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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이래 최대의 역사라는 새만금 간척사업도, 실제로는 ‘首都 서울’을 옮기는 ‘신행정수도 건설’ 계획도 모두 정권 야욕에 불타는 정치인들이 계속해서 써먹은 지역주의의 산물이다. 33km의 세계 최장의 새만금 방조제는 전라북도의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명목으로 1987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 선거 1주일을 앞두고 선거공약으로 끄집어냈다. 지금 한창 논란의 되고 있는 ‘신행정 수도 건설’ 계획은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 시절 충청권의 표를 의식하고 대선 며칠을 앞두고 대전 지방 유세에서 떠들석하게 발표를 했다. 결과적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전라북도 지역 주민들의 환심을 사서 대통령이 되더니 이번에는 盧대통령이 충청권의 인심을 얻어 대통령이 됐다고들 한다. 당사자들은 절묘한 선거 전략이었다고 손뼉을 치고, 이것이 잘 들어맞아서 대통령에 당선이 됐다고 무릎을 쳤을테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운 ‘신행정수도 건설’ 계획은 벌써부터 지역간의 갈등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뿐만아니라 1조5000억이나 써서 방조제 30.3km를 쌓고 76%의 공정을 보인 가운데 공사를 중단한 새만금 간척사업처럼 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경제 성장도 불투명한 이때 정당들의 불법 정치 자금 모금과 盧대통령 측근 비리 사건, 盧대통령 재신임 문제 등으로 온 나라가 하루도 편안할 날이 없다. 신생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지금이야말로 50년 묵은 한국의 정치를 바꿀 절호의 찬스라고 주장을 하고 있다. 지역주의를 부추겨 대통령이 되고 정권을 잡은 여당이 어찌 정치개혁을 외치고 '신행정 수도 건설 계획'을 실천에 옮기려 하는가. 45조원의 돈이 들 것이라는 '首都 서울 이전' 보다 남북통일이 먼저다. 자유 민주주의에 의한 남북통일을 성취한 다음 그때가서 평양으로 옮기든, 개성으로 옮기든, 대전으로 옮기든 온 국민이 합의하여 천도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公約은 空約으로 끝나도 좋다.
친구의 아들 둘은 모두 서울대를 졸업했다. 큰 아들은 서울대 이공계통을 전공, 과학과 산업발달에 크게 기여할 과학자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작은 아들도 서울대 공과대학에 입학, 장래 우리나라 중화학분야에 종사할 유능한 엔지니어가 될 줄 믿었다. 그러나 지금 그 중 한 아들은 한 몇 년째 사법고시 준비에 매달려 있다. 다른 아들은 변리사 시험에 합격하여 회사를 다니고 있다. 모두 잘 나가는 변호사나 변리사의 길을 걷고자 전공을 모두 버린 것이다. 물론 대학에서 배운 전공 관련 지식이 변호사나 변리사를 하면서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처럼 우수한 두뇌들이 눈앞에 펼쳐진 부귀와 영화만을 쫓아 전공과 과학도의 길을 하루아침에 포기했으니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얼마나 큰 손실인가. 이들 뿐만 아니라 주위에서 보면 대학 4년 동안 배운 자신의 전공을 포기하고, 돈 많이 벌고 안정된 직업인의 길을 택하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10만 명이나 된다는 사법고시 준비생들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돈 많이 벌고 안정된 직업'이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의 '코리안 드림'인 것 같다. 근래에 와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청소년들 사이에서 '코리안 드리머'의 본보기로 떠오른 모양이다. 노 대통령 스스로 고백했듯, 고교 시절 그리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방황하기도 했던 이가 대통령까지 되었다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한다. 그 노무현 대통령은 얼마 전 국회가 해임건의를 한 김두관 행정자치부장관을 가리켜 '코리안 드림'을 이룩한 '코리안 드리머'라고 치켜세우고 앞으로 더욱 키워주겠다고 말했다. 이 말 속에는 김 행자부장관을 '코리안 드리머'로 추켜 올리면서, 자신은 김 장관 이상 가는 '코리안 드림'을 이룬 장한 인물이라는 것을 은근히 과시하는 면모도 드러낸다. 안 그래도 젊은이들이 눈앞의 이익이나 출세만을 추구하는 현실 속에서 노무현 대통령이나 김두관 장관이 '코리안 드리머'로 부각되는 현실을 보면 답답하
에도(江戶) 시대의 鎖國政策에도 불구하고 나가사키는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열려 있었다. 이것이 明治維新을 통해 오늘날의 日本을 만들었다. 白承俱 月刊朝鮮 기자 하늘에서 내려다본 나가사키공항. 이 공항은 세계 최초의 해상 국제공항이다. 2003년 12월15일 오후 2시30분, 인천공항을 이륙한 대한항공 KE793편은 같은 날 3시50분 日本 나가사키(長崎) 국제공항에 착륙을 앞두고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바라본 나가사키공항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고속도로와 같았다. 이 공항은 1975년 나가사키縣의 중심부 오무라만(大村灣)에 있던 작은 섬을 매립해 만든 세계 최초의 海上 국제공항이다. 영종도를 매립해 만든 인천공항이 바로 나가사키공항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日本 땅을 밟은 일행을 처음 맞이한 것은 오무라灣으로 불어들어온 세찬 海風(해풍)이었다. 이 바람은 日本을 처음 방문한 기자에게 섬나라 日本의 첫인상으로 머리 속에 깊이 각인됐다. 나가시키로 불어오는 海風은 이곳으로 흐르는 海流(해류)와 함께 나가사키를 東西洋의 문물을 받아들이게 한 천혜의 조건으로 작용했다. 나가사키縣은 규슈(九州ㆍ日本열도를 이루고 있는 4개 섬 중 가장 아래쪽에 있는 섬)의 북서쪽에 위치해 있다. 나가사키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中國ㆍ한반도와 마주하고 있어 대륙과의 교통요충지 역할을 했다. 나가사키는 야마토 지방과 함께 日本 古代문화인 야요이 문화의 2大 중심지의 하나이다. 13세기 후반에는 2차에 걸쳐 麗蒙(여몽)연합군의 침입을 받기도 했다. 17세기 에도(江戶) 시대에는 유럽 문물이 이곳을 통해 본토로 전해져 日本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곳에는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의 무역항도 설치됐다. 한 때 기독교 포교의 중심지이기도 했던 나가사키縣 內에는 이국정서가 넘치는 유물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나가사키 시내를 달리는 전차. 나가사키縣은 무인도를 포함해 971개에 달하는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縣의 총면적 4100㎢ 중
