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정전협정 60주년 인터뷰

중립국감독위 스웨덴 대표 안데르스 그렌스타드 해군소장

“북한의 정전협정 폐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

  • 글 : 오동룡 월간조선 기자  gomsi@chosun.com
  • 사진 : 조준우 월간조선 객원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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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은 천안함 침몰 국제합동조사단에 폭파 전문가와 조선(造船) 전문가로 구성된 최고의 해군 전문조사팀을 파견했고, 천안함은 전술적으로 북한의 완벽한 어뢰공격에 의한 침몰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스웨덴 정부도 공식적으로 북한의 소행임을 확인했다”

⊙ 北 정전협정 위반 건수는 42만5271건… “한반도는 기술적으로 전쟁 중”
⊙ 중감위, 정전 이래 3339번째 회의 개최… 폴란드도 매년 2차례 판문점 방문
⊙ “유럽인들, CNN 생중계로 연평도 포격 잘 알아… 민간인 피해 적었던 게 천만다행”
⊙ “중감위 업무는 마라톤… ‘북한의 도발에 놀라지 않을 것’이라 다짐해도 매번 놀라”

취재지원 : 車彦助 월간조선 인턴기자
지난 5월 9일, 안데르스 그렌스타드(Anders Grenstads·54) 해군 소장은 스웨덴 군복 차림에 더플백을 든 채 약속 장소인 호텔 로비에 나타났다. 중립국감독위원회(NNSC·이하 중감위) 스웨덴 대표인 그는 “DMZ(비무장지대)의 중감위 초소에서 곧장 이곳으로 왔다”, “오는 길에 노르웨이 대사를 만나느라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없었다”며 한글 명함을 기자에게 내밀었다.
 
  그렌스타드 소장은 “5월 11일 시작되는 한미연합훈련인 ‘키 리졸브(Key Resolve)’ 훈련 참관으로 바쁘다”면서도 “정전 60주년을 맞아 한국 언론에 중감위의 역할을 알리는 것은 서로에게 윈윈하는 일인 것 같다”고 했다.
 
  전투복 오른쪽 어깨에는 한반도 지도 바탕에 노랑(스웨덴), 파랑(체코), 흰색(폴란드), 빨강(스위스)이 들어간 직사각형 모양의 중감위 패치(마크)가 달려 있었다. 중감위는 1953년 정전협정 체결과 함께 유엔 측이 추천한 스웨덴과 스위스, 공산 측이 추천한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 등 4개 중립국으로 구성됐다.
 
  중감위는 군사정전위원회(MAC·이하 군정위)와 함께 정전협정의 준수와 집행을 담당하는 양대 기구다. 주한유엔군사령부(UNC·이하 유엔사)와는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유엔사는 1950년 유엔안보리가 창설한 유엔의 보조기관으로 6·25전쟁을 수행했고, 1953년 북한·중국과 함께 정전협정을 맺은 당사자다. 따라서 유엔사는 정전협정의 준수와 집행을 책임지는 유엔의 행정기관으로, 군정위의 가동과 중감위의 운영 등을 맡고 있다.
 
  북한은 공산 측이 선택한 중감위에서 1993년 체코슬로바키아 대표단, 1995년 폴란드 대표단을 차례로 추방했다.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나뉜 옛 체코슬로바키아 대표단은 중감위에 참가하지 않고 있지만, 폴란드 대표단은 한국을 통해 연간 2~3차례 판문점 회의에 참가하고 있다.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잊을 수 없어”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미루나무 절단작업을 하던 유엔 경비병에게 북한 경비병 30 여명이 도끼와 곡괭이를 휘둘렀다. 이 사건으로 보니파스 대위 등 미군장교 2명이 피살되고 카투사 5명, 미군 4명이 중상을 입었다.
  2011년 4월 1일 중감위 스웨덴 대표로 한국에 온 그렌스타드 소장은 이번달로 25개월째 근무 중이다. 2년 반 정도의 임무를 마치고 오는 9월 말 스웨덴으로 돌아간다. 그렌스타드 소장은 “스웨덴 정부는 정전협정 유지 임무를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과거에는 스위스도 마찬가지지만, 북한군과의 대화의 필요성 때문에 외교적 자질이 있는 경험 많은 대사를 임명했던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최근 들어서는 정전협정에 추가사항들이 생겨나 야전에서 돌봐야 할 업무가 늘어나면서 작전 능력을 갖춘 소장급 선임 장군(senior officer)을 임명하고 있다”고 했다. 그렌스타드 소장은 해군 전력발전부 참모를 거쳐 3함대사령관을 지내는 등 각종 수상전투함 지휘관으로 활약했고, 2005년 스웨덴 해군 총참모장과 해군구성군사령관을 지냈다. 특히 2006~2007년 유럽 해군사령관을 지냈으며, 현재 스웨덴 왕립해군과학부 선임연구원이다.
 
