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뢰하는 법조인은 윤석열 특별수사팀장, 신현수·정재성 변호사 등
⊙ 윤건영·송인배·유송화 … 권력 세계에서 문고리 잡은 사람이 최고라는 개념에서는 ‘실세’
⊙ 문재인 대통령, 가수 이은미·배우 송강호의 팬
⊙ 신지연 변호사, 고민정 전 아나운서 등 대표적 ‘젊은 피’
⊙ 문재인 대통령, 노무현 정부 민정수석·비서실장 때부터 임종석, 이용섭 업무능력 높게 평가
⊙ 윤건영·송인배·유송화 … 권력 세계에서 문고리 잡은 사람이 최고라는 개념에서는 ‘실세’
⊙ 문재인 대통령, 가수 이은미·배우 송강호의 팬
⊙ 신지연 변호사, 고민정 전 아나운서 등 대표적 ‘젊은 피’
⊙ 문재인 대통령, 노무현 정부 민정수석·비서실장 때부터 임종석, 이용섭 업무능력 높게 평가
▲신뢰하는 법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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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윤석열 최순실 게이트 특별수사팀장, 신현수·정재성 변호사. |
신현수 김앤장 변호사도 문 대통령이 각별히 신임하는 법조인이다. 신 변호사는 2004년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사정비서관을 지냈다. 당시 시민사회수석비서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활동한 문재인 대통령과 호흡을 맞췄다. 그는 이번 19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도 선대위 법률지원단장으로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일조했다. 문 대통령 아들인 문준용씨 특혜취업 의혹을 선봉에서 방어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초대 민정수석 후보로 유력하게 검토됐지만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깜짝 기용됐다. 여의도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신 변호사는 사시 26회로 1990년 부산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부산·수원지검 검사, 대검 검찰연구관, 유엔 법무협력관, 제주지검 부장검사, 대검 정보통신과장, 대검찰청 마약과장 등을 지냈다. 김영삼 정권 시절 한보그룹 수사 당시 살아 있는 권력이었던 김현철씨를 구속하는 등 수사 역량이 높다는 평을 받았던 인물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신 변호사는 조직관리와 업무추진 능력이 뛰어나고 온건, 합리적인 성품을 지닌 인물”이라고 했다.
정재성 변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이다. 정 변호사와 문재인 대통령은 법무법인 부산에서 함께 일하면서 부산·경남 지역 민주화운동 사건의 변론을 맡으며 인연을 맺어 온 사이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한 뒤인 1990년 정 변호사와 1995년 법무법인 부산을 설립했다. 정 변호사는 이번 대선에서도 문재인 선대위 상임 선대위원장 비서실장 격으로 활동했다. 곽상언 변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다. 그는 2003년 2월 노 전 대통령이 청와대 입성 직전에 딸 노정연씨와 결혼했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 곽 변호사에 대해 “평범한 집안 출신으로,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학창 시절 본인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와 용돈을 조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곽 변호사는 친노, 친문 핵심인 박범계 의원과 함께 개업을 할 정도로 가깝다. 곽 변호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상대로 한 위자료 청구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실세 3인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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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윤건영 부실장, 송인배 제1부속실장, 유송화 제2부속실장. |
송인배 일정총괄팀장은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 유세 및 동선(動線)을 책임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신임이 매우 두텁다. 송 팀장은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사회조정2비서관을 역임했다. 노무현 가문의 막내다. 그는 양산에서 다섯 차례(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총선) 출마해 낙선했다. 문 대통령은 송 팀장을 제1부속실장으로 임명했다. 청와대 제1부속실은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맡는 부서다.
‘비서실 안의 비서실’이라 불릴 만큼 요직이다. 때문에 그만큼 부패하기 쉬운 조직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봐야 하는 문서나 자료도 통상 부속비서관을 거쳐 전달된다. 보고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도 부속비서관의 몫이다.
