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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인터뷰

파산 직전 광복회 떠맡은 白凡 장손 김진

“광복회는 빚내서 빚 갚는 부도 상황… 심폐소생술 不可”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글 :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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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親日·反日·抗日 넘어 克日로 가자. 일본 피해의식은 이제 접을 때도 됐다”
⊙ 前任 김원웅은 사망, 장호권은 직무정지… 지난 10월 15일 광복회장 직무대행 맡아
⊙ “큰 거목[金九] 아래 성장을 못 해. 나는 나약하고 존재감 없는 사람…”
⊙ “독립운동 정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 “우리도 모르는 채권들이 막 날아와”

金振
1949년생. 타이베이 아메리칸 스쿨, 미국 남가주대(USC) 경영학과, 同 행정대학원 졸업. 공군 만기제대(1973년) / 국제그룹 부회장실 실장, ㈜글로볼시스텍 대표, 대한주택공사 사장, 대한근대5종연맹 회장, 《광복회 50년사》 편찬위원회 편집위원 역임. 現 광복회 제20대 대의원 겸 회장 직무대행
사진=조준우
  100년 전인 1922년 백범(白凡) 김구(金九·1876~1949년) 선생의 둘째 아들 김신(金信·1922~2016년)이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6대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김신은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는데 첫째가 김진(金振·73), 둘째가 김양(金揚·69), 셋째가 김휘(金揮·작고), 넷째가 김미(金美·66)다. 김구의 장남 김인(金仁·1917~1945년)은 딸 하나만 두어 김진이 백범 가계의 장손이다.
 
  그런 그가 광복회장 직무대행을 갑자기 맡게 되었다. 결코 원하던 일이 아니었다.
 
  지난 2월 김원웅 광복회장이 사퇴하고, 5월 31일 새 광복회장으로 선출된 장준하(張俊河·1915~1975년) 선생의 아들 장호권이 얼마 전 직무가 정지되는 불상사가 일어난 것이다. 전임(前任)과 전전임 탓에 광복회에 망신살이 뻗쳤다.
 
  서울남부지법 민사51부(황정수 수석부장판사)는 지난 10월 14일 광복회장 선거에서 차순위 득표자였던 김진에게 직무대행을 맡도록 판결했다. 김진은 1차 투표에서 장호권에게 1표 차로, 2차 결선에선 4표 차로 뒤져 낙선했었다.
 
  김진 회장대행은 요즘 이런 고민을 한다. 아버지(김신)라면 진창에 빠진 광복회를 어떻게 구할까. 할아버지(김구)라면 광복회를 어떻게 이끌까. 답답하기만 하다.
 
  광복회는 장 회장 체제 후에도 부정선거 의혹, 신임 회장의 회원 총기 위협 등 각종 논란에 휩싸였고 결국 소송으로 이어졌다. 일부 광복회원은 “차라리 얼룩진 광복회를 없애자”고 말한다. 오죽하면 이런 말이 나올까.
 
 
  그의 얼굴 속에 金九 선생 보여
 
서울 현충원 충열대 앞에서 20대 박유철 광복회장 집행부와 함께. 김진 대행은 앞줄 오른쪽 두 번째다.
  11월 7일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에서 김 대행을 만났다. 가만히 보니 할아버지 김구 선생과 닮았다. 안경도 훤한 이마도 닮은꼴이다. 귀는 할아버지보다 손자가 더 컸다.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때로 칼날처럼 날카롭고 무겁게 반응했다.
 
  인터뷰 전에 10분 동안 사진 촬영을 했다. 태극기 앞에서 포즈를 취한 그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엷은 미소라도 지을 법한데 웃지 않았다. 사실 오늘의 광복회는 설립 이후 최악의 위기 상태다. 윤석열 정부는 광복회를 위험 수위에 놓여 있는 단체로 인식하고 있다. ‘광복호(號)’ 열차는 궤도를 이탈해 회복 불가능 상태에 이르렀다.
 
  ― 사진 찍으니 어떻습니까.
 
  “(사진기자가) 기획·연출을 하니까 하라는 대로….”
 
  인터뷰를 시작하려 하자 김 대행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 기자의 말문을 막았다.
 
