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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元祖 ‘전교조 저격수’ 조전혁 前 국회의원이 바라본 ‘인헌고 사태’

“문재인 정부 들어서고 전교조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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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신학교, 전교조 교사가 가진 잘못된 사상교육 대놓고 할 수 있어”
⊙ “美·유럽에서 전교조식 ‘계기 수업’한 교사는 그날 당장 해직”
⊙ “反日 외치는 전교조 뿌리는 일본의 日敎組… 이것이야말로 진짜 親日”
⊙ “PK 민심, 문재인·조국 부산 사람이라는 사실 부끄러워해”
⊙ “국회 다시 입성하면 민노총과 정면승부”

조전혁
1960년생.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 18대 국회의원, 자유한국당 해운대갑 당협위원장
  ‘전교조 전성시대.’ 지난 10년간의 좌파 교육감 시대를 상징하는 단어 중 하나다. 1987년 창립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지난 2013년 교원노조법을 어겨 법외(法外) 노조가 됐지만, 국가 교육 정책을 좌우하는 자리는 속속 전교조 출신들로 채워졌다. 2018년 8월 교육부가 전교조 조직국장 출신인 김성근 충북교육청 장학관을 학교혁신지원실장 자리에 임명한 것이 대표적이다.
 
  교장을 거치지도 않은 전교조 출신이 곧장 1급에 임명된 첫 케이스였다. 교육부의 1급 자리는 기획조정실장, 고등교육정책실장, 학교혁신지원실장, 서울시교육청 부교육감, 교원소청심사위원장으로 5개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서도 학교혁신지원실장은 소위 ‘노른자위 보직’이다. 학교혁신지원실장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교육 정책을 총괄한다. 교사 출신이 오를 수 있는 최고위직이다.
 
  김 실장 직속 ‘자사고·외고 폐지’ 국정 과제를 담당하는 이성희 학교혁신정책과장도 전교조 인천지부 사무처장을 지냈다. 문재인 정부가 중·장기 국가 교육 정책을 만들기 위해 출범한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 김진경 의장도 전교조 초대 정책실장을 지냈다. 교육부·교육청·국가교육회의 등 국가 교육 정책을 결정하는 세 행정기구를 전교조가 장악한 모습이다.
 
 
  ‘인헌고 사태’
 
  ‘전교조 전성시대’로 인해 곪았던 상처가 터졌다. 2019년 10월 서울 관악구 인헌고등학교에서 전교조 교사와 학생들 간 설전이 벌어진 것이다.
 
  학생들은 10월 23일 “교사들에게 편향된 정치사상을 강요받았다”며 “우리를 정치적 노리개로 이용하지 마라”는 기자회견을 학교 정문에서 열었다. 교사들은 교내 방송을 통해 “가짜 뉴스에 속지 마라”며 학생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했다.
 
  스스로 이름을 밝히고 나선 학생들 증언에 따르면, 한 교사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보도를 “모두 가짜 뉴스”라고 가르쳤다. 또한 조 전 장관에게 반감을 표시한 학생에게는 “너 일베냐”라며 매도했다고 한다. “나는 문재인을 좋아한다. 문재인 좋아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한 교사도 있었다. 일부 교사는 “MB(이명박)와 박근혜는 사기꾼” “노동유연성을 말하면 또라이”라는 등 무지한 막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고 한다.
 
  참다못한 학생들은 ‘인헌고 학생수호연합’이라는 모임을 만들고 “일부 정치 편향 교사들의 행태에 대해 심각성을 인식하고 감사에 착수해달라”는 청원서를 서울시교육청에 제출했다.
 
  그런데 결과는 기가 막힐 정도다.
 
