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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추적

서울에서 활동하는 김일성종합대학 총동문회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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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 출신’ 공무원·기자·연구원 등으로 활약 중
⊙ 탈북한 김일성종합대학 졸업생, 기자, 공무원, 연구원, 시민단체 임원 등으로 각계에 포진
⊙ “김정일 등극 후 ‘김평일’ 쪽에 줄 선 종합대학 동창들, 숙청당했다”(탈북자 A씨)
⊙ “김정은, 김일성종합대학에 등록까지는 했다는 얘기 있다”
  문제1. 북한의 김정일(金正日)과 남한의 임수경(林琇卿)은 대학 동문이다. 이 대학은 어디일까? 정답은 ‘김일성종합대학(金日成綜合大學)’이다. 임수경은 김일성종합대 명예졸업생이다.
 
  문제2. 그렇다면 김일성종합대학의 동문회가 존재하는 유일한 나라는 어디일까. 정답은 바로, ‘대한민국’이다.
 
  지난 2월 중국 곳곳으로 보내진 편지 한 통이 언론에 보도됐다. ‘존경하는 재중 김일성종합대학 동문 동지들께’로 시작하는 편지글에는 ‘북한을 탈출한 수십 명의 주민들이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이들이 북한으로 강제송환될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우려했다’는 대목이 있다. 중국에는 김일성종합대학에 유학한 경험이 있는 중국인 공무원, 학자가 꽤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중·재한 김일성종합대학 동문들의 상호 지지와 성원, 적극적 협력은 세계 인도주의 실천 역사에서 또 하나의 아름다운 장으로 기록될 것입니다’로 끝을 맺는 편지의 보낸 이는 ‘재한 김일성종합대학총동문회 회장 조명철’로 기록돼 있다. 바로 작년 6월 통일교육원 원장으로 취임한 그 조명철(趙明哲)이다. 편지글을 보도한 기사에는 ‘김일성종합대 동문은 기자, 연구원, 시민단체 대표, 공무원 등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는 구절도 있었다.
 
 
  2010년 12월에 동문회 첫 모임
 
김일성대학 경제학과 교수 출신인 조명철 통일교육원 원장.
  김일성종합대학(이하 김일성대·김대)은 북한에서 최고로 치는 대학이다. 한국에도 익히 알려져 있다. 1946년 10월에 개교했다. 한국에서는 ‘김대(金大)’라고 부르기도 한다. 북에선 ‘종합대학’이라 부른다. 북에서도 한때 김대라고 줄여서 쓴 적이 있다고 한다. 김일성의 성만 잘라붙인 명칭에 ‘불경함’이 풍겨 잘 쓰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졸업생들은 ‘종합대학’이라는 단어를 주로 썼다.
 
  북한이 신적(神的)인 존재로 치켜세우는 김일성의 이름이 붙어 있고, 그의 아들 김정일이 졸업한 대학을 나온 사람들, 북한의 최고 엘리트들이 누렸을 기득권을 등지고 온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을까. 기자는 한국에 있는 이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한국으로 넘어온 김대 졸업생은 약 스무 명가량이다. 정확한 통계를 밝히지 않은 이유는, 김대를 졸업하고도 일상생활에서 그것을 밝히지 않고 동문회에도 나오지 않는 졸업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대에도 ‘통신 과정’이라는 것이 있다. 한국의 사이버대학과 같은 것이다. 통신 과정 졸업생이 몇 명이나 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조명철 원장 외에 이름이 알려진 사람으로는 장진성 시인과 현인애 NK지식인연대 부대표 등이 있다. 장진성 시인은 시집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로 유명하다. 지금은 《뉴포커스(New Focus)》라는 탈북자 전문 인터넷 매체의 대표로 활동 중이다. 《동아일보》의 주성하 기자도 김대 출신이다.
 
