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혜영
⊙ 43세.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한양대 국문과 대학원 졸업.
⊙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 소설집 《아오이 가든》 《사육장 쪽으로》, 장편소설 《재와 빨강》.
⊙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동인문학상 수상.
⊙ 43세.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한양대 국문과 대학원 졸업.
⊙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 소설집 《아오이 가든》 《사육장 쪽으로》, 장편소설 《재와 빨강》.
⊙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예술가상, 동인문학상 수상.
그녀와 만나기로 한 장소는 서울역사박물관 뒤편, 조용하고 한적한 골목길을 걸어가다 보면 언덕 위에 ‘우리’ 카페가 보인다. 개업을 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향기 좋은 커피와 쫄깃한 모차렐라 치즈가 들어간 샌드위치가 이곳의 풍미다. 데크식 난간을 활용한 야외 카페에는 정원수가 심어져 있고, 2단 파라솔이 우산처럼 펼쳐진 철제의자에 앉아 도심 하늘을 바라보면 살아 있는 궁궐 한 모퉁이의 역사를 느낄 수가 있다.
동인문학상 수상작 단편소설 〈저녁의 구애〉는 꽃배달을 하는 김이라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그는 여러 직업을 거쳐 현재는 꽃집 자영업을 하고 있다. 그러다 어느 날 과거에 신세를 졌던 지인의 위독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지방의 국도변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꽃을 배달하러 가게 된다. 그는 지인과 과거의 인연을 기억해 내고 현재의 인연을 생각하면서 관계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 사귀는 여자가 자신에게 보이는 관심과 기대도 가치없게 여겨진다. 한편 목숨이 촌각이라던 지인은 그가 도착할 때까지도 죽지 않는다. 그는 싣고 간 화환을 내려놓지 못하고 국도변을 어슬렁거리다 눈앞에서 교통사고를 목격한다. 불에 활활 타는 사고 차를 보면서 그는 여자에게 전화를 건다. 그때까지 마음 한구석에 있었던 진심을 고백하고 만다.
〈한참만에야 전화를 받은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화기를 통해 여자의 가느다란 숨소리가 들려왔다. 차분하면서 규칙적인 소리였다. 그 소리가 묘하게도 김의 마음을 가라앉혔다. 김은 여자의 숨소리에 맞춰 숨을 내쉬고 들이마셨다. 여자와 호흡을 맞추려면 조금 서둘러 숨을 뱉어야 했다. 몇 번의 시도에도 숨의 간격을 맞추기 어려워지자 김은 불쑥 여자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여자는 잠자코 있었다. 여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두려웠지만 어떤 대꾸를 하는 것도 두려워서 오로지 여자에게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생각나는 대로 말을 이었다. 오랫동안 유심히 여자를 바라보는 기쁨을, 여자와 처음으로 우연히 팔꿈치가 스쳤을 때 박동한 심장을, 처음 여자의 손을 잡았을 때 거짓말같이 여겨지던 낯선 감각을, 그를 차분하게 하는 부드러운 숨소리를 얘기했다. 여자에게 사랑받지 못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을, 여자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았던 순간의 설렘을 얘기했다. 얘기를 하는 동안 김은 여자에게 말한 것들이 이제껏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임을 깨달았다. 자신의 말은 모두 어디서 읽거나 누구에게 들은 얘기 같았다. 너무 상투적이고 진부해서 진심으로 여겨지지 않는 말이었다. 반면에 그래서 진심처럼 들리기도 했다.-본문 중에서〉
—동인문학상 수상작 〈저녁의 구애〉는 제목처럼 달달한 프러포즈는 아니었어요. 소설 구조에 대한 부연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이 소설은 라디오에 소개된 사연을 들은 친구가 저에게 전해준 것에 착안해서 쓰게 되었어요. 라디오에 소개된 내용은 화환을 배달하러 갔는데 아직 사람이 죽지 않아 화환을 실은 채로 잠깐 그 인근을 배회한 얘기였어요. 라디오에서 방송될 때는 조금 코믹하게 전달되었나 봐요. 그 얘기를 친구에게서 듣는데, 느닷없이 누군가의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에 놓인 남자의 얘기가 인상적으로 다가왔고, 쓰고 싶어졌어요. 그 얘기에 언젠가 화집에서 본 프랑스 화가의 <저녁의 구애>라는 그림의 이미지를 가져와 작품으로 썼습니다. 그 그림은 목가적인 풍경 속에 서 있는 남녀의 모습을 담은 그림인데, 구애를 하는 사람의 조금 쑥스러운 듯한 표정, 머뭇거리는 표정, 구애를 받는 여자의 딴청 하는 시선 같은 게 기억에 남았습니다.”
