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시론

光州 출마했던 청년 의사의 보수 진영을 향한 고언(苦言)

보수, 먼저 ‘따르고 싶은 어른’이 돼야

  • 글 : 박은식 호남대안포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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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국힘 중진들은 ‘양남(강남+영남)’에만 출마하고 신인들만 험지로 보내나?
⊙ 좌파의 어른들, 호남·수도권 정치 권력 바탕으로 젊은 운동권 세대를 영입하고 키워 내
⊙ 책임지는 모습 보여 주지 못한 윤석열 전 대통령과 국힘 전·현직 중진들
⊙ ‘부정선거론’과 ‘계엄 옹호’라는 모래성을 쌓는 나이든 분들
⊙ 청년들이 보수주의 공부하고 퍼트릴 수 있게 ‘입보다 지갑’ 열어야
⊙ 김성수·송진우·김점곤 등 ‘호남 보수’의 역사적 인물들 발굴·기념해야

朴銀湜
1984년생. 한양대 의대·고려사이버대 법학과 졸업 / 《조선일보》 《중앙일보》 《신동아》 칼럼니스트, 국민의힘 인재영입위원·비상대책위원·광주광역시 동남을 당협위원장 역임. 現 호남대안포럼 공동대표 / 저서 《당신을 설득하고 싶습니다》
2025년 1월 6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관저 입구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 사진=조선DB
‘젊은이’는 생물학적으로 나이가 적은 상태를 의미한다. 하지만 ‘청년’은 ‘푸를 청(靑)’이라는 뜻이 담긴 한자를 넣어 미래가 기대되는 존재, 끊임없이 도전하는 존재, 실패해도 용인되는 아름다운 존재라는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어른은 단순히 나이가 많은 노인을 뜻하지 않는다. 품격과 소명(召命)의식을 갖추고 미래 세대인 청년을 위해 책임과 헌신을 다하는 존재, 축적한 지혜를 바탕으로 청년을 바른 길로 이끌며, 청년으로 하여금 의지하고 싶게 만드는 존재가 진짜 어른이다. 청년들은 그런 어른을 볼 때 자발적으로 따르며, 때로는 그 어른이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도 한다.
 
  청년으로 분류되는 39세의 나이에 시민단체 대표를 맡고, 《조선일보》를 비롯한 신문과 잡지에 칼럼을 쓰다가 국민의힘에 영입되어 인재영입위원과 비상대책위원을 지내며 선거에까지 출마했던 나는 정작 따르고 싶은 어른을 보지 못했다. 총선 참패와 계엄, 두 번째 탄핵, 그리고 정권을 내주는 과정을 겪으며 난국을 현명하게 수습할 어른을 애타게 찾았지만,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어른이 아니었다. 보수 진영을 거쳐간 수많은 리더들이 있었는데,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일까?
 
  소명의식을 가지고 책임과 헌신을 다하는 정치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수에도 노무현·문재인 같은 ‘호남 리더’ 필요
 
  2023년 9월, 국민의힘 김기현 당시 대표와의 첫 면담에서, 김 대표는 영입 제안을 하면서 비례대표나 서울 당선권 등 ‘좋은 조건’을 말씀해 주셨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호남이 변해야 한다고 말해 온 사람이 다른 지역에 출마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전주 출신 한덕수 총리와 이용 비례의원, 익산 출신 이상민 장관과 조수진 비례의원, 광주(光州) 출신 전주혜 비례의원이 고향에 출마해 바람을 일으킨다면, 저는 비례대표로 후방에서 정치를 배우다가 다음 총선에 광주에 출마하겠습니다. 만약 그분들이 나서지 않는다면 저라도 이번 총선에 광주로 가겠습니다. 대신 광주에서 잘 싸울 수 있게 선거대책위원장 같은 상징적인 자리를 주셔서 저의 체급을 키워 주십시오.”
 
  의원직을 제안받고도 거절한 이유는 분명했다. 호남이야말로 보수 진영의 중심부에서 인정받은 정치인들의 출마가 절실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즉 이른바 진보 진영 내에 영남 출신인 노무현(盧武鉉)·문재인(文在寅) 전 대통령 등이 있었던 것처럼, 보수 진영에도 호남 리더 그룹이 있어야 이 견고한 정치 지형이 변할 수 있다는 말이다.
 
