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소설] 安重根 義擧 100주년 - 하얼빈

  • : 이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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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심한 부끄러움 하나 덜어 보려고

대개 글을 쓰는 동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작가의 내면적 욕구에 따라 마음속에 담아 두고 오랜 세월 삭이면서 준비를 해온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외부로부터의 권유나 자극을 받아 문득 작심하여 쓰게 된 경우이다. 이번 소설은 후자이다.
지난가을 어느 날 안중근 의사 숭모회 이사장을 맡아 있는 황인성 前 총리와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노구의 황이사장이 『2009년이면 안중근 의사가 의거를 행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런데도 안의사의 의거에 대해 피상적인 글들만 교과서에 실려 있거나 아동물들이 범람할 뿐 제대로 된 평전이 없어 아쉽다. 내가 비록 늙었으나 마지막 봉사로 생각하고 (안의사의) 평전을 쓰고 있는데 너무 어렵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필자는 부끄러움으로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밥 먹고 살면서 두 가지 심한 부끄러움이 있었다. 첫째는 한국전쟁이라는 엄청난 비극의 역사를 겪었으면서도 「한국에서는 왜 6·25에 대한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오지 못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이다. 둘째는 남한의 작가들 중 평양에 다녀온 사람들이 많다는데 「어찌하여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전하는 용기 있는 작가는 한 사람도 없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이다. 『나는 6·25 때 사물을 분간 못 하는 어린 나이였다』거나, 『아직 북한 땅이라고는 단 한 번 금강산 구경 간 것밖에 없다』고 해봐야 변명이 되지 않는다. 여기에 황이사장의 지나가는 말을 듣고 또 하나의 부끄러움이 추가됐다.
필자는 부랴부랴 하얼빈으로 갔다. 2007년 11월 말의 일이다. 가고 오는 길에 한 가지 느낀 일이 있었다. 요즘 한국 사람들이 국제사회에서 「사람대접」을 받는 것이 즐거워 우쭐대는 경향이 있는데 그 원인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한국인들이 손에 쥐고 가는 달러의 무게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 원인은 손에 쥔 달러나 삼성전자의 애니콜, 현대자동차의 소나타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한국인들이 사람대접을 받는 것은 아니다. 안중근 같은 인물이 목숨을 바쳐 민족적 자존심을 세워 줬기 때문이다.
이제 그 얘기를 하여 뒤늦게나마 내 속의 심한 부끄러움 하나를 덜고자 한다.



李淸은 누구인가?
1945년 울산 출생.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소설)로 등단. 저서로는 창작집 「우리들의 肖像」과 장편소설 「사바행」, 「회색의 봄」, 「나의 살던 고향은」, 「부처님 동네」, 「우리 옆에 왔던 부처」, 「사리」, 「바람 따라 흐르는 구름 따라」 등이 있고, 수상집으로 「무문관 가는 길」, 「제3공화국 경제비화」, 「話頭의 향기」 등이 있다. 꾸밈없이 평이한 문장으로 사물의 본질에 곧장 육박하는 힘을 지닌 작가로 알려져 있다.
『뭔가 좋은 일이 없을까?』
 
  차르 니콜라이 2세는 수염을 뜯으면서 물었다. 재무상 코코프체프는 차르의 그런 행동을 못 본 척 눈길을 차르의 등 너머 벽에 붙어 있는 동로마제국 시대의 거대한 그림으로 돌렸다. 천사 가브리엘이 에호바신에게 복종을 맹세하는 내용이었다.
 
  『비테라면 어떻게 했을까? 아시아의 난쟁이 같은 놈들의 조급증을 적절하게 이용했을 텐데, 아니 경이 더 잘할 거라고 믿네만. 그런데… 그게 사실인가?』
 
  차르는 목소리를 낮추어 가까이 있는 시종들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뭘 말씀이십니까, 폐하?』
 
  코코프체프는 니콜라이 2세의 다음 말을 짐작하고 있었으나 황제에 대한 예우로 되물었다.
 
  『일본 놈들 말이야. 여자의 배 위에서도 쥐새끼들처럼 빨리 일을 끝낸다면서? 그래서 조선을 삼키는 데도 서두르고, 만주로 뻗는 데도 조급한 게 아닌가?』
 
  키득거리는 차르를 한심한 눈으로 보던 코코프체프가 더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폐하, 우리는 일본에 패전국입니다』
 
  『그렇지』
 
  차르는 금방 풀이 죽었다. 그러나 곧 새 장난감을 얻은 아이처럼 다시 살아났다.
 
  『나는 스톨리핀 총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농민, 노동자들이 뭔가 요구한다고 자꾸 뒤로 물러나면 결국 그놈들이 이 겨울궁전까지 쳐들어오고 말걸? 나는 그 트로츠키라는 자는 무섭지 않아. 레닌이라는 그자가 제일 무서워』
 
  니콜라이 2세가 젊은 혁명가 레닌을 두려워하는 것은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부왕 알렉산더 3세에 대한 암살 미수사건에 관련된 대학생 다섯 명을 처형했는데, 그중에 알렉산더 우리아노프라는 자가 있었다. 이자가 처형당했을 때 그의 동생 레닌은 열일곱 살의 나이로 심비르스크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는 여교사로부터 형의 처형 소식을 듣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고 한다. 바로 그 레닌이 뛰어난 선동가로 성장하여 차르의 안방을 허물려고 하고 있었다.
 
  『공은 원동으로 가서 좋은 일을 만들어 오시오. 나는 베니스로 가서 이탈리아 왕 빅토르 엠마누엘 3세와 함께 유럽의 일을 조정해 보겠소』
 
  코코프체프는 연민의 눈으로 차르를 보았다. 속으로 그는 생각했다. 빅토르 엠마누엘 3세나 니콜라이 2세 당신이나 두 사람이 모여 조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기껏해야 베니스의 곤돌라에 올라 감상에 젖거나 그 많은 공주들과 황후에게 줄 선물을 사느라 정신이 없겠지.
 
  『이번 원동 여행에서 대단한 선물을 들고 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일본이 조선을 합병하기 위해 우리 러시아의 양해를 구하려는 것이니 그 기회를 이용하여 북만주의 권리를 공고하게 하고 몽골에 대한 지배권을 확실하게 해 두는 것이 고작일 것입니다. 좀더 욕심을 내자면 여순과 대련에 대한 조차권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죽이네. 코코프체프 공, 정말 멋져요. 여순과 대련을 찾아오면 저놈들과의 전쟁에서 우리가 잃은 것을 대부분 되찾아오는 것 아니오?』
 
  『그렇습니다. 그러나 외교에는 상대가 있는 법이어서』
 
  『그 상대가 일본 놈들 아니오? 공은 일본 놈들 주무르는 데 천하 제일이고. 그러니 좋은 일 있을 거요. 선물이 있어야 하오. 제발, 우리 가족을 보호해 주시오』
 
  이게 유라시아대륙에 걸쳐 세계 최대의 광대한 국토를 지닌 대제국 황제의 모습인가? 아니면 마누라와 딸들과 오순도순 살기를 원하는 평범한 러시아 하층민 가정의 가장인가? 차르는 제국의 운명에 대해 사고할 능력이 없었고, 귀동냥으로 들어서 뭘 좀 안다고 해도 해결할 능력은 더구나 없는 사람이었다. 여러 사람에게 의견을 묻기는 했으나 그 의견들을 종합하고 분석하여 자신의 생각을 내놓는 일은 한 번도 없었고, 그저 여러 사람이 의견을 말하면 맨 마지막에 발언하는 사람의 말을 자신의 생각으로 만들어 지시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때문에 정부의 각료나 귀족들 중 누구도 차르를 신뢰하는 사람이 없었고, 차르의 지시를 곧장 실행에 옮기는 사람도 없었다.
 
  『러시아여, 어디로 가는가? 벼랑으로 향해 내달리는 열차인가?』
 
  10월 중순 코코프체프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올랐다. 열차가 예정대로 달려 주면 열흘 후인 10월24일에는 동청철도의 거점인 하얼빈에 도착할 것이고, 일본 측 상대는 하루 이틀 후에 여순과 대련을 거쳐 남만주 철도를 타고 하얼빈에 도착할 것이었다.
 
  코코프체프의 원동 시찰은 겉으로는 동청철도의 확장을 위해 국제적인 협력 방안을 모색한다는 것이었다. 중국의 동북지역인 만주를 일본과 러시아가 양분하는 데 대한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등의 의심을 잠재우려는 것이 부차적인 목표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상의 명분이고 속으로 감추어진 이번 순방의 목적은 일본과의 흥정이었다.
 
