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12월17일 朝鮮共産黨北朝鮮分局(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중앙 제3차 확대집행위원회는 「북조선을 통일적 민주·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강력한 정치·경제·문화적 민주기지로 變轉(변전)시킬 것」을 결의했고, 同 대회에서 金日成(김일성)은 『民主基地(민주기지)의 강화는 조국통일의 결정적 담보이다』라는 연설을 하여, 이른바 民主基地路線(노선)을 공산당의 한반도 공산화 혁명 전략으로 채택하였다.
민주기지 노선이란 소련 점령지구에 빨치산式 해방구 국가를 만든 후, 이를 거점으로 평화적, 非평화적 무한투쟁을 전개하여, 남한을 병탄함으로써 마지막에는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한다는 혁명전략이다. 즉 민주기지 노선은 러시아 공산혁명 과정에서 빨치산 해방구의 경험을 가진 스탈린이, 한반도를 미국과 더불어 분할점령하게 되자, 이 조건을 이용하여 全한반도를 공산화할 목적으로 안출해 낸 교활한 혁명전략이었다.
그후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이 北朝鮮共産黨으로 변하고 공산당이 朝鮮勞動黨으로 변하면서 민주기지 노선은 한반도 공산화 전략의 기본으로 정립되어 오늘에 이른다.
共産黨과 그 연속인 勞動黨은 이 민주기지 노선에 따라, 북한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주권기관을 꾸리는 한편, 남한의 해방공간에서 합법 정치투쟁, 신탁통치 지지운동, 2·7 폭력파업, 10·1 폭동, 4·3 폭동, 여순 14연대 반란 등 갖가지의 평화적, 非평화적 방법으로 대한민국을 전복하여 남한마저 공산화하려고 하였고, 여의치 않자 급기야는 인민군으로 남침하여 6·25 사변을 일으켰다.
6·25 사변을 정점으로 하는 모든 폭력혁명의 방법이 실패하자, 노동계급 중심의 지하당 구축, 폭력혁명 등의 下層 통일전선 전술에다 上層 통일전선 전술을 배합하고, 上層 통일전선 전술에 더욱 큰 중점을 두게 되는데, 이 上層 통일전선 전술의 핵심고리에 해당하는 테제가 바로 高麗民主聯邦共和國(고려민주연방공화국) 통일방안이다.
4·19 직후인 1960년 8월14일, 金日成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겸 내각 수상은 8·15 해방 15주년 경축대회 석상에서 다음과 같이 연설하였다.
『어떠한 외국의 간섭도 없는 민주주의적 기초 위에서 자유로운 남북 총선거를 실시하자.… 아직 남조선 당국이 자유로운 남북 총선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과도적 조치로서 남북조선의 연방제를 제의한다. 즉 남북 조선에 현존하는 정치제도를 그대로 두고 兩 정부의 독자적인 활동을 보장하는 동시에 양 정부 대표로 구성되는 최고민족위원회를 조직하여 주로 남북 조선의 경제·문화 발전을 통일적으로 조절한다.… 남조선에서 미군의 즉시 철퇴를 요구하며, 남북 조선 군대를 각각 10만 또는 그 이하로 축소할 것을 제안한다…』
金日成은 그때 한반도 통일방안으로서 聯邦制(연방제)를 제안하였다.
4·19 이후에 남한에서 좌파가 급팽창하자, 연방제와 군축(=남한의 무장해제)를 지렛대로 하여, 北에는 공산체제를 굳히고 남한에서는 좌파 혁명을 추진하여 병합하는 민주기지 노선을 추진하고자 한 것이다.
