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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중국의 굴기

중국의 경제성장과 한계

앞으로 5~10년 내 고도성장 끝날 것

글 : 김기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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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한계 드러난 소련ㆍ東아시아식 투입 위주 성장 모델 답습
⊙ 중국의 新세대, 더 이상 미래 위해 현재 희생하는 것 거부, 勞使분규 등 심해져
⊙ 고령화 급속 진행, 2030년 총 노동인력 중 15~29세의 비율 26%로 半減

金起秀
⊙ 1957년생. 연세대 심리학과 졸업. 서울대 정치학 석사, 美미주리-컬럼비아대학원 정치학 박사.
⊙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同 국제정치경제연구실장, 수석연구위원 역임.
⊙ 저서 : <동아시아 역학구도: 군사력과 경제력의 투사> 등.
중국의 신세대 노동자들은 더 이상 미래를 위해 현재의 희생을 감수하지 않을 것이다. 사진은 지난 5월 파업을 벌이고 있는 중국혼다자동차 공장 노동자들.
  2010년 중국은 약 5조3000억 달러의 국내총생산(GDP)을 기록, 5조 달러 정도인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자리에 올랐다. 2009년 중국의 무역규모는 2조2000억 달러로 2조1800억 달러를 기록한 독일을 제치고 세계 2위로 올라섰다. 무역 1위 미국과는 불과 4000억 달러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2010년 6월 현재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2조4500억 달러로 2위인 일본을 약 두 배 앞서며 1위에 올라 있다. 가용 노동력은 8억1200만명으로 다른 국가와는 아예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정보화의 잣대가 되는 인터넷 사용자도 3억8400만명으로 단연 세계 1위이다. 지난 20년 동안의 경제성장률 또한 10% 내외를 기록, 세계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수두룩한 경제통계와 미국의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성장세가 꺾이지 않는 중국 경제에 힘입어 미래의 중국에 대한 장밋빛 전망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2004년 미국의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분석이 대표적인데, 중국의 경제규모가 2016년경 일본을, 그리고 2040년에는 미국을 추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예측보다 6년을 앞당겨 중국이 일본을 추월했으니, 중국의 미래에 대한 장밋빛 예측에 일반인들의 귀가 솔깃하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국제컨설팅 회사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PricewaterhouseCoopers)는 구매력 평가(PPP) 기준으로 2020년에는 중국이 미국의 규모를 앞지른다는 대담한 예측을 올해 초 내놓은 바 있다.
 
  문제는 중국의 약진(躍進)이 계속되면서 위의 예측들이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인의 경우 반(半)은 두려움, 반은 경외심(敬畏心)으로 새로운 중국을 바라보고 있다. 과거 오랫동안 큰 덩치에 눌려 지내면서 자신도 모르게 형성된 압박감과 콤플렉스, 그리고 증오와 존경심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가운데 규모의 중국 경제통계가 더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빗나간 예언들
 
  중국의 장밋빛 미래를 믿는 사람들은 중국의 경제성장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비슷한 예측이 있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면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20세기 초 후진농업국가에 불과했던 소련이 흐루쇼프 시대인 1957년 서방은 꿈도 꾸지 못했던 스푸트니크 인공위성(衛星)을 발사하자 세계는 경악했다. 경험상 그와 같은 고도 기술은 탄탄한 경제적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한 것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캘빈 후버와 같은 미국의 경제전문가는 당시 소련의 경제성장률이 서방에 비해 2배 이상, 미국보다는 3배 정도 앞서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런 추세에 따르면 소련이 미국을 앞서는 것은 시간문제로 여겨졌다.
 
