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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의 품격

원조 악역 독고성의 아들 독고영재

“천 번은 가슴앓이를 해야 진짜 배우!”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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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초 영화 〈남부군〉 〈하얀 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 캐스팅되면서 얼굴 알려
⊙ “아버지 독고성이 우리 가족에게 남겨준 것이라곤 습관화된 기다림과 한없는 체념뿐”
⊙ 20년 무명시절… 연극배우하며 석유난로, 정수기 팔아
⊙ 충무로의 악역 이예춘·허장강·독고성… “스크린 밖에선 자상하고 부드러운 분들”
  배우 독고성(본명 全原潤·1929~2004)은 독특한 성격의 악역 스타로 1950~ 70년대에 은막을 누볐다. 박노식, 장동휘, 황해 등이 ‘정의의 사나이’ 역을 도맡았다면 상대 악역은 독고성, 이예춘(아들이 이덕화), 허장강(아들이 허준호)이었다.
 
  독고성의 장남 독고영재(본명 全永宰·65)는 은곰상 신인남우상(1973년작 영화 〈빗방울〉),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1992년작 영화 〈하얀 전쟁〉)을 받은 실력파 배우다. 2세 배우 이덕화, 허준호, 최민수(최무룡의 아들), 박준규(박노식의 아들), 김희라(김승호의 아들)가 요즘은 뜸하지만, 독고영재는 꾸준히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누빈다.
 
  그의 연기에는 아버지 독고성의 날렵한 색깔이 겹쳐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처럼 악역에도 종종 출연하지만, 그의 악역은 인색함이나 뒤가 구린 고약함과는 거리가 멀다. 마초 이미지지만 뭔가 정체성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디테일의 연기가 엿보인다. 내면에 말 못할 사연이 있을 것 같은 ….
 
  우선 독고영재 하면 시청률이 60%까지 갔던 MBC 드라마 〈엄마의 바다〉(1993)가 떠오른다. 고현정이 최민수와 독고영재를 두고 흔들릴 때, 시청자들은 달동네에 사는 잘생긴 최민수보다 트렌치코트 깃을 세운 고독한 독고영재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이들이 영화 〈하얀 전쟁〉에서 ‘하사 김문기’로 분(扮)한 독고영재를 기억하고 있다. 안성기와 이경영·심혜진 사이에서 그는 선이 굵은 개성 연기를 보여주었다. 지난 11월 30일 그의 자택이 있는 경기도 고양을 찾아갔다. 60대라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젊어 보였다.
 
  “아버지(독고성)가 배우셨고,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배우가 됐으니 피는 못 속이는 법이지만 저는 끼보다는 부단히 노력해 온 배우라고 말해야 옳을 겁니다. 끼가 철철 넘치는 배우였다면 20년 가까이 무명의 세월을 버텨 낼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가 말한 ‘20년 무명’은 1973년 영화 〈빗방울〉로 신인상을 받은 뒤 1992년 〈하얀 전쟁〉으로 다시 주목받기까지의 여백을 말한다.
 
  “은사이신 동랑(東朗) 유치진(柳致眞·1905~1974) 선생과의 약속 때문에 거의 20년간 충무로와 등을 졌어요. 동랑 선생은 제게 순수예술인 연극만 하라고 권하셨어요. 제가 〈빗방울〉로 신인상을 타자 학장실(당시 서울연극학교. 지금의 서울예술대학)로 저를 불러 ‘왜 상업예술(영화)에 출연했느냐’고 나무라시더군요. 다시는 영화를 안 하겠다고 선생과 약속했죠.”
 
  사실 신인상을 받고 영화사에서 출연제의가 쏟아졌다. 대본이 40편 정도 들어왔던 걸로 기억했다. 하지만 동랑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그는 ‘무명 20년’간 주로 연극무대에만 섰다. 생계를 위해 사업에도 손을 댔다. 석유난로, 정수기 등을 수입해서 파는 무역업을 했다. “개인적으로 이 시기가 혼돈기였다. 연기를 하자니 돈이 안 되고, 돈을 벌자니 좋아하는 연기를 못하던 시절이었다”고 고백했다.
 
