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력권 통제’ 우선… ‘세력권 바깥’은 거래 가능
⊙ 미‐러 화해는 ‘중국 세력권’ 확대로 이어질 수도
⊙ 미 국가안보전략(NSS), ‘문명적 자멸의 길 걷고 있다’며 서유럽 맹비난
⊙ 트럼프 지지자, “푸틴은 무슬림과 LGBT를 혼내줬다!”
⊙ 푸틴의 러시아, 미국·서구가 동성애·무슬림 허용하며 ‘기독교 가치 버렸다’고 선전
⊙ 트럼프의 책사 배넌, 푸틴의 멘토 두긴과 접촉… ‘백인 기독교 가치’ 공유 주장
⊙ 니얼 퍼거슨, “늙은 지도부, 사회적 무기력, 불필요한 군사 개입 등이라는 점에서 미국은 소련 말기와 비슷”
임명묵
1994년생.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졸업 / 現 서울대 대학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재학 중. 《조선일보》 칼럼니스트 / 저서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 《K를 생각한다》
⊙ 미‐러 화해는 ‘중국 세력권’ 확대로 이어질 수도
⊙ 미 국가안보전략(NSS), ‘문명적 자멸의 길 걷고 있다’며 서유럽 맹비난
⊙ 트럼프 지지자, “푸틴은 무슬림과 LGBT를 혼내줬다!”
⊙ 푸틴의 러시아, 미국·서구가 동성애·무슬림 허용하며 ‘기독교 가치 버렸다’고 선전
⊙ 트럼프의 책사 배넌, 푸틴의 멘토 두긴과 접촉… ‘백인 기독교 가치’ 공유 주장
⊙ 니얼 퍼거슨, “늙은 지도부, 사회적 무기력, 불필요한 군사 개입 등이라는 점에서 미국은 소련 말기와 비슷”
임명묵
1994년생.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졸업 / 現 서울대 대학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재학 중. 《조선일보》 칼럼니스트 / 저서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 《K를 생각한다》

-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25년 8월 15일 알래스카의 미 공군 기지에서 만났다. 사진=AP/뉴시스
당연하게도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격은 극과 극의 반응을 낳았다. 반미 국가들과 지식인들은 ‘국제법을 무시하고 베네수엘라 석유를 장악하고자 자행된 미국의 제국주의 침공’이라며 대대적인 규탄을 벌였다. 반대로 유럽 각국을 비롯한 미국의 우방국에서는 대체로 베네수엘라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민주적인 정권이 등장하기를 염원한다며 조심스럽게 환영 의사를 표했다. 한편 외교적 수사(修辭)를 쓸 필요가 없는 많은 논자는 미국이 보인 확고한 개입 의지와 역량에 경탄을 보내고, 국제 질서의 엄정한 규칙은 오직 ‘힘’이라는 진리가 입증되었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를 버린 트럼프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에서 초강대국 미국의 힘을 과시한 것과 달리, 임기 1년 차인 2025년 내내 유라시아에서는 다른 모습이 펼쳐졌다. 베네수엘라와 가장 대비되는 운명을 맞은 곳은 우크라이나였다.
2022년 2월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한 이래로, 조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수호를 위해 연대(連帶)할 것을 천명하며, 서유럽과 함께 막대한 지원을 제공했다. 그러나 2024년부터 전장(戰場)의 주도권이 러시아 측으로 넘어가며 상황은 달라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大選) 후보 시절부터 출구가 보이지 않는 우크라이나에 평화를 안겨주겠다면서 러시아와의 협상 의지를 드러냈다.
백악관으로 돌아온 이후 트럼프 대통령과 JD 밴스 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시종일관 냉담한 태도로 일관했고, 8월에는 알래스카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초청해 회담을 갖기도 했다. 그 이전 민주당 행정부나 과거 공화당의 주류인 네오콘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보였다. 2025년 연말이 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크름(크림)반도와 돈바스를 포기하라고 압박하기까지 하며 러시아 측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나오고 베네수엘라로는 들어가는 모습에 많은 분석가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미 NSS, 서유럽 맹비난
물론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이 아니라 미국에서 떠오르고 있는 새로운 대전략 노선을 일관되게 반영하는 행보였다. 그 전모는 2025년 12월 5일 백악관 웹사이트에 공개된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NSS) 문서였다. 1987년 이래로 각 행정부가 공개하는 NSS는 미국 행정부가 추진할 대전략의 얼개를 천명하는 문서로 그 중요성이 막대하다.
