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

대통령 권한대행 황교안 국무총리는 누구인가?

“사람 앞날은 알 수가 없는 것이지요” (대권도전 의지 묻는 질문에 대해)

  •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 글 : 백승구 월간조선 기자  eaglebs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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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는 이북 출신 고물상 …, 조용하고 착한 모범생” (초등학교 동창)
⊙ “검사장 승진 3번 탈락했지만 버텨 … 끈기가 있고 ‘권력의지’가 만만치 않은 사람”
    (검사장 출신 변호사)
⊙ “공안검사 출신이어서 정치를 보는 시각이 넓다” (검찰 출신 공직자)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2016년 12월 12일 서울 정부중앙청사에서 첫 국정 현안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했다.
사진=뉴시스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2016년 12월 9일 가결되면서 황교안(黃敎安·59)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됐다. 38일 전 박근혜 대통령이 김병준 교수를 총리로 지명해 자리를 떠날 뻔했던 황 총리는 이로써 헌정(憲政)사상 8번째 대통령 권한대행이 됐다. 황 총리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일정에 따라 최소 2개월, 최장 8개월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황교안 권한대행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즉시 안보부터 챙겼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전군(全軍)의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비상한 각오로 모든 위기 상황에 대비하라”고 당부했다.
 
  같은 날 저녁 7시에는 임시국무회의를 소집했고 8시에는 대(對)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담화에서 그는 “대통령을 보좌해 온 저로선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된 데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면서 “이런 중차대한 시점에 저는 헌법이 정한 바 저에게 부여된 대통령 권한대행 책무를 참으로 무겁게 받들고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저녁 9시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했다. 황 권한대행의 첫 외부 일정도 11일 오후 합동참모본부 방문이었다. 12일에는 유일호 경제팀에 경제 챙기기를 당부했다. 12월 13일에는 학계·언론계 원로들을 만났다.
 
  야권은 불편한 심기를 보이고 있다. 《한겨레》는 12월 10일 〈첫날부터 광폭행보… “황교안 완장질 보려고 촛불 들었나”〉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3일 “황 총리는 폼 잡지 말고 국회 대정부 질의에 나와서 본인의 국정 구상을 설명하라”고 했다. 이런 반응은 보수세력 일각에서 진작부터 나오던 ‘황교안 대망론(待望論)’에 대한 견제가 시작됐다는 느낌마저 준다.
 
 
  고물상의 아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2016년 12월 11일 합동참모본부를 찾아 안보를 챙겼다. 사진=뉴시스
  황교안 권한대행의 가족사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알려진 게 없다. 황 권한대행 자신이 집안 내력에 대해 별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황 권한대행의 초등학교 동창인 A씨는 “황 권한대행의 아버지는 이북에서 내려와서 고물상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황 권한대행 집안의 경제적 형편은 중하(中下) 정도였다”고 말했다.
 
  A씨는 어린 시절의 황 권한대행에 대해 ‘조용하고 착한 모범생’이었다고 기억했다. 반(班)에서 70~80명 가운데 늘 10등 안에 들었고, 부반장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고등학교는 경기고등학교를 나왔다. 황 권한대행의 경기고 선배인 검사장 출신 B변호사는 “황 권한대행이 재학시절 학도호국단장(총학생회장)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노회찬 정의당 국회의원이 경기고 동기이다.
 
  고교 졸업 후 서울대에 시험을 쳤지만 떨어진 후 후기로 성균관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군대는 알려진 것처럼 담마진(두드러기. 피부병)으로 면제를 받았다. 당시에는 담마진 재발이 빈번하거나 3개월 이상 치료를 받았는데도 차도가 없으면 제2국민역 판정(면제)이 가능했다.
 
  2015년 국무총리 인사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은 이 문제를 집중 추궁했다. 당시 황 권한대행은 “대학에 들어가면서 담마진이란 병이 생겨서 6개월 이상 병원 치료를 받았고 그 이후도 17년 동안 치료했다”고 해명했다. 김광진 민주당 의원은 담마진 치료 병원기록을 요구했지만 황 권한대행은 “10년이 지나서 그 자료가 없다고 보고받았다”고 했다.
 
