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 시론

‘국민통합형 헌법 전문’을 만들자

5·10 총선, 6·25 호국, 경제 건설도 헌법 전문에 넣어야

  • 글 : 김진욱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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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부마민주항쟁, 5·18 민주화운동의 민주이념’과 함께 5·10 총선거, 6·25 극복, 경제 건설과 그 정신이 담길 때에야 비로소 헌법 전문은 ‘국가 정전(正典)’이면서 대한민국 공동체 전체의 집단 기억과 정체성을 조직하는 역할에 부응할 수 있다.

⊙ 헌법 전문, 특정 진영의 기념비가 아니라 국가의 총체적 자서전이어야
⊙ 민주당 주도 개헌안, 5·18과 부마항쟁을 헌법 전문에 넣자고 제안
⊙ 대한민국 정통성의 소재를 민주화운동의 계보 일변도로 구성
⊙ 여론 조사 보면 헌법 전문 개정은 찬성률·우선순위 가장 낮아
⊙ 5·10 총선과 공산 침략 격퇴 없이 민주주의 없어
⊙ 만델라, 헌법 전문에 ‘나라를 건설하고 발전시키는 데 힘쓴 사람들’에 대한 존경도 포함

金振旭
기업지배구조 개선 소액주주운동 참여, 노무현 정부 사법개혁추진단에서 국민참여재판제도 도입 과정 관여. 현재 한국공화협회 회원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월 31일 진보당,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사회민주당 원내대표들과 함께 개헌안 발의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조선DB
헌법 전문(前文)에 어떤 역사적 사건을 새길 것인가. 이는 단순한 문구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가 자신의 성립과 존립, 민주주의와 번영의 기억을 어떻게 배열하고, 미래 세대에게 어떤 국가 정체성(正體性)과 헌정(憲政) 가치의 질서를 전할 것인가의 문제다. 기억의 위계(位階), 정체성의 중심, 정치적 정당성의 원천을 정하는 행위다.
 
  이 시론은 현재 진행 중인 헌법 개정 논의, 특히 헌법 전문 개정안의 내용과 방향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2026년 새해 첫날 신년사에서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맞춰 개헌의 첫 단추를 끼우자고 공식 제안했다. 이어 2월 임시국회 개회사에서는 5·18 등 민주주의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국회의 비상계엄 승인권,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개헌 내용으로 제시하며 지방선거일 국민투표 동시 시행을 거듭 촉구했다. 3월 10일에는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4월 7일까지 개헌안이 발의되어야 지방선거 동시 국민투표가 가능하다며 3월 17일까지 개헌특위 구성을 촉구했다.
 
 
  대한민국 정통성의 뿌리는?
 
  이 시점까지 헌법 전문 수록 대상은 5·18이 핵심이었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이 3월 17일 국무회의에서 우 의장의 개헌 구상을 지지하면서 “광주민주화운동과 함께 부마민주항쟁 정신도 헌법 전문에 담았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이를 반영하여 4월 3일, 우원식 의장을 포함한 국회의원 187명이 헌법 개정안을 국회에 공식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이 헌법 개정안은 부마항쟁과 5·18 민주화운동의 헌법 전문 수록, 국회의 비상계엄 승인권,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주요 내용으로 하였다.
 
  부마민주항쟁과 5·18 민주화운동이 헌법 전문에 나란히 수록됨으로써, 이번 개헌안은 단순한 조문 추가를 넘어 대한민국이라는 정치 공동체의 정통성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를 보다 선명하게 선언하는 방향으로 그 성격이 변모되었다. 헌법 전문의 역사서사(歷史敍事)가 ‘민주화운동의 계보’로 집약되는 형태가 된 것이다.
 
  개헌안의 제안 사유가 스스로 이를 드러낸다. 제안 사유는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헌법에 명시하는 것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적 정통성에 대한 존경의 표시”라고 적시하고 있다. ‘정통성’이라는 단어의 선택은 의미심장하다. 정통성의 소재를 민주화운동의 계보 일변도로 구성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건국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에 있어서 민주화운동 이외의 다른 삶들은 정통성의 외부에 있다는 선언인 것이다.
 