2025년 NSS는 여러 의미에서 그 이전 행정부, 심지어 2017년에 공개된 트럼프 1기 NSS와도 구분되는 파격으로 가득했다. 백악관은 NSS에서 “미국이 아틀라스처럼 전 세계를 떠받치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하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라는 미국의 지위를 지키기 위한 전략 우선순위의 재조정을 서술했다.
우선 미국의 앞마당인 서반구(남북아메리카)에서 패권(覇權)을 확고히 다지고, 서반구에서 미국으로 유입되는 이민과 마약 문제를 관리하며, 태평양에서 중국을 향한 우위를 지키겠다는 것이 골자였다. 반대로 2014년 크름 반도를 병합한 이래 모든 행정부의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러시아와는 ‘전략적 안정’을 추구할 것이라 명시했다. 미국의 힘이 이제는 전 세계를 포괄하기에는 역부족이기에, 그 전략적 중요성에 따라 역량을 재배치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냉소와 베네수엘라를 향한 군사 작전은 완벽하게 논리적으로 일관된다.
그러나 2025년 NSS를 단순한 전략적 합리성 추구로만 읽기는 어렵다. 감정을 숨기지 않는 비난조가 곳곳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비난의 대상이 미국의 경쟁국인 중국이나 러시아가 아니라, 20세기 내내 미국의 우방이었던 서유럽이라는 사실이다.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서 건조한 전략 얘기를 하던 NSS는 유럽에 대한 평가로 넘어가자 갑자기 폭언(暴言)에 가까운 표현을 쏟아낸다. NSS에 따르면 유럽 지도자들은 반대파를 탄압하고 검열을 일삼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에 비현실적 기대를 버리지 않고, 대량 이민을 방치하여 문명적(文明的) 자멸(自滅)의 길을 열고 있었다.
이러한 폭언에 분개하여 미국을 규탄한 유럽 엘리트들과, 힘도 없는 유럽이 하는 말은 들을 가치도 없다고 비웃는 트럼프 지지층의 엇갈린 반응은 전후(戰後) 자유주의 세계질서의 근간인 환(環)대서양 동맹 사이에 놓인 깊은 균열을 전 세계에 그대로 보여주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보인 이 확고한 반(反)유럽주의,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러시아 우호 정서는 우리가 알던 미국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라 보인다. 한국과 세계에 여전히 가장 중요한 국가인 초강대국 미국이 보인 이 반전(反轉)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푸틴 존경하는 미국의 ‘포퓰리즘 우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취임 직후부터 연일 파격 행보를 보일 때 필자는 10년 전에 자주 교류하던, 한 백인 미국인 중년 남성을 자주 떠올렸다. 당시 필자가 자주 가던 단골 카페에서 알게 된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 경선 출마를 할 때부터 이미 열렬한 트럼프 지지자였다. 그 덕분에 필자는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트럼프 지지층의 논리와 정서를 생생한 목소리로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가장 신기한 일 중 하나는 필자가 러시아 지역 연구를 한다고 하니, 갑자기 그가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가 블라디미르 푸틴이라면서 엄지를 추켜세운 에피소드였다. 미국 우파(右派)는 러시아를 싫어하지 않냐고 물으니, 그는 고개를 저으며 공화당 주류가 매우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필자가 그럼 왜 트럼프 지지자들은 푸틴 대통령을 좋아하는지 물으니, 그는 매우 간명한 설명을 내놓았다. “푸틴은 무슬림과 LGBT를 혼내줬다!”