제2부속실장으로 발탁된 유송화 수행2팀장은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8·15 남북청년 학생회담 성사투쟁’에 앞장섰다가 구속돼 5개월여 동안 복역하기도 했다. 졸업 후 재야단체에서 일하다 1992년 대통령 선거 이후 정치를 하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7년 동안 서울 노원구의회 의원을 역임했다. 유 팀장은 2012년부터 김정숙 여사 일정을 책임졌다. 김 여사가 가는 곳에는 어디든 유 팀장이 있었다. 김 여사가 매주 호남을 찾을 때는 물론, 광주서 단골 목욕탕을 방문할 때조차 함께했다. 전남(고흥) 출신인 유 팀장의 기획·지원 아래 김 여사가 호남권 밑바닥 표심 다지기에 주력한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에 힘을 보탰다는 분석이다. 제2부속실은 대통령 부인을 보좌하는 부서다.
▲3철
3철.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 3인방(이호철·전해철·양정철)을 일컫는 단어다. 세 사람 모두 이름 끝자가 ‘철’이라 3철이라 불리게 됐다. ‘386 참모진’의 맏형 격인 이호철 전 민정수석은 문재인 대통령과 같은 부산 출신에 경남고 선후배 사이다. 1981년 부림사건 피의자로 구속됐을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변호를 맡으면서 문 대통령과의 인연도 시작됐다. 노무현 정부에서 문 대통령과 동고동락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비선 실세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을 감안해 부산에 머물렀다. 이 전 수석은 노무현 정부 당시 ‘386 군기반장’으로 불릴 정도로 막강 실세로 불렸다. 특히 노무현 정부 시절 ‘안희정 충남지사의 대북 비선 접촉’, ‘쌀 직불금 감사 은폐 청와대 개입 의혹’ 등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의혹의 중심에 있었다. 이 전 수석은 이번 대선 과정에서 부산·경남(PK) 출신 인재 영입을 지원하며 막후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대선 직후인 5월 10일 ‘정권교체는 이뤄졌고, 마침내 저도 자유를 얻었다’는 글을 남긴 뒤 출국했다.
이 전 수석은 “촛불대선에 참여하면서부터 떠날 준비를 했다”며 “쉽게 떠나는 만큼 머지않아 돌아올 것이고, 문재인 정부에서 깨어 있는 시민으로 벗과 함께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문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이 전 수석이 집권 후반기쯤 어떤 방식으로든 문 대통령을 도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전해철 의원은 천정배 전 의원이 1992년 세운 법무법인 ‘해마루’에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몸담으면서 문재인 대통령과도 자연스레 인연을 맺었다. 노무현 정부 2년차인 2004년, 민정비서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2006년에는 만 44세의 나이로 ‘최연소 민정수석’이 됐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으로 ‘386 법조인’으로 불렸다. 19대 국회 입성 이후 지금까지 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활약하고 있다. 문 대통령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몇 안 되는 측근 중 한 명이다. 전 의원은 문 대통령에 대해 전 의원은 “공식적이고 제도적인 틀을, 어찌 보면 답답할 정도로 정말 준수한다”며 “그 원칙과 원리가 굉장히 강하다. 청와대에 있을 때부터 그랬다. 예외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는 조직특보단장을 맡아 활동했다.
양정철 비서실 부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모든 일을 상의하는 ‘복심(腹心)’이다. 양 부실장은 지난해(2016년) 6월 문 대통령이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날 때도 동행했다. 문 대통령은 그를 “양비(양 비서관의 줄임말)”라고 친숙하게 부른다. 그래서일까. 타 정당에서는 그를 문 대통령의 ‘비선(秘線)’ 중 한 명으로 지목한다. 이에 대해 양 부실장은 “비선 논란은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유령 같은 공격 논리”라며 “2012년 대선 때 당내 경선을 치르는 동안 비선·패권 등으로 공격 받았다. 사실이 아니었지만 문 대통령을 돕던 이호철·전해철 등 9명의 인사가 백의종군을 선언하고 캠프 내 공식 직함을 내려놨다. 그런데도 누군가 ‘비선’이라는 프레임을 계속 덧씌우고 있다”고 했다.
