咸在鳳
⊙ 1958년생.
⊙ 美 칼튼대 경제학과, 美 존스 홉킨스대 석ㆍ박사.
⊙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同 대학 동서문제연구원 중국연구부장ㆍ비교문화연구센터 소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미국 워싱턴대 방문연구원 역임.
⊙ 저서 : <탈근대와 유교-한국정치담론의 모색> <아시아적 가치(공)> <한국의 보수를 논한다> 등.
조지 W. 부시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의 對外(대외)정책을 주도하던 네오콘(Neocon: Neoconservative 의 줄임말로 ‘新보수주의’라는 의미)의 영향력이 최근 2년 사이에 급격히 쇠퇴하고 있다. 네오콘의 座長(좌장)격인 딕 체니 부통령은 아직 건재하지만 폴 울포위츠 국방 副(부)장관(2001~2005년 재임)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2001~2006년)은 잇따라 퇴진했다. 이와 함께 신보수주의자들이 미국의 외교정책을 좌지우지하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 ⊙ 1958년생.
⊙ 美 칼튼대 경제학과, 美 존스 홉킨스대 석ㆍ박사.
⊙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同 대학 동서문제연구원 중국연구부장ㆍ비교문화연구센터 소장,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미국 워싱턴대 방문연구원 역임.
⊙ 저서 : <탈근대와 유교-한국정치담론의 모색> <아시아적 가치(공)> <한국의 보수를 논한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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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락하는 네오콘. 왼쪽부터 체니 부통령,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 울포위츠 전 국방 副장관. |
무엇보다 네오콘의 무리한 정책의 결과 미국의 국제적 위상과 지위는 땅에 떨어졌다. 中東(중동)의 대부분 국가들을 포함한 이슬람圈(권) 전체가 미국을 敵(적)으로 간주하게 됐고, EU(유럽연합) 같은 전통적인 우방과의 관계도 악화됐다. 그리고 부시 대통령은 ‘역사상 가장 인기 없는 현직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네오콘의 정책은 한반도에도 직접적이고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네오콘의 정책은 북한을 ‘불량국가’ 내지 ‘惡(악)의 軸(축)’으로 규정하면서 美北(미북)관계를 경색시켰다. 반대로 네오콘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라이스 국무장관과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東亞太(동아태)차관보가 주도하고 있는 對北(대북) 협상정책이다.
한 시대를 풍미하면서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역할을 새롭게 규정하고 세계질서를 재편하려 했던 네오콘은 왜 몰락했고, 그것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역사의 終焉(종언)’이라는 테제로 유명한 미국의 정치평론가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유명한 네오콘 이론가이기도 하다. 그는 가장 대표적인 네오콘 싱크탱크인 ‘신미국시대를 위한 프로젝트(Project for a New American Century)’의 창립 멤버로, 이 싱크탱크가 1998년 1월 26일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공개서한에 공동 서명한 인물이다.
