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시대

문재인 대통령 인사 분석

노무현 전(前) 대통령과의 ‘평행이론’ 존재하나?

  •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woosu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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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집권 후 불안해하는 보수층과 호남 홀대 분위기 고려해
    초대 총리 발탁
⊙ 대통령 보완하는 의미를 담은 비서실장 임명
⊙ 문 대통령,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을 초대 민정수석비서관에 앉힌 마음으로 조국 교수 선택
⊙ ‘노무현의 마지막 경호실장’을 자신의 초대 경호실장으로 임명한 문 대통령
⊙ 총무비서관에 측근 앉히지 않은 이유? … “문 대통령이 최도술에게 실망했던 것으로 안다”
⊙ 노무현 정부 때 막강 권력 휘둘렀던 정책실장·국정상황실장직 부활
⊙ “현재까지 인사를 보면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노무현을 뛰어넘는 데 주저하는 것 같은
    한계도 보여”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속속 청와대와 정부 핵심요직 인사를 단행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인사를 보면 ‘평행이론’이란 말이 나올 만큼 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슷한 점이 많다.
 
 
  ▲ 국무총리
 
2017년 5월 10일 오후 문재인 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내정된 이낙연 총리 후보자가 청와대 춘추관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초대 국무총리로 이낙연 전 전남지사를 지명했다. 이 국무총리 후보자는 “호남을 국정 동반자로 삼겠다는 약속의 이행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문 대통령이 자신을 임명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이 총리 후보자는 전남 영광 출신으로,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동아일보》 기자를 거쳤다. 기자 시절 정치부 기자와 도쿄 특파원, 논설위원, 국제부장 등을 지냈다.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한 뒤엔 4선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명대변인’으로 이름을 알렸다. 또 도쿄 특파원 인맥을 발판으로 국회 한·일의원연맹 수석부회장 등을 맡기도 했다.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인 시절 대변인을 지내기도 했다. 이 총리 후보자는 2012년 대선 때는 문재인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으나 이번 대선에선 현직 공직자라 공식 직책을 맡아 뛰지는 않았다. ‘친노 핵심’과는 거리가 있는 온건한 합리주의적 성향으로 분석된다. 열린우리당 창당 때는 탈당하지 않았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표결 땐 반대표를 던졌다. 17년간 민주당을 떠난 적이 없다. 여·야에 두루 친분이 깊고 적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초대 총리로 고건 전 총리를 임명했다. 집권 후 불안해하는 보수층과 호남 홀대 분위기를 고려해 고건 전 총리를 발탁했다. 문 대통령이 이 총리 후보자를 낙점한 기조와 비슷하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총리는 몽돌(모가 나지 않고 둥근 돌)을 잘 받쳐 줄 수 있는 나무받침대 같아야 서로 짝이 잘 맞지 않겠느냐”며 자신과 고 전 총리와의 관계를 ‘몽돌’과 ‘받침대’에 비유했었다.
 
 
  ▲ 청와대 비서실장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청와대 비서실장은 대통령을 보완하는 측면이 있다. 문 대통령은 주사파 논란에도 ‘임종석 카드’를 밀어붙였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대표적인 ‘86(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 그룹’ 정치인으로 지난해 9월 문 대통령이 당내 경선과 대선 본선을 위한 준비팀을 꾸릴 때 삼고초려를 통해 가장 먼저 영입했다. 그는 전남 장흥 출신으로 한양대학교 총학생회장이던 1989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3기 의장을 맡아 ‘임수경 방북 사건’을 주도했다. 이 사건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받아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3년 6개월 복역했다. 이런 과거 전력 때문에 ‘운동권’ ‘주사파’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더불어민주당 중진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은 생각은 진보적이고 개혁적이지만 태도는 온유하고 부드럽다. 그래서 조금 야무지고 추진력 있는 사람을 원했을 것이다. 그런 것은 임종석 실장이 잘한다”며 “추미애 더불어 민주당 대표의 반대, 과거 전력 등의 논란에도 임종석 전 의원을 초대 비서실장으로 임명한 것은 앞서 설명한 이유 때문”이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초대 비서실장으로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임명했다. 노 전 대통령도 보완 차원에서 문 의원을 택했다. 문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나를 비서실장에 임명해 놓고 한 얘기가 있다. 자기는 성격 등이 삐죽하니 두루뭉술한 내게 받침대 역할을 해 달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 민정수석비서관
 
