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 이상흔 월간조선 기자 hanal@chosun.com
  • 업데이트 2004-01-3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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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을 중심으로 하는 경북 북부 지방에는 안개가 유명합니다. 안개를 제대로 보고 싶은 분은 가을 추수 철에 안동 인근에 가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저는 강원도 양구에서 군생활을 하면서도 안개를 많이 접했는데, 안동의 안개와 그나마 呼兄呼弟(호형호제) 할 수 있는 것이 양구의 안개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안동에는 심지어 한여름에도 새벽에 안개가 내릴 정도입니다. 안동을 위시한 경북 북부지방의 안개는 인근의 안동댐과 낙동강 및 낙동강 지류중에 하나인 내성천 일대, 벼베기를 앞둔 논 등에서 뿜어 내는 풍부한 수증기로 인해 발생합니다. 이 지방에서는 가을 무렵, 밤 9시가 되면 안개가 내리기 시작하여 새벽녘이 되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으로 빠져 듭니다. 이 안개는 오전 10시가 넘어야 걷히기 때문에 벼베기에 지장이 많습니다. 안개로 인해 나락이 눅눅해 지는데 이렇게 젖은 상태에서 컴바인(벼베고 탈곡까지 하는 기계)으로 벼를 베면 기계가 망가지기 쉽기 때문에 안개가 걷힐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아침 일찍, 안개가 내린 길을 따라 학교에 가면 참 재미있습니다. 안개와 이슬을 머금은 거미줄이 논 전체를 새 햐얗게 뒤 덮은 모습은 정말 장관입니다. 저기 앞에 누군가 학교에 걸어가는 데 안개 때문에 잘 알아 볼 수가 없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면 머리와 눈썹에 안개가 묻어 하얗게 변합니다. 낮에 요리조리 날아다니며 약을 올리던 고추잠자리는 안개에 젖어 옴짝달싹 못합니다. 사실 잠자리 중에 고추잠자리가 제일 잡기 쉽습니다. 나뭇가지에 앉아 있으면 손가락으로 잠자리 눈앞을 뱅뱅 돌리면 이놈도 머리를 같이 뱅뱅 돌리다가 정신이 빠집니다. 그때 잡으면 됩니다. 반면 왕잠자리는 그렇게 쉽게 속지 않습니다. 왕잠자리는 그냥 뒤쪽에서 접근해서 살금살금 잡는 것이 최고인데 워낙 동작이 빠르고 눈치가 기민해서 여간해서는 잡히지 않습니다. 저녁에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추수를 앞둔 논바닥은 석양빛을 받아 빛나고, 그 위로 잠자리 떼가 가득 뒤덥습니다. 작은 날파리를 잡아먹기 위해 모여든 것입니다. 아주 어릴 때는 잠자리를 잡을 때는 노래를 했습니다. 『앉으면 살고, 서면 죽는다』 이렇게 노래를 부르다 보면 그 많은 잠자리 중에 몇 놈이 나뭇가지에 앉게 되는데 우리는 멍청한 잠자리가 노래에 속아서 앉았다고 믿었습니다. 「잠자리 시집보내기」란 것도 있는데 잠자리 꼬리를 3분의 1쯤 잘라내고 「오요강아지(강아지풀)」를 잠자리 꼬리에 꽂아 날려보내는 것입니다. 그 밖에 실로 잠자리 발이나 꽁지를 묶어 여러 마리를 하늘에 동시에 날리면서 놀기도 했습니다. 안개 중에 아주 인상 깊었던 안개는 양구 파로호의 물안개였습니다. 군에 있을 때 유격장 계곡 사이로 보이던 파로에 호수면에서 피어나던 물안개의 환상적인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이런 환상적인 안개도 있는 반면 사람 혼을 빼는 귀신안개도 있습니다. 하루는 훈련 중이던 우리 중대에 고지탈환 명령이 떨어 져서 일개 중대병력이 쏟아지는 폭우와 안개를 헤치며 고지를 올라갔습니다. 저는 좌우에 있는 동료와 거리를 유지한 채 바로 앞에 가는 또 다른 동료의 발 뒷꿈치를 보면서 열심히 산을 올랐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저와 다른 병사 한명이 엉뚱한 계곡으로 접어 들었고 산중에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틀림없이 앞 사람의 뒷 꽁무니를 쫒아 산을 올랐는데도 내리는 폭우 속에서 귀신처럼 흩어졌다 모였다 하는 안개가 사람의 혼을 빼서 바로 코 앞에 있던 전우조차 놓치게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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