 
  ‘전체 국민의 통합 관점’ 중요
 
파독광부들. 국민 통합과 미래 생존 관점에서 ‘경제 건설’의 역사도 기억되어야 한다. 사진=조선DB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시각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미국 헌법 전문에는 완전한 연방(聯邦) 형성, 정의(正義) 확립, 국내 안녕 보장, 공동 방위, 일반 복지 증진, 자유의 축복 확보 등 공동체가 추구하는 6개의 목표와 가치(價値)가 함께 담겨 있다.
 
  만약 이 가운데 2~3개만 선별하여 수록하고 나머지는 빠뜨린다면, 그 전문은 제대로 된 헌법 전문이라 할 수 있는가? 필시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오류라고 지적될 것이다. 수록된 개별 항목들이 각각 아무리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 해도, 헌법 전문이라는 특별한 공간에 그것만을 새긴다는 행위의 의미는 개별 항목의 가치 평가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따져야 한다.
 
  이 시각은 이번 개헌 논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5·18 민주화운동과 부마민주항쟁이 대한민국 역사에서 소중한 역사라고 평가하는 것과 그것만을 헌법 전문에 새기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질문은 논리적으로 분리되어야 한다. 전자(前者)에 동의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후자(後者)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헌법 전문에 역사를 수록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공동체가 지나온 전체의 역사를 아우르는 총체적 자기선언(自己宣言)이어야 한다. 수록 대상 하나하나의 가치가 아니라, 전문 전체가 전체 국민을 위한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전체 국민의 통합 관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과거 조선(朝鮮) 정치에서의 문묘배향(文廟配享)을 둘러싼 정치 갈등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불교의 고려에서 벗어나 성리학(性理學)의 조선을 만들어내는 핵심 장치가 문묘배향이었다. ‘인물의 본보기’를 통해 성리적(性理的) 통치 이념과 무엇이 올바름인가에 관한 기준을 확립하고, 이로써 왕조의 ‘정신적 지주(支柱)’를 튼튼히 하고자 하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조선의 문묘배향이 당초의 취지대로만 흘러간 것은 아니었다. 누구를 배향할 것인가를 두고 치열하고 오랜 정치적 갈등이 초래되었다. 배향과 출향(黜享)을 둘러싸고 반복되는 당쟁(黨爭)과 분열이, 국가의 통합 역량을 약화시켰고 결국 나라의 쇠퇴 원인이 되었다.
 
 
  사건 특정 안 했는데도 찬성률 낮아
 
  국민 여론을 살피면 ‘국민 전체적 통합 관점’에서의 우려는 더욱 분명해진다. 개헌안의 제안 사유는, 국회가 2026년 2월 22일 발표한 ‘헌법 개정 관련 대국민 설문조사’ 중의 ‘헌법 전문에 역사적 민주화운동을 명시하는 방안’에 대하여 찬성 59.8%, 반대 26.7%의 응답이 있었음을 근거로 제시한다. 위 설문조사 전체를 살피면, 개헌 찬성은 68.3%, 계엄 통제 강화는 77.5%, 지역격차 해소 국가 책임 명시는 83.0%에 달한다. 그러나 유독 ‘헌법 전문에 역사적 민주화운동 명시’에 대한 찬성만은 59.8%에 그치고 반대는 26.7%다. 사건을 특정하지 않은 채 단지 ‘원칙 차원에서의 호감 여부만을 묻는 것’이었는데도 찬성률이 다른 항목에 대비해서 특히 낮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개헌 시 가장 우선적으로 개정해야 할 사항을 묻는 항목이다. ‘생명권·안전권·정보권 등 기본권 추가’가 35.1%로 1위, ‘대통령 권한과 임기 등 권력구조 개편’이 26.0%로 2위,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 강화’가 24.9%로 3위였다. ‘5·18 정신 수록 등 헌법 전문 보완’은 8.3%로 제시된 항목 중 최하위일 뿐만 아니라 현저한 격차를 보인다. 이 수치들을 함께 읽으면 국민의 뜻은 한층 선명해진다. 헌법 전문 개정은 찬성률이 가장 낮고 우선순위도 가장 낮다.
 