  —오는 7월 27일로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을 맞습니다. 스웨덴은 스위스와 함께 중감위를 통해 한반도의 ‘평화 중재자’로 활동해 왔습니다. 그동안의 중감위 역할을 평가한다면.
 
  “스웨덴은 중감위를 대표하는 한 국가로서 1953년 8월부터 정전 상태를 유지하는 임무를 돕고 있습니다. 스웨덴을 비롯한 중감위 감독 국가들은 정전협정을 오랜 기간 동안 ‘안정 상태’로 잘 유지해 왔고,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겁니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 지금까지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 건수는 무려 42만5271건에 달한 것으로 유엔사는 집계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북한의 침투와 국지도발은 2953건입니다(2012년 국방백서). 개인적으로 정전 60년 동안 어떤 사건을 가장 큰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습니까.
 
  “가장 잊을 수 없는 사건은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 사건이죠.”
 
  —정전 60주년을 통틀어 보면 1958년 KAL기 피랍 사건을 시작으로 당포함 피격, 청와대 기습 사건,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 국립묘지 폭파 사건,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미얀마 양곤 폭탄 테러, KAL기 폭파 사건, 1~2차 연평해전, 대청해전 등 최근까지 수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북한의 납치, 침투, 인질극, 살인, 항공기 폭파 등의 도발은 지난 60년간 지속됐고, 평균 1년에 한 번꼴로 도발을 했습니다. 연평도 포격 이전의 북한의 도발 가운데 KAL기 폭파 사건이 가장 비극적이었습니다. 1976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발생한 도끼만행 사건은 국제사회에 주목을 끄는 사건이었죠.
 
  1984년 11월 23일 판문점에서 양측 경비병 간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JSA에서 소련인 마쓰작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망명하자, 당황한 북한군 17명이 월남을 저지하려고 군사분계선을 150m까지 침범해 양측이 30분간 총격전을 벌였습니다. 총격전으로 한국군 병사 코퍼럴 장(장명기 상병)이 사망하고, 미군 1명이 부상을 당했고, 북한군도 3명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우리는 사실상 중립 아냐”
 
  —중감위의 임무는 ‘본 정전협정에 규정된 감독, 감시, 시찰 및 조사의 직책을 집행하며 이러한 감독, 감시, 시찰 및 조사 결과를 군사정전위에 보고한다(정전 협정문 41조)’고 돼 있더군요.
 
  “말씀하신 대로 협정 규정에 있는 모든 것이 유효하며, 계속적으로 이행 중인 상태입니다. 여기에 더해 우리에겐 9가지의 확대된 임무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남한이 자국을 방어하고, 전쟁을 억제하고, 정전협정을 지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렌스타드 소장은 “중감위는 중립국들의 감독기구지만, 사실상 우리는 중립이 아니다(We are not neutral)”고 했다. 그는 “유엔군 측은 스웨덴과 스위스를 중재국으로 선택했고, 북한과 공산 측은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를 중재국으로 선택했다”며 “체코와 폴란드는 구소련과 함께 바르샤바조약기구(Warsaw Pact)에 포함돼 있었으나, (1991년) 바르샤바조약기구가 해체된 데 이어 (1999년)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했기 때문에 엄격히 말해 ‘중립(neutrality)’이라는 의미는 사라졌다”고 했다.
 
  그렌스타드 소장은 중감위의 ‘역할 변경’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1995년 이후 유엔군 측 중감위의 임무는 북한을 포함한 전 세계에 한국군과 한반도에 주둔한 미군의 군사력이 북한에 대한 억제력(deterrence)을 갖는 ‘방어용 군사력’이란 사실을 알리고 있다”며 “이를 위해 중감위는 한국에 주둔한 모든 군사력의 투명성(transparency)을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투명성’을 알리기 위해 중감위는 어떤 일을 합니까.
 
  “한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하려는 게 아니라, 방어적 차원에서 억제력을 갖출 뿐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겁니다. 중감위는 한국과 미국을 도와 정전협정을 유지하고, 투명하게(visible) 합니다. 특이사항이 있을 경우, 이 내용을 보고서로 만들어 제임스 셔면 유엔군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에게 보고합니다. 예컨대 올봄 실시된 대규모 군사훈련(키 리졸브)을 관측(observing) 및 감독(supervising)하면서 ‘이 훈련이 자국 방어용이고, 정전협정을 위반한 사항은 없었다’는 내용을 보고하는 것입니다.”
 
