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尹 대통령 내외를 공격하는 ‘가짜 뉴스들’과 흔들리는 대통령실

美 대통령들은 리더십 위기를 이렇게 극복했다!

  •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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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대통령의 5가지 조건
① 취임 후 첫 100일의 중요성 ② 강력한 비서실장과 능력 있는 참모들
③ 국회와의 협력 ④ 효율적인 홍보전략 ⑤ 리더십에 대한 연구(데이비드 거겐)

⊙ ‘가짜 뉴스’로 윤석열 대통령 내외 공격받고 있지만, 대통령실 대응은 미숙
⊙ “도어스테핑은 대통령을 위험에 빠트려”(강형원 전 백악관 출입 사진기자)
⊙ “대통령이 국가의 정신이라면 퍼스트레이디는 국가의 심장”(데이비드 거겐)
⊙ 레이건, 첫 100일 위한 계획 수립… 클린턴, 정권 인수 기간 중 매일 술 파티
⊙ 클린턴, 궁지에 빠지자 공화당 출신 공보전문가 데이비드 거겐에게 SOS
⊙ “‘토를 다는 사람’을 주목하라”(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
윤석열 대통령이 9월 15일 용산 대통령실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
위기를 헤쳐나가는 지도자의 이야기는 늘 눈길을 끈다. 다큐멘터리 〈9·11: 백악관 상황실, 그 안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Inside the president war room)〉도 그렇다. 제목 그대로 2001년 9·11테러 당시 부시 대통령을 둘러싼 백악관 최심층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담았다. 사상 초유의 위기에 맞서 싸우며 부시 대통령의 리더십이 단단해지는 과정이 무척 흥미롭다.
 
  9·11테러만큼은 아니지만 윤석열 대통령도 위기 속에 있다. 취임 후 80여 일 만에 지지율이 20%대로 내려갔다. 이유가 뭘까. 여권 일각에선 야권에서 쏟아내는 ‘가짜 뉴스’를 지목한다. 어느 정도는 사실일 수 있다.
 
  대선 유세 시기부터 넘쳐나던 가짜 뉴스는 지난 9월 영국 여왕 장례식 조문 때에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9월 19일 윤 대통령 내외가 영국에 도착하자 카카오톡 등 SNS에 일명 ‘지라시’가 일제히 돌기 시작했다.
 
  〈윤석열, 엘리자베스 여왕 조문 취소 배경 사실일까요? 미국과 프랑스는 사전에 의전이 조율이 되었음. 한국은 도착해서 의전 요구, 영국은 무리한 요구라며 일반 조문을 권함. 미국, 프랑스 등은 사전 합의를 통해 전용차 이용. 한국은 사전 협의된 게 없고 한국 측이 전용 차량을 현장에서 요청했지만 왕실은 모두 거절함. 중요한 건 한국은 초청받지 못했다는 거. 윤석열은 자기가 정말 뭐라도 되는 줄 아는 거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짓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외교부가 자국의 대통령이 해외에 가는데 사전 협의를 안 했다는 표현, 영국이 여왕의 장례식에 하필 한국만 초청하지 않았다는 발상 모두 한 번만 생각해보면 도저히 사실일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경우, 전용차 없이 직접 걸어가 조문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國葬 관련 ‘가짜 뉴스’
 
  이런 수준의 지라시를 직접 입으로 퍼트린 인사들도 있다. 황희두 노무현 재단 이사는 9월 20일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김건희씨의 망사 모자는 왕실 로열패밀리들만 착용하는 아이템이라는데…. 재클린 따라 하려고 무리수를 참 많이 두는 거 같네요.”
 

  김어준은 9월 20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자를 쓰셨더라구요. 망사포가 달린 걸 썼던데, 영국 로열 장례식에 전통이 있어요. 로열패밀리의 여성들만 망사를 쓰는 겁니다. 그래서 장례식에 참석한 다른 나라 여성들을 보면 검은 모자를 써도 베일을 안 해요. 로열패밀리 장례식에서는. 적어도 영국에서는 그래요. 모르시는 것 같아서 알려드렸습니다.”
 