  이렇듯 이름이 좀 알려진 이들 외의 다른 김대 졸업생들을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김대 출신 중에는 국가정보원이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같은 정보 관련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의 비중이 꽤 높다. 접촉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알음알음으로 어렵게 취재를 하던 중, 김대 동문회는 2010년 12월 만들어졌고, 동문회 모임이 예정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3월 초 어느 날, 북한 음식을 잘한다는 서울의 한 식당에서였다. 만나보기 어려운 졸업생들까지 만나볼 기회였다. 안면이 있던 김대 졸업생들에게 연락해 ‘동문회에 가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쫓겨나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모두 난색을 보였다. 기자는 동문회에 무작정 가보기로 했다.
 
 
  “종합대학 나오셨습니까?”
 
조명철 원장이 재중 동문들에게 보낸 편지. 한국어와 중국어로 작성됐다.
  식당 한편의 방. 열댓 명가량 앉을 수 있는 공간에 하나 둘 김대 졸업생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여섯 명이 모였다. 먼저 온 사람들끼리 반갑게 아는 척을 하며 근황을 주고받았다. 이윽고 모임의 좌장인 조명철 원장이 들어섰다. 다른 동문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조 원장은 기자에게 물었다. 반가운 표정이었다.
 
  “종합대학 나오셨습니까?”
 
  기자는 대답 대신 《월간조선》이 찍혀 있는 명함을 내밀었다. 조 원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분 누가 데리고 왔습니까.”
 
  방안의 공기가 순간 차가워졌다. 가방을 챙겨 나가야 하나 고민하는 터에 조 원장이 말했다.
 
  “이왕 왔으니 술이나 한잔하고 가세요.”
 
  적어도 술이 한 순배 도는 동안에는 식당 밖으로 ‘송환’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돼지고기를 담백하게 삶아 얇게 저민 북한식 편육이 나왔다. 북한 술을 마시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종업원이 쟁반에 받쳐 온 건 소주와 맥주. ‘폭탄주’가 각자의 손에 들렸다. 건배 구호는 ‘종합대학 동문회를 위하여!’ 기자도 ‘동질감’을 표시하느라 잔을 높이 들었다.
 
  기자의 맞은편 쪽에 앉아 있던 장해성(67)씨는 술을 단번에 들이켰다. 장씨는 철학과를 졸업하고 조선중앙TV에서 정치부 기자와 문예부 작가를 하다 1996년에 탈북했다. 모임의 최연장자인 그는 시종일관 다른 사람들에게 살갑게 말을 걸고 그 자리에 오지 않은 사람들의 근황을 자상한 말투로 챙겼다. 술이 한잔씩 돌자 다른 사람들도 두서없이 서로 근황을 물었다. 말들 속에 떠다니는 북한 억양이 아니라면 한국의 여느 대학 동문 모임과 다를 것이 없는 풍경이었다. 참석자 7명 중 2명은 기사에 신상이 밝혀지는 걸 한사코 거부했다.
 
  김대 졸업생인 현성일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원이나 최순영 연합뉴스 기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동문회 모임에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고 한다.
 
  장씨의 왼쪽에는 현인애 NK지식인연대 부대표가 앉아 있었다. 모임의 유일한 여성 동문이었다. 현 부대표는 1979년에 철학과를 졸업하고 청진의학대학 교수로 재직하다 2004년 탈북했다. 현 부대표의 맞은편에 앉은 이는 도명학 NK지식인연대 사무국장이었다. 도 사무국장은 김대 어문학부를 졸업했다.
 
 
  “김大 출신 논문 보고 놀랐다”
 
  술잔을 내려놓고 조 원장은 A4 용지 뭉치를 꺼내 하나씩 나눠주었다. 언론에 보도된 바 있는 그 편지글이었다. 조 원장은 편지글에 대해 설명했다.
 
  “다 아시고 계시겠지만,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다시 송환되는 것을 그냥 볼 수 없어 제가 아는 동문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에 답이 왔는지를 묻고 싶었다. 그러나 술 한잔만 마시고 나가기로 되어 있는 처지에 함부로 질문을 던질 수 없었다. 조 원장의 말이 이어졌다.
 