  —유엔군사령관에게 보고한 내용을 북한 측에도 전달하나요.
 
  “유엔군사령관에게 보고하는 이 임무는 정전협정상에 추가된 임무(extended tasks) 중 하나입니다. 추가된 임무들은 북한에는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북한에 보고할 의무는 없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이 보고서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북한은 미디어의 귀재(鬼才)입니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군사훈련이 방어용이라는 것을 그들이 더 잘 알 것입니다.”
 
  —1953년 휴전 이후 지금까지 몇 차례나 중감위 회의를 열었습니까.
 
  “지난 목요일(5월 8일) 중감위는 1953년 8월 1일 이래 3339번째인 회의를 열었습니다. 중감위는 최초 휴전선과 포로송환 감시업무로 출발한 임시방편적 조직으로, 아무도 우리가 60년간 이곳에 머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정한 평화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머물 것입니다.”
 
 
  北, “유령들의 편지는 받지 않겠다”
 
2013년 3월 5일 북한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조선중앙TV에 출연해 “2013년 3월 11일 그 시각부터 형식적으로나마 유지해 오던 조선정전협정의 효력을 완전히 전면 백지화해 버릴 것”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판문점에는 남북경계를 나타내는 높이 15cm, 너비 40cm의 군사분계선(MDL)이 있다. 이 선을 중심으로 T1, T2, T3 파란색 건물이 남북으로 걸쳐 있다. T는 Temporary(임시적)의 약자다. 이 건물의 절반은 남쪽, 절반은 북쪽인 셈이다. 왼쪽부터 T1 건물은 중립국감독위원회, T2는 남북공동견학을 위한 건물인 동시에 남북 장성급 회담이 열리는 곳이고, T3은 영관·위관급 장교들이 회담을 여는 장소다.
 
  그렌스타드 소장은 “매주 우리는 공식적인 회의가 있고, 물론 북한도 이 회의에 초대받은 상태”라며 “그들은 1995년 이후로 한 번도 이 회의에 나타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T1 건물의 북한 측 출입문은 항상 열려 있고, 북한군의 방문을 언제든 환영한다”고 했다.
 
  —정전협정 위반사항이 발생하면 중감위는 어떻게 대응하나요.
 
  “특이사항들을 발견해 제임스 셔먼 유엔군사령관에게 보고하고, 그는 보고서를 작성해 유엔안보리와 소통을 합니다. 북한은 정전협정에 따라 우리의 보고서를 열람할 권리가 있습니다(북한은 1991년 군정위 유엔군 측 수석대표로 한국군 장성이 임명되자, 이를 트집 잡아 중감위 보고서 제출을 중단시켰다).”
 
  —보고서를 어떻게 북한에 보여줍니까.
 
  “중감위는 매주 회의를 열고, 주간 회의결과 보고서를 작성해 매주 화요일마다 중감위 북한 측 출입문 쪽에 있는 편지함(letter box)에 넣습니다. 북한 측 문을 열고 보고서를 흔들어 보이죠. 이렇게 ‘당신들(북한)에게 줄 편지가 있다’는 것을 인지시키는 겁니다. 북한은 1995년 이후 한 번도 보고서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보고서를 편지함에 넣는 일을 반복합니다. 편지함이 가득 차면, 3개월에 한 번씩 편지함을 비웁니다. 회수한 보고서들을 따로 보관해 두고 다시 새로운 보고서를 보내는 일을 반복합니다.”
 
  —보고서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습니까.
 
  “주로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 사항들을 포함해 정전협정상의 9가지의 추가된 조항들(extended tasks)에 관한 특이사항들을 명기한 것들입니다. 추가된 조항들은 북한에 대한 구속력은 없고, 남한 측의 모든 군사훈련, 감독, 관측, 특별수사, 출입 인원 등에 관한 내용들입니다. 1995년 이전까지만 해도 중감위 4개국은 군사분계선을 자유로이 넘나들었고, 이곳 중감위 사무실에서 회의를 한 다음, 보고서를 만들어 공산 측과 유엔 측에 전달해 왔습니다. 1995년 이후 북한이 중감위에서 체코와 폴란드를 내보낸 이후 우리는 MDL을 넘지 못하고 있어요.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 수가 없습니다.”
 
  1990년대 들어 북한은 정전협정 무력화에 집착하며 한국을 배제하고 미국과 직접 상대하려고 했다. 1991년 3월 유엔군사령관이 한국군 장성(황원탁 소장)을 처음으로 군정위 유엔군 측 수석대표로 임명하자, 북한은 이를 트집 잡아 군정위의 모든 회의와 중감위 보고서 제출을 중단시켰다. 1993년과 1995년 북한은 각각 체코와 폴란드를 강제로 중감위에서 철수시키면서 정전협정 감시기구를 해체했다.
 