  서울시교육청은 ‘정치 편향 교육’을 한 서울 인헌고 교사들에 대해 “교육적 과정이었다”며 특별 감사를 하거나 징계하지 않겠다고 했다. 조사 책임자인 서울시교육청 담당 장학관은 과거 전교조 핵심 인사 출신으로 ‘혁신학교’ 주창자라고 한다. 인헌고는 정치 교사를 폭로한 학생들을 학교폭력위원회(학폭위)에 회부했다. 교육청은 학생들에게 황당한 정치 편향 교육을 한 교사를 벌하지 않았고, 해당 학교는 학생들을 학폭위에 회부한 것이다.
 
  동장군이 위세를 떨치는 지금도 인헌고 김화랑 군은 서울시교육청의 ‘특별 장학’ 결과에 반발하며 교육청 앞에서 1인 시위 중이다.
 
 
  인헌고 교사 70~80% 전교조 소속일 듯
 
2010년 7월 13일 오전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이 서울 영등포 전조교 사무실에서 전조교 명단 공개로 법원으로부터 선고받은 강제이행금 1억5000만원 중 일부를 납부하고 있다.
  국회의원 시절 10억원 넘게 손해배상을 하면서도 ‘전교조’와 맞섰던 조전혁 전 의원은 이 ‘인헌고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조 전 의원을 만나기 위해 부산행 KTX에 몸을 실은 이유다.
 
  ― ‘인헌고 사태’를 어떻게 바라봤습니까.
 
  “드디어 ‘얘들(전교조)의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라고 생각했죠. 제가 국회에 있을 때(2008~2012년)만 해도 이 친구들이 (정치 편향적 교육을) 숨어서 했습니다. 지금처럼 좌파 교육감들이 많지 않았기도 했지만요. 물론 대놓고 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인헌고 사태’ 정도는 아니었죠.”
 
  ― 문재인 정부가 든든한 ‘빽(뒷받침)’이라 그런가요.
 
  “결과론적으로 그렇죠. 혁신학교가 만들어지면서 전교조가 가진 잘못된 사상을 학교 차원에서 대놓고 교육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과거 제가 공개한 전교조 명단에 따르면 인헌고 전체 교사(60여 명) 중 전교조 소속 교사가 16~17명 정도였습니다. 그땐 인헌고가 혁신학교가 아니었죠. 인헌고가 2012년 혁신학교로 지정됐으니, 전교조 소속 교사 수가 더 늘었을 겁니다. 저는 70~80%가 전교조일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혁신학교’는 전교조 교사 모임의 場
 
  ― 왜죠?
 
  “혁신학교는 좌파 교육감하에서 전교조 평교사들이 교장으로 가는 코스로 알려졌습니다. 전교조 소속 또는 출신 교사가 교장이 되면 ‘교사초빙권’을 내세워 같은 전교조 출신 교사를 많이 데려오지 않겠습니까. 또 혁신학교는 교사의 자발적 지원이 가능한데, 실제 자원한 상당수가 전교조 출신이라고 합니다. 결국 혁신학교는 ‘전교조 교사 모임의 장(場)’이 될 수 있죠.”
 
  실제 혁신학교에 근무했던 한 고교 교사는 “이미 전교조가 학교를 쥐락펴락하는 수준이다”며 “전교조 교사가 다른 학교에서 전보(轉補) 신청을 해 혁신학교로 가거나, 혁신학교에 있는 전교조 교사가 전보 유예를 신청해 계속 머무는 일도 매우 빈번하다”고 했다.
 
  ― 혁신학교만 평교사가 교장으로 갈 수 있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교사 경력 15년 이상이면 공모를 거쳐 교장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무자격 교장 공모제는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시범 도입돼 2012년부터 본격 시행됐습니다. 그전에는 경력 20년 이상인 교사가 교감을 거쳐 교장 자격증을 따야만 교장이 될 수 있었죠. 원래 ‘공모교장제’는 기업경영인이나 과학기술자 등 전문가를 교장으로 초빙해 획일화한 교육을 혁신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되었지만, 지금은 전교조 출신 평교사를 교장으로 만드는 수단으로 변질했죠.”
 
  ― 혁신학교가 뭡니까.
 