 
  “일부 지도층의 비위 유감”
 
  “독립운동가 후손의 한 사람으로, 동시에 광복회원의 한 사람으로 가슴에 있는 말을 좀 드리고 나서 시작하는 게 좋겠습니다. 아…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될까, 참….
 
  지금 우리 광복회가 처해 있는 상황을 가지고 많은 국민께서도 참… 우려 섞인 눈으로 보실 수 있겠다 하는 말씀을 드리면서 광복회는 독립운동가 후손들로 구성된 아주 탄탄한 조직입니다.
 
  제가 느끼는 광복회는, 전에도 그래 왔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한 가지가 무엇이냐! 어떤 태풍과 폭풍우가 몰아치더라도 광복회는 거대한 바위 덩어리 같은 조직이기 때문에,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그는 “거대한 바위 덩어리”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하며 이렇게 말을 이었다.
 
  “일부 지도층의 비위 사실과 일탈 행위는 유감스럽게 생각하지마는, 그것이 광복회 전체가 그렇다는 오해는 없어야 되겠다!”고 했다.
 
  “우리는 스스로 자체적으로 운영을 해왔고, 문제가 있으면 우리 스스로 문제를 밝히고 치유하고 해결하는 조직이었습니다. 두 번 다 그랬습니다. 그것은 대의원들이 나와서….”
 

  ― ‘두 번 다 그랬다’는 건 전임과 전전임을 두고 하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내부서 문제가 난 것은 내부서 해결했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겁니다. 스스로 치유하고 스스로 해결하는 그런 조직이 바로 광복회 조직이다!”
 
  김 회장의 이 말이 십분 이해가 됐다. 아무리 탈선한 ‘광복호’라 해도 선장이 자기 조직의 허물을 손가락질할 순 없는 법이다. 그는 대행을 맡으며 광복회원들에게 이런 ‘변(辯)’을 남겼었다.
 
  〈당당하고 강인했던 우리의 자존심이 지금 상처를 입었습니다. 자존심마저 떨어진다면, 우리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와 있습니다. (…)
 
  우리는 앞에 넘어야 할 산과 건너야 할 강이 놓여 있고 지금 우리의 바로 앞에는 진흙탕이 고여 있습니다. (…)
 
  우리가 어디다 발을 디뎌야 할지 고민이 되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제가 여러분의 징검다리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저를 밟고 이 진흙탕을 건너가 주십시오.〉
 
  김 대행은 이미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진흙탕’ 상황을.
 
  그러나 기자에게는 ‘진흙탕’ 대신 이렇게 강조했다.
 
  “어떤 폭풍우가 몰려와도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우리의 갈 길을 뚜벅뚜벅 가고 있다는 사실을 저는 분명하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언제부터 대행을 맡게 됐나요.
 
  “법원 판결이 난 게 10월 14일 오후였습니다. 판결문에 ‘15일 0시부터 직무대행으로 선임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 10월 15일 출근했습니까.
 
  “15일이 토요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고심을 많이 했습니다.”
 
  ― 뜻밖의 판결이었지요?
 
  “예상 못 했던 판결이고….”
 
 
  “판결문에 제 이름 있어 당황”
 
  ― 어떤 예상을 했나요.
 
  “솔직히 말씀드린다면 판결문에 제 이름이 있어서 굉장히 당황을 했습니다. 소송 당사자도 아니고, 내가 고소한 것도 아니고, 다른 분들이…. 저는 정말 당황했고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 고민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월요일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인데, 법원에서 내린 판결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존중을 안 하면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심, 고심하다가 화요일(18일) 오후에 비로소 출근했습니다.”
 
  ― 주말 동안 가족회의도 했을 테고 동생(김양 전 보훈처장)과도 대화했을 텐데 뭐라던가요.
 
  “잘됐다(잘 맡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고생하는 자리, 지금 이 상황에 가서 무슨 일을 할 건지….”
 
  ― 잘해야 본전?
 
  “잘해도 밑지는 것….”
 
  ― 격려의 말씀은 없었나요.
 
  “가족이나 동생, 이런 사람들이 다들 반대를 했어요. 광복회가 태평성대(太平聖代)라면 얼마나 자랑스럽고 영광된 자리겠습니까? 근데 그렇지 않은 상황이니….”
 
