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삽입된 그림에서 보는 다리는 우리 시골 동네 들어가는 입구에 있습니다. 농사에 쓸 물이 흐르는 수로입니다. 이곳에서 어릴 때 물장구를 치며 많이 놀았습니다. 어른들이 이 다리를 「공굴다리」라고 불렀는데 커서 그 뜻을 새겨보니 「콘크리트 다리」란 소리였습니다.
사진의 왼편이 상류 지역인데 주로 우리마을 아이들이 놀았고, 오른편 쪽에서는 원수같이 싸우던 아랫마을 아이들이 많이 놀았습니다. 그러나 이 다리 자체가 우리마을 내에 속하기 때문에 건넛마을 아이들은 멱감기 한번 하려면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철탑쪽으로 산을 타고 빙 돌아서 와야 했습니다.
건넛마을 아이들은 한 두 명이 왔다가는 우리 마을 아이들에게 큰 코 다치니깐, 떼로 와서 물놀이를 하곤 했습니다. 저 다리위로 물이 흐르지 않는 날은 정말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물은 5월 중순 모내기 철부터 거의 매일 흐릅니다. 안동 풍산 하회마을 앞으로 흐르는 낙동강 지류의 물을 그보다 훨씬 상류에서 저 수로 쪽으로 흘려 보내는 것입니다. 수로의 총 길이는 얼마인지 모르지만 하류역시 낙동강 어느 지역으로 합류할 것입니다.
이 수로 덕분에 이 일대의 논에는 가뭄이 들지 않습니다. 우리 면에만 해도 저런 수로가 거미줄 처럼 나 있습니다. 모두 낙동강의 풍부한 수량을 이용한 수로입니다.
사진에 보는 저 수로는 정확하게 언제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7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 시절 만든 것입니다.
동네 안에도 저런 수로가 하나 마을을 지나가는데 그 수로는 제가 어릴 때 어른들이 곡괭이로 파던 기억이 납니다. 예전에는 저렇게 계곡이나 허공을 지나는 수로만 콘크리트로 만들었는데, 그 후에는 모든 물길을 콘크리트로 단장했습니다.
콘크리트 수로는 마을가까이 있기 때문에 가까워서 많이 놀았습니다. 그외 학교 인근에도 낙동강의 큰 지류가 되는 내성천이 있어서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수영은 원없이 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의 수로 폭은 1.5m도 안될 것입니다. 콘크리트 수로가 흙 수로로 연결되는 부분은 Y자형으로 약간 넓은 공간이 있는데 그곳에서 수영을 많이 했습니다.
수로에 흐르는 수량은 의외로 풍부해서 사진에서 보는 콘크리트 다리 하류쪽은 한키 정도 되는 곳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가슴팍까지 물이 흐릅니다.
사진 왼편 상류는 물이 허리까지 밖에 오지 않기 때문에 놀기에 적당하지 않아서 우리는 주로 하류로 내려가서 놀았습니다. 남자들이 하류에서 놀면 여자들은 상류에서 놀곤 했습니다.
저 좁은 곳에서 다이빙도 하고, 별 헤엄을 다 쳤습니다. 물살은 의외로 빨라서 하류에서 상류까지 거슬러 오자면 힘이 다 빠질 지경입니다.
수로 폭이 좁으니 수영을 하다가 시멘트에 어깨나, 가슴, 머리, 배 등을 부딪히기가 예사 였기 때문에 몸에 상처를 많이 입었습니다. 특히 다이빙을 잘못해서 머리나 배를 콘크리트 바닥에 많이 박거나 긁혔습니다.
한참 수영을 하면서 놀다보면 별 것이 다 떠내려 옵니다. 빈 농약병에서부터 나무토막, 지푸라기 등이 떠내려 옵니다.
간혹 뱀도 머리를 쳐 들고 떠 내려오는 데, 독이 없는 물뱀이면 심심하던 차에 잘 걸렸다며 우르르 몰려가 기어코 잡아 죽여버립니다.
왜 그렇게 보이는 데로 죽였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습지만, 뱀이 갑자기 나타나 우리를 놀라게 해서 보복심리도 있었을 겁니다. 친구 중에 유식한 애가 한명 있었는데 이 친구는 어디서 들었는지 뱀때문에 인간이 죄를 받았다고 해서 우리는 그런갑다하고 뱀을 더욱 미워했습니다.