2017년 5월 11일 조국 신임 민정수석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조 수석은 이날 기자들과의 질의 응답에서 “검찰이 막강한 권력을 제대로 사용해 왔는지에 대해 국민적 의문이 있다”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과 검찰 개혁을 시사했다.
  노 전 대통령은 검찰을 ‘개혁 대상 1순위’로 판단했다. 비(非)검찰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을 초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임명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노 전 대통령과 검찰의 갈등이 드러난 대표적인 사례가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03년 3월 9일 있었던 ‘검사와의 대화’이다. TV로 생중계된 검사와의 대화는 한 검사가 “대통령님께선 후보 시절 (검찰에) 청탁 전화를 한 적 있지 않으냐”고 하자 노 전 대통령이 “이쯤 되면 막 하자는 거죠”라고 받는 등 아슬아슬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당시 검찰을 관장하는 민정수석이었던 문 대통령은 《운명》에 〈(검사들의 태도는) 목불인견(目不忍見)이었다. 오죽했으면 ‘검사스럽다’는 말까지 나왔을까〉라고 썼다.
 
  문 대통령도 노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검찰은 개혁 대상’이라고 본다. 문 대통령의 이런 인식은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운명》에선 〈통제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은 참으로 심각한 문제〉라며 〈참여정부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최대한 보장해 줬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 (검찰은) 순식간에 이전으로 되돌아갔다〉고 했다. 2011년 낸 책 《검찰을 생각한다》에서는 〈검찰이 정치권력의 요구에 맞춰 사건을 처리해 법치주의가 무너진다〉며 〈막강한 검찰 권력을 감시할 시스템이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국회의원 회관에서 공약을 발표하면서 “참여정부 시절 정권이 바뀌더라도 (검찰이) 과거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확실하게 제도화하지 못한 것이 한(恨)으로 남고 아쉬운 부분”이라며 “이번에는 정권 초기부터 국민 염원에 힘입어 (검찰 개혁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겠다”고도 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초대 민정수석으로 임명한 것도 자신의 검찰 개혁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조 민정수석이 2010년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와 펴낸 책 《진보집권플랜》에는 이런 내용이 담겼다.
 
  〈검찰은 스스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타 권력기관에 비해 문민 통치를 받지 않는 유일한 기관이다. 전 세계 검찰 중 한국만큼 많은 권한을 가진 검찰이 없는데, 검찰에 대한 통제 장치가 법원 외에는 없는 상황이다. 진보개혁 진영이 집권했을 때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은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
 
  조 수석은 임명 첫날인 5월 11일 “고위 공직자에 대한 수사를 맡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과 수사권을 둘러싼 검·경의 역할 분담 문제는 선거가 시작되면 개혁에 아무도 관심이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내년 6월 지방선거 전에 다 추진해야 한다”며 “특히 공수처 설치는 검찰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살리는 길이다. 청와대와 검찰이 충돌하는 방식이 아니라 검찰과 국회가 서로 합의하고 협력하는 방식을 희망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과 조 수석은 닮은 점이 많다. 비검찰 출신으로 청와대 민정수석에 임명된 것도 그렇고, 정치인이 되는 것을 꺼렸지만 결국 정치에 참여하게 되는 것 또한 비슷한 면이다. 문 대통령은 1988년 김영삼 전 대통령으로부터 노무현, 김광일 변호사와 함께 국회의원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또한 이후에도 꾸준히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의 제안은 뿌리치지 못했다. 조 수석도 교수 신분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공개 지지 의사를 밝히는 등 사실상의 정치 활동을 해 왔지만, 정치인이 되는 것에는 손사래를 쳐 왔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제의에는 무너졌다. 그는 인선 대선 당일(5월 9일) 아침 페이스북에 “‘학인(學人)’으로서의 삶을 사랑하는 내가 ‘직업정치인’이 될 리는 만무하겠지만, 언제나 ‘참여형 지식인’의 책임은 다하겠다”고 적었다. 조 수석이 청와대 민정수석 제안을 받은 것은 5월 6일, 홍대 앞에서 열린 문재인 당시 민주당 후보의 프리허그 행사에서 사회를 봤을 때로 보인다.
 