 
  “감히 제가 올려다볼 수 없는 조부님…”
 
《광복회 50년사》 편찬 편집위원 시절(2018년 8월)의 김진 광복회장 직무대행의 모습이다. 앞줄 오른쪽 두 번째다.
  점점 그의 입에서 가슴 속 엉킨 말들이 흘러나왔다.
 
  “책임은 무한하다. 근데 책임… 다음에 권한은 어떻게 되는가? 잘 모르겠다. 어디까지가 권한인지…. 그리고 임기는 본안판결이 날 때까지인데 그게 다음 달일지, 그다음 달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광복회 조직의)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이 되다 보니까, 너무나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광복회 회원들은 장호권 회장이 당선을 위해 지지 회원들에게 지위를 약속했고, 파산선고를 받아 피선거권이 제한된 상태였으며 허위 이력을 기재했다며 법원에다 장 회장의 직무집행 정지 가처분신청과 본안소송을 제기했었다.
 
  법원은 장 회장이 2018년 10월 16일부터 2021년 10월 15일까지 한신대 초빙교수로 재직했으나 선거에서 ‘현(現) 한신대 초빙교수’로 기재한 점, 선거 과정에서 담합한 점 등을 인정, 직무를 정지시켰다.
 
  이 대목에서 그는 할아버지 김구 선생 이야기를 꺼냈다.
 
  “감히 제가 올려다볼 수 없는 조부님…. 워낙 큰 거목(巨木)이셨기 때문에 저희는 살아오면서 햇빛을 못 봤습니다. 워낙 울창하고 큰 거목이기에 그래서 성장을 잘 못 했어요.
 
  그리고 (외부에) 나가 이런저런 얘기하는 것? 입 다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말주변이 없어요. 말을 안 해봤기 때문에.”
 
  ― 말씀 잘하십니다.
 
  “그렇습니까? (웃음) 그렇기 때문에 감히 비유할 수 없는…, 나약하고 존재감 없는 사람이, 이런 자리를, 법원 판결에 의해 맡다 보니까 너무너무 큰 부담감과 평생을….
 
  사실 멍에라고 하면… 남들은 그래요. 그 얼마나 영광되고 얼마나 훌륭한 집안이냐고. 이런 얘기를 하지만 저 개인은 그 자체가 멍에였고, 그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무거운 십자가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언행에서도 굉장히 조심스럽고, 말을 안 하는 게 제일 좋아요. 그래서 기자와 만나 인터뷰를 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주위에서) 인터뷰 좀 하라고 하니까….”
 
 
  ‘순종’
 
  순간 김구 선생이 한 말이 떠올랐다. “외국의 간섭이 없는 분열 없는 자주독립을 쟁취하는 것은 민족의 지상명령이니, 이 지상명령에 순종할 따름입니다”(1948년 3월 21일 《신민일보》 사장과 회견기 중)의 그 ‘순종’이 오버랩되었다.
 
  그의 말끝에는 떨림이 있었고 진심이 느껴졌다.
 
  ― 앞으로 본안 판결이 남아 있는데….
 
  “잘은 모르겠지마는, 당선 무효소송이었기에 ‘가처분 인용’이라는 것은, 제 생각에, 당선 무효를 전제로 한 직무집행 정지 가처분이 아니었겠나 하는 그런 생각이지, 제가 뭐 법에 대해서 압니까. 아는 게 없습니다, 사실은….”
 
  ― 직무대행도 기존 회장의 역할(권한, 책임 등)을 다 할 수 있는 건가요? 아니면 제한이 있는지요.
 
  “글쎄요. 판결문에는 대행이라서 권한이 국한(局限)된다는 것은 없어요. 여러 법조인한테 물어봤는데 특별한 판례는 없다더군요.”
 
  ― 그럼 인사도 하고, 예산집행도 다 할 수 있다?
 
  “넓게 보는 사람은 아주 넓게 보고, 좁게 보는 사람은 또 좁게 보고. 정답은 없다, 판례도 거의 없다는 겁니다. 시각이 다 다르더라고요.”
 
