 문제와 혼동하고 있다. 원정화의 대남 공작원으로서의 어설픈 행각을 문제 삼는 측을 보면 북한의 ‘名門(명문) 공작원 양성과정’을 거쳐야만 대한민국의 국가안보에 해를 끼칠 정도의 공작원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태도마저 느껴진다. 어쩌면 名品(명품)에 집착하는 한국사회 일부의 허황된 풍조가 간첩사건에도 침투된 듯한 기세를 보게 된다.
 
  원정화 사건을 다루는 정부의 태도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공안 당국은 원정화가 보위부의 지시를 받아 중국을 방문 중이던 윤모(47·경기도 거주)씨를 비롯하여 탈북자 등 100여명을 북한으로 납치되도록 유인했다고 진술했다고 밝히면서도 원정화에 의해 희생된 사람에 대한 적극적 관심 내지 구출 의지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이 끔찍한 反(반)인도적 범죄에 분노하는 국민적 公憤(공분)이 거의 없다는 점도 그간 유난히 민족주의를 강조해온 현상에 비춰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공안당국이 여간첩 원정화로 압수해 공개한 북한산 남성 건강 보조식품 ‘천궁백화’. 원정화는 북한으로부터 공작금 대신 천궁백화를 받았고, 이것을 판 돈을 공작활동에 활용했다.
 
  정보 인프라 정비하여 敵의 의도 파악해야
 
  원정화가 약취 유인했다고 진술한 100여명은 김정일이 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자행했던 대한항공 KE-858기 폭파테러의 희생자 수(115명)와 비교해봐도 엄청난 규모의 범죄다. 이처럼 엄청난 만행이 ‘低級(저급) 공작원들’의 협조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명품 공작원’이어야만 국가공동체에 위협적이라는, 마치 영화나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낭만적 안보관이야말로 공동체의 안전과 위기관리에 위협적이다. 지난 2월 대한민국 國寶(국보) 1호인 崇禮門(숭례문)을 태워버린 방화범은 방화 훈련을 받은 전문 테러리스트가 아니었다.
 
  현실세계에서 위기관리와 안전확보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당장 ‘테러와의 전쟁’ 중인 이 세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일부 분쟁지역에서 엄청난 인명피해로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자살폭탄테러를 감행하는 ‘테러리스트’ 모두가 ‘일류 테러리스트 훈련과정’을 거친 공작원인가? 정신적으로 미숙하거나 장애가 있는 청소년까지 테러의 도구로 이용하는 ‘야만적 도전’으로부터 안전을 지키는 현실적 대책은 무엇인가?
 
  위험과 위협으로부터의 안전은 관념적 대응으로는 결코 해결하지 못한다. 미국·일본 등 자유민주주의 선진국들은 자국에 입국하는 모든 외국인들에게 指紋(지문) 등 생체 정보를 요구하고 있다. 美貨(미화) 1000달러 이상을 송금하려면 송금자의 신원을 확인하게 하고 있다. 이전엔 생각할 수 없었던 개인의 기본권 내지 자유를 제한하는 조치가 ‘對(대)테러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평범한 개인에게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이는 위험한 테러리스트일수록 상대의 대비태세를 무력화시키는 위장과 연출을 사용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결국 현실적으로 평범해 보이는 모든 사람을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대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같은 대비태세를 절대적으로 충족시킨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감당하기 힘든 지출을 요구한다. 때문에 효율적 대응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보 인프라를 계속 정비하여 敵(적)의 의도를 파악하고 예측해야 한다. 특히 ‘원정화·김동순 간첩사건’을 통해 우리는 탈북자 문제가 김정일 독재체제에 얼마나 큰 부담이 되고 있는지, 또 보위부가 탈북 방지와 대응에 얼마나 혈안이 되어있는지 재확인했다. 이는 대북정책, 대북전략 추진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여간첩 원정화의 첫 공판 모습을 그린 삽화. 원정화는 이날 공판에서 검찰 공소 사실 대부분을 시인했다.
 