  당일 프랑스·캐나다·브라질 정상 부인들도 베일이 달린 모자를 착용했다. 김어준씨가 언제부터 영국 왕실 문화에 정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왕실 여성이라도 다 베일을 쓰는 건 아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며느리인 카밀라 왕자비와 손녀며느리인 메건 마클 왕자비는 장례 기간 베일을 쓰기도, 안 쓰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조문록에 추모 글을 남기는 장면을 두고도 억측이 나왔다.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KBS 라디오에 출연해 ‘조문록은 왼쪽에 쓰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후에 확인해보니 스위스, 인도 등 여러 국가 정상이 윤 대통령처럼 왼쪽에 추모 글을 썼다. 나루히토 일본 천황도 왼쪽에 썼다.
 
 
  ‘포장지’가 ‘내용물’에도 영향
 
데이비드 거겐 하버드대 교수가 쓴 《권력의 목격자》. 미국 대통령의 리더십이 잘 담겨 있다.
  사실 윤 대통령이나 김건희 여사를 두고 루머를 퍼트리는 건 하루이틀 얘기가 아니다. 지난 7월 11일엔 김건희 여사를 두고 루머가 유포됐다. ‘클리앙(clien)’이라는 인터넷 게시판에 ‘김건희 여사가 청담동 버버리 매장에서 3000만원어치 쇼핑했다’는 목격담 형식의 글이 올라왔다. 정확히는 목격담 식으로 쓰인 댓글을 인용한 글이었다. 이것 역시 한 번만 생각해보면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음에도 인터넷 여기저기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후에 대통령실은 사실이 아니라고 확인했다.
 
  냉정히 보면 일부 야권 인사의 이런 행태를 막을 수는 없다. 이런 억측들이 나돌 수 있는 빌미를 주지 않는 게 중요하다. 9월 5주 차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대통령 국정수행 능력에 대해 긍정평가를 한 응답자는 24%다. 취임 이래 최저점을 찍었다. ‘잘못하고 있다’고 대답한 이는 65%였다. 부정적이라고 대답한 이유를 살펴봤다. 외교문제(17%), 경험 부족(13%), 발언 부주의(8%), 민생 살피지 않는다(7%), 신뢰부족(6%), 소통 미흡(5%), 독단적(4%), 집무실 이전(2%) 순이다. 사유를 살펴보면 윤 정권이 당면한 위기의 실체를 알 수 있다. (집무실 이전 빼고는) 특정 정책에 대한 불만이 아니다. 결국 ‘포장지’의 문제다.
 
  문제는 포장지가 내용물인 리더십과 통치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과 참모들은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미국 대통령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데이비드 거겐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의 《권력의 목격자(Eyewitness to Power)》와 《불에 덴 심장-위대한 리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Hearts Touched with Fire: How Great Leaders are Made)》에는 대통령 리더십에 대한 탁월한 분석이 담겨 있다. 거겐 교수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연설문 집필자로 백악관 생활을 시작, 제럴드 포드, 로널드 레이건, 빌 클린턴 등 4명의 대통령을 보좌했다. 이념의 잣대가 아닌, 바로 옆에서 관찰한 대통령과 참모들의 통치 행태를 기준으로 분석했다. 레이건의 성공뿐 아니라, 닉슨의 몰락, 탄핵 위기를 맞았던 클린턴의 실패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 그의 분석을 토대로 추려본 ‘성공하는 대통령의 조건’은 다섯 가지다.
 
 
  첫 100일이 임기 좌우
 
  첫째, 취임 직후 첫 100일의 중요성이다. 집권 이후 14주간 형성된 인상은 대중의 뇌리에 깊이 남는다. 닉슨이 워터게이트 건으로 사임한 후, 부통령이었던 제럴드 포드가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포드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국민 여러분, 미국의 오랜 악몽은 이제 끝났습니다. 저는 대통령직에 투표를 통해 선출되지 않았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기도로 저를 인준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아내에게 아침을 차려주는 모습이 언론에 소개되며 친근한 이미지도 추가됐다.
 
  사고는 취임 30일째에 일어났다. 이날 포드 대통령은 느닷없이 닉슨을 사면하겠다고 발표했다. 더 이상의 수사를 중지하겠다는 뜻이었다. 치명적인 실수였다. 사전에 언론에 흘리며 여론을 살핀 것도 아니었다. 포드의 지지율은 하룻밤 사이에 71%에서 49%로 급락했다. 이후 그는 좀처럼 지지율을 회복하지 못했다. 결국 대선에서 패배해 대통령 임기를 895일로 끝내야 했다. 20세기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재임 기간이 짧다(심지어 중간에 암살당한 케네디 대통령보다도 짧다).
 
  레이건은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 참모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대통령 임기 첫 100일을 위한 초기 집권계획을 준비하라.”
 