  현행 헌법이 개헌안 의결에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요구하는 것은, 개헌이 특정 세력의 의지가 아닌 압도적 사회적 합의에 기반하여야 한다는 의미다. 59.8%라는 찬성률은 찬성하지 않는 사람이 40%를 넘는 것으로, 이는 헌법이 요구하는 합의 수준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특히 ‘국민 전체의 통합 장치’로 되어야 하는 ‘헌법 전문’에 있어서는 찬성하지 않는 사람이 40%를 넘고, ‘지금 당장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국민의 의견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만델라, 헌법 제정 시 ‘통합’ 강조
 
만델라는 남아공이 흑백차별을 철폐하고 새로운 나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통합’을 역설했다. 사진은 1993년 노벨평화상 수상식 장면. 오른쪽은 백인 정권의 대통령이었던 프레데렉 데 클레르크. 사진=뉴시스

  또한 여기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전(全) 세계의 양심으로부터 지탄받은 수십 년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체제를 열면서 제정한 ‘만델라의 1996년 헌법’의 전문도 살필 가치가 있다. 만델라는 헌법 전문에 “과거의 불의(不義)를 인정하고,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 고통받은 이들을 기릴 뿐만 아니라(Recognise the injustices of our past, Honour those who suffered for justice and freedom in our land), 나라를 건설하고 발전시키는 데 힘쓴 사람들을 존경할 것(Respect those who have worked to build and develop our country)”을 포함하였다. 이어진 헌법 서명식 연설에서 만델라는 “이제 우리가 이룩해 낸 통합의 힘을 바탕으로, 함께 기회를 붙잡고 이 헌법에 담긴 비전을 실현하자(Let us now, drawing strength from the unity which we have forged, together grasp the opportunities and realise the vision enshrined in this constitution)”라고 호소, ‘전체 국민’을 포괄적으로 통합하고자 하였다.
 
 
  6·25를 둘러싼 기억전쟁
 
6·25 당시 학도의용군. 온 국민이 함께 공산 침략에 맞섰던 기억도 헌법 전문에 들어가야 한다. 사진=조선DB

  이런 국민 통합의 관점에서 보건대, 부마민주항쟁과 5·18 민주화운동이 헌법 전문에 수록된다면 당연히 건국 직후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은 6·25 침략을 격퇴해 낸 역사도 함께 등재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공산 침략을 격퇴하기 위해 죽고 다친 대한민국 국민이 수백만 명이다. 전국은 초토화되었으며, 아직도 이산가족의 고통은 이어지고 있다. 이 위기를 이겨내지 못했다면 대한민국은 사라졌을 것이고 또한 지금의 우리도 없는 것이다. 당연히 민주주의도 없는 것이다. 소중한 민주주의는 소중한 대한민국의 존속에 기반한 것이다.
 
  이는 미래와도 연결된다. 6·25 침략에 책임 있는 관련 국가들의 태도는 우리에게 경계심을 늦출 수 없도록 한다.
 
  북한은 ‘조국해방전쟁’ 또는 ‘조국통일전쟁’이라고 하며, 해마다 거대한 승전기념행사를 거행한다.
 