 
  무명시절 B급 에로영화에 출연
 
영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1994)에서 최민수와 독고영재.
  독고영재는 “어린 시절, 배우가 될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애석하게도 아버지가 잘나가는 배우라는 사실이 우리 가족에게 남겨준 것이라곤 습관화된 기다림과 한없는 체념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촬영을 이유로 허구한 날 외박이었고 1년에 반 이상은 집을 비웠죠.
 
  아버지는 많을 때는 15편의 영화에 겹치기 출연을 하기도 했어요. 집은 매일 영화 제작자들과 매니저들로 어수선했죠. 그러나 아버지가 직접 영화제작에 뛰어들어 실패하는 과정도 지켜보았어요. 집안은 쑥대밭이 됐고 제 기타까지 압류딱지가 붙을 정도였어요.
 
  그런 고통을 알기에 아버지는 제가 배우의 길을 걷는 걸 원치 않으셨습니다. 저는 연기자 대신 정치부 기자가 되고 싶었어요. 그러나 동랑 선생의 권유로 배우가 됐고, 기꺼이 20년간 무명의 길을 걸었어요.”
 
  그는 “무명생활 하는 동안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했다. 이 말에 행간의 깊이가 느껴졌다. 시간으로 따지면 스물한 살부터 마흔한 살까지다. 스스로 배우의 황금기를 무명의 시간으로 채운 셈이다.
 
  “고백하자면, 무명시절 B급 에로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단지 배고픔 때문만이 아니었어요. 방 두 칸, 반지하 셋방에 사는 어느 16밀리 감독의 가난한 살림을 보고 출연을 결심했어요. 저를 캐스팅하지 않으면 몇 푼 안 되는 연출료도 못 받으니까요. 충무로 현실에 대한 분노와 어쩔 수 없는 연민을 느꼈습니다.”
 
  ‘무명 20년’ 동안 그는 찬밥 신세의 서러움을 알았고 시쳇말로 밥 먹고 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알게 됐다. 무명의 내공을 채우고 있을 때 그를 은막에 다시 부른 이는 정지영 감독이었다.
 
영화 〈남부군〉(1990)에서 안성기와 독고영재. 그는 정지영 감독의 〈남부군〉에 출연하면서 이후 정 감독의 영화에 자주 캐스팅됐다. 영화 〈구미호〉(1994)에 출연한 정우성과 고소영, 독고영재. 이 영화는 정우성의 첫 데뷔작이다(오른쪽).
  독고영재는 1990년대 초 영화 〈남부군〉, 〈하얀 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 잇따라 캐스팅되면서 그제야 대중 앞에 얼굴을 드러낸다. 언젠가 정 감독은 독고영재를 처음 봤을 때를 회상하며 “어딘지 세상을 무척 힘겹게, 그러나 올곧게 살아온 인물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영화 〈남부군〉을 1년 반 이상 찍었어요. 빨치산의 전설적인 지도자 이현상의 참모인 ‘이봉각’ 역이었는데 촬영기간이 길어 중간중간에 연극에도 출연했었죠.
 
  〈하얀 전쟁〉은 정지영 감독에게 동경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안겨준 작품입니다. 저에게는 남우조연상을 안겼고요. 대부분의 촬영이 베트남 현지에서 이뤄졌죠.
 
  소설가 안정효의 〈헐리우드 키드 …〉는 한마디로 한국판 ‘시네마 천국’입니다. 영화에 미쳐 오로지 영화에 살고 영화에 죽는 인물 ‘윤명길’을 맡았어요. 제 중·고교 시절과 너무나도 닮은 인물이었죠.”
 