  코코프체프는 수행 비서의 출입을 막아 놓고 준비해 간 서류에 파묻혔다.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열흘은 긴 시간이었다. 열차가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달리는 동안 일본측의 숨은 의도를 찾아내고 대책을 세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는 먼저 일본 측 대표로 동쪽 바다 건너에서 오고 있는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자료를 꺼냈다. 나이 68세. 예리한 판단력과 끈덕진 인내심에다 용기가 필요한 외교일선에 나서기에는 너무 늙은 나이다. 일본의 총리대신 가쓰라가 러시아통인 고토를 중간에 넣어 먼저 러시아에 회담을 요청하면서 처음에는 외무대신을 보내겠다고 했다가 뒤늦게 대표를 이토 히로부미라는 늙은이로 대체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이 당장 풀어야 할 과제였다.
 
  하찮은 계급 출신으로 일본 최초의 헌법을 만들고 스스로 총리대신을 네 번이나 역임한 후 겐로(元老)가 되어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자리에 오른 인물, 이런 인물들이 대개는 성급하게 권력을 탐하고 누리다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예가 많은데 이 노회한 인물은 요령 좋게 강약을 조절하며 권력의 줄타기에서 실족한 일이 없었다.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시모노세키에서 청국의 전권 이홍장과 마주 앉아 조선의 독립을 인정할 것, 요동반도·팽호열도와 대만을 일본에 할양할 것, 배상금 2억 냥(약 3억 엔)을 지불할 것 등의 요구조건을 관철시킨 바로 그 장본인이었다.
 
  시모노세키 조약의 첫머리에 올라 있는 것이 「조선의 독립」이었다는 사실에 코코프체프는 방점을 찍었다. 일본이 말하는 조선의 「독립」은 조선에 대한 청나라의 기득권을 배제하려는 수사에 지나지 않았다. 목표는 조선을 완전하게 일본에 복속시키는 것이었다. 청나라가 무기력하게 전쟁에서 지고 나자 조선을 합병하는 데 최대의 장애물은 러시아였다.
 
  일본은 청국과의 전쟁 이후 그 배상금으로 다음 전쟁을 위한 준비에 전력을 다했다. 목표는 러시아였다. 태평양을 향해 동진하는 러시아의 파도를 막지 못하는 한 조선을 일본 영토로 편입시킨다는 야심찬 목표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 전쟁이 일어났고, 결과는 러시아의 패배였다. 러일전쟁은 국내의 소요와 혁명 조짐에 놀란 차르가 서둘러 전쟁을 끝내고자 하지 않았더라면 일본에 항복하지 않아도 될 전쟁이었다. 어쨌든 러시아는 졌고,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중재 아래 포츠머스에서 강화회담이 열렸다. 이 기묘한 회담에서 패전국인 러시아의 전권인 비테는 오히려 당당했고, 전승국 전권인 고무라 주타로는 수세에 섰다. 이 회담에서 첫머리에 오른 것은 조선에 대한 일본의 독점적 지배권을 러시아가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일본의 이론가들은 征韓論(정한론)을 펼치면서 주권선과 이익선이라는 두 개의 개념을 개발했다. 일본의 영토가 일본열도에 국한될 때는 일본열도가 바로 주권선이고 대륙의 파도를 막아 주는 조선반도는 이익선이 된다. 만약 조선반도가 일본 영토가 되면 조선 북쪽의 만주가 이익선이 되고, 다시 만주를 일본 영토로 복속시켜 주권선이 확장되면 그때는 다시 몽골이 이익선이 된다는 이론이었다.
 
  포츠머스의 강화화담에서 일본은 조선에 대한 독점적 지배권을 러시아가 인정한다는 양해를 얻어 냈고, 청일전쟁 후 이토 히로부미가 얻어 낸 만주를 청국에 반환할 것, 여순·대련의 조차권과 남만주 철도의 경영권을 일본에 양도할 것, 연해주와 캄차카반도의 어업권을 인정할 것 등의 이득을 얻어 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전쟁 배상금은 단 한 푼도 얻어 내지 못했다.
 
  포츠머스 회담의 소식이 일본 국내로 전해지자 이 조약의 체결을 반대하는 일본 국민들이 히비야 공원에서 『차라리 전쟁을 계속하자』고 요구하며 대규모 폭동을 일으켰고, 강화회담의 전권이었던 고무라 일행은 군중의 눈길을 피해서 도둑처럼 몰래 귀국했을 정도였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났다. 일본은 이제 조선 합병이라는 목표를 향해 서둘러 달려가고 있었다. 일본이 만주를 경영하려 하고 중국을 넘보는 것 같지만 실제 목표는 조선의 합병에 있다는 것을 코코프체프는 간파하고 있었다. 조선반도로 국경을 확장하고 그 국경을 지키기 위한 이익선으로 만주에 일정한 권리를 확보하려는 것이 일본의 속셈이었다. 총리대신 가쓰라가 러시아 황실에 회담을 요청한 것은 조선 합병에 최대의 걸림돌인 러시아의 간섭을 배제하려는 포석에 지나지 않았다.
 
  코코프체프는 다른 서류에 눈길을 주었다. 외무성으로부터 입수한 일본 내각의 「조선 합병에 관한 각의 결정」이라는 제목의 서류였다. 1909년 7월6일, 메이지정부 내각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후 오랜 숙원이었던 조선 합병 조치를 마침내 단행하기로 결정하고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천명했다.
 
  「… 제국의 조선에 대한 정책은 우리의 실력을 조선반도에 확립시켜 이를 확실하게 유지하는 데에 있음은 재언할 필요가 없다. …금후 우리는 조선에 있어서 우리의 힘을 증진시키고 그 바탕을 공고하게 하여 대내외적인 영향에 대처할 수 있는 세력을 수립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으며,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제국 정부는 다음과 같은 큰 방침을 정하고 이에 근거해 모든 계획을 실행해 갈 필요가 있다.
 
  1. 적당한 시기가 오면 조선의 병합을 단행한다.
 
  2. 병합의 시기가 올 때까지 병합 방침에 입각하여 충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제반 조치를 강구하고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비축한다.
 
  위의 두 가지 큰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침으로 내각은 다음과 같은 결정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1. 제국은 외부로부터의 침입에 대한 조선의 방어와 조선 내 질서 유지를 확립하기위하여 필요한 군대를 조선에 주둔시킨다.
 
  2. 조선에 관한 외교 교섭 사무는 종전의 방침에 따라 우리의 손으로 파악하고 실행한다.
 
  3. 조선의 철도를 제국철도원의 관할로 이관하고 남만주 철도와 밀접하게 연결하도록 하여 아시아대륙 철도의 통일과 경제관계를 밀접하게 도모하도록 한다.
 
  4. 가능한 한 많은 본국인들을 조선으로 이주시켜 조선 내에서 일본 세력의 밑바탕을 튼튼하게 함과 동시에 일조 간의 경제관계를 밀접하게 한다.
 
  5. 조선의 중앙 정부와 지방 관청에 근무하고 있는 본국인 관리의 권한을 대폭 확대해 한층 더 민활하고 통일적인 시정을 행할 수 있도록 한다.
 
  뒤에 붙어 있는 구구절절의 방침들은 따져 볼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적당한 시기가 오면 조선의 병합을 단행한다」는 문구였다. 그 「적당한 때」가 코앞에 닥쳐오고 있음을 코코프체프는 직감으로 느끼고 있었다. 일본 정부가 서둘러 러시아와의 협상을 요청해 온 것이 「그때」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징후였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토 히로부미인가? 일본 정부가 하는 일이라면 훤히 꿰뚫어 본다고 자부하던 코코프체프는 이 대목에서 헷갈렸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조슈번(長州藩)의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아홉 살 때 그의 아버지 주조라는 사나이가 당시 조슈번의 창고지기였던 미즈이 무베에의 눈에 들어 그 집의 머슴으로 들어가고 주인인 무베에가 성을 이토(伊藤)로 바꾸고 주조를 양자로 들이자 이토 주조가 되었으며, 그 아들 리스케(利助) 또는 순스케(俊輔)도 이토 리스케 또는 이토 순스케가 되었다. 리스케는 뒷날 출세한 후에 히로부미로 개명했으므로 이토 히로부미가 되었다.
 
  일본 놈들이라니, 코코프체프는 비웃었다. 제 자식이 없으면 그만이지 양자는 무엇인가? 이상한 습속이었다. 그러나 그 이상한 습속으로 인해 평범한 농민으로 살다가 갈 뻔했던 한 인간이 일본의 역사를 바꾸는 역할을 했으니 괜찮은 습속이 아닌가.
 