  중국은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이었다며 1950년대 이래 중국공산당의 정통을 정당화하는 핵심 내러티브로 사용하고 있다. 최근에는 ‘강한 신중국(新中國), 이기는 신중국의 중국몽’이라고 하는 새로운 목표로 전환하는 계기로써, 그리고 이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국민 설득 장치로써 ‘항미원조전쟁 승리의 서사’를 만들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정권은 2014년 항미원조전쟁기념관 재개관을 시작으로, 2016년부터 TV드라마 〈38도선〉 〈가로지르는 압록강〉 〈희생〉 〈장진호 전투〉 등 6·25 소재 드라마를 제작 방영하고, 2020년에는 항미원조전쟁 70주년 대규모 기념행사를 갖는 등 ‘항미원조전쟁’ 서사의 전파에 몰두하고 있다. 중국 전역에 다수의 항미원조전쟁기념관을 새로 건립하고, 이 사건의 정신을 높이 받들고 계승하자는 각종 단체들을 조직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6·25 침략을 격퇴해 낸 역사는 기억에서 소거(消去)될 수도 있다.
 
  지난 2월 13일부터 15일까지 제62회 뮌헨안보회의(Munich Security Conference·MSC)가 열렸다. 전 세계 120여 개국의 1000여 정·관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여기에는 60명 이상의 국가 원수 및 정부 수반이 포함되었다.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연설에서 그들 수십 개국과의 역사를 회고하며 “우리는 가평에서 칸다하르에 이르는 전장에서 나란히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쳤다(we have bled and died side by side on battlefields from Kapyong to Kandahar).”고 말했다. ‘가평의 기억’을 자유진영 전체의 공동 희생 서사로 소환한 것이다. ‘가평의 기억’은 무엇인가? 마오쩌둥(毛澤東)의 직접 지시에 의해 1951년 4월 중공(中共) 측의 이른바 ‘춘계대공세’로 벌어진 ‘가평 전투’에서 나란히 피를 흘리고 목숨을 바쳐 대한민국을 지켜낸 기억이다. 북한·중국 그리고 자유진영의 주요한 정치 공동체들이 저마다의 역사 평가와 미래의 운명을 가를 침로로서 끊임없이 기억하고 되새기는 것이 6·25인 것이다.
 
  당사자인 우리는 어떤가? 종래의 6·25란 명칭이 그 날짜 표현으로 인해 북한의 전쟁 책임이 연상되어 반(反)민족적이라며 6·25를 버리고 ‘한국 전쟁’이라는 명칭을 사용해 역사적 의미를 오도(誤導)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 전쟁’이라는 명칭은 ‘한국’, 즉 대한민국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이래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부마민주항쟁과 5·18 민주화운동을 헌법 전문에 기필코 넣어야겠다면 이보다 더 중요한 역사인 6·25 침략을 격퇴한 호국(護國)정신도 헌법적 기억으로 승화되어야 할 것이다.
 
 
  ‘경제 건설’도 전문에 넣어야
 
  국민 통합과 미래 우리의 생존 관점에서 국민 전체의 공통 기억이 되어야 할 중요한 역사로서 ‘경제 건설’ 역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경제개발 이전의 대한민국에는 식량과 에너지 등 생명자원과 지식 인프라 등 문명자원이 거의 없었다. 이런 조건에서 추진하는 경제 건설에 대하여, 국제사회는 비관적 전망 일변도였다. 국내에서조차 ‘망국(亡國) 행위’ ‘매판(買辦) 행위’ ‘천민(賤民) 자본주의’라는 비난을 퍼부었다. 이렇게 외롭고 곤란한 처지를 뚫고 마침내 경제를 건설해, 식민지배 국가였던 일본을 능가하는 경제력까지 이룩한 업적이 어째서 전체 국민의 집단 기억과 정체성 영역의 외부로 밀려나야 하는가?
 