  “편지를 보내고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 통화할 때는 절대 그 얘기를 안 해요. 잘 있느냐. 이런 인사를 나누고 잘되길 바란다, 이렇게만 말하는 거죠. 중국도 국가안전부가 높잖아요. 보안 문제를 걱정하는 겁니다.”
 
  듣던 사람 중 한 명이 ‘편지글을 베이징대 총장이나 하버드대 총장한테 보내면 어떠냐’고 했다. 그러자 다른 한쪽에서 ‘그러면 종합대학을 명문대급으로 올리는 건데 괜찮겠어요?’라고 응수했다. 웃으며 반 농담하는 분위기였다. 이야기 중에도 술잔이 마주치는 소리가 연방 들려왔다. 한쪽에서 다른 참석자가 말했다.
 
  “김일성이라는 이름이 들어가서 그렇지, 종합대학도 명문대예요. 북한이 발표하는 연구자료나 이런 게 과장했다고 평가돼서 대학 연구 성과 순위에 반영이 안 돼서 그렇지.”
 
  맞장구가 이어졌다. 북한을 등진 종합대학 출신들의 피할 수 없는 고민이 엿보이는 말이었다.
 
  기자는 ‘종합대학이 명문대’라는 얘기를 전에도 들은 적이 있다. 대학원에서 김대 출신을 지도해 본 경험이 있는 서울 시내 모 대학 교수로부터였다. 그의 말이다.
 
  “김일성대를 나온 학생이 석사생으로 들어왔어요. 중간과제 낸 걸 보고 굉장히 놀란 기억이 있습니다. 연구 주제에 대한 분석 틀은 물론이고 분석 방법까지 흠잡을 데가 없더군요. 영어도 굉장히 잘하고요. 김대에서 딴 학점은 우리 대학원에서 인정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전공과목 몇 개는 인정해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학교에서 이동할 때도 교가 부른다”
 
1997년 4월 20일 입국한 황장엽 비서(왼쪽)·김덕홍씨. 김일성종합대학 총장까지 지낸 황장엽 비서의 망명이 북한 고위층에 미친 영향은 매우 컸다.
  탈북자 김형수씨도 같은 얘기를 했다. 그는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나서 김일성 만수무강연구소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2009년 두만강을 건너 탈북했다. 현재는 서울에서 고속도로 과적차량 단속 모니터링 요원으로 근무 중이다. 김대 졸업생이지만 동문회에는 개인 사정상 오지 못했다. 기자는 그를 동문 모임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났다. ‘종합대학의 교육수준이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이론만은 최신 이론을 교육한다’고 답했다.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교육수준이 어떤가요.
 
  “북한도 교재만은 최신으로, 제일 잘나가게끔 해놓아요. 러시아나 미국 교재를 봅니다. 생물학 교재는 러시아가 약하지 않거든요. 러시아 교재를 가져다가 업그레이드를 합니다. 그리고 미국 잡지가 계속 들어오니까요. 교수 자체만도 수준이 좋아요. 전쟁 때 납북된 강원호 교수. 생화학에선 고수예요. 인체의 모든 수식을 알 정도로 유명한 분이에요. 또 한국에서 납북돼서 온 다른 사람들, 그런 분들이 정말 유명했죠.”
 
  ―실습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실험기구나 시약이나 이런 게 다 중국에서 들어온 거였어요. 시약이 좀 안 좋고, 설비도 1970~1980년대 독일에서 쓰던 거고, 그랬죠.”
 
  ―김대의 경우 대학 재학 기간은 보통 얼마나 됩니까.
 
  “대학이 6년이잖아요. 예비학교 1년, 본과가 6년. 자연과학이 종합대학은 그렇게 되고 사회과학은 1년 줄었어요. 그러다 1990년대 들어 고등학교 5학년제를 6학년제로 올렸어요. 예비학교가 없어지고. 제대군인 10년 근무한 사람만 1년 동안 대학에서 의무교육을 (하게 해)줍니다. 그러고 본과로 진입시킵니다.”
 