  이토는 요시다 쇼인이 열었던 쇼카손주쿠(松下村塾)에서 뒷날 메이지시대의 개혁을 열었던 기도 다카요시와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 등과 함께 수학했고, 조슈번과 사쓰마번(摩藩)이 연합하여 막부를 타도하고 왕을 권력의 중심에 세우는 尊王攘夷(존왕양이) 운동에 성공하면서 일본 大개혁의 권력 중심부에 들어선다. 22세 때인 1963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서양의 선진 문물과 학문을 습득한 그는 4국 함대가 시모노세키를 포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귀국해 막부를 타도하고 신정부를 수립하는 데에 기여했다. 신정부가 서양의 제도와 문물을 전면 도입하기로 하고 이와쿠라 사절단을 유럽과 미국으로 보낼 때 부사로 참여한 그는 돌아와 工部(공부)대신, 內務(내무)대신을 거쳐 1881년의 정변에서 오쿠마 시게노부를 몰아내고 정부 안에서는 최고의 지위에 올랐다.
 
  이자가 영국 유학 시절에 배운 것이 무엇인가? 유럽과 미국 사절단에 섞여 가서는 도대체 무엇을 배운 것일까? 비스마르크의 독일에서 영감을 얻었는가? 고작 그 정도인가? 유감스럽게도 보고서에는 그런 내용이 들어 있지 않았다.
 
  정부의 최고 지위에 오른 그는 이듬해인 1882년 다시 유럽으로 가서 유럽 입헌군주국들의 헌법을 연구하고 돌아와 대일본제국의 헌법을 만들고, 그 헌법에 따라 조직된 정부에서 초대 총리가 된다. 그가 2대 총리 자리에 있을 때 청일전쟁을 일으켰고, 그 보상으로 조선을 보호국으로 손아귀에 넣었다. 이홍장과의 담판에서 조선의 「독립」을 보장받은 것도 이토의 공로였다. 그러나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얻어 낸 요동반도의 이권을 러시아·미국·프랑스의 3국 간섭으로 토해내야 했고, 더욱 집요해진 러시아 백곰의 동진정책에 부딪혀 조선에 대한 독점적 지배가 위태롭게 되자 일본은 러일전쟁을 일으켰다. 러일전쟁의 강화회담에서 일본 측 전권이 한 푼의 배상금도 받아 내지 못하자 일본 국민들은 지난날 이토가 이홍장으로부터 받아 낸 거금의 배상금을 생각해 내고 분통을 터뜨렸던 것이다.
 
  일본 정부가 젊고 패기찬 관리들을 두고 하필이면 이토 같은 늙은이를 만주로 보내는 까닭이 결국은 이홍장과의 강화회담에서 발휘했던 노회한 수법에 대한 향수 때문일까. 그럴 것도 같았다. 그렇다면 이번에야말로 이토와 일본의 콧대를 꺾어 놓을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코코프체프는 홀로 흥분했다.
 
  이토에 대한 보고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조선 합병 공작의 기획자이자 연출자이고 주연 배우였던 이토는 몇 달 전인 1909년 6월14일 조선 통감을 사직하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이토가 사직하고 본국으로 돌아간 지 한 달도 채 안 된 7월6일 메이지 정부의 내각은 「조선 합병 방침」을 결정했다. 마치 이토가 통감에서 물러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내각이 서둘러 조선 합병 방침을 결의한 까닭이 무엇일까? 이토가 조선 합병에 장애물이었다는 말인가? 이는 이토가 추구해 온 목표가 바로 조선 합병이었으므로 얼른 보기에는 매우 모순된 처사였다. 사임은 스스로 소임을 떠난다는 뜻이다. 위에서 임무를 해제하는 해임과 다르다. 이토가 꿈에도 소원이던 조선 합병을 눈앞에 두고 스스로 통감 자리에서 물러나 추밀원 의장이라는 늙은이들 단체의 좌장 노릇이나 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보고서는 이토의 통감 사임 원인을 짐작할 수 있는 최근의 동태 자료를 몇 가지 붙여놓았다.
 
  1. 이토는 대한제국과 보호조약을 강제로 체결하기 전에 조선인으로 일본제국의 개노릇을 할 만한 단체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 이름이 일진회라 했다. 이 일진회가 친일내각의 수반인 이완용과 불화하고, 조선 합병을 주장하면서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군부와 합병론자들을 들쑤시고 다녔다. 이토는 일진회를 만류하고 성급한 합병보다 점진적 통합을 주장하고 설득했으나 일진회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따라서 일진회는 야마가타·가쓰라·테라우치 등 급진적 합병론자들과 결탁해 이토의 본국 소환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2. 조선을 문명세계로 만들어 조선인들이 스스로 합병에 동의하도록 한다는 이토의 목표와 방침은 여러 방면에서 도전받아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조선 정부에 채용된 일본 관리들의 질이 나빠 조선인들의 마음을 감싸지 못했고, 이토 역시 조선인들의 저주의 대상이 된 것은 물론, 의병운동 등 곳곳에서 저항운동이 그치지 않고 일어나 이토는 피로하고 실망했다. 그는 조선인들에게는 입버릇처럼 『바보 같은 놈들』이라 했고, 일본 내의 무식한 군인들과 성급한 합병론자들에게도 『너희들 마음대로 되나, 어디 해보라』고 비웃고 있었다.
 
  3. 이토의 사임으로 한국 통감의 교체가 확실해지자 일본의 언론에서는 이토의 행적에 대한 찬반 양론이 들끓었다. 그중에서 이토의 통감 교체 이유를 요약하면 이토는 정치적 비중이 워낙 큰 인물이어서 정부로부터 지시받기보다 정부를 이끌어 가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이같은 부자연한 관계로 인하여 통감이 제시한 정책과 총리의 정책 사이에 잦은 충돌이 일어났으며, 일본 정부로서는 한국 통감을 이토로부터 부통감이던 소네 아라스케(曾荒助) 자작으로 교체함으로써 장차 내각이 어떤 명령을 하달하더라도 즉각 실행되리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한마디로 이토가 조선 통감의 역할에 신물을 내고 의욕을 상실했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곧 이토의 조선 통치가 실패했다는 증거였다. 1년 반에 걸친 이토의 한국 통감으로서의 통치가 실패했고, 일본 내각과 국민 다수가 불만을 드러낸 이유 중의 하나가 이렇게 예시되어 있었다.
 

  이토가 초대 통감으로 부임해 통감정치를 실시한 이래 1년 반 동안 한국에서는 통감 정치를 반대하는 의병이 들불처럼 일어나 그중 1만2000명이 사망하고 부상자는 그보다 더할 것으로 추정됐다. 이에 비해 일본의 군대와 경찰의 피해는 사망 70명, 부상 170명으로 미미한 수준이었다. 통감부는 그 원인을 의병들의 무장이 형편없어서 일본군들에게 근접해 보지도 못하고 일본군의 발포에 희생되었다고 밝혔다. 말하자면 무장도 하지 않은 무리들이 멀리서 날아온 일본군의 총탄에 희생되었다는 얘기였다. 입만 열면 아시아의 평화와 세계 평화를 들먹이고 한국에 대한 보호를 내세우며 유화 제스처를 쓰던 이토의 한국 통치는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처럼 잔인한 도살극으로 점철되어 왔다. 그러고도 의병들의 저항은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바다 건너에서 조선 반도를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던 일본의 여론을 성급한 조선 합병론으로 기울게 한 것이었다. 천하의 이토 히로부미가 실망하고 피로감을 느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또 하나의 자료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대한제국 황제 고종이 파견한 밀사에 관한 것이었다. 그 사건을 빌미로 이토는 고종을 끌어내리고 그 아들(순종)을 왕좌에 앉혔고, 이후 사실상의 합병에 다름없는 상태로 한국을 손아귀에 넣어 버렸다. 따라서 한성과 도쿄의 외교가에서는 헤이그 밀사사건이 이토의 공작이라는 소문이 제법 신빙성을 가지고 떠돈다고 했다. 이토가 밀사를 파견하도록 뒷공작을 했다는 소문이었으나 최근에는 최소한 이토가 밀사의 파견을 사전에 알았지만 방조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돈다고 했다. 이토라는 인간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것이 이같은 추측을 낳은 근거였다. 그러자 이토의 통감부에서는 거꾸로 「헤이그 밀사 파견은 러시아 측의 음모였다」는 역 루머를 생산해 퍼뜨리고 있다고 했다. 많은 한국인들이 이런 역공작을 믿고 있다는 경고가 담겨 있었다.
 