  1994년 중국의 군정위마저 철수하자 북한은 1994년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를 설치하고 미국에 ‘미군 판문점 대표부’를 설치하라고 주장했다. 이후 군정위와 중감위는 사실상 ‘마비상태’로 전쟁 당사자 가운데 공산 측은 빠지고 유엔 측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군정위는 현재 유엔군 장성급과 북한의 조선인민군 대표부 장성급 군사회담으로만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정전협정 유지를 위한 대화채널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셈이군요.
 
  “북한 측에는 중감위를 대변할 아무런 조직도 없습니다. 북한은 군정위를 없애고 ‘조선인민군 판문점 대표부’를 설치했습니다. 북한군은 ‘유령들의 편지는 받지 않겠다’며 중감위와 대화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존재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고, 또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북한군 병사, 3m 거리에서 쌍안경으로 관찰
 
판문점 중감위 회의실 앞에서 영국의 BBC 방송과 인터뷰하고 있는 그렌스타드 소장.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은 여전히 기술적으로 전쟁 중(technically at war)”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한반도가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지역’이라는 사실에 동의하십니까.
 
  “제 시각으로는 그렇습니다. 국제사회엔 오랜 시간 동안 갈등이 존재하고 있어요. 한국전쟁과 뒤이어 체결된 정전협정은 38선이라는 결과를 낳으며 명백히 냉전시대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고 봅니다.”
 
  —‘기술적으로(technically)’란 무슨 뜻인가요.
 
  “아내에게도 이 말을 했더니 ‘남과 북은 싸우지 않고 있다’면서 전쟁 중이란 말을 부정하더군요. 그러나 남과 북은 그 어디에도 평화협정(peace treaty)이 없고, 단지 정전협정(Armistice Agreement)만 있을 뿐입니다. 즉 평화적으로 전쟁종결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는 ‘기술적으로 전쟁 중’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최근 북한 김정은 정권은 3차 핵실험과 은하로켓 발사 등 한반도의 긴장을 계속적으로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중감위 대표로서 판문점에서 피부로 체감하는 한반도 안보상황은 어떻습니까.
 
  “오늘날 판문점은 긴장 상태이고, 대화가 단절된 상태입니다. 판문점에서 아무런 대화나 교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거죠. 하지만 모두가 맡은 일을 잘 하고 있습니다.”
 
  —판문점에 근무하는 북한군을 볼 때, 남한과의 긴장완화 상태일 경우와 긴장이 고조됐을 때 행동이 다르던가요.
 
  “북한 측이 남한 측보다 긴장이 풀려 있습니다.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도발은 역사적으로 북으로부터 왔으니까요. 한국군은 항상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공동경비구역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한국군 병사들과 20미터 거리에서 대치하는 북한군 병사들의 모습을 보면 어떻습니까.
 
  “판문점에 처음 갔을 때, 북한군 병사가 약 3미터 거리에서 쌍안경으로 날 보았습니다. ‘그들이 도대체 무엇을 보는 걸까’라고 생각했죠. ‘혹시 내 얼굴의 주름을 보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들은 제 명찰을 보고 있었던 겁니다.”
 
  —북한이 전면전을 일으킬 경우, 중감위에 근무하는 분으로서 불안하지 않습니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중감위도 모릅니다. 북한이 중감위를 보호할지는 우리도 모릅니다. 누구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으니까요.”
 
  —신변보호를 위해 개인화기를 소지하고 있습니까.
 
  “유일한 무기는 손가락 크기의 스위스 나이프(맥가이버칼로 불리는 휴대용칼)가 전부입니다(웃음). 판문점은 비무장지대라 무기소지가 불가능하거든요.”
 
  —판문점에 들어가 보니,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골프코스’가 있더군요.
 
  (캠프 보니파스 골프코스는 판문점 남측을 경비하는 캠프 보니파스(Camp Bonifas) 미군들을 위한 파3 원홀, 192야드 길이의 골프 코스다.)
 
  “‘핸디캡 7’로 골프를 즐기는 편입니다만, 그곳에서는 못 쳐봤어요. 드라이버샷이 길면 공이 지뢰밭으로, 슬라이스가 나면 언덕 위 군사용 벙커, 훅이 나면 인삼밭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모든 플레이어들은 정신력으로 무장해야 하는 코스라더군요. 공을 많이 준비해 가야 하는 코스입니다.”
 
