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권의 책

우리는 왜 여전히 전근대적인가 (최범 지음 | 기파랑 펴냄)

한국 사회 좌우 대립의 본질은 ‘전근대와 근대의 대립’

  •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글자 크기 조정
  • 스크랩
  • 본문 음성 듣기
  • 글자 크기 조정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
1876년 2월 27일 조선과 일본 간에 ‘조일 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 이른바 ‘강화도조약’이 체결됐다. ‘운요호사건’이라는 일본의 포함(砲艦) 외교에 밀린 타율적(他律的)인 개국(開國)이었지만, 한국사에서는 이를 ‘근대(近代)’의 기점(起點)으로 본다. 이후 개화파의 근대화 노력, 일본의 식민 지배, 건국, 6·25전쟁, 그리고 개발연대(開發年代)의 산업화, 1980년대 후반의 민주화를 거치면서 대한민국은 언필칭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
 
  하지만 근래 들어 곳곳에서 대한민국이 근대에서 전근대(前近代)로 퇴행(退行)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조선시대 당쟁(黨爭)을 방불케 하는 저열한 정치, 지역 정치권과 토호(土豪)들이 유착해 지대(地代)를 추구하는 지방자치, 새로운 형태의 정경유착, 걸핏하면 ‘우리민족끼리’와 ‘죽창가’가 튀어나오는 종족주의적 세계 인식…. “‘산업화-민주화-선진화’가 아니라 ‘산업화-민주화-조선화(朝鮮化)’”라는 탄식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150년간의 근대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근대성과 전근대성의 이종교배’
 
  지난 40여 년간 한국 사회의 근대화 문제를 천착해 온 저자는 그 원인을 “한국의 근대화는 외부로부터의 근대화이자, 위로부터의 근대화”였다는 데서 찾는다. “외부로부터, 위로부터의 근대화는 아무래도 제도와 물질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반면, 내부로부터, 아래로부터의 문화의 정신의 근대화는 그에 따르지 못하고 지체(遲滯)”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한국의 근대화는 정치경제적 근대성과 사회문화적 전근대성의 이종교배(異種交配)”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러한 ‘전근대(수구)와 근대(개화)의 문명모순’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모순이며, 한국 사회 좌우 대립의 본질도 ‘전근대와 근대의 대립’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민중운동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민중운동은 반(反)근대화운동에 그 정신적 탯줄을 잇고 있다”고 말한다. 반면에 저자는 대한민국의 건국을 ‘대한민국 혁명’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그것을 가능케 했던 대한민국 우파에 대해서는 “자신들이 혁명 세력이라는 자각과 의식이 없다” “의식의 측면에서 우파도 좌파와 마찬가지로 종족주의자, 집단주의자, 본질주의자”라고 꼬집는다. 저자는 “한국의 근대화는 민족이라는 집단적 주체에 의한 근대화였으며, 그런 점에서 근대적 주체, 즉 개인이 없는 근대화였다”고 지적한다.
 
 
  “자유주의 없는 민주주의는 전체주의로 흐르게 마련”
 
  저자는 그런 종족주의, 집단주의, 본질주의가 자칫 파시즘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한다.
 
  “외세에 대한 저항으로 등장한 한국의 민족주의는 마구 몸집을 불린 채 이제 인종주의 수준으로 발전하여 대외적인 적개심(반일, 반미 등)과 내부적인 이탈자 물어뜯기(친일파와 토착왜구 사냥 등)로 그 야수적 본성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민중주의자들은 이러한 야수를 이용해 반대파를 위협하고 야수에게 먹이를 던져 주면서 한국 사회를 파시즘 체제로 몰고 가고 있다. (중략) 한국의 경제가 어려워지면, 이 야수의 고삐를 쥔 채 누군가를 물어뜯으라고 부추기는 선동가가 분명 등장할 것이다.”
 
  지난 시절 한국인들이 이룬 커다란 성취이지만 좌파들이 자신들의 전유물(專有物)인 양 자랑하고 있는 ‘민주화’에 대해서도 저자는 “자유주의 없는 집단주의로서의 민주주의”라면서 “자유주의 없는 민주주의는 전체주의로 흐르게 마련”이라고 경고한다.
 

  그러한 위험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이제라도 ‘진정한 근대의 주체’, 즉 ‘개인’을 발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에 수구 좌파(반근대 세력)와 보수 우파(물질적 근대화 세력)는 있지만 진정한 진보 우파 즉 정신적 근대화 세력은 없다. 개항 이후 150년에 걸친 1차 근대화(정치경제적 근대화)는 끝났고 이제 2차 근대화(사회문화적 근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2차 근대화는 개인이라는 근대적 주체를 발견해 나가는 기나긴 혁명의 여정이 될 것이다.”
 
  저자는 30여 년간 민족미술협의회 편집실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기획실장, (사)미술인회의 이사장 등으로 활동해 온 좌파 성향의 문화평론가였으나, 문재인 정권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의 모든 갈등과 퇴행의 원인이 되고 있는 ‘근대성’의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근대다》(2023년) 《이상한 나라, 대한민국》(2024년) 등의 저작이 있다.⊙
  • 스크랩
URL이 성공적으로 복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