  ―과마다 재학 기간이 다른 건가요. 인문과는 5년, 자연과학부는 6년, 컴퓨터도 6년간 공부하는 것 같던데요.
 
  “6년간 다니고, 6개월은 군사 동원 기간입니다. 이런저런 행사들 때문에 빠지니까 4년보다 좀 더 긴 거 같아요. 한국보다 1년 정도 더 공부하는 거 같습니다.”
 
  ―김대만의 특색 같은 게 있을까요.
 
  “종합대학은 정체성(正體性)이 뚜렷하지요. ‘종합대학은 간부양성의 원종장(原種場)이다’ 이렇게 말하잖아요.
 
  다른 대학은 없어도 종합대학은 교가가 있어요. 교가를 계속 불러요. 군사화되어 있기 때문에 대학 안에서 식사할 때도, 집체(集體)를 움직일 때도 군대처럼 행진하며 갈 때 종합대학 교가를 부르면서 가요. ‘자랑차다 종합대학 학원의 맏아들’ 이렇게 시작하는데, 다들 외우고 있죠. ‘주체의 혁명이요’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되고요.
 
  가사가 책임감을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북한 사회를 어떻게 책임져야 하나, 진짜 우리가 주인공이다, 이런 걸 강조하는 노래인 거예요. 어떤 정치감을 계속 키워가기 위한 집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정일, 대학 때 ‘망정’같이 놀았다”
 
2007년에 폴란드 나레프시 홈페이지에 소개된 김정일의 이복동생 김평일(맨 오른쪽)과 아들 인강, 딸 은송.
  사실 ‘간부양성의 원종장’이라는 김대의 정체성을 극명히 보여주는 것은 교가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이 대학이 ‘로열패밀리’의 모교라는 점이다. 수소문한 끝에 김평일, 김경진 등 김일성의 아들, 딸과 비슷한 시기에 대학을 다닌 탈북자 A씨를 만났다. 김평일은 김일성과 김일성의 후처 김성애의 아들이다. 김정일의 이복 남동생인 셈이다. 김평일의 형제로는 김영일과 김경진이 있다. 김영일은 2000년에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경진의 남편은 현재 오스트리아 주재 북한 대사인 김광섭이다. A씨와의 일문일답이다.
 
  ―김평일과 김경진 등 일명 로열패밀리도 김대 출신 아닙니까.
 
  “김일성이 김성애와 결혼해서 제일 먼저 낳은 게 김경진입니다. 맏딸인 거죠. 그 아래로 김평일, 김영일 이렇게 있었고요.
 
  김경진은 물리학부를 다녔어요. 그런데 물리학부만 한 게 아니라 복수전공을 시킨 거예요. 원래 종합대학은 복수전공이라고는 없는데 김경진을 위해서 그 학부만 특별히 복수전공을 만든 거지요. 종합대학을 졸업하면 전문가 자격을 받거든요. 김경진은 물리학 전문가랑 정치경제학과 전문가 자격을 동시에 받은 거지요.
 
  김평일은 원래 경제학부 다녔으니까 경제학 졸업생이고요. 김영일은 자동화학과를 들어갔는데 죽었어요 아파서. 얼마 못 살고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온다는 말이 있었는데 한번 보지도 못했습니다.
 
  김경진은 피아노를 잘 쳤습니다. 그때 종합대학 창립 서른 돌인가를 맞으면서 그 온 대학이 다 동원되는 행사를 했어요. 그때 김경진이 피아노를 쳤죠. 김평일은 학교에서 간혹 왔다갔다하면서 마주쳐서 잘생겼다. 그 정도로 생각했죠. 김일성 닮았고 잘생겼어요.”
 
  ―김정일보다 잘생겼나요?
 