 
  호남은 원래 보수 성향 강한 곳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면 복권된 직후인 1987년 9월 8일 광주를 방문,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사진=조선DB

  호남은 원래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곳이었다. 제3대 대선에서 전남은 이승만(李承晩) 후보를 72%나 지지했다. 제5대 대선에서 공화당의 박정희(朴正熙) 후보는 호남에서 60%를 얻었고, 제7대 대선에서 김대중(金大中) 후보와 붙었을 때도 40% 넘게 득표했다. 호남의 대표적인 정치인이자 신민당을 이끌던 이철승(李哲承)이 베트남이 공산화되고 북한의 위협이 심화되던 시기에 박정희의 유신(維新) 체제에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도 호남 지역 보수적 여론의 영향이었다. 1980년 5·18 이후 곧바로 지금의 지형이 형성되었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1981년과 1985년 총선에서도 전두환(全斗煥)의 민정당에 절반 넘는 지지를 보냈다. 그 정도로 건국 이후 40년간은 호남에서도 보수적 성향이 견고했다.
 
  하지만 미국이 개입해 군부 독재를 심판해 주길 바라며 ‘북괴는 오판하지 말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던 ‘친미(親美)·반북(反北) 민주화운동(5·18)’은, 운동권 세력에 의해 ‘반미·친북 민중운동’으로 성격이 변질됐다. 여기에 ‘호남 홀대론’을 내세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더해지며 1987년 대선 때 비로소 호남의 ‘김대중 몰표’가 시작됐다. 1990년 3당 합당 후 호남 소외가 더 심화되자 김대중은 ‘메시아’로 더욱 추앙받게 됐다.
 
  그렇게 좌파의 ‘어른’들은 호남과 수도권 일부의 정치 권력을 독점하고 이 자원을 바탕으로 젊은 운동권 세대를 영입하고 키워 냈다. 그 운동권 젊은이들이 지금은 좌파 진영의 ‘어른’이 되며 호남은 40년간 좌파 세력의 공고한 지지 기반이 되었다. 정치적으로 옳고 그름을 떠나, 좌파는 조직을 키울 줄 알았다. 운동권 투쟁을 가장 열심히 했던 리더 그룹들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했다. 호남에 국한된 진영을 확장시키기 위해 영남 출신인 노무현과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마침내 경북 안동 출신 이재명(李在明)까지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민주당 호남 독점’ 40년의 결과
 
필자는 2024년 총선 때 고향 광주에서 출마했지만, 선거비 보전도 받지 못할 정도로 패했다. 사진=조선DB

  하지만 ‘민주당 호남 독점’ 40년 동안 호남은 이용만 당하고 발전은 못 한 채 대한민국의 보편성과 멀어졌다. 광주에는 복합쇼핑몰이 없고 5성급 호텔도 없다. 반면 기초수급자는 많고, 태양광 시설과 교통사고 보험금을 노린 한방병원은 넘쳐난다. 재정자립도는 전국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청년 유출이 가장 심각한 도시가 되었다. 부족한 재정에 대한민국을 침략했던 정율성 기념사업에 지금까지 100억을 쏟았다. ‘여순사건 위령탑’은 ‘여순항쟁탑’으로 바뀌었다.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가치와 아무 상관이 없는 동학농민운동을 ‘동학혁명’으로 치켜세우더니 그 후손들에게 세금을 지급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광주에서 초·중·고교를 졸업한 뒤 서울에서 의과대학을 나오고 서울 소재 병원에서 근무하던 나는 고향이 그런 식으로 망가지는 것을 보며 참을 수 없어 정치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아무 힘이 없었기에 이런 상황을 해결해 줄 보수 진영의 ‘어른’이 제발 나서 주길 바랐다.
 
  하지만 호남 출신 국무위원과 국회의원 중 아무도 호남에 출마하겠다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정치 경험이 전무(全無)하더라도 당에서 인정받아 인재영입위원과 비상대책위원이 된 나라도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내가 속한 비대위원들 중 다수가 비례대표로 출마하면서 ‘비례위’라 놀림받는 것이 싫었기에 낙선이 뻔한 고향 광주 출마를 강행했다. 결국 선거비 보전도 받지 못하고 낙선했다.
 