이 명쾌한(?) 답은 2010년대를 거치며 미국과 서유럽에서 부상(浮上)한 포퓰리즘 우파가 기존 전통 우파와는 다른 세계관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미국의 전통 우파는 본래 자유시장과 기업을 옹호하고, 기독교에 근거한 문화적 보수주의를 지키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 그러나 냉전(冷戰)과 탈냉전을 거치며 미국이 세계질서를 관장하는 패권국으로 발돋움하며, 미국은 국내 문제 이상으로 해외 문제에 기력을 쏟아야만 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우파의 고전적 자유주의는 물론이고, 68운동으로 제기된 좌파(左派) 급진주의의 가치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결과 버락 오바마 시대(2008~ 2016)에는 정치적 올바름(PC), 페미니즘, 다문화주의가 공화당 우파들도 원론적으로 동의하는 가치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공화당의 이러한 이념적 세계주의는 미국의 전통 기독교 가치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고(古)보수주의(Paleoconservatism)의 발흥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고보수주의를 비롯한 미국 우파 비주류 세력은 21세기가 되자 인터넷을 통해 연결되며, 월스트리트, 펜타곤, 대학가를 점거한 엘리트들이 미국의 평범한 백인을 버렸다는 분노를 쏟아냈다. 트럼프주의의 시작이었다.
미국의 문화전쟁이 본격화된 오바마 시기는 푸틴의 러시아가 서방과 대결 구도를 형성하기 시작한 때이기도 했다. 2011년은 나토의 리비아 공습, 무아마르 카다피 제거와 러시아에서도 발생한 반(反)푸틴 시위가 겹친 해였다.
서방이 러시아에서도 얼마든지 정권 교체를 추진할 수 있다는 공포를 품게 된 크렘린 지도부는 푸틴 체제를 정당화할 새로운 이념적 기획이 필요하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러시아를 소련 해체의 혼란에서 구해내고 안정을 가져왔다는 2000년대의 탈이념 서사(敍事)로는 점차 늘어나는 국내의 반발을 막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기독교 보수 국가 러시아’(?)
흥미롭게도 푸틴과 그 이념가들이 발굴한 사상은 과거 소련의 공산주의가 아니었다. 일찍이 푸틴은 “소련을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은 심장이 없는 사람이고, 소련이 정말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사람은 뇌가 없는 사람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공산주의가 비효율로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던 푸틴은 대신에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에서 부상한 민족주의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단순히 러시아를 부강하게 만들겠다는 것을 넘어서, 러시아인이 추구하는 가치를 러시아 문명의 전통에서 길어내고, 러시아인의 영혼을 건전하게 만들 도덕적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구호가 이 시기부터 전면에 등장했다.
푸틴 체제의 ‘문명국가’ 프로젝트는 2010년대 서방과의 대치(對峙)를 의식하면서 진행되었다. 오바마 시기 미국과 유럽연합은 모두 좌파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페미니즘, 성(性)소수자 권리, 다문화주의, 이민 등을 세계 보편의 가치로 간주하며 각종 정책을 추진했다.
러시아의 해법은 손쉬웠다. 이러한 좌파 자유주의가 러시아의 문명 전통에 맞지 않기에, 러시아는 서방 자유주의 전체를 거부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우파 이데올로그와 보수 관영매체 등은 서방이 이제 기독교라는 문명적 뿌리를 저버리고, 수도 한복판에 경찰이 진입조차 할 수 없는 무슬림들의 ‘무법(無法)지대’가 생기고, 아동들에게도 동성애(同性愛)와 성전환을 장려하며 도덕적으로 타락하기 시작했다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이에 따르면 러시아가 자유주의를 수용한다면 똑같은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기에 러시아는 서방에 맞서야만 한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현실의 러시아인들은 세속화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은 2025년 4월 20일 모스크바의 그리스도 구세주 대성당을 방문, 러시아 정교회 총대주교 키릴과 함께 부활절을 축하했다. 사진=AP/뉴시스우크라이나의 유로마이단 혁명 직후,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이런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출했다. “서방이 자신의 기독교적 뿌리를 저버리는 사이에 러시아는 문명적 뿌리인 정교회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알렉산드르 두긴과 같은 비주류 지식인들의 영향력도 그에 비례해서 커져갔다.