  탈북자는 북한 체제의 敵
 
  김정일은 아직도 지난 2007년 大選(대선)을 통한 한국의 정권교체, 그리고 정권교체에 의해 당연히 뒤따를 수밖에 없는 對北(대북)정책 변경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지난 7월 11일의 제안을 거부하고 도리어 이명박 대통령에게 햇볕정책 계승을 요구하고 굴복을 강요하는 것도 이런 태도에 다름 아니다. 최근에도 북측 6자회담 합의사항인 신고된 “북핵 불능화 작업” 중지를 선언(8월 26일)하는 등 다시금 ‘벼랑끝 전술’을 시도할 듯한 의지를 내비쳤다.
 
  이런 상황에서 ‘원정화 간첩사건’은 북한이 중국 내 據點(거점)을 통해 한국과 일본에 있는 탈북자에 대한 추적·감시·제거 활동을 매우 공격적으로 전개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또 이를 통해 우리는 북한이 탈북자 문제를 얼마나 절박한 체제 위협 요인으로 보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
 
  김정일과 북한체제 입장에서 탈북자들이야 말로 자신들의 야만적 독재체제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가장 위험한 기폭장치와 다름이 없다. 그들 자신이 장차 탈북자들에 의해 심판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탈북자 카드’는 어쩌면 우리에게 김정일이 외부 세계에 대해 가진 ‘핵무기’ 카드와 비견할 수 있는 카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 남북간에 펼쳐진 정치심리전이 어떤 상황에 와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지난 10년간 左翼(좌익) 권력은 ‘김일성·김정일 세습체제’를 민족공조의 파트너라고 국민에게 세뇌해왔지만, 이번 사건을 통해 자유주의 체제(대한민국)를 전복, 말살하려는 야만적 폭력체제일 뿐이란 점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는 또 지난 60여 년간 자행된 굵직한 몇 개 사건의 연장선상에서 원정화 간첩사건을 통해 북측의 대남공작의 특징과 공작을 위한 우회기지가 어디였는지 재확인할 수 있다.
 
  평양 측은 그동안 한국사회의 변화와 발전, 즉 공작환경의 변화에 신속하고도 적극적으로 적응하며 대응해왔다. 북한은 ‘6·25 南侵(남침)’ 도발 실패 후 ‘간접침략’(군사력을 사용치 않는 침략이라는 의미) 전략에서 초기에는 越北(월북)한 공산주의자들을 그들의 남한 내 연고자에게 접촉시키는 방식의 공작을 폈다. 그러다 김정일이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보다 대담하고 공격적인 대남공작으로 전환하게 된다. 흔히 김정일은 권력을 이어받았을 뿐 이렇다 할 실적이 없다고들 말하는데, 대남공작과 폭압체계 측면에서 이는 분명 잘못된 인식이다.
 
 
  對南공작의 전술적 변화
 
지난 9월 4일 수사 당국이 간첩 김동순 사건의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공개한 김동순의 조선노동당 당원증과 단파라디오.
  확실히 김정일은 인민 생활을 향상시킨 실적은 없다. 김일성조차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으니 김정일에게 이런 실적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 모른다. 그러나 공산독재체제의 본질인 폭력에서는 탁월한 독재자다. 김정일은 이전의 ‘고전적인’ 대남공작에 테러 요소를 적극적으로 접목시켜 그 누구보다도 잔인하고 적극적인 대남 공작을 펼쳤다. 그것이 북한의 唯一(유일) 독재체제다운 그의 업적인 것이다.
 
  평양 측은 冷戰(냉전) 시절 소위 ‘3대 혁명역량강화노선’(1964년12월)에 입각하여 유럽에 유학한 한국 지식인을 대상으로 공작활동을 전개했다. 여기에는 소련과 동구권의 지원이 뒷받침됐다. 이후 한·일 국교정상화가 이뤄지면서 한·일 간 교류와 왕래가 급속히 증가하자 일본을 對(대)한국 우회 침투의 근거지로 삼게 된다.
 
  평양 측은 조선노동당의 在日分局(재일분국)에 해당하는 조총련의 대남공작 인프라를 대폭 강화하여 일본을 기지로 하는 대남공작을 적극화했다. 이로 인해 한국에 침투하는 우회침투 간첩의 75% 이상이 일본을 기지로 출격한 공작원 들이었고, 이런 흐름은 상당기간 지속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88년 서울올림픽 후 한국이 대륙 세력과의 접촉 교류가 재개되자 김정일은 중국을 대남공작의 출격기지 및 지원기지로서 삼게 된다. 북한에게 그것은 극히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더욱이 중국은 ‘6·25 전쟁’에 개입하여 한반도의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방해, 저지한 북한의 형제국으로 북한의 대담하고 방자한 탈북자 유괴, 납치 공작과 테러범죄행위를 대체로 묵인, 허용해 왔다.
 