 
  신인들만 험지로 보내는 국힘 중진들
 
  호남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강북의 전상범 판사, 구로의 호준석 앵커, 오산의 김효은 EBS 강사 등 정치 신인들이 험지에 도전했다. “왜 국민의힘 중진들은 ‘양남(강남+영남)’에만 출마하고 신인들만 험지로 보내느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힘든 곳일수록 중진이 뛰어 줘야 했지만, 경험 없는 신인들이 홀로 싸우니 낙선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양지(陽地)에서 당선된 중진들은 정작 ‘아무나 당선될 곳’이라는 평가 속에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대선 후보군에도 끼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호남 출신 보수 정치인들이 ‘호남의 노무현’이 되어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한덕수 전 총리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금처럼 감옥에 있을까? 조수진·전주혜·이용 같은 분들이 호남에서 출마했다면, 비록 떨어졌을지라도 대중의 더 큰 지지와 존경을 받았을 것이다. 결국 보수 진영의 숙명인 ‘호남 변화’를 위한 어른으로서의 헌신이 없었다는 말이다. 다른 험지도 마찬가지다. 청년 정치 신인들이 험지에서 신라시대 화랑 관창(官昌)의 역할을 해 줬다면, 리더들은 김유신(金庾信)처럼 주력부대를 잘 이끌었어야 했다. 그러나 보수 진영의 리더들은 정치의 본질인 대화와 타협을 외면하고 책임을 회피했다.
 

  정치 노선의 차이로 야당과의 협력이 어려웠다면, 최소한 내부의 갈등은 잘 해결했어야 했다. 보수 진영을 도륙냈던 윤석열(尹錫悅) 검사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줬으면, 중도 표를 가져와 합당(合黨)한 안철수(安哲秀) 의원과 2030의 지지를 얻어 낸 이준석(李俊錫) 전 국민의힘 대표와 협력하며 국정을 이끌었어야 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은 두 정치 세력과 결별한 것도 모자라 20년간 함께했던 한동훈(韓東勳) 전 법무장관을 비대위원장으로 세우고도 뺄셈정치를 지속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정치인의 책임을 던져 버리고 계엄령을 선포했다.
 
  계엄이 ‘계몽령’이라고 변명하는가? 계엄에 동원된 수백 명의 젊은 군인들과 처단 대상으로 지목된 전공의들 역시 청년이었다. 하야(下野)를 하든 무엇을 하든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면, 강성 지지 청년들이 철창에 갇히는 비극(서울서부지법 사태)은 없었을 것이다. 현상 변경을 위해 군대를 동원하는 일에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은 재판 과정에서 구차하게 변명하며 부하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였다.
 
  당의 중진들은 ‘어른’이라면 탄핵을 반대하는 광장의 열기와 거리를 두고 침착하게 당이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어야 했다. 군(軍)을 국회의사당에 투입한 장면을 전 세계 사람 모두가 보았는데도 탄핵이 기각될 거라며 거리로 나서 시위를 함께한 것은 목마르다고 바닷물 마신 격이었다. 헌법재판소에서 8 대 0으로 탄핵이 인용(認容)된 후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계엄에 대해 수차례 사과를 했다. 하지만 국민들이 진정성을 의심하는 이유가 바로 탄핵 반대 시위에 함께하며 내뱉은 발언들 때문이다.
 
 
  ‘행보’보다 ‘계파’부터 따지는 국힘
 
  탄핵 후 국민의힘 대선(大選) 후보들은 서로를 헐뜯는 ‘자폭(自爆) 경선’을 벌였다. 지지율이 높았던 한덕수 전 총리와의 단일화를 약속했던 김문수(金文洙) 후보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비대위는 한밤중에 대선 후보를 교체하려다가 당원들에게 부결당하고 붕괴됐다. 당을 이끌었던 한동훈 전 대표는 선거운동을 돕는 대신 개인 유튜브 라이브에서 새우깡을 먹으며 팝송을 불렀다. 문화예술이라는 매개체로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의도는 이해하나, 뙤약볕에서 고생하는 당원들이 보기에 그것은 명백히 부적절했다.
 
  당의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전임 대통령들은 탄핵과 구속의 전력(前歷) 탓에 갈등을 중재하기 어려웠다. 과거의 중진들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해 나서는 이가 없었다.
 
  리더들이 제 역할을 못 하니 언제나 고생하는 이들은 최전선의 졸병들이었다. 예정된 패배 후 청년층 설득은커녕 진영 내의 청년들마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실망하여 떠나갔다. 민주당의 무능과 내로남불을 비판하며 국민의힘이 그 대안(代案)이 될 수 있다고 외쳤던 나도 이제 고향 광주 시민을 볼 낯이 없어 당협위원장직을 내려놓았다.
 
