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전시

심영철 개인전 〈춤추는 정원〉

‘꽃’ ‘흙’ ‘물’ ‘하늘’… 층마다 다른 콘셉트 연출

  • 글 : 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gasou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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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타버스 비롯한 첨단 기술을 어떻게 담아낼지 고민하며 작업”
⊙ 설치, 전통 조소, 뉴미디어, 홀로그램, 환경 미술 등 여러 미디엄 변주
1층 ‘꽃 비 정원’에 핀 꽃망울. 꽃망울 위로 자개로 된 벚꽃과 디지털로 구현한 벚꽃이 흩날리고 있다.
벚꽃은 수많은 예술가의 영감(靈感)이 되어 왔다. 이중섭은 〈벚꽃 위의 새〉라는 작품에서 벚꽃이 떨어지는 찰나를 섬세하게 포착했다. 헤이안 시대의 시인 아리와라노 나리히라는 ‘벚꽃잎이여 하늘도 흐려지게 흩날려다오 늙음이 찾아오는 길 잃어버리게’라는 하이쿠(俳句)를 지으며 벚꽃으로 흐드러진 풍경의 찬란함을 노래했다. 심영철(沈英喆·66) 작가 또한 개인전 〈춤추는 정원〉을 관통하는 조형 언어로 ‘벚꽃’을 내세웠다. 심 작가는 “나에게 벚꽃은 ‘과거 어떤 날’의 감정을 일깨워주는 존재”라면서 “1995년도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벚꽃이 흐드러진 계절이었는데 그 풍경이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시간이 지나니 이젠 그 아픔을 한 꺼풀 벗겨낼 수 있게 됐다. 지금은 그 슬픔마저도 감사함이 됐다”고 말한다.
 
  심영철 작가는 설치, 전통 조소, 뉴미디어, 홀로그램, 환경 미술 등 여러 미디엄(medium·작품을 표현하는 수단이나 그 수단에 사용되는 도구)을 변주하고 융합하며 다채로운 세계관을 만들어왔다. 그의 작품은 종교, 그중 특히 기독교 신앙에 젖줄을 대고 있다. 심 작가는 “기독교 신앙이 제 인생과 예술의 기준점이 되었다”고 말한다. 첨단 테크놀로지를 앞세운 작품을 선보이면서도 늘 ‘메시아’를 주제로 삼는 이유다.
 
 
  ‘건축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큰 스케일의 작업’
 
52번째 개인전 〈춤추는 정원〉을 개최한 심영철 작가.
  미술계는 심 작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김영호 중앙대 예술대학 교수는 심 작가에 대해 “다양한 장르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들며 활동해온 경력의 소유자”라며 “그의 예술은 장르의 경계뿐만 아니라 내면에 흐르는 의식의 단면들이 서로 충돌하며 만나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고 평했다. 최은주 대구미술관장은 “심영철은 예술가로서 인간과 종교, 우주, 생명, 환경과 같은 큰 주제를 다뤄온 작가”라면서 “미디어 매체를 적극 활용한 실험적 시도와 건축적이라고 느껴질 만큼의 큰 스케일의 작업으로 미술계의 인정을 받으며 성장해온 작가”라고 했다.
 
