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에게 ‘궁궐 복원비용’ 부담케 한다면

  • 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hanal@chosun.com
  • 업데이트 2004-01-20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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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月刊朝鮮 선배 기자들과 가까운 경운궁(덕수궁)이나, 경복궁 등으로 산책을 자주 나갑니다. 궁궐을 돌아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일제가 우리 궁궐을 너무나 심하게 파괴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경운궁(덕수궁)의 그 많던 전각은 일제에 의해 다 헐리고 지금 10여 채가 남아 있습니다. 경복궁은 지금 십 수년째 복원 사업을 하고 있지만 이제 겨우, 흥례문과 중궁전 일대를 조금 복원했을 뿐입니다. 근대에 들어와 식민지 나라의 궁궐을 이처럼 유린한 것은 전세계 식민 지배 역사상 일본을 제외하고는 유례가 없을 것입니다. 일제는 고종과 순종 황제가 두 눈을 뜨고 살아 있을 때부터 궁궐을 파괴하기 시작했으니 우리 황실이 일제에게 당했던 수모와 핍박은 두 말해야 무엇하겠습니까. 일제는 심지어 그 넓은 경희궁은 단 몇 개의 건물만 남기고 흔적도 없이 해체를 해버렸습니다. 일본의 궁궐 해체 기술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더욱 기가 찬 것은 일본은 경복궁, 경희궁, 창경궁, 경운궁 등을 헐어버리고 그 목재를 가져다가 본국의 술집 요정을 짓거나, 귀족들의 정원을 꾸미기도 했습니다. 그 외 각종 궁궐 전각과 문은 서울 시내 곳곳의 호텔 정문으로 쓰거나 산사의 요사채 재목 거리로 팔아 먹었습니다. 일제가 우리 궁궐을 파괴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동물원을 만든 대목에 이르면 아연하여 할 말을 잃게 됩니다. 일국의 궁궐을 동물원으로 만들겠다는 일본의 그 야만적이고, 유아적이고 유치한 발상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런 일본인의 의식구조도 일본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현재 우리 궁궐의 각종 안내문 중 일어로 된 부분에는 일본이 궁궐을 훼손했거나 황실을 탄압했다는 내용을 두리뭉실 넘어가거나, 아예 빼 버리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경운궁(덕수궁) 대한문 바로 안에 있는 궁궐 안내문 중 일본어 설명문에는 ‘일본이 고종황제를 핍박하여 강제 퇴위시켰다’는 내용이 싹 빠져있습니다. 물론 한글로 된 원문과 중국어 안내문에는 이 구절이 있습니다. 국립중앙 박물관 한 가운데에는 경복궁의 훼손전과 훼손 후의 모습을 모형으로 전시 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변에 일어로 된 안내문이 없어서 일본 관광객이 본다면 누가 궁궐을 저렇게 훼손했는가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또 얼마 전에는 흥례문을 복원시켜놓았으나 그 자리에 조선 총독부 건물이 있었던 자리라는 아무런 안내문도 없습니다. 일제의 야만성을 가장 극렬하게 보여주는 것이 일본 낭인들이 궁성을 침입해 명성황후를 시해(시해라는 말은 ‘자기 부모나 임금을 죽인다’는 뜻이므로 일본 낭인이 명성황후를 죽인 것을 두고 ‘시해’라는 단어를 쓸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한 만행입니다. 인조 임금의 ‘삼전도의 항복’을 우리 역사의 가장 치욕적인 장면이라는 사람이 많지만, 이보다 일백 배정도 치욕 적인 일이 바로 ‘명성황후의 시해’ 사건일 것입니다. 이런 치욕을 당한 백성들이 국모의 원수를 갚고자 들불처럼 일어난 것이 바로 ‘을미 의병’입니다. 일본들 중에는 일본 낭인이 이 땅의 왕비를 죽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한ㆍ일 과거사를 진지하게 연구하게 되었다는 사람이 제법 많습니다. 경복궁은 바로 그런 곳입니다. 일본인들이 자기들 후손에게 이런 입에 담지 못할 부끄러운 역사를 가르칠 리가 만무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라도 그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경복궁의 안내문에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대한 한 줄의 설명도 없는 것이 우리의 역사인식에 대한 현실입니다. 저는 궁궐을 방문할 때마다 일본 관광객에게 ‘원인자 부담’으로 궁궐 입장료에 ‘궁궐 복원비’ 명목으로 단 몇 백원이라도 더 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면 궁궐을 방문하는 일본인들 하나하나가 궁궐과 이 땅에서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한번 되돌아보고, 역사가 과거에 묻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과거사나 독도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입으로만 와글와글 떠들기 보다 궁궐에 “우리는 당신들을 용서한다. 그러나 절대 잊지 않는다”는 돌 비석 하나를 세우는 조용한 움직임이 아쉽습니다. 새해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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