  그런 이토에게 러시아를 설득할 전권을 주어 내보내는 까닭은 무엇인가? 일본은 한국만 얻으면 다른 것은 양보해도 좋다는 뜻인가? 미국이 만주 일대 철도의 공동 경영을 제의하고, 독일·영국·프랑스 등 유럽 제국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만주에 대한 탐색을 밑뿌리에서부터 잘라 버리자는 속셈이 묻어 있었다. 러시아만 협력해 준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코코프체프는 자신의 손아귀에 들려 있는 칼자루의 무게를 가늠해 보았다. 여순과 대련을 조선 합병과 맞바꾸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니콜라이 2세가 소원하던 대로 가정의 평화를 한동안 더 연장시켜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료 속에는 이토의 사진이 한 장 들어 있었다. 콧수염을 기르고 서양식 정장 차림을 했으나 키가 작달막하여 어울리지 않는, 보잘것없는 늙은이였다. 얼굴에 별다른 특징은 없었다. 요란한 치장만 아니라면 일본의 어느 거리에서나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수수한 표정의 늙은이일 뿐이었다.
 
  어쨌든 운이 좋은 놈이로군. 하층계급에서 권력의 정상에 올라간 이런 놈들은 권력의 맛에 취하여 반쯤은 미치광이가 되는 법이거늘, 이토라는 자도 마찬가지일 테지. 그러나 총리대신을 네 번이나 역임하고, 후작에서 공작으로 최고의 작위를 받은 이 사나이는 좀처럼 발을 헛디뎌 실각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나이 칠십이 다 된 지금에도 추밀원 의장에다 겐로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결코 만만하게 볼 위인이 아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래 일본의 숙원이던 조선 침략과 합병의 단초를 열게 된 것은 역사가 이토에게 짐 지운 필연적인 역할이었다. 그는 이미 약관의 젊은 나이에 조선에 잠입해 조선 정정을 살피고 간 것을 비롯해, 권력의 정상에 오른 후에는 직접 대한제국의 왕을 윽박질러 보호조약을 체결하고 한국을 보호국으로 만들더니 마침내 대한제국의 황제를 밀어내고 새로운 황제를 앉힌 다음 한국을 사실상 속국으로 만든 장본인이었다. 통감부를 설치하고 초대 통감이 되어 일본 역사상 최대의 소망이었던 한국 합병의 길을 터놓은 공신이었다.
 
  게다가 이토의 한국 침탈 방법은 일본 내에 비등했던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류의 세련되지 못한 征韓論(정한론)과는 달리 「조선인 스스로 內地(내지)에 동화되도록 한다」는 유장한 목표를 설정해 놓고 있었다. 그 유장한 목표가 한국의 친일분자들과 일본의 무식한 군부, 그리고 성급한 지식인과 정치꾼들에 의해 저항에 부딪히고 좌절될 위기에 처하자 그는 현명하게도 한국 통감의 자리에서 물러나 현해탄을 건너고 말았다. 그런 그에게 가쓰라 내각이 러시아와의 교섭에 나서 줄 것을 요구하자 그는 서슴지 않고 노구를 이끌고 만주로 오고 있는 중이었다.
 
  『이토 영감』
 
  코코프체프는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마치 옆에 있는 것처럼 말을 걸었다.
 
  「이번 여행이 영감의 마지막 공식 업무가 될 것이오. 맹세하건대 내가 당신의 무덤을 파 주지. 당신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고, 포츠머스에서 돌아온 고무라처럼 돌팔매를 맞고 그 잘난 수염을 뜯기게 해주겠어. 어쩌면 이번 이토의 만주 시찰과 대러시아 회담을 주선하면서 일본 내의 교활한 천황과 막료들이 진짜 목표로 했던 것은 이토의 무덤을 파는 것이 아니었을까?」
 
 
  2. 이리의 눈물
 
  한국 통감 자리를 벗어던지고 일본으로 돌아온 이토는 오랜만에 유유자적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한국에서 데리고 온 황태자 李垠(이은)을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전국의 명소를 돌며 더불어 자신도 유람을 즐기고 있었다. 불만스러운 것은 겨우 열네 살인 한국 황태자가 한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발전한 일본의 문물을 보고 조금도 감동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감동하기는커녕 떠나온 조국에 대한 사랑과 집착이 더 커져갈 뿐이었다. 무엇을 보더라도 눈길을 멀리 하늘에 두고 있는 것이라든지 숙소에서 홀로 되기만 하면 눈물 자국이 보이는 것이 그 증거였다. 그러나 이토는 알고 있었다. 이은 황태자는 아직 어리다. 이제 피가 끓는 나이가 닥칠 것이고 그때를 대비해 일본 귀족이나 황실의 예쁜 여자와 짝을 지어 주면 여자의 다리 사이에 빠져 결국은 일본인이 될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었다.
 
  9월 하순 이토가 규슈 지방의 여행에서 돌아와 오이소(大磯)에 있는 별장 창랑각에서 여장을 푼 첫날 저녁에 대만 총독부 민정국장과 滿鐵(만철) 총재를 지낸 고토 신페이(後藤新平)가 찾아왔다. 50代 초반의 이 재주꾼 사나이는 現 총리 가쓰라 계열이어서 정치적으로 이토의 뒷줄에 서 있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국제정세를 읽고 처방을 해내는 비상한 재능을 지니고 있어 만나면 즐거워지는 인물이었다. 어쨌든 꽉 막힌 주제에 거들먹거리기나 하는 놈들에 비해 말이 통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토는 내색하지 않고 무심한 얼굴로 손님을 맞았다.
 
  이토가 여송연을 권하자 고토는 『아직 여송연을 이기지 못해 피우지 못합니다』 하고 몹시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여우 같은 놈」 이토는 속으로 생각했으나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이 기다려졌다. 그러나 고토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엉뚱한 것이었다.
 
  『각하, 여자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자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이놈이」
 
  이토는 고토를 노려봤다. 고토는 진지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이토가 가는 곳에 여자가 있다」는 말이 떠돌아다닐 정도로 여자에 대한 바닥 없는 갈증에 헤매 온 일생이었다. 한국 여자 배정자를 양딸로 삼아 망해 가는 대한제국 조정의 돌아가는 사정을 염탐하고 이간질하는 데 써먹었으나 실은 그 딸이 이토의 갈증을 푸는 한 모금 물이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고토의 표정을 보니 그런 엽색행각을 도마 위에 올려놓자는 뜻은 아님이 분명해 보였다. 이토는 종이를 꺼내 탁자 위에 펼쳐 놓고 팬으로 써 내려갔다.
 
  『내가 短歌(단가)를 지은 것이 있는데 읽어 보겠나?』
 
  이토는 백지 위에 이런 문장을 적었다.
 
  「바다, 빠져 죽고 싶다」
 
  『히앗』
 
  고토의 목구멍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숨이 막힙니다. 역시 대인이십니다. 범인들이 따라가지 못할 아득한 경지에 계십니다』
 
  『이 詩(시)의 장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고토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솔직함입니다. 솔직함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것도 그럴 테지. 자, 그러면 말해 보게. 무엇 때문에 이 퇴물을 찾아왔나? 만주 때문인가?』
 
  고토가 고개를 꺾었다.
 
  『알고 계시는군요?』
 
  『자네라면 만주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 짐작했을 뿐이야. 만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일본과 러시아가 만주의 철도를 분할해 경영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미국과 영국이 몹시 배 아파 하고 있는 것은 잘 알고 계시지요?』
 
  이토는 다시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가 있었다. 고토는 말을 서둘렀다.
 
  『만주는 일청전쟁 이후 각하께서 여순·대련과 관동주의 조차권에다 동청철도의 권익을 획득하신 보물입니다. 대일본제국의 국경선이 조선반도 북쪽으로 정해질 때 만주는 이익선으로 목숨 바쳐 지켜야 할 땅이고, 장차 제국이 아시아대륙과 유럽으로 팽창하는 전초기지가 됩니다. 각하의 요청에 따라 만주문제에 관한 협의회를 구성했으나 구성원인 정부 인사들이 무엇이 진정한 문제인지 똥 오줌을 가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고토는 잠시 숨을 돌린 다음 말을 이었다.
 
  『러시아 정부에 회담을 제의했습니다. 러시아도 차르 정부를 타도하려는 내부의 폭동 우려 때문에 일본과 다시 부딪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 영국의 눈도 있고 하여 정식으로 회담을 하기는 뭣하니 양국의 대표가 만주에서 우연히 만나는 것처럼 회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주의 일부를 확고부동하게 일본의 수중에 넣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기회가 지금입니다.
 