 
  ‘광복회는 정치적 독립을 최우선 한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식에서 김진(오른쪽 두 번째)은 상하이 교민으로부터 백범 선생의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의 집무 모습이 담긴 그림을 증정받았다.
  ― 장호권 회장이 광복회장이 된 뒤 “분열된 광복회를 통합하고 1년 내 구태·적폐의 정리”를 외쳤는데, 구태·적폐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음…, 글쎄요, 그거는 보는 시각이 다 다르고, 구태·적폐라고 하는 단어 자체가 저는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을 우선 하고요. 인터뷰 시작 전에 말씀드린 내용이 바로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태풍과 폭풍우가 몰아치더라도 광복회는 거대한 바위 덩어리 같은 조직이기에, 한 치 흔들림도 없다”는 주장이었다.
 
  기자는 그의 진심에 공감하나 답답함을 느꼈다. 질문을 조금 돌렸다.
 
  ― 독립유가족에 대한 선제적 보훈(報勳)과 복지 증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친일(親日)파는 잘살고 독립운동가 집안은 가난하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까.
 
  “오래된 얘기고….”
 
  ― 옛이야기인가요.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자가 ‘친일파는 잘살고…’라며 친일이란 단어를 살짝 언급하자 김 회장은 “독립운동 정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옳지가 않다”고 말했다. 아마도 김원웅 전 회장이 2년 8개월 광복회장 재임 기간 반일(反日) 선동에 앞장섰던 점을 의식한 발언 같았다. 김원웅은 “대한민국 역대 정부는 반민족 친일”이라 매도하고, 이승만·안익태 등을 겨냥해 ‘친일파’ ‘민족 반역자’라고 막말을 했다. 불명예 퇴진을 하면서도 “친일 미청산이 민족 공동체의 모순”이라 했었다.
 
  “광복회 정관에 딱 못 박힌 지침이 ‘광복회는 정치적 독립을 최우선 한다’입니다. 왜냐하면 독립운동 자체가 좌나 우가 아닙니다. 좌우로 치우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 우리 선배님들이 만드신 정관에 나와 있는 것이고, 반드시 지켜져야 된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걸 정치적 혹은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봅니다.”
 
 
  “뛰어넘자. 克日 해야 한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광복이 된 지가 내후년이면 80주년입니다. 그동안 친일 하셨던 분들 다 돌아가셨습니다. 없습니다, 지금은….
 
  지금 제가 생각하고 바라는 것은 친일·반일·항일(抗日)을 넘어 미래 지향적으로 봐야 합니다. 일본 사람이 들으면 좀 기분 나빠하겠지만 우리나라가 이제는 국제적으로도, 세계무대에서도, 경제적으로도, 또 국민 정서, 국민 실력, 국민 사고 등등을 봤을 때, 이제 우리 일본 좀 무시하자, 이제 피해의식은 접을 때도 됐다! 그래서 뛰어넘자. 극일(克日)을 해야 한다. 일본 정도는 우리가 극복하고 우리 목소리도 내고, 언제까지 피해의식에 젖어 친일, 반일이라 하느냐. 이미 역사에 다 나와 있기 때문에 당당하게 일본 정도는 넘어서자!
 
  이런 생각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제는 극일을 할 때이고 그(극일) 준비는 됐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이제 옛날 얘기 가지고서…. 근데 하나 문제가 되는 게 뭐냐?”
 
  ― 뭡니까.
 
  “이스라엘 벤구리온 국제공항에 어마어마하게 큰 글씨가 적혀 있습니다. ‘용서를 하되 절대 잊지 말자(Forgive but never forget)’고. 굉장히 무서운 말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사과를 거부하고, 역사를 왜곡하고, 지금까지도 거짓말하고 있는 게 일본인데 용서는 사과를 해야지 주는 답입니다. 사과를 안 하는데, 용서를 못 하는 거죠.
 
  그러니까 친일·항일을 떠나 뛰어넘자. ‘에이~, 너희하고 내가 상종을 안 한다!’ 이런 식으로 뛰어넘는, 극일이 맞지 않으냐는….”
 
 
  “현재 부채가 20억원”
 
  ― 전해 들은 소문에 따르면 직무대행을 맡은 후 광복회 간부들이 모두 급여를 반납기로 했다던데요.
 