  참모들은 다섯 대통령의 첫 100일을 분석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아이젠하워, 케네디, 닉슨, 카터. 이들의 입법안과 기자회견, 이들이 구사한 상징적인 제스처, 해외 순방, 보좌관과 각료 인사, 신문기사와 학자들의 분석을 종합했다. 거기서 얻은 교훈을 종합해 정권 인수 기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인수 기간에 장·차관들의 인사를 이미 완료했다. 전문 헤드헌터의 도움을 받았다.
 
  레이건 본인은 인수 기간에 워싱턴 분위기를 익히기 위해 노력했다. 부인 낸시 여사와 함께였다. 《워싱턴 포스트》의 발행인인 캐서린 그레이엄과 친분을 쌓았다. 친분 때문에 비판을 자제할 《워싱턴 포스트》는 아니었지만 불필요한 독설은 누그러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 레이건은 지금까지도 성공한 대통령으로 손꼽히고 있다.
 
 
  클린턴, 임기 초에 백악관 참모 교체하고 재기 성공
 
1952년 12월 3일 대통령 당선인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한 아이젠하워를 맞으며 이승만 대통령이 악수하는 모습. 사진=조선DB
  아이젠하워 역시 정권 인수 기간을 잘 활용했다. 한국전쟁 전선을 깜짝 순방했다. 군인 출신이지만 평화를 추구하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클린턴은 정권 인수 기간을 잘 활용하지 못한 경우다. 매일같이 지인들과 축하 파티를 하며 새벽까지 술을 마셔댔다고 한다. 결국 임기가 시작되자 체력이 소진됐다. 대통령이 지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몸이 지치면 판단력이 영향을 받는다.
 
  집권 초 클린턴 정권은 별별 악재에 다 시달렸다. 대통령 전용기를 국제공항에 세워놓고 전용기 안으로 이발사를 불러 머리를 다듬었다가 곤욕을 치렀다. 할리우드 배우들의 머리를 담당하는 일류 이발사였다. 이 소식은 언론에 일제히 도배됐다. 지지율은 급락했다. 1월에 대통령에 취임한 클린턴은 백악관 참모들을 교체하고 8월에 길고 절제하는 여름휴가를 보낸 후에야 원기를 회복했다. 지지율도 올라갔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떨까. 아쉬운 부분이 몇 가지 있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3월 20일에 일어난 일이다. 이날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으로 용산 집무실 이전에 대한 언론 브리핑을 했다. 그 전에 하다 못해 공청회나 실무 담당자의 브리핑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정치적 책임과 별 관련이 없는 연예인도 출연료 협상이나 법적인 송사(訟事) 같은 이미지가 구겨지는 일에 나서지 않으려 매니저를 둔다. 용산 집무실 이전은 찬반 여론이 나뉘는 사안이었다. 이런 사안일수록 처음부터 대통령(당선인)이 전면에 나서서는 안 된다. 더구나 임기를 시작하기도 전이었다. 취임 후를 위해 최대한 아껴야 할 대통령의 국정 추진 동력을 소진케 하는 행위였다. 현재 일고 있는 집무실 이전비용 논란에 따르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고스란히 대통령에게 전가되고 있다.
 
 
  성공한 대통령 옆엔 강력한 비서실장
 
백악관 사진기자 시절인 2009년 백악관 크리스마스 파티 때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 영부인 미셀과 기념촬영을 한 강형원 기자. 사진=강형원 기자
  두 번째 성공한 대통령 옆에는 강력한 비서실장과 능력 있는 참모들이 있다. 우드로 윌슨에게는 에드워드 만델 하우스, 아이젠하워에게는 셔먼 애덤스, 레이건에게는 하워드 베이커, 오바마에게는 람 이매뉴얼이 있었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단순히 대통령의 심기를 참모들에게 중계하는 존재가 아니다. 수시로 올라오는 세부 문제를 검토하고 수석들, 보좌관들의 업무를 조율하고 지휘하는 자리다. 강력한 권한과 책임 의식이 필요하다. 5년 단임, 시간이 부족한 한국 대통령에게는 더 절실한 존재다.
 
  참모진은 대통령이 올바른 결정을 신속히 내릴 수 있도록 완전하고 균형 잡힌 정보를 대통령에게 제공해야 한다. 대통령 참모를 하는 동안엔 모든 주의를 대통령과 대통령이 내리는 결정에만 쏟아야 한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의 결정은 곧 나라의 결정이고, 대통령이 성공해야 국가가 성공하기 때문이다.
 