네오콘의 탄생
이 공개서한에서 네오콘은 처음으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공개적으로 요구함으로써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5년 후 미국이 실제로 이라크를 공격하면서 네오콘은 그 세력을 과시하게 됐다. 一群(일군)의 이론가들이 이처럼 주도면밀하고 끈질기게 자신들의 이념과 이론을 정치적으로, 정책적으로 관철시킨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후쿠야마는 대표적인 네오콘 격월간지 <내셔널 인터레스트> 2004년 11월호에 실은 글 ‘네오콘 운동’과 2006년 출간한 <岐路(기로)에 선 미국>이라는 책에서 네오콘을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후쿠야마의 ‘변절’은 네오콘의 이론적 토대와 정책적 含意(함의)에 대한 공고한 합의가 깨지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네오콘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일고 있는 논쟁의 일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후쿠야마에 의하면, 네오콘의 기원은 1930~4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네오콘 사상은 당시 뉴욕시립대학에 모여든 걸출한 일군의 유대인 지식인들에 의해서 정립됐다. 어빙 크리스톨, 다니엘 벨, 어빙 하우, 시모어 마틴 립셋, 피터 셀즈닉, 네이선 글레이저, 다니엘 패트릭 모이나핸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당시만 하더라도 유대인에 대해 노골적으로 차별대우를 하던 하버드대나 컬럼비아대 등 아이비리그의 명문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대신 학비가 싸고 집에서 가까운 시립대학에 진학했다. 이들은 좌익사상에 몰입했다. 부모들이 대부분 갓 이민 온 유대인이었고 가난과 사회적 편견을 경험하면서 자란 이들이 마르크스주의에 빠져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들은 얼마 가지 않아 극적인 사상전환을 했다. 소련에서 스탈린의 폭정에 대한 소식들이 들려오기 시작하면서 자신들의 이념이 얼마나 공허한 것이었고, 잘못된 이념이 얼마나 처참한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 이들은 보수주의로 轉向(전향)했다. 유럽의 좌파 지식인들이 소련체제의 잔혹상을 애써 외면하면서 사회주의를 옹호하려 한 데 비해 이들은 사회주의에 대한 일체의 환상을 벗어 던지고 철저한 반공주의자가 됐다. 이들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반을 둔 미국의 체제가 공산체제보다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 우월한 체제라는 신념을 갖게 됐다. 네오콘은 이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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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오콘의 이론가들. 왼쪽부터 어빙 크리스톨, 다니엘 벨, 시모어 마틴 립셋, 다니엘 패트릭 모이나핸. |
善惡 2분법으로 세상을 보다
네오콘이 미국체제의 우월성에 대한 신념을 더욱 굳히게 된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이 전쟁에서의 승리를 통해 미국은 파시즘과 군국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자유주의를 구출했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 대학살 등의 만행을 저지른 ‘惡의 帝國(제국)’을 무너뜨리는데 성공했다. 이들에게 제2차 세계대전은 단순히 相異(상이)한 정치체제 간의 세계 爭覇(쟁패)를 위한 세력다툼이 아니라 善(선)과 惡의 대결이었던 것이다. 대부분 유대계였던 네오콘 사상가들이 이런 시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해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그 결과 네오콘은 국제관계를 도덕적으로 바라보는 특유의 관점을 바탕으로 미국은 ‘勸善懲惡(권선징악)’을 위해 武力(무력)을 사용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네오콘 이념은 冷戰(냉전)기간(1945~1991년) 동안 더욱 공고화됐다. 스탈린 체제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네오콘이었기에 이들은 냉전을 선과 악의 대결구도로 이해했다. 이들에게 소련이 대표하는 공산체제는 미국이 대표하는 자유진영과 共存(공존)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붕괴시켜야 할 악한 체제였다. 이들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칭하면서 보다 적극적인 방법으로 냉전을 종결시키고자 했던 레이건 대통령에게 열광했고, 소련이 체제모순을 극복하지 못하고 붕괴하자 자신들의 이념과 이론을 더욱 확신하게 됐다.
네오콘은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으로 부상하자 이제야말로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이념과 체제를 全(전)세계에 퍼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확신했다. 조지 W. 부시 現(현) 대통령과 체니 부통령의 2000년 大選(대선)승리와 럼즈펠드, 울포위츠 등의 入閣(입각)은 네오콘이 자신들의 이념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9·11 사태는 네오콘에게 새로운 적과 목표를 동시에 설정해 주었다. 과거 나치독일과 군국주의 일본, 공산 소련을 차례로 붕괴시키고 그 나라들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정착시켰듯이, 냉전 후 미국의 목표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타파하고 중동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정착시키자는 것이었다. 네오콘에게 알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존재들일 뿐만 아니라, 前(전)근대적인 가치관으로 무장하고 自國民(자국민)의 인권을 유린하는 反(반)민주적이고 반자유주의적인 세력들로 결단코 제거되어야 하는 사악한 존재들이었다.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라크 침공은 네오콘의 경험과 이념의 당연한 결과였다.