  “김정일보다 키도 크고, 김일성 많이 닮았으니까 잘생겼죠. 원래 북한에서 김일성 가족을 내세우자는 것은 모든 항일투사가 다 한결같은 생각이었고. 거의 다 누구를 지목했는가 하면 김평일을 지목했다고 그러더라고.”
 
 
  “김정일에 줄 못 선 얼뻔한 놈 목 잘려”
 
  ―후계자로 말입니까?
 
  “응. 왜냐하면 김정일이 너무 망정(깡패와 비슷한 의미)처럼 놀았어요. 엄마 없이 자라서 망정처럼 많이 놀았기 때문에…. 그런데 김정일이 술수를 부렸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정치적으로 이겼잖아요? 정의는 다 승자의 편이라고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된 거지요.
 
  김평일의 종합대학 동창 중에 김평일한테 붙었던 동창들은 곁가지로 숙청당하고. 김평일뿐 아니라 김경진 친구도 몽땅 다 곁가지로 직위에서 떨어져서 추방됐지요. 김경진이나 김평일의 친구들은 하나도 정계에 등극한 게 없고 다 밀렸어요. 무슨 수용소에 간 건 아니지만 다 좌천돼서 하바닥, 남한식으로 말단 공무원이 된 거예요. 아무리 날고 기어도 딱지 딱 붙었으니까 어쩔 수 없는 거지요. 그렇게 되고 말았어요.”
 
  ―한마디로 ‘줄을 잘못 선’ 거네요.
 
  “처음에 김평일이 그렇게 될 줄이야 몰랐겠지요. 종합대학 사회학부라는 게 다 정치를 뜻하고 오는 놈들이에요. 공식적으로 민족간부를 키우는 학교라고 돼 있지 않아요? 그걸 바라보고 김평일한테 의식적으로 접근한 사람들도 참 많거든요. 근데 그런 놈들 다 떨어졌어요.
 
  바로 ‘정치적 줄타기를 하면 안 된다’ 북한에선 그렇게 말하는데 줄타기를 하면 안 되고, 오직 장군님, 수령님께만 충성해야 하고. 뭐 이런 식으로 해석했으니까 그 사람들은 종파 비슷해진 거지요.
 
  남한하고 북한하고 다른 점은 남한은 어느 파벌에 가서 붙어야 하잖아요. 이번 선거 때 박근혜한테 붙을까, 누구한테 붙을까, 어디에 붙을까, 본인 결심이고 또 붙었다고 해서 나쁜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북한은 그런 줄타기 자체가 당과 혁명에 대한 배신이지요. 그런데 사실 김일성의 다음 줄이 김평일이 될지 김정일이 될지 누가 알았겠어. 그러니까 김정일한테 가서 못 선 얼뻔한 운 나쁜 놈들은 목이 잘린 거지요.”
 
  ―북에서는 김정은(金正恩)도 김대 출신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말이 그래도 김정은은 종합대학 다니지 않았어요. 말은 그렇게 돌았고, 종합대학에 등록을 했다는 말은 있어요. 다 개별 교사한테 강의를 받았지요.”
 
  ―김정일의 둘째 아들 김정철(金正哲)이나 김정남(金正男)의 경우는 어떤가요.
 
  “사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 다 모른다니까요. 그런데 김정남에 대해서는 이한영이가 와서 쓰지 않았어요? 김정남은 북한 애들하고 섞여서 자라지 않았다니까. 어렸을 때부터 별도로 키웠지요. 김정일이가 자기 가정이 아주 띳띳하니까(떳떳하지 않으니까) 소문나는 걸 엄격히 통제해서 아이들 자체를 섞여서 키우지 않았고, 게네만 별도로 키웠어요. 별도로 스위스인지 어디에서 공부시켰으니까. 게네는 북한에 동창이 없을 거예요.”
 
  ―종파가 생길까 봐 일부러 학교를 안 보낸 건 아닐까요?
 