  미래를 보면 또 어떤가? 거대한 중국의 위협을 막아내는 대만의 방패는 그들이 건설한 경제력이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경제력 건설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라는 의미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다극화(多極化)로 변모하는 국제질서 아래에서, 우리에게 적대적인 지정학적(地政學的) 위험을 막아낼 유력하고 어쩌면 유일한 생존 전략의 의미를 갖는다. 그렇기에 이에 힘쓴 사람들과의 통합을 위하여, 그리고 미래를 향한 정신적 준비의 차원에서 이번 기회에 ‘국가 정전(正典)’인 헌법 전문에 등재시킬 가치가 충분하지 않은가? 만델라가 1996년 헌법 전문을 통하여 ‘존경(respect)’을 표현한 ‘나라를 건설하고 발전시키는 데 힘쓴 사람들(those who have worked to build and develop our country)’이 우리에게도 있지 않은가?
 
 
  민주화 논리의 출발점은 5·10 총선
 
역사 이래 처음으로 국민들이 정부 선택권을 행사한 1948년 5·10 총선은 이후 모든 민주화운동의 뿌리가 됐다. 사진=조선DB

  이상의 국민 통합적 문제와 함께 이번 전문 개헌안의 논리적 모순도 지적하고자 한다.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5·18 민주화운동은 모두 선거권, 더 정확히 말하면 국민의 정부 선택권과 관련된 사건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국민이 직접 정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억압을 거부하고, 그 선택 과정의 부정을 바로잡으려는 요구가 핵심 동력이었다. 그렇다면 그 논리의 출발점에는 한반도 주민이 역사 이래 최초로 국가 단위의 정부 선택권을 행사했던 1948년 5월 10일 총선거가 놓여야 한다. 이 사건이 빠져야 할 근거를 찾기 어렵다. 1948년 5·10 총선거의 국민 주권 이념이 헌법 전문에 포함되어 있어야 이후의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5·18 민주화운동 등재도 명분을 가질 수 있다.
 
  이에는 더 큰 맥락도 있다. 1992년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을 낸 이듬해,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에서 세계를 8개 문명권으로 나누며 한국을 중국·북한·베트남과 함께 유교(儒敎)문명권으로 묶었다.
 
  그 분류의 수용 여부와는 별개로, 적어도 중국·북한·베트남이 오늘날까지도 1당 또는 1인 지배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동일한 유교문명권에 속했던 대한민국은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 70년이 넘도록 국민 주권 체제를 발전시켜 온 것이다.
 
 
  5·10 총선의 문명사적 맥락
 
  이것이 갖는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대한민국은 유교문명권에서도 당국가(黨國家) 체제가 아닌 국민 주권의 정치가 가능함을 보여준 유일한 사례다.
 
  왜 같은 유교문명권에서 이처럼 다른 결과가 나왔는가. 그 답의 실마리는 유교 정치 사상과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구조적 친화성에 있다. 헨리 키신저는 《중국 이야기(On China)》에서 마오쩌둥의 궁극 목표를 ‘대동(大同)’으로 설명한 바 있다. 덩샤오핑(鄧小平)은 1979년 일본의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총리에게 중국이 온포(㬈饱)에서 소강(小康)을 거쳐 대동으로 나아간다는 비전을 밝혔다. 장쩌민(江澤民)은 2002년까지 ‘전면적 소강사회’를 목표로 내세웠고, 시진핑은 2020년 그 달성을 선언했다.
 

  마르크스-레닌 사회주의를 공식 이념으로 하는 이들 지도자가 하나같이 유교 정치 사상의 이상인 소강과 대동을 자신들의 국가 비전으로 내세운 것은, 두 사상 사이의 깊은 구조적 유사성을 드러낸다. 시진핑 시기 중국의 세계적 ‘공자(孔子)’ 확산 정책에 대하여 각국이 ‘마르크스-레닌식 당국가 체제’ 전파(傳播) 시도로 의심하며 경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1948년 5·10 총선거의 국민 주권 이념을 헌법 전문에 새기는 일은 논리적 완결 실현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유교문명권 안에서 유일하게 당국가 체제를 거부하고 국민 주권의 길을 선택했다는 대한민국의 문명사적 결단을 헌법적 언어로 확인하는 행위이며, 국민 주권 체제의 정당성을 증명할 책임 있는 주체로서의 사명감을 재(再)각성한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민족의 단결’을 ‘대한국민의 단결’로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5·18 민주화운동의 민주 이념’과 함께 5·10 총선거, 6·25 극복, 경제 건설과 그 정신이 담길 때에야 비로소 헌법 전문은 ‘국가 정전’이면서 대한민국 공동체 전체의 집단 기억과 정체성을 조직하는 역할에 부응할 수 있다.
 