  “교사에게 교육과정 자율권을 주고, 학생들에게 다양한 활동·토론 중심 수업을 제공한다는 취지로 만든 학교인데, 그게 전교조의 정치적 세뇌 수단이 돼버렸습니다.
 
  저는 이런 혁신학교 교육 자체가 우리 헌법 가치에 맞는지 의문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국가 교육과정을 택한 나라입니다. 국가 교육과정이란 국가와 학부모가 교육과 관련한 사회적 계약을 맺는 것이죠. 그런데 혁신학교 가는 순간 국가가 학부모에게 약속한 교육과는 다른 교육을 하는 게 됩니다. 문제로 삼을 수밖에 없죠.”
 
 
  전교조 契機 수업의 실체
 
조전혁 전 의원은 2012년 3월 중국 정부의 탈북자 강제 북송에 항의해 중국대사관 앞에서 단식 농성을 벌였다. 사진=조선DB
  혁신학교는 김상곤 전 교육부 장관이 경기교육감 시절인 2009년 도입한 학교 모델이다. ‘혁신학교 확산’은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로 이른바 진보 진영 교육감들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 혁신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이 전교조의 대표적인 ‘이념 교육’으로 꼽는 ‘계기(契機) 수업’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겠네요.
 
  “미국이나 유럽에서 교사가 전교조식의 계기 수업을 했다면 해당 교사는 그날 당장 해직됐을 겁니다.”
 
  ― 학부모들은 계기 수업을 왜 전교조의 대표적인 이념 교육으로 꼽는 겁니까.
 
  “계기 수업은 노동절이나 6·25, 5·18 같은 특별한 날이나 특별한 이슈가 있을 때 그것을 ‘계기’로 하는 이념 수업입니다. 계기 수업은 전교조 지도부에서 날짜와 내용을 정합니다. 이런 수업은 학교장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전교조는 그런 승인조차 받지 않고 지도부의 지시에 따라 계기 수업을 합니다.
 
  제가 파악한 바로는 전교조 교사들도 과거 운동권의 두 축을 이룬 NL(민족해방)-PD(민중민주)로 나뉩니다. NL 쪽 전교조 교사들은 대한민국은 미국의 식민지인 만큼, 미국에 대항해야 한다고 봅니다. 반면 미국에 대항하는 북한에는 동정적입니다. NL 쪽의 일부 극단적인 교사는 아이들한테 반미(反美)를 넘어 친북(親北)·종북(從北) 사상까지 주입하죠.
 
  PD는 유산(有産) 계급이 무산(無産) 계급을 억누르는 계급의 모순을 타파해야 한다는 입장이죠. 때문에 PD 쪽 전교조 교사들은 ‘노동’을 강조하고,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하고 억압한다고 세뇌합니다. 이런 수업들이 ‘계기 수업’을 가장해 이뤄지는 것이죠. 전교조는 분명히 정치노선을 가지고 설립된 단체입니다.”
 
  ‘공안검사’ 출신 고영주 변호사는 “전교조 핵심부의 목표는 학생들을 사회민중민주주의 혁명 세력으로 키우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두 얼굴의 전교조
 
  조 전 의원은 ‘전교조 저격수’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조 전 의원은 ‘뒤에서 숨어 쏜 적이 없다’면서 ‘저격수’라는 별명이 탐탁지 않다고 했다). 뉴라이트 계열 교육단체인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상임대표를 지냈고, 지난 2006년 《전교조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라는 책을 써서 단숨에 ‘전교조 저격수’로 떠올랐다.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는 전교조 조합원을 포함하여 교총 소속 등 교원단체에 속한 교사들의 명단을 인터넷 사이트에 공개했다. 이 일 때문에 조 전 의원은 전교조 교사들에게 십수억원대 손해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 손해배상금이 총 얼마입니까.
 