  “지금 광복회가 사실상 재정적으로 부도가 나 있습니다. 아니, 부도가 났습니다. 3년 반 사이에…, 완전히. 현재 부채가 20억원이나 됩니다.”
 
  ― 3년 전에는 안 그랬는데?
 
  “2018년까지만 해도 넉넉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굴러왔고 (직원들) 월급 주고 다 했어요, 많지는 않지마는…. 국고보조금도 그렇고, 자체 자금도 그렇고. 그런데 이후에 급격하게 나빠지더니 채권이 막 날아왔습니다. 우리도 모르는 채권들이….
 
  광복회 도장이 찍혀 있기 때문에 광복회가 부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지금 빚을 내서 빚을 갚는 상황입니다.
 
  (김원웅 회장 시절에) 2021년도 결산보고의 외부 감사, 내부 감사를 다 거부하더군요. 일반 회사 같으면, 상장 폐지가 되는, 부도가 나는 상황….”
 

  ― 그 이야기를 언제 들으셨습니까.
 
  “와서 알았죠, 와서…. 정말 긴급 수혈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11월부터는 사실상 직원들 급여도 줄 수 없는 상황이 돼서, 직무대행이긴 하지만 책임은 무한하기 때문에, (부채가) 20억원인데 우리 스스로 대행 및 임원 그리고 국·실장까지, 음… 봉사하는 걸로 하자. 무보수로 봉사하겠다! 언제까지? 재정이 어느 정도 회복될 때까지.”
 
  그는 “이렇게 하면서 조금이라도 회생시킬 방법이 있다면, 그것조차 없다면, 양심의 가책이 돼서…, (월급을) 반납한다는 각오와 그런 결심과 그런 의지 없이 어디에 가서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겠느냐(는 생각입니다).
 
  물론 제 잘못도 아니고, 광복회 직원의 잘못도 아닙니다. 저는 상속받은 게 부채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농담으로 (광복회) 재무부장이 보고를 죽 하기에 ‘그럼 나는 그냥 부채만 상속받았네. 우리 법에 상속 거부라는 것도 있지? 내가 상속을 거부하면 안 될까?’라고 하니, (재무부장이) ‘그러시면 안 됩니다, 절대로!’라고 해요.
 
  지금 완전히 곳간(庫間)은 비어버렸고, 자산은 쓸 수 있는 게 하나도 없고…. (부채) 상속을 거부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김 회장은 답답하다는 듯 이렇게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나부터 무보수로 갈 테니까, 임원들하고 실·국장들도 그런 의지를 보여줘야지, 우리가 얼마만큼 시급하고 급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런 의지, 각오를 보여주는 게 직무대행의 책임 중의 하나라고 판단한 겁니다.
 
  나도 생계형이고 연금도 못 받지만, 내가 광복회장 직대가 안 됐다고 치면 되지 않겠어요? 그렇죠?”
 
 
  “독립운동할 때 풍찬노숙했듯이”
 
김구 선생 피란처인 중국 가흥의 집을 찾은 손자 김진. 그 집 2층에 있던 침대에 앉았다. 상하이 일본영사관의 감시를 피해 망명객으로서 고단한 생활을 했던 김구 선생의 모습이 느껴진다.
  “직무대행이 안 됐다고 치자”는 눈물겨운 자기 합리화(?)였다. 계속된 그의 말이다.
 
  “(대행이) 안 됐으면 월급 없는 것 아닙니까? 안 됐다고 치고, 마음을 접자. 그렇게 해야 누가 보더라도 (광복회가) 자구책을 만들려고 진정성을 보이고 있구나 하고 믿지 않겠어요?
 
  (시도) 지부장들은 해당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부장들이 알아서 하실 일이고, 그걸 강요하면 안 되죠. 그건 노동법에 걸립니다.”
 
  ― 그럼, 실·국장만 자발적으로?
 
  “동참하겠냐고 하니 (자발적으로) 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 현재로선 기한이 없는 상태지요?
 
  “어느 정도 재정 문제가 정상화될 때까지라고 했기에 기한은 없습니다.”
 
  ― 그래도 무작정 기다릴 수는(월급을 반납할 수는) 없을 텐데요.
 
  “뭐, 그럴 수야 없겠죠. 그런데 부도난 상태이기 때문에 방법이 없습니다.”
 