1. 정철의 관동별곡 2. 최남선의 독립선언서 3. 김구의 백범일지 저는 이 세가지 글을 좋아하며 자주 읽습니다. 이 세개의 글은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관동별곡은 우리 말을 어쩌면 이처럼 자유자재로 부리면서 희롱할 수 있을까 감탄을 절로 자아내게 하는 글입니다. 정철은 언어의 마술사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이런 느낌은 저만 갖는 것이 아니라, 이미 수백년 전 구운몽을 지은 김만중도 정철의 글에 대해 극찬을 한 바 있습니다. 한문만 최고라고 생각하던 당시에 김만중 같은 사람이 정철의 가사를 극찬을 했으니 문장가는 문장가를 알아 보나 봅니다. 그리고 최남선의 독립선언서는 아마 우리 역사에서 두번다시 나오기 힘든 천하명문으로 남을 것입니다. 독립선언서는 글에 군더더기가 없고, 박력이 있고, 조리가 분명하며, 남녀노소의 가슴을 뜨겁게 끓어 오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세번째 김구의 백범일지는 한마디로 감동적입니다. 자신의 일생을 이처럼 감동스럽게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백범일지에서 나오는 감동은 단순히 글재주로 되는 것이 아니고 김구가 국가와 민족앞에 사심이 없었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관동별곡과 백범일지, 독립선언서를 읽을 때마다 이런 문장가를 만들어낸 당대의 학문과 철학 수준을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구는 아시다시피 스스로 상놈이고 못 배웠다고 누누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놈 집안 출신의 백범 같은 사람이 고도의 애국심과 인품을 가진 인물이 될 정도면 그런 인물을 길러낸 당시 시대를 조금은 존경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 후손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최남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문장가가 나올 수 있는 것도 당시 사회의 지식 축적과 교양이 뒷받침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천년을 남길 글을 쓸 수 있는 문장가가 이 땅에서 많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요즘 우리사회가 워낙 바탕이 얇고 감각적
민경찬과 65라는 숫자 盧武鉉 대통령의 사돈 민경찬(44)씨 아시죠? 요즘 언론매체에 오르내리는 화제의 인물입니다. 그는 지난 달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강남구 역삼동에 「시드먼」이라는 투자회사를 세웠다. 자본금 15억원으로 시작해 100억원 유치를 목표로 잡았는데 두 달 만에 650억원이 넘었다』 이 발언을 계기로 민씨는 경찰의 조사를 받았고, 별 건의 「사기」혐의로 현재 구속된 상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민경찬씨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민씨의 입에서 이상하리만큼 「65」라는 숫자가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650억원->653억원, 65명->47명 먼저 민씨가 모았다는 돈을 살펴볼까요? 민씨는 처음에 「650억원 이상」을 모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1월30일 민씨를 면담했던 금감원 신해용 국장은 『민씨가 지난해 12월부터 2개월간 모두 47명의 투자자에게서 653억원을 모금했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민씨가 모았다는 돈은 653억원인 셈입니다. 이제 투자자 수를 한번 봅시다. 민씨는 시사저널과의 첫 인터뷰에서 투자자의 수를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금감원 신국장과의 면담에서 47명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청와대 민정수석실 핵심관계자는 『민씨가 지난달 말 민정수석실 1차 조사 때는 자신이 모집한 투자자가 65명이라고 진술했다가, 금감위 조사 때부터는 47명으로 말을 바꾸었다』고 밝혔습니다. 요약하자면 민씨는 처음에 65명이라고 했다가 47명으로 바꾸었던 것입니다. 투자자가 50명 이상이면 금융당국에 신고를 해야하는 법률 조항이 있기 때문에 말을 바꾸었을 것입니다. 민씨는 그의 주장대로 65명으로부터 거액을 모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는 허언을 하더라도 법적 테두리 안에서 해야 할 신분에 있습니다. 대통령 사돈이니까요. 다시말해 대충 65명이라고 했다가 「투자자가 50명이 넘으면 당국에 신고를 해야한다」는 사실을 청와대