—얘기를 듣고 바로 소설을 쓴 겁니까.
“아니요. 바로 쓰지는 못하고 좀 오래 묵혔어요. 화환을 배달하는 주인공이 기다리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무슨 일을 할지에 대해서 좀 많이 생각했어요. 누군가의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주인공이 자신은 죽음에 직면하지 않았지만, 자신은 죽음으로부터 멀리 있지만, 그러나 썩 멀지만은 않은 것 같다는 이중적인 기분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럴 만한 상황을 생각하느라 좀 시간이 걸린 것 같습니다.”
소설 쓰는 방식은 작품마다 달라

—그래서 갑자기 심경 변화를 일으켜 전화로 구애를 하게 되는군요.
“기다리는 동안 이 사람에게 벌어지는 일들은,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에요. 재난에 대비하는 통조림을 구하러 다녀본다거나, 오래전에 이 도시에서 있었던, 사상자가 많이 발생한 지진에 대해 떠올려 본다거나 하는 것들. 그런 일들을 떠올리면서 자연스럽게 재난이나 재앙이 불시에 어느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뭔가 생의 의지를 끌어올릴 수 있는 것을 찾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게 이 소설에서는, 확신을 갖지 못했지만 자신 옆에 있어 주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구애를 하는 상황으로 표현된 거고요.”
—어디선가 들었던 얘기를 주로 소설로 씁니까.
“그럴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습니다. 소설을 시작하는 방식은 작품마다 다 다르거든요. 이 소설은 누군가에게 들은 얘기지만, 어떤 이미지를 보고 장면을 떠올려 소설을 시작하기도 하고 신문에서 봤던 기사를 기억해 뒀다가 소재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소설에서 나오는 장례식장 배경도 국도변을 가다 보면 한번쯤은 보게 되는 커다랗고 무미건조해 보이는 장례식장의 이미지를 기억해 뒀다가 쓴 겁니다. 언젠가 그런 장례식장을 지나는데, 축 개업이라는 글자가 적힌 플래카드가 휘날리는 걸 본 적이 있는데, 그게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여성 작가로서 소설 화자가 거의 남자입니다. 왜 남자로만 화자를 하나요.
“아마 작가인 제가 소설 속 화자와 지나치게 밀착되게 읽히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그러는 것 같습니다. 소설적인 상황이 작가 개인의 것으로 대입되지 않게, 동일시되지 않게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큽니다. 여성 화자를 쓰면 개인으로서 제가 많이 대입이 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런 걸 부담스러워 합니다.”
—등단작 <이슬털기>는 여자 화자잖아요. 작가님의 우려와 상관없이 독자는 참 좋았었거든요.
“아마 좀 더 제가 능수능란하게 되면 여자 화자임에도 불구하고 작가와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끔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소설을 쓰다 보니 조금씩 달라져서, 이제는 여자 화자가 나오는 소설도 거리감에 구애받지 않고 종종 씁니다.”
—남자친구(남편)가 <저녁의 구애>에 나오는 김의 성격과 같다면 어떨 것 같나요.
“저는 이 작품을 보고 연애소설이라고 그랬는데, 남들이 이게 무슨 연애소설이냐 하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어떤 연애의 순간에는 확신이 부족한 데에서 오는 변덕스러움이 있는 것 같아요. 이 사람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서도 이 사람이 옆에 있어 줬으면 좋겠다고 하는 의존적인 마음도 있잖아요. 그런 것도 저는 사랑의 일부라고 생각했어요. 주저해서 결정하지 못하는 어떤 마음에도 사랑의 본심이 있는 것 같거든요.”