  〈헐리우드 키드…〉는 배우 2세인 최민수와 독고영재가 주인공이었다. 최민수의 연기도 연기지만 독고영재는 세상을 미워하면서도 때로 세상과 적당히 타협할 줄 아는, 어쩌면 찌든 현대인의 자화상 같은 ‘윤명길’ 역을 완벽하게 그려 냈다.
 
  “〈남부군〉 이후 출연이 거듭할수록 영화 속 배역의 비중이 점점 커졌어요. 〈남부군〉에서는 단역급 조연이었지만 〈하얀 전쟁〉은 조연, 〈헐리우드 …〉에선 비로소 완전한 주연이 됐죠.”
 
  그즈음 MBC 드라마 〈엄마의 바다〉에 출연하게 됐다.
 
  “영화 3편에 출연하니, 지나가던 행인 10명 중 3명이 저를 알아봤는데 〈엄마의 바다〉후에는 10명 중 8~9명이 알은체를 했어요. 시청률이 최고 52%까지 올라갔으니까요.”
 
 
  “나는 끝내 험프리 보가트를 버리지 않았다”
 
  〈엄마의 바다〉는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는데 당대 최고의 배우인 박근형·김혜자·최민수·고현정·고소영·조형기·이창훈 등이 출연했다. 각본은 〈전원일기〉를 집필했던 김정수가 맡았다. ‘무명 20년’을 겨우 털어낸 독고영재는 TV 브라운관에선 갓 데뷔한 신인과 다름없었다.
 
  〈엄마의 바다〉 스토리는 이렇다. 몰락한 가정의 맏딸인 고현정은 학원 강사 최민수와 연인 사이다. 어머니 김혜자는 보잘것없고 가난한 최민수와의 결혼을 반대한다. 이때 학원 소장인 독고영재가 등장, 고현정에게 호감을 드러내면서 최민수와 갈등한다. 김혜자는 내심 사위로 독고영재를 염두에 둔다. 딸 고현정은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 대신 최민수를 택한다. 독고영재는 두 사람의 행복을 빌며 미국으로 떠난다.
 
  “처음엔 단 10회만 출연하기로 돼 있었어요. 최민수·고현정 사이에 갈등을 만들어 주고 미국으로 떠나는 걸로 설정됐는데, 제가 인기를 얻으면서 드라마가 꼬였어요. 저를 본 시청자 반응이 ‘어? 특이하다’였어요. 그때 ‘결혼하고 싶은 남자 1위’, ‘사위 삼고 싶은 남자 1위’가 최민수가 아닌 독고영재였어요.
 
  그래서 종영할 때까지 출연하게 됐는데 각본을 쓴 김정수 작가 말씀이 ‘독고영재 인기 때문에 드라마 방향이 틀어졌다’고 했어요. 어쨌든 작가 입장에선 의도한 작품 방향이 바뀌어 실패한 작품이랄 수 있지요.”
 
  — 처음 출연 제의가 어떻게 왔나요.
 
  “MBC 최종수 드라마국장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처음엔 ‘영화배우가 TV에 나가면 욕먹는다’고 거절했죠. 그런데 최 국장이 ‘우리도 영화배우를 출연시켜 덕본 적이 없다’고 하데요. 순간적으로 오기가 생겼죠. 그래서 출연하게 됐어요.”
 
  그는 “〈엄마의 바다〉에서 험프리 보가트 흉내를 냈다”고 했다.
 
  “영화 〈카사블랑카〉를 보며 험프리 보가트에 빠졌죠. 우수 어린 트렌치코트와 담배 피우는 모습 하나로 모든 걸 연기했다고 할까요? 그의 연기는 폴 뉴먼의 발랄하고 짜임새 있는 멋이나 더스틴 호프먼의 어눌하면서도 이지적인 멋, 알랭 들롱의 차갑고도 인간적인 멋과는 또 다른 연기의 표본을 저에게 남겼어요.
 