물론 ‘보수적 도덕 국가로서 러시아’는 정권과 지식인들의 희망 사항에 가까웠다. 현실은 그보다 복잡했다. 70년의 소련 공산주의 유물론(唯物論) 통치는 러시아인들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세속화(世俗化)시켰다. 오늘날 러시아에서 정기적으로 교회에 가는 사람은 드물다. 게다가 소련 해체 후 자본주의 세계와의 통합으로 인해 청년층은 소비주의를 깊게 내면화했다. 정부가 정교회 성자(聖者)나 붉은 군대 용사를 전면에 내걸어도, 월급을 모아 한국산 자동차를 구매하고 따뜻한 지중해로 여름휴가를 가는 평범한 러시아인의 꿈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러시아의 국가 정당성 개조는 서유럽과 미국의 비주류 우파, 대안(代案) 우파에게 엄청난 매력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19세기 때도 러시아는 특유의 신비감을 발하며, 자유주의와 계몽주의를 거부하는 유럽의 전통주의, 보수주의자들의 이상향(理想鄕)으로 해석된 오랜 전통이 있었다.
배넌과 두긴
푸틴의 이데올로그 알렉산드르 두긴. 사진=AP/뉴시스21세기에 이 구도가 다시 부활했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의 첫 당선을 이끌어낸 ‘책사’ 스티브 배넌이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엘리트들의 좌경화(左傾化)로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되고 있다고 생각한 배넌은 백인 기독교를 중심으로 미국의 문명적 가치를 끌어올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프랑스의 르네 그농, 이탈리아의 율리우스 에볼라와 같이 파시즘과 연관이 있는 ‘전통주의’ 지식인들의 저작을 탐독한 배넌은 러시아가 현실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정책을 펼치는 국가라고 믿게 되었다.
트럼프의 책사 스티브 배넌. 사진=AP/연합뉴스이미 세계 극우파(極右派) 운동에서 명성을 쌓은 러시아의 두긴에게 접근한 배넌은 그를 여러 차례 만나 사상적 공감대를 느꼈고, 두긴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푸틴의 러시아처럼 바꿀 수 있는 인물이라며 설득에 성공하기까지 했다. 배넌은 ‘백인 기독교 가치’를 공유(共有)하는 미국과 러시아의 대립은 가짜 대립이고, 오히려 중국이나 이슬람 세계, 좌파 이념 같은 ‘진짜 적’에 맞서서 양국이 연대해야 한다며 트럼프주의자들과 러시아 우파들을 잇는 다리를 놓았다.
한편 배넌보다는 조금 더 주류에 가까운 지식인들은 러시아와 같은 논란의 여지가 매우 큰 대상보다 더 ‘안전한’ 연대의 대상을 물색하기도 했다. 친러 성향 보수주의자인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가 대표적이었다. 부통령 JD 밴스, 밴스 부통령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보수주의 철학자 패트릭 드닌 교수, 자유주의 비판자로 떠오른 지식인 로드 드레허가 오르반 총리와 우호적 관계를 구축한 대표적인 미국 신우파 인사들이었다.
트럼프주의 지식인들과 인텔리겐치아
러시아와 동질감을 느낀 미국의 트럼프주의 지식인들은 러시아의 인텔리겐치아 전통 위에 자신을 놓기도 했다.
트럼프주의의 핵심 문제의식은 미국 엘리트들이 좌우를 가리지 않고 백인 노동자를 배신했다는 것이었다. 이 지식인들은 백인 노동자가 정치적으로 ‘의식화(意識化)’되지 않았기에 자신들이 영도해야 한다는 사명감도 느꼈다. 이는 농노(農奴)와 지배층 사이의 단절이 커서, ‘서구화로 타락한 엘리트’에 대비되는 대중의 영적(靈的) 가치를 높이 사면서도 동시에 그 대중을 이끌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오랜 지적(知的) 전통으로 삼은 러시아 인텔리겐치아와 통하는 것이었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부터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에 이르는, 러시아 정교회의 영성(靈性)을 높이 사고, 엘리트의 서구화를 자유주의 타락이라고 몰아붙인 러시아 인텔리겐치아 저작들은 미국의 신우파 지식인 사이에서 공통 언어로 통하면서 커다란 중요성을 획득했다.