  원정화 간첩사건에 대한 공안당국의 발표에 의하면, 원정화는 일본에 정착한 탈북자 추적 및 일본에 정착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2007년 6월 이후 세 차례 일본을 방문했다. 특히 원정화는 일본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조총련계 인물 두 명(황철홍 회장, 이○○ 사장)의 연락처를 보위부 상부선으로부터 전달 받았다고 한다.
 
  조총련은 어떤 단체인가? 한마디로 조선노동당 통일전선사업부(통전부) 산하의 최대 공작조직이다. 바로 며칠 전 국제태권도연맹(ITF) 총재 최중화(캐나다 거주)가 국내의 한 언론에 “ITF는 노동당 통일전선부의 전위조직”이라는 충격적인 증언을 했다. 통전부의 전위조직은 조총련이나 ITF뿐만은 아닐 것이다.
 
  통전부의 해외 전위조직은 전적으로 대남 적화사업이 존재 목적이다. 그리고 이들은 한국 내에까지 뿌리를 뻗쳐 얽혀졌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통전부의 산하단체와 해외 전위조직의 국내 진출을 비호해왔다. 최중화 총재는 자신의 국가보안법 등 위반에 대해 당국에 정식으로 자수하고자 노무현 정권 때 입국을 희망했으나, 평양을 의식한 서울로부터 입국하지 말라는 만류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지난 60여 년간 남북한의 정치전쟁에서 일본 내 조총련이라는 전위조직은 북한이 對(대)한국 간접 침투 전략에 있어 최대의 자산이었다. 조총련이 일본 내 전위조직으로 성장한 데는 조총련 자신이 능력보다 조총련을 비호, 엄호해준 강대한 좌익세력이 일본 사회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런 조총련도 자연 소멸의 길을 걸어왔다. 남북간 체제경쟁의 전략적 결과(환경)를 거스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권 때 조총련은 재일동포 사회의 10분의 1 정도로 세력이 줄었다. 그런데 조총련을 회생시켜 소멸을 막아준 것은 바로 한국의 좌파 정권이다. 김대중씨는 김정일의 핵무기 개발을 지원했을 뿐 아니라, 평양 측의 최대 해외공작 거점인 조총련도 회생시켰다. 일본 측조차 한국 정부가 실정법상 ‘反(반)국가단체’이며 일본 사회의 부담요소인 조총련을 비호, 지원한다는 데 불만을 갖고 있다.
 
  북한 보위부가 원정화와 연결시키려 한 ‘황철홍 회장’과 ‘이○○ 사장’의 실체는 무엇일까. 우선 황철홍은 제반 사정을 종합해 볼 때 조총련 산하단체인 재일본조선인과학기술협회(科協)의 회장을 맡아온 1947년생의 ‘黃喆洪’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황은 김일성·김정일을 위한 혁명전사를 키워내는 조선대학교 이학부 출신으로 科協(과협) 총무부장을 거쳐 2001년 이래 회장직을 맡고 있다. 조총련 과학자 대표단의 일원이나 북측 관련 기관과 공동연구 등을 내세워 1980년대 이후 거의 매년 평양을 방문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검찰이 實名(실명)을 밝히지 않은 ‘이○○ 사장’은 조총련 과협 오사카 支部(지부)의 핵심 간부인 ‘李○春’으로 알려지고 있다. 1955년생인 이는 컴퓨터 전문가로 관서지방에 있는 조총련계 정보컴퓨터전문학교를 관리해왔으며 과협의 컴퓨터 분야 활동을 총괄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컴퓨터전문학교는 일본의 공안분야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2의 조선대학교’라고 불리 는 오사카경제법과대학(조총련 조선대학교의 교직원들이 이 대학으로 대거 유입되었음)과 자매 관계를 맺고 있다. 오사카경제법과대학은 재일동포가 설립했던 일본 내 유일한 외국인이 설립한 대학이었으나, 역시 조총련 과협 회원인 오청달(부학장)에 의해 조총련계에게 장악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청달도 과협 회원이던 1970년대 학원침투간첩단사건으로 검거된 백옥광의 상부선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어째서 ‘과학기술자집단’이 공작원을 지원하게 된 것일까? 조총련의 과협은 조총련 산하조직 중에서도 매우 특이한 조직이다. 조총련 간행물 등을 조사해봐도 과협만은 산하단체 중에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조직과 활동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매우 신비하고 은밀하게 활동하는 조직이다. 과협은 평양의 지시에 따라 일본에서 기술자료 등을 평양에 보내는 사실상 스파이 조직인 셈이다.
 
