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다. 한발 앞서가면 고난이 따르고 개혁에는 반대가 있게 마련”
⊙ 글로벌 금융위기 보고 때 李明博 대통령의 첫 반응: “위기가 기회다. 기업은 위기 때 돈도 벌고
순위도 바꾼다. 위기관리를 위해 현금이 제일 중요하다”
⊙ 경상수지 관리는 국가경영의 기본
⊙ “여당과 청와대 일부 사람도 나에 대한 비판에 동참해 섭섭했다”
⊙ 장관 재임 시절 경상수지 흑자 전환, 일본 관광객 유치, 종합부동산세 개정 세 가지는 기필코
실천하겠다고 다짐하고 그렇게 했다
⊙ “사랑의 매는 사람을 분발시키지만 증오의 매는 영혼을 파멸시킨다”
⊙ 지난 정부의 종부세는 조세원칙에 맞지 않는 일종의 ‘정치폭력’
姜萬洙
⊙ 1945년 경남 합천 출생.
⊙ 경남고·서울대 법대 졸업, 미국 뉴욕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 재무부 이재국장·국제금융국장·세제실장, 관세청장, 통상산업부 차관, 재정경제원 차관,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디지털경제연구소 이사장,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원, 기획재정부 장관 역임.
⊙ 저서: <부가가치세의 이론과 실제>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등 저술.
⊙ 글로벌 금융위기 보고 때 李明博 대통령의 첫 반응: “위기가 기회다. 기업은 위기 때 돈도 벌고
순위도 바꾼다. 위기관리를 위해 현금이 제일 중요하다”
⊙ 경상수지 관리는 국가경영의 기본
⊙ “여당과 청와대 일부 사람도 나에 대한 비판에 동참해 섭섭했다”
⊙ 장관 재임 시절 경상수지 흑자 전환, 일본 관광객 유치, 종합부동산세 개정 세 가지는 기필코
실천하겠다고 다짐하고 그렇게 했다
⊙ “사랑의 매는 사람을 분발시키지만 증오의 매는 영혼을 파멸시킨다”
⊙ 지난 정부의 종부세는 조세원칙에 맞지 않는 일종의 ‘정치폭력’
姜萬洙
⊙ 1945년 경남 합천 출생.
⊙ 경남고·서울대 법대 졸업, 미국 뉴욕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 재무부 이재국장·국제금융국장·세제실장, 관세청장, 통상산업부 차관, 재정경제원 차관,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디지털경제연구소 이사장,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원, 기획재정부 장관 역임.
⊙ 저서: <부가가치세의 이론과 실제>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등 저술.
강 위원장은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재경원 차관에서 물러나면서 공직을 떠났다. 공직을 떠난 10년 후인 2008년 2월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공직에 복귀했다. 친정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셈이다.
1982년 소망교회에서 李明博(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27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그는 이명박 정부의 大選(대선) 공약인 ‘747 공약(연 7% 성장, 1인당 4만 달러 소득, 7대 강국 진입)’을 입안하는 등 ‘MB노믹스(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의 입안자이자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는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으로 정책 브레인 역할을 했다.
이런 인연 때문인지 지난 2월 入閣(입각) 11개월 만에 장관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그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총괄하면서 각종 비난이 쏟아질 때마다 이를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정권 출범 초기에는 환율이 너무 낮으면 수출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다며 고환율을 유도했다는 비난을 받았고, 지난해 11월에는 종합부동산세 違憲(위헌) 여부에 대한 결정을 앞두고 헌법재판소와 사전 접촉했다는 발언으로 파문이 일었다. 경기부양을 위해 법인세와 종부세를 감면하려 할 때는 “기업과 부자들만을 위한 減稅(감세) 정책”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신청 직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리만(이명박 대통령+강만수 장관)브러더스가 위기를 만든다”는 조롱까지 받았다. 국제 油價(유가) 등 원자재 가격 폭등에 환율상승까지 겹치자 야당과 언론, 심지어 여당에서까지 강만수 장관 교체 요구가 빗발치기도 했다.
“기자 없고 국회의원 없는 곳에서 일하니 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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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6월 24일 오후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제14차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강만수 위원장과 함께 회의실로 가고 있다. |
그가 장관직에 있는 동안 추진했던 환율정책은 경상수지 흑자로 이어졌고, 과감한 재정지출은 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경제회복세를 보이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기획재정부 장관직에서 물러난 후 청와대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여전히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 참모 역할을 맡고 있는 그를 만났다.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 취임 후 ‘교통운영체계 선진화 방안’ ‘건설산업 선진화 방안’ ‘국적제도 개선 방안’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인데 어려운 점은 없습니까.
“미국의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신뢰를 기초로 한 사회적 자본이 국가경쟁력의 주요 요소라고 말했어요. 저는 요즘 사회적 자본 확충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인감 폐지에 대해 일부에서 반발이 있던데요.