  “명단을 공개한 8000여 명(2011년 3431명에게 10만원씩 배상 판결, 2013년 4584명 10만원씩 배상 추가 판결)에게 1인당 10만원씩 배상을 하라는 판결이 났으니 8억원 정도에다가, 제가 명단을 5일 올리고 있었는데 하루에 3000만원씩(추후 2000만원으로 경감) 이행강제금을 지불하라고 했으니 1억원, 거기다 돈이 없어서 한 번에 못 갚으니 연간 20%의 가산금이 붙더군요. 이래저래 다 합쳐서 16억~17억원 정도 됩니다.”
 
  ― 다 갚았나요?
 
  “전교조하고는 계산이 끝났어요. 전교조가 제가 2014년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뒤 선관위로부터 돌려받을 선거 보전 비용 중 12억9000만원을 압류했죠. 법원의 결정 때문에 본의 아니게 선의로 ‘조전혁 펀드’에 지원해준 분들에게 피해를 주게 돼 죄송할 따름입니다.”
 
  조 전 의원은 2014년 6·4 지방선거에 경기교육감으로 출마해 26% 득표율로 낙선했다. 전교조는 조 전 의원이 선거에 사용한 비용 37억원가량을 국가로부터 돌려받게 되자 손해배상금과 지연 이자에 대해 압류·추심 명령을 신청했고, 성남지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당시로 돌아가도 전교조 명단 공개
 
  ― ‘법외 노조’ 판결을 받아 노조 전임자가 전원 학교로 복귀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건 법도, 정부 명령도 무시한 전교조가 정작 ‘법대로’를 주장하며 압류 명령을 받아냈네요.
 
  “선거공영제(公營制)에 따라 보전받는 선거비용은 유세차량 임차나 홍보물 인쇄 등 선거 기간의 지출에 쓰라는 것이지 개인 채무를 갚으라는 취지가 아닌데, 전교조는 그 돈을 압류했죠. 예를 들어 증권회사에서 펀드를 팔잖아요. 투자자들이 펀드에 돈을 집어넣었는데, 증권사 대표가 잘못했다고 그 펀드를 차압(差押)할 수 있습니까. 이런 점이 약 오르는 겁니다.”
 
  ― ‘조전혁 펀드’에 투자한 지지자들에게 돈을 갚아야 하겠네요.
 
  “정말 고맙게도 ‘내가 당신한테 돌려받으려고 조전혁 펀드에 투자한 것이 아니다. 갚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대다수입니다. 그래서 더 죄송하고, 더 약 오르고…. 그래도 평생을 두고 갚을 생각입니다. 가끔 ‘내가 좀 어려워졌다. 얼마라도 갚아줄 수 있느냐’는 연락을 주는 분들의 돈부터 최대한 갚고 있습니다.”
 
  ― 채권단에게 조금씩이라도 돈을 갚으며 신뢰를 쌓는 모습이 방송인 이상민씨와 비슷하네요.
 
  “저를 믿어준 감사한 분들에게 손해를 끼칠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 경제적으로는 어떻습니까.
 
  “아무래도 불편하죠.”
 
  ― 당시 부인께서 ‘국민의 알 권리보다 마누라의 살 권리가 더 무서워 명단 내린다 해라. 나도 좀 살자’고 문자메시지를 보내 화제가 됐습니다.
 
  “아내한테 참 미안하지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풍족하진 않더라도 궁핍하게 살지는 않았을 텐데….”
 
  ― 수입은 있나요.
 
  “사외(社外)이사도 하고, 대학교 초빙교수도 방송도 하고 했으니까요.”
 
  ―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명단을 공개하는 결정을 할 겁니까.
 
  “네, 공개할 겁니다. 다만, 당시로 돌아간다면 국회의원이 가진 면책특권(免責特權)을 최대한 활용할 겁니다. 당시에는 앞뒤 돌아보지 않고 했습니다. 면책특권을 활용하는 게, 면책특권 뒤에 숨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와이프한테 미안하고, 제 펀드에 투자한 분들에게 더더욱 미안하게 됐죠.”
 
 
  판사와의 약속 때문에
 
  ― 빠져나갈 길이 있었나요.
 