駐韓美軍 철수에 대한 「힌트」 지난 2월6일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은 『독일과 한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로 실시될 미군 구조 재편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얼마나 많은 미군이 철수할지는 아직 불명확하다』고 밝혔다. 럼즈펠드 장관은 독일 뮌헨에서 열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국방장관 회의에 참석 중 유럽 기자들에게 『우리는 많은 군대를 독일에 두고 있고, 한국에도 많은 군대를 두고 있으며, 많은 지역에 많은 군대를 두고 있다』면서 『그들은 이번 미군 재배치에 명확하게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럼즈펠드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향후 상당 규모의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최근 기자가 만난 주한 미군의 한 고위 관계자도 『미국 정부는 주한미군 감축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원론적인 언급을 하면서도 「감축」을 示唆(시사)하는 묘한 여운을 남겼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미간의 용산 기지 이전 문제에서 미국의 협상 태도를 보면 미국의 속내가 들여다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은 용산기지 이전협상에서 이상하리만큼 한국측에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고 있다』면서 『80만평에 달하는 용산기지를 오산ㆍ평택으로 이전하는 문제를 다루면서 한국이 제안하는 이전비용(30~40억 달러)을 선선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그 근거』라고 했다. 그의 언급은 현재 주한미군의 지위와 구조개편과 맞물려 구체적으로 3만7000명의 주한미군 중 2만1000명 가량이 한국을 떠난다는 說(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說은 2만1000명중 1만3000명은 일본 오키나와로, 8000명은 이라크 주둔 미군의 교체요원으로 투입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사실상 절반 이상을 감축하는 상황이라면 한국측이 제안하는 부지와 이전비용은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만족스런 수준일 것』이라고 했다. 한편, 현재 주한미군의 지위와 구조 개편 문제도 주한미군의 철수와 맞아떨어지고 있다. 정전협정 체제 유지를 위해 만들어진 「유엔군사령부」는
▶ 노구리가 산다는 ‘노무현’ 뭐 웃자고 나도는 글입니다만 그래도 왜 이런 글이 나도는지.. 거론된 윗분들은 반드시 심사숙고해 보시길 바랍니다. 괜히 또 네티즌이 쓴 글을 가지고 화들짝 놀라 노발대발 하지 말길 바라며...자! 그럼 노구리 전설로 떠나볼까요? -----------------------------------------
초등학교 동네 친구 중에 메뚜기를 날로 먹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메뚜기를 호주머니에 가득 담아 다니면서 과자 먹듯이 먹었습니다. 메뚜기를 먹을 때는 날개와 머리를 뗀 후 먹습니다. 우리도 몇 번 먹어 봤지만 맛이 영 비릿해서 무슨 맛인지 모르겠는데 이 친구는 『고소한 맛이 난다』고 말합니다. 이 친구가 날로 먹는 메뚜기는 누렇고 눈이 없고, 맛없게 생긴 문둥이 메뚜기를 제외하고는 거의 종류는 가리지 않았습니다. 제일 좋아하는 것은 나락메뚜기였습니다. 하루는 이 친구와 길을 가다가 누에 고치를 하나 주었습니다. 이 친구가 갑자기 연필 깎는 칼을 꺼내서 고치를 자르고 번데기를 끄집어 내더니 입에 똑 털어 넣는 것입니다. 그 친구 하는 말이 『번데기가 메뚜기보다 훨씬 더 맛있다』는 것입니다. 그 후 제가 집에 있는 누에 고치를 여러 번 그 친구 갖다 준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친구는 학교를 마치고 오는 길에 도랑에서 잡은 붕어 한 마리, 미꾸라지 한 마리 소홀하게 버리지 않습니다. 잡은 놈을 곱게 집에 싸 가지고 와서는 불어 구워 먹습니다. 동네 친구 중에 이렇게 이상한 친구가 하나 있으면, 다른 동네 아이들은 우리 동네 아이들전체를 이상하게 보게 됩니다. 이 친구 때문에 우리 동네 아이들은 학교에서 메뚜기 날로 먹는 동네 아이들로 낙인이 찍혔습니다. 심지어 학교 외곽 청소를 하다가 풀밭에서 메뚜기를 잡으면 학교 친구들은 꼭 우리동네 아이들에게 잡은 메뚜기를 밀며 『너 동네 아이들은 메뚜기를 생것으로 먹는다며 자, 먹어봐라』하고 깔깔 웃습니다. 우리는 『당연하지, 그 맛있는 메뚜기를 왜 구워먹냐』며 큰 소리를 친 후 메뚜기 날로 먹는 친구를 불러와 먹게 해서 동네아이들의 체면을 유지하곤 했습니다. 하기야 우리도 메뚜기를 잡으면 날로 먹는 그 친구에게 꼬박꼬박 갖다 주었으니 할 말은 없습니다. 시골동네에서 자랑거리가 별로 없는데 메뚜기 날로 먹는 친구라도 우리 동네에 있다는 것이 학교에서 큰
안동을 중심으로 하는 경북 북부 지방에는 안개가 유명합니다. 안개를 제대로 보고 싶은 분은 가을 추수 철에 안동 인근에 가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저는 강원도 양구에서 군생활을 하면서도 안개를 많이 접했는데, 안동의 안개와 그나마 呼兄呼弟(호형호제) 할 수 있는 것이 양구의 안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안동에는 심지어 한여름에도 새벽에 안개가 내릴 정도입니다. 안동을 위시한 경북 북부지방의 안개는 인근의 안동댐과 낙동강 및 낙동강 지류중에 하나인 내성천 일대, 벼베기를 앞둔 논 등에서 뿜어 내는 풍부한 수증기로 인해 발생합니다. 이 지방에서는 가을 무렵, 밤 9시가 되면 안개가 내리기 시작하여 새벽녘이 되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으로 빠져 듭니다. 이 안개는 오전 10시가 넘어야 걷히기 때문에 벼베기에 지장이 많습니다. 안개로 인해 나락이 눅눅해 지는데 이렇게 젖은 상태에서 컴바인(벼베고 탈곡까지 하는 기계)으로 벼를 베면 기계가 망가지기 쉽기 때문에 안개가 걷힐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아침 일찍, 안개가 내린 길을 따라 학교에 가면 참 재미있습니다. 안개와 이슬을 머금은 거미줄이 논 전체를 새 햐얗게 뒤 덮은 모습은 정말 장관입니다. 저기 앞에 누군가 학교에 걸어가는 데 안개 때문에 잘 알아 볼 수가 없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면 머리와 눈썹에 안개가 묻어 하얗게 변합니다. 낮에 요리조리 날아다니며 약을 올리던 고추잠자리는 안개에 젖어 옴짝달싹 못합니다. 사실 잠자리 중에 고추잠자리가 제일 잡기 쉽습니다. 나뭇가지에 앉아 있으면 손가락으로 잠자리 눈앞을 뱅뱅 돌리면 이놈도 머리를 같이 뱅뱅 돌리다가 정신이 빠집니다. 그때 잡으면 됩니다. 반면 왕잠자리는 그렇게 쉽게 속지 않습니다. 왕잠자리는 그냥 뒤쪽에서 접근해서 살금살금 잡는 것이 최고인데 워낙 동작이 빠르고 눈치가 기민해서 여간해서는 잡히지 않습니다. 저녁에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추수를 앞둔 논바닥은 석양빛을 받아 빛나고, 그 위로 잠자리
