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일본인은 왜 과학 분야 노벨상을 많이 받을까

  •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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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비들의 공부는 과거(科擧) 급제를 위한 ‘시험공부’였다. 특히 주자(朱子)의 주장이 곧 모범답안, 도그마가 되었다. 주자가 한 말을 ‘성인(聖人)의 말씀’으로 떠받들면서, 윤휴(尹鑴)나 박세당(朴世堂)처럼 주자의 주장에 조금이라도 토를 다는 사람은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았다.
 
  일본에는 과거 제도가 없었다. 에도(江戶)시대에 막부나 번(藩)의 정치·행정은 세습 사무라이 집안 출신들이 담당했다. 그들은 굳이 유학(儒學)을 공부할 필요가 없었다.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주로 여유 있는 상인이나 농민의 자제들이었다. 출세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자기가 좋아서 하는 공부이다 보니 주자학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다. 특히 이토 진사이(伊藤仁齋), 오규 소라이(荻生徂徠) 같은 고의학파(古義學派)는 주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공자와 맹자 당시의 저술들을 통해 그들의 사상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그들은 《논어》나 《맹자》에 나오는 한문(漢文) 글자 하나하나의 의미를 치밀하게 파고들었다. 《논어고금주》를 쓰기 위해 일본의 《논어》 관련서들을 수집했던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도 일본의 유학 이해 수준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노벨상의 계절이 돌아왔다. 올해도 생리의학상과 화학상을 일본인이 차지했다. 지난 몇 년간 거의 해마다 일본은 생리의학상, 화학상, 물리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를 보면서 그들과 에도시대 일본 유학자들이 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남이 알아주건 말건 고전(古典)의 글자 하나하나의 의미를 파고들던 정신이나, 지방 대학이나 기업의 연구실에서 평생 입자(粒子), 화학 성분, 세포 등을 죽어라 파고드는 정신이나, 학문에 대한 열정, 진지함, 치밀함이라는 면에서는 매한가지일 것이다.
 

  반면에 ‘시험을 위한 공부’만 잘해서 과거에 급제하고, 그 후에는 도그마화한 주자학의 포로가 되어서 당위론, 명분론이나 떠들면서 행세하던 조선 선비의 후예들은 평화상, 문학상이나 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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