  최소한 만주의 경영권이 안정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조선 합병이라는 다음 과제가 실현될 수 있습니다. 러시아와 밀약하면 가능합니다. 미국과 영국은 밀쳐 버리면 그만입니다. 이 일을 할 수 있는 분이 각하 말고는 일본에 없습니다. 각하께서 평생을 다하여 도모해 오신 조선 합병과 국경선을 중국·러시아와 맞대는 꿈도 만주 경영 없이는 백일몽이 될 뿐입니다. 진정한 동아시아의 맹주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조선을 합병하고 만주를 경영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중국을 공략해야 할 것이나 지금 만주를 경영하지 못하면 조선 합병도 오래 가지 못할 것입니다』
 
  이토는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여송연의 불이 꺼졌으나 그는 다시 불을 붙이지 않고 고토를 향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저쪽에서 오는 백곰 새끼는 누구인가?』
 
  『코코프체프입니다』
 
  『코코프체프?』
 
  『예, 재정대신이지만 차르로부터 동아시아 주관이라는 전권을 위임받았습니다. 동아시아 문제에 관한 한 외무대신을 제치고 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차르의 분신 중의 한 사람입니다』
 
  『자네 한 사람의 생각인가, 총리 가쓰라와 외무대신 고무라의 생각은 어떠한가?』
 
  『이미 그분들의 의견이 합치된 상태입니다. 허락하신다면 가쓰라 총리대신과의 자리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그 전에 총리에게 전해 주게. 영국의 반응을 사전에 알아보도록. 미국은 별것 아니지만 영국은 경우가 달라. 우리의 우군으로 묶어 놓을 필요가 있는 나라거든. 공연한 의심을 자아 낼 필요도 없고, 자네 말처럼 일본과 러시아의 고위 관료가 우연히 만주를 여행하다가 만난다는 것이 세계의 의혹을 더 증폭시킨다는 것을 모르는가? 그럴 필요가 없어. 까놓고 만난다고 하고, 거부감을 줄이는 것이 좋아. 신문에 발표하고, 아무튼 숨겨서는 안 돼』
 
  『알겠습니다.
 
  『이번 회담은 어떻게 추진했는가?』
 
  『저와 주 러시아 공사관 모토노 이치로(本野一郞)상이 비밀리에 교섭했습니다』
 
  『좋아, 내일 당장 가쓰라 총리를 만나겠네』
 
  다음날 저녁 무렵 이토는 가쓰라 총리를 공관으로 찾아갔다. 고토로부터 미리 연락을 받은 총리 가쓰라는 부인과 함께 겐로이자 추밀원 의장인 이토 공작을 정중하게 맞았다.
 
  이토는 군인 출신 정치인들을 싫어하고 멸시했다. 무식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가쓰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비록 조슈번 출신의 오랜 지우인 리노우에 가오루와 사돈을 맺을 정도로 속이 트인 군인이기는 했으나 한국을 무조건 합병해야 한다고 서두르는 무식한 군 출신의 핵심에 그가 서 있는 것은 사실이었고, 이토 자신을 한국 통감에서 끌어내린 장본인이 가쓰라였다. 그러나 그런 사사로운 일들은 제국의 경영과 발전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서는 얼마든지 묻어둘 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각하, 여전히 건강해 보이십니다』
 
  가쓰라가 너스레를 떨면서 미리 준비해 둔 여송연을 권했다. 이토는 여송연을 물고 불을 붙여 주는 가쓰라의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것을 눈치 챘는지 가쓰라는 서둘러 이토의 여송연에 불을 붙이고 자신의 손을 탁자 아래로 내려놓았다.
 
  『저도 이 일에서 물러나면 각하처럼 여행이나 하면서 지내고 싶습니다. 아내와 함께요』
 
  「아내와 함께라고?」
 
  이토는 불쾌했다. 자신은 한 번도 아내를 한국 임지에 데려가 본 적이 없었고, 일본 국내 여행에도 동행해 본 일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무식한 군 출신의 사내가 감히 아내와 함께 여행을 즐기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만주 여행은 참으로 큰 보람이 있을 것입니다, 각하』
 
  『내키지 않소』
 
  이토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각하』
 
  가쓰라 총리가 목소리를 낮추었다.
 
  『불편하신 심기는 알고 있습니다. 저에 대한 오해가 있으신 줄도 압니다. 그러나 각하께 맹세코 말씀드리건대 각하의 품으신 뜻과 저의 생각이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동아시아의 맹주가 되고 장차 세계를 경영해야 합니다. 저 같은 무지한 군인들에게 그런 뜻을 심어 준 분이 각하이십니다. 방법이 조금 다를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목표가 같으면 동지입니다. 일본 천지를 아무리 뒤져 봐도 각하 외에는 이번 임무를 감당할 인물이 없습니다』
 
  『나를 만주에 보내 놓고 뒤에서 나를 묻을 구덩이를 팔 생각이라면 그 생각을 접어버리게』
 
  가쓰라는 웃음으로 이 어려운 상황을 열어 보려고 했다.
 
  『구덩이를 파고 있는 자를 발견하면 제가 이 칼로 머리를 쳐버리겠습니다』
 
  가쓰라는 방 구석에 세워 놓은 니폰도를 꺼내어 칼날을 세우면서 말했다.
 
  『만약, 제가 그런 생각을 한다면 제 목을 따버리겠습니다』
 
  이토는 무사들의 이런 모습을 싫어했다. 그러나 오늘 가쓰라의 행동은 그런대로 보기 싫지 않았다.
 
  「이자는 늙은이의 허영심을 부추기는 방법을 알고 있고, 나는 그것을 알면서 속으로 즐기고 있다. 내가 늙은 탓이 아니겠는가」
 
  갑자기 서글퍼졌으나 이토는 이런 상황을 뿌리칠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내각총리인 가쓰라가 이렇게 나온다면 어제 고토에게서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가 아니겠는가.
 
  『총리는 어떻게 생각하오? 백곰의 속내가 무엇일 것 같소?』
 
  『조선에 있다고 봅니다』
 
  가쓰라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제국의 조선 합병 방침을 눈치 챈 것이 분명합니다. 러시아는 이 기회를 절대로 그냥 넘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백곰의 욕망을 우리가 이용하면 더 좋은 기회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좋소』
 
  이토는 가쓰라의 손을 잡아 주었다. 감격한 가쓰라가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각하가 일본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처럼 고마울 때가 없었습니다』
 
  이건 찬사인가, 아니면 욕인가? 그런 생각을 굴리는데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흐려왔다. 이토는 의자 밑으로 고개를 처박았다. 총리 부인이 달려와 총리와 함께 노인을 침대에 눕혔다. 노인은 금방 눈을 떴으나 한 시간가량 누워 있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혹시 몸에 이상이 있으시면 다른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괜찮소. 이 나이가 되면 누구나 조금씩 문제가 생기는 법이니까. 이까짓 빈혈쯤은 아무것도 아니오』
 
  그는 침대에서 내려오며 일부러 목소리를 크게 했다.
 
  『도적처럼 가고 싶지는 않소. 관계국들의 반응을 살피고 조처를 해놓으시오』
 
  『이미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염려 놓으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을 즐기십시오』 며칠 후 이토는 천황을 알현했다.
 
  『제국이 중대한 국면을 맞을 때마다 이토 경의 힘을 빌려 왔으니 감사할 따름이오. 부디 좋은 성과를 올려 주시오』 하고 천황이 당부하자 이토는 대답했다.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폐하의 기대에 기어이 보답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이토의 뜻대로 그의 만주 여행 계획은 언론에 공개됐다. 그러나 신문들은 조용히 사실만 보도한 것이 아니고 이토라는 큰 재료를 가지고 온갖 추측을 얹어 한 상 맛있는 음식을 차려내 놓았다. 외국계 신문은 일본과 러시아가 만주를 분할할 것이라고 예측했고, 일본 신문 중에는 이토가 이번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면 남만주 태수로 부임하게 될 것이라는 그림까지 그려 놓았다. 그러나 이토의 이번 여행이 조선 합병의 정지작업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짚어 내는 신문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바가야로』
 
  그는 신문과 어리석은 세상을 향하여 늘 하던 대로 욕설을 뱉았다.
 
  코코프체프가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오른 10월14일 같은 날, 이토 히로부미는 오이소의 창랑정을 떠나 여행길에 올랐다. 어딜 가거나 오거나 상관하지 않았고, 한 번 떠나면 몇 달, 몇 년 동안 남편 이토가 돌아오지 않아도 얼굴에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던 늙은 아내가 망령이 들었는지 떠나는 이토의 옷깃을 만져 보며 소매 끝으로 눈물을 찍었다. 아내는 알고 있었다. 이 나이에도 남편 이토의 이상한 육체는 끊임없는 갈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그 때문에 무슨 망측한 상상을 하고 눈물을 찍어 내는 것으로 오인한 이토는 아내를 향해 『무슨 망령이오』 하고 혀를 찼다. 그러면서 돌아서는데 이상하게도 자신의 눈가에 물기가 맺히는 것을 느끼고 황급하게 옷깃으로 닦아 냈다. 연민, 아내에 대한 연민 때문에 흘러나온 물기일 것이라고 스스로 판단했다.
 