  미 국무부 선임보좌관이었던 김진우 박사에게서 미 대통령에게 올릴 보고서를 위해 정보기관들이 얼마나 막후에서 논쟁을 벌이는지 들은 적이 있다.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냐 없냐를 두고 대통령이 최적의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가용 자원을 모두 동원해 정보를 모아 밤새워 토론에 토론을 거듭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대량살상무기와 관련해서 부시 대통령은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
 
 
  임기 2년 차에야 공보전문가 뽑은 포드
 
  닉슨의 참모들이 연루된 워터게이트 사건을 본 포드는 자신이 직접 비서실장 역할을 하겠다고 나섰다. 공보를 돕는 대중매체 전략가는 임기 2년 차에야 뽑았다. 결과는 지지율 폭락이었다.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무능한 대통령으로 대중에 비쳤다. 사실 포드는 인격과 지식이 상당한 인물이었다. 20년이 지나서야 좋은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클린턴 백악관에는 비서실장이 너무 많았다. 전통적으로 대통령만의 공간이었던 웨스트 윙(West Wing·집무실과 비서실 공간)에 힐러리와 앨 고어 부통령이 함께 들어왔다. 이 사람 저 사람이 클린턴에게 각기 다른 얘기를 했다. 클린턴은 결국 의료보험개혁 등 주요 공약들을 이루지 못하고 탄핵 위기에 몰렸다.
 
  과거 정권에서 각료를 지낸 인사들에게 참모의 조건에 대해 물었다. 하나같이 ‘참모진 내에 반드시 이질적인 요소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경파와 온건파, 베테랑과 젊은피가 섞여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에드윈 라이샤워는 케네디 대통령 시기인 1961년부터 1966년까지 주일 미국대사를 지냈다. 전후(戰後)의 복잡한 미일 관계를 잘 풀어내고, 미일 동맹을 굳건하게 만든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일본 관련 사안을 결정할 때, 일본을 잘 아는 사람과 일본을 잘 모르는 사람을 두고 토론을 하게 했다고 한다. 일본을 잘 아는 사람들끼리만 얘기하면 똑같은 얘기만 나오기 때문이다.
 
  성향이 다른 사람도 능력이 있다면 과감히 기용할 수 있어야 한다.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핸 하버드대 교수는 케네디와 린든 존슨 대통령을 위해 일했다. 둘 다 민주당이다. 1969년에 공화당인 닉슨 대통령의 참모로 합류했다.
 
  “제가 곤경에 빠졌습니다. 도와주세요.”
 
  클린턴은 집권 후 두 달이 지나 데이비드 거겐에게 말 그대로 구조 신호를 보냈다. 백악관 비서실의 구성 때문에 파국이 오고 있다는 걸 깨달아서였다. 클린턴 비서실의 주요 자리는 선거운동을 함께했던 주지사 시절부터의 참모들이 차지했다. 워싱턴을 잘 아는, 한국식으로 말하면 여의도를 잘 아는 인사들은 배제됐다. 클린턴이 백악관 비서실 운영의 경력자였던 공화당 출신 거겐에게 도움을 요청한 이유다. 공화당 동료들의 원성을 감수하고 ‘미국을 위해’ 거겐은 클린턴 백악관에 합류했다.
 
  참모진이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중요한 대통령의 자질이다. 주독 미국 대사를 지낸 리처드 버트는 《뉴욕타임스》에서 기자를 하고 있을 때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았다. 레이건 대통령이었다. 국무부로 들어와 전략무기 감축 협상 대표를 맡아달라는 요청이었다. 버트는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님 저는 군축에 대해 기사를 썼지, 협상을 할 정도로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자 레이건이 이렇게 말했다.
 
  “나도 잘 모른다. 서로 배워가며 같이 하자.”
 
  물론 버트는 기자를 하기 전에 국제 전략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한 국제문제 전문가였다.
 
 
  ‘특수부 검사는 남의 얘기를 잘 안 듣는 게 미덕’
 
  윤석열 대통령의 소통 방식을 두고 확인되지 않은 여러 얘기가 돈다. 검사장 출신 한 전직 검사는 ‘특수부 검사’ 특유의 스타일이라며 자신의 얘기를 들려줬다.
 