  그래도 보수 재건의 열정으로 안철수 당시 혁신위원장의 혁신위원 참여 요청을 수락했다. 사실 나는 김기현 전 대표 시절에 혁신위원장을 제안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당을 모르는 내가 혁신위원장을 맡으면 도리어 당에 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거절했다. 안철수 위원장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은 자리를 탐해서가 아니라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였다. 나는 근무하던 병원의 스케줄까지 조절하며 열의를 보였으나 돌아온 것은 기사로 알게 된 해촉(解囑) 소식이었다. 그 이유를 수소문해 보니, 한동훈 전 대표가 광주에 왔을 때 그를 에스코트하며 친한계 유튜브에 출연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전직 당대표이자 대선 주자가 내 지역구에 왔는데 안 나가는 것이 말이 되는가? 나는 총선 이후 결단코 한동훈 캠프에 합류한 적이 없다. 그간의 행보가 아니라 오직 어느 계파인지만 따져서 자르고 등용한다면, 어떤 청년이 오고 싶겠는가?
 
  이후 “계엄에도 하느님의 뜻이 있다”고 말했던 장동혁 의원이 당원의 지지를 받아 국힘 대표가 되었다. 이후 당 지도부는 오직 당권(黨權) 장악에만 몰두하고 있다. 민주당이 사법(司法) 체계를 파괴하려 해도,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인상을 주니 국민의 지지를 못 받는다.
 
 
  ‘재롱 잔치’와 ‘모래성’
 
  보수 시민단체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現 한국경제인협회) 같은 곳에서 많은 지원이 있었지만, 박근혜(朴槿惠)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그런 지원은 사라졌다.
 
  그 후에는 유튜브와 광장 종교 세력의 자발적 모금이 보수 진영의 주된 자금줄이 되었다. 결국 부정선거와 강경 투쟁을 외치는 목소리만 살아남았다. 젊은 유튜버들은 부정선거를 믿지 않아도 생존을 위해 부정선거 옹호 방송을 하는 ‘재롱 잔치’를 벌인다.
 
  힘든 때일수록 가치(價値)를 중심으로 뭉쳐서 공부하고 서로를 챙겨 줘야 하지만, 나이든 분들은 ‘부정선거론’과 ‘계엄 옹호’라는 모래성을 쌓고 젊은이들을 불러 모아 이용할 생각만 한다. 보수 시민단체도 부정선거와 계엄에 대한 찬반과 특정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로 갈라져 싸우기 바쁘다.
 
  ‘보수는 제대로 망하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너무 싫었다. 정치권에 들어오고 보수 진영에서 정말 똑똑하고 좋은 분들을 봤다. 그런데 보수 진영이 망하면 이런 좋은 분들이 실직자가 되어 떠나거나 어쩔 수 없이 민주당으로 가게 된다. 그런 악몽을 겪고 싶지 않다.
 
  당이 어려울수록 힘 있는 분들이 험지에 나서 줘야 하지만, 당선 가능성이 높은 TK 지역은 출마자가 붐비지만 다른 곳은 출마자 구인난(求人難)에 시달린다는 소식에 마음이 무겁다. 물밑에서 노력을 해 봤지만, 힘이 없어 큰 흐름을 바꿀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우리 스스로가 봐도 한심한데, 어떻게 염치없이 청년들에게 지지해 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청년에게 지지를 호소하기 전에 먼저 따르고 싶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 어른이 되고 싶다면 지금까지 보여 준 모습의 정반대로 행동해야 한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책임도 비례해서 커진다. 정권의 붕괴와 선거에 연거푸 진 데 책임 있는 리더들과 중진들은 험지에 출마해 조직을 다지든가, 그렇게 하기 싫으면 물러나야 한다. 능력 있는 청년들에게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좋은 기회를 주겠다는 시그널을 줘야 인재가 몰린다.
 