 
  정전협정 무효화는 불가능
 
2009년 4월 8일 판문점에서 열린 중립국 감독위 회의에 앞서 스위스, 폴란드, 스웨덴 등 중립국 대표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한국인들은 정전 당시 유엔군사령부가 선택한 스웨덴과 스위스 대표를 유엔군사령부 소속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스위스와 스웨덴 대표단은 제임스 셔먼 장군(주한미군사령관이자 유엔군사령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습니다. 유엔군사령관인 셔먼 장군은 우리에게 어떤 명령도 내릴 수 없고, 우리가 하는 일과 미디어 접촉에 대해 간섭할 수 없습니다. 정전협정을 관리하고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담긴 보고서는 유엔군사령관인 셔먼 장군에게 보내져 유엔안보리로 전달됩니다. 우리는 완전한 독립기구입니다.
 
  저를 파견한 것은 유엔이 아니라 스웨덴 정부입니다. 스웨덴 대표부의 중립국 권한으로 온 것입니다. 제가 받는 유일한 명령은 스위스로부터 오는 정전협정 관련 내용입니다. 즉 스위스와 스웨덴이 협의한 내용에 대해서만 임무를 수행합니다. 그 누구도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무슨 말을 하든지 간섭할 수 없습니다.”
 
  그렌스타드 소장은 “우리 가족이 미군이 거주하는 용산 미군(美軍) 영내에 살고 있는 까닭은 중감위의 중재 권한을 발휘하기 위한 것”이라며 “중감위가 관측해야 하는 대상(미군)과 함께 거주하면서 경험과 시간을 쌓으면서 우리의 기반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중감위 임무를 수행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는 공정성을 유지하고,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정전협정이 잘 이행되고 있고, 위반이 있을 때는 보고된다는 믿음을 주는 일입니다.”
 
  —2년 남짓 근무하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이었나요.
 
  “유엔 참전 16개국 사람들과 일해 보았고요, 수많은 한국 친구들을 사귀었습니다. 수많은 전문가들과 일했고, 그들은 모두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주도를 비롯해 한국의 명소들을 둘러봤고, 우리를 초청해 준 한국인들은 모두 따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한국과 스웨덴 간 군사 교류가 활발합니까.
 
  “한국은 스웨덴으로부터 무기를 도입하고 있고(아서 대포병레이더, BV-206기동차량 등), 스웨덴과 비슷한 무기체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스웨덴에서 해군 지휘관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천안함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스웨덴 조사단을 파견하는 일을 담당했습니다. 작년 베른트 그룬데빅 육군참모총장이 서울을 방문했고, 해마다 국방대 학생들이 스톡홀름으로 어학연수를 하러 오는 등 군사 교류가 활발한 편입니다. 한국에서 만난 장교들 중 일부는 저에게 스웨덴어로 말을 걸어오기도 해서 정말 반가웠습니다.”
 
  —한국군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보나요.
 
  “무기체계 면에서도 우수하지만, 특히 인적자원이 좋습니다. 전문성과 학식을 가진 인재들이 최고지휘관에서부터 부사관 이하 계급까지 다양한 계급에 포진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헌신적입니다. 징병제를 통해 교육을 잘 받은 젊은이들이 군에 유입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탑다운’ 방식의 명령체계는 효율성 면에서는 떨어지지만, 북한을 생각하면 비판할 수만은 없습니다. 이것이 유럽의 군대와 한국군의 차이입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차이’라는 것입니다.”
 
  —북한은 지난 3월 군사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했는데, 이러한 정전협정 백지화나 중감위 무력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그들의 무력화 기도에 대해 상당히 익숙해져 있고요, 중감위는 지속적으로 존립할 것입니다. 북한은 정전협정을 결코 무효화할 수 없습니다. 참고로 정전협정은 국가가 맺은 협정이 아니라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정전협정은 3개의 군(軍)이 주체가 돼 맺은 겁니다. 유엔군을 대표해 마크 클라크(Mark Clark) 사령관, 북한의 김일성(金日成) 인민군사령관, 중국의 펑더화이(彭德懷) 인민지원군사령관이 서명했죠. 중감위의 문은 북한에 언제나 열려 있으며, 대화를 다시 시작할 준비가 돼 있습니다. 중립적인 객체를 두고 대화하는 것은 긴장을 완화하는 방법임에 틀림없습니다.”
 
  —현재의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거나, 어느 한쪽이 침략해 정전협정이 깨지게 되면 중감위는 어떻게 됩니까.
 