  이토를 수행하는 사람은 추밀원 의원인 무로다 요시후마, 육군중장 무라타 야스시, 추밀원 의장 비서관 후루타니 히나쓰나,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 타이지로, 그리고 의사 고야마 요시, 이렇게 다섯 명이었다. 이토의 여행 치고는 단촐한 구성이었다. 그러나 요동반도에 상륙하는 순간부터 만철의 총재를 비롯하여 많은 수행원들이 따르게 될 것이었다.
 
  일행은 이틀 후인 10월16일 조선 반도를 바라보는 시모노세키 항에서 대기 중이던 기선 데쓰레이마루에 올라 현해탄을 가로질러 조선의 서쪽 황해를 거슬러 올라갔다.
 
  이토는 기선에 만들어 놓은 특실에서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면서 창 밖으로 흘러가는 검푸른 바다를 보고 있었다. 코코프체프처럼 상대에 대한 자료를 보면서 연구할 필요는 없었다. 모든 것은 그의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머릿속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은 현장에서 임기응변으로 파악하고 대처하면 그만이었다.
 
  문득 이토는 고토에게 보였던 자신의 단가 구절을 떠올렸다.
 
  「바다, 빠져 죽고 싶다」
 
  바보 같은 고토는 그 바다를 여자로만 이해했을 것이다. 여자에 대한 갈증은 끝이 없으므로 바다와 같고, 그 바다에 빠져 죽기 위해 사내들은 목숨을 이어 간다. 그러나 그것은 보통 사내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사내가 빠져 죽고 싶은 바다가 어찌 여자의 두 다리 사이뿐이겠는가. 그는 조선을 생각하면 언제나 여자의 배 위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아찔한 쾌감을 맛보았는데 이제 만주를 생각하니 비슷한 쾌감이 오는 것을 느꼈다.
 
 
  3. 배신
 
  추석을 지낸 지 한 달이 지난 10월 중순이었다. 두만강을 지척에 두고 있는 러시아 땅 노보키예브스크(煙秋)에는 벌써부터 때 이른 겨울이 찾아들고 있었다.
 
  이즈음 안중근은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집주인 최재현을 볼 때마다 무위도식하는 자신의 처지가 거울에 비추듯 확연하게 드러나자 스스로 분하여 허공에 대고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다가 밤에 잠이 들면 어김없이 악몽이 찾아들곤 했다. 지난해 자신이 지휘하여 회령을 공격하려던 의병부대가 일본군에게 패하여 쫓기면서 수많은 동지들이 죽음을 맞았는데 꿈에는 어김없이 그 고혼들이 찾아왔다. 대부분 동지들은 『무모한 의병활동을 접어 버리고 더 큰 일을 하라』고 권했다.
 
  꿈에서 깨어난 중근은 후줄근하게 젖은 몸으로 밖으로 나왔다. 온기 없는 둥근 달이 차가운 하늘에 걸려 있었다. 처자식이 있는 진남포를 떠난 지 벌써 2년이 흘렀다. 왜놈들에게 짓밟힌 나라를 되찾겠다는 원을 세우고 그 방법으로 무력 항쟁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에 만주로 떠나왔다. 다시 일본 군대와 경찰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러시아령에서 동포들에게 한편으로 국권 회복 운동을 장려하고 한편으로 의병 조직에 들어가 전투를 하면서 독립 투쟁을 한 지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그동안 무엇이 바뀌었는가? 일본의 한국 강점 야욕은 날이 갈수록 굳어 가는데 멀리 국경 너머 남의 땅에서 공연한 총질이나 하면서 헛되이 동지들의 목숨이나 버리지 않았던가. 생각하니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이건 아니다. 떠나자」
 
  연추를 떠나야 한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났다. 그는 판단이 빨랐고 일단 판단을 하면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어디로 갈 것인가? 나라를 통째로 삼킨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는 통감 자리에서 물러나 황태자를 볼모로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가서 추밀원 의장 자리에 올라 노년을 행복하게 보내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토를 살해해 침략의 몸통을 제거하려 했던 계획조차 수포로 돌아갔다. 일본으로 건너가 이토나 천황을 제거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계획인지 중근은 잘 알고 있었다. 비록 그것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지금 형편으로는 일본까지 건너갈 여비의 조달이 불가능했다.
 
  연추를 떠나야 한다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어디로 갈 것인가? 어디로 가야 적을 만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을 알 수 없었다. 문득 계시처럼 블라디보스토크가 떠올랐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행되는 한민족 대상의 신문 대동공보와 그 신문에서 일하는 주필 이강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이강이라면 지금 이 상황에서 그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의병부대에서 함께 싸우다가 헤어졌던 우덕순도 이강이 주필로 있는 대동공보에서 신문대금 수금원 일을 하면서 몸을 의탁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손바닥만 한 하늘만 쳐다보면서 달걀로 바위 치는 격의 의병 전투만 해나가다가는 머지않아 연추를 비롯한 러시아령과 만주에 흩어져 있는 한민족의 씨가 마르고 삶의 터전이 뿌리째 뽑힐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더 큰 세계를 살피고 그 정보 위에서 다음 일을 계획하는 것이 지금의 처지에서 최선의 길임이 분명해졌다. 그렇게 결심을 하고 나자 홀가분해졌고, 그날 밤은 악몽을 꾸지 않고 편안하게 잠을 잤다.
 
  그러나 당장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나기는 쉽지 않았다. 문제는 언제나 돈이었다. 수중에 지닌 것이라고는 8연발 권총 한 자루와 탄환 스무 발뿐. 돈이라고는 한 푼 없었다. 그는 집주인 최재현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최재현은 망설였다. 당장 자신도 돈 없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재현이 망설이고 있는 중에 중근의 이름 앞으로 전보 한 장이 날아왔다. 전보에 쓰인 용어는 러시아어였는데 중근은 러시아 말을 하지 못했고 글은 더욱 읽지 못했다. 최재현이 마을에서 러시아 말과 글을 가장 잘 아는 동포 한 사람을 데리고 와서 전보를 해독하게 했다.
 
  전보는 블라디보스토크의 대동공보 주필 이강에게서 온 것이었다.
 
  「가능하면 빨리 블라디보스토크로 오기 바란다」는 짧은 내용이었다. 무엇 때문에 오라는지 이유는 적혀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 짧은 전보 한 구절이 주는 이상한 예감은 중근은 말할 것도 없고 집주인 최재현을 비롯한 동포들 모두에게 방망이처럼 가슴을 때리는 효과가 있었다. 안중근이 연추를 떠나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려고 결심한 것과 동시에 블라디보스토크로부터 「빨리 오라」는 전보가 왔으므로 무슨 운명의 계시를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니, 다시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동지들, 몸 성히 계시고 훗날 저승에서라도 만나면 그 때 후일담을 나눕시다』
 
  최재현은 중근의 결심이 돌이킬 수 없는 상태임을 알고 이웃의 한인 집을 몇 집 돌아다니며 사정을 이야기하여 러시아 화폐로 30원(루블)을 모았다. 그렇게 하는 데 이틀이 걸렸다. 마침내 10월18일에야 중근은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기선에 오를 수 있었다.
 
  10월 하순의 바닷바람은 살을 파고들어 가슴속까지 얼어붙는 듯했다. 그래도 중근은 추위를 느끼지 못했다. 그는 荒天(황천)의 바다를 바라보면서 다시는 이 길을 되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수평선을 기억 속에 담아 두려고 애를 썼다.
 
  연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멀지 않은 뱃길이었으나 아침에 출발한 기선은 해가 기울어서야 블라디보스토크 여객부두에 몸을 비비며 정박했다. 여객부두의 대합실에서 중근은 제일 먼저 신문 파는 곳을 찾았다. 잡화를 파는 가게 한 모퉁이에 신문들이 몇 장 쌓여 있었는데 사람들이 출입할 때마다 밖에서 불어닥치는 바람에 신문지들이 날아갈 듯 펄럭거리고 있었다.
 
  중근이 찾던 대동공보가 있었다. 일주일에 목요일과 일요일 두 번 간행되는 신문이기 때문에 한쪽 귀퉁이가 둘둘 말리고 인쇄된 글자마저 빛이 바래 누렇게 된 신문이었다. 딱 한 부 남아 있던 것을 중근이 샀다. 신문을 펼쳐드니 고향 사람을 만난 것처럼 뭉클한 것이 목구멍으로 올라왔다.
 