▲문재인의 마음을 잡아끈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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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은 가수 이은미, 배우 송강호씨의 팬이다. |
송강호씨는 대한민국 최고 연기파 배우 중 하나다. 〈괴물〉 〈변호인〉 등 천만 관객 영화를 두 편이나 찍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배우로 송강호를 꼽았다. 송강호는 영화 〈변호인〉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기했다. 2013년 노 전 대통령의 인권변호사 시절을 모티브로 한 〈변호인〉을 관람한 문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들어 역사가 거꾸로 가면서 국민이 피와 땀으로 이룩한 민주주의가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고 소감을 밝힌 바 있다.
1953년 일본 도쿄에서 재야 운동가 고(故) 문익환 목사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문성근씨는 배우이자 정치인이다. 문성근씨는 보성고를 졸업한 뒤 1974년 서강대 무역학과에 입학, 이때부터 연극을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영화에 30편 이상 출연했다. 그는 연기파 배우로 표독한 범죄자에서 건달, 막노동꾼에 이르기까지 어떤 역할이든 리얼하게 소화해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문성근을 전국적인 유명인사로 만들어 준 것은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이다. 1992년에서 94년까지, 97년에서 2002년까지 모두 7년간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그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명사가 됐다. 2002년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결성을 주도하면서 정치운동에 뛰어들었고, 대표적인 친노 인사가 됐다. 2003년 가을 노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방북, 김용순 노동당 대남담당비서를 만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문성근을 문화부 장관에 임명하려 했지만, 그는 노사모 멤버인 이창동 영화감독을 추천했다. 문성근은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정당을 직접 바꾸겠다”며 야권통합 운동에 뛰어들었다. 2010년 8월 야권통합 추진단체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을 만들었다. 그는 현재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 상임운영위원장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외곽에서 조용히 문재인 대통령을 도왔다.
▲여성 측근 ‘BIG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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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위부터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조현옥 인사수석, 신지연 변호사, 고민정·유정아 전 아나운서. |
문재인 정부 초대 인사수석으로 발탁된 조현옥 이화여자대학교 초빙교수는 숙명여고,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이화여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를 거쳤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칼루프레히트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땄다. 그는 영부인 김정숙 여사의 숙명여고 2년 후배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상임대표를 역임해 여성, 보육, 저출산, 가족 분야의 정책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노무현 시절 청와대 고위공직자인사검증자문회의 위원을 지냈고, 문 대통령이 비서실장을 지내던 당시엔 균형인사비서관으로 활동했다. 이후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을 지냈다. 이번 대선에선 더불어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성평등본부 부본부장직을 맡았다.
신지연 변호사는 대학 1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 갔다. 어려서부터 국제업무 관련 직종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영어, 일어,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그는 미시간대(국제정치학)를 졸업한 후 뉴욕로스쿨에서 공부했다. 뉴욕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뒤에는 미국의 중견 로펌에서 1년여 동안 근무하기도 했다. 국내에 처음 들어와서는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주로 기업 인수·합병(M&A) 관련 업무를 맡아서 처리했다. 이후 삼성중공업 법무실에서 근무했다. 선박 수주 계약서를 비롯해 각종 영문 계약서를 검토하거나 플랜트 수출 과정에서 부딪치는 해외 법률 문제를 검토하는 일을 주로 했다. 정치 문외한인 그는 2011년 문재인 대통령의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을 읽고 감동을 하여 11년간 일한 대기업에 사표를 던지고 2012년 문재인 대통령의 4·11총선을 도왔다. 당시 문 대통령에게 e메일을 보내 “돕고 싶다”고 했다. 2012년 총선 때 그는 문 대통령의 지역구(부산 사상)에서 선거법 자문을 맡았다. 동네 주민들의 민원 상담도 도맡았다. 당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 외신 담당 부대변인으로 변신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문 대통령의 스타일링을 도맡았다. 원래 부인 김정숙씨가 해 왔지만 2016년 10월부터 신 변호사가 PI(Personal Image) 팀장직을 맡아 전담했다. 대선 과정에서 문 대통령은 인상이 한결 부드러워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앞머리는 더 견고하게 고정하면서도 흰머리와 검은색 머리가 적절히 어우러져 ‘은발 신사’의 중후한 매력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또 무채색 일색이던 의상도 감색(네이비블루) 톤을 중심으로 바뀌었는데, 무겁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이미지를 준다는 호평을 받았다.