“반발이라기보다는 오해에 의한 해프닝이었어요. 당사자가 가도 인감증명 떼 오라고 하잖아요. 당사자가 왔는데 인감이 왜 필요해요. 그런 낭비를 없애자는 거죠.”
―한 부처의 首長(수장)에서 대통령 자문위원회로 옮긴 후 느낀 두 직책의 가장 큰 차이점은 어떤 겁니까.
“지난해에는 남의 박자에 맞춰 떠밀리듯 하루하루 일했습니다. 지금은 저의 박자에 맞춰 하고 싶은 일을 합니다. 누군가가 ‘기자 없고 국회의원 없는 데서 일하니 얼마나 편하냐’고 하더군요.”
―2009년 2월 장관직에서 물러나면서 “올해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이라고 작년에 대통령께 보고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국회에 플러스 경제성장을 예측한 수정예산을 제출한 후 선진국 전망이 마이너스로 수정됨에 따라 우리도 마이너스로 수정해서 보고했습니다. 지난해는 하도 변동이 많아 2009년 경제전망에 대해 IMF는 2008년 다섯 번, 올해 들어 네 번이나 예측을 수정했습니다. 당초 3.8%에서 지금은 -1.4%까지 수정했어요. 우리도 지난해 11월의 경제지표가 크게 악화되어 성장전망을 3%에서 -2%로 수정하여 12월 말에 대통령께 보고했습니다.”
환율정책에 대한 해외의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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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제11차 회의에 앞서 강만수(왼쪽) 위원장과 사공일(오른쪽) 전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
“경제여건에 따라 환율이 올라가는 것과 정부가 억지로 환율을 올리는 고환율 정책은 다릅니다. 과도하게 평가된 환율이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환율이 올라간 것입니다.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되면 기업과 마찬가지로 국가도 부도가 나는 것입니다. 경상수지가 2004년 280억 달러 흑자에서 매년 半(반)토막으로 악화되어 적자로 가는데도 원화는 일본의 3배나 절상됐습니다. 우리보다 두 배 이상 소득이 높은 일본에 가서 골프 치고 명품을 사는 것이 싸고, 외제 승용차와 포도주도 엄청나게 수입됐지요. 1997년 외환위기 전 미국인 영어 가정교사가 서울을 누빈 것이나 승용차, 골프채, 포도주 수입이 폭증한 것과 같은 것이지요.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에 육박하고 물가가 5%대로 오르자 고환율 탓으로 비난했지요. 경제학자들 일부도 고환율 때문이라고 비난했던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지난 상반기는 유사 이래 최고인 217억 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냈고 일본인 관광객도 돌아왔습니다. 이것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겠습니까? 경상수지 관리는 국가경영의 기본입니다. 작년에 저를 공격하던 사람들 논리대로라면 올해 성장도 이렇게 될 수 없고 경상수지도 적자가 돼야겠죠.”
―우리 환율정책에 대한 해외의 평가는 어땠습니까.
“영국 <이코노미스트> 평가에서는 우리나라가 세계 82개국 중 환율, 무역정책은 가장 잘한 나라의 하나로 돼 있어요. 국내 언론에는 별로 보도되지 않은 사실이죠. 환율주권론이 문제가 됐는데, 이런 위기상황에서 환율을 시장에 맡기는 나라는 지구상에 없습니다. 물론 정상적일 때는 시장에 맡겨야죠.”
韓美 통화 스와프 체결 秘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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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한한 윌리엄 로즈 시티그룹 부회장(오른쪽 두 번째). 로즈 위원장은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 당시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도움을 주었다. |
“세계 전문가들이 잘했다는데 우리 내부에서만 공격한 거죠.”
―안정론자가 아닌 수출주도형의 성장론자라는 평가가 많은데 이에 동의하시는지요. 또 경제정책에서 안정과 성장은 꼭 한쪽의 희생을 전제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성장을 통한 안정이 지속가능한 경제라 믿습니다. 우리와 같이 자원이 없는 작은 경제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수출이 필수적입니다. 과거 공산권 경제가 안정은 됐지만 성장이 없어 결국 붕괴됐습니다. 성장과 안정은 상호 보완관계이지 상충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안정이냐, 성장이냐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선진국들이 있습니까.
“선진국에서는 그런 논쟁을 별로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왜 우리나라에서는 논쟁거리가 되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
―장관직에 있으면서 글로벌 금융위기는 언제쯤 감지했습니까.
“2007년 8월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졌지만 외환보유고가 2619억 달러였고 기업과 은행도 건전했기 때문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고 이어 미국의 상징인 GM과 시티은행이 파산위기에 몰리자 세계가 놀랐습니다. 심각한 위기는 이때 느꼈지요.”