  고교 동기인 노회찬 의원은 총리 인사청문회 때 증인으로 나와 “(황 총리 후보자가) 병을 앓았다는 것과 병역면제를 받은 것을 (법무부) 장관 청문회 때 처음 들었다”고 말했다. 노 의원은 “(황 후보자가) 아프다는 것을 모를 수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당연히 모를 수 있다”고 답했다.
 
  2016년 6월 18일 국무총리 임명동의안 표결에 앞서 김광진 의원은 “350만명이 10년간 징병검사를 받지만 단 4명만이 담마진이라고 하는 두드러기로 병역을 면제받았다”고 따졌다. 이에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은 “병역면제를 받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돈이 많거나 하는 둘 중의 하나의 요건을 갖춰야 하는데, 황교안 후보자는 고물상 아버지 밑에서 성장하였고 병역면제 받을 당시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년이 되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사람이 무슨 힘으로 부당하게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겠느냐?”며 황 총리 후보자를 변호했다.
 
  황교안 권한대행은 병역면제 판정을 받은 다음해인 1981년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조대환 신임 민정수석비서관, 김형태 전 참여연대공익법센터 소장 등이 사법시험 및 사법연수원(13기) 동기다.
 
 
  ‘미스터 국가보안법’
 
2005년 12월 14일 X-파일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황교안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 사진=조선일보DB
  황교안 권한대행은 1983년 청주지방검찰청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했다. 검사장 출신 B변호사는 “젊은 사람 같지 않게 언행이 진중(鎭重)하고 일을 꼼꼼하게 잘해서 학벌 같은 것을 따지는 검찰 조직 내에서도 그를 무시하는 사람이 없었다”면서 “전형적인 외유내강(外柔內剛)형의 인물”이라고 말했다.
 
  검찰 내에서 그는 ‘공안통’으로 꼽혔다. KAL기 폭파범 김현희 사건, 임수경 밀입북(密入北) 사건, 거물간첩 이선실 등이 관련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등을 담당했다. 공안검사들이 위축되기 시작하던 1998년 6월에는 《국가보안법해설》이라는 책을 냈다. 7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이 책은 국가보안법에 대한 각종 판례와 학설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황 권한대행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대공(對共)기관에서 글이 조금 삐딱하다 싶으면 이적(利敵)표현물로 규정하는 등 마구잡이로 법을 적용한 측면이 있어 일각에서는 국보법을 민주인사 탄압법쯤으로 여기는 경향도 있다”면서도 “국가가 존속하는 한 체제수호에 관한 법률은 반드시 필요하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이후 그에게는 ‘미스터 국가보안법’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B변호사는 “황 권한대행은 공안검사이기는 하지만 수사형 검사라기보다는 학구형 검사였던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2차장검사로 있던 2005년 7월에는 ‘삼성 X파일사건’ 특별수사팀을 지휘했다. 특별수사팀은 횡령과 뇌물공여 혐의를 받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서면조사만 하고, 삼성측 관계자들은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 반면에 이 사건을 보도했던 이상호 MBC기자, 김연광 《월간조선》 편집장, ‘떡값검사’의 실명을 공개한 노회찬 의원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2015년 국무총리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선 노회찬 의원은 “도둑질을 한 장물(贓物)에서 마약이 나왔는데 도둑질만 처벌하고 장물로 나온 마약은 수사대상으로 삼지도 않는 것이 정상이냐”면서 “삼성 X파일사건 수사는 현격하게 법과 원칙을 위배해서 진행됐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강정구 구속으로 검사장 승진 탈락
 
  같은 해 10월 황교안 검사는 다시 한번 홍역을 치렀다. 그의 산하에 있던 공안1부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강정구 동국대 교수를 구속하려 하자,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이 이례적으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던 것이다. 김종빈 당시 검찰총장은 이에 항의해 사퇴했다.
 