  전체 4면으로 된 이 신문의 첫 페이지에는 한글로 「대동공보」라는 제호가 있고 그와 나란히 한자로 「大東共報」라 쓰고 다시 러시아어로 신문 제목을 써놓았다. 표제와 함께 지구 그림을 그려 놓고 그 위에 닭이 홰를 치며 우는 형상을 그려 놓았다. 새벽을 알리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단군 개국 사천이백사십일년 십일월 십팔일 창간이라는 기록도 있었다. 그것뿐 내용은 별다른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한국인들이 기호지방 세력과 평양 등 서북 세력으로 나뉘어 무리 지어 다투는 것을 통탄하고 「뭉쳐야 나라도 찾고 러시아 땅에서 살길도 찾을 수 있다」는 경고가 사설로 실려 있었다. 동포들의 패거리 작당과 갈등은 중근도 심각한 문제로 여기고 있었으나 신문을 보니 그 증상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일본이 그것을 이용하여 한국을 침탈하는 데 사용했고 러시아도 마찬가지였다. 「아, 한국이여, 대한 사람들이여. 제발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라」 중근은 한탄했다. 신문사의 주소를 살펴보았다. 블라디보스토크 한인 거류지 469호가 소재지였다. 대동공보의 전신인 해조신문의 주소와는 조금 달랐다. 해조신문 때 한 번 찾아간 일이 있었으나 한인 거류지 469호는 생소한 주소였다.
 
  북국의 짧은 해가 산 너머로 가라앉고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했으므로 중근은 신문사 찾기를 단념하고 일단 대동공보 사장 최재형의 집을 찾았다. 최재형은 집에 없었으나 한 시간쯤 기다리자 귀가했다. 최재형이 독립운동 단체인 동의회의 회장이었고 중근은 동의회의 회원이었기 때문에 오랜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그 인연으로 지난해 대동공보가 창간되었을 때 중근은 독립을 고취하는 논설을 이 신문에 게재했었다.
 
  『잘 왔소. 이렇게 올 줄 알았소』
 
  대동공보의 사장 최재형은 밤이 깊도록 중근과 함께 술을 마시며 일본의 교활한 책략과 영국·미국 등 구미 열강들의 비겁한 행동을 피를 토하듯 성토했다. 그러나 중근을 여기까지 오게 한 주필 이강의 전보에 대해서는 끝내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다음날 느지막이 일어난 중근은 최재형과 함께 대동공보사 사무실로 나갔다. 의형제와 다름없는 주필 이강이 중근의 어깨를 끌어안고 오랫동안 놓을 줄을 몰랐다. 이강과 어깨를 끌어안고 있는데 이강의 어깨 너머로 또 한 사람의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우덕순이었다.
 
  『우형』
 
   중근은 우덕순과 끌어안았다.
 
  『안형이 온다기에 날마다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지』
 
  우덕순이 말했다. 이강은 평안남도 용강군 출신으로 소싯적에는 서당에서 한문을 배우다가 중국에 유학하기 위해 압록강을 건넜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향하여 기독교 감리회에 입교해 서양 문물에 눈을 떴다. 마침내 그는 미주개발회사의 이민 모집에 응하여 하와이로 이주, 그곳에서 영어와 신식 학문을 배우고 한국으로 돌아와 독립운동에 몸을 던진 인물이었다. 중근에게 국제적인 안목과 독립운동의 이론적인 체계를 주입시킨 귀중한 동지였다. 그와 달리 우덕순은 충청도 출신으로 서울에서 장사를 하다가 일본 놈들의 횡포에 분노하여 만주로 흘러왔다. 연추에서 중근이 지휘하는 의병 부대에 참가해 전투를 치르고 참패한 후로는 블라디보스토크에 잠입하여 대동공보의 신문대금 수금원의 직책으로 연명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유사시 행동을 함께 하고 함께 죽을 수 있는 동지였다. 최재형과 안중근, 이강과 우덕순은 10월19일 오후 대동공보의 편집 사무실에서 자리를 함께했다.
 
  반가운 인사들이 끝나자 최재형이 서랍에서 신문 한 장을 꺼냈다. 중근이 부두에서 산 신문보다 사흘 먼저 발행된 대동공보였다. 검은 잉크로 둘레를 쳐놓은 기사가 있었다. 중근은 그 기사를 읽었다.
 
  「일본국 추밀원 의장 이토 히로부미가 10월14일 만주 여행길에 올랐다. 이토 의장은 이달 16일경 하얼빈에서 러시아의 재무상 꼬꼬쁘쩨프와 회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통감에서 물러나 일본으로 건너가 버렸기 때문에 놓친 줄로만 알았던 불구대천의 원수가 제 발로 하얼빈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중근은 이런 기회를 준 천주님에게 감사하는 표시로 성호를 그었다. 세 사람은 숨을 죽이고 중근의 입을 바라보았다.
 
  『교활한 짐승이 무덤을 등에 지고 오고 있군요. 만주와 러시아를 떠돌면서 한민족이라는 것이 그렇게도 부끄러웠는데, 이제 대한 사람이라는 것이 부끄럽지 않도록 해 주겠습니다』
 
  중근의 말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천근의 무게로 세 사람의 가슴을 눌렀다.
 
  『나도 안형과 함께 가겠소』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개처럼 사는 것보다 사람답게 죽기를 택하겠소』
 
  『가만, 생각 좀 해봅시다』
 
  이강이 끼어들었다.
 
  『안형에게 전보를 친 것은 안형과 이토가 만날 기회를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런 일이 눈앞에 닥쳐오고 보니 생각이 좀 달라졌습니다』
 
  『무슨 소리요?』
 
  중근과 우덕순이 무슨 말을 해도 그것이 이 일을 만류하는 것이라면 듣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이강을 바라보았다. 이강은 그런 두 사람의 기분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우리가 존경하던 이준 선생과 이상설 선생을 기억하시겠지요? 그분들이 헤이그에 나타나 열강 대표들에게 대한제국의 입장을 설명코자 했으나 귀를 기울여 주는 나라의 대표는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정작 그 일을 빌미로 삼아 일본이 저지른 일을 생각해 보시오. 고종 황제는 내쫓겼고, 나라는 완전히 이토의 손아귀에 떨어졌습니다. 그 때문에 이준, 이상설 같은 훌륭한 분들의 행적조차 이토가 뒤에서 사주한 일일지 모른다는 소문이 돌게 된 겁니다.
 
  지금 안형과 우형이 이토를 격살하는 데 성공했다 칩시다. 일본이 이토 한 사람의 죽음에 겁을 먹고 대한제국 합병의 추진을 취소할 것 같아요? 오히려 그런 사태가 발생하면 그걸 빌미로 일본은 합병의 걸음을 한층 재촉할 것이고, 지금까지 일본을 감시하고 간섭해 오던 다른 나라들은 더 이상 일본의 행동을 방해할 명분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두 분이 목숨을 내놓고 결행하려는 숭고한 행동이 결과로는 나라의 명줄을 끊어 놓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듣고 보니 그럴듯한 말이었다. 헤이그 밀사사건이 무엇을 가져왔는가, 하는 것을 냉정하게 살펴본다면 이강의 말은 옳았다. 우덕순은 잠시 주춤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중근은 웃으면서 이강의 분석에 반론을 폈다.
 
  『이형의 말은 참으로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분석이 책상물림들의 창백한 공론에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미안하오, 이형. 이형을 폄훼하려는 마음은 눈꼽만치도 없다는 것을 알아 주실 줄 믿습니다. 왜 그런 생각이 기우이자 공론인가 하면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 일본은 이토가 죽거나 살아 있거나 상관없이 빠른 시간 안에 대한제국을 합병하게 될 것입니다. 이미 합병한 거나 마찬가지지만 공식적인 합병으로 가는 조치를 단행하게 될 것입니다. 즉 우리가 이토를 죽였기 때문에 우리 조국을 말살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제국의 합병은 이미 저놈들이 배를 끌고 강화도 앞바다에 나타날 때부터 꿈꾸어 온 극본에 따른 것입니다. 둘째, 지금 이토를 죽이지 않은 채로 합병을 허용한다면 우리 민족은 영영 사라질 것이고 국가는 회복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토 같은 원흉을 처단해 놓으면 설혹 나라가 없어지더라도 민족의 가슴에 독립의 기운이 살아 있을 것이고, 그 기운이 살아 있는 한 언젠가 반드시 나라를 되찾고 민족을 영속케 할 것입니다』
 
  『대찬성이오』
 
  최재형이 박수를 쳤다. 다른 두 사람도 고개를 끄덕여 공감을 표시했다. 중근은 말을 이었다.
 