  ― 그럼, 회장 관용차도 못 쓰겠네요?
 
  “관용차가 있다던데, 그 차는 제가 쓰지 않고 의전용으로 쓰고…. 직원들한테 정말 미안한데, 직원들이 쓰는 승합차로 출퇴근하겠다고 했어요. 직원들이 행사가 있으면 써야 하는 승합차인데 풀(pool)제로 운영하라고 총무국장한테 요청했습니다.
 
  그런 작은 것 하나부터 같이 한번 뭉치고, 서로 재건(再建)해보자, 광복회를… 재건! 재건! 너무 늦은 게, 지금 CPR(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다 지나버렸습니다. 인공심장으로 바꿔도 될까 말까 하는 그런 상황에 있기에 개혁과 혁신 가지고선 모자라고 ‘재건’을 위해 우리 스스로가, 누릴 것 다 누리고 받을 것 다 받고, 먹을 것 다 먹어선 안 된다! 독립운동할 때 풍찬노숙(風餐露宿)했듯이 그런 마음으로 광복회를 다시 한 번 재건해보자!”
 
 
  “구상권 행사하려 했지만…”
 
1948년 남북 연석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38선을 넘으며 찍은 사진. 백범과 아들 김신(오른쪽). 백범 왼쪽은 선우진씨다. 사진=조선DB
  김 회장대행은 그러나 “광복회 전체가 마치 무슨 부정과 부패만 있는 그런 조직으로 비칠까 봐 걱정이 되지만, 회원들이 잘못해서, 광복회가 잘못해서가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 전임 회장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계획인가요.
 
  “하려고 준비를 했죠. 그런데 사망해버렸잖아요. 검찰에서도 아마 ‘공소권 없음’으로 가겠고, 이런 상황에서 구상권이 가능한지는 변호사한테 물어봐야 됩니다.
 
  지금 당장 그 말을 꺼내기가…. 망인(亡人)이 된 지 며칠 안 됐는데 구상권을 청구하겠다고 하면 인간으로서 도리가 아니다 싶어 참고 있습니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모임인 광복회 회원의 평균 연령은 80세라고 한다. 노쇠(老衰)한 조직처럼 비친다. 젊고 활기찬 조직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사실 광복회 본회도 급여가 적지만 지회(支會)는 더 적습니다. 젊은 사람이 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그걸 받아서 가정을 꾸릴 수 없습니다, 젊은 사람은.
 
  왜? 이 월급으로 생활이 안 되니까. 그래서 퇴직한 후에, 빨라야 65세? 70세? 아니면 더 고령층도 계시지만, 현재 광복회가 젊은 피를 수여할 수 없는…, 애로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 젊은 피 수혈이 불가능하다는 말씀이죠?
 
  “앞으로 다른 수익 사업이 생기든지 아니면 좀 월급을 넉넉하게 줄 수 있으면 젊은 사람도…. 요새 50대도 퇴직한 분이 많으니까 좀 모실 수가 있을 겁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그린카드’라고 불리는, ‘독립유공자 후손증’은 그 집안에서 가장 나이 많은 한 명에게밖에 안 갑니다. 그게 없으면 회원 대우를 못 받습니다. 그런 것도 문제입니다.”
 
  김진 대행의 국내 학력은 국졸(國卒)이 전부다. 학연(學緣)이라면 서울사대부속 초등학교 동창들뿐이다. 중·고교는 대만, 대학은 미국에서 다녔다. 아버지 김신이 대만 대사로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학연이 가장 중요하지 않습니까. 저는 없습니다. 네트워크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흔히 말하는 ‘불알친구’ ‘절친’이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참 아쉬운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광복회의 재정 상황은…
 
  지금 광복회는 빚을 내서 빚을 갚는 속된 말로 돌려막기식 차입경영을 하고 있다. 이자와 차입금이 상환이 되지 않고 지연되자, 일부의 통장이 압류가 되고 광복회 회원들이 낸 장학기금마저 담보로 제공해, 추가 차입을 한 상황이다.
 
  장학기금으로 악성부채를 상환하고 이자를 갚고 있다. 가용자산이 고갈되었기에 부도 상태에 있고, 11월부터는 광복회 직원들 급여도 지급할 수 없다. 현재 광복회 총 부채는 19억2300만원 정도다.
 