  “종파 문제도 종파 문제고, 뭐라고 할까. 김정일이 자기 가정이 좀 복잡하잖아요. 그러니까 그거를 사람들한테 공개하기 싫었겠지요. 북한에서 김정일 가족에 대해 말하면 다 걸렸다니까. 아는 사람도 다 말 안 했어요. 다 몰랐지. 김정일이 부인이 하나가 아니고 여럿이라는 건 알았지만, 고영희 이런 이름도 몰랐지요. 다 남한 와서 알았어요.”
 
 
  김일성 父子 만수무강연구소
 
  다시 김대 동문회 모임. 술자리 분위기는 무르익고 있었다. 북한식 만두가 들어 있는 만두전골이 식탁 위에 올랐다. 조명철 원장 맞은편에 앉아 있던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원이 술잔을 들고 건배를 청했다.
 
  “제가 소조 활동을 강원도 쪽에서 했습니다. 거기서 ‘단번에 낚자’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로 건배를 하시죠. 자 다 같이 낚자!”
 
  김 연구원은 외국어문학부를 나와 주로 해외에서 거주하며 북한의 대외 금융 업무를 담당했다. 주(駐)싱가포르 동북아시아은행 대표로 활동하기도 했다. 2003년에 탈북했다.
 
  《월간조선》은 2008년 3월호에서 ‘김대중 정부가 북한에 불법으로 보낸 4억5000만 달러가 핵무기 개발에 쓰였다’는 그의 증언을 단독 보도한 적이 있다. 지금은 국가안보전략연구소에서 근무한다. 북한에서 외국어문학을 전공하고 대외 금융 업무에 종사하다, 한국에 와서도 연구기관에 근무하고 있으니 나름 전공과 경력을 잘 활용하는 셈이다.
 
  모든 김대 졸업생이 전공을 활용하면서 한국에서 사는 것은 아니다. 만수무강연구소에서 일했던 김형수씨의 경우, 식품 연구 쪽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다. 그에게 왜 과거 경력과 관계없는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지 물었다. 그의 설명이다.
 
  “(그쪽으로 취업이) 안 됐습니다. 제가 오자마자 서울대 연구사로 가려고 했어요. 생물학 쪽으로.
 
  그런데 그분들 만나보니까, 연구소 소장이 저보다 나이가 어려요. 그분이 ‘북한에서 와서 할 수 있긴 한데 오자마자 하는 거니까 조수밖에 안 된다. 나이가 있는 분이 조수를 할 수 있겠느냐’ 그러시더라고요.
 
  그렇게 나이 문제도 있고, 또 북한의 연구 수준이 한국보다 낮다고 인식이 돼 있으니까요. 시료라든가, 연구기기라든가 그런 걸 다 다시 배워야 한다는 문제도 있었고요. 1년 지나니까 저도 포기하게 되더라고요.”
 
  다시 물었다. “김일성, 김정일이 먹는 음식을 분석하는 연구소였는데 시설이 좋지 않았습니까?” 그의 답이다.
 
  “그 설비는 좋았습니다. 김정일이 먹는 음식은 여러 분야로 들어옵니다. 외교관 진상품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고, 별도 주문 하기도 하고요. 그게 다 그냥 들어가진 않고 통과돼야 해요. 그들을 위한 건강식품 원료들도 다 검증된 후 들어갑니다.
 
  분석실도 큰 게 있어요. 그 설비만은 최신으로 썼어요. 종합적으로 검사하는 기계도 오스트리아에서 사오고. 그 나라 설비인데. 그게 17만 달러짜리예요. 한 대가. 탁자만 한 게. 독일 만하임사 것도 썼고요. 연구소의 설비 자체는 좋아요. 분석하면 거의 20가지 지표수가 자동으로 나와요. 프린트 출력되면서, 모니터에 다 뜨고. 엄청나죠. 그 시약들을 로봇이 다 분리해서 작업하고 그러거든요. 설비가 폴라노그라피, 뭐 그런 게 하나가 보통 2만 달러 넘어가는 건데. 김정일 위한 건 다 돈 쓰거든요. 시약도 미국 시그마 회사 것만 가져다 쓰고요, 미국을 욕하면서 말이죠. 음식에 독성이 있는지부터 다 검사합니다. 결과적으로 그거 통과된다 하면 쓰고.” 그의 설명은 이어졌다.
 