아래 삽입된 그림에서 보는 다리는 우리 시골 동네 들어가는 입구에 있습니다. 농사에 쓸 물이 흐르는 수로입니다. 이곳에서 어릴 때 물장구를 치며 많이 놀았습니다. 어른들이 이 다리를 「공굴다리」라고 불렀는데 커서 그 뜻을 새겨보니 「콘크리트 다리」란 소리였습니다. 사진의 왼편이 상류 지역인데 주로 우리마을 아이들이 놀았고, 오른편 쪽에서는 원수같이 싸우던 아랫마을 아이들이 많이 놀았습니다. 그러나 이 다리 자체가 우리마을 내에 속하기 때문에 건넛마을 아이들은 멱감기 한번 하려면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철탑쪽으로 산을 타고 빙 돌아서 와야 했습니다. 건넛마을 아이들은 한 두 명이 왔다가는 우리 마을 아이들에게 큰 코 다치니깐, 떼로 와서 물놀이를 하곤 했습니다. 저 다리위로 물이 흐르지 않는 날은 정말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물은 5월 중순 모내기 철부터 거의 매일 흐릅니다. 안동 풍산 하회마을 앞으로 흐르는 낙동강 지류의 물을 그보다 훨씬 상류에서 저 수로 쪽으로 흘려 보내는 것입니다. 수로의 총 길이는 얼마인지 모르지만 하류역시 낙동강 어느 지역으로 합류할 것입니다. 이 수로 덕분에 이 일대의 논에는 가뭄이 들지 않습니다. 우리 면에만 해도 저런 수로가 거미줄 처럼 나 있습니다. 모두 낙동강의 풍부한 수량을 이용한 수로입니다. 사진에 보는 저 수로는 정확하게 언제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7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 시절 만든 것입니다. 동네 안에도 저런 수로가 하나 마을을 지나가는데 그 수로는 제가 어릴 때 어른들이 곡괭이로 파던 기억이 납니다. 예전에는 저렇게 계곡이나 허공을 지나는 수로만 콘크리트로 만들었는데, 그 후에는 모든 물길을 콘크리트로 단장했습니다. 콘크리트 수로는 마을가까이 있기 때문에 가까워서 많이 놀았습니다. 그외 학교 인근에도 낙동강의 큰 지류가 되는 내성천이 있어서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수영은 원없이 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의 수로 폭은 1.5m도 안될 것입니다. 콘크리트 수로
저는 月刊朝鮮 선배 기자들과 가까운 경운궁(덕수궁)이나, 경복궁 등으로 산책을 자주 나갑니다. 궁궐을 돌아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일제가 우리 궁궐을 너무나 심하게 파괴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경운궁(덕수궁)의 그 많던 전각은 일제에 의해 다 헐리고 지금 10여 채가 남아 있습니다. 경복궁은 지금 십 수년째 복원 사업을 하고 있지만 이제 겨우, 흥례문과 중궁전 일대를 조금 복원했을 뿐입니다. 근대에 들어와 식민지 나라의 궁궐을 이처럼 유린한 것은 전세계 식민 지배 역사상 일본을 제외하고는 유례가 없을 것입니다. 일제는 고종과 순종 황제가 두 눈을 뜨고 살아 있을 때부터 궁궐을 파괴하기 시작했으니 우리 황실이 일제에게 당했던 수모와 핍박은 두 말해야 무엇하겠습니까. 일제는 심지어 그 넓은 경희궁은 단 몇 개의 건물만 남기고 흔적도 없이 해체를 해버렸습니다. 일본의 궁궐 해체 기술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더욱 기가 찬 것은 일본은 경복궁, 경희궁, 창경궁, 경운궁 등을 헐어버리고 그 목재를 가져다가 본국의 술집 요정을 짓거나, 귀족들의 정원을 꾸미기도 했습니다. 그 외 각종 궁궐 전각과 문은 서울 시내 곳곳의 호텔 정문으로 쓰거나 산사의 요사채 재목 거리로 팔아 먹었습니다. 일제가 우리 궁궐을 파괴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동물원을 만든 대목에 이르면 아연하여 할 말을 잃게 됩니다. 일국의 궁궐을 동물원으로 만들겠다는 일본의 그 야만적이고, 유아적이고 유치한 발상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런 일본인의 의식구조도 일본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현재 우리 궁궐의 각종 안내문 중 일어로 된 부분에는 일본이 궁궐을 훼손했거나 황실을 탄압했다는 내용을 두리뭉실 넘어가거나, 아예 빼 버리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경운궁(덕수궁) 대한문 바로 안에 있는 궁궐 안내문 중 일본어 설명문에는 ‘일본이 고종황제를 핍박하여 강제 퇴위시켰다’는 내용이 싹 빠져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웃 일본처럼 인스탄트 커피보다는 원두커피를 즐기는 인구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지난 토요일, 자하문터널 근방에 있는 한 카페에서 커피 전문가와 커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의 설명을 들어가며 짐바브웨, 케냐, 콜롬비아 등 원산지별로 진열된 커피원두와 그 커피원두로 만든 커피의 맛을 보았는데, 문외한인 제 혀로도 맛의 차이가 느껴지더군요. 그 맛이란 '무거움'에서 '가벼움'까지 천차만별이었습니다. 특히, 에스프레소 잔에다 마시는 터키산 커피는 쌉쌀한 맛 뒤로 고소한 뒷맛이 그만이었습니다. 정통 유목민족이 마시는 커피라는 설명도 곁들여졌습니다. 세계적으로 유기농 커피(Organic Coffee)는 생산량이 적어 품귀현상을 빚기도 한다고 합니다. 대규모 플란테이션에서 살충제를 줘가며 기계로 수확하는 커피에 비해 유기농 커피는 맛의 차원이 다르다고 합니다. 유기농 커피 산지는 커피의 원산지인 에티오피아나 브라질보다 인도네시아 근방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강렬한 향과 무거운 맛이 일품이라는 군요. 원두를 금방 볶아 추출한 커피를 거푸 여섯잔이나 마셨음에도 위가 쓰리다거나 숙면에 방해받지 않은 것을 보면 좋은 커피라는 것이 존재하는 모양입니다. 커피 마니아들은 환상적인 커피맛에 매료돼 종종 "커피잔에 코를 박고 죽고 싶다"고까지 얘기한답니다.*