  하지만 브레즈네프 시대를 거쳐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소련은 갑자기 쇠락(衰落)했고, 1991년 소련제국은 지구 상에서 사라져버렸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서방 전문가들의 소련 웅비론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동(東)아시아의 약진에 대해서도 극찬이 쏟아진 적이 있다. 동아시아의 기적을 견인한 한국을 비롯한 4마리 용(龍)의 경우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연(年)평균 10% 안팎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유교(儒敎) 자본주의의 우수성에 현혹되었다. 서구보다도 근면하고, 자유를 어느 정도 희생한 대가로 일관된 명령체제를 지니고 있으며, 교육을 우선시하는 전통으로 무장한 동아시아의 독특한 문화가 기적의 원천으로 인식되었다.
 
  일본은 1980년대 말 국내총생산이 초(超)강국 미국의 3분의 2에 육박했다. 일본이 한참 잘나가던 시절, 1963~1973년의 경제성장률이 유지되는 경우 1998년에는 일본의 국내총생산이 미국의 그것을 앞설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제시된 적이 있다. 한마디로 세계 경제의 중심이 동아시아로 이동한다는 주장에는 큰 이견이 없는 듯했다.
 
  하지만 1990년 이후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은 둔화되었다. 기적의 챔피언인 일본의 쇠락이 가장 두드러졌는데, 2010년 현재 일본의 국내총생산은 미국의 3분의 1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예측이 또 한 번 빗나간 셈이다.
 
 
  투입 중심 경제발전의 한계
 
  경제적 관점에서 생산(output)이 되기 위해서는 투입(投入·input)이 있어야 한다. 투입은 노동, 토지, 자본 그리고 기술과 같은 생산요소로 이루어진다. 기계적으로만 생각해도 투입이 있으면 산출(産出)은 있기 마련이다.
 
  저(低)개발 국가의 경제성장은 이 투입-산출 모델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우선 값싼 노동력과 저렴한 토지의 공급에는 별문제가 없을 것이다. 자본은 외국의 투자 혹은 자금의 차입으로 조성할 수 있다. 기술도 외국으로부터 기계를 수입하든지, 혹은 낮은 수준의 기술을 모방하여 자체적으로 개발하면 된다(copy engineering). 이러한 요소가 투입된 후 근로자가 근면하게 일하고, 운영에 대한 기초적인 노하우가 추가되면 산출은 증가한다.
 
  하지만 저개발의 대표적인 특징인 국민소득의 열세(劣勢)는 소비의 부진을 의미하기 때문에 수요는 해외시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경제성장 방식을 ‘투입 중심’(input-oriented)의 수출주도형 경제개발정책이라 한다. 산출량이 매년 얼마만큼 증가했나를 계산하는 것이 바로 경제성장률이다.
 
  반면 서구의 경우는 기술의 발전이 먼저 이루어진 후 다른 생산요소들이 결합되는 방식으로 경제가 발전했다. 지식과 기술의 진보에 기초한 질적(質的)인 성장을 의미하는데(technology-oriented), 위에서 언급한 투입 중심의 경제발전과는 다른 개념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17세기 과학의 발전으로 자연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가 가능해지고, 다음 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난 후 경제가 급속히 발전한 사실은 기술 중심 경제성장의 내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술 중심의 발전이 생산요소의 단위당 산출의 증대, 즉 생산성(productivity)의 증가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술의 진보가 계속 이루어져 생산성이 증가하는 한 경제성장은 지속되는데, 이것이 바로 과거 약 200년간 서구가 번영한 이유이다.
 
  뒤집어 보면 투입 중심의 경제성장은 임금을 비롯한 요소비용의 상승을 상쇄할 수 있는 기술의 진보가 없는 경우, 생산성 저하로 이른바 수확체감의 법칙(diminishing return)에 걸리게 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익의 창출이 어려워지므로 더 이상의 성장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소련과 동아시아의 실패 원인
 