  “제 아들이 네 살 때, 아침에 출근하는 저에게 그러더군요. ‘아빠 오늘은 누구 조지러 가세요?’ 집이든 어디든 ‘조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으니까요. 나는 옳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은 피의자냐 아니냐로 보는 거죠. 권력을 수사하는 특수부 검사는 남의 얘기를 잘 안 듣는 게 오히려 미덕입니다. 외압에 흔들리지 않아야 하니까요. 그렇게 평생 살아왔는데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습니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은 자신의 청와대 안보실장 시절과 외교부 장관 시절을 돌아보며 ‘토를 다는 사람’을 주목하라고 강조했다.
 
  “여러 사람이 있는 데서 자꾸 토를 달 듯이 ‘그런데요’라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할 말이 있는 사람입니다. 잠시라도 따로 불러 ‘지난번에 그런 이야기를 하던데 무슨 이야기냐’ 물으면 그 문제의 실체를 더 잘 알 수 있을 겁니다. 더 중요한 건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우선시하는 게 아니라 나라와 정권을 위해 물불 안 가릴 인재들을 찾아 등용하는 겁니다.”
 
 
  첫 100일 동안 467명의 의원 만난 레이건
 
1983년 한국을 찾았다 귀국길에 오르는 레이건 대통령과 낸시 여사. 심장병 어린이 두 명을 미국으로 데려갔다. 사진=조선DB
  셋째, 성공하는 대통령은 국회와 협력한다. 정부에서 법안을 마련해도 국회에서 통과시키지 않으면 그만이다. 레이건은 취임 후 첫 100일 동안 49회에 걸쳐 467명의 의원을 만났다. 야당인 민주당 의원들과도 수시로 접촉했다. 민주당이었던 카터 대통령보다 공화당 레이건 대통령에게 더 극진한 대우를 받았다며 민주당 의원들이 고마워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강형원 기자는 미국 대통령이 ‘비공식 일정’ 때 뭘 하는지 들려줬다. 강 기자는 《LA타임스》, AP통신, 로이터통신에서 사진기자로 일하며 퓰리처상을 2번 수상했다. 백악관 사진기자를 하며 미국 대통령들을 근거리에서 지켜봤다.
 
  “백악관엔 항상 공개 일정과 비공개 일정이 있어요. 비공개 일정은 바로 적군들을 불러서 대화를 나누고 겁 주는 자리예요. 의회와 스킨십을 하는 거죠. 자기편이랑 매일 밥 먹고 술 마시면 뭐합니까. 자기를 제일 반대하는 사람을 불러다 ‘대통령이 이러이러해서 힘들다, 도와줘라’ 이러면서 국정 파트너를 늘려가는 겁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미국도 의회의 권력이 절대적이다. 지난 8월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미 하원의장으로서는 20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언론에는 의전 서열 3위니 하는 기사가 나왔는데, 사실 하원의장의 서열은 무의미하다. 대통령의 국정 파트너다. 하원의장을 부통령과 비교할 수 없다. 하원의장이 법안 통과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민주당은 현재 미 의회 상하원에서 모두 다수당이다. 트럼프 대통령 때는 하원에서 민주당이 법안을 가결해 올려보내도 상원을 차지한 공화당이 부결시키곤 했다. 지금은 하원에서 결의하면 바로 법제화될 수 있다.
 
  지난 8월 바이든 대통령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서명했다. 법이 시행되면 한국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수출되는 현대차와 기아차의 전기차는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다른 전기차보다 최대 7500달러가 비싸지게 된다. 미국의 입법은 백악관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나 한덕수 국무총리 중 누구라도 펠로시를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휴대전화 사용 제한받는 美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과 국회는 협력하기는커녕 여당인 국민의힘 내부조차 아직도 이준석 전 대표 문제로 시끄럽다. 대통령이 당 내부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하자마자 권성동 의원의 텔레그램 메시지가 언론에 노출됐다. 휴대전화 화면이 노출돼 곤욕을 치른 적이 있는 정치인이 또다시 국회 회의장에서 사진기자에게 선명한 대화 화면을 노출당했다는 것도 의아스럽지만, 더 당혹스러운 건 대통령이 국회의원과 메신저로 대화를 나눈다는 사실이었다.
 
  미국 대통령은 휴대전화 사용을 엄격히 제한받는다. 전화기에 사적인 연락처를 일절 저장할 수 없다. 보안 때문이다. 블랙베리를 꼭 쓰고 싶다고 고집부린 오바마 때문에 규정이 조금 완화됐다. 오바마 대통령의 휴대전화는 전화를 걸 수도, 문자를 보낼 수도,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다. 애플리케이션 다운로드도 불가능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권성동 의원이 이용한 텔레그램 메신저는 설치조차 할 수 없단 얘기다.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미리 정해진 특정한 사람들이 보내는 이메일만 수신할 수 있었다. 급하게 외부에 전화를 걸어야 할 때는 보좌관 전화를 사용했다.
 