―글로벌 금융위기 가능성을 이명박 대통령께 보고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작년 9월 말 대통령께 위기를 보고하자 ‘위기가 기회다. 내가 기업을 경영해봐서 아는데 기업은 위기 때 돈도 벌고 순위도 바꾼다. 위기관리를 위해 현금이 제일 중요하다’라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이에 따라 위기대책도 마련했고 한미 통화 스와프도 추진했습니다. 결정적인 위기상황에서 CEO 출신 대통령을 가진 우리는 큰 축복이라 생각했지요.”
―한미 통화 스와프는 왜 필요했고, 경제위기 극복에 어떤 도움을 주었다고 보는지요.
“당시 외환보유가 2118억 달러였고 단기외채가 1900억 달러였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위기극복이 가능했지만, 환율이 1500원 수준에 육박할 정도로 시장불안이 매우 컸습니다. 시장의 불안심리를 잠재우기 위해 한미 통화 스와프가 필요했고, 이것이 외환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 당시의 비화를 들려줄 수 있는지요.
“대통령의 지시로 10월 11일부터 워싱턴에서 열린 IMF 연차총회에 가서 미국 재무부와 통화 스와프를 협의했지만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통화 스와프 체결의 기준이 트리플A 중앙은행이었는데 우리는 싱글A였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G20 재무장관 회의에 참석한 것이 기회였습니다. 저는 미국 측에 “통화 스와프에 신흥국을 빼면 ‘리버스 스필 오버(reverse spill-over: 미국 국채를 매각함에 따른 금리상승과 유동성 유출)’에 의해 미국의 위기극복 노력을 저해한다. 빠른 위기극복을 위해 G20의 공조가 필수적이고 신흥국과의 통화 스와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총회기간 동안 한국은행과 함께 노력했지만 성과 없이 끝나고 13일 뉴욕으로 갔습니다. 다음날 시티은행의 루빈 고문(1997년 외환위기 당시 미국 재무장관)과 로즈 회장을 만나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한미 통화 스와프 확정 소식 듣고 크게 기뻐해
강 위원장은 두 사람을 이런 논리로 설득했다고 한다.
“한국의 문제는 달러가 아니라 시장의 불안이다. 통화 스와프가 체결되면 미국 돈 1달러도 필요 없을 수 있다. 리버스 스필 오버를 생각하면 미국을 위해서도 한미 통화 스와프가 필요하다. 미국에 결코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니다.”
이 말에 루빈 장관이 전적으로 동감하고 옆에 앉은 로즈 회장에게 “오늘 가이트너 뉴욕연방은행 총재와 오찬 회동 때 강 장관의 얘기를 전하고 한국과의 통화 스와프에 대해 논의해 보라”고 말했다고 한다.
“로즈 회장은 오후 두 시경 전화로 가이트너 총재가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면서 10일 후에 최종 결정이 난다고 전했습니다. 10월 24일 韓中(한중) 통화 스와프 협의차 베이징에 가 있던 중 로즈 회장이 휴대폰으로 통화 스와프가 확정되어 30일 발표한다는 소식을 전해 왔어요. 베이징에서 열린 ASEM 정상회의에 참석 중이던 대통령께 호텔로 가서 보고했지요. 10월 27일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서 논란이 된 ‘외환위기는 이제 끝났다’는 발언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습니다”.
―한미 통화 스와프에 대한 보고를 듣고 대통령이 뭐라고 하던가요.
“아주 기뻐하셨죠. 스와프 체결 금액이 얼마냐고 물으셔서 300억 달러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대통령께서 ‘여기 뭐 마실 것 없어?’ 하면서 술을 찾으셨어요. 무슨 술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하여튼 술을 가져오라고 해서 경제수석하고 함께 한 잔했죠. 토요일에 귀국했는데 월요일에 국회 시정연설이 예정돼 있었습니다. 그날 대통령께서 사전 원고에는 없던 ‘대한민국에 외환위기는 끝났다’고 해서 언론에서 비판을 받았죠. 대통령께서는 하루라도 빨리 시정연설을 통해 국민을 안심시키고 싶었던 거예요.”
―한미 통화 스와프를 체결하러 갈 때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보셨습니까.
“우리 차관보하고 실무진이 사전에 미국 측 실무진과 논의했지만 거의 불가능하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을 사전에 대통령께 이야기를 못 했어요. 대통령께서는 現代(현대)를 이끌면서 ‘NO’라는 게 없던 분입니다. 부딪쳐서 실패하면 어쩔 수 없지만 끝까지 부닥쳐 보지도 않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고 포기하는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 스타일입니다. 부딪쳐 보고 안되면 그때 가서 ‘안됐습니다’고 얘기해야겠다고 판단했죠. 실무자들 이야기만 듣고 중간에 ‘안되겠습니다’ 할 수는 없었어요.”
“결과로 말하겠다”는 심정으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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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국가경쟁력 강화위원장에 위촉된 강만수 위원장, 현인택 통일부장관(오른쪽). |
“국가부도 사태까지는 가지 않았겠지만 엄청난 코스트를 치렀을 겁니다.”