 
  김정일과 체격 비슷한 간부들, 실험 대상 돼
 
  “북한에 고위 간부들이 가는 학교가 있어요, 김일성 고급당학교라고. 북한 고위층 사람들이 재(再)강습 받는 곳인데, 거기 있는 사람들은 다 돼지같이 살이 쪘어요. 다 벤츠 몰고 다니고 그런 호화로운 생활을 합니다. 그런 북한의 기득권 고위층들은 저희 실험대상이 되는 거예요. 우리는 식품들을 통과시키기 전에 그 사람들한테 먹여보는 거예요. 계속 피검사하면서 여러 가지 실험결과를 지켜봐요.”
 
  ―그 사람들이 실험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나요?
 
  “그 사람들은 안 한다 하면 큰일 나는 거예요. 목숨까지 바치겠다고 결의했는데. 김정일이란 놈이 어떤 사람이란 걸 알면서도 기득권층은 자기 자식들을 훤히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거죠.”
 
  ―지금도 김정은이랑 체격 조건이 비슷한 사람들은 실험을 당하고 있겠네요.
 
  “그렇죠.”
 
  연관 분야로 가길 원했지만 잘 안 된 김형수씨와 달리 아예 처음부터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길을 걸어간 김대 졸업생도 있다고 한다. 탈북자 B씨는 또 다른 김대 졸업생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B씨의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북한 사회 기준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게 많지요. 종합대학 나왔지만 그걸 숨기고 사는 분들도 있다고 들었어요. 종합대학 나왔는데 CAD만 다루는 분도 있습니다. 근데 그분은 월급만 600만원이나 된다고 해요. CAD를 배워가지고. 컴퓨터 선반이라고 완전히 최고 정밀 부품들을 깎아내는 건데 일정한 고수가 됐다고 해요. 여러 가지 갈래가 많죠.”
 


 
  김大 출신 숨기는 사람도 있어
 
  장진성 《뉴포커스》 대표는 모임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의 대표작,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와 사뭇 다른 인상이었다.
 
  그는 어문학부 박사원(대학원)을 졸업하고 통일전선부에서 일하다가 지난 2004년, 자신이 쓴 시가 적혀 있는 공책 두 권을 안고 두만강을 건넜다. 그중 한 권이 시집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로 출간됐다.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는 영문판으로 나왔나요?” 한쪽에서 질문이 나왔다. 그는 천연덕스럽게 “영문판으로 진작에 나왔죠. 제가 영문판을 읽어보고 막 울었어요”라고 답했다. 참석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장진성 대표의 시집은 큰 인기를 얻고 있지만 모든 김대 출신들이 탈북자들 사이에서 인기의 대상인 것은 아니다. 김대 졸업생 B씨의 말이다.
 
  “처음 어떤 탈북자들 모임에 갔다고 하면, 종합대학 출신이라고 말하기 싫어하죠.
 
  첫째로, 탈북자 사회 전반을 고려했을 때 좀 망설여져요. 예를 들면 북에서 보위부 종합대 있었다 그러면 보위부는 북한 사회에서는 떵떵거리던 놈들이고 억압하던 놈들인데, 싫어하겠죠.
 
  종합대학도 마찬가지겠죠. 겉으로 표현은 안 해요. 대체로 알게 되면 나쁘게 보겠죠. 우리는 북한에서 무지렁이처럼 살았고, 김대 출신은 북한에서 그래도 좀 살았는데…. 아무래도 그런 감정을 가질 거 같아요.
 