  그 여파로 황교안 권한대행은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했다. 동기였던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 3차장검사는 모두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황 권한대행은 노무현 정권 내내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했다. 황교안 권한대행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인 2008년 3월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황교안 권한대행도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감추지 않았다. 부산고등검사장으로 있던 2011년 5월에는 한 교회 강연에서 “김대중씨는 계속 재야(在野)활동을 했기 때문에 경찰에서도 조사받고 검찰에서도 조사받았다. 이런 분이 딱 대통령이 되고 나니까 그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에 있었던 검사들은 물론 소위 공안통으로 이름나 있던 검사들은 전부 좌천됐다. 공안검사들이 굉장히 고통받고 두 번째 인사에서도 그런 고통을 주고 세 번째 인사에서도 고통을 주니까 많은 검사들이 사표를 내고 나가고 이랬다”고 말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검찰에 의해 구속까지 됐던 분이 대통령이 되니까 공안부에 오래 있던 사람들에 대해 곱지가 않겠지요”라고 말했다.
 
 
  청문회 때에는 ‘전관예우’ 논란
 
2015년 6월 총리 인사청문회에서 황교안 후보자는 병역, 전관예우 등의 문제를 지적받았다. 사진=조선일보DB
  황교안 권한대행은 2011년 8월 부산고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났다. 이후 그는 2013년 3월까지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고문(顧問)으로 일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15억9000만원을 수임료와 자문료 등으로 받았다. 2013년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이 이를 ‘전관(前官)예우’라고 추궁하자 황 권한대행은 “일한 만큼 지급됐다”고 답변했다가 비판을 받았다. 결국 황 권한대행은 “서민들에게 큰 위화감을 주는 일”이라면서 “제가 받은 급여를 사회봉사를 위해 쓸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황 권한대행은 1억원을 기부했다.
 
  황교안 권한대행은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 때에는 아들의 전세보증금, 총리 인사청문회 때에는 딸의 신혼집 임차보증금에 대한 증여세(贈與稅)를 내지 않았다가 청문회를 앞두고서야 납부해 ‘청문회용’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5년 6월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때 제출한 재산신고서에 의하면 황교안 총리 본인의 재산은 14억1349만원(서울 잠원동 아파트 8억8000만원, 예금 5억291만원, 체어맨 승용차 1258만원), 배우자와 장녀의 재산까지 모두 합친 가족 재산은 22억9835만원이었다.
 
  법무부 장관 시절 황교안 권한대행은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수사와 관련,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을 끝까지 반대하고, 특별검사팀을 교체했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婚外子) 의혹이 나오자 채 총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다. 이 때문에 야당은 2013년 11월, 2014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그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2014년 1월 28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공개변론에서 통합진보당측 김선수 변호사와 악수를 나누는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 사진=조선일보DB
  하지만 이보다 더 ‘법무부 장관 황교안’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킨 것은 통합진보당을 위헌(違憲)정당으로 헌법재판소에 제소해 해산시킨 일이었다. 그는 2013년 9월 이석기 RO사건이 발생하자 정점식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등 7명의 검사로 ‘위헌정당·단체 관련대책 TF(Task Force)’를 만들고, 그해 11월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했다.
 
  2014년 11월 26일에는 정부측 청구인 자격으로 헌법재판소 재판정에 나가 “통합진보당의 ‘진보적 민주주의’가 실제로 추구하는 것은 용공(容共)정부 수립과 연방제 통일을 위한 ‘북한식 사회주의의 실현’”이라면서 “통합진보당이 정당으로 존재하는 한, 국가와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으며, 정당해산의 방법이 아니고는 종국적인 국가안보의 확보가 불가능하다”고 역설했다.
 