  무명 시절, 장사도 하고 좌절을 경험했을 때도 저는 끝내 험프리 보가트를 버리지 않았고 〈엄마의 바다〉를 통해 그를 떠올렸어요. 어쩌면 저를 배우로 이끈 원동력이었는지 모르죠.”
 
 
  독고영재의 인생작품은 단역으로 출연한 〈화엄경〉
 
영화 〈화엄경〉(1993)의 한 장면. 독고영재는 사연 많은 욕쟁이 의사 ‘해운’으로 분했다.
  — 출연작 중에서 ‘인생연기’라고 할 만한 작품은?
 
  “장선우 감독의 〈화엄경〉입니다. 1993년작인데 ‘해운’이란 인물로 딱 한 시퀀스에 출연했어요. 고작 4~5분의 자그마한 역할이었지만 제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고 할까요? 제가 생각한 대로의 연기를 보여줬어요. 사람들이 ‘저 사람이 독고영재 맞아?’ 그랬으니까요.”
 
  〈화엄경〉 속 ‘해운’은 다리를 절뚝거리는 욕쟁이 의사다. 두꺼운 안경을 쓴 독고영재의 모습이 낯설다. 무슨 사연인지 ‘해운’은 도시를 떠나 궁벽한 어촌에서 가난한 이들을 치료하며 산다. 어머니를 찾아 헤매는 주인공 ‘선재’는 ‘해운’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다음은 영화 속 한 장면.
 
  선재 :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는 참 커요. 거기에 비하면 사람은 너무 작아요. 그렇죠?
 
  해운 : 못난 놈. 어째서 사람이 바다보다 작다고 생각하지? 저 하늘보다도 크고 우주보다도 큰 게 사람인데.
 
  선재 :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해운 : 사람이 만든 시간을 생각해 봐. 우주의 시작만큼이나 긴 시간을 통해 사람이 만들어졌어. 그 기나긴 시간 동안 보이지 않는 물질들이 서로 만나고 헤어지고 죽고 살면서 오늘날 사람에까지 이르렀어. (선재가 쥔 조개껍데기를 보며) 그 조개껍데기도 바다만큼 크고 우주만큼 큰 것이야. 이 세상엔 크지 않은 게 없어.
 
  선재 : 그런데 아저씬 왜 욕쟁이가 됐죠?
 
  해운 : 허허허. 욕이라도 해야지 어떡하니? 그 크나큰 사람들이 바보처럼 돈이 없어 쩔쩔매고 외로워하면서 죽어 가는데 ….
 
  선재 : 돈이 사람보다도 더 큰가요?
 
  해운 : 왜 너 같은 녀석이 날 찾아왔는지 모르겠다. 자, 바다나 실컷 보고 가려무나. 모든 것은 낮아져 바다가 되고, 하늘은 거기로 내려와 있잖니? 저것은 얼마나 평등하냐?
 
  선재 : 평등이 뭐예요?
 
  해운 : 어리석은 이들은 아래위를 다투지만, 바다는 아래위를 다투지 않는다. 어리석은 이들은 많고 적음을 다투고, 있고 없음을 다투지만, 저것은 그렇지가 않다. …

 
  독고영재의 ‘20년 무명’이 오버랩되는 명대사다. 그가 이 단역을 ‘인생연기’라고 말하는 이유일지 모른다.
 
  — 자신만의 연기법은?
 
  “후배들에게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말해요. ‘보통 사람과 같은 인생을 살지 마라’고 말하죠. 경험할 때 느끼는 좋다, 나쁘다, 속상하다는 감정을 갖지 말라는 충고도 하죠.
 
  경험은 연기의 기초입니다. 연애도 많이 해 보라고 권해요. 연애할 때의 열정이나 기쁨, 헤어질 때의 낙담이나 슬픔도 다 연기 속에 쌓입니다. 연기의 기교는 비슷하지만 경험의 여부에서 차이가 납니다. 경험은 상상력으로 커버할 수 없어요. 보통사람처럼 살면서 배우가 된다? 안 됩니다. (배우가) 될 수 없어요. (연기) 기술만 적당히 배워 배우가 되려 한다면 진작 그만둬야 합니다.
 