  3월 31일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심영철 작가의 52번째 개인전 〈춤추는 정원〉이 개최됐다. 4월 29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40년 작가 인생을 총망라한다. 이에 발맞춰 선화랑도 야심 차게 전시를 준비했다. 선화랑 측은 “평소 수장고로 쓰던 4층까지 전시장으로 개조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1층부터 4층까지 층마다 각기 다른 콘셉트로 연출됐다. 각각 ‘꽃’ ‘흙’ ‘물’ ‘하늘’을 의미한다. 층마다 놓여 있는 작품들은 개별 제목을 가지기보단 ‘꽃 비 정원’ ‘물의 정원’ 등으로 통칭된다. 심 작가의 작품은 전시 공간 속에서 갖는 맥락이 개별 작품의 의미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심영철 작가가 만든 ‘춤추는 정원’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나무뿌리가 1층 전시장 입구를 장식하고 있다. 이 나무를 통과해 ‘꽃 비 정원’에 들어선다. 그러자 관람객의 발걸음을 포착한 모션 센서가 벽면과 바닥에 디지털 벚꽃 비를 흩뿌린다. 천장에 매달린 수많은 자개 벚꽃은 디지털 벚꽃 비와 어우러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시장 왼편에는 증강현실(AR) 작품이 비치돼 있다. 작품 화면 앞에 서자 기자의 머리 위에 벚꽃 화환이, 어깨 위에는 벚꽃 망토가 얹혔다. 심영철 작가는 작품에 대해 “벚꽃 피는 계절에 전시를 개최한 만큼 관람객들에게 밝은 에너지를 주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전시장 중앙에는 스테인리스로 만든 커다란 꽃망울 작품이 놓여 있다. 이 꽃망울 작품은 관람객들이 그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게 설계됐다. 작품 내부는 거울로 도배되어 자기 자신의 옆모습과 뒷모습을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다. 꽃의 씨방 격인 작품의 중앙에는 붉은빛을 내뿜는 사과가 매달려 있다. 이 사과의 의미를 묻자 심 작가는 “금단의 열매, 다시 말해 구약성서의 선악과를 뜻한다”고 귀띔한다.
 
 
  抽象과 만난 산수화
 
2층 ‘흙의 정원’은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공간이다. 〈그림자 산수〉(왼쪽)와 〈빛의 도자기〉(오른쪽)
  2층 ‘흙의 정원’은 환경 미술과 설치 미술, 전통 예술과 추상 미술이 교차하는 곳이다. 이번 전시 공간 중 유일하게 작품마다 개별 제목이 붙어 있는 곳이다. 전시장 중앙에는 고려청자를 모티브로 한 스테인리스 작품 〈빛의 도자기(Ceramics of Light)〉가 놓여 있다. 작품 표면에는 벚꽃 문양 장식이 상감기법(象嵌技法)으로 수놓아져 있고, 이 벚꽃 문양들은 신비로운 빛을 발산한다. 작품은 흙더미와 바위를 딛고 서 있다. 작품의 서사는 ‘생명이 빚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자기는 흙으로 빚어지고, 흙으로 빚어진 자기에서 벚꽃이 빛을 내며 살아 숨 쉬기 때문이다. 이는 심영철 작가의 기독교 신앙적 주제와도 일맥상통한다. 구약성서 창세기의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生靈)이 된지라’라는 구절을 함의하는 듯하다. 심 작가는 “이 흙 안에 로즈메리 씨앗을 심어놨다”면서 “전시 기간 동안 싹이 난다면 작품과 전시의 의미를 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빛의 도자기〉 너머 벽면에는 또 다른 설치 작품 〈그림자 산수(Shadow Sansu)〉가 걸려 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먹과 물로 그려진 산수화와는 사뭇 다르다. 심영철 작가는 다양한 크기의 스테인리스 스틸 볼로 산과 강을 표현했다. 그 모습이 마치 서양의 추상화를 보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조명 때문에 생긴 스틸 볼의 그림자가 꼭 붓의 질감과 먹의 농도를 표현하고 있는 것만 같다.
 
 
  물은 생명
 
  기독교에서 물이 무엇을 뜻하는지 안다면 3층 ‘물의 정원’을 관람하는 즐거움은 배가 된다. 성경에서 물은 ‘생명’과 ‘심판’, 양가적 속성을 지닌 것으로 묘사된다. 예컨대, 예수는 물과 생명을 동일시했다. 그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설파했다. 반면, ‘노아의 대홍수’나 ‘홍해의 기적’에서 묘사된 물은 심판을 상징한다. 방주(方舟)만을 남긴 채 온 세상을 쓸어버린 것도, 또 이스라엘 백성들을 뒤쫓는 애굽(이집트) 군인들을 섬멸한 것도 모두 물이었다.
 