  『이토를 처단해야 할 진짜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여기 이형이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그자는 비천한 신분에서 권력의 정상 부근으로 올라와 그 권력을 지키려고 온갖 발버둥을 치는 미미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토 한 사람이 죽고 나면 또 다른 이토가 나올 것이고, 이토보다 못한 야비한 놈들이 우리 조국을 더러운 군화발로 밟아 뭉갤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그는 일본 제국의 잘못된 대한 정책과 아시아를 향한 침략정책을 수립했던 사령탑이고 지금도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이자를 처형하는 것은 일본의 세계를 향한 잘못된 침략정책에 총알을 박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꼭 죽여 없애야 합니다.
 
  둘째로 이자는 배신자입니다. 역사에 대한 배신이고, 우리 한민족에 대한 배신이며, 인류 사회에 대한 배신자입니다. 뭘 배신했느냐. 신의와 정의를 배신했습니다. 그자가 앞장서서 대한제국의 독립을 옹호하고 미몽에 빠져 있는 이 나라의 개화 발전을 돕겠다고 했을 때 우리는 기꺼이 동학도와 싸우는 대열에 서고, 러일전쟁 때는 일본군의 승리를 빌면서 포탄과 식량을 지고 전장에 뛰어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자가 약속한 독립은 침략의 다른 이름이었고, 발전은 약탈을 미화한 것이었으며, 보호는 파괴를 숨기는 이름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장차 정치하는 자들이 하는 말을 거꾸로 뒤집어 새겨들어야 할 판이니 그 폐해가 전 인류 사회에 악취를 내며 만연하게 될 것입니다. 이자를 처단해 독립은 독립이고, 보호는 보호이며, 평화는 평화의 자리를 되찾아 제자리에 갖다 놓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그 일을 자처하는 이유입니다』
 
  『정말 그렇소. 일본은 이토 공작을 통감에서 끌어내려 할 일 없는 늙은이로 만들어 놓고, 통감부는 무식하고 거친 군인들을 내세워 놓고 있어요. 이 일이 뭘 의미하느냐. 합병이 임박했다는 증후로 나는 봅니다. 이토가 이번에 만주를 방문하는 것도 그저 늙은이에 대한 예우 차원의 포상 휴가가 아니라 합병을 위한 길 닦기 작업일 것이오. 러시아만 설득해 놓으면 대한 합병은 아무 장애가 없다고 일본은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래요. 나는 안형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지금 이토를 처단하지 않으면 우리는 죽어서도 자손들에게 얼굴을 들지 못할 것이고, 제삿밥 얻어먹기도 창피할 것입니다』
 
  이번에도 최재형이 찬동했다.
 
  『나도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이강이 중근의 손을 끌어 잡으며 말했다.
 
  『 내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것을 깨우쳐 준 안형이 정말 고마울 따름이오』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형은 이해하리라 믿었거든요』
 
  『그러나 우리는 아까운 동지 한 사람을 영영 보지 못하게 될지 모릅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아까 말했듯이 죽으면 영영 삽니다』
 
  『예수처럼?』
 
  『그럼요, 예수처럼』
 
  네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세웠다. 우선 이토가 하얼빈에 도착하는 정확한 시간을 알아야 했다. 그 정보를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이강과 최재형은 고개를 저었다. 그저 막연히 10월24일에서 26일 정도일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러시아 재무상 코코프체프가 하얼빈에 도착하는 날짜가 24일로 알려져 있으므로 이토 역시 그날이거나 그 뒤의 가까운 어느 날일 가능성이 컸다. 아무리 늦어도 이틀을 넘기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외교 관례상 매우 무례한 일이니까. 이렇게 따져 볼 때 늦어도 이토는 26일까지는 하얼빈에 도착할 것으로 분석됐다.
 
  『자, 서둡시다』
 
  방을 나가려다가 중근은 최재형과 이강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아무리 모진 고문을 당하더라도 오늘 이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니 공연히 나서지 말아 주시오. 이토의 목을 따는 것이 중요하지만 대동공보를 계속 발행하여 민족의 얼을 지켜 나가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거든요. 그러니 명심하십시오. 나와 우형은 당신들 두 사람을 알지 못합니다. 오늘 이후 당신들의 이름을 깨끗이 잊어버리겠습니다』
 
  10월19일 밤 중근과 우덕순은 최재형의 집에서 묵으면서 계획을 세웠다. 빠르면 24일, 늦으면 26일이었다. 24일까지 남은 시간은 나흘이었다. 내일이나 늦어도 모레까지는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 하얼빈에 가서 상황을 살피고 대기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우덕순이 먼저 말을 꺼냈다.
 
  『부끄럽소만, 내게는 여비가 한 푼도 없소』
 
  당연한 일이었다. 우덕순이나 자신이나 집을 떠나 일정한 직업 없이 떠도는 신세인지라 여비가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일 터였다.
 
  『내게 맡기십시오. 마련해 보겠습니다』
 
  『어떻게?』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일 만나 볼까 해요. 걱정 안 해도 좋을 겁니다』
 
  다음날 해가 뜬 후 느지막한 아침밥을 먹고 중근은 우덕순을 남겨둔 채 혼자 집을 나섰다. 전부터 소리 없이 의병활동을 돕던 정상하를 찾기 위해서였다. 경상북도 문경 출신으로 청일전쟁 때 20대의 젊은 나이로 일본군의 부역에 끌려가다가 일본 군인 두 명을 맨손으로 때려죽이고 총기를 탈취해 도망친 그는 국경을 넘어 탈출하여 블라디보스토크에 자리를 잡았다. 러시아 관헌들의 차별에도 불구하고 인삼 장수로 돈을 벌어 한국인으로서는 드물게 생활의 기초가 튼튼한 사람이 되었다. 자연 두만강을 넘나들며 의병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그를 찾게 되었고, 그는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들을 지원했다. 중근도 정상하를 두 번이나 만난 적이 있었고, 그때마다 적지 않은 군자금을 지원받았다.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이번이 마지막이다」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어 아침부터 그 집을 찾은 것이었다.
 
  정성하는 마침 외출을 하려고 집을 나서던 중이었다. 마당에서 마주친 사람이 중근임을 알아보자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안방에서 마주 앉았으나 그리 반가운 표정은 아니었다.
 
  『여긴 무슨 일로?』
 
  『아, 하얼빈으로 가는 길에 동지들 몇 사람을 만나 보려고 들렀습니다』
 
  『하얼빈에는 어쩐 일로?』
 
  『인편으로 내자와 자식놈을 데리고 오도록 부탁을 해놓았습니다. 그들을 맞이하러 가야 하는데 마침 수중에 가진 것이 없어 노형에게 여비를 좀 빌리고자 염치없이 찾아왔습니다』
 
  『들으셨겠지만 요즘 어렵습니다. 러시아 관헌들이 일본의 눈치를 보는지 조선인에 대한 냉대와 감시가 날로 심해져서 먹고살기 어려운 지경입니다. 다음에 또 보지요』
 
  중근은 일어서려는 정상하의 한쪽 팔을 잡았다.
 
  『주머니 속에 돈이 얼마나 있습니까?』
 
  『마침 조선에서 온 상인에게 인삼값을 지불하기 위해 가지고 나가는 기백원이 들어 있기는 합니다만, 한 푼도 축을 내서는 안 되는 돈입니다』
 
  중근은 품속에서 권총을 꺼내 정상하의 가슴을 겨누고 방아쇠를 풀었다.
 
  『자세한 말씀을 드릴 형편은 아니지만 나는 아주 중요하고 급한 일로 하얼빈으로 가야 합니다. 주머니 속에 있는 돈 중에서 100원만 빌리도록 하지요. 훗날 어떤 방식으로든 반드시 갚을 날이 있을 것입니다. 전에 신세졌던 돈까지 모두 갚을 것이오』
 
  정상하는 주머니 속에서 돈다발을 꺼내어 그중에서 100루블을 세어 중근에게 내밀었다.
 
  『고맙습니다. 이 일은 우리 두 사람만 알고 있읍시다』
 
  『다시 오지 않는다면 아주 잊어버리지요』
 
  집에 돌아온 중근은 우덕순을 데리고 블라디보스토크 역으로 나갔다. 기차 시간을 알아보니 하얼빈으로 가는 기차는 보통열차와 특급열차, 우편열차 세 편이 있었다. 수중에 있는 100루블로는 두 사람이 특급열차를 타는 호사를 부릴 수 없었다. 보통열차는 출발시간이 오전 8시 50분이었는데 오늘 열차는 이미 떠난 지 오래였다.
 
  하는 수 없이 되돌아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루를 더 보낸 다음 10월21일 아침에야 안중근과 우덕순은 하얼빈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다음 호에 계속>
 
  그림 : 이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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