  지금 무대나 스크린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은 죄다 엄청난 고통을 감내한 이들입니다. 그분들이 얘기를 안 꺼낼 뿐이지 다 사연이 많아요. 그런 경험을 한 이들만이 제대로 된 연기를 할 수 있어요.”
 
 
  “배우는 다중인격자가 돼야”
 
  독고영재는 이런 말도 했다.
 
  “아날로그 시대의 연기는 감성적으로 단순하지만, 디지털 시대는 다중적인 성격의 연기를 요구합니다. 이제 배우는 다중인격자가 돼야 해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강자냐 약자냐에 따라 배우의 말투나 생각이 달라져야 해요. 연기 영역을 액션이나 멜로로 규정지어서도 안 됩니다. 코믹 연기도 할 수 있어야 해요. 다중 연기를 위해서는 다중의 감성을 지녀야 합니다. 러시아 연출가 스타니슬랍스키(Konstantin Stanislavski)가 배우의 조건으로 ‘내적 진실의 표현 능력’을 언급하던 때보다 지금은 내적 갈등이 훨씬 많은 시대니까요.”
 
  — ‘1만 시간의 법칙’이란 말이 있어요. 누구나 1만 시간을 투자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인데 누구나 노력하면 훌륭한 배우가 될 수 있나요.
 
  “유감스럽게도 ‘1만 시간의 법칙’은 배우에게만은 예외입니다. 노력만으론 부족해요. 운이 따라줘야 합니다. 능력이 타고났다면 운이 다가오기까지 버텨야 해요. 버티다 보면 운과 시대성이 맞아떨어질 수 있어요.
 
  물론 DNA를 타고나야 합니다. 그래야 ‘스타’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요. 동랑 선생 말씀은 ‘스타는 90% 타고나야 한다’고 하셨어요.”
 
  — 독고영재 같은 2세 배우들은 타고난 사람들이죠?
 
  “타고났죠. 그런데 타고나도 다 스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배우의 피를 물려받았어도 2세들 중 형제가 여럿인데도 배우는 1명밖에 안 돼요. 그것참 묘하죠?”
 
  — 아버지 독고성이 아들에겐 큰 산이지 않았나요.
 
  “사람들은 늘 아버지 연기를 잣대로 저를 바라봤어요. 제가 아무리 해도 (아버지를) 못 뛰어넘는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게 됐죠. 영화계는 냉정합니다. 실력이 없으면 아무리 아버지 후광이라도 안 써요. 그걸 알기에 더 몸부림쳤죠. 그게 2세의 운명입니다.”
 
  — 악역을 주로 맡았던 아버지 독고성은 실제 어떤 분이셨나요.
 
  “아버지나 이덕화의 아버지 이예춘씨, 허준호의 아버지 허장강씨는 충무로를 누비던 악역 스타의 대명사셨죠. 그분들은 영화 속에서 잔인한 살인과 파렴치한 행각을 벌이는 연기를 했어요. 아들인 저도 독고성의 악역에 민망해했죠.
 
  어쩌다 그분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오시기라도 하면 처음엔 무서워 도망치기 바빴어요. 그러나 영화 밖에서 그분들 성격은 180도 달랐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자상하고 부드러운 분들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소탈한 성격이셨죠.
 
  하지만 생활에는 무능력자셨어요. 배우는 화려하지만, 현실성이 모자라는 삶을 사니까요. 언젠가 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배우는 한때 화려하지만 불을 찾아 날아드는 나방과 같다. 평생 꿈만 꾸는 사람’이라고요. 아버지는 제가 배우 되는 걸 반대하셨지만 어쩌다 꿈을 꾸듯 지금의 제가 됐어요.”
 