캐나다의 심리학자로 좌파와 문화전쟁을 벌인 조던 피터슨 교수 역시 현재의 러시아 체제를 공개적으로 옹호하지는 않지만, 심정적으로 친러시아 정서를 자주 드러낸 인사 중 하나다. 도스토옙스키와 솔제니친에게서 인간 본성을 읽을 수 있다며 좌파를 비판한 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과 러시아의 다툼은 “같은 서구 문명 안에서 벌어지는 내전(內戰)”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니얼 퍼거슨의 경고
니얼 퍼거슨 교수. 사진=조선DB이런 맥락에서 미국의 신우파는 미국이나 유럽연합의 좌파 자유주의(리버럴)를 이념적 경직성을 지키다 무너져 내리는 소련 공산주의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런 인물 중에는 트럼프에 비판적인 인사긴 하지만, 영미권을 대표하는 보수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 교수도 포함된다. 퍼거슨 교수는 2024년에 미국이 불길하게도 많은 면에서 소련 말기를 닮았다는 칼럼을 써서 화제를 모았다. 미국이나 유럽연합 지도부는 꽉 막힌 노인들로 가득 찬 공산당 회의장과 다를 바가 없고, 사회적 무기력과 도덕적 진공(眞空) 상태가 확산되는 가운데 지도자들은 이념에 사로잡혀 불필요한 해외 군사 개입에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는 등 흥미로운 역사적 유비(類比)를 열거했다. 퍼거슨 교수뿐 아니라, 바이든 시기 미국과 러시아의 우파 성향 인사들 사이에서는 브뤼셀과 워싱턴DC가 모스크바 공산당과 다를 바가 없고, 전통을 팽개친 평등주의 이념에 몰두하고 있기에 쇠락할 수밖에 없다는 냉소가 적지 않았다. 이런 비유의 함의는 간단했다. 소련이 끝내 몰락하고 푸틴이라는 우파 지도자에 의해서 부활했듯이, 미국 역시 소련과 같은 현 체제를 전복(顚覆)하고 트럼프라는 지도자에 의해서 새로운 생명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면에서 2025년 발표된 NSS는 어쩌면 ‘미국의 러시아화’를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냉전이 펼쳐지며 전 세계에 공산 혁명을 전파하겠다는 야욕을 불태운 소련은 몰락했다. 소련 이후 러시아의 전략가들은, 소련이 불필요한 이념에 잡아먹혀 전략적 우선순위가 없는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공산 정권에 너무 많은 자원을 낭비했다며 비판했다. 그렇게 러시아는 소련처럼 세계 혁명을 추구하거나, 옐친 시기처럼 서구화에 매진하기보다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러시아 권역(루스키 미르)에서 지역 패권을 추구해야 한다는 외교 노선이 푸틴 시대부터 전면에 등장했다. 러시아인 인구가 많고, 엘리트들이 러시아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구(舊)소련 지역을 먼저 공고히 하고, 그 뒤에 다른 권역의 강대국들과 전략적 경쟁에 나서야 한다는 의미였다. 2025년 미국의 NSS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이 엿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며 미국은 자유주의 세계질서와 그 보편적 정당성을 믿었다. 이는 ‘미국의 유럽화’ 과정의 일부이기도 했다. 혁명과 전쟁을 거치며 쑥대밭이 된 중부 유럽에서 수많은 인구가 미국에서 새로운 피난처를 찾았다. 이들은 파시즘과 공산주의라는 유라시아의 위협을 막지 못하면 미국 본토도 위험하다는 위기의식을, 또 19세기까지 세계를 경영하던 유럽 제국주의의 글로벌한 시야를 미국에 심어주었다. 근대 문명의 중심에서 단련된 빼어난 지식인들은 전후 미국 자유주의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1950년의 대한민국도 바로 그 이념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었다.
위기의 유럽
하지만 NSS에 표출된 서반구 중심론과 유럽을 향한 냉소는 미국의 정체성(正體性)이 이미 바뀌었으며, 그 모습이 마치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와 유사하다는 인상을 준다. 20세기 유럽을 통해 수입된 ‘글로벌 보편주의’ 대신에, 미국이 잘 알고 통제할 수 있는 인근 지역에 대한 확고한 통제력을 갖춰야 한다는 ‘세력권 사상’이 전면에 부상했다. 미국의 서반구는 러시아의 구소련권에 대응된다.