하여간 집 마당에 나타나는 복을 주는 뱀을 제외하고 걸리면 잡아 죽인다는 것이 우리 동네 아이들의 뱀에 대한 철학이었습니다.
물은 엄청 맑아서 바닥이 다 보일 정도이고, 수영하다 물을 수없이 마셨습니다.
사진에 보는 수로는 아이들 놀이터이고 물살이 빨라 바닥에 흙이 없지만, 다른 수로는 보통 물이 깊지 않고 아이들이 놀지 않아 바닥에 흙과 수초가 많습니다.
그런 수로에 맨발로 들어가면 물컹물컹한 것이 밟혀서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수영을 하지 않아 흙이 많이 쌓인 수로에는 뱀도 많고, 개구리도 많지만 특히 붕어와 골벵이는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많습니다.
사진의 수로 위에 서서 바닥을 바라보면 꽤나 높습니다. 수로 위에서 아래 논바닥까지 높이가 평균 5m는 족히 될 것입니다. 거기다가 수로위에 서면 키 높이가 더하니 위에서 바닥을 내려다 보면 아찔한 느낌이 듭니다.
그래도 우리는 겨우 한 뼘 남짓한 수로 위를 거의 날아 다녔습니다. 한쪽은 물이 흐르고 한쪽은 떨어지면 곧바로 사망내지 중상을 입는 논바닥 이지만, 저 수로에서 누구 하나 떨어져서 다친 아이가 없습니다.
수로 위를 달리다가 몸의 균형을 잃으면 물속으로 잽싸게 떨어지면 안전합니다.
좁은 수로 위에서 동네 친구들은 상류에서 하류까지 달리기 내기를 하곤 했습니다.
양쪽 수로 위에 한명씩 서서 하류쪽으로 달리는데 100m는 족히 될 것입니다. 떨어지면 죽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는 신나게 달렸습니다.
워낙 어려서부터 수로 위를 뛰어 다녔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맨땅을 다니 것 이나 마찬가지 였습니다.
우리 초등학교 가는 길은 두 군데로 나있습니다. 산길을 따라가는 것과 한길을 가는 것입니다. 산길로 가면 약 20분 정도 학교를 더 빨리 갈 수 있지만 혼자다니기는 으스스하고 좀 위험합니다. 특히 뱀이 많아서 혼자서는 이 길을 잘 다니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명이상 모이면 산길로 학교를 많이 다녔습니다.
학교에 가다보면 사진에서 보는 것 같이 생긴 수로를 다섯개 정도 만나는데 계곡과 계곡 사이를 연결한 것이라 그렇게 길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계곡 아래는 가시덤불이나 바위투성이어서 떨어지면 매우 위험합니다.
하루는 책보를 메고 신나게 수로 위를 달리는 데 앞서 가던 동네 친구 한명이 균형을 잃고 계곡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 친구가 떨어진 곳은 수로 중에서도 바닥이 가장 위험한 곳으로 건널 때 매우 조심해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수로 아래쪽 계곡에는 온통 삐죽삐죽한 바위 투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친구가 떨어진 곳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용케 죽지않고 엉금엉금 기어서 올라오는 것입니다.
친구는 바위 위에 떨어 졌는데 머리만 약간 깨지고 멀쩡했습니다. 친구가 메었던 책보가 터지면서 책과 도시락이 여기저기 널려져 있었습니다.
어릴 때는 영웅심이 있어서 그런지 친구 중에 한명이 어떤 높은 장소에서 『나 저기 아래로 뛰어 내릴 수 있다』며 용감하게 뛰어 내리면,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뛰어 내리곤 했습니다.
학교 가는 길에 꽤나 높은 다리가 하나 있었는데(수로가 아님) 그 아래는 모래가 조금 쌓여 있었습니다. 한번은 동네 친구 한명이 다리 아래로 미친척하고 훌쩍 뛰어 내리더니 우리보고도 뛰어 내리라는 것입니다.
너무 높아서 속으로는 내심 겁이 났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남들 다 뛰어 내리는 데 안 뛰어 내렸다가는 겁장이란 소리를 듣기 딱 알맞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를 꽉 깨물고 다리 아래쪽으로 뛰어 내렸지만, 떨어지는 충격으로 무릎이 제 턱을 치는 바람에 아주 큰일 날뻔 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도 수로에 농사철이 되면 어김없이 물이 흐르지만, 수영을 하는 아이들이 사라진지는 오래 되었습니다.