  독고영재는 요즘도 꾸준히 영화와 드라마에서 그의 얼굴을 찾을 수 있다. 현재 SBS 드라마 〈브라보 마이 라이프〉에서 JT그룹 회장 ‘김호태’로 출연하고 있다. 부하 직원들을 인간취급하지 않을 정도로 상스럽고 저열한 인물이다. 아들 ‘김준호’(배우 강성민)도 그를 쏙 빼닮았다.
 
  그는 최근 2~3년 사이 MBC 드라마 〈좋은 사람〉, SBS 드라마 〈애인 있어요〉, KBS 드라마 〈고양이는 있다〉 등에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했다. 스크린에서도 자주 얼굴을 볼 수 있다. 히트작은 없으나 한명구 감독의 〈제4 이노베이터〉(2014년작)에서 일본인 ‘후지타’로, 박선욱 감독의 〈90분〉(2012년)에 ‘민회장’으로 분했다.
 
  “1990년대 충무로를 누비던 동료 배우들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꾸준히 출연하려면 영화 제작사와 유대관계가 있어야 해요. 그런데 지금 영화계를 이끄는 감독의 연령층이 30~40대이니 우리 같은 중견배우를 잘 몰라요. 게다가 분장이나 특수효과가 발달해서 30대를 감쪽같이 60대로 분장시켜요.
 
  따지고 보면 독고성·김승호·허장강이 전성기 때도 배우가 50대를 넘으면 다 퇴장했었죠. 허장강 선생도 40대 때 노역(老役)을 많이 하셔서 그렇지 쉰한 살 때 은막에서 사라지셨어요. 김승호 선생도 마찬가지고요.”
 
 
  “문화예술계가 정치논리에 빠지지 않아야”
 
박정희 대통령으로 출연했던 드라마 〈영웅시대〉(2004)의 한 장면.
  독고영재 하면 ‘박정희 대통령’이 떠오른다. 1995년 SBS 드라마 〈코리아게이트〉에서 박정희 역을 처음 맡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MBC 드라마 〈영웅시대〉에서 다시 박정희가 됐다. 2014년 TV조선 금토 드라마 〈불꽃 속으로〉에서도 ‘박통’으로 분했다.
 
  10년에 걸쳐 같은 인물을 서로 다른 드라마에 3차례나 캐스팅된 것은 무척 이례적이다. 외모가 닮기도 했지만, 말투나 내면에서 풍기는 ‘아우라(Aura)’가 박정희 이미지를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어쩌면 현대사의 가장 다층적이며 민족의 에너지를 대폭발시킨 인물이자 공과(功過)가 나뉘는 당대인을 표현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캐스팅이 되고 박정희란 인물에 대해 정말 많이 공부했어요. 사실 아버지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가까우셨죠. ‘박통’을 지근에서 모셨던 서너 분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저도 학창시절 때 3선개헌 반대 데모에 참여했었죠.
 
  박정희를 연기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어요. 박정희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이 공과를 모두 보지 못한 채 한쪽 이야기만 듣고 판단한다고 할까요? 남북으로 갈린 분단의 현실을 젊은 세대가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박정희 배역은 그에게 좋은 기억만 남기지는 않았다. 2004년작인 〈영웅시대〉는 100부 방영을 예고하고 시작했으나 70부 만에 종영됐다. “박정희를 미화시켰다”는 논란 때문이었다.
 
  “당시 〈영웅시대〉 시청률이 20%였어요. 1000만명이 보는 드라마를 조기에 종영한 것에 많은 사람이 가슴 아프게 생각했었죠. 드라마를 만든 작가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잠시 중단됐을 뿐’이라고 했어요.
 