  트럼프는 국가안보국(NSA)에서 보안강화 조치를 한 공용 아이폰을 썼다. 물론 개인 연락처는 저장할 수 없고, 문자도 못 보냈다. 반쪽짜리 전화기지만 보안 때문에 30일마다 휴대폰을 바꿔야 한다.
 
  프랑스는 미국 국가안보국의 감청 활동이 폭로된 후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관료들은 아예 공적인 업무를 하면서 스마트폰을 못 쓰도록 했다. 보안에 민감한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나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휴대전화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북한에 해킹이 주목적인 사이버 부대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왜 대통령실은 대통령 휴대전화와 관련한 보안규정을 두지 않는 걸까.
 
 
  홍보 전략의 중요성
 
  성공하는 대통령의 네 번째 조건은 효율적인 홍보 전략이다. 코로나19 시국에 청와대에 모여 앉아 ‘짜파구리’를 끓여 먹으며 파안대소하는 탁현민식 포장을 하라는 게 아니다. ‘인간 윤석열’ 본연의 장점과 대통령다운 안정적인 모습을 함께 국민들에게 보여주란 얘기다.
 
  포드 대통령은 임기 내내 ‘멍청한 대통령’으로 대중에 인식됐다. 미국 언론인 리처드 리브스는 포드의 임기 내내 무능하다고 비판을 했다. 그는 1997년 쓴 책 《미국의 유산(American Heritage)》에서 포드 대통령에게 사과했다.
 
  “포드는 내가 기대하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일을 잘했다. 그는 최선을 다했으며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했다.”
 

  링컨의 최대 업적은 노예해방령이다. 지금은 당연한 걸로 여겨지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공고했던 관습을 없애기 위해 링컨은 반년 넘게 기다렸다. 애초엔 1892년 여름에 노예해방령을 발표할 생각이었다. 그러다 남북전쟁에서 연방군(북군)이 결정적 승리를 거둘 때까지 일단 묻어놨다. 그동안 국민들에게 끊임없이 노예해방령에 대한 힌트를 줬다. 그런 후 9월에 공식 발표했다. 이듬해 1월 법안에 공식 서명했다. 국민들에게 심리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줬단 얘기다.
 
  실패한 대통령은 언론의 취재를 회피하고, 사실을 은폐하면서 몰락하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재선에 성공한 닉슨이 워터게이트가 불거진 초기에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했다면 하야까지는 안 해도 됐을지 모른다. 클린턴 역시 화이트워터 스캔들, 모니카 르윈스키 등 여성들과의 성추문이 불거졌을 때 부인하며 거짓말하다 더 큰 위기에 빠졌다.
 
 
  “대통령은 최종적으로 나선다”
 
2017년 4월 21일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 사진=조선DB
  도어스테핑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실 대변인에게 “도어스테핑을 언제까지 할 예정인지” 물은 적이 있다. 그러자 “대통령 임기 끝날 때까지”라는 답이 돌아왔다. 백악관을 출입했던 강형원 기자는 도어스테핑을 두고 “대통령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적인 걸 떠나, 언론과 소통하는 태도의 문제입니다. 대통령을 굉장히 위험에 빠뜨리는 방식이에요. 정제되지 않은 생각이 막 나가거든요. 그러니 국민들 반응 보고 정책이 바뀌는 겁니다.”
 
  대통령실 일부 관계자들은 도어스테핑을 두고 ‘선진국 방식’이라고 말한다. 강형원 기자의 말이다.
 
  “미국 대통령이 도어스테핑을 한다고요? 출퇴근할 때는 특정인들만 접근할 수 있어요. 원래 대통령이 움직일 때가 가장 안전에 취약할 때입니다. 기자들에게 자주 브리핑하고 소통을 하는 건 백악관 공보담당자들입니다. 스태프들이 먼저 언론에 운을 띄워서 반응을 본 다음 대통령은 최종적으로 나섭니다.”
 
  미국 대통령이 약식 기자회견을 할 때가 있긴 하다. 헬리콥터를 타러 갈 때다. 대답하기 편한 질문이라면 몇 마디 대답을 하고, 곤란한 질문이 들어오면 소음 때문에 안 들린다는 시늉을 하며 잽싸게 헬기에 올라탄다. 소음이 큰 건 사실이므로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않아도 오만해 보이지 않는다. 의도된 장소 선정이다.
 