  이러한 내용을 소련과 동아시아에 대입해 보면 경제가 급속히 팽창한 후 급작스레 수축되는 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소련과 동아시아 모두는 투입 중심의 경제성장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련은 사회주의 독재의 특징인 권력에 의한 동원(mobilization)이 가능한 체제였다. 생산요소의 대규모 투입에는 별문제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기술 분야는 어떠했을까? 인공위성을 미국보다 먼저 쏘아 올린 소련의 기술은 투입 중심 성장의 결정적인 약점(弱點)인 기술의 부재(不在) 현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소련의 기술개발은 서구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고 있었다. 다른 모든 분야를 희생한 채 정부가 주도하여 군사기술에 집중적으로 투자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군사기술의 약 80% 정도는 민간부문에서 원용(援用)한 것이다. 민간기술의 1차적인 목적이 상업화를 통한 이익의 창출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랍게도 서방의 군사력은 부(富)를 창출하며 증강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소련의 기술은 군사분야에만 집중되었으므로 보편적인 기술의 발전이 가져다주는 균형 잡힌 지속가능한 성장과는 거리가 먼 기형적인 것이다. 서구와 같이 새로운 부를 창출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득(return)이 창출되지 않는 무한(無限)의 지출이라는 형태를 띠고 있었던 셈이다. 능력에 비해 돈을 많이 쓰면 당연히 망하는 법이다.
 
  동아시아의 경우 외형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공산주의 국가와는 상황이 달랐다. 하지만 생산요소를 정부 주도하에 동원한 것은 사실이고, 일본을 제외하고는 기술에 있어서도 유럽에 속해 있던 소련보다는 훨씬 낮은 수준에서 출발한 점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여기서 기술은 수입에 의존하였고, 자본도 외국의 투자, 혹은 차관(借款)으로 조성되었으므로 생산요소의 투입에는 별문제가 없었다. 바로 이 투입이 계속 증가하자 산출도 늘어나면서 급속한 경제성장이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요소비용의 상승을 상쇄(相殺)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 제공되지 않는 경우 수확체감의 덫은 피할 수 없는데, 1990년을 전후하여 이 현상이 가시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의 경우 저개발국의 성장과는 수준이 다르지 않으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하지만 기초과학에 뿌리를 둔 원천(源泉)기술의 확보에서는 서구에 비해 여전히 열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므로,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들보다는 더 높은 수준에서 위의 법칙에 걸렸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경제발전 메커니즘

 
덩샤오핑은 1992년 남순강화를 통해 변함없는 개혁개방을 강조했다.
  중국의 경제발전사를 잠시 살펴보면 중국이 투입 중심의 경제개발전략을 얼마나 충실히 답습했는가를 알 수 있다.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이 집권하며 중국은 개혁개방의 길을 걷게 된다. 이듬해 7월 제정된 중외합자경영기업법(中外合資經營企業法)은 대외개방의 신호탄이었다. 법의 이름이 암시하듯 중국을 대외적으로 개방하겠으니 투자해 달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공산주의 냄새가 풍기는 중국에 서방이 자본을 투자할 수는 없었다.
 
  바로 이 애로(隘路)를 타개한 것이 화교(華僑)자본이었다. 그 결과 외국인 투자는 1992년 처음으로 100억 달러를 상회하게 된다. 1983~1995년 사이 외국인 투자 중 67%가 화교자본이었다는 통계는 중국이 투자적격 국가라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데 화교자본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1988년부터 1994년까지 화교자본 우대 특별법들이 집중적으로 제정된 사실은 당시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89년 천안문(天安門) 사태가 대변하듯 중국은 자본주의로 변신하며 나타난 사회 이완현상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정치적 결단이 필요했다. 이것이 바로 1992년 덩샤오핑이 변함없는 개혁개방을 천명한 남순강화(南巡講話)의 배경이다.
 
  화교자본을 통해 중국의 경제적 이미지가 개선되고, 개혁개방을 위한 정치적 의지가 확인된 후 서방자본은 중국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1992년 110억 달러를 기록한 후 외국인 투자는 계속 증가하여 2000년에는 거의 4배로 늘어난 410억 달러, 2008년에는 다시 두 배 증가한 924억 달러였다.
 
