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의 편지

‘동맹’이란 ‘같은 친구와 적(敵)을 갖는 것’

  • 글 : 배진영 월간조선 편집장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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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는 지난 4월 3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탈퇴 위협 관련 기사를 쓰면서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이라고 해야 할 것을 ‘North American Treaty Organization’이라고 썼습니다. 그것도 헤드라인에! 급히 정정하기는 했지만, 정말 경악할 만한 역대급 실수입니다(동종 업계 종사자로서 심심한 위로의 뜻을 표합니다).
 
  1949년 4월 미국 워싱턴DC에서 체결된 북대서양조약은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대서양 서쪽(미국·캐나다)과 동쪽 국가들(창립 당시에는 영국·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들)이 참여하는 안보 동맹입니다. 조약 전문(前文)을 보면 체약국(締約國)은 “민주주의의 제(諸)원칙, 개인의 자유와 법(法)의 지배 위에 구축(構築)된 그 국민의 자유, 그리고 공동의 유산 및 문명을 옹호할 것” “북대서양 지역에서의 안정 및 복지의 증진을 위해 노력하며, 집단적 방위와 아울러 평화 및 안전의 유지를 위해 그 노력을 결속할 것”을 결의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조약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담은 것은 제5조인데 “체약국은 유럽 혹은 북미(北美)의 하나 또는 둘 이상의 체약국에 대한 무력(武力) 공격을 전(全) 체약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그러한 무력 공격이 있을 때는 각 체약국이 국제연합헌장 제51조의 규정에 인정된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권(自衛權)을 행사하여 개별적 또는 다른 체약국과 공동으로 북대서양 지역의 안전을 회복하고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행동(병력의 사용을 포함하는)을 즉시 취함으로써 공격을 받은 체약국을 원조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러한 조약상의 의무는 조약에 가입한 모든 국가가 함께 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냉전(冷戰) 시대에 북대서양조약은 미국이 (서)유럽을 일방적으로 지켜 주는 장치였습니다. 미국도, (서)유럽의 NATO 회원국들도 그걸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 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NATO는 창립 당시부터 실질적으로는 ‘North American Treaty Organization’였던 셈입니다. 그래서 이번 오보 사태를 보면서 “북대서양조약의 본질이 드러났다”거나 “NATO를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본심이 드러났다”면서 웃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 나라들은 우리를 돕지 않았다”
 
  NATO 창립 당시와는 달리 미국 혼자만의 힘으로 짐을 질 수는 없는 시대가 왔습니다. 그러나 NATO는 미국이 힘을 좀 보태 달라고 할 때, 인색하게 굴어 왔습니다. 이라크 전쟁 때도 NATO 회원국인 프랑스와 독일은 딴지를 걸었습니다. 영국·폴란드 등이 동참했지만 개별 국가 차원에서였지 NATO 차원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라크 전쟁이 북대서양조약이 규정하고 있는 ‘체약국에 대한 무력 공격’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그 이전에 그 전쟁 자체가 정당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미국으로서는 NATO의 그런 행태에 많이 서운했을 겁니다. 어쩌면 미국은 자기들이 도와달라고 할 때마다 도와주지는 않고 이러쿵저러쿵 말만 많은 NATO를 ‘No Action Talk Only’라고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하 트럼프)이 지난 3월 31일 영국 《텔레그라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란 전쟁에 비협조적인 NATO 국가들을 겨냥, “우리는 우크라이나를 포함해 항상 당연하게 그곳에 있었다. 우크라이나(전쟁)는 우리의 문제가 아니었지만, 그들(나토)을 위해 그곳에 있었으며 항상 그들 곁을 지키고자 했다”면서 “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위해 그곳에 없었다”고 볼멘소리를 한 것은 그런 서운함의 표현일 겁니다. 트럼프는 그에 그치지 않고, 미군 철수 및 재배치, 관세 보복, 심지어 NATO 탈퇴까지 거론하고 있습니다.
 
  NATO에 대한 트럼프의 분노와 보복은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볼 일이 아닙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는 지난 3월 14일 “바라건대, 지도부가 완전히 제거된 국가에 의해 호르무즈 해협이 더는 위협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인위적인 제약(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영향을 받는 중국·프랑스·일본·한국·영국, 그리고 다른 국가들이 이곳으로 함정(艦艇)을 보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국이 해상교통로(sea lane)를 보호하는 덕분에 이득을 보는 나라들에게 비용을 분담하라는 주문이었습니다.
 
  이틀 후인 3월 16일 트럼프는 “일본은 95%, 중국은 90%(의 화석연료)를 (호르무즈 해협에서) 들여오고, 여러 유럽 국가도 상당한 양을 수입한다. 한국은 35%를 들여온다”며 “따라서 우리는 이들 국가가 나서서 해협 문제를 도와주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트럼프는 “우리는 끔찍한 외부 위협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줬지만, 그들은 그리 열의가 없었다”며 “그 열의의 수준은 나에게 중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어떤 나라에는 4만 5000명의 훌륭한 (미군) 병사들이 주둔하며 그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끝내 트럼프가 요구하는 ‘열의’를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트럼프는 4월 12일 〈폭스뉴스〉와의 기자회견에서 “내가 놀란 점 중 하나는 호르무즈 해협이 일본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본은 석유의 93%를 그곳에서 얻는다. 한국은 45%를 그곳에서 얻는다. 그런데 이 나라들은 우리를 돕지 않았다”고 비난했습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여기서 우리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Mutual Defense Treaty between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입니다. 조약 이름에 ‘상호(mutual)’라는 말이 엄연히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조약 체결 당시는 물론 근래까지도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한국을 방위해 주는 조약’이었지, 우리도 상응(相應)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상호’방위조약이 아니었습니다. 또 우리 국민 중에서 조약 전문에 ‘태평양 지역’에서의 평화와 안보에 대한 관심이 여러 차례 표명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받는 것만큼 상응하는 기여를 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었던 이는 1950년대 후반 공산 반군과 내전(內戰) 중이던 라오스에 파병을 제안했던 이승만 대통령이나, 1960년대 중반 베트남 파병을 단행했던 박정희 대통령 정도였습니다.
 
  그렇다 보니 세계 유수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게 되었으면서도 미국이 자신들의 기여에 상응하는 비용을 내라거나, 대중(對中) 견제에 한국도 역할을 하라거나,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을 보내라고 하면, 못 들을 소리라도 들은 양 펄쩍 뛰거나 딴청을 부리는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동맹관
 
  아테네가 펠레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에게 패한 후 맺은 강화(講和)조약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아테네는 라케다이몬(스파르타)과 같은 친구와 적(敵)을 가지며, 뭍이거나 바다이거나 어디든지 라케다이몬(스파르타)인들과 같이 간다.”
 

  아테네인들도 다른 도시국가와 동맹을 맺을 때 “아테네인과 동일한 적을 적으로 삼고 동일한 친구를 친구로 삼기로” 맹세하게 했습니다. “같은 친구와 적을 가진다”는 말은 ‘동맹’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적확(的確)’하게 보여 줍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친구’가 싸우고 있는 적과 대화를 추진하고, ‘친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친구를 모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뭘 몰라서 그러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그러는 것이 대한민국에 해(害)가 된다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그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나친 생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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