―통화 스와프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왔습니까.
“원래 통화 스와프는 미국, 영국, 캐나다, 일본 등 선진국들 간 체결이 먼저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도 핫 라인으로 미국 차관보와 수시로 연락을 했습니다. 선진국끼리 통화 스와프를 하면서 언론에 보도되기 전에 저쪽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미안하지만 한국은 빠졌다고 말이죠. 저는 당연히 한국도 넣어 달라고 했죠. 실무적으로 계속 접촉했지만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제가 직접 미국으로 갔던 겁니다.”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에 실패했다면 우리 경제는 어떤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보십니까.
“우리 힘만으로 시장의 불안을 진정시키는 데 많은 고통과 비용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외환보유고도 많이 축냈을 것이고, 지금과 같은 조기 회복도 어려웠겠죠.”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쳐오자 ‘강만수 경제팀’에 대한 비판이 높았습니다. 그때의 심정은 어땠는지요.
“제가 부족한 점이 많았나 봅니다. 새벽에 교회에 나가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결과로 말하겠다’는 생각으로 하루도 쉬지 않고 위기 극복을 위해 온몸으로 부딪쳤습니다. 위기와 전쟁 중에 뒤에서 쏜 총을 맞고 실패할 시간도 없었는데 고환율 정책으로 실패했다고 단죄당하기도 했지요.”
그는 “역사는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다. 한발 앞서가면 고난이 따르고 개혁에는 반대가 있게 마련”이라면서 말을 이었다.
“부가가치세를 도입할 때도, 중앙은행을 개편할 때도 엄청난 반대와 비난을 받았어요. 1997년 외환위기와 싸울 때는 高(고)금리와 외환보유고 낭비라는 비난을 받았고, 2008년 경제위기 때는 고환율과 물가상승에 대해 비난을 받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성공은 했지만 엄청난 소용돌이 속에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제가 風雲兒(풍운아)인지 시대의 풍운이 저를 몰아쳤는지 모르겠네요.”
―기획재정부 장관 재임 시절, 나라의 운명이 걸린 최악의 금융·외환위기를 맞아 격전을 치렀고, 尹增鉉(윤증현) 장관은 어느 정도 진정된 금융시장에서 기나긴 경기침체와 장기전을 하고 있는 상황에 빗대 한 언론은 “‘뭇매 맞던 강만수의 100일’이 ‘칭찬받는 윤증현의 100일’보다 好(호)시절이었다”고 표현했습니다. 억울하다는 생각 안 듭니까.
“마음이 아팠습니다. 인터넷 때문에 가족들도 상처를 받았어요. 앞만 보고 일만 생각하는 것이 저의 단점입니다. 여당과 청와대 일부 사람도 비판에 동참해 섭섭했습니다. 원유와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여 세계의 물가가 다 올라갔는데 고환율 정책 때문이라고 비판받았어요.
거센 비판과 비난 속에서 위기극복을 위한 정책들을 하나하나 실천했습니다. 올해 상반기 경상수지는 적자에서 유사 이래 최고인 217억 달러 흑자를 냈고, 성장률은 OECD 국가 중 최고 성적을 기록했으며 물가도 안정되지 않았습니까? 대통령께서 저의 정책을 지지해 주신 것이 큰 힘이 됐습니다.”
여당은 ‘말리는 시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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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재정부 장관 시절 국회에 출석한 강만수 위원장. |
“대학 때부터 친하게 지내는 친구이고 생각도 비슷합니다. 德(덕)이 있고 정도 많고 능력도 겸비한 사람입니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명박 정부의 기본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우리 경제가 조기에 회복되고 있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장관 재임 시절 언론 등에서 직접 이름을 거론하며 장관 교체 요구가 많았는데 섭섭하지는 않았는지요. 교체 요구를 하면서 가장 억울한 사실관계의 오해가 있었다면 어떤 점이었습니까.
“정권을 잃은 야당의 정치공세로 받아들였습니다. ‘고환율 정책’, ‘부자 감세’ 등 정치공세의 성격이 짙었습니다. ‘경제대통령’에 대한 간접공격이라는 성격도 있었던 것 같았고, 특정 언론과 기자들의 의도적인 공격도 있었던 것 같았고요. 국회에서 마음이 상해 ‘사랑의 매는 사람을 분발시키지만 증오의 매는 영혼을 파멸시킵니다’라고도 했죠.
과거 정부와 반대되는 정책을 펴고 종합부동산세 같이 정치색이 짙은 ‘대못’들을 뽑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비용이라 생각했지요. 피 흘리지 않고 전쟁을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청문회까지 갔던 ‘憲裁(헌재) 접촉’ 문제도 과거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재정부 직원을 파견까지 해놓고 문제 삼은 겁니다. 결과는 없던 일로 끝났지요. 야당이야 정치공세로 치더라도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청문회까지 받아들인 여당은 ‘말리는 시누이’ 같았습니다.”