 
  ▲ 반부패비서관
 
  조국 민정수석 인사와 관련, 주목할 만한 후속 인사는 5월 12일 이뤄진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임명이다. 반부패비서관은 전날 임시국무회의에서 이뤄진 직제 개편에 따라 신설된 직책이다. 박 비서관은 2012년 국정원 댓글 대선 개입 사건을 수사했다가 보복성 인사로 인해 2016년 검찰을 떠났다. 법조계 인사는 “검찰조직 내에서는 ‘칼잡이’로 알려진 박 비서관을 조국 수석을 보좌하는 핵심 신설 직책에 앉힌 것은 혹시 있을지 모르는 검찰 개혁에 대한 조직적 반발을 봉쇄하는 동시에 정권 초반에 강도 높은 개혁 작업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박 비서관의 임명에 항의했다. 그가 ‘노조 파괴’ 논란을 빚었던 갑을오토텍 사측의 변론을 담당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민주노총은 성명에서 “악질적인 노조 파괴 사업장인 갑을오토텍의 사측 대리인 변호사로 그 역할을 충실히 해 오는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박 비서관은 5월 13일 청와대 출입 기자들에게 보낸 공지문에서 “갑을오토텍 사건을 맡은 것은 문제가 되었던 이전 경영진이 기소된 이후인 지난해 봄부터였고, 변호사로서 사측에 불법행위를 하지 말도록 조언했었다”면서 “그러나 오토텍 변론으로 국민께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고 밝혔다.
 
 
  ▲ 경호실장
 
  초대 경호실장으로 임명된 주영훈 청와대 경호실장은 노무현 정부 당시 ‘가족부장’을 맡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가족들의 관저 경호를 담당한 인물이다. 노 전 대통령 퇴임 후에는 김해 봉하마을로 내려가 경호팀장으로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순간까지 경호를 담당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 서거 뒤에도 권양숙 여사의 비서실장을 맡았다. 이 때문에 ‘봉하마을 실장’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번 대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산하 ‘광화문 대통령 공약기획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주 실장은 지난 1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을 놓고 박 전 대통령 측이 “당시 박 전 대통령은 관저에서 근무했다. 이전 대통령들도 관저에서 근무하는 일이 잦았다”고 주장하자,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진실을 호도하는 짓을 묵과할 수 없다. (집무실에서) 등·퇴청을 하지 않은 (역대) 대통령은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그는 노태우 대통령 재임 당시 가족경호 업무를 담당한 적도 있다. 그는 9일 오후 10시쯤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이 확실시됐을 때는 페이스북에 〈벅찬 감동이다. 봉하에 가고 싶다. (권양숙) 여사님 부둥켜안고 목 놓아 울고 싶다〉고 적었다.
 
  주 신임 실장은 1956년 충남 출생으로 한국외국어대 아랍어과와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나왔다. 노무현의 마지막 경호실장을 문재인 정부 초대 경호실장으로 임명한 것은 ‘경호’와 관련한 두 전·현직 대통령의 견해가 비슷하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탈권위를 앞세운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은 ‘친근한 경호, 열린 경호, 낮은 경호’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주 경호실장은 앞으로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경호실 개혁’도 주도하게 된다. 문 대통령은 대선 캠페인 당시 “당선되면 청와대가 아닌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근무하겠다”는 이른바 ‘광화문 대통령 시대’ 공약을 내놨다. 주 실장은 대선 기간 더불어민주당 선대위에서 청와대 집무실 이전과 그에 따른 경호·시설 안전과 관련한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진행한 만큼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앞두고 경호 체제의 변화 등을 실현할 전문가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주 실장은 경호실 개혁의 하나로 기존 청와대 경호실 체제를 폐지하고 경찰청 산하 ‘대통령 경호국’으로 위상을 조정하겠다는 문 대통령 공약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 총무비서관
 
이정도 문재인 정부 초대 총무비서관. 문재인 대통령이 최측근을 임명하던 관행을 깨고 인연이 없던 인물을 총무비서관으로 임명한 것은 노무현 정부 때 총무비서관이었던 최도술씨에게 실망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최측근을 임명하던 관행을 깨고 이정도 기획재정부 행정안전예산심의관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임명했다. 대통령과 인연이 없이 주요 보직에 기용돼 파격 인사로 평가받고 있다. 이 총무비서관은 경제정책 총괄부처인 기재부에서도 인사와 예산 전문가로 통한다. 행정고시 출신 공무원들이 주류를 이루는 기재부에서 7급 공채로 시작해 국장직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 알려졌다. 경남 합천 출신인 이 비서관은 1992년 공직에 입문한 이후 기획예산처와 기재부에서 주로 예산 관련 업무를 맡아 왔다.
 