 
  “‘뭐, 안 하면 그만이고’ 느낌 들어”
 
  약식 기자회견을 자주 하는 나라가 있긴 있다. 일본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시절에 정착됐다. 알아둘 게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외조부와 부친이 모두 정·관계에 있었다. 그 자신은 1969년에 첫 선거를 치르며 정치에 입문했다. 총리 취임 당시 이미 정치 경력이 32년이었다. 사실 정치 경력이 이쯤 되면 기자가 어떤 질문을 퍼붓든, 즉석으로 답해도 문제가 안 되는 경지에 오른다고 보면 된다.
 
  기시다 후미오 현(現) 총리도 마찬가지다. 3대째 정치인이다. 1987년 중의원인 부친의 비서로 정치계에 들어왔다. 10선 의원이다. 총리가 될 시점에 경력 34년 정치인이었다.
 
  한 전직 장관은 자신의 기자회견 경험을 들려줬다.
 
  “장관 시절 일주일에 한 번은 직접 출입 기자들에게 브리핑을 했습니다. 이번 브리핑 땐 어떤 메시지를 던질까, 어떤 논란이 있을까 그 표현을 많이 고민합니다. 예상 질문과 답변자료가 올라오면 키워드를 숙지한 다음에 평소의 제 생각과 함께 전달하곤 했어요. 한 부처의 장관도 일주일에 한 번 하는 브리핑 때문에 그렇게 신경을 썼는데 어떻게 대통령이 매일 기자회견을 합니까. ‘내일은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느라 일을 할 수 없어요.”
 
  그는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비치는 모습도 지적했다.
 
  “질문에 답하는 모습을 보면 국정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뭐, 안 하면 그만이고’ 이런 느낌이 듭니다. ‘법대로 처리하면 된다’는 발언은 대통령답게 보이지 않습니다.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고 법 아래 있지 않다’ 이렇게 완곡히 표현할 수도 있잖습니까.”
 
  닉슨은 최측근 참모들과 있을 때는 기분이 나쁘면 엄청난 욕설을 하곤 했다.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공개된 비밀녹음테이프엔 닉슨의 수위 높은 욕설이 담겨 있었다. 당시 미국 국민들은 닉슨의 거짓말도 물론이지만 욕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닉슨의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닉슨은 집권 초부터 최고의 연설문 집필단과 함께였다. 집필단이 100단어 이내로 간결하게 연설문을 정리해주면 위엄 있는 태도로 연설을 하고 바로 내려왔다. 닉슨은 모이니핸 보좌관에게 추천 도서 목록을 작성해달라고 해 밤늦게까지 독서를 했다. 연설문 집필단에 좋은 일화들을 노트 한 권 분량으로 정리해달라고 부탁했다. 수백 편의 일화가 담긴 노트를 책상 위에 항상 올려두고 사람들을 만나러 갈 때마다 훑어보았다고 한다.
 
  레이건 대통령은 연설문을 받으면 철저하게 리허설을 했다. 하도 연습을 해서 나중엔 연설문을 외워 노래하다시피 연설을 했다고 한다. 그가 무대 위에서 국민들에게 보여준 여유 있고 안정적인 모습이 배경에 깔려 있어서일까. 미국인들에게 1980년대는 ‘그리운 시절’이다. 레이건의 슬로건이 바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Let's Make America Great Again, MAGA)’였다. 기업가이자 방송인 출신으로 여론을 잘 읽는 트럼프 대통령은 이 슬로건을 다시 들고나와 대권을 잡았다.
 
 
  뒤에서 담배 피운 오바마
 
  강형원 기자는 조지 부시와 오바마 대통령의 ‘무대 뒤편 모습’을 들려줬다.
 
  “대통령은 국민들 앞에서는 좋은 말, 칭찬하고 덕담을 하는 모습을 보여줘요. 조지 부시 대통령은 문제가 생기면 사람들 없는 곳에선 소리 지르고 욕을 하면서 풀었어요. 오바마 대통령은 금연한다고 하면서 혼자 있을 땐 담배를 피웠어요. 그런 모습은 사진에 못 담게 했죠.”
 