—실제 남편의 성격은 그렇지 않습니까. 현실세계와 상상세계가 어떻게 다른가 갑자기 궁금해졌어요.
“주인공 김이 매사에 우유부단하고 변덕스러웠던 게 아니라 자기감정에 대해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이죠.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어떤 감정의 파동이 이는데, 거기에 뭐라고 정확히 이름을 붙일 수 없고 실체를 모르겠을 때 주로 변덕스러워지니까요. 김도 그랬던 것뿐이지, 사랑 자체에 대해서 유별나고, 워낙에 확신 없고 우유부단한 인물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우유부단한 면모를 보이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예요. 저나 제 남편도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그런 측면이 있겠죠.”
개인적 성향은 다소 회의적
—등단하고 소설 쓰는 것에 대해 남편이 많이 응원해 줬겠네요.
“네, 제가 하고 싶은 걸 하게 됐으니까 많이 응원해 줬죠.”
—한국일보 문학상 《사육장 쪽으로》는 소설집으로 상을 받았고 첫 문학상인데, 기분이 어땠나요.
“제가 2000년에 등단했는데, 등단 이후 얼마간은 거의 청탁을 받지 못했어요. 그때는 소설을 못 쓸지도 모르겠다,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첫 번째 소설집 《아오이 가든》은 작품이 개성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이 작가가 다른 종류의 소설은 어떻게 쓸까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저로서도 많이 고민을 하던 와중에 두 번째 창작집을 묶게 되었는데, 그 책으로, 평소에 받고 싶다고 생각했던 문학상을 받게 되어 무척 기쁘고, 한편으로는 안도했죠. 내가 쓰는 소설에 대해서, 뭔가 확신은 없지만, 이런 식으로 꾸준히 한 걸음씩 나가면 되나 보다 하고 위로받았고요. 가까이에서 지지해 주는 든든한 친구를 얻은 느낌이었어요.”
—《사육장 쪽으로》는 회사를 다니는 남자가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위기 앞에 아이마저 개한테 물리는 인간의 밑바닥을 무척 건조한 감정으로 사실적으로 잘 그려냈어요.
“그 단편은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한 르포 프로그램에서, 산속에 있는 불법 사육장을 취재하러 가는 장면을 인상적으로 기억해 뒀다가 모티브로 활용한 작품이에요. 산속에는 사육장이 존재하고, 그 사육장에서는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데, 사육장은 보이지 않고… 소설의 마지막에는 등장인물이 사육장이 있는 곳을 벗어나 도시로 돌아가는데, 여전히 사육장에서 들었던 것과 같은 개 짖는 소리를 듣죠. 그곳을 떠나고 싶고 벗어나고 싶을 때 끊임없이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 같은 환영에 빠지는 것과 비슷한 상황에 놓이고 말아요. 소설을 쓸 때 우리가 결국 가려는 곳도, 떠나고 싶은 곳도, 결국에는 실체를 모르는 사육장과 같은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요즘 우리가 느끼는 불안이나 공포가 대체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쓰기도 했고요. 명확한 실체는 보이지 않고, 그럼에도 풍문처럼 끊임없이 불안의 소식들이 들려오고. 벗어나려고 하지만 자기가 벗어나려고 하는 곳이 자기가 살고 있는 어떤 곳이고. 사실은 도시 전체가 벗어날 수 없는 사육장인 거죠.”
—개한테 물린 아이는 결국 죽는 건가요.
“제 소설의 독자 분들은 작가인 제가 보여주는 것보다 더 잔혹한 일이 있을 거라고 상상하면서 독서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책 나오고 독자 분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이 개가 아이를 물어뜯어 죽이잖아요, 하고 소설에 나온 상황에 극단적인 상상력을 가미해서 말씀하시더라고요. 그게 어떻게 생각하면 활자가 가진 상상력의 힘인 것도 같아요. 문맥이 상상력을 키우는 거죠. 그에 대한 답은 저도 잘 모르겠다는 겁니다. 아이는 물렸고, 아빠는 최선을 다해 사육장이 있는 도시를 떠나 병원을 찾아가려고 한다, 그것이 소설 속 상황의 전부고요. 소설을 떠나 인간적인 바람으로는 아이가 살았으면 좋겠다고 당연히 생각하죠.”