많은 사람들이 네오콘(新보수주의)과 보수주의를 혼돈하고 있지만, 이론적으로나 정책적 함의에 있어서 두 입장의 차이는 지대하다.
보수주의 對 新보수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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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현실주의 외교노선을 대표하는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왼쪽)과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
닉슨과 키신저가 대표하는 전통보수주의 세계관은 ‘현실주의’(realism)에 기초하고 있다. 현실주의에 의하면 국제정치는 근본적으로 弱肉强食(약육강식)의 무정부상태에 기반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나라들은 자국의 세력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하는 한편, 세력균형을 통해서 평화를 유지한다.
때문에 국제정치에서는 전쟁이 ‘정상적’인 상태이고 ‘평화’란 어쩌다가 세력균형이 이루어지면서 전쟁이 잠시 멈춘 상태를 뜻한다. 세력균형은 항시 깨질 위험에 처해 있으며, 언젠가는 반드시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때는 다시 전쟁상태가 도래하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국제정치란 키신저가 가장 좋아하는 메테르니히(오스트리아의 정치가·외교관)가 나폴레옹이 몰락한 후 神聖(신성)동맹을 통해 100년간 ‘유럽의 평화’를 유지하는데 성공했듯이, 군사력과 외교력을 총동원해서 세력균형을 정립하는 작업이다.
물론 전쟁을 외교의 수단으로 간주한다는 점에 있어서 현실주의와 네오콘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주의는 이념과 가치관이 다른 국가들과도 세력균형을 통해서 공존하는 것을 최상의 목표로 삼는 반면, 네오콘은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체제를 공유하지 않는 국가들을 敵(적)으로 간주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붕괴시키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고 있다.
닉슨과 키신저와 같은 현실주의자들이 소련·중국·북베트남 등과 공존을 꾀했던 반면, 레이건은 취임과 동시에 소련과의 냉전을 선악의 대결구도로 규정하면서 대대적인 軍備(군비)확장을 추진하고 소련과의 체제경쟁을 격화시켰다. 부시 현 대통령과 럼즈펠드 등은 이슬람근본주의를 섬멸하고 중동에 자유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자유국제주의 對 네오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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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국제주의에 입각한 외교를 추진한 우드로 윌슨(왼쪽)과 프랭클린 루스벨트. |
이러한 윌슨의 노력은 당시에는 미국의 고립주의 때문에 좌절됐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1933~1945재임)이 유엔을 창설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한다. 루스벨트는 유엔뿐만 아니라 IMF와 세계은행, 국제사법재판소 등을 통해 경제적·법적으로 세계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했다.
윌슨과 루스벨트를 신봉하는 자유국제주의자들은 국제사회도 규범과 제도, 무역과 협력을 통해서 평화와 번영을 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각종 국제기구와 조약은 국가들로 하여금 군사력과 외교력에만 의존하면서 끊임없이 세력확장과 세력균형을 꾀하는 대신 서로 협력하면서 평화롭게 공존하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機制(기제)들이다. 자유국제주의자들은 현실주의자들이 상정하는 약육강식의 국제질서가 인간의 이성과 제도를 통해서 극복될 수 있다고 본다.
이들의 입장에서 볼 때 교토 국제기구협약과 국제형사재판소 인준을 거부하고 유엔의 결의를 무시한 채 이라크 침공을 감행한 네오콘은 미국을 국제사회의 불량배로 만드는 독단적 패권주의자들이다.