  이 글이 제안하는 ‘국민 통합형 헌법 전문안’은 바로 이 문제의식을 담은 것이다. 민주 개혁뿐 아니라 ‘번영’을 함께 넣고, ‘민족의 단결’ 대신 ‘대한국민의 단결’을 강조하는 수정 역시 같은 연장선에 있다. 목표는 분명하다. 헌법 전문을 특정 정치 세력 혹은 일부 국민만의 기억 체계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과 대한국민 전체의 생존·독립·국민 주권·민주화·번영을 함께 아우르는 국민 통합의 문장으로 만드는 것이다.
 
  헌법 전문은 국가가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에서 민주화만 있고 건국이 빠지면, 대한민국은 반쪽의 나라가 된다. 민주화와 인권만 있고 호국이 빠지면, ‘국가가 어떻게 존립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자유선거만 있고 5·10이 빠지면 국민 주권의 출발점이 사라진다. 번영과 경제 건설의 기억을 지우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거대한 사회적 도전의 서사는 헌정의 언어 밖으로 밀려난다.
 
  5·18을 헌법 전문에 넣느냐 마느냐의 논의만으로는 이 문제를 풀 수 없다. 진짜 질문은 따로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과연 누구의 기억을, 어떤 순서로, 어떤 언어로 담아야 하는가? 갈등의 시대일수록 필요한 것은 배제(排除)의 전문이 아니라 통합의 전문이다. 헌법 전문에 새겨질 사건들은 특정 시대의 정권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대한국민 전체가 함께 붙들 수 있는 기억이어야 한다. 부마와 5·18은 그 기억의 소중하고 중요한 일부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대한민국의 헌법 전문이 국민 통합의 깃발이 되려면, 자유를 지킨 기억, 주권을 세운 기억, 침략을 막아낸 기억, 가난을 돌파한 기억, 그리고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회복한 기억이 함께 들어가야 한다. 헌법 전문은 특정 진영의 기념비가 아니라 국가의 총체적 자서전(自敍傳)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 통합을 위한 헌법 전문안


〈현재 국회 발의안〉
  悠久한 歷史와 傳統에 빛나는 우리 大韓國民은 3·1運動으로 建立된 大韓民國臨時政府의 法統과 不義에 抗拒한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및 5·18 민주화운동의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祖國의 民主改革과 平和的 統一의 使命에 입각하여 正義·人道와 同胞愛로써 民族의 團結을 공고히 하고, 모든 社會的 弊習과 不義를 타파하며, 自律과 調和를 바탕으로 自由民主的 基本秩序를 더욱 확고히 하여 政治·經濟·社會·文化의 모든 領域에 있어서 各人의 機會를 균등히 하고, 能力을 最高度로 발휘하게 하며, 自由와 權利에 따르는 責任과 義務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國民生活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世界平和와 人類共榮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子孫의 安全과 自由와 幸福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年 7月 12日에 制定되고 9次에 걸쳐 改正된 憲法을 이제 國會의 議決을 거쳐 國民投票에 의하여 改正한다.
 
  〈국민 통합을 위한 헌법 전문案〉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및 5·18 민주화운동의 민주이념과 5·10 총선거의 국민 주권이념, 6·25 침략을 격퇴한 호국정신, 경제 건설을 위한 불굴의 도전정신을 계승하고, 조국의 번영 및 민주개혁과 평화 통일의 사명을 바탕으로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대한국민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개개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과 지역 간 균형 발전을 도모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미래 세대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9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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