  “제가 교육부로부터 명단을 받았을 때 이 명단으로 쌈을 싸 먹을지 김치찌개를 끓여 먹을지 모르는 상황이었잖아요. 근데 전교조는 제가 명단을 공개할 것으로 예단하고 공개금지 가처분(假處分) 신청을 했습니다.
 
  재판관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싶어 가처분 재판에 나갔더니 담당판사가 ‘가처분 재판 중에는 공개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제가 이 재판에 안 갔어야 했습니다. 직접 설명하는 게 법원에 대한 예의라 생각했는데…. 별생각 없이 ‘네’라고 답했습니다.
 
  제 변호사가 ‘만약 공개를 하려면 가처분 판결이 나기 전에 공개하는 게 맞다. 가처분 자체가 무효가 되기 때문이다’고 말했는데, 제가 ‘판사한테 약속했는데 어떻게 그러느냐’며 공개하지 말라는 가처분 신청이 난 후 공개를 한 것이죠. 가처분이니까 정식 법원의 판결을 받아보자는 마음에서 그렇게 한 것인데, 그게 판사님들의 미움을 사게 됐습니다. 덕분에 빚더미에 앉게 된 것이죠.”
 
 
  ‘전교조 저격수’가 된 이유
 
2010년 4월 19일 당시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은 홈페이지에 ‘교원단체 및 교원노조 가입 실명 공개’를 올렸다.
  — 경제학자가 교육문제, 그중에서도 전교조 비판에 앞장서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저는 일찍 유학 갔다가 일찍 대학교수가 된 사람입니다. 창피하지만 사회문제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대학교수라는 직책이 주는 여러 가지 편의를 즐기며 사는 사람이었죠. 2000년 초반일 겁니다. 원론(原論) 수업을 하게 됐는데 애(학생)들 생각이 이상하더라고요.”
 
  ― 어떻게 이상했습니까.
 
  “미국에서 유학할 때 저는 신(新)성장이론이라는 새로운 조류(潮流)에 접할 수 있었습니다. 경제성장의 동력을 인적(人的) 자본 축적에서 찾는 이론이죠. 아무런 자원도 없던 대한민국의 성공적인 경제성장을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이론이었습니다. 그런데 애들은 너무나도 반(反)시장적이고 반(反)기업적인 정서가 강했습니다. 엄청 놀랐죠.”
 
  ― 학생들의 정서가 왜 그런지 연구하셨겠네요.
 
  “너무 이상해 다음 학기에 자청해서 원론 수업을 한 번 더 했는데, 똑같더군요. 그래서 애들을 저렇게 만든 원인이 무엇인가 살펴봤습니다. 마침 대학(인천대)에도 초중고 교과서가 있기에 훑어봤더니, 21세기에 대한민국에서 가르쳐야 할 책이 아닌 쓰레기더군요. ‘교과서를 이렇게 만드는 것을 보니, 뭔가 조직적인 힘이 있구나’라고 생각했죠.
 
  제가 운동권 출신이었다면 단번에 배후가 전교조라는 것을 알았을 텐데, 운동권하고 거리가 멀었으니 공부해서 알게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전교조·민노총이 어떤 조직이고,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 생각들이 어떻게 교과서에 녹여졌는지를 파악하게 된 것이죠. 전교조 교사들을 바로잡지 않는 한 우리 사회에 만연된 반시장·반자유주의 정서를 걷어낼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진짜 親日은 전교조”
 
  조 전 의원은 전교조가 친일(親日) 잔재와 보수 세력을 결부하는 교육을 하는 것에 분개했다.
 
  “전교조는 입만 열면 친일파 타도와 반일을 강조하잖아요. 그런데 전교조가 이야기하는 ‘참교육’이란 일본 좌파 교원단체인 일본교직원조합(일교조)이 강조했던 ‘공산주의 혁명을 위한 진교육(眞敎育)’의 직역(直譯)입니다. 앞에서는 반일을 외치지만 뿌리는 일본의 일교조인 것이죠. 이것이야말로 진짜 친일 아닙니까.”
 