반면 네오콘은 자유국제주의자들이야말로 역사와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들이자, 미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무책임한 자들이라고 비판한다. 네오콘은 유엔헌장을 어기고 이웃나라를 침공한 국가를 상대로 유엔이 군사적 개입을 감행한 경우는 한국전쟁이 유일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네오콘이 보기에 그나마 유엔군이 한국전쟁에 파견될 수 있었던 것은 소련이 우연히, 그리고 前無後無(전무후무)하게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 냉전기간 동안에는 공산국가인 소련과 중국이 항상 거부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유엔군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경우가 없었다. 냉전 이후에도 코소보와 보스니아에서 대학살이 일어나고 있어도 유엔은 아무 역할을 할 수 없었다. 오늘날 수단의 다르푸르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을 유엔이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고 있는 것도 국제기구가 무용지물임을 보여주고 있다.
네오콘, 反中ㆍ反北 동북아 정책 추진
네오콘의 이런 입장은 EU와 수많은 갈등과 마찰을 야기했다. 이런 갈등을 가장 적나라하게 분석하고 있는 저서가 대표적인 네오콘 국제정치이론가인 로버트 케이건의 <낙원과 권력에 대하여: 신국제질서 속의 미국과 유럽>이라는 책이다.
프랑스와 독일을 위시한 많은 유럽연합 국가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신랄하게 비판했고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최악의 상태로 치달았다.
반대로 미국의 네오콘은 코소보와 보스니아 사태 때 “유엔과 마찬가지로 EU도 자신들의 앞마당에서 펼쳐지는 참상을 수수방관하는 나약한 존재”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보스니아 內戰(내전)이 종식된 것은 뒤늦게나마 미 공군이 단독으로 세르비아를 폭격, 세르비아가 어쩔 수 없이 終戰(종전)협정에 임했기 때문이다. 네오콘의 입장에서 볼 때 유엔이나 EU 같은 超(초)국가적인 기구들은 미국이 필요한 때와 장소에 즉각적·효과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방해하는 기제들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네오콘의 東(동)아시아 정책은 무엇이었나?
9·11 사태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로버트 케이건과 같은 네오콘이 봤을 때 미국이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은 중국이었다. 소련이 붕괴한 이후 중국은 공산체제를 유지하는 유일한 강대국으로 급속한 경제성장과 군비확장을 통해 아시아에서 새로운 覇權(패권)국가로 떠오르고 있었다.
따라서 네오콘은, 미국이 일본·호주·한국과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함께 중국을 견제하는 블록을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이라크전의 수렁에 빠지면서 네오콘은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에 이 나라들이 보다 적극 나설 것을 종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네오콘은 평화헌법下(하)에서 자위대만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에 대해 全方位的(전방위적)인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보수우익의 지지를 받아 집권한 고이즈미 총리는 미국의 이런 압력을 이용해 일본의 右傾化(우경화)를 先導(선도)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네오콘은 일본의 우경화를 부채질함으로써 중국과 한국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다른 한편 네오콘은 북한을 이란·이라크와 더불어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압박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특히 2002년부터는 북한이 농축우라늄을 이용한 핵무기 개발을 꾀한다는 사실을 시인했다면서 북한을 더욱 압박했다. 네오콘이 봤을 때, 공산국가이면서 前代未聞(전대미문)의 인권유린을 자행하고 있고 대량살상무기를 시리아 등 미국에 적대적인 국가들로 수출하는 북한은 전형적인 불량국가였다. 따라서 북한과의 협상이나 공존은 결코 용인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결과 한미관계 및 미·중 관계는 난관에 봉착했다.