  값싼 노동력과 저렴한 토지의 공급이 가능한 상황에서 외국자본의 유입은 투입 중심의 경제성장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기술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워낙 저급(低級)의 물품을 생산하였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중국에 대한 투자가 가시적으로 활성화된 1990년대 초반이 4마리 용 및 일본의 침체와 시기적으로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수확체감의 법칙 때문에 서방의 관심을 더 이상 끌지 못하는 가운데, 저가 상품의 생산기지가 필요했던 선진국의 수요를 새롭게 충족시킬 수 있는 대안(代案)으로 중국이 선택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바로 이것이 중국의 성장이 창의적인 것이 아니라 다른 국가의 성장을 빼앗아 온 것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이다.
 
 
  중국의 성장은 소련식 투입 중심 성장에 불과
 
  1983~2008년 중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는 무려 8500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도 자본축적은 무서운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투자가 가시화되기 시작한 1990년 이래 국가 저축률이 40% 이하를 기록한 적이 없고, 2006년에는 51%라는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1988년 당시 세계 1위였던 한국의 저축률 25.2%의 두 배에 해당하는 높은 수치이다. 여기에 가용 노동력 8억1200만명이 더해지는 경우 투입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25년의 기간에 이토록 많은 자본과 노동이 한꺼번에 집중적으로 투입된 적은 없었다.
 
  투입이 워낙 많다 보니 산출이 엄청난 것은 당연한 일인데, 여기에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된 연평균 10% 내외의 폭발적인 경제성장이 더해지면서 중국의 모습이 오늘날과 같이 변하게 되는 것이다.
 
  투입은 과거 소련과 4룡처럼 국가 주도의 동원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런데 그 정도가 사회주의 국가답게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이 과거 그랬던 것보다는 훨씬 심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중국의 저축률이 그토록 높은 것은 개인의 소비가 절제된 결과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국가 소유인 중국기업의 높은 저축률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이는 사회주의 경제에서만 가능한 현상이다.
 
 
 
‘현재의 희생’

 
그동안 고도성장을 구가해 온 중국은 조만간 투입 중심 경제발전의 한계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사진은 한 국내 기업의 중국공장 모습.
  결과는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통계로 이어지는데, 미국의 경우 국내총생산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71%인 반면, 중국은 반 정도인 35%에 불과하다. 바로 이 점이 중국의 경우 소비 중심의 서구식 성장이 아닌 과거 소련식의 투입 중심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이고, 나아가 중국이 그토록 수출에 목을 매고 있는 이유이다.
 
  요컨대 중국은 과거 동아시아 국가들보다도 오히려 더 왜곡된 불균형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저개발 경제발전의 또 다른 비밀이 하나 숨겨져 있는데, ‘현재의 희생’이 그것이다.
 
  ‘미래의 이득을 위해 현재의 만족을 희생한다’는 의미에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크루그먼(Paul Krugman)은 투입 중심의 압축성장을 ‘후일 보상(deferred gratification)’을 담보로 한 경제발전이라고 비꼬고 있다.
 
  중요한 것은 서구의 역사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또한 언제까지 희생만을 강요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는 희생을 더 이상 감수하지 않는 경제환경이 조성되거나 희생을 거부하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는 경우, 경제는 수확체감의 법칙에 걸린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고속 성장기 한국의 저축률은 줄곧 세계 수위(首位)를 다투어 왔다. 하지만 OECD에 가입하면서 금융시장이 개방되고 과거 고난의 세대를 대신하여 새로운 물질세대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2009년 현재 저축률은 5%로 OECD 국가의 평균치인 8.5%에 훨씬 못 미치는 하위권에 속해 있다. 결과는 물론 경제의 저성장이었다.
 
  생산요소 비용의 상승이 있는 경우 수확체감의 법칙을 유발한다는 사실은 앞서 소개한 바와 같다. 여기서 핵심 변수는 역시 임금(賃金)일 수밖에 없는데, 가처분(可處分) 소득과 국내소비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기 때문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개인소득은 당연히 증대되지만 생산요소적 측면에서 이는 곧 임금의 상승을 뜻한다.
 