유종(兪淙ㆍ48) 前 울산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는 음악계에서는 실력있는 중견 지휘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부친은 玄民 유진오(兪鎭午) 前 신민당 당수이고, 모친은 이명래고약 대표인 이용재(李容載)씨입니다. 그는 미국 태프트학교를 졸업하고, 1983년 아스펜음악제에서 지휘자로 데뷔했습니다. 헝가리 비르투오지 실내악단 음악감독을 지냈고, 1994년부터는 런던 필하모닉오케스트라(PO) 제5대 객원지휘자를 거쳐 영국 칼튼클래식 전속 지휘자로도 활동했습니다. 1998년에는 귀국해 울산시립교향악단 상임 지휘자로도 활약했습니다. 그는 미국 줄리어드음악학교에서 지휘를 했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를 받은 이색경력도 있습니다. 그가 설렁탕을 먹으면서 기자에게 들려준 「지휘자의 세계」는 너무나 진솔해 혼자 듣기가 아까웠습니다. 그는 『지휘자는 자신이 직접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간접연주에 의한 직업』이라며 『전세계 대통령의 90%가 대통령을 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지휘자의 90%도 音을 모르고 지휘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지휘자가 진짜배기인지 아닌지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그가 처음 지휘대에서 지휘를 시작할 때 대번에 안다고 합니다. 그가 음을 모르는 지휘자라는 것이 판명되면, 단원들은 지휘자를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악보에만 의지해 연주를 한다고 합니다. 마치 나라의 지도자가 처음부터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좌충우돌하면 국민들은 지도자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죠. 지휘자는 머리가 좋아야 하고 꼭 한가지 악기를 소화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바이올린 연주자는 자신의 멜로디가 적힌 악보만 연주하면 되지만, 지휘자는 온갖 악기들의 멜로디와 화음이 적힌 악보를 모두 외워야 하고, 지휘할 때는 그것들을 速讀(속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말이 쉽지 한곡을 연주하기 위해 수천개의 「콩나물 대가리」를 외워야 한다는 게 보통일은 아닐 것입니다. 또 지휘자가 악기 하나는 연주해야 하는 까닭은 추상적으로
세상에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프리터족’도 모자라 이젠 ‘웰빙족’이라는 괴상한 말을 신문에 마구잡이로 씁니다. 어느 신문에는 ‘웰빙’ 이란 말에 괄호를 해서 ‘잘먹고 잘살자’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해 놓았습니다. 가관도 이정도면 과히 노벨상감이라고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그저께는 신문의 어느 자동차 광고를 보았는데 저의 짧은 실력으로 무슨 소리를 써 놓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신문에 본 그 자동차 광고는 아니지만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식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 중 가장 심각한 것이 영어식 외래어를 마구잡이로 쓰는 것에 대한 무감각함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되지도 않는 말을 쓰면서 상대편이 당연히 알아 듣기를 바라거나, 이런 말을 쓰는 사람을 보고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은 우리사회가 어딘가 건강하지 못하거나 우리의 사고방식이 어디서부턴가 뒤틀려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어는 한나라의 혼입니다. 혼이 썩어 가고 있는데 그것을 고치려고 하지 않으니, 혼빠진 민족이라고 손가락질을 받는다고 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제 나라 말이 없어서 이런 되지도 않는 외래어를 쓴다면 이해라도 하겠습니다만, 세계 어디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의 풍부한 어휘를 소유한 민족이 이런 언어생활을 한다는 것은 혼이 한 반쯤 썩었다고 밖에 달리 해석이 되지 않습니다. 주변에 애국자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모두들 입으로만 애국을 합니다. 일상의 언어 하나하나에 불필요한 외래어를 쓰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애국의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바로 아래 기자수첩 '서울의 역사가 겨우 600년?'이란 글 5번 글입니다. 여기에 다시한번 올립니다. 요즘 고구려 문제로 떠들썩 한데 삼국사기 한줄 읽지 않고 고구려 어쩌고 하면 큰일 납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고구려 역사의 99%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것입니다. ---------------------------------------------- 5.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지어 역사를 왜곡하고, 심지어 많은 역사책을 없애버렸다"는 오해. 김부식이 없었으면 삼국의 역사 전체가 전해지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생각만 해도 눈앞이 캄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전해준 것 하나를 가지고도 우리민족은 그에게 너무나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삼국사기를 지을 당시 김부식의 말을 잠시 들어 보겠습니다. “(전략) 생각컨대 성상폐하께옵서는 唐堯(당요)의 문사를 갖추시고 夏禹(하우)의 근검을 본받으사 바쁘신 여가에 전대의 사서를 博覽(박람)하셔서 말씀하시기를, '지금의 학사대부가 오경, 제자의 서라든지, 진한역대의 사기에 대하여는 혹 널리 통하여 자세히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우리나라의 사실에 이르러서는 도리어 망연하여 그 시말을 알지 못하니 매우 유감된 일이다. 더구나 신라, 고구려, 백제의 삼국이 정립하여 능히 예로써 중국과 교통한 때문에 원엽의 漢史라든지 宋那(송나)의 당서에 다 그 열전이 있지만, 그 사서는 자기 국내에 관한 것을 상세히 하고 외국에 관한 것은 간략히 하여 자세히 실리지 아니하였고, 또 그 古記로 말하면 글이 거칠고 졸렬하고 사적의 遺漏(유루)가 많아, 이런 까닭에 임금의 선악이라든지 신자의 忠.邪, 나라의 안위, 인민의 치란에 관한 것을 다 드러내어, 써 후세에 勤戒(근계)를 보이지 못했으니, 마땅히 三長의 材를 얻어 일가의 역사를 완성하여 이를 만세에 끼치어 일성과 같이 환하게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신과 같은 자는 본래 삼장의 재도 없고 또 깊은 지