네오콘으로부터 배울 점-철저한 반공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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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오콘의 이념을 실천에 옮긴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
올 초 출범한 李明博(이명박) 정권은 ‘실용외교’를 표방하고 있다. 金大中(김대중)·盧武鉉(노무현) 정권과는 달리 외교정책과 이념을 철저히 분리시키면서 실질적인 國益(국익)을 따지고 챙기겠다는 얘기였다. 이는 좌파민족주의 이념 때문에 북한은 한없이 포용하는 반면 미국과는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하고,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과거사에 묶여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던 과거 정권의 외교정책과는 차별화된 대외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새 정부의 외교정책은 출발부터 난관에 봉착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새 정부에 대한 불만, 국내시장 개방에 대한 불안, 反美主義(반미주의)가 절묘하게 결합된 ‘촛불시위’에 부닥쳤다. 일본과는 독도문제로 곤경에 처하게 됐다. 중국은 이명박 정부가 韓美日(한미일) 3국간의 共助(공조)를 다시 강화하겠다는 얘기를 듣는 즉시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렇다면 한국 보수정권의 외교정책은 어떤 원칙과 기조를 따라야 할까? 이 점에서 네오콘의 부상과 몰락은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한국 보수주의의 핵심은 反共主義(반공주의)다. 미국의 네오콘이 봤을 때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모두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 표방하는 가치와 이념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실주의자들이 소련과의 세력균형을 유지하면서 평화공존을 종용할 때에도, 또 자유국제주의자들이 국제기구들을 통한 협력을 도모할 때에도 네오콘은 공산주의의 붕괴를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했다. 미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중 한 명인 레이건 대통령은 베를린 장벽 앞에서 “고르바초프씨, 이 장벽을 허무시오!”라면서 소련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보수주의자들도 북한체제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북한주민들의 안녕을 위해 현 북한체제는 근본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물론 북한을 변화시키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도 명분은 “북한체제가 자발적으로 변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었다. 김대중 정권 초기만 해도 일부 햇볕정책 지지자들은 이 정책을 두고 “일종의 ‘트로이 목마’”라고 얘기했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추진한 대북 포용정책은 북한체제의 변화를 유도하는데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오히려 ‘우리민족끼리’라는 북한의 선전에 포섭당하고 남한 內(내)의 좌파 민족주의에 압도당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과 이를 계승한 노무현 정권의 ‘평화번영정책’은 과도한 대북 ‘퍼주기’나 반미주의의 일환으로 비쳐졌다.
따라서 한국의 보수주의 정권은 필요에 따라 북한과의 경제협력과 교류는 적극 추진하되, 이것은 어디까지나 북한체제의 긍정적인 변화내지는 개혁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레이건 대통령의 “신뢰하라, 그러나 검증하라(Trust, but verify)” 는 원칙을 고수할 필요가 있다.
현실주의·자유국제주의 결합 필요
동시에 한국의 보수주의는 현실주의 외교정책도 채택해야 한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가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서로 견제하면서 아슬아슬한 세력균형을 유지해 온 동북아의 중앙에 위치한 한국은 세력균형 게임에도 능해야 한다.
이러한 세력균형 게임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동맹이 필수다. 앞으로 북한 체제가 존재하는 한, 그리고 중국과 일본 간의 갈등이 심화될수록 한국은 미국을 한반도에 묶어 둠으로써 지역내의 세력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계책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자유국제주의자들처럼 국제기구와 규범을 동북아에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유엔에 가장 많은 빚을 진 국가 중 하나로서, 그리고 현직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로서, 한국은 유엔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한편 우리나라의 이익을 위해 유엔을 이용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또 北核(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처럼 시작된 多者間(다자간) 협의체제인 6자 회담이 동북아 최초의 다자간안보기구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미국·중국 등과 긴밀히 협력하는 한편, 동북아에서도 경제공동체가 뿌리내림으로써 역내 국가들이 경제적 이해관계를 共有(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미국 네오콘의 부상과 몰락은 한국보수주의 정권에게 ‘실용주의 외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외교정책 이념과 이론을 필요에 따라 실용적으로 응용하고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네오콘의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이념에 입각한 철저한 반공주의, 권력과 현실에 대한 현실주의의 냉철한 감각, 그리고 자유국제주의의 다자주의 원칙을 適材適所(적재적소)에 적용할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할 때, 한국보수주의의 외교정책은 비로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