사진의 왼편이 상류 지역인데 주로 우리마을 아이들이 놀았고, 오른편 쪽에서는 원수같이 싸우던 아랫마을 아이들이 많이 놀았습니다. 그러나 이 다리 자체가 우리마을 내에 속하기 때문에 건넛마을 아이들은 멱감기 한번 하려면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철탑쪽으로 산을 타고 빙 돌아서 와야 했습니다.
건넛마을 아이들은 한 두 명이 왔다가는 우리 마을 아이들에게 큰 코 다치니깐, 떼로 와서 물놀이를 하곤 했습니다. 저 다리위로 물이 흐르지 않는 날은 정말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물은 5월 중순 모내기 철부터 거의 매일 흐릅니다. 안동 풍산 하회마을 앞으로 흐르는 낙동강 지류의 물을 그보다 훨씬 상류에서 저 수로 쪽으로 흘려 보내는 것입니다. 수로의 총 길이는 얼마인지 모르지만 하류역시 낙동강 어느 지역으로 합류할 것입니다.
이 수로 덕분에 이 일대의 논에는 가뭄이 들지 않습니다. 우리 면에만 해도 저런 수로가 거미줄 처럼 나 있습니다. 모두 낙동강의 풍부한 수량을 이용한 수로입니다.
사진에 보는 저 수로는 정확하게 언제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7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 시절 만든 것입니다.
동네 안에도 저런 수로가 하나 마을을 지나가는데 그 수로는 제가 어릴 때 어른들이 곡괭이로 파던 기억이 납니다. 예전에는 저렇게 계곡이나 허공을 지나는 수로만 콘크리트로 만들었는데, 그 후에는 모든 물길을 콘크리트로 단장했습니다.
콘크리트 수로는 마을가까이 있기 때문에 가까워서 많이 놀았습니다. 그외 학교 인근에도 낙동강의 큰 지류가 되는 내성천이 있어서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수영은 원없이 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의 수로 폭은 1.5m도 안될 것입니다. 콘크리트 수로가 흙 수로로 연결되는 부분은 Y자형으로 약간 넓은 공간이 있는데 그곳에서 수영을 많이 했습니다.
수로에 흐르는 수량은 의외로 풍부해서 사진에서 보는 콘크리트 다리 하류쪽은 한키 정도 되는 곳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가슴팍까지 물이 흐릅니다.
사진 왼편 상류는 물이 허리까지 밖에 오지 않기 때문에 놀기에 적당하지 않아서 우리는 주로 하류로 내려가서 놀았습니다. 남자들이 하류에서 놀면 여자들은 상류에서 놀곤 했습니다.
저 좁은 곳에서 다이빙도 하고, 별 헤엄을 다 쳤습니다. 물살은 의외로 빨라서 하류에서 상류까지 거슬러 오자면 힘이 다 빠질 지경입니다.
수로 폭이 좁으니 수영을 하다가 시멘트에 어깨나, 가슴, 머리, 배 등을 부딪히기가 예사 였기 때문에 몸에 상처를 많이 입었습니다. 특히 다이빙을 잘못해서 머리나 배를 콘크리트 바닥에 많이 박거나 긁혔습니다.
한참 수영을 하면서 놀다보면 별 것이 다 떠내려 옵니다. 빈 농약병에서부터 나무토막, 지푸라기 등이 떠내려 옵니다.
간혹 뱀도 머리를 쳐 들고 떠 내려오는 데, 독이 없는 물뱀이면 심심하던 차에 잘 걸렸다며 우르르 몰려가 기어코 잡아 죽여버립니다.
왜 그렇게 보이는 데로 죽였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습지만, 뱀이 갑자기 나타나 우리를 놀라게 해서 보복심리도 있었을 겁니다. 친구 중에 유식한 애가 한명 있었는데 이 친구는 어디서 들었는지 뱀때문에 인간이 죄를 받았다고 해서 우리는 그런갑다하고 뱀을 더욱 미워했습니다.
하여간 집 마당에 나타나는 복을 주는 뱀을 제외하고 걸리면 잡아 죽인다는 것이 우리 동네 아이들의 뱀에 대한 철학이었습니다.