獨島 斷想 -「독도 우표」를 발행한 대한민국 정부의 우둔함; 기회만 있으면 獨島 문제를 국제분쟁화하려는 日本에게 싸울 빌미를 준 어리석은 행동. -日本 정부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 우리의 역사서가 아닌 그네들의 史料로서 獨島를 대한민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 감정적 대응보다 사료적 대응을 일본인들은 가장 두려함. 실제 일본 문헌에 독도가 우리 영토라는 것이 존재. -한국민들의 일본 대사관앞 「獨島 시위」에 대해; 일본인들이 駐日 대한민국 대사관 앞에서 시위하는 것은 있을 수 있으나 땅을 갖고 있는 사람이 시위할 이유는 없음. -獨島 노래를 禁止曲으로 정한 全斗煥 대통령의 조치; 「하와이는 미국땅, 대마도는 일본땅,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가사는 후손들이 벌일지도 모르는 대마도 영토분쟁에 치명적인 가사내용임. 작은 독도를 얻느라 큰 대마도를 잃는 小貪大失의 전형. 고로 전대통령의 조치는 타당했다는 설. -獨島에 특수부대를 투입해 경계를 하자는 주장에 대해; 독도에 군인이 파견돼 경계한다는 것은 국제적 시각에서 보면 「분쟁지역」임을 자인하는 것. 현재 경찰이 파견돼 경계하는 것은 「우리 땅」에 대한 「治安」의 개념. -예전 KBS 동경특파원 모씨의 모리 총리 인터뷰에 대해; 인터뷰 말미에 『독도는 어느나라 영토라고 생각하느냐』는 愚問. 그럼 일본 총리가 『한국땅』이라고 할 줄 알았나? -독도 문제에 대한 정부와 국민의 대응 방법에 대해; 무대응이 최선의 대응. - 韓日관계를 연구하는 崔書勉 국제한국연구원장은 日本에서 강연 도중 韓日關係를 걱정하는 한 日本人으로부터 『다케시마(竹島)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崔書勉씨는『다케시마(竹島)는 일본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예상 외의 반문에 놀란 그 일본인은 『그럼 왜 한국은 日本 영토라는 데 동의 안 하냐』고 물었다. 崔씨는 『우린 獨島(독도)를 우리 것이라고 했지, 언제 다케시마를 우리 것이라고 했느냐. 자기 마누라를 남에
추적보고 - 송두율의 배후세력; 송두율ㆍ 서동만(국정원 기조실장)ㆍ 이종석(청와대 NSC 사무차장)은 「내재적 접근법」으로 맺어졌다; 吳 東 龍 月刊朝鮮 기자 프랑크푸르트發 「KAL 906편」 2003년 8월29일 오후 7시30분경, 개인 사업을 하는 A씨는 유럽 출장을 마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行 「KAL 906편」에 탑승했다. 보잉 747機는 오후 7시45분 프랑크푸르트 상공을 날아올랐다. 그는 2층 비즈니스석에 자리를 잡았다. 11시간의 비행 끝에 그는 8월30일 오후 1시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가 계류장에 도착했고, 짐칸에 있는 자신의 짐을 챙겨 2층(Upper Deck) 통로에서 1층에 있는 1등석 복도로 내려왔다. 순간, A씨는 그곳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2003년 4월 高泳耉(고영구·64) 국가정보원장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했던 徐東晩(서동만·47) 국정원 기조실장이 비행기 트랩을 빠져나가기 위해 복도에 서 있었던 것이다. 70석에 불과한 일등석과 비즈니스석은 일반석과 出口가 다르다. 徐실장은 프랑크푸르트에서 일등석에 탑승했던 것으로 보인다. 무테 안경을 낀 徐실장은 베이지색 드레스 셔츠, 紺色(감색) 양복 상·하의에 노타이 차림이었다. 그는 짐칸에서 여행용 서류가방을 내려 일등석 출구를 통과해 트랩으로 걸어나갔다. 이때 수행원으로 보이는 사람도 그를 뒤따랐다. 짐을 찾기 위해 徐씨가 手荷物(수하물) 컨베이어벨트에 도착하자 손에 무전기를 든 사람이 나타났다. 徐실장에게 깍듯이 예의를 갖춘 그는 徐씨가 여행용 가방을 찾는 동안 어디론가 분주히 무전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徐씨는 그들의 안내를 받으며 공항청사를 총총히 빠져나갔다고 한다. 徐東晩 기조실장이 독일을 방문한 시점은 현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북한 노동당원 宋斗律(송두율)씨가 국내에 들어온 2003년 9월22일보다 20여 일 앞선 시점이었다. 宋씨의 귀국은 9월22~26일까지
추적보고 - 송두율의 배후세력; 송두율ㆍ 서동만(국정원 기조실장)ㆍ 이종석(청와대 NSC 사무차장)은 「내재적 접근법」으로 맺어졌다; 吳 東 龍 月刊朝鮮 기자 宋의 초청으로 「통일학술회의」에 참석한 徐東晩ㆍ李鍾奭 宋斗律 사건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宋斗律은 1995년 1월28일부터 3월11일까지 북한에 들어가 金容淳(김용순·對南 담당비서 재직 중 2003년 사망)과 남북 해외학자들이 참여하는 통일학술회의 개최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金容淳으로부터 통일학술회의에 북한의 학자를 파견하겠으며 회의장소는 北京으로 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같은 해 6월4일부터 6월6일까지 宋斗律은 사회과학원 산하 통일문제연구소 부소장으로 위장한 통일전선부 소속 공작원 김경남, 사회과학원 연구사로 위장한 통일전선부 소속 공작원 김관기와의 예비회담에서 남북한 통일 관련 공동세미나 명칭은 「남북 해외학자 통일학술회의」로 한다고 합의했다. 1995년 7월31일부터 8월1일까지 중국 北京 「長城대반점」(쉐라톤호텔)에서 제1차 「남북 해외학자 통일학술회의」가 개최됐으며, 북측단장인 김구식(통일문제연구소 부소장)은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사상과 리념, 제도와 신앙을 달리하는 북남 해외의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치고 발걸음을 맞추어 나가기 위해서는 공동의 통일강령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조국통일강령에 대해 말할 때 민족의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 金日成 주석님께서 밝혀 주신 조국통일강령을 생각하게 됩니다』라며 金日成이 제안한 조국통일 3大 헌장(조국통일 3大 원칙, 全민족대단결 10大 강령, 고려민주공화국 창립방안) 등 북한의 통일방안에 대해 선전했다. 토론 과정에서 북한 노동당 비밀당원 宋斗律은 『그러한 전반적인 문제를 볼 때 역시 연방제적 구조라는, 체제와 민족국가라는 우리의 공통의 이상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그러한 두 개의 체제와 하나의 민족국가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구성적인 조건을 이제는 마련해야 되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합니다…』 등의 발언을 했다.
