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개념 미술’을 대표하는 벨기에 작가 빔 델보예 국내 첫 소개
⊙ 빌리 홀리데이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부르는 재즈싱어
⊙ 빌리 홀리데이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부르는 재즈싱어

- 서울 삼청로 갤러리현대에 전시 중인 빔 델보예 작품.
이란의 이스파한 장인의 문양이 새겨진 ‘수퍼카’ 마세라티와 페라리 모형이 눈에 띈다.
신개념 미술이란 말이 낯설다. 시각적으로 익숙한 사물에다 전혀 관련이 없는 소재를 연결시켜 새로운 느낌을 가져다준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평범한 가방에다 사치스런 문양을 새긴다. 자동차 타이어와 삽날에 화려한 꽃문양을 새겨 넣는다. 웅크린 돼지 인형의 외피를 값비싼 ‘페르시안’ 카펫으로 만든다.
그렇게 하면 사물에 대한 선험적 고정관념이 깨지며 시각적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미술평론가들은 이런 초현실적 작업을 좋아하는 빔 델보예를 두고 ‘사이의 대가(master of inbetween)’라고 부른다. 경계를 무너뜨린다는 얘기다. 《뉴욕타임스》는 ‘도발을 일삼는 앙팡 테리블’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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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파한 장인의 문양이 새겨진 페라리의 디테일컷. |
이스파한(Isfahan)은 16~18세기 번성했던 이란 중부의 전통공예 도시다. 이란 속담에 ‘이스파한은 세계의 반(半)’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도시가 한때 크고 아름다웠다. 오늘날까지 이스파한 장인의 손길이 묻은 유적이 잘 보존돼 있다고 한다.
일상의 소재에다 이스파한 장인의 문양을 새기면 어떤 느낌을 줄까. 유럽과 중동 문명의 조화?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대비? 어쨌든 초현실적인 조합이다. ‘장식의 과잉’이란 느낌을 주면서 다분히 풍자적이다.
모순되는 개념을 하나의 앙상블로 공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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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크리트 믹서〉, 2013년, 레이저-컷, 스테인리스 스틸, 84.5x45.x105cm |
레이저로 정교하게 자른 강철에 고딕 스타일을 더해 조각품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보는 내내 시각적인 낯섦과 기발함이 절로 나온다. 그 사물이 연상시키는 고정관념에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불변(不變)이란 없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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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브리즈(Tabriz)〉, 2010, 속을 채운 카펫 돼지(Stuffed carpet pig), 95x37x58c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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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날에 새기다(Engraved Shovel)〉, 2016, 부조된 알루미늄(Embossed aluminum), 21x17x100cm(each) |
갤러리현대 관계자는 “빔 델보예는 이러한 모순들이 생성하는 차이의 요소들을 혼합하기보다는 유제(emulsion)시키며 두 개의 모순되는 개념들을 하나의 앙상블로 공존하게 한다”고 말한다.
‘재즈의 레이디 데이(Lady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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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즈 싱어 빌리 홀리데이의 앨범 《레이디 데이》. |
음악교육이라고는 전혀 받지 못한 빈민가 소녀는 열두 살 무렵 재즈를 처음 접했다. 어린 시절 성장한 미국의 볼티모어, 그중에서 도시와 인접한 체서피크 만(灣) 쪽으로 닿아 있는 부둣가인 펠스 포인트에서 빌리는 재즈에 빠져들었다.
그녀는 그곳 사창가에서 청소와 심부름을 하면서 생계를 꾸렸는데 그중 한 매춘업소에 빅터 축음기와 루이 암스트롱의 음반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재즈를 ‘사창가 음악’이라 불렀다.
어린 빌리는 청소를 하며 재즈 멜로디를 따라 불렀고, 심부름 후에 접대부들이 팁을 주면 “돈은 괜찮으니 대신 재즈를 틀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 무렵 베시 스미스(Bessie Smith)와 루이 암스트롱 (Louis Armstrong) 같은 재즈 뮤지션을 좋아했다. “난 루이의 필링(feeling)을 갖고 싶어했다”고 한다.
앨범 《레이디 데이》에는 1933년부터 1944년까지 부른 노래가 망라돼 있다. 11년 동안 36곡을 벽돌 쌓듯 차곡차곡 채운 것이다. 재즈 명곡들이 다 들어있다.
우선 〈달빛이 비출 수 있는 건 별로 없어요(What a Little Moonlight can do)〉는 당대를 대표하는 연주자들이 대거 세션으로 참여한 곡이다. 1930년대 ‘스윙’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이 노래를 들으면 된다. 트럼펫과 피아노, 드럼이 쉬지 않고 빠른 박자의 비트를 두드린다. ‘부드럽게 넘실댄다’는 표현이 적확할지 모른다. 그 속에서 빌리의 보컬은 다소 무덤덤하다. 두드러지지도 날카롭지도 않다. 악기 속에 목소리가 가야 할 길을 잘 아는 듯하다.
반대로 〈달빛 속의 돛단배(A Sailboat In The Moonlight)〉는 느린 테너 색소폰이 정겨운 곡이다. 가이 롬바도(Guy Lombardo), 자니 호지스(Johnny Hodges) 같은 남자 재즈싱어도 이 느린 재즈곡을 불렀지만 빌리에 비해 밋밋했다. 그녀는 개성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곡의 어떤 부분에서는 박자를 일부러 늦춘다. 또 음을 반음 올리거나 발성을 모호하게 하면서 평범한 선율을 독창적인 의미로 가득 차게 한다.
끈적끈적한 여름 노래 〈서머 타임〉

〈달빛 속의 돛단배〉의 가사를 들어보자.
‘… 달빛 아래 돛단배.(A sailboat in the moonlight)/ 그리고 당신.(And you)/ 천국이 아닐까.(Wouldn't that be heaven)/ 단지 둘만의 천국(A heaven just for two)/ 6월의 밤, 부드러운 산들바람, 그리고 당신(A soft breeze on a June night and you)/ 완벽한 설정이지.(What a perfect setting)/ 그렇게 해서 꿈이 이뤄져.(For letting dreams come true)…’
가사가 몽롱하다. 달빛 속을 헤매는 듯하다.
많은 이가 좋아하는 빌리의 〈서머 타임(summer time)〉은 원래 미국 작곡가 조지 거슈윈(George Gershwin)이 1935년에 만든 오페라 〈포기와 베스(PORGY AND BESS)〉에 삽입됐던 곡이다.
노래는 더위를 식혀 주는 시원함과 거리가 멀다. 열기로 이글대는 하오, 끈적끈적한 셔츠는 땀에 젖었고 어느 지하 카페에서 빌리 홀리데이의 나른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듯하다.
〈나는 부둣가로 가네(I cover the waterfront)〉는 부둣가 사창가에서 재즈 음악에 빠져들었던 빌리의 소녀시절이 연상된다. 노랫말에는 ‘내 심장은 돌처럼 무거운 아픔을 지니고 있어(my heart has an ache its as heavy as stone)/ 동이 트면 날이 밝아질까?(Will the dawn coming on make it light?)’ 하고 반문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처음부터 피아노는 그녀의 슬픈 목소리 뒤에 숨어 버린다. 마치 피아노도 그녀의 아픈 사연에 귀를 기울이는 듯하다.
빌리의 인생 후반부는 어린 시절만큼 어둡다. 마약으로 생을 연명할 정도로 몸과 정신이 망가졌다고 한다. 인종차별도 감내해야 했다. 전국을 순회하며 노래를 한 이면에는 마약을 사기 위해서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 고통과 불행 때문인지 그녀의 재즈는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