  총무비서관은 청와대 인사와 재정을 총괄하는 막강한 자리다. 특수활동비 등 ‘영수증이 필요없는’ 예산도 다루는 만큼 ‘사고’도 많은 자리로 알려졌다. 때문에 역대 대통령들은 자신을 오랫동안 보좌해 온 믿을 수 있는 측근을 총무비서관에 임명해 왔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각종 비리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거나 법정에 서는 등 불행한 결말을 맞았다.
 
  노무현 정부의 최도술 총무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의 고교 1년 후배로 1984년부터 ‘변호사 노무현’의 사무장으로 일했다. 그는 노 대통령이 취임한 2003년 총무비서관에 임명됐지만, SK로부터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다.
 
  이명박 정부의 김백준 총무비서관은 이 대통령의 고려대 동문으로 ‘MB 집사’로 불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한 2008년부터 임기 5년 내내 총무비서관으로 일하다 대통령 퇴임 때 함께 청와대를 떠났다. ‘왕비서관’으로 불린 그는 이 전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인 비비케이(BBK) 사건을 담당했고, ‘내곡동 사저 특검’ 때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의 이재만 총무비서관은 박 전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이다. 정호성·안봉근 전 비서관과 함께 박 전 대통령이 1998년 국회에 진출할 때부터 보좌해 온 오랜 측근이다.
 
  2013년부터 총무비서관으로 청와대 살림을 도맡아 하다가 박 전 대통령 탄핵의 원인이 된 국정농단 사건으로 지난해(2016년) 10월 사임했다. 이 비서관은 노무현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으로 있으면서 변양균 전 정책실장의 비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변양균 라인’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오랜 기간 ‘노무현 마크맨’을 했었던 부산 출신 전직 언론사 기자는 “문 대통령이 최측근을 임명하던 관행을 깨고 인연이 없던 이정도 심의관을 총무비서관으로 임명한 것은 최도술 사건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최도술씨가 총무비서관이 된 다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것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의 불만이 컸다”고 했다.
 
 
  ▲ 인사수석비서관
 
  문 대통령의 초대 인사수석비서관 임명은 파격 그 자체였다. 문 대통령은 여성인 조현옥 이화여대 초빙교수에게 ‘인사(人事)’를 맡겼다. ‘인사수석’은 노무현 정부 당시 민정수석실이 가지고 있던 ‘인사 추천과 발굴’ 기능을 떼어 내 신설된 자리로, 이명박 정부 때 없어졌다가 박근혜 정부 때인 지난 2014년 6월 부활했다. 이전 정부에서 여성 인사수석은 없었다. ‘최초의 여성 인사수석’ 타이틀을 달게 된 조 수석의 인선은 앞으로 남은 정부 요직에 여성 고위공직자를 등용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로 풀이된다.
 
  조 수석은 노무현 정부 초기 ‘고위공직자 인사검증자문회의’ 위원으로 활동했고, 문 대통령이 비서실장으로 있을 때인 지난 2006~2007년 청와대 인사수석실 균형인사비서관을 역임했다. 당시 문 대통령과도 처음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 성평등본부 부본부장을 맡았다. 캠프에는 지난 4월 11일에 합류했다. 그는 1981년 이화여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했고,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상임대표 등을 지냈다. 여성공천 할당제를 주장하는 등 여성 정치인을 배출하기 위해 활동했다. 보육, 저출산, 가족 등 여성 정책과 여성 시민사회를 모두 경험한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박원순 서울시장 1기 때인 지난 2011년 12월 서울시 여성가족정책관(별정직 1급 상당)으로 발탁됐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조 내정자를 ‘박원순계’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는 지난해 박 시장의 외곽 지원 조직인 ‘희망새물결’의 공동집행위원장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도 초대 인사수석으로 참신한 인물을 썼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무명의 시민단체 출신인 정찬용씨를 인사수석으로 내정했다. 정찬용 전 인사수석은 인물로는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일은 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노무현 정부의 인사가 아마추어리즘과 자기 사람만 쓰는 이른바 ‘코드 인사’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관계자는 “조 수석이 노 정부의 실패를 거름으로 삼고 공정하고 섬세하다는 여성의 장점을 활용해 인사로 성공하는 정부를 만드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고 했다.
 