1980년 10월10일 노동당 제6차 대회에서 金日成은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첫째, 北과 南이 현재 존재하는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인정하고 동등하게 참가하는 민족 통일정부를 수립하고, 그 밑에서 北과 南이 같은 권한과 의무를 지니고 각각 지역 자치제를 실시한다. 둘째, 北과 南이 같은 수의 대표들과 적당한 수의 해외동포 대표들로 최고민족연방회의를 구성하고 거기에서 연방상설위원회를 조직한다. 셋째, 北과 南의 지역정부들은 연방정부의 지도 밑에 둔다. 넷째, 연방국가의 국호는 고려민주연방공화국으로 한다. 다섯째,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은 어떠한 정치·군사적 동맹이나 블럭에도 가담치 않는 중립국이어야 한다.… 北과 南 사이의 군사적 대치 해소와 민족연합군을 조직한다…』
이 고려민주연방제를 한국이 수용하면, 미국을 한반도에서 내쫓고 국군을 민족군에 편입한 후, 현존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인정한다는 명분 아래서 수령 독재를 통하여 북한은 金日成·金正日이 완전히 배타적으로 장악하고, 남한에서는 金 일파의 지원을 받는 좌파로 하여금 우파를 누르고 정권을 탈취케 하여, 한반도 전체를 金日成·金正日의 의도대로 요리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盧泰愚 시대부터 방향감각을 상실한 한국측 통일방안
즉 金日成·金正日·노동당의 근본노선은 북한에서는 폐쇄적·독점적·독재적으로 「주체체제」를 굳히고, 남한에서는 좌파가 정권을 탈취한 후, 그 좌파 정권과 북한 정권이 평화적으로 통일한다는 것이다. 민주기지 혁명노선은 절대불변인 것이다.
남한에서 좌파 정권은 여러 가지 코스를 통하여 성립될 수 있다. 남한의 현행 권력구조는 선진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다. 軍部權威主義(군부권위주의)가 그 구조적 骨幹(골간)을 溫存(온존)시킨 채 파퓰리스트 권위주의로 개편되어 있을 뿐이다. 좌파가 선거에 의하여 대통령직을 차지하면, 이 파퓰리스트 권위주의의 권위주의성을 이용하여 입법·행정·사법 3權의 人事構造(인사구조)를 개조할 수도 있고, 國是(국시)를 변경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체제수호의 干城(간성)인 국군을 換骨奪胎(환골탈태)해 볼 수도 있다.
연방제 통일방안을 추진함에 있어서, 노동당은 국가연합이든지 국가연방이든지 그 자질구레한 이론적 차이를 문제 삼지 않는다. 연방제의 목적인 上層 통일전선 전술을 구사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요컨대 남한의 좌파 정권과 남북연합(방)을 실시한 후 연합(방)이란 간판 아래서 남한을 정신과 물질, 정치와 군사 諸(제)측면에서 침식하여 무장해제한 후, 미국·일본 등 해양세력측 자유주의 외세와의 연계를 차단하고, 수령 중심의 체제로 병탄해 갈 수 있는 조건을 창출해 내면 되는 것이다. 이때 주의할 것은 미군의 철수도 당면한 남북연합 성립의 절대적인 선행 조건은 아니다. 미군기지가 있어도 그 작용을 무력화시킬 수 있으면 된다.
李承晩 정권으로부터 全斗煥 정권에 이르기까지의 한국 정권측 통일방안은, 상황에 따른 수정은 있었지만, 본질적으로는 남북 자유총선거였다.
盧泰愚 정권은 통일방안에서 방향감각을 상실하였다. 盧정권은 아무런 대책도 없으면서 자유총선거에 의한 통일원칙을 버리고, 北의 전략·전술에 말려들 수밖에 없는 남북연합제 통일방안을 채택한 것이다. 盧정권은 1989년 9월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을 제의하였는데, 그 내용은 左派의 국가연합·국가연방 통일방안을 짜깁기한 것이다. 당시 金大中 총재의 공화국 연방안도 이 짜깁기의 主流(주류)로 포함되었다. 1989년 2월24일 국회 외무통일위원회에서 李洪九(이홍구) 당시 통일원 장관(金大中 정권의 전 駐美대사)은 『金大中 총재의 공화국연방제는 현재 통일방안을 생각하는 흐름의 주류 속에 자리잡고 있다고 본다. 국민들과 각 정당들이 통일방안을 고려하는 데 있어 공화국연방제는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고려될 것이다』고 했다.