—왜 그런 절망의 세계를 그려내는 거예요. 절망을 통한 계몽 차원도 있습니까.
“작가인 저 역시 세상의 형태나 원리를 잘 모르는 불완전한 인간인데, 제가 느끼는 어떤 것, 제가 생각한 것이 옳다고 소설 속에서 절대로 주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사람들은 저마다의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거지, 누구는 옳은 생각을 하고 누구는 틀린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건 아니라고 믿어요. 소설에서 등장인물들의 행태를 통해, 세상이 사실은 이런 식이다, 라는 느낌으로 소설을 쓰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제 개인적인 성향이 다소 회의적이고 비관적이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떤 인물과 그 인물이 처한 상황을 떠올리며, 그 상황이 인물을 어떻게 완전하게 가로막힌 출구에 놓이게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쪽이에요.”
시간에 별 구애받지 않는 스타일
—소설 속에 강이나 공사장이나 숲에 관한 묘사가 꽤 많습니다. 취재는 어떻게 합니까.
“실제 작품을 쓰려고 당장 가서 취재하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이전에 봤던 것들, 이전에 학습하고 체험한 것들, 영상에서 본 이미지,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누적된 것들을 작품을 쓸 때 종합적으로 활용합니다. ‘숲’은 작품을 쓸 때 많이 활용하는 공간인데, 다소 반어적인 느낌을 갖고 있는 게 인상적인 공간이에요. 정오의 숲은 평화롭고 아름답고 온화합니다. 모든 게 분명하고 확실하며 명확한 길을 내주고요. 그런데 어두워지고 만약 정해진 길을 벗어나서 길을 잃게 되면, 숲은 정오의 숲과 조금도 달라진 것 없는데도 폭력적이고 야만적이며 무서운 공간, 낯선 공간으로 바뀌어요. 그렇게 이질적이고 반어적인 이미지를 동시에 품고 있는 것에 특히 끌립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자연이란 게 대체로 그래요. 실체를 파악할 수 있을 때는 아름답고 온화하고 안락하지만,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대상이 될 때에는 자연이 공포의 대상으로 한순간에 바뀝니다. 아마 제가 도시에서만 살아와서 자연을 그렇게 받아들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년시절에 자란 공간이 궁금해요.
“제게 가장 익숙한 주거 형태는 아파트와 같은 복합 주거 형태입니다. 어렸을 때는 막 서울에 편입된 변두리에서 살았어요. 변두리의 풍경이 그렇듯 집 주변이 늘 공사 중이었어요. 뭔가 개발 중이고 땅을 파고 건물을 짓고 있는데, 그것을 멀리서 보면 부수는 것인지 구축하는 것인지 잘 구분이 안 되는 풍경이요. 콘크리트 먼지가 날리고 포클레인이 서 있고 그 옆에는 여전히 논이 있고 밭이 있었어요.”
—작가님 소설은 하드코어적 상상력으로 미학까지 갖추었다고 합니다. 추리영화를 많이 보는 건가요.
“첫 소설집 《아오이 가든》을 냈을 때는, 호러영화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그런데 별로 많이 못 봐요. 사지절단하는 식의 잔혹한 장면이 많은 영화는 기질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잔혹한 것이 아니라, 인물을 암울한 상황으로 몰고가는 어떤 이미지에 홀려서 작품을 쓰는 경우가 많아서, 일견 하드코어적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여자 소설가의 하루 일상이 궁금한데요, 어떻게 시간을 쪼개어 사는지.