세력권 바깥의 지역은 다른 강대국과의 거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우크라이나와 미국은 러시아와 베네수엘라만큼이나 관련 없기에, 약소국들은 얼마든지 물밑에서 거래할 수 있는 칩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과 러시아의 수렴에는 트럼프주의와 푸틴주의가 공유하는 이념적 유사성이 배경으로 울려 퍼지고 있다. 문명적 전통과 종교에 근간하여 국민의 영혼을 국가가 관리해야 한다는 사상이 그것이다. 19세기 보수주의를 21세기 기술로 구현하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유럽과 미국이 대서양 양안(兩岸)에서 구축(構築)한 20세기의 자유주의 보편주의와는 어느 방향에서도 부합하지 않는다.
트럼프주의와 푸틴주의의 이 기묘한 밀월(蜜月) 관계는 나머지 세계에는 어떤 함의를 줄까?
우선 가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주지하다시피 유럽이다. 러시아는 일관되게 유럽의 포퓰리즘 우파를 지지해 왔는데, 이제는 트럼프 행정부도 ‘유럽의 애국적 정당들’을 지원하겠다고 공언했을 정도다. 미국에 협조해야만 하는 유럽이 베네수엘라 작전에 조심스럽게 지지·환영 의사를 보내지만, 아마 그들의 속내는 불안할 수 있다. 미국이 러시아와 세력권 분할에 합의하면 유럽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견제받지 않는 막강한 러시아 세력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유럽 엘리트는 여전히 다문화·이민·페미니즘 등으로 상징되는 문화적 합의를 놓지 못하고 있어, 포퓰리즘 우파 정당의 성장이 계속되며 미국과 러시아의 이념적 압력에 대한 취약성도 증대되고 있다.
냉전 논리로 설명 안 돼
한편 한국은 어떨까. 트럼프·푸틴을 보는 한국의 구도는 여전히 냉전 시대에 형성된 좌우파 관념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좌파는 여전히 미국에 비판적이고, 러시아에 심정적으로 가깝다. 반면 우파는 러시아가 여전히 공산당 근성이 남아 있다고 비난하기 일쑤다.
하지만 탈냉전 30년을 거치며 러시아도, 미국도 빠르게 바뀌었다. 이제는 미국과 러시아의 우파들이 서로에게 추파(秋波)를 던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 반제국주의를 근거로 러시아를 옹호하고 미국을 비판하는 논리나, 반대로 반공주의에 입각해 러시아를 비판하는 논리 모두 실제 현실과 유리(遊離)된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미국과 러시아의 최근 변화에 민감한 사람들은 아직 미약하나마 새로운 담론을 한국 사회에 전파하고 있기에 주목할 가치가 있다. 요컨대 ‘트럼프를 지지하는 좌파’와 ‘푸틴을 지지하는 우파’가 등장하고 있다. 전자(前者)는 트럼프가 미국의 세계 패권을 포기하는 차원에서 아시아 지역 질서 속에서 북한의 합류를 인정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는다. 후자(後者)는 좌파 이념에 타락한 서구보다 러시아가 더 우파 이념의 본류(本流)를 지키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얼핏 보면 당황스러울지도 모르나, 최근 세계의 급변을 생각했을 때 이러한 주장들이 오히려 구시대에 머무른 상투적 인식보다 더 타당할 수도 있다. 당장 누가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 대통령과 환하게 웃고 서유럽 지도자를 비난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중국 세력권’ 더 커질 수도
물론 아무리 현실에 더 부합해 보일지라도, 우리가 트럼프주의든 푸틴주의든 외부의 어떤 국가와 사상을 무턱대고 모범이라고 따라가면 자중지란(自中之亂)에 빠질 수 있다.
사실 두 국가의 화해는 아시아에서 중국의 세력권이 더 커질 것이며, 심지어 다른 강대국들의 인정까지 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만들어내기 충분하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에 시작된 구한말이 정확히 그러했다. 친일(親日), 친청(親淸), 친러는 모두 각자의 타당성이 있었지만, 결국에 조선의 근대화를 자체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노선을 만들지 못하며 망국(亡國)의 비극이 벌어졌다.
미·러 관계의 대전환을 맞이하며 세계에 돌풍이 불기 시작한 오늘날, 과거의 관성(慣性)을 반복하는 것도 아닌, 외국 이념과 지도자를 이상으로 삼으며 추종하는 것도 아닌, 우리의 자주와 국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우리만의 보수 이념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때가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