  또한 20~30년이라는 기간은 노동세대의 변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과거보다는 더 개명되고, 상대적으로 유복하게 자란 개인주의적인 세대가 노동시장의 중심에 서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노동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노동시장 구조가 변하는 현상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여기에 노동조합이 형성되어 노동자들의 분산된 힘이 하나로 모이게 되면 가시적인 임금인상은 불가피해진다.
 
 
  인구구조의 변화
 
  기본적으로는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조차도 이러한 경제법칙을 비켜가지는 못하고 있다. 2010년 광둥성(廣東省) 소재 외자기업인 폭스콘에서 노동조건에 대한 불만이 표출되어 12명이 사망한 것을 시작으로, 혼다 자동차의 여러 부품공장과 성우하이텍에서 파업이 이루어지면서 노동쟁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태는 15~70%라는 큰 폭의 임금인상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마무리되었다.
 
  이러한 노사(勞使)분규의 원인은 중국의 노동인구 구성을 보면 알 수 있다. 1979년부터 시행된 1가구(家口) 1자녀 정책으로 도시의 근로자는 많은 경우 농촌으로부터 유입된 농민공(農民工)으로 채워졌다. 그런데 농민공 중 67%는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신세대들이다. 정시에 퇴근하여 여가를 즐길 줄 아는 세대가 주류(主流)가 된 것이다. 따라서 과거와 같이 미래의 부를 위해 현재의 희생을 강요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선전(深?)과 같은 주요 공업지대의 임금은 지난 10년 동안 2~3배 상승하였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의 제조업 월(月)평균 임금이 96달러인 데 반해, 베이징(北京)은 287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중국의 임금수준이 아주 저임(低賃)의 단계를 이미 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동시장의 또 다른 요인인 연령 구성비율도 투입 중심의 경제성장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1985년 총 노동인력 중 15~29세의 비율이 47%였지만, 2030년이 되면 26%로 거의 반 토막이 나게 된다. 나아가 2035년에는 65세 이상의 고령(高齡) 인구가 무려 2억8000만명으로 늘어난다. 사회가 급속히 고령화되는 것이다. 스케일이 큰 국가인 만큼 인구분포의 변화도 다른 국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규모임을 알 수 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중국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주장이 가능할까? 중국이 신(神)이 내린 국가가 아닌 이상 수확체감의 법칙을 피해갈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난관을 극복하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확체감률을 상쇄하는 수준으로 노동생산성이 증가하면 된다. 불행히도 그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서구의 기술발전 역사를 통해 기초과학의 진흥 없이 새로운 기술개발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동아시아에서 과거에는 없던 획기적인 새로운 기술이 개발된 적은 거의 없었다.
 
  같은 맥락에서 2008년 한국의 교육과학기술부 통계는 충격 그 자체이다. 세계 최고기술 364개 가운데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외형적으로는 일본과 경쟁 중인 한국의 것 역시 단 1건도 없기 때문이다. 74%인 270건을 미국이 가지고 있고, 그나마 최고 수준인 일본의 경우도 34건에 그치고 있다. 한마디로 중국이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는 셈이다.
 
 
  민주화
 
  과학기술이 발전하려면 우선 사회가 자유화되어야 한다. 자유로운 사고(思考)를 보장할 수 없는 사회가 과학을 발전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다양성 그리고 논리식 사고와 교육이 일상화되어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그래도 그런 사실을 깨닫고, 논리적 교육을 강조하며 입시(入試)제도를 개편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뚜렷한 성과가 있었다는 증거는 찾기 힘들다.
 
  과연 중국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까? 한국과 일본이 어느 정도는 성공적으로 창출한 자유로운 사회는 곧 민주화를 의미한다. 과연 중국은 13억 국민이 자유로이 자신의 의사를 표출하는 가운데, 그것을 하나의 힘으로 묶을 수 있는 정치체제를 만들 수 있을까?
 