  “정전협정이 유효한 한, 우리는 여기 있을 것입니다. 정전협정을 파기하려면 서명한 모든 주체가 동의하거나 평화협정으로 대체해야 합니다.”
 
 
  “천안함은 완벽한 어뢰 공격”
 
2010년 7월 21일 판문점을 방문한 클린턴 미 국무장관(가운데)과 게이츠 국방장관(맨 오른쪽)이 군정위 회의실에서 커트 테일러 유엔사 군사정전위 비서장(등 보이는 사람)으로부터 설명을 듣는 장면을 북측 병사가 지켜보고 있다. 북한은 1994년 이후 중감위를 거부하고 ‘조선인민군판문점대표부’를 설치했다.
  —6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6·25전쟁은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특히 지난 2010년 3월 26일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 특별조사팀은 북한 잠수정의 천안함 공격을 정전협정 제2조 12항과 15항 위반으로 결론을 내고 이러한 내용을 유엔에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스웨덴도 당시 국제합동조사단의 일원으로 참여했죠.
 
  “조사 보고서에서는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에 의한 침몰이라는 것이 명백하게 밝혀졌습니다(The report is clear on that it was a NK torpedo that sunk the Cheonan).”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일부 시민단체(참여연대)는 조사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서한을 유엔안보리에 보냈고, 최근 천안함 폭침에 의혹을 제기한 다큐멘터리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감독 정지영)까지 나오는 상황입니다.
 
  “저는 천안함을 실제로 보았고요, 당시 저는 해군 지휘관으로서 폭파 전문가와 조선(造船) 전문가로 구성된 최고의 해군 전문조사팀을 파견했습니다. 덕분에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으로부터 감사장까지 받았습니다.”
 
  —스웨덴 정부가 공식적으로 북한 소행임을 밝혔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2011년 여름, 스웨덴 국방장관이 제가 지금 한 말을 똑같이 했습니다. 스웨덴 조사팀은 조사할 때 첫째, 천안함 침몰의 원인, 둘째 발견된 어뢰, 셋째 북한의 소행 여부 등 3가지 점에 주목했습니다.”
 
  그렌스타드 소장은 “어뢰는 배에 직접 접촉해 타격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선체 아래에서 터져 그 파괴력으로 배를 두동강 낸다”며 “이 원리가 그대로 천안함에 적용됐고, (전술적으로) 완벽한 어뢰 공격이었다”고 했다. 그는 “한미 양국 해군은 사고현장의 바닥을 긁어 어뢰의 잔해를 찾아냈다”며 “폭발을 일으킬 때는 최초로 터진 물체의 잔해가 대상 물체에 마치 지문(指紋)이 찍히듯 나타나기 마련”이라고 했다.
 
  그렌스타드 소장은 직접 물컵을 엄지로 찍어 지문을 만들어 보였다. 그는 “이 때문에 어뢰에서 터진 잔해들이 배 안에서 나왔고, 어뢰의 화약(gun powder)도 천안함에서 발견됐다”며 “이것은 북한의 어뢰가 천안함을 침몰시킨 명백한 증거”라고 했다. 스웨덴은 비밀문서 양해각서(memorandum)에 해당사항이 없어 3번째 사안에는 직접 참여할 수는 없었지만, 우리는 북한의 소행임을 명백히 밝혔고, 스웨덴 정부도 공식적으로 북한의 소행임을 확인했다.
 
 
  스웨덴도 ‘소련 잠수함 사건’ 겪어
 
  —한국인들 가운데 일부는 왜 북한의 소행을 믿지 않는 걸까요.
 
  “국가기관에 대한 불신은 반복적으로 발생합니다. 즉 서로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부가 공개적으로 알려야만 합니다. 실수를 저질렀을 때도 마찬가지로 국민에게 실수를 인정하고 알려야 합니다. 군대도 마찬가지죠. 늘 정직하다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불신은 항상 존재합니다.”
 
  그렌스타드 소장은 “스웨덴도 천안함 사건과 유사한 일을 겪었다”면서 “구소련의 잠수함이 스웨덴의 영해를 침범해 좌초했을 때, 스웨덴 국민들도 이 사실을 믿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이 부분에 대해서 스웨덴 역시 기밀을 밝힐 수 없어 불신을 당한 ‘상처’를 갖고 있다”면서 “그때의 일들로 우리도 어렵게 성숙해졌다”고 했다.
 
  —어떤 사건이었습니까.
 
  “1981년 10월 27일 당시 소련 디젤 잠수함 1척이 스웨덴 칼스크로나 해군 기지가 있는 만(灣) 안에서 좌초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구소련의 잠수함과 스웨덴의 잠수함의 군사적 충돌이 고조되던 시기였습니다. 스웨덴 정부는 군사 기밀상 소련 잠수함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국민들은 물속 암초에 걸린 잠수함을 미국 또는 서방세계의 잠수함이 스웨덴 영해를 침범한 것이라고 의혹을 부풀렸습니다.
 