북한군 비밀 문서 입수; 2003년 모내기철용 북한군 내부 문건 「학습참고자료」 분석; 吳 東 龍 月刊朝鮮 기자 『쌀을 다른 나라에서 들여오고 있다』 月刊朝鮮은 북한군이 지난해 농촌 지원 활동에 앞서 병사ㆍ사관 교육용으로 만든 「학습참고자료」 한 권을 입수했다. 2003년 11월1일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이 보도한 이 자료는 「조선인민군출판사」에서 「주체92(2003)년」에 출간한 것으로, 부제는 「농촌전투기간용」이다. 북한군은 인민군 창건일인 2003년 4월25일 직후부터 6월 말까지 약 두 달간 농촌 지원 활동을 벌인다. 이 자료를 작성한 「조선인민군출판사」는 인민무력부 총정치국 산하 기관이다. 인민무력부 총정치국은 북한군의 정치ㆍ작전ㆍ조직ㆍ선전을 담당하는 핵심부서로, 총정치국장은 북한 권력서열 2위 趙明祿(조명록) 차수이다. B5 용지로 표지를 포함해 40장 분량인 이 「학습참고자료」는 거무스름한 갱지에 인쇄돼 있다. 이 자료를 복사하면, 전체 지면이 검게 변해 인쇄된 글자를 解讀(해독)할 수 없을 정도다. 군단, 사단, 중대 등에 배치된 정치학습교원(정치지도원)들은 이 문서에 기초해 북한군 병사와 하사관, 軍官(군관)들에게 黨(당)의 사상이나 「생활 總和(총화, 시험)」 등 정치학습을 시킨다. 이 「학습참고자료」는 군사 규율, 전투준비 태세, 飮酒(음주) 문제, 부적절한 여자 관계 등 북한군 전반에 대한 문제도 포괄하고 있다. 金正日의 지시 중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북한 군대에 쌀을 우선적으로 공급한다는 발언이다. 이 책자에 실린 金正日의 어록 중엔 이런 대목이 있다. 『人民들에게는 쌀을 공급하지 않더라도 절대로 인민군은 굶겨서는 안 된다』는 金正日의 지시가 북한군 내부문서를 통해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 것이다. 金正日은 『지금 인민생활에서 제일 걸린 것은 먹는 문제이다』라며 외국에서 식량지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밝혔다. 사병들이 알면 큰 충격 金正日은 외국에서 쌀을
민주당이 고민에 빠졌습니다. 열린우리당의 鄭東泳 당의장 때문입니다. 50년 야당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있는 민주당은 사실상 호남 유권자들을 主된 지지세력으로 여겨왔습니다. 그런데 鄭東泳 당의장이 호남 출신이면서 여당의 강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부상할 가능성 때문에 현재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입니다. 민주당의 출입기자는 『鄭의원이 당선된 후 당내에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지도부 등 당관계자의 얼굴에서 그런 느낌을 읽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교섭단체 실현 가능성에 대한 우려까지 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鄭東泳 의원이 호남을 찾아가 「호남의 호프(희망)ㆍDJ 이후 새로 나타난 차기 대통령감」 등을 집중 부각시킬 경우 호남 民心은 어떻게 변할까요? 민주당으로서는 한나라당-열린우리당의 양강 구도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부분도 큰 고민거리입니다. 盧武鉉 대통령이 이같은 구도로 4월 총선을 치를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鄭東泳 당의장 출범과 함께 방송인 박영선씨가 당초 민주당에 입당하기로 했다가 열린우리당에 전격 입당한 것을 두고, 열린당 내부에서는 鄭東泳 당의장의 첫 작품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鄭東泳 체제에 대한 고민은 杞憂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호남 출신의 한 기자는 『아직까지는 알 수 없다. 鄭東泳 당의장이 전북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민심의 변화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전남지역은 여전히 민주당이 우세한 상황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기존의 민주당 호남 의원들이 총선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습니다.
1995년쯤인가 일본의 어느 고위인사가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망언을 했습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한 바로 그때입니다. 당시 저와 친한 선배 한명이 있었습니다. 이 선배는 운동을 좋아하기 때문에 평소 청바지 등을 입고 다니며 옷차림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이 선배가 평소 입지 않던 양복을 빼 입고, 이마를 훤히 보이는 머리 모양을 하고는 나타났습니다. 무슨 결혼식인지 모임인지 갔다 왔다는 데, 머리 모양이 일본 역사극에 나오는 영락없는 일본사람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머리를 뒤로 올린 선배의 모습이 우스워 배를 잡고 한참을 웃은 뒤, 『선배 일본 사람이요? 머리는 왜 그렇게 뒤로 바짝 넘겼어요』하고 놀렸습니다. 그러자 그 선배 하는 말, 『야, 제발 좀 그만해라. 오늘 모임 갔더니 만나는 친구마다 「독도 너 거냐?」고 한마디씩 하는 바람에 아주 혼이 났다. 일본놈들 괜히 헛소리하는 바람에 애꿎은 나만 욕을 봤다』 우리가 흔히 독일은 과거를 잘 반성하는데 일본은 왜 반성할 줄 모르냐고 합니다. 독일은 전범 히틀러가 제거 되었고, 일본은 전범 히로히토가 살아 남았습니다.이로써 일본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과거를 단절시키고 반성할 할 수 없는 구조적인 모순을 안게 된 것입니다. 일본이 망하지 않는한 그들에게 과거사 사과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각종 망언도 계속 될 것입니다. 일본의 한마디 한마디에 너무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은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고 봅니다. 우리는 일본이 독도를 자기땅이라고 하는 것보다 더 풍부하고 객관적인 자료를 대마도에 대해 가지고 있다는 것만 잊지 맙시다.