  일교조의 배후에는 한때 일본에서 가장 강력한 노동단체였던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총평)가 있었고, 그 뒤에는 좌파 야당인 사회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국의 일부 교사들은 1989년 전교조를 결성하기 전에 《인간의 벽》을 필독서로 삼았다. 《인간의 벽》은 일교조에 가입해 있는 초등학교 여교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전조교 추진 그룹은 전교조가 지향해야 할 모델로서 일교조를 가장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이 크다.
 
  일교조는 1950년대 교사 60만명 가운데 50만명이 가입할 정도로 위세 당당한 교원단체였다. 그러나 교원평가와 전국학력평가 반대투쟁을 벌이면서 ‘일본 교육의 암적(癌的) 존재’라는 비판을 받고 1980~90년대 가입률이 30% 아래로 떨어졌다. 일교조는 1995년 ‘탈(脫)이념’의 노선 전환을 시도해 요즘은 수업 개선, 교재 개발 같은 교육적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글 하나가 바꾼 인생
 
  ― 그래서 ‘뉴라이트 운동’을 하게 된 것입니까.
 
  “김대중 정부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의미가 있다고 보았는데 노무현 정부를 보면서 이렇게 가다가는 나라가 망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제가 교수로서 학생 500~700명의 생각을 바꾸는 게 물론 의미는 있지만 너무 작은 움직임이라고 생각됐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그럼 글을 써보자 해서 2004년 8월 《조선일보》에 전교조 교사들의 교육 걱정을 담은 ‘저주의 굿판을 멈추어라’는 제목의 글을 한 편 보냈습니다. 그 글이 꽤 유명해졌죠. 한 달 있으니까 《조선일보》에서 글 하나를 더 보내달라더군요. 하나 더 보냈더니 ‘아침논단’ 필진이 돼 있었습니다. 당시 오피니언 담당하시는 분이 ‘《조선일보》 역사상 글 두 편 보내고 ‘아침논단’ 필진이 된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글 하나가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은 셈이죠.”
 
  ‘저주의 굿판을 멈추어라’에는 “이념 교육에 몰두하는 전교조 굿판, 교육사회주의에 점령된 중등교육은 선무당 사관생도를 양산하고 있다”며 전교조를 비판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조선일보》 고정 칼럼니스트가 되니까 다른 언론사에서도 글을 써달라는 연락이 오고, 그러다 보니까 보수 칼럼니스트가 됐습니다. 저랑 색깔이 같은 동지가 많더군요.
 
  그래서 이분들과 스크럼을 짜서 활동하게 됐죠. 국회의원 했던 신지호 전 의원은 ‘자유주의연대’라는 사회단체를, 저는 ‘자유교육연합’이라는 교육운동단체를 만들어서 글도 쓰고, 강연도 다니고 열심히 했죠. 이런 활동을 보고 당시 《동아일보》 논설위원이었던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뉴라이트’라는 이름을 지어줬죠. 사실 뉴라이트 원조(元祖)들은 단체 이름에 ‘뉴라이트’를 붙인 적이 없습니다. 그 뒤에 나온 친구들이 ‘뉴라이트’란 이름을 붙였죠.”
 
 
  “30분 만에 출마 결심”
 
조전혁 전 의원(가운데)은 2005년 6월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을 만들어 대표를 지냈다. 사진=조선DB
  조 전 의원은 배지를 노리는 기성 정치인과 비교해 국회 입성을 쉽게 했다.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상임대표를 지냈고, 지난 2006년 《전교조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라는 책을 써서 단숨에 ‘전교조 저격수’로 떠오른 그의 몸값은 상당했다.
 