  두 번째로 대한민국에서 김일성이란 이름이 붙은 대학을 졸업했다고 말하는 순간, 거기에 앞서 김일성을 떠올릴 거 아닙니까. ‘아이 나쁜 놈’ 생각하고요. 저는 어디 가서도 종합대학 말 안 해요. 하기 싫어하죠. 자꾸 프로필 자체가 그렇게 되니까.
 
  근데 한국의 젊은 사람들은 와와! 해요. 젊은 애들은 김일성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모르니까. 어디 안보 강연을 가면 강연 전에 담임이나 교장이 나와서 ‘종합대학은 우리나라의 서울대다’라고 해요. 그럼 애들이 또 와와! 하죠.”
 
  신분을 밝히길 꺼린 또 다른 종합대학 졸업생 C씨는 이에 대해 좀 다르게 설명했다.
 
  “딴 사람들은 두 가지 감정이 엇갈리겠지요. 탈북자들은 비율상 공부 (잘)한 사람보다 못한 사람이 많잖아요. 못한 사람들은 부정적인 시각이 강하죠.
 
  북한 사회에서는 계급투쟁 이론을 많이 배워서 남한에 오면 처지가 바뀔 걸로 생각하고 오는 거예요. 북한에서 천대받고 멸시받던 사람은 여기 오면 이렇게 등극을 하고, 북한에서 잘나가던 사람은 구(舊)제도에 충실했으니까 여기 오면 좀 제재를 받을 걸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거죠. 북한에선 항상 그렇게 했으니까.
 
  옛날에 성분이 좋다는 게 별것이 아니라 일본강점기 때 못살던 사람이 성분이 좋은 거예요. 일제 때 잘살던 사람들은 다 천대받고 그런 구조였던 거죠.
 
  그렇게 생각하면, 북한에서 잘나가던 사람은 여기 와서 못 나가야 되는데 더 잘나가고, 못 나가던 사람은 못 나가고, 거기에 대해서 아주 실망하게 되는 거죠. 어떤 사람은 불만을 갖게 되는 거고.
 
  그런데 이 사회가 이데올로기가 상관이 있어요? 본인 능력을 보는데, 대학 나온 사람이 능력이 높기 마련이잖아요. 그러니까 이 사회를 빨리 이해하게 되는 것이고요. 이 사회를 빨리 이해하게 되고 세상 살아가는 데 유리한데, 안 배운 사람은 힘든 거지요.”
 
  ―그러면 종합대학 나온 걸 숨기는 분들도 있을까요?
 
  “숨기진 않아요. 굳이 밝히지도 않지만.”
 
  ―김대 출신이 아닌데 속이는 사람도 있을까요?
 
  “있지요. 당연히 있지요.”
 
  이들의 설명대로 탈북자 사회 일각에서는 김일성종합대학 졸업생들에 대해 ‘북한에서의 기득권 세력이 왜 여기서도 기득권 세력이냐’고 지적하기도 한다. 북한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은 탈북자 D씨의 말이다.
 
  “지난번에 조명철 원장이 통일교육원장에 취임한 것이 하나의 구심점입니다. 종합대학 졸업생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인 거죠. 이렇게 국가기관에서 그 사람들을 중용하고 있잖아요. 탈북자가 쥘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사회적 편익을 다 가져가는 겁니다. 그런데다 세력화까지 하면 더욱더 이기질 못하게 될 겁니다.”
 
  술자리가 파장으로 갈 무렵 참석자 중 누군가가 건배를 제의했다.
 
  “북한에서는 아직도 많은 동포가 죽는 것보다 힘든 생활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들이 하루빨리 자유의 품으로 올 수 있도록 우리 동문회도 앞으로 열심히 노력합시다. 자 북한을 위하여!”
 
  술잔을 든 손들이 하나로 모였다.
 
  “북한을 위하여!”
 
  가요가 흘러나오고 각종 식당의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길거리로 나온 김대 졸업생들은 다시 흩어졌다. 남한에서의 새로운 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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