최근 한 人士로부터 들은 얘기입니다. 높은 지위에 있었던 前職 人士에 관한 내용입니다. 『뭐, 남자 사회에서 흔한 일 중에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사회활동을 하다보면 여러 사람들과 술을 마실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여자가 나오는 술집에도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前職 高位인사 A씨는 조금 달랐습니다. 여자를 좋아했습니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A씨를 포함해 몇몇 知人들끼리 술집에 갔습니다. 물론 여자도 있었습니다. 그 여성는 술집에 근무하는 여자가 아니라 B씨의 소개로 알게 된 여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 나이가 좀 어렸습니다. 당시 나이로 21세였습니다. 그러니까 A씨와는 나이 차이가 좀 많이 났죠. 그런데 한참 술을 마시고 있는데 그 여성이 눈물을 흘리더군요. 알고 봤더니 A씨가 동거를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 여자는 A씨의 사회적 지위에 눌려 거절을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 人士는 사회 고위층의 도덕성을 거론하는 도중에 A씨를 사례로 들었습니다. 『A씨는 그 후 또다른 여성문제로 곤욕을 치렀습니다. 결국 그는 돈 문제로 그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술자리에서도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 비밀은 절대 없습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추천권을 요구한 열린우리당의 「뜻」 河炅喆(하경철)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1월28일 임기가 만료됩니다.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헌법재판소는 국회에서 세 명을 선출할 수 있습니다(대통령 3명ㆍ대법원장 3명). 후임 재판관 추천권은 민주당 몫으로 돼 있습니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이 후보추천권을 요구하고 있다고 합니다. 민주당이 分黨되기 전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각 1명을 추천했고, 나머지 한 명은 與野 합의 下에 1명을 추천했습니다. 민주당이 分黨이 된 상태라 이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당연히 자신들의 몫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열린우리당은 원내교섭단체인 만큼 이번에는 자신들이 추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1월7일 한나라당 홍사덕 총무, 민주당 유용태, 열린우리당 김근태 원내대표, 자민련 김학원 총무 등이 朴寬用 국회의장 주선으로 회동을 가졌습니다. 참석자들은 FTA 비준안 등 쟁점법안 처리 및 정개특위 구성방안 등에 대해 각 당의 견해를 조율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河炅喆 재판관의 후임에 대한 인사청문회 등을 논의했다고 합니다. 현재 후보추천권은 민주당 몫으로 사실상 결정됐습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이 후보추천권을 요구한 것에 대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그 底意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관장하고 있습니다. 1)법원의 제청에 의한 법률의 위헌여부 심판 2)탄핵의 심판 3)정당의 해산 심판 4)국가기관 상호간,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간 및 지방자치단체 상호간의 권한쟁의에 관한 심판 5)법률이 정하는 헌법소원에 관한 심판 이처럼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盧武鉉 대통령의 탄핵을 거론한 적이 있습니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 대한 선거무효소송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4월에 있을 17대 총선 이후 정치권이 어떻게 재편될지 모릅니다. 아울러 선거무효소송의 결과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으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 몇 개 1. “600년 역사를 가진 도시 서울” 새해 첫날 이명박 서울시장은 신년사에서“600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서울은 자랑스런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고…”라는 말을 했습니다. 서울 시장이 서울의 역사가 몇년인지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태조 이성계가 서울을 수도정한 것이 약 600년 전입니다. 기록된 서울의 역사만도 백제의 온조 왕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따라서 서울은 최소 2000년이 더 된 도시입니다. 신도시를 제외하고 우리나라에서 600년의 역사가 안 되는 도시는 없습니다. 도시가 고려 전기에만 생겼다고 해도 기본 1000년의 역사는 먹고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2. “절대 왕권을 휘두르던 조선시대” 조선시대 왕들은 절대 왕권을 휘두르지 못했습니다. 사대부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왕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절대 왕권을 대표하는 '짐이 곧 국가다’란 말은 유럽에서 생겼습니다. 외국의 어느 학자는 “서양에는 폭군이 늘 곁에 있었지만 동양에는 그 많은 왕들 중에 폭군이 거의 없었다”고 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차기 왕이 될 사람은 철저한 성리학 교육을 받고, 왕이 된 후에도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했기 때문에 구조적으로도 폭군이 나오기가 힘들었습니다. 세종이나, 영조, 정조 등 조선의 많은 왕들은 당대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는 대학자이자 영민한 철학자들이었습니다. 왕 자체가 그 나라의 통치 이념(우리는 성리학 이념) 을 이행할 만한 수준의 인격체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를 한 역사를 가진 나라를 세계사에서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3. “조선 봉건왕조” 우리나라 역사에서 봉건시대가 없었습니다. 조선이 ‘의회민주주의 국가’였다고 말하면 안 되듯이 ‘조선 봉건왕조’란 말은 그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조선은 철저한 중앙집권사회, 관료사회, 사대부와 양반들이 다스리던 사회였습니다. 사전적 의미로 ‘봉건적인’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하는
최근 북한군인을 소재로 한 영화 '동해물과 백두산이'가 개봉됐습니다. 본의 아니게 강원도 해수욕장까지 표류하게 된 두 북한병사의 한국 탈출기를 다룬 코미디 영화입니다. 상황설정은 어설프지만 작품 구성도 측면에서는 관객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다음은 탈북자동지회 소식지 '탈북자들'에 실린 글입니다. 필자 주성하씨는 김일성大를 졸업한 탈북자입니다. 필자는 북한을 소재로 한 한국 영화에는 정작 북한에 관한 솔직한 얘기는 없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탈북자동지회 홈페이지(WWW.NKD.OR.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에 북한이 없다. 주성하(김일성대 졸업) 어제는 김정일의 딸과 국정원장의 아들이 연애를 하더니(휘파람공주) 오늘은 북한 고위간부의 딸과 남한 정보책임자의 아들이 중국에서 연애를 한다(남남북녀). 남남북녀라는 말을 신조처럼 떠받들어 시나리오 작가들은 아름답고 활달한 북한아가씨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실제 직장동료들은 남·여 가림없이 나보고 북한여성들이 이쁜가고 묻는다. 이들의 머리에는 부산과 대구에 다녀간 응원단의 표상이 곧 북한여성의 이미지인 것 같다. 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북한여성들도 따져보면 다 남한의 공주님보다 더한 공주들이다. 이럴 때마다 나는 작가들을 죄다 어느 한 북한 기차역을 무작위로 선발해 그 앞에 반나절만 앉혀놓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면 아마 2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씩씩하게 걸어다니는 북한의 여성들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저번에 부산에 응원단이 왔을 때 인터넷 게시판들에 과연‘남남북녀’라고 난리들이 나자 여성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북녀는 인정하겠는데 남남은 인정할 수 없다고 말이다. 50kg이상은 여자 몸무게가 아니라는 얼토당토한 남자들의 주장에 얼마나 오늘도 수많은 여성들이 다이어트에 구슬땀을 쏟고 있고 마취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성형외과를 찾아가는 줄 아느냐, 지들은 하나도 안 가꾸면서 남남북녀라는 남자들 어처구니 없다는 등...
'지방선거 구인난' 국민의힘, 추미애에 맞설 경기도지사 후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