  왜 이런 참담한 상황에 이르렀을까.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독립유공자 자녀들 장학금으로 쓸 돈을 빼돌린 혐의로 지난 2월 사퇴한 김원웅 전 회장의 수억원대 새로운 비리 의혹이 드러났다. 또 김 전 회장이 재임 2년간 결제한 법인카드 사용액 7900여만원 가운데 2200여만원이 업무와 무관했다. 김원웅 광복회는 2020년 ‘독립운동가 100인 만화 출판 사업’을 하며 인쇄업체 H사와 10억6000만원의 수의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시장가보다 90% 이상 부풀린 액수로 광복회에 5억원대 손해를 입혔다고 한다.
 
  “할아버지 암살범 안두희는…”
 
광복회원들과 함께 김진 선생이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 주위에서 정치를 해보라고 권하는 이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저희 집안은 정치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조부님도 정치인은 아니셨습니다. 민족주의자라고 하는 독립운동가와 통일·민주·민족을 하시는 분이셨지 정치인은 아니셨고, 부친 또한 전투기 조종사셨기에…. 우리는 정치인 집안이 아닙니다. 정치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 동생인 김양 전 보훈처장이 어떤 조언을 하던가요.
 
  “저보다 훨씬 건장하고 건강하고 성격도 우락부락하고 그렇습니다. 일단 보훈처장을 지냈기에 사실상 이 문제에 뉴트럴한(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여튼, 뭐, 여기(광복회) 오는 것에 대해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긴 것이 사실이고….”
 
  ― 1996년 10월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가 살해당하지 않았습니까. 이후 안두희 주변과 관련해 밝혀진 사실이 더 있나요? 우리가 모르는….
 
  백범 암살범 안두희(安斗熙·당시 79세)는 1996년 10월 23일 오전 11시30분쯤 인천시 중구 신흥동3가 자신의 집에서 피살됐다.
 
  당시 《조선일보》에 따르면 범인은 부천 소신 여객버스 운전기사로 일하는 박기서(朴琦緖·당시 46세)씨였다. 자수 의사를 밝힌 뒤 경찰에 연행된 박씨는 “평소 백범 선생을 존경했다. 후회는 안 한다”고 말했다.
 
  안씨는 발견 당시 손발이 묶이고 왼쪽 옆머리를 둔기에 맞아 피를 많이 흘리고 있었으며, 목이 졸린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백범 살해의 배후가 영원히 묻히는 순간이었다.
 
  “그거는 오래전 얘기고,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귀가 따갑게 듣던 얘기였고, 그렇습니다. 국회에서 특별조사위까지 꾸렸지만 거기서도 똑 부러진 게 나오지 않았고, 어느 한 분이 ‘정의봉’으로 그렇게 해버렸는데, 그 후 다 덮어졌기에, 시간도 오래됐고, 관련된 사람도 이미 고인이 되어버렸으니, 의혹들은 수없이 많지마는….”
 
 
  진심 믿어주고 싶지만
 
  김진 회장대행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그는 “평생 살아오며 녹록지 못한 생활, 비록 가진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어깨를 쫙 펴고 독립투사의 후손이란 자존심 하나로 당당하게 살아왔다”고 했다.
 
  “(광복회원들의) 자존심을 되찾아드리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리고 그의 진심을 믿어주고 싶지만, 정말이지 광복회 ‘재건’이 가능할지, 기자로선 확신이 들지 않았다.
 
  심근경색에 빠진 재정문제는 둘째치고 절망적인 광복회의 위상 회복이 더 시급해 보였다. 그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콧등이 시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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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jehyun@naver.com    (2022-12-02) 찬성 : 8   반대 : 0
망자라도 빨리 구상권청구해야 불법자금은 회수해야합니다
  자유통일    (2022-12-02) 찬성 : 4   반대 : 0
나라를 빼앗겨서도 안되겠지만, 다시는 좌익 빨들에게 정권을 내 주어도 안 될 것입니다. 좌익은 탈을 쓴 도적이요 강도요 사기꾼으로 국가도 단체도 개인까지도 결국은 죽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20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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