물은 엄청 맑아서 바닥이 다 보일 정도이고, 수영하다 물을 수없이 마셨습니다.
사진에 보는 수로는 아이들 놀이터이고 물살이 빨라 바닥에 흙이 없지만, 다른 수로는 보통 물이 깊지 않고 아이들이 놀지 않아 바닥에 흙과 수초가 많습니다.
그런 수로에 맨발로 들어가면 물컹물컹한 것이 밟혀서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수영을 하지 않아 흙이 많이 쌓인 수로에는 뱀도 많고, 개구리도 많지만 특히 붕어와 골벵이는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많습니다.
사진의 수로 위에 서서 바닥을 바라보면 꽤나 높습니다. 수로 위에서 아래 논바닥까지 높이가 평균 5m는 족히 될 것입니다. 거기다가 수로위에 서면 키 높이가 더하니 위에서 바닥을 내려다 보면 아찔한 느낌이 듭니다.
그래도 우리는 겨우 한 뼘 남짓한 수로 위를 거의 날아 다녔습니다. 한쪽은 물이 흐르고 한쪽은 떨어지면 곧바로 사망내지 중상을 입는 논바닥 이지만, 저 수로에서 누구 하나 떨어져서 다친 아이가 없습니다.
수로 위를 달리다가 몸의 균형을 잃으면 물속으로 잽싸게 떨어지면 안전합니다.
좁은 수로 위에서 동네 친구들은 상류에서 하류까지 달리기 내기를 하곤 했습니다.
양쪽 수로 위에 한명씩 서서 하류쪽으로 달리는데 100m는 족히 될 것입니다. 떨어지면 죽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는 신나게 달렸습니다.
워낙 어려서부터 수로 위를 뛰어 다녔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맨땅을 다니 것 이나 마찬가지 였습니다.
우리 초등학교 가는 길은 두 군데로 나있습니다. 산길을 따라가는 것과 한길을 가는 것입니다. 산길로 가면 약 20분 정도 학교를 더 빨리 갈 수 있지만 혼자다니기는 으스스하고 좀 위험합니다. 특히 뱀이 많아서 혼자서는 이 길을 잘 다니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명이상 모이면 산길로 학교를 많이 다녔습니다.
학교에 가다보면 사진에서 보는 것 같이 생긴 수로를 다섯개 정도 만나는데 계곡과 계곡 사이를 연결한 것이라 그렇게 길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계곡 아래는 가시덤불이나 바위투성이어서 떨어지면 매우 위험합니다.
하루는 책보를 메고 신나게 수로 위를 달리는 데 앞서 가던 동네 친구 한명이 균형을 잃고 계곡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 친구가 떨어진 곳은 수로 중에서도 바닥이 가장 위험한 곳으로 건널 때 매우 조심해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수로 아래쪽 계곡에는 온통 삐죽삐죽한 바위 투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친구가 떨어진 곳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용케 죽지않고 엉금엉금 기어서 올라오는 것입니다.
친구는 바위 위에 떨어 졌는데 머리만 약간 깨지고 멀쩡했습니다. 친구가 메었던 책보가 터지면서 책과 도시락이 여기저기 널려져 있었습니다.
어릴 때는 영웅심이 있어서 그런지 친구 중에 한명이 어떤 높은 장소에서 『나 저기 아래로 뛰어 내릴 수 있다』며 용감하게 뛰어 내리면,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뛰어 내리곤 했습니다.
학교 가는 길에 꽤나 높은 다리가 하나 있었는데(수로가 아님) 그 아래는 모래가 조금 쌓여 있었습니다. 한번은 동네 친구 한명이 다리 아래로 미친척하고 훌쩍 뛰어 내리더니 우리보고도 뛰어 내리라는 것입니다.
너무 높아서 속으로는 내심 겁이 났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남들 다 뛰어 내리는 데 안 뛰어 내렸다가는 겁장이란 소리를 듣기 딱 알맞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를 꽉 깨물고 다리 아래쪽으로 뛰어 내렸지만, 떨어지는 충격으로 무릎이 제 턱을 치는 바람에 아주 큰일 날뻔 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도 수로에 농사철이 되면 어김없이 물이 흐르지만, 수영을 하는 아이들이 사라진지는 오래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