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세의 溫故知新 | 달밤, 꽃나무 아래 홀로 술을 마신다

  • 글 : 김윤세 (주)인산가 회장, 《인산의학저널》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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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侖世
1955년생.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現 한국고전번역원) 졸업 / (주)인산가 회장, 《인산의학저널》 발행인, 전주대학교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월간조선》 명예기자 / 저서 《인도》 《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싣고 돌아오네》 《자연치유에 몸을 맡겨라》 《내 안의 자연이 나를 살린다》 등
사진=게티이미지
花下一壺酒   獨酌無相親
  화하일호주   독작무상친
 
  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
  거배요명월   대영성삼인
 
  月旣不解飮   影徒隨我身
  월기불해음   영도수아신
 
  暫伴月將影   行樂須及春
  잠반월장영   행락수급춘
 
  我歌月徘徊   我舞影凌亂
  아가월배회   아무영능란
 
  醒時同交歡   醉後各分散
  성시동교환   취후각분산
 
  永結無情遊   相期邈雲漢
  영결무정유   상기막운한

 
  달 밝은 밤, 꽃나무 아래 한 동이 술…
  아무도 없이 나 홀로 술을 마신다.
  외로움에 잔 들어 달을 맞이하니
  달과 그림자, 그리고 나, 셋이 되었네!
  그러나 달은 술 마실 줄을 모르고
  그림자는 다만 나를 따라 움직일 뿐…
  잠시나마 달과 그림자와 벗을 삼아
  다 같이 어울려 봄날을 즐겨보리라
  내가 노래하매 달은 주위를 맴돌고
  춤을 추니 그림자도 어지러이 움직인다.
  함께 어울려 술자리를 즐기다가
  흠뻑 취하니 각자 흩어져 사라지네
  무정한 벗들이지만 길이 변치 않을 교분을 맺어
  저 하늘 은하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약해 본다.

 
 
  당(唐)나라 때, 시선(詩仙)으로 불린 이백(李白·701~762년)의 ‘달빛 아래 홀로 술잔을 기울이다(月下獨酌)’라는 제목의 시 4수 중 첫 번째 시다. 어느 봄날 달 밝은 밤에 꽃이 만개한 숲속에서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달과 그림자와 짝을 이루어 봄의 고독을 음미하는 주선(酒仙)의 모습은 그야말로 한 폭의 동양화다.
 
  이백은 이태백(李太白)이라는 자(字)로 더 널리 알려졌는데 중국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시인이다. 당나라 현종(玄宗) 시절 한림공봉(翰林供奉)에 임명되어 출사(出仕)했으나 향락에 빠진 현종에게 환멸을 느껴 벼슬을 마다하고 정처 없는 유랑 생활을 했다. 그가 남긴 1000여 편의 시들은 원(元)나라 소사빈(蕭士驞)의 《분류보주이태백시(分類補註李太白詩)》, 청나라 왕기(王琦)의 《이태백전집(李太白全集)》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이태백집(李太白集)》 23권에 실려 있는 4수 가운데 1수에서는 홀로 잔을 기울이는 자신과 하늘의 밝은 달, 그리고 달빛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합해 셋이 함께 달밤에 술에 취해 노니는 모습을 독백의 형식으로 그리고 있다.
 

  2수에서는 주성(酒星)과 주천(酒泉)을 빌어 술 마시는 것으로 큰 이치를 깨달아 종내에는 자연과 하나가 된다고 했으며, 3수에서는 장안의 봄날에 취하는 것이 세상만사를 다 잊어버리는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토로(吐露)했다.
 
  4수에서는 홀로 술 마시는 것을, 백이(伯夷)·숙제(叔齊)의 고사와 공자(孔子)의 제자 안회(顔回)의 이야기를 인용해 ‘헛된 이름을 남겨 굶어 죽느니 술을 마시며 즐기는 것이 훨씬 낫다’라고 읊었다.
 
 
  ‘술의 신선’
 
  이백은 두보(杜甫·712~770년)와 함께 중국 최고의 ‘고전(古典)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당나라의 하지장(賀知章·659~744년)은 이태백을 처음 만났을 때 ‘그대는 하늘에서 땅으로 귀양 온 신선, 즉 적선(謫仙)이다’고 했다.
 