―어느 정도 경제위기 상황이 진정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밑그림은 ‘강만수 경제팀’이 실제로 다 그려 놓고 하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평가에 감사 드립니다. 지난 換亂(환란)의 경험을 거울삼아 감세, 재정확대, 금리인하, 환율실세화, 규제완화 등 세계에서 가장 선제적이고(preemptive), 단호하고(decisive), 충분한(sufficient) 정책을 폈습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외국 언론들은 신속하고 과감한 재정확대와 환율실세화가 한국경제를 ‘기대 이상의 회복(unexpected boost)’으로 이끌어 ‘시장을 놀라게 했고(surprised market watchers)’ ‘다른 나라에 주목거리를 주었다(serves notice to other economies)’고 평가했습니다. 지난 정부에서 경상수지가 급격히 악화되는 데도 엔화에 비해 3배나 절상됐던 원화를 실세화한 데 대해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아주 좋게 평가했습니다. IMF와 OECD는 감세정책도 높이 평가했습니다. 블룸버그는 ‘서울 관료들에게 경의를(Hats off to officials in Seoul)’이라고 했지요. 재정부를 떠날 때 이례적으로 기자단에서 저의 캐리커처와 이름을 새긴 볼펜을 주더군요. 때늦은 평가(?)로 생각하면 될까요?”
직관, 의지, 용기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정부 초기 ‘고소영’ ‘강부자’ ‘S라인’ 등 내각 구성을 비아냥거리는 新造語(신조어)들이 속출했는데요.
“저는 세 가지에 다 해당돼요. ‘고소영’에서는 소망교회가, ‘강부자’에서는 강남에 거주하는 것이, ‘S라인’에서는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 경험이 있어 셋 다 해당됐죠.”
―정신적으로 힘들었겠습니다.
“여기저기서 저를 물러나라고 할 때 딸애가 저한테 ‘아빠, 왜 과거에 저한테 술 드시고 한 이야기를 실천 못 해요’ 하는 거예요. 제가 딸애에게 ‘뭐라고 그랬는데?’ 하고 물으니까, ‘아빠는 장관을 하루만 해도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셨잖아요. 이제 몇 달 하셨으니까 그만두세요’ 하는 거예요. 지난 연말 연초에는 온 가족이 그만두라고 했죠. 그만큼 저보다 우리 가족이 힘들었어요. 저는 지난 10년간 野人(야인) 생활하면서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걸 1년 동안에 다 쏟아 넣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일을 했습니다. 1982년에 소망교회가 새 건물을 짓고 이전할 때부터 나갔는데, 처음에는 이 대통령이 나오는지도 몰랐어요. 대치동에 있는 아파트는 1982년에 당첨된 후 1984년 초에 입주해 지금까지 살고 있는 곳입니다. 그 시절에는 대치동이 奧地(오지)였지요.”
―장관 교체 결정 직후 “예부터 재앙이 들면 굿판을 벌이고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냈다. 이때는 희생양이 필요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본인을 희생양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재앙을 만나면 나라님을 탓하고, 공직자는 그것을 민심으로 받아들여야죠. 할 일을 다 하고 떠날 때 떠났습니다. 저는 좌파정부 10년 동안 야인 생활을 했습니다. 재무부 사무관에서 출발하여 장관까지 됐으니 무엇을 더 욕심내겠습니까. 조국을 위한 마지막 봉사로 생각하고 일했지요. 전대미문의 위기라 경제전문가들도 정답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직관, 의지, 용기로 일할 수밖에 없었지요. 저소득층의 고유가 극복을 위한 소득세 환급, 민간수요 확대를 위한 감세, 조기 경기회복을 위한 재정지출 확대, 국제수지 개선을 위한 환율실세화 등 위기극복을 위한 모든 정책을 다 추진했습니다. 특히 경상수지를 흑자로 전환시키고, 일본 관광객을 다시 불러오고, 종합부동산세를 사리에 맞도록 고치는 세 가지 일은 기필코 하겠다고 다짐했고, 그렇게 했습니다.”
우리 위기관리 시스템 잘 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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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긴급 경제상황 점검회의 장면. |
“희생양이라기보다 뜻을 펴 보지도 못하고 떠난 분들이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1998년 IMF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을 역임하는 등 두 차례 큰 국가적 위기 때마다 주요 경제 관료로 계셨는데, 한국의 위기관리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위기관리 시스템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1997년에는 야당의 반대로 위기관리에 차질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야당을 설득하여 협조를 얻어냈습니다. 두 번 다 우리는 위기를 잘 관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IMF와 지난해 9월의 금융위기 가운데 굳이 輕重(경중)을 따진다면 우리 경제에 더 치명적인 위기는 어떤 것이었다고 보십니까.