 
  정책은 ‘보수의 가치’ 지켜야
 
  시민사회에서도 어른의 역할이 시급하다. 가장 먼저 ‘부정선거’라는 헛된 에너지 낭비를 막아야 한다. 헛된 모래성을 쌓을 돈으로 보수 진영의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청년들이 싱크탱크에서 보수주의 철학과 정책을 공부하고 그 가치를 퍼트리는 일에 헌신할 수 있도록 ‘입보다는 지갑’을 열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고 나서 청년 정책을 말하자. 포퓰리즘식 현금 살포가 아니라, 청년들에게 ‘자산’과 ‘지식’을 줘야 한다. 2030 청년의 70%가 기본소득에 반대한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은 무차별적 지원이 결국 자신들이 갚아야 할 빚이라는 걸 안다. 청년에게 지켜야 할 ‘나의 것’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보수의 본질이다. 이승만이 농지개혁을 통해 소작농을 자작농(自作農)으로 만들어 나라를 지키게 했듯, 정책의 방향은 청년의 자산 형성에 맞춰져야 한다. 오세훈(吳世勳) 서울시장의 ‘영테크’나 윤석열 정권에서 추진했던 공공분양 정책인 ‘뉴홈’ 정책을 참고하자.
 
  그렇다고 정책에서 보수주의적 가치를 포기하자는 말은 아니다. 지난 선거들을 돌아보면 호남에 가장 유효했던 공약은 복합쇼핑몰 유치였다. 인간의 본능과 욕망을 인정하는 자유시장경제 가치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이다. 대형 마트 휴무일 폐지, 상속세 폐지,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강조하는 정책과 지역 맞춤 공약을 제시한다면 보수 정당은 존립의 근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5·18 묘지는 5월 18일에만 오라”
 
  그리고 호남이다. 민주당의 김부겸(金富謙) 전 총리가 대구시장 출마 선언을 하면서 한 말처럼, 정치인이 일하지 않아도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구조는 시민을 기계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런데 TK 지역은 민주당 후보가 출마하면 최소 20% 이상은 득표해 선거비 보전이라도 받는다. 부울경에서는 민주당이 이미 당선자를 다수 배출했다. 그러나 국힘은 호남에서는 선거비 반액 보전 기준인 10% 받기도 어려워 견제 세력은커녕 출마자조차 거의 없다. 조급해지지 말고, ‘우익 40년, 좌익 40년’의 세월을 지나온 호남에는 어른의 역할이 긴 시간 필요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먼저 국민의힘이 민생(民生) 문제를 해결해 주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오죽하면 호남 보수 인사들 사이에서 국힘 정치인들을 향해 “5·18 국립묘지는 5월 18일에만 오라”는 소리가 들릴까? 묘지 방문할 시간에 민원을 해결해 주라는 말이다.
 
  국회의원 총선 때는 전남·전북·광주 몫의 비례대표 3석은 보장하되, 이들이 다음 선거에서 호남 출마를 약속하는 선순환(善循環) 구조를 만들어서 힘과 지혜를 갖춘 어른의 모습으로 호남인에게 다가가야 한다.
 
  개혁신당과의 합당(合黨)도 필수적이다. 보수가 분열된 상황에서는 호남에서 보수 정당이 10% 넘기기가 힘들다. 국가 세금으로 정당 활동이 불가능한 지역으로 고착화되면 보수 정치의 생존이 어려워진다. 어른들이 정치력을 발휘해 반드시 합당을 성사시켜야 한다.
 
 
  먼저 ‘어른’이 돼야 이길 수 있다
 
‘호남 보수’의 역사적 인물들. 왼쪽부터 김성수, 송진우, 김점곤.

  호남 보수의 역사적 인물들을 발굴하고 기념하는 것도 중요하다. 보수 진영에서도 전라도 사투리가 들렸다는 친근감을 심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경성방직과 동아일보, 고려대를 세우며 민족 자본과 인재를 키우고 독립운동을 지원했으며 해방 후 헌법을 만들고 농지개혁에 적극 협력해 공산화를 막은 전북 고창 출신 김성수(金性洙) 선생과, 전남 담양 출신 송진우(宋鎭禹) 선생을 널리 알려야 한다. 또 6·25 당시 다부동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대한민국을 수호했으며, 숙군(肅軍) 작업 당시 박정희 소령을 구명(救命)해 후일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가능하게 한 광주 출신 김점곤(金點坤) 장군도 알려야 한다.
 
  근대 보수주의 철학의 창시자로 인정받는 에드먼드 버크는 국가 공동체(共同體)를 “과거의 조상, 현재의 우리, 그리고 미래의 후손이 함께 이루는 파트너십”이라고 했다. 먼저 산 사람들의 수고를 잊지 않고 미래 세대를 위한 헌신을 강조하며 공동체의 영속성(永續性)을 주장한 것이다.
 
  그 중심적 역할은 ‘어른’이 해야 한다. 보수여, 먼저 어른이 되자! 그래야 이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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