  “2008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이 시작되면서 박근혜 캠프와 이명박 캠프가 서로 사람을 당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사상운동을 하는 단체의 대표가 경선캠프에 들어가는 건 좀 어렵다고 판단해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이명박 캠프의 곽승준·박영준은 친구들이고, 박근혜 캠프의 유승민·최경환은 위스콘신에서 같이 공부했습니다. 캠프에서 도와달라는 제안들이 있었지만 다 안 간다고 했지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이명박 인수위원회 사회교육문화 분과위원회 간사였던 이주호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는 조 전 의원에게 인수위에서 같이 일을 하자고 부탁했다. 조 전 의원은 “기초 닦는 일이면 같이하자”며 인수위에 상임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인수위 활동이 거의 끝나갈 즈음, 당시 한나라당 공천 마감 이틀 전에 모씨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조 교수, 우리 좀 도와줘’ 그러더군요. 그래서 ‘뭘 도와드릴까요.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면 도와드려야죠’ 그랬더니 선거 좀 나가 달라는 겁니다. 인천 남동을(인천 최대 격전지) 찍어서요. 만약 모씨가 거들먹거리면서 ‘공천 줄 테니까 꿇어’ 그랬다면 제 자존심에 절대 안 했을 텐데, 진지하게 도와달라더군요. 그래서 제가 ‘마누라한테 물어보고 연락드리겠다’고 했죠.
 
  아내에게 물어보니 ‘돈 많이 든다던데?’ 그러기에 ‘요즘은 돈 많이 안 든다더라. 그리고 내가 그동안 그렇게 막살지 않았으니, 친구나 선배들이 도와주겠지’라고 말했습니다. 마누라가 ‘당신 알아서 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30분’ 만에 출마를 결정했고, 한 달 반 정도 선거운동하고 나서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낙선이 분명했던 선거
 
조전혁 전 의원이 2014년 6월 3일 경기도교육청에서 후보직을 사퇴한 한만용 후보와 함께 손을 올리고 있다. 조 전 의원은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떨어질 줄 알면서도 책임감과 의리 때문에 나갔다고 했다.
  18대 총선으로 국회에 입성, ‘전교조 명단’ 공개 등 화려한 의정 활동을 한 조 전 의원은 19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에서 탈락했다. 그는 공천 탈락 소식이 있고서 딱 15분 만에 불출마 선언을 했다.
 
  “저도 18대 때 낙하산 전략공천으로 왔잖아요. 그렇게 온 놈이 전략공천으로 밀려나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쿨(?)하게 수용했습니다.”
 
  이후 조 전 의원은 2014년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 출마했지만 패했다. 20대 총선 때 다시 남동을 지역 공천을 받아 재선에 도전했지만, 또 실패했다.
 
  조 전 의원은 경기도 교육감 선거 패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원래 대한민국 교육을 좀 바꿔보고 싶다는 마음에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나가려고 했습니다. 당시 서울시 교육감이 문용린 전 교육부 장관이었는데, 이분이 몸이 안 좋으셔서 교육감 선거에 안 나가는 것으로 돼 있었습니다. ‘이분이 출마하지 않으면 내가 출마하겠다’고 생각한 것이죠. 교육계 원로들과 우파 지도자들도 ‘문 교육감이 출마하지 않는다고 하니, 당신이 나와야 한다’고 저를 지원・지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 교육감께서 마음을 바꿔 출마한다고 한 겁니다. 저도 나간다고 한 만큼 난처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죠.
 
  그러니까 그때부터 교육계 원로들과 우파 지도자들이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 나가라고 종용했습니다. 경기도 교육 문제가 더 심각하다면서요. 제가 경기도에 연고가 있던 것도 아니고, 나가봤자 패배할 게 뻔했죠. 후보단일화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고. 그런데 어떻게 합니까. 우파 쪽에서 ‘제발 나가 달라’고 난리가 났는데. 모른 척할 수 없지 않습니까. 결국 떨어질 줄 알면서도 책임감과 의리 때문에 나갔죠. 낙선이 분명한 선거를 치르는 건 정말 괴롭더군요.”
 