 
  ▲ 국무조정실장
 
  문 대통령은 재정·예산 업무에 정통한 경제관료인 홍남기 전 미래창조과학부 제1차관을 국무조정실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노무현·박근혜 정부에서 모두 청와대 근무를 하는 등 정권을 가리지 않고 능력과 성실성을 인정받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경제수석비서관실 행정관과 정책실 정책보좌관으로 일했으며, 질 높은 정책 개발과 혁신에 앞장선 공로로 노무현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격려금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출범을 앞두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경제1분과 전문위원으로 합류해 경제정책의 밑그림을 그린 데 이어 박근혜 정부 출범 후에는 국정기획수석비서관실과 정책조정수석비서관실에서 기획비서관으로 일했다. 미래부에서는 1차관으로서 창조경제·연구개발·과학기술전략·미래인재 정책 업무를 총괄했다. 그의 임명은 박근혜 정부의 차관을 현 정부 장관으로 승진시켰다는 점에서 ‘공직사회 안정’에 방점을 둔 인사로 평가된다.
 
  홍 실장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직계 후배다. 이를 두고 관가에서는 노무현 정부 시절 실력자였던 변 전 실장의 인맥을 주목하기도 한다. 변 전 실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2007년 사이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으며, 2007년 9월 ‘신정아 스캔들’로 정책실장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공직을 맡지 않았는데, 작년부터 문재인 대통령의 자문 그룹에서 정책 참모 역할을 해 왔다. 홍 실장은 변 전 실장이 청와대 정책실장을 할 때 정책보좌관을 맡아 지근거리에서 변 전 실장을 도왔다.
 
  노 전 대통령도 정통 관료 출신인 이영탁 세계미래포럼 이사장을 초대 국무조정실장 자리에 앉혔다.
 
 
  ▲ 국정원장
 
  노 전 대통령은 국정원 개혁을 위해 초대 국정원장으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초대 회장 출신인 고영구 변호사를 임명했다. 그야말로 파격적인 인사였다. 당시 고영구 원장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국정원 개혁이 시작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실제로 국회 정보위원회 여당 의원을 중심으로 수사권 이관 및 국내 정보 수집권 포기, 국회에 의한 감독 강화 등의 개혁안이 논의됐다. 결과는 실패였다.
 
  문 대통령이 국정원 개혁 적임자로 꼽은 인물은 서훈 전 국정원 3차장이었다.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는 28년 3개월간의 국정원 경력 대부분을 북한 관련 업무로 채웠다. 서울 출신인 그는 서울고와 서울대 사범대를 나와 1980년 공채 17기로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에 들어갔다. 대공(對共) 분야에서 경력을 쌓다가 1996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대표로 북한 신포 지구에서 2년간 상주한 이후 대북 협상 및 전략 전문가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당시 다양한 북측 인사들을 만나 그들의 협상 스타일을 익힌 것이 이후 북한과 협상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됐다고 한다. 서 후보자는 김대중 정부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할 때 국정원 ‘KSS 라인’의 일원이었다.
 
  ‘KSS 라인’은 김보현(3차장)→ 서영교(대북전략국장)→ 서훈(대북전략조정단장)으로 이어지는 대북 협상 채널을 뜻한다. 2000년 당시 대북 특사였던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을 수행해 베이징에서 북측과 비밀 협상을 했고, 임동원 국정원장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때도 동행했다.
 
  노무현 정부에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보관리실장과 국정원 대북전략실장을 역임하고 2006년 11월 북한 업무를 총괄하는 3차장에 기용됐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을 막후에서 총괄하고 정상회담문 작성을 주도했다. 서 후보자는 김정은 부친인 김정일을 가장 많이 만나본 국내 인사로 꼽힌다. 김정일뿐 아니라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2013년 사망),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2015년 사망) 등과도 회담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후에는 이화여대에서 북한학 강의를 했다.
 