“1997년 위기는 우리 상황이 좋지 않아 매우 어려웠지요. 당시 기업 부채비율이 400%가 넘었고, 은행의 자기자본 비율은 8% 이하였고, 외환보유고도 3개월 경상지급에도 못 미치는 200억 달러였지요.
지금은 기업 부채비율이 100% 정도이고, 은행의 자기자본 비율은 12% 정도, 외환보유고도 최고 2600억 달러였지요. 위기탈출에는 이번 위기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두 위기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1997년은 ‘만기의 불일치(maturity mismatch)’, 지금은 ‘저축과 소비의 불일치(savings & consumption mismatch)’라고 할 수 있어요. 금융위기가 실물로 전이된 것이 공통점이고, 아시아의 국지적인 유동성 위기라는 점과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적이고 구조적인 위기라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지난 위기는 세계경제가 좋았기 때문에 유동성만 해결되면 쉽게 해결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세계경제가 나쁘고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에 탈출에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는 점이 다르기도 하고요.”
미국에 훈수
―1997년 12월 종금사 폐쇄, 은행 구조조정 등을 강하게 몰아붙였던 30대의 미국 재무부 차관보가 지금 미국 재무부 장관입니다. 티머시 가이트너 장관은 10년 전 우리에게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요구했지만, 막상 자신의 나라엔 시간 끌기로 버틴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한 언론은 이에 대해 “남에게 훈수 둘 때는 쉽지만, 정작 내 바둑을 두게 되면 어려운 법”이라고 표현했는데, 여전히 위기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미국에 한마디 훈수를 하신다면.
“차관보 시절 가이트너는 조용한 신사 같다고 느꼈습니다. 작년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미국이 선제적이고(preemptive) 단호한(decisive) 위기대책을 추진한다고 했을 때 우리가 1조원으로 출발한 공적자금이 168조원으로 늘어난 것을 예를 들면서 ‘충분한(sufficient) 자금이 필요하다’고 훈수(?)했습니다.
우리는 GDP의 7%에 가까운 67조원의 경기회복책을 쓰고 있습니다. 500억 달러가 필요한 대외 차입보증을 시장이 놀랄 만큼 1000억 달러 보증을 국회에 제출한 데 대해 과도하다는 논란이 있었어요. 하지만 500억 달러를 하면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지만 더블로 1000억 달러를 하면 100억 달러도 안 쓰일 수 있다고 설득했지요. 결과도 그렇게 됐고요. 올해 미국의 GDP 5%에 못 미치는 7870억 달러의 경기대책은 불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와 달리 누적된 재정적자로 인해 경기대책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리만브러더스’(이명박-강만수 브러더스)란 별명까지 나올 정도로 대통령과 함께 경제 혼란의 主犯(주범)으로 몰렸었는데 별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별명을 참 잘 짓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항상 있지요.”
―직접 몸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곤란하겠지만 그래도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평가한다면 몇 점 주시겠습니까.
“저의 평가보다는 ‘서울 관료에게 경의를’이라고 한 외국 언론의 평가로 대신하겠습니다. 지난해 할 수 있는 모든 정책은 다 했습니다. 제가 재정부를 떠날 때 어떤 기자가 ‘18년 기자 생활 중 17년 동안 쓴 기사보다 작년에 더 많이 썼다’고 하더군요. 경상수지도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고 성장도 OECD 국가 중 가장 좋은 성적 아닙니까?”
종합부동산세는 일종의 정치폭력
―MB노믹스의 요체를 간략하게 설명해 주시죠.
“한마디로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한 따뜻한 시장경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율과 경쟁의 최대 보장, 약자와 경쟁 탈락자의 지원, 정치논리보다 경제논리 우선, 수요통제보다 공급확대 우선, 일자리를 통한 분배개선, 법의 지배 확립, 개방과 글로벌 스탠더드 추구 등 7대 원칙에 따른 정책운용으로 ‘선진 일류국가’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747공약은 어떻게 탄생했습니까.
“2002 월드컵에서와 같이 이탈리아를 제치고 ‘7대 강국’으로 가자는 목표이자 비전입니다. 남북통일이 되면 인구로 보나 우리의 저력으로 보나 ‘7대 강국’은 실현 가능한 비전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 7%의 성장이 필요하고, 그렇게 하면 10년 후 4만 달러 국민소득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연구소와 교수들의 검증을 거쳤지요. 747이라는 이름은 어떤 기업인이 지었습니다.”
―747공약의 실현 가능성이 낮아졌는데 어떻게 수정됐습니까.