  황 권한대행은 당시 사석(私席)에서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의 전신)이 2000년 창당했을 때, 언젠가는 위헌정당 심판이 있을 줄 알고 내 나름대로 준비를 해 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해산결정을 내렸다. 이때부터 보수세력 일각에서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을 잘 키워서 2017년 대선 때 보수의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5·16에 대한 인식 놓고 야당의원과 격돌
 
  2015년 6월 황교안 권한대행이 국무총리가 되면서 그를 잠재적인 대권주자로 보는 시각은 더욱 늘어났다. 사실 그에게는 ‘보수세력’이 기대를 걸 만한 요소가 많다. 공안검사로서의 이력이나 통진당 해산 노력 등에서 보듯 그는 철저한 반공주의자다.
 
  역사인식도 ‘보수적’이다. 그는 2009년에 쓴 《집회・시위법 해설》에서 4·19 이후의 상황을 ‘혼란’으로, 5·16을 ‘혁명’이라고 기술(記述)했다. 2013년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이 이 부분을 따지고 들자 그는 “(5·16에 대한) 역사·정치적으로 다양한 평가가 있다”고 버텼다. 야당 의원들의 추궁이 이어지자 그는 마지못한 듯 “교과서에 5·16군사정변으로 나와 있는 것에 공감한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황교안 권한대행은 2015년 10월 13일 한국사 국정교과서 문제에 대해 국회에서 답변하는 과정에서도 야당 의원들과 역사논전(論戰)을 벌였다. 백재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5·16은 쿠데타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대법원의 판결이 있는데, 아직도 (5·16을 둘러싼) 다양한 평가가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황 권한대행은 “어떤 역사적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특정 사안을 규율하는 건 아니다”라면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하나의 의견을 제시한 것이고, 많은 의견들이 있다”고 답변했다. 기존의 한국사 검정교과서에 대해 그는 “김일성 주체사상을 무비판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6·25 당시 우리 남한 군(軍)에 의한 학살만을 이야기하고 북한의 학살에 대해서는 소개하지 않은 교과서도 있다”고 지적했다.
 
  황교안 권한대행은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어떤 정부도 하나의 사상(思想)을 주입할 수 없지 않느냐”고 묻자, “우리 대한민국에는 사상의 자유가 있지만, 사상의 자유가 외부로 표출되는 순간에는 법적인 제재가 있을 수 있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그는 “반(反)자유민주적인, 우리가 쉽게 얘기하는 공산혁명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 국가가 허용할 수 없는 특수한 상황이다. 헌법상 사상의 자유가 모든 사상을 다 수용할 수 없다. 그 한계가 자유민주주의다”라고 단언했다.
 
  황교안 권한대행의 투철한 반공주의는 상당 부분 그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는 침례교 야간신학대학을 다녔고, 교회 전도사를 맡기도 했다. 황 권한대행은 《종교활동과 법률지식》 《교회와 법이야기》등의 책도 냈다.
 
  이런 책에서 그는 “담임목사 사택과는 달리 부목사, 강도사, 전도사 등의 사택을 세금 부과 대상으로 판결하고 있는 법원의 견해는 지극히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독실한 신앙심은 만일 그가 대권(大權)에 도전할 경우 힘이 될 수도 있지만,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공안검사 출신, 정치 보는 시각 넓다”
 
  황교안 권한대행의 정치적 감각은 어떨까? 검찰 출신인 C씨는 “특수부 검사와는 달리, 정치적 성격의 사건을 다루는 공안검사 출신이어서 정치를 보는 시각이 넓다”고 말했다.
 
  총리실에서 일했던 D씨의 말도 황교안 권한대행의 정치적 감각을 보여준다.
 
  “새로운 일을 추진하기보다는 특정 사안이 발생하면, 과거 역대 총리는 어떻게 처리했는지 먼저 살펴본 후 그 틀 안에서 처리하려는 스타일이다. 청와대와 대통령에게 누가 안 되게 항상 그것을 먼저 생각하고 일을 한다. 2인자로서 처신을 잘해 왔다. 비판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총리의 한계를 스스로 알기 때문에 업무를 무난하게, 모나지 않게 총리로서 역할을 하려고 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가 법무부 장관 때보다 총리가 된 후 오히려 언론에 나오지 않은 것도 이런 점을 방증(傍證)한다.”
 