“특별할 게 없습니다. 생활은 단출하고요.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간혹 친구를 만나거나 하는 게 전붑니다. 마감 때는 거의 약속 안 잡고 계속 원고만 씁니다. 좀 시간이 있을 때는 친구들을 만나거나 그냥 하는 일 없이 쉬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하루에 특별히 시간을 정해 놓고 소설을 쓰는 건 아니고요. 시간과 장소에 별로 구애를 받지 않고 소설을 쓰는 편입니다. 오래전에 직장을 다녔는데, 그때는 별로 시간이 없으니까 틈만 나면 소설을 쓸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어요. 그때 익은 습관인지, 시간에 별 구애를 받지 않아요.”
—여자 작가는 밥해 주는 사람만 옆에 있으면 된다 해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제가 결혼을 했지만 사실 주부생활이라 할 만한 것은 별로 안 해요. 최소한 필요한 살림을 하죠. 요리나 살림이 재밌으면 하겠는데 저는 그걸 별로 즐겁게 하지 못해요. 집 꾸미는 것도 별로 취미가 없고요. 그런 게 재밌으면 소설을 쓰면서도 흔쾌히 할 거 같아요. 그런데 재미가 없으니까 하려고 하면 그게 노동이 돼요. 남편도 집안 살림을 윤이 나게 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타입도 아니고요.”
소설가는 경쟁자라기보다 동료
—화자가 남자가 아닌 여자로 바뀌었을 때 어떤 소설이 나올까요. 지금 쓰고 계신 장편의 화자가 여성이라고요?
“글쎄요. 소설을 쓰는 저도 작가로서도 그렇고 개인으로서도 그렇고 나이 들고 늙어가니까, 자연스럽게 소설 속 인물들도 변해갈 것 같아요. 관점이라는 게 조금씩 달라지겠죠. 처음에는 이미지가 강한 상황을 견딜 수 있는 인물이었다면, 지금은 시간을 헤아리는 인물들에 마음이 가요. 노인들 얘기나 잠자코 생각하는 인물도 많이 나와요.
지금 쓰고 있는 작품은 오랜만에 여성이 화자인 작품이에요. 문학잡지에 연재 중인데, 아직 쓰는 과정 중에 있어서, 완성된 형태로 어떤 얘기가 될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어요. 거칠게 말하자면, 상실감을 가진 인물이 그 슬픔을 어떻게 극복해 가는지에 대한 얘기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아빠를 잃은 여자, 동생을 잃은 여자가 누군가를 먼저 떠나보낸 상실감이나 슬픔을, 어떻게 바라볼지, 그 슬픔과 어떻게 동행해 가는지 하는 것이요. 여자 화자이긴 하지만 여자의 삶 자체에 포커스를 맞춰서 조망하는 소설은 아니고요.”
—지금도 TV나 매체에 나오는 독특한 얘기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건가요? 소설을 쓰기 위해서.
“독특한 얘기라기보다, 뭔가 상황이 이질적이고 낯설어서 그런 얘기가 인상적으로 남을 때가 있습니다. 지금도 그런 얘기들을 만나면 메모해 두죠. 언젠가 다른 작품의 씨앗이 되겠죠.”
—그렇게 했다가 구상을 해서 쓸 때는 얼마나 걸리나요.
“작품마다 다른데요, 좀 느리게 쓰는 편이에요. 초고를 쓰고 그 초고를 오래 두고 묵혔다가 여러 번 자주 고치는 편이거든요. 기간 내내 그 작품을 쓰는 일에 매달려 있는 건 아니지만 계속해서 그 작품의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갈까에 대해서 고민하죠.”
—친한 작가는 누구입니까. 경쟁관계이기도 하죠.
“작가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이나 인간에 대해 생각하고 질문을 던지니까 서로 경쟁자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동료라고 생각해요. 주위에 좋은 작가 친구나 선배, 후배가 많아요. 그 친구들 작품을 열심히 따라 읽는 편인데, 부러운 재능을 가진 친구들이 많아요.”
—여름 피서를 어떻게 할 계획인가요.
“여름철에 어디론가 이동하고 숙박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딜 가나 사람이 많은데, 휴양이나 휴가를 위해 몰려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한여름에는 주로 도시에 있습니다. 읽고 싶어 미뤄뒀던 책을 한가로이 읽는 게 피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