  이러는 사이에 소련은 자국의 국적인 잠수함을 무장한 함정을 통해 예인하려 접근했고, 스웨덴군은 이에 맞서 일촉즉발의 긴장이 감돌았습니다. 결국 비무장을 한 스웨덴 장교가 소련 함정에 접근해 조사를 벌였고, 소련 측은 회전나침반(gyrocompass) 고장으로 인한 항행착오 때문이라고 석연치 않은 설명을 했습니다. 스웨덴 정부는 소련 측의 구조작업 주장에 양보하지 않고 보름간 줄다리기를 했습니다. 결국, 스웨덴 예인선이 잠수함을 스웨덴 항구로 예인해 승조원에 대한 심문과 함 내 조사를 한 다음, 소련 정부의 정식 사과를 받고서야 잠수함을 돌려보낸 사건입니다.”
 
  —천안함 침몰을 북한의 소행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과 똑같네요.
 
  “그렇습니다. 스웨덴군은 소련군 잠수함이 자주 영해를 침범하고 있었던 데다, 레이더의 항적(plot) 자료를 통해 소련의 위스키급 잠수함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밀을 노출할 수 없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균형을 깨달았습니다. 군사기밀을 어느 선까지 국민들에게 알려 신뢰를 얻느냐 하는 균형 말입니다. 아무튼 이 사건 이후로 스웨덴군이 언론을 대하는 태도가 더 솔직해졌고, 국민들과 소통하기 시작했습니다.”
 
 
  연평도 포격, 운 좋았다
 
그렌스타드 소장이 키 리졸브 한미연합훈련 현장에서 한국 해군과 미군 관계자들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북한은 2010년 11월 휴전 이후 처음으로 대한민국 영토인 연평도에 무차별 포격을 가했습니다. 연평도 포격 현장을 가보셨는지요.
 
  “2011년 봄 무렵 연평도를 다녀왔습니다. 막 복구를 시작하고 있는 군사시설과 민간인 마을을 둘러봤습니다. 포탄이 떨어진 자리를 보았고, 연평도 주민들과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연평도 포격은 더 큰 참사를 낳을 수 있었는데, 운(luck)이 좋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포격 당시, 막 연평도에 배가 도착해 주민들이 내리던 참이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마을에는 주민들이 적었습니다.”
 
  그렌스타드 소장은 “유럽의 대다수는 천안함 침몰사건을 알지 못하지만, 연평도 포격은 잘 알고 있다”며 “연평도 포격이 한창일 때 CNN이 전 세계로 생중계를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민간인 지역에 무차별적으로 포격을 가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반적으로 군대와 군대 간의 문제가 아니라면, 상황은 안 좋은 방향으로 확대됩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포탄을 맞은 전체적인 모양을 보면 당시 (북한 측) 지휘관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북한의 의도는 연평도 군부대를 조준한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연평도는 지형상 고지대에 군부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고지대를 조준했으나, 빗나간다면 당연히 고지대 후사면의 마을로 포탄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들이 이런 점을 신경 썼는지 안 썼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많은 양의 포탄이 군사지역에 떨어졌습니다.”
 
  —최근에 개성공단이 사실상 폐쇄상태인데, 그곳에 가보셨는지요.
 
  “저는 ICQ(남북출입국사무소)까지만 가보았습니다.”
 
  —한국의 일부 정치인들은 개성공단 설치가 북한의 포병부대를 후방으로 옮기는 효과를 가져와 위협을 감소시킨다고 합니다.
 
  “오늘날 포의 사정거리는 깁니다. 심지어 우리가 앉아 있는 이곳까지도 포탄이 날아올 수 있습니다. 개성공단은 군사적 위협 감소보다 5만명의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주었다는 것, 북한의 삶을 개선시켰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겁니다. 물론 불행히도 북한정권을 먹여 살리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개성공단이 재가동되기를 희망합니다. 이와 유사했던 프로젝트로는 동쪽의 금강산도 역시나 좋은 예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둘 다 지금은 운영되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이 다시금 대화의 물꼬를 트고 6자회담과 같은 기회를 만들 것입니다.”
 