  대한민국은 박정희라는 ‘정치의 힘’과 이병철·정주영이라는 ‘기업의 힘’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박 대통령이 정주영 현대 회장에게 울산에다 조선소를 지으라고 했을 때 정 회장이 처음엔 못하겠다고 도망치지 않았나요? 그런 정 회장을 ‘박통’이 설득했어요. 박정희가 유신 선포로 욕을 먹어 가면서 추진했던 중화학공업 건설은 일류국가로 가는 막차였다는 평가는 유효합니다.”
 
  — 박정희 이미지 때문에 정치권으로부터 출마 권유를 받지 않았나요.
 
  “여야를 막론하고 수도 없이 받았어요. 모두 고사했어요. 정치를 했다면 40대 때 했겠죠.”
 
  — 문화예술인이 정계로 나가고 박수를 받은 경우가 드물어요.
 
  “정치인이 문화예술인을 이용하려는 풍토가 문제입니다. 정치논리 탓에 순진한 예술인이 소신을 펼 수가 없더군요. 이용하다 쓸모가 없어지면 버림받기 일쑤죠.
 
  오래전 제가 ‘선플과 나눔’이란 모임을 만들어 초대 총재를 맡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주위로부터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았어요. 단체장과 의회를 장악한 다수당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지원이 결정되더군요. 굉장히 힘들었어요. 임기가 끝나 총재직을 물려주면서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남 돕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오해도 많이 받고 국회의원 나오라는 소리도 무지하게 들었죠. 결국엔 정치논리가 문제더군요. 아무리 좋은 취지의 일이라도 못하게 막아야, 다음에 자신들이 정권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제가 집행조직 위원을 맡았던 ‘서울 충무로국제영화제’도 그런저런 이유로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피해자는 국민이었어요.”
 
  — 요즘 영화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정치가 영화를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국민에게 긍정의 위안을 줄 수 있는 영화가 드물어요. 그저 과거 얘기만 합니다. 영화 타깃이 20~30대여서 그들 시각에 맞는 영화를 만들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나 생각해요. 가족이나 실버 연령을 대상으로 하는 영화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모든 사람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영화가 나왔으면 합니다. 앞으로는 문화예술계가 정치논리에 빠지지 않아야 해요.”⊙
 
독고영재의 ‘조연배우론’
 
  연기의 기본은 ‘경험’.
  경험이 없으면 타고난 재능 못 살려

 

  그는 “조연배우가 돋보일 때 영화가 성공한다”고 말한다.
 
  “주인공만으로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갈 수 없다. 조연이 받쳐 줘야 주연이 돋보인다. 어쩌면 주연보다 책임이 더 크다. 주연보다 연기를 더 잘하는 조연이 많은 것이 한국 영화계의 현실”이라고 했다.
 
  다만 비치는 모습이 주인공보다 제한적인 만큼 심혈을 기울여 연기해야 한다. 연기의 기본은 ‘경험’이다. 경험이 없으면 타고난 재능도 못 살린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삶이 자신을 거칠게 흔들 때 함께 흔들리며 한 뼘씩 성장하고 새로워진다는 의미입니다. 간혹 어떤 조연의 연기를 보면 ‘천 번은 가슴앓이를 했겠구나!’ 하고 느끼게 하는 배우가 있어요. 천 번은 가슴앓이를 해야 진짜 배우가 됩니다. 그런 연기를 해야 해요.”
 
  독고영재는 영화 〈범죄도시〉에서 조선족 깡패로 나왔던 배우 진선규의 연기를 칭찬했다. 진선규는 악랄한 보스 ‘장첸’(윤계상 분)의 부하로 나왔다. 완벽한 조선족 연기로 그가 1992년에 탄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올해 거머쥐었다.
 
  “연기적 카리스마는 윤계상이 돋보였지만 진선규는 조연의 힘을 보여주었어요. 어떤 영화는 감독의 연출력으로 끌고 갑니다. 배우는 그저 따라가죠. 그러나 어떤 영화는 배우가 영화를 이끌죠. 〈범죄도시〉는 탄탄한 조연들이 영화를 이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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