  이번 대선에서 선대위 안보상황단장을 맡아 바쁜 와중에도 강의를 빠뜨리지 않았다. 국정원 차장을 지낸 A씨는 “(서 후보자는) 차분하고 진지한 성격으로 조직 내 평판이 좋았다”며 “혼자 전략을 고민하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 정무수석비서관
 
문재인 대통령은 5월 14일 3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국회와 당내 요직을 두루 거친 전병헌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문재인 정부 초대 정무수석으로 임명했다. 2015년 9월 13일 민주당 대표였던 문 대통령이 최고위원이었던 전 전 의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정무수석비서관은 대통령비서실 소속으로 차관급 정무직 공무원이다. 국회의 운영 및 정당과 관련한 업무보고, 행정 및 치안에 관한 국정 운영에서 대통령을 보좌하고 보필하는 것을 주 업무로 삼는다. 따라서 대게 여·야를 넘나드는 폭넓은 인간관계를 가진 인물을 임명한다. 노 전 대통령은 유인태 전 의원을 임명했다. 유 전 의원은 당시 한나라당과도 소통을 잘했다. 유 전 의원은 17대 총선을 앞둔 2003년 말 한나라당 원내총무(현 원내대표)였던 홍사덕 전 의원을 만나 “한나라당이 소선거구제를 도농복합선거구제로 바꾸는 데 합의해 주면 총선 뒤 다수당에 총리 지명권과 각료 임명권을 주겠다”는 뜻을 전했다. 홍 전 의원은 “나는 좋다. 당에 가서 설득해 보겠다”고 했다. 몇 번 더 이어지던 협상은 탄핵사태로 깨져 버렸다.
 
  2004년 5월 노 전 대통령은 정무수석 자리를 폐지했다. 정무수석을 통한 정치권과의 막후 타협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정무수석직은 이명박 정권 때 부활했다. 문 대통령은 5월 14일 3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국회와 당내 요직을 두루 거친 전병헌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문재인 정부 초대 정무수석으로 임명했다. 전 전 의원은 민주당 원내대표, 정책위의장, 최고위원을 역임한 오랜 경륜을 바탕으로 집권 여당과의 당정 협력은 물론 야당과의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꼽힌다. 여당 원내대표 출신이 차관급인 청와대 정무수석에 기용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고위 당·정·청 협의에서 당을 대표는 원내대표는 청와대 비서실장과 동급으로 평가된다. 원내대표 출신을 급을 낮춰 정무수석으로 기용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과의 소통을 비롯해 국회와의 협치(協治)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선이란 해석이다.
 
 
  ▲ 사회혁신·사회수석비서관
 
  신설된 사회혁신수석비서관 자리에는 하승창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올랐다. 사회혁신수석은 시민사회와의 소통과 대화를 담당하는 자리다. 지역과 사회의 혁신적 활동들을 수렴함으로써 공동체 발전과 국민통합을 뒷받침하게 된다. 하 수석에게는 힘이 실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무현 정부 때 초대 민정수석을 건강상의 이유로 그만뒀던 문재인 대통령이 탄핵정국 이후 다시 청와대로 들어가 맡은 직책이 시민사회수석이었다는 이유에서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의 이야기다.
 
  “문 대통령이 시민사회수석직을 수행할 시절에는 뉴라이트 운동도 본격화하기 전이었고, 소위 보수우파의 광범위한 분화도 없던 시절이었다. 종교계를 포함, 스펙트럼이 넓은 시민사회와 광범위하게 소통 관계를 맺을 수 있으려면 시민사회수석보다 업그레이드된 역할이 필요하다. 이 점을 문 대통령도 잘 아는 만큼 지금의 사회혁신수석은 과거 시민사회수석의 업그레이드판이 될 것이다.”
 
  신설된 사회혁신수석이 노무현 정부 시민사회수석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만큼 힘이 실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 수석은 대표적인 시민운동가로 박원순 사람으로 분류된다. 1997년부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실장을 맡아 재벌개혁 운동을 벌였고, 2000년대에는 ‘함께하는 시민행동’에서 납세자 운동을 펼쳤다. 하 수석은 문 대통령 후보 시절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사임, 사회혁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캠프에 합류하며 문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정책실 산하에 신설되는 사회수석은 보건복지, 주택도시, 교육문화, 환경·여성가족 등 사회 전반의 정책을 총괄하는 자리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 김수현 세종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를 앉혔다. 김 수석은 지난 2012년 대선 때, 문 대통령 캠프의 미래캠프 지원단장을 맡아 정책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역할을 했다. 문 대통령이 낙선한 뒤인 2013년 초 일찌감치 정책자문 조직인 ‘심천회(心天會)’를 만들었다. 이때 김 수석은 성경륭 한림대 사회과학부 교수, 조대엽 고려대 노동대학원장 등 심천회의 다른 멤버들과 함께 매달 한 번씩 문 대통령을 만나 각 분야 정책을 다듬었다. 김 수석은 이번 대선에서도 정책 특보로 도시재생 활성화와 임대주택 확대 등 문 대통령의 핵심 부동산 공약 등을 주도했다.
 