2004년 KBS 공채 30기로 입사한 고민정 전 아나운서는 희귀병(강직성 척추염)을 앓는 남편 조씨와의 순애보로도 유명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캠프 영입 1호로 고 전 아나운서를 택했다. 문 대통령은 직접 고 전 아나운서를 찾아가 지원을 요청했다. 고 전 아나운서는 문 대통령과 같은 경희대 동문으로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해직 언론인을 보며 자괴감을 느꼈다”며 문재인 캠프 합류 이유를 밝혔다. 고 전 아나운서는 정치 예능과 토론 등 방송 출연이 부쩍 늘어난 문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수행하며 방송 전략을 조언했다. 고 전 아나운서는 김경수 의원과 함께 문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에서 수행하며 특히 젊은 여성들과 문 대통령의 접점을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고 전 아나운서에게 굉장히 고마워한다는 후문이다.
유정아 전 KBS 아나운서는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 시민캠프 대변인으로 활동했으며 2017년 19대 대선에서도 문 대통령 지지 모임인 ‘더불어포럼’의 상임위원장과 국민참여본부 수석부본부장을 맡았다. 유 전 아나운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설명하는 소셜미디어 방송 ‘문재인 나이트 라이브’를 통해 누리꾼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유 전 아나운서는 2014년에는 노무현시민학교의 교장(제6대)으로 발탁되기도 했으며 같은 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5주기 추도식 진행을 맡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예전부터 점찍었던 인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1989년 전대협 의장을 지낸 ‘운동권 스타’ 출신이다. 임 실장은 전대협 의장 당시 임수경씨 방북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장기간 수배생활을 하면서도 ‘신출귀몰’하며 학생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란 평가를 받았다. 임 실장은 문재인 경선·대선 캠프에서 일정과 메시지를 총괄하는 중책인 비서실장직을 맡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박원순의 사람’인 그를 영입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 임 실장의 내각 중용을 건의하는 등 업무능력을 높게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주사파(1980년대 중반 이후에 등장한 북한의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삼은 남한의 반체제 운동 세력) 논란에 휩싸인 임 실장을 문재인 정부 첫 비서실장으로 임명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용섭 전 민주당 의원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재정경제부 세제실장, 관세청장, 국세청장, 행자부장관, 건교부장관 등 주요 경제부처 수장을 역임했고, 이후에도 당의 정책위의장, 경제특보, 경제위기극복본부장 등을 맡은 경제정책 전문가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당시 이 전 의원을 노무현 정부 초대 국세청장으로 발탁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 전 의원은 국세청장 재임 시 박원순 변호사(현 서울시장)를 위원장으로 하는 세정개혁위원회를 둬 접대비 상한제, 골프와 유흥업소의 접대비 불인정 등 많은 세정개혁을 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이 전 의원에게 선대위 비상경제대책단 단장을 맡겼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산·경남(PK) 지킴이
1994년 국회에 첫발을 디딘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년 넘게 국회·국정·정당을 경험했다. 입법·예산·국정감사 등 의정활동을 익힌 것은 물론 2002년 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획팀에서 새 정부의 밑그림을 그렸고, 청와대 국정상황실 행정관·연설기획비서관까지 두루 역임했다. 그는 ‘노무현의 마지막 비서관’이다. 2012년부터 문재인 대통령의 ‘입’ 역할을 해 왔다. 19대 대선에서도 문 대통령을 밀착 수행하면서 일거수일투족을 책임졌다. 수행 대변인으로 문 대통령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공식적인 최측근 인사다.