“하도 논란이 많아 숫자로 말하는 ‘747’보다 뜻으로 말하는 ‘선진 일류국가’로 바꾸었습니다. 비전은 능력의 120%를 발휘했을 때 달성 가능한 하나의 꿈입니다.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지금 공부를 못한다고 좋은 대학에 가겠다는 꿈도 못 꿉니까?’ 하고 물었죠.”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은 국민의 2%만을 위한 경제정책이라는 비판이 있는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누가 그런 정책을 쓰겠습니까? 종합부동산세 때문에 그런 말이 나온 것 같은데 우리 헌법정신은 국민 한 명이라도 사리에 맞지 않는 세금을 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종부세는 조세원칙에 맞지 않는 일종의 ‘정치폭력’입니다. 감세에 따라 세금을 많이 내던 사람의 세금이 많이 내려가는 것은 불가피한 논리입니다. 감세정책은 민간수요를 늘려 경기를 회복시키고 일자리를 많이 만들자는 것입니다. 경제가 나빠지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저소득층이 가장 큰 고통을 받습니다. 세금을 못 내는 사람에게는 복지지출로 도와주는 것입니다. 올해 복지지출은 예산의 27%로 지난 정부 10년보다 높습니다.”
무역수지 유사 이래 처음으로 일본 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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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에서 열린 ‘헌법재판소의 종합부동산세법 위헌소원 등 사건과 관련한 기획재정부장관 발언 진상조사 소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한 강만수 장관. |
“감세정책은 일관되게 추진될 것입니다. 경기침체기에 민간수요를 살리기 위해서는 감세에 의한 가처분소득의 증가는 원론적인 얘기입니다. 우리의 조세부담률이 2007년 23%인데, 미국의 20% 일본의 18%에 비교하면 너무 높습니다. 다른 선진국은 감세 여력이 없어 감세를 못하는 것입니다. IMF나 OECD에서도 우리의 감세정책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일본이 1990년대 감세를 포함한 재정확대정책을 쓰다가 경기회복의 기미가 보이자 증세로 돌아가 ‘잃어버린 10년’으로 갔고, 미국이 1930년대 대공황 때 경기회복의 기미가 보이자 증세를 포함한 긴축정책으로 전환하여 침체가 길어진 것을 교훈 삼아야 합니다.”
―경제, 사회, 외교, 국방 등에서 이명박 정부가 가장 잘하고 있는 한 분야만 꼽아 보시죠.
“경제에 대해 말하면 올해 1분기에 플러스 성장을 한 OECD 국가는 우리뿐이지요. 특히 무역수지는 유사 이래 처음 일본을 앞섰지요. 반도체나 휴대폰은 말할 것도 없고, 자동차 수출도 메이저 국가 중 최고의 성적을 냈습니다. 재정효과와 환율효과 때문이죠.”
―경제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도 우리 사회의 평가는 아직 인색한 것 같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고 보시는지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나 봅니다. 세계경제가 다 어려운 속에 우리가 최고로 선방하고 있다고 외국은 모두 인정하는데. 대통령께서도 결과로 말할 것입니다.”
―고용 없는 경기회복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말로 걱정되는 부분입니다. 내수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4대강 살리기’ 같은 사업도 추진하고,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서비스업에 대한 규제완화도 많이 해야 합니다. 아직 영리병원 문제도 해결 못 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미래를 대비한 잡 트레이닝(job training·직업훈련)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청년인턴도 그 일종입니다.”
대통령 아이디어로 업무보고 연말에 마쳐
―인플레를 걱정하는 소리도 높습니다. 어떤 복안을 갖고 계시는지요.
“인플레보다 디플레와 경기침체의 장기화를 걱정하는 사람이 다수입니다. 선진국들의 저축·투자 갭(국내 총저축-총투자)이 3~10%포인트 증가하고 디플레이션 갭(유휴 설비나 실업이 없는 완전고용 경제에서 실현되는 생산 수준과 실제 소비 수준의 차)도 마이너스 4~6%에 달합니다. 우리도 비슷한 상태지요. 선진국 실업률이 10%에 육박하고 세계 교역도 12% 정도 감소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기회복이 하반기에도 이어지면 상황에 따라 유동성 관리를 해야겠지요.”
―3월 위기설, 9월 위기설 등 우리 사회에서 경제 위기설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지금은 반대로 우리를 잘 보고 있어 증권시장에 외국자본이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우리 금융기관의 예대비율(예금액 중 대출금액 비율)이 120% 정도로 외국에 비해 너무 높은 반면 기업의 부채비율이 100% 정도로 낮아 우량기업 대출은 낮고 가계대출이 많기 때문에 대출자산의 건전성이 낮은 것이 위기설의 주요 근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보통 연초에 하던 각 부처 대통령 업무보고를 작년 연말에 다 마침으로써 재정지출이 빨랐다는 점도 경기 악화를 막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인데, 누구 아이디어였습니까.
“대통령께서 예산 조기 집행을 위해 연말에 업무보고를 하자고 하셨죠. 일본은 1년 넘게 재정확대 문제를 지난 6월에도 논의하고 있었어요. 우리는 작년 연말에 끝내고 올 초에 다 집행에 들어갔죠. 저로서는 할 일을 다 하고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상반기에 보통 예산이 40%에서 많아야 45% 집행됩니다. 우리 정부는 65%를 집행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반기가 걱정이네요.