  9·11 다큐멘터리에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부시 대통령이 아침 조깅을 마치고 백악관 건물로 들어가다, 기다리고 있던 기자와 마주쳤다. 그야말로 도어스테핑이다. 당시 민감한 주제였던 ‘감세’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웃으며 기자와 인사를 나누던 부시가 단호히 얘기한다. “나중에 하죠(Later).”
 
  준비되지 않은 대답은 하지 않는다.
 
  조지 부시와 트럼프는 임기 내내 술을 한 잔도 안 마셨다(트럼프 대통령은 원래 술을 안 마신다). 오바마 대통령 부부도 자기 관리에 철저했다. 임기 내내 별다른 스캔들이 없었다. 강 기자의 말이 이어졌다.
 
  “‘흑인이라 그렇다’ 혹시라도 이런 말을 들을까 봐 더 철저했던 거죠. 말을 엄청 아꼈어요. 공개 석상에선 좋은 말, 아픈 이들에게 연민을 갖고 위로하는 말을 했어요. 대통령은 자신을 변명하는 말은 안 합니다. 그건 잘못을 인정하는 거잖아요. 동문서답도 세련되게 잘할 수 있어야 해요.”
 
  데이비드 거겐은 대통령의 배우자인 영부인을 이렇게 표현했다.
 
  “대통령이 국가의 정신이라면 퍼스트레이디는 국가의 심장이다.”
 
  국민의 마음을 울리는 역할을 한단 얘기다. 포드 대통령의 부인 베티 포드 여사는 생활무선통신기를 갖고 다니며 전국의 트럭운전사들과 대화를 나눴다. 호출명은 ‘퍼스트 마마(First Mama)’였다. 1975년 《타임》지는 베티를 ‘올해의 여성’으로 선정했다. 퍼스트레이디로서는 처음이었다.
 
  레이건 대통령의 부인 낸시 레이건 여사는 한국인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83년 레이건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귀국길에 심장병이 있는 한국 어린이 두 명을 데려갔다. 미국에서 무사히 수술을 받은 두 어린이는 미국 가정에 입양되었다. 강형원 기자는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 여사를 언급했다.
 
  “미셸은 국민들에게 겸손한 퍼스트레이디를 보여줬어요. 백악관 잔디밭 한쪽에 텃밭을 만들었어요. 미셸이 직접 채소를 심고 수확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전국적으로 텃밭 가꾸기 운동이 일어났어요.”
 
 
  기록 안 남기는 전직 대통령
 
  미국 대통령이 취임식 직후 거치는 통과 의례가 있다. 역대 대통령 중 세 명을 골라야 한다. 이들의 사진은 회의실 벽에 걸린다. 대통령은 그 세 명의 대통령을 바라보며 임기를 보낸다. 닉슨은 아이젠하워, 시어도어 루스벨트, 우드로 윌슨을 골랐다. 포드는 아이젠하워, 링컨, 해리 트루먼이었다.
 
  성공한 대통령의 다섯 번째 조건은 리더십에 대한 연구다. 미국 대통령들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뒤에도 성공한 지도자들을 탐구했다. 다들 대통령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워터게이트 전까지는 성공적인 대통령이었던 닉슨은 영국의 수상 디즈레일리에 천착했다. 레이건은 젊은 시절부터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존경했다. 영국의 처칠은 역사를 탐독했다.
 
  별 사유 없이 한국 사회는 ‘제왕적 대통령’이란 말을 자주 쓴다. 헌정(憲政)질서 내에서 대통령은 허약한 자리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드러났다. 대통령이 정치적 역량과 통치력을 얼마만큼 발휘하느냐에 따라 그 힘은 강해질 수 있다.
 
  그런데도 한국엔 대통령 리더십에 대한 연구가 척박하다. 일단 대통령은커녕 대통령과 함께 일했던 참모들도 제대로 된 회고록을 안 낸다. 적어도 장·차관급 이상을 지낸 이들이라면 회고록을 내는 게 옳다고 본다. 전직 대통령에게 집을 지어주고 매달 1400만원의 연금을 지급하는 건 대통령직을 떠난 후에도 국가에 기여하기를 기대해서다. 통치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게 한 예다. 인스타 셀럽 흉내를 내며 귀농놀이를 하라는 게 아니다.
 
  권력자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 주로 위기가 닥칠 때다. 이때 지도자가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9·11을 잘 극복해 자신만의 리더십을 갖춘 부시처럼 말이다. 임기 초에 찾아온 20%대의 지지율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기회일지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위기를 헤쳐나가는 지도자의 이야기를 대중은 좋아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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