  수출주도형 정책의 당연한 결과이지만, 중국 경제의 대외의존도는 그들의 규모에 비해서는 과도할 정도로 높은 편이다. 금융위기로 세계무역이 위축되기 전인 2008년 중국의 무역의존도는 75%였다. 같은 해 미국의 23%와 일본의 32%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미국과 일본에 비해 중국 경제가 외부의 경제동향에 대단히 민감한 이유이다. 중국이 환율(換率)문제에 그토록 취약한 원인을 알 수 있는 대목인데, 환율의 급작스런 변동으로 수출이 줄어드는 경우 경제성장 자체가 어려워지고, 그것은 곧 고용감소로 이어져 정치문제로 비화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기형적으로 높은 저축이 소비로 전환되어 내수(內需)가 확대되는 것이 해결책이지만, 높은 저축률에 의존하고 있는 대규모 투자가 위축될 수밖에 없는 역설적인 상황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 정도의 대외적 취약성을 안고 있는 국가가 다른 국가를 압도해야만 하는 초강대국이 된 예는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 미국채권 투매 못 해
 
  중국의 막대한 외환보유고가 중국의 힘이라는 주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2조 달러가 넘는 중국의 외환보유고의 약 70% 정도가 미국 채권(債權)이다. 그 액수는 무려 1조7000억 달러에 이른다. 미국 재무부 채권에 9000억 달러, 그리고 패니 메이(Fannie Mae)와 같은 국영기관의 채권에 6000억 달러가 투자되었다.
 
  미국의 재정 및 무역적자의 상당 부분을 중국이 메워주고 있는 셈이므로 외형적으로는 중국이 미국의 아픈 곳을 단단히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이 투자를 급속히 회수하는 경우 미국경제는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원리상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과잉 외환을 국외(國外)로 빼내야만 한다. 하지만 지구 상에서 그토록 막대한 금액을 수용할 수 있는 금융시장은 뉴욕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의 투자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므로 그러한 투자를 중국이 회수할 이유 또한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실제로 투자를 회수하는 조치를 취하면 어떻게 될까? 우선 과다 물량으로 미국의 채권값은 하락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팔지 못한 중국의 채권값 역시 내려갈 것이므로 중국은 앉은 자리에서 보유자산의 손실을 입게 된다. 그래도 계속하여 투매(投賣)를 한다면 미국정부는 중국이 팔려는 대량의 채권을 직접 구매하는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다. 이때 미국은 기축통화(基軸通貨)인 달러화를 발행하면 그만이다.
 
  중국은 그 많은 달러화를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까? 베이징 중앙은행 창고에 묻어놓는 것 이외 다른 방법은 없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중국의 채권 매도(賣渡)로 달러화는 약세 통화가 된다는 사실이다. 중국이 그토록 싫어하는 위안화의 평가절상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셈이다.
 
  미국에 대한 자산운용투자는 중국만의 독점물이 아니다. 일본, 독일, 한국 등 많은 국가가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바로 그 덕에 세계 최대인 미국시장이 개방될 수 있고, 많은 국가가 대규모 수출을 하며 먹고살 수 있는 것이다.
 
 
  위안화의 허약성
 
  위안화의 위상을 통해서도 중국 경제의 허약성을 짚어볼 수 있다. 현재까지 위안화는 불환지폐로 남아 있다. 위안화의 시장태환이 가능해지려면 우선 투명한 시장을 중심으로 모든 거래가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은행은 정부의 지시가 아닌 시장원리에 기초하여 운영되어야 한다. 국가의 재정 및 통화정책 역시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고, 아울러 안정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 대규모의 국제자본 거래가 가능하도록 환율 또한 유연해야 하고, 외환시장은 유동성 보장을 위해 규모가 커야 한다. 이들 조건은 특히 한국의 원화가 국제화되는 과정에서 확실히 검증된 것들이다. 하지만 다음을 통해 중국의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국가 주도의 은행대출 관행과 달러화에 연계된 환율산정 방식이 바뀌어야만 하는데, 문제는 두 제도가 중국 경제발전의 핵심 기제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정책의 전환은 기존의 개발정책을 가시적으로 뜯어고치는 것을 의미하므로 고속성장은 당연히 희생될 수밖에 없다.
 