 
  ▲ 정책실장·국정상황실장은 누가 될까
 
  청와대가 5월 11일 발표한 청와대 비서실 개편 방안의 핵심은 노무현 정부 때의 장관급 정책실장을 부활해 정책을 총괄하게 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 때 비서실장이 정책과 정무 분야 모두를 총괄했다면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는 비서실장이 정무, 정책실장이 정책을 맡는다. 박근혜 청와대와 비교했을 때 실장(장관급) 한 자리가 늘었다. 차관급인 수석은 두 자리 줄었지만, 차관급 보좌관 두 자리가 새로 생겼다. 비서실 정원은 443명으로 동일하다. 정책실장은 외교·안보를 제외한 경제·사회·교육 등 국가 정책 전반과 관련해 대통령을 보좌하게 된다.
 
  정책실장 산하에는 3수석 외에 경제보좌관과 과학기술보좌관 등 차관급 보좌관을 2명 두도록 했다. 경제보좌관은 경제 운용에 대한 기획 등을 담당하고, 과학기술보좌관은 4차 산업혁명 등 과학·산업 변화에 대응하도록 했다. 청와대 정책실이 ‘3수석 2보좌관’ 체제로 꾸려진 건 노무현 정부 때와 똑같다.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정책실도 3수석(경제정책·사회정책·혁신관리)에 경제보좌관과 정보과학기술보좌관 등 2보좌관 체제였다.
 
  청와대는 또 이명박 전 대통령이 폐지한 국정상황실을 설치해 전반적인 국정상황 점검 기능을 강화하기로 했다. 국정상황실은 김대중 정권 때 만들었고 노무현 정권이 이어받았다. 전국 각지, 각 분야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를 24시간 관리체제하에 둠으로써 국정의 안정적 운영을 기하겠다는 취지였다.
 
  이곳에는 국가정보원·검찰·경찰 및 각 행정부처 정보가 모두 모여 한 번 걸러진 뒤 비서실장을 통해 대통령에게 보고된다. 하지만 정보가 단일 통로에 집중됨으로써 독점의 폐해가 크고, 민정수석실 등 다른 조직과의 기능 중복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특히 김대중 정권 초 장성민 실장, 노무현 정권 초 이광재 실장 등 젊은 실세 측근들이 책임을 맡음으로써 전횡 구조가 싹텄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노무현 정권 들어서는 이광재 현 의원, 박남춘 전 인사수석, 천호선 현 대변인, 이호철 현 민정수석 등 실세 중의 실세들이 국정상황실장을 도맡아 왔다. 이 때문에 청와대 내에서도 국정상황실장은 비서관 중의 비서관, 수석급 비서관이라는 얘기가 일반화돼 있다.
 
  권력이 쏠릴 수 있는 정책실장직과 국정상황실장직이 부활하는 만큼 이 자리에 누가 앉을 것인지에 귀추가 주목된다. 노무현 정부 때 초대 정책실장직에는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정우 경북대학교 명예교수가, 초대 국정상황실장 자리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렸던 이광재 전 강원지사가 임명됐었다.
 
 
  새 얼굴이 없다는 지적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속속 발표한 인사에 대해 ‘새 얼굴’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5월 14일 현재까지 발표된 인사들을 보면 대부분 노무현 정부 시기 인사라는 것이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참여정부 때 인사와 자신이 영입한 인사, 대선 후보를 두 번 거치면서 당으로 흡수한 김대중 정부 때 사람들까지 포함해 새 정부가 기용할 수 있는 인력풀 자체가 커진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서도 “현재까지의 인사를 보면 엄밀히 말해 본인이 정치인 2세는 아니지만,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노무현을 뛰어넘는 데 주저하는 것 같은 한계도 보인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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