부산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언론비서관을 지낸 ‘친노 핵심’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2009년 5월 23일)를 불과 보름여 앞둔 그해 어버이날 노 전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최 의원은 2002년과 2004년 부산 해운대기장갑 선거구에 나왔지만, 고배를 마셨다. 그는 2012년 19대 총선 때 부산 사하갑으로 지역구를 옮겨 출마했지만, 문대성 새누리당 후보한테 2300여 표 차이로 석패했다. 4년 동안 지역의 바닥 민심을 살뜰히 챙긴 그는 이번 총선(20대)에서 김척수 새누리당 후보를 꺾었다. 2012년부터 문재인 대통령을 도왔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는 캠프 출범 이전부터 지역 유세 전반을 진두지휘했다.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00년 16대 총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했을 당시 선거 참모로 일하며 문재인 대통령과 인연을 쌓았다. 2000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입법보좌관을 시작으로 2002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행정관으로 일했다. 2003년에는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정책보좌관, 2004년에는 청와대 국정상황실 행정관을 거쳐 2006년에는 청와대 제2부속실 실장직을 수행했다. 이후 부산 북구청장 선거, 18·19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4번의 도전 끝에 20대 총선에서 당선됐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는 문재인 선대위 문화예술교육 특보단장을 맡았다.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법연수원 시절 법무법인 부산에서 시보로 활동하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 당원이 되고, 이후 연제구 지역위원장까지 맡았다. 어린 시절 부모 대신 고모 손에서 자라는 등 어려운 환경 속에서 32세에 ‘늦깎이 변호사’가 됐다. 고등학교 2학년 때 43명 중 42등까지 해 봤다는 김 의원은 직업반에 진학해 미용기술을 1년 동안 배웠다. 수학능력시험을 불과 50여 일 앞두고 공부해 부산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중 자신을 키워 준 고모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는 아픔도 겪었다. 문 대통령은 김 의원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에 대해 “나와 닮았다”고 했다.
▲베일에 싸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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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규씨와 탁현민 참여연대 출신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의 숨겨진 측근이다. |
탁현민 참여연대 출신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는 2016년 6월 문재인 대통령이 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섰을 당시 동행한 인물이다. 2010년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 추도식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탁 교수는 문 대통령의 광화문 유세 등 각종 행사 기획을 도맡아 진행했다.
▲숨은 일등공신 전직 의원
3선의원 출신인 노영민 전 의원은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내면서 ‘친문 핵심인사’로 자리 잡았다. 노 전 의원은 경선 캠프와 본선 선대위에서 모두 조직본부장을 맡으며 결선 없는 경선 승리에 이어 대선 승리까지 이뤄 냈다. 조직본부장은 각 지역 권리당원과 일반당원이 선거운동에 열심히 참여하도록 독려하고 조직을 모으는 중책이다. 그는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전·현직 의원 모임 ‘달개비’의 좌장이기도 하다. ‘문재인의 남자’로 불리는 그는 문 대통령 지지자 모임인 ‘더불어포럼’을 꾸리는 데 주도적으로 관여하기도 했다. 노 전 의원은 문재인 정부 초대 주중 대사로 임명됐다. 최재성 전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신 복심’으로 불린다. 초선 시절 정세균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에 의해 대변인으로 발탁된 인연으로 인해 대표적 정세균계 인사로 꼽혔다. 하지만 2012년 대선 국면 때 문재인·안철수 후보 간 단일화 성사를 촉구, 기득권 포기를 내세워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고 혁신을 강조해 온 문 대통령은 그의 선택을 높이 샀다. 인재 영입이 장점이다. 열린우리당 대변인을 비롯해 당내에서 대변인만 총 4번을 지낼 만큼 정치적 판단력과 순발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선대위에서 인재 영입에 앞장섰다. 3선 의원 출신인 전병헌 전 의원은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 정무비서관, 대통령 정책기획비서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맡는 등 동교동계와 인연이 깊다. 김대중 정부 임기 내내 청와대에서 줄곧 근무하는 등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가신그룹인 동교동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후 정치 행보에서도 정세균 국회의장과 친분이 두터워 ‘정세균계’로 분류됐다. 애초 ‘전략통’으로 알려진 만큼 문재인 대선 캠프에서는 전략기획 업무를 담당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