  금융부문에서도 문제점이 상존한다. 위안화 표시 채권의 경우 현재는 중국 내에서 중국계 은행만이 한정 판매하고 있다. 만약 규제가 풀린다면, 중국인들은 기본 가치가 보장되고, 적정의 이자 소득이 있으며, 경기가 좋으면 프리미엄까지 기대할 수 있는 새로운 투자처로 기존의 은행저축을 옮기게 될 것이다. 금융시장이 개방되면서 한국의 저축률이 급속히 낮아진 중요한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무튼 중국정부가 의도적으로 구축한 고율의 저축제도가 무너지는 셈인데, 당연한 결과로 지금과 같은 수준의 투자가 이루어질 수는 없다. 대규모의 투입에 제동이 걸리면서 성장률이 낮아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고성장이 꺾이는 시점은 언제쯤일까? 한국의 경우 1987년 국민들의 자력(自力)에 의해 민주화 운동이 가시화되었고, 그 결과 1988년 민주정부가 탄생하였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3320달러였는데, 흥미로운 점은 얼마 지나지 않은 1992년부터 연평균 10% 안팎의 고성장 기조가 꺾이면서 6~7% 성장률의 시대가 열렸다는 사실이다. 1995년에는 소득이 처음으로 1만 달러를 돌파했고, 이듬해인 1996년 OECD에 가입하면서 경제는 가시적으로 자유화되었다. 하지만 그 충격은 1997년 외환위기로 나타났다. 이후 연평균 3~5%의 저성장 기조가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국민소득 2만 달러 고지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주화, 경제의 자유화, 그리고 고성장 기조의 퇴조 현상 등이 비슷한 시기에 함께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경우 1964년 수출주도형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한 후 1992년까지 다소의 굴곡은 있으나 연평균 10% 내외의 성장률을 유지했으므로 햇수로는 대략 25~30년 정도 고(高)성장이 이어진 셈이다. 1990년대부터 고속성장을 했다고 보면, 중국은 현재까지 약 20년간 고성장을 유지하고 있다. 전후 대규모 장치산업을 성공적으로 발전시킨 유일한 사례인 한국에 비추어, 향후 5~10년에 중국이 전환점을 맞게 될 것이라고 예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임계점에 도달한 중국
 
  시기에 대한 예견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중국 경제가 한풀 꺾이는 전조는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수출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는 위안화가 가시적으로 평가절상되거나, 한국이 예전에 경험한 바와 같이 대규모 장치산업의 과잉투자가 수요처를 찾지 못해 불황으로 빠져들거나, 아니면 현재 거품이 끼어 있는 중국의 부동산 시장이 붕괴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더욱 위험한 것은 중국의 경우 이러한 전환점이 시기적으로 임금이 가시적으로 상승하고 민주화의 압력이 증가하는 시점과 일치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상황이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장점이었던 엄청난 스케일은 역으로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만의 독특한 사회주의 정치체제가 혼란을 잠재울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으나, 과거의 역사는 시장원리가 지속적으로 작동하는 경우 특정의 임계점(臨界點)을 지나면 이러한 현상들이 거의 자동으로 분출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시장은 우선 자유로운 사고와 정보의 유통을 전제로 한다. 또한 시장에서 얻은 이득에 대한 소유가 영원히 보장되어야만 거래가 이루어질 것이므로 시장은 소유권과도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바로 이러한 메커니즘 때문에 권력은 시장을 통해 분산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위에서 말한 정치경제 현상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서구의 역사와 한국의 발전사가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과정을 역사적으로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미국과 견줄 수 있는 현대적 초강대국으로 탄생한다면 우리가 배운 서구의 사회과학 지식은 상당 부분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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