  당대에 시성(詩聖)으로 불린 두보는 주당(酒黨) 8명에 대한 노래, 즉 ‘음중팔선가(飮中八仙歌)’에서 “이백은 한 말 술에 시 백 편을 짓고[李白斗酒詩百篇]/ 장안의 저잣거리 술집에서 술에 취해 잠든다네[長安市上酒家眠]/ 천자가 불러도 배에 오르지 아니하고[天子呼來不上船]/ 스스로 ‘신은 술의 신선’이라 일컬었네[自稱臣是酒中仙]”라고 이백에 대해 읊었다.
 
  이백의 자(字)인 ‘이태백’이란 이름은 ‘애주가들의 상징적 표현’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술꾼인 사람들, 특히 자주 고주망태가 될 정도로 술을 많이 마시는 ‘술고래’들을 일컫는 말로 술 주(酒)자를 앞에 넣어 ‘주태백(酒太白)’이라고 부른다. 이런 이야기 끝에 끼어들 처지는 아니지만, 필자 역시 술을 즐기는 ‘주당 당원’으로서 이런 호칭으로 불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님을 이실직고(以實直告)하지 않을 수 없다.
 
  이백의 달에 대한 사랑은 무척이나 특별하다. 야사(野史)에 전해 오기를 이백은, 강에서 뱃놀이하다가 물에 비친 달을 보고 그 모습이 한없이 아름답다고 여겨 술에 취한 김에 달을 건지려 물속으로 뛰어들었다가 죽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역사적 근거가 없어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그가 술잔을 기울이며 자연을 읊고 풍류를 즐기는 가운데 달에 대한 애착이 특히 강했음을 시사한다.
 
  이태백은 황족(皇族)이 주동해 일으킨 반란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가 곽자의(郭子儀)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이후 유배에서 풀려나 몇 년간 장강(長江) 중하류 지방을 떠돌았다. 762년 외숙부의 집에 몇 달 동안 의탁하다 6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민간 전승에서는 이때 강에 뛰어든 이백이 고래를 타고 하늘을 날아 고향인 선계(仙界)로 돌아갔다고 전해 온다.
 
 
  좋은 술은 선약이자 묘약
 
  이백에게 술은 고독한 영혼의 아픔을 치유해 주는, 더없이 훌륭한 감로(甘露)의 영약(靈藥)이었으리라. 천상(天上)의 선계에서 지상(地上)의 인간세계로 귀양살이 와서 살았던 이들이 천고(千古)의 시름을 달래고 마음의 병을 어느 정도라도 다스리며 살 수 있도록 하는 데 가장 크게 이바지한 대표적 선약(仙藥)이 바로 ‘잘 담가 빚은 질 좋은 술’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아는 이는 그리 흔치 않으리라.
 
  질적으로 좋지 못한 술은 시름을 씻어내기는 고사하고 사람의 심성(心性)을 황폐화하고 오장육부(五臟六腑)를 손상해 폐인(廢人)으로 만드는 독약(毒藥)이자 광약(狂藥)이라 하겠다. 하지만 질 좋은 재료를 이용해 정성스레 제대로 빚어서 잘 숙성시킨 술이라면 이태백의 표현대로 천고의 시름을 씻어내기에(滌蕩千古愁) 더없이 훌륭한 선약(仙藥)이요, 묘약(妙藥)이라 할 것이다.
 

  병 고칠 ‘의(醫)’ 자의 밑 부분 ‘酉’는 원래 발효 음식을 담는 그릇을 형용한 글자다. 고대의 ‘고칠 의’ 자로 썼던 ‘毉’ 글자의 밑에 놓였던 ‘빌다’라는 뜻의 ‘巫’ 대신 술을 뜻하는 ‘酉’로 바꾸어 술의 다양한 약리(藥理) 작용을 의료에 활용하고 나아가 마취제로도 쓰기 시작한 정황을 잘 보여주는 글자다.
 
  아무리 몸에 좋은 묘약(妙藥)·양약(良藥)이라 하더라도 마음의 병까지는 다스리지 못하는 데 반해, 정성 들여 빚은 질 좋은 술은 시름과 번민·우울증 등 마음의 병을 다스릴 뿐 아니라, 침울해 별로던 기분을 한껏 좋게 만들어주는 효능까지 발휘하기도 한다. 물론 자기 절제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과음(過飮)해 몸과 마음이 다 같이 손상되게 하는 우(愚)를 범하지는 말아야 하겠지만….
 
  이 시 첫 구의 ‘화하일호주(花下一壺酒)’는 다른 여러 판본에서 ‘화간일호주(花間一壺酒)’ 또는 ‘화전일호주(花前一壺酒)’라고도 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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