 
  “PK, 文 대통령 부산 사람이라는 것에 부끄러워해”
 

  ― 인천·경기도 선거에 나간 사람이 한국당 부산 해운대갑 당협위원장을 맡는 것에 대해 비판이 있습니다. 선거 때만 고향 찾는 ‘신(新)철새’라고 하더군요.
 
  “기본적으로 나이가 들면 고향이 그리워집니다. 뭔가 하나를 하더라도 고향에서 하고 싶죠. 그리고 부산 해운대갑 지역이 좋은 게 뭐냐면 이곳은 서울의 강남과 비슷합니다. ‘당신이 해운대 출신이냐’고 따지는 게 굉장히 덜한 동네죠. 강남도 ‘당신 강남 출신이냐’고 따지는 분들이 거의 없잖아요. 제가 여기서 당협위원장 활동하면서 ‘너 여기 왜 왔느냐’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 한창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출마설이 돌 때 “내 지역구로 와라. 쓰레기 치워주마”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썼습니다. 지금은 출마 못 하겠죠?
 
  “못 할 겁니다.”
 
  ―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부산·경남(PK) 민심은 어떻습니까.
 
  “문재인 대통령, 조국 전 장관이 부산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한국당 소속이란 이유도 있겠지만, 부산 돌아다니면서 대통령 칭찬하는 사람을 거의 못 봤습니다. 칭찬하는 사람이 20명에 1명도 되지 않을 겁니다. 특히 자영업자들은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제 때문에 피해를 보셨으니 저를 보면 ‘제발 대통령 바꿔달라’고 하소연하시죠.”
 
  ― 총선 전 보수 통합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각자 셈법이 다르잖아요. 일차방정식도 아니고, 연립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데, 과연 ‘해’를 구할 수 있을까요.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잘 안 되기를 바라는 사람 같을까 봐 걱정입니다. 다만 통합이 안 돼도 유권자들이 전략적인 선택을 할 겁니다. 우리나라 유권자들 굉장히 현명하지 않습니까. 정권 심판 기류가 강할수록 군소정당 후보는 힘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20년 총선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습니다. 자유한국당은 박 전 대통령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넘어서고 가야죠. 인간적으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굉장히 억울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의 범죄라고 주장되는 부분들을 보면 실제 범죄가 아닌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많은 죄가 만들어져 뒤집어쓴 부분이 있죠. 형사적인 측면에서요.
 
  하지만 박 전 대통령에게 가장 아쉬운 부분이 우리나라 보수의 뿌리인 이승만·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 때문에 부정당하는 처지에 이르렀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보수주의의 뿌리가 심하게 타격을 받았죠. 이런 점을 봤을 때 저는 박 전 대통령은 정치적・역사적으로 ‘부친살해(patricide)의 죄’를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정말 한스럽고 아쉽습니다.”
 
 
  민노총과 정면 대결 예고
 
  ― 이번 총선에 해운대갑 지역에 출마하실 텐데, 만약 국회에 입성하면 ‘전교조 저격수’로 돌아오는 겁니까.
 
  “국회에 들어가면 이번에는 전교조도 전교조지만 민노총(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정면으로 한번 붙을 생각입니다.”
 
  ― 어떻게요?
 
  “아시다시피 민노총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힘 센 단체입니다. 큰 힘만큼 사회적 책임도 다해야 합니다. 민주적 통제나 견제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여태까지 민노총은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고 힘과 권력을 사용했습니다.
 
  노조의 위원장 선거는 혼탁하기 그지없습니다. 농협이나 수협 조합장 선거처럼 선관위가 위탁관리해야 합니다. 위탁하는 순간 부정선거로 후보들 잡혀가고 난리가 날 겁니다. 또 미국에서는 노조가 회계공개를 하게 돼 있습니다. 영수증 하나까지 다 공개하지요.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합니다. 노조위원장 선거의 선관위 위탁관리와 노조의 회계공개, 이 두 가지를 법제화할 생각입니다. 아마 민노총이 극렬히 반대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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