 
  원정화와 科協
 
  과협을 관찰하면 평양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은 혁명의 전위대 중 전위대이며, ‘강성대국’ ‘先軍(선군)정치’의 첨병이다. 과협은 1991년 북한의 군수공업에 불가결한 희귀류 금속을 생산하는 ‘국제화학합영회사’를 평양의 제2경제위원회와 합작하여 흥남에 설립하기도 했다. 노동당 비서 최태복은 대포동 미사일 발사 후 평양에서 개최되었던 ‘전국과학자 기술자 대회’(1999년 3월)에서 조총련 과협의 공헌을 찬양했다.
 
  일본 당국의 대북제재 조치의 핵심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과협을 압박하는 조치임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일본 경시청은 2005년 10월 일본인 납치사건에 대한 단서를 얻기 위해 조총련 과협 본부 등을 압수수색하고 관련자를 체포한 적이 있는데, 이 때 일본당국을 향해 “과잉 수사이고 정치적 탄압”이라고 항의 담화를 발표한 것이 황철홍 회장이다. 이 사건에서 일본 당국의 조총련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육상자위대의 對空(대공)미사일 발사 프로그램이 컴퓨터에서 발견되어 일본사회에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물론 황철홍 등 조총련 관계자들은 대남공작 관여 여부를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자신이 지원한다고 공작원이 될 수 없다. 공작원(혁명전사)이 되는 길은 오직 당(노동당 중앙)이 일방적으로 선발(소환)하는 방식으로만 가능하다. 개인이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닌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황철홍 회장에겐 北送(북송)된 형제가 있고, 부친도 조총련 (대남) 일꾼이었다는 점은 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法治 후퇴가 안보누수로 이어져”
 
  대남공작 자원이 소진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과협은 더 없이 귀중한 자산이다. 과협은 2002년 10월 ‘6·15 공동선언’ 정신에 따라 ‘제42회 과협 학술보고회’를 북한의 일본 내 최대 공작거점인 조선대학교에서 개최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과기부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을, 평양에서 조선과학원 관계자들을 초청했다. 과협 간부들이 KISTI 초청으로 방한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 같음에도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간 대한민국 내 親北(친북) 세력에 의한 반역이 어느 정도로 구조화되고 제도화되었는지, 또 대통령들에 의한 헌법 및 헌법정신에 대한 도전과 파괴가 얼마나 일상화되었는지 한국 사회는 느끼지 못하고 있다. 전임 대통령이 청와대의 모든 정보를 대담하게 절취해간 ‘e知園(지원) 사건’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반역이다.
 
  일본에서 보면 한국은 좌익에 점령당한 10년 동안 法治(법치)가 한참 후퇴했다. 대통령 기록물의 절취를 관용정신을 내세워 덮어가려는 행동은 비단 법치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민감한 방첩정보도 평양으로 넘어가지 않았다는 것을 누가 보증할 수 있겠는가? 법치국가에서 이러한 반역범죄가 용납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며, 국가자살적 행위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래도 간첩 원정화를 추적 적발해냄으로써 국가안보를 지키기 위한 본분에 충실했던 경찰관이 있었다는 사실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反(반)국가단체를 지원하는 인사가 국가의 최고 정보기관장으로 앉아서 헌법과 국가보안법을 무력화시키고 있는 상황을 경험한 우리로선 원정화와 같은 간첩을 추적하는 행동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임을 너무도 잘 알기에 이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원정화 사건을 보며 가슴을 쓸어 내린 필자 같은 입장에서 이 얼마나 희망적인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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