 
  “중감위, 정전협정이 있는 한 존속할 것”
 
2012년 3월 경기도 평택의 해군 2함대 사령부를 방문한 어린이들이 북한에 의해 폭침됐다가 인양된 천안함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왼쪽). 2010년 5월 25일 서울 용산구 용산동 국방부에서 천안함 관련 유엔사 특별감사단 일행이 천안함 침몰지점 인근에서 인양한 증거물을 살펴보고 있다(오른쪽).
  —중감위 스웨덴 대표로서, 중립국 스웨덴 장성으로서 박근혜 정부에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은지요.
 
  “그 부분에 대해서 나는 중립적인 자세를 지키고 싶습니다. 하지만 올봄에 시행된 대북정책들은 좋은 시도들이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미 상·하원 의원 연설에서 DMZ 내에 ‘평화공원’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런 점이 한반도 긴장완화에 실제로 도움이 될까요.
 
  “박 대통령이 올봄에 닥쳤던 남북 긴장 국면을 잘 타개했다고 봅니다(professionally well managed). 그리고 박 대통령은 균형을 갖추고, 북한과의 대화채널을 열어두었습니다(leaving a door for the dialogue). 평화공원을 조성한다는 시도 혹은 다른 그 어떤 시도라도 좋습니다. 현재 남북관계는 긴장이 고조돼 있습니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남이든 북이든 실수를 저지르는 쪽은 매우 좋지 않은 상황을 불러올지도 모릅니다.
 
  이 상황에서 북핵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까지 한국 정부는 수많은 시도를 해왔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진척도 있었습니다. 현재 우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습니다. 탈출구는 오로지 대화뿐입니다. 평화적인 종결이 있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한반도 정전을 주도했던 미국과 중국 간 중감위 리모델링에 대한 대화도 매우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두 나라 간의 논의는 없나요.
 
  “없습니다. 그들은 아무런 논의가 없고, 그저 중감위는 지금까지 우리가 해왔던 업무에 대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해나갈 뿐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의 변화는 필요 없습니다. 이미 우리 중감위는 너무, 그리고 충분히 바쁩니다(웃음).”
 
 
  JSA처럼 직접 조사권한은 없어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포스터.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를 봤습니까. 그 영화를 통해 한국인들은 중감위의 존재를 자세히 알게 됐다고 합니다.
 
  “보았습니다. 영화는 중감위가 어떤 일을 하고 있고 비슷한 상황일 때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를 꽤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중립을 유지하고 신뢰를 주는 것이니까요. 스위스 중감위 장교 중에 그런(이영애와 같은) 장교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웃음). 중감위에는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영화 속에서 금발의 스웨덴 장교 역할을 한 여자는 독일인이라 ‘옥에 티’였다고 생각합니다(웃음).”
 
  —배우 이영애가 스위스 장교로 나와 정전협정 위반여부를 수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수사권한이 있나요.
 
  “영화 속에서 이영애씨가 했던 것처럼 제가 직접적으로 대면해서 조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정전협정 위반사항의 경우,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를 조사하게 됩니다. 우리가 원하는 답을 얻을 때까지 질문내용을 (미국이나 한국 측에) 추가하거나 개입할 수 있습니다. 이 조사는 정전협정 내용에 기록된 대로 중감위의 특수조사권(special investigation)에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중감위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판문점 생활은 좀 따분할 것 같습니다.
 
  “장마철이 되면 지루할 수도 있겠죠? 당신들(월간조선)의 사무실이 서울 한복판에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사무실이 그곳(판문점)에 있을 뿐입니다. 회의를 주재하며, 판문점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인지하며 우리의 존재를 알리는 겁니다. 우리는 판문점 사무실에만 앉아 있지 않습니다. 훈련 현장에서 관측과 감독을 하기도 하고, 군 관련 기관에서 강의도 하고, 특수조사도 하고요. 중감위 업무는 마라톤과 같습니다. 업무의 페이스가 매우 벅찬 것은 아니지만, 늘 꾸준히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렌스타드 소장은 “중감위에서 스웨덴 대표로서 업무를 하기 위한 덕목으로 인내가 필요하다”며 “‘더 이상 북한의 도발에 놀라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은 매번 빗나가게 되고 늘 긴장(alert)하게 된다”고 했다.
 
  부인과 함께 서울 생활을 하고 있는 그렌스타드 소장은 “아내가 한국경제를 살리기 위해 엄청나게 쇼핑을 하고 있어 아마도 한국인들의 세금이 내려가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올가을이면 큰딸이 출산을 하게 돼 할아버지가 된다”며 웃었다.
 
  가수 싸이의 ‘젠틀맨’보다 ‘강남스타일’을 더 좋아한다는 그렌스타드 소장. 그는 중립국감독위원회의 스웨덴 대표로서 ‘중립’의 본분을 잊고 ‘케이팝’에 취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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