“그렇죠. 보통 4대 6 정도로 정부 예산 집행이 상·하반기로 나뉘는데, 올해는 하반기 집행 예산이 35%밖에 안 남았습니다. 지금은 감세정책으로 논란을 벌이거나 인플레를 걱정할 때가 아닙니다. 4대강 사업 같은 걸 하지 않으면 우리 경제가 살아나기 어려워요. 출구전략(금융위기 이후 시중에 풀린 돈을 회수하는 대책)을 신중히 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미래라고 보는데, 위원장께서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세계 속에서 우리의 위치는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보십니까.
“강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자가 되는 시대입니다. 지금은 세계가 전대미문의 위기를 맞아 생존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GM이 망하고 시티은행이 흔들리리라고 누가 생각했습니까?
지난해 워싱턴에서 G20 정상회담을 하는 날 <워싱턴포스트>지는 톱 기사로 ‘역사적 힘의 이동(historic power shift)’을 전망했습니다. 위기에서 살아남으면 세계적인 강자가 됩니다.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살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와 함께 100개의 세계적인 강자를 만들어 또 한 번 국운융성의 시대를 맞으리라 생각합니다.”
江을 방치하는 선진국은 없다
―2008년 말, ‘미네르바’란 이름의 논객 때문에 정부가 많은 곤욕을 치렀습니다. 당시 어떤 기분이었는지요.
“솔직히 말해 작년 연말, 문제가 되기 전에는 일에 바빠 미네르바라는 이름을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인터넷에서 ‘내가 미네르바를 만나서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는데, 누군가가 지어낸 말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요. 난세에는 언제나 그런 일이 생기지요.”
―정말 미네르바 글은 하나도 안 읽어 봤습니까.
“그랬죠. 현재까지도 인터넷에 들어가서 읽어 본 게 없습니다. 제가 금융기관과 주요 수출기업에 ‘달러 매수 금지 긴급 공문을 보냈다’고 거짓말한 내용은 비서관이 인터넷에서 출력을 해 와서 읽어 봤죠. 저는 당시 전 세계적인 위기상황에서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각종 외신을 통해서 보기에도 바빴죠.”
―정권창출 공신으로서 한반도 대운하 공약 포기는 문제라고 보시지 않는지요.
“저는 공신이라기보다 참여자입니다. 한반도 운하 포기는 매우 안타깝지요. 우리 경제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는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내수기반을 확충하는 것입니다. 내수기반을 확충하기 위해 ‘4대강 살리기’로 수정하여 추진하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지요.”
―‘4대강 살리기’를 한반도 대운하 건설과 연관시키는 시각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강물에 요트가 떠 다니고 강변에는 호텔과 레저시설이 들어서는 점에서 연관지을 수 있겠지요. 강을 방치하는 선진국은 없습니다. 운하와 관계없이 홍수예방과 함께 죽어 가는 강은 가꾸고 살려야 합니다. 영산강은 농업용수로 쓰기도 곤란한 상태입니다.”
―현 경제위기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CEO 출신이 아니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시는지요.
“지난해 위기대책을 보고했을 때 대통령께서 ‘위기가 기회다. 기업은 위기 때 돈도 벌고 순위도 바꾼다. 위기관리를 위해 현금이 제일 중요하다’라고 말한 것으로 답변을 대신하겠습니다. CEO 출신이 아니었다면 그런 지시를 할 수 있었을까요?”
―가까이서 지켜본 이명박 대통령의 장단점을 말씀해 주시죠.
“현직 대통령의 장단점을 제가 말하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네요. 굳이 말한다면 컴퓨터 달린 불도저, 즉 컴도저라는 별명이 있지요. 여기에서 장단점을 추리해 보세요.”
문학소년이 꿈
강만수 위원장은 고등학교를 4년 동안 다녔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존 스타인벡과 같은 대문호를 꿈꾸며 1년 동안 휴학을 했다고 한다.
―1999년 <시조문학>지 겨울호를 통해 등단했고, 재정경제원 차관을 그만둘 때도 이임사를 ‘자작시’로 했습니다. 지금도 문학에 대한 꿈을 꾸고 있습니까.
“언젠가 자작 에세이 평전을 써 보고 싶습니다. 한 가지 밝혀 둘 것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장관부터 실무자까지 여러 사람이 조사받고 문책도 받았지만 저는 받지 않았습니다. 당시 감사팀장은 거짓말 같지만 훈장을 상신해야 하지만 국민감정상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유는 언젠가 얘기할 날이 있겠지요.”
<직관, 의지, 그리고 용기의 시대>.
강 위원장이 기획재정부 장관 시절 자신의 연설문을 담아 펴낸 책의 제목이다. 2시간30분이 넘는 인터뷰 시간 내내 그가 필자에게 보여준 것 역시 ‘직관’ ‘의지’ ‘용기’, 이 3개의 단어였다.⊙
사진 : 서경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