  심영철 작가는 자신의 ‘물의 정원’이 ‘생명’의 속성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심 작가는 “‘물의 정원’은 모든 것을 살리는 신성한 생명수”라며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전시장은 물로 가득 찬 검은색 수조와 그 위에 심어진 커다란 벚꽃 세 송이로 구성돼 있다. 이 벚꽃들 역시 은은한 빛을 뿜어내고 있다. 한편, ‘물의 정원’을 거닐다 보면 ‘똑~’ 하고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일정한 주기로 떨어지는 물방울이 마치 명상의 장소로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사랑의 의미 되짚어 보는 공간
 
4층 ‘하늘 정원’의 두 연인은 ‘사랑하면 날아갈 듯 기쁘다’라는 말을 몸소 보여주는 듯하다.
  심영철 작가에게 사랑은 영감의 원천(源泉)이다. 4층 ‘하늘 정원’은 마침내 세상의 아픔이 승화하고 치유되는 공간이다. 와이어에 매달린 작은 원형 스테인리스 스틸 판이 모여 두 연인의 형상을 만든다. 두 연인은 서로를 포옹한 채 입을 맞추고 있다. 연인들 주위로 스틸 판들이 꽃가루처럼 흩날린다. 이를 통해 심 작가는 두 연인이 서서히 흐려져가는 듯한 효과를 연출했다. 심 작가는 “서로를 당기는 두 연인의 에너지가 마치 자석에 끌리는 것처럼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로 시작되는 신약성서 고린도전서의 구절을 나지막이 읊었다. ‘하늘 정원’의 두 연인은 누구일까.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일까. 사랑하는 사람과의 재회일까. 아니면 고대하던 메시아와의 만남일까. 심 작가는 “관람객 모두가 이 공간에 들어와 자신의 사랑의 의미를 되짚어 보면 좋겠다”고 말한다.
 
  관람을 마치고 나니 심영철 작가가 전시 공간을 ‘꽃’ ‘흙’ ‘물’ ‘하늘’ 등 4개로 구분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지금이야 지구상에 원소가 100개 이상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불과 18세기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세상이 4개의 원소로 구성된다고 믿었다.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엠페도클레스는 우주가 ‘물’ ‘공기’ ‘불’ ‘흙’의 혼합으로 이루어졌다는 ‘4원소론’을 제시했다. 그는 이 원소들이 서로 결합하기도 하고 밀어내기도 하며 새로운 물질을 탄생시킨다고 주장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이론을 받아들여 발전시켰다. 그는 세상의 모든 물질은 물, 공기, 불, 흙의 네 가지 원소와 ‘건조함’ ‘습함’ ‘따뜻함’ ‘차가움’의 성질이 조합돼 형성된다고 봤다. 이후 4원소론은 17세기 근대 과학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서구 문명을 이끄는 밑거름이 됐다.
 
 
  “첨단 기술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
 
  심영철 작가가 만든 ‘춤추는 정원’도 이 4원소론의 개념을 차용했다. 예컨대, 씨앗은 ‘흙’과 ‘물’ 그리고 ‘하늘’(빛과 공기)과의 상호작용을 거쳐야만 ‘꽃’을 틔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작가는 자연물을 심미(審美)의 대상에서 생명 환원(還元)의 개념으로 격상시켰다.
 

  심 작가가 지난 40여 년에 걸쳐 꾸준히 매체 실험을 지속하고 있는 이유도 알고 싶어졌다. 심 작가는 “나이가 들면서 세상을 보는 눈과 생각도 변해왔다”며 “기술적으로 새로운 물질들이 계속 개발되고 있고, 그로 인해 우리의 삶과 우리가 소통하는 방식도 변한다”고 운을 뗐다. 이어 “작가의 사유(思惟)와 감성도 사회적 맥락 속에서 변화한다”며 “NFT, 메타버스를 비롯한 첨단 기술을 어떻게 작품에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하며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 AI’ 기술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심 작가는 현재 수원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작가로서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물었다. 심 작가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삶은 인내하고 기다리며 배려하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며 “젊은 친구들의 생각과 문제의식을 들여다보며 나 스스로도 발전할 수 있었던 시간”이라고 했다. 심 작가는 마지막으로 “다시 태어나도 교육자와 예술가의 삶을 병행하는 이 길을 걸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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