  황교안 권한대행을 모시고 일한 적이 있는 현직 공무원 E씨는 “황교안 총리는 권한대행을 아주 잘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탄핵 직후 대국민 담화에서도 외교와 안보를 먼저 챙겼다. 이런 자세는 그에게는 몸에 밴 것이다.”
 
  대통령이 되려면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앞에서 말한 초등학교 동창 A씨는 “황교안 권한대행은 공사(公私)구분이 확실하고, 남의 청탁 같은 걸 들어주는 사람은 아니지만 초등학교 동창 모임을 법무장관이 될 때까지 이끌어 왔을 정도로 은근히 리더십이 있다”고 말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 B씨도 “자기 사람을 만드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남에게 모나게 대하는 성격도 아니어서 검찰 내에 적(敵)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황 권한대행은 술자리에서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고도 했다.
 
 
  ‘권력의지’ 있을까?
 
2015년 6월 18일 오후 국무총리 임명장을 받은 후 환담장으로 이동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박근혜 대통령과 황교안 총리. 사진=뉴시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권력의지’다. 황교안 권한대행에게 ‘권력의지’가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관찰자마다 생각이 다르다. “황교안 권한대행은 자신이 병역미필이라는 사실에 대해 부담을 가지고 있고 미안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때문에 권한대행으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하려 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반면에 검사장 출신 B변호사는 “보통 한 번만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해도 옷을 벗는데, 3번이나 탈락하고도 버틴 것을 보면 황 권한대행은 끈기가 있고 ‘권력의지’가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동기 A씨는 “여태까지는 황 권한대행이 정치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처신이 조심스러웠겠지만, 상황이 변하지 않았나”라면서 “여권의 대권 주자가 불명확하고 최순실 사태로 허탈해진 보수세력의 마음을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목소리가 높아진다면 그가 나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권도전에 대한 황교안 권한대행 본인의 생각은 어떨까? 검사장 출신 B변호사의 말이다.
 
  “어떤 사람이 황교안 총리를 소개해 달라고 해서 자리를 만든 적이 있다. 그때 그는 황 총리에게 대권에 도전할 생각이 있는지 물었다. 황 총리는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았는데, 내게는 그 침묵이 ‘생각이 없지 않다’는 뜻으로 보였다.”
 
  총리실에서 근무했던 한 전직 공무원의 얘기도 비슷하다.
 
  “2016년 봄의 일이다. 그때는 탄핵 얘기 전혀 없었을 때이다. 사람들이 황교안 총리라는 분이 있는 줄도 몰랐고 표시도 전혀 안 나던 때였다. 당시 황 총리는 총리실 소속 직원들에게 오찬을 베풀었다. 총리실에는 각 부처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들이 많아서 간부급들에게는 몰라도 일반 직원에게 총리가 직접 그렇게 오찬을 산 적은 없었다. 그 자리에서 어떤 정부부처에서 파견된 직원이 ‘개인적으로 저는 총리님께서 ○○ 자리에서 일하시게 되는 날을 손꼽아 기대하고 있는데, 그때도 지금처럼 지근거리에서 보필하기를 진정 원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황 총리의 정치적 의지, 대권 의지에 대해 물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잠시 적막이 흘렀다. 황 총리는 가만히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 ‘사람 앞날은 알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가 대권도전 의지를 드러낸다면, 과거 인사청문회 때마다 그를 괴롭혔던 문제들이 다시 불거져 나올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검찰공화국’ 소리를 들었고,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등 검찰 출신들이 ‘최순실게이트’에 발을 담그는 바람에 검찰 출신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진 것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생각지도 않았던 복병(伏兵)이 나올 수도 있다. 어쩌면 단정해 보이는 그의 머리가 사실은 ‘가발’이라는 것도 입방아에 오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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