「공화국연방제 통일방안」
망명 중이던 金大中 총재가 1973년 7월 일본 東京의 외신기자 클럽에서 처음 발표한 후, 1991년 4월 再정리한 「공화국연방제 통일방안」은 3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제1단계가 공화국연합제로 1연합 2독립정부 체제이다. 두 공화국이 독립정부로서 외교, 국방, 내정의 모든 권한을 유지한 채 권한이 제한된 연합기구를 만든다.
『그리고 지금까지 남북 쌍방이 같이 가입하였던 유엔에는 새로 형성된 연합의 이름으로 단독 가입한다』(김대중 1991. 4)
제2단계는 1연방 2지역 자치 정부체제이다. 여기서는 연방이 외교, 군사권을 전면적으로 장악하고 중요한 내정에 대해서도 권한을 가진다.
『고려연방제도 이 단계에서 검토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제1단계에서 2단계로 들어가는 것은 그다지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김대중 1991. 4)
제3단계는 1국가 1정부 체제이다. 이 案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1단계에서 연합의 이름으로 유엔에 단독가입하므로, 대한민국은 유엔에서 소멸한다는 것이다.
李承晩으로부터 朴正熙에 이르는 남북 자유총선 통일방안은 자유총선 자체가 人身自由(인신자유), 언론자유, 多黨制(다당제), 인권, 법치, 사유재산제를 內包(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盧泰愚로부터 金大中에 이르는 통일방안의 결정적인 허점은 자유, 多黨制, 인권, 법치, 사유재산제를 수호할 수 있는 메커니즘은 缺落(결락)되어 있는 데 반하여, 민주기지 노선에 입각하여 남한 공산화를 노리는 上層 통일전선 전술인 고려민주연방제와는 유사한 절차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좌파는 大勢化, 우파는 極小化
국방위원장 金正日은 1972년 7월4일에 남북이 발표한 공동성명 중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3大 원칙을, 1993년 4월에 발표된 「전민족대단결 10大 강령」 및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과 함께 묶어 「조국통일 3大 헌장」으로 정리했다. 3大 원칙, 10大 강령을 고려민주연방과 배합해 진행하면 이북은 노동당이 독재적·배타적으로 장악하고, 이남은 좌파와 우파가 분열하는 가운데 이북의 지원을 받는 좌파는 大勢化(대세화)하고 우파는 고립되어 極小化(극소화)됨으로써 공산통일을 이루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6·15 공동선언에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했다. 공통성이 있다고 했을 때, 그것은 金大中 공화국연합案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金大中 대통령이 주도하면서 盧泰愚의 안을 실행한다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고, 남한 집권자의 통일방안 중에서 고려연방제와 가장 공통성이 많은 것이 김대중 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盧泰愚안을 실행한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노태우案 자체가 北의 고려연방제와 일정한 공통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렇게 된 이유는 그것이 좌파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립됐기 때문이다.
6·15 남북공동선언 후 북한체제는 더욱 자신감을 얻고, 단결되고, 강화되고 있다. 북한 인구 2200수십만 중 노동당원은 약 17%이다. 핵심계층만이 거주할 수 있는 평양인구는 약 250만이다. 여기서 유추하면 노동당 두리에 굳게 뭉쳐 북한을 이끌어 가고 있는 세력은 대략 350만 정도이다. 이 350만의 핵심계층은 북한을 엄습한 饑餓(기아)와도 관계가 없다.
그들에게는 식량배급이 이루어졌다. 나머지는 동요계층·반동계층이다. 동요계층·반동계층 중 사소한 반항의 기미라도 표출한 자 20만은 독재대상으로 정치범 수용소에 구금되어 인간 이하의 상태에 있다.
남북연합에 共産化의 함정 있다
북한에는 동요계층, 반동계층도 있지만 이들은 북한 정치나 여론 형성에 영향력이 없다. 노동당원과 그 손발인 350만이 당권, 國權(국권), 군권, 언론, 학문, 종료, 문화, 이데올로기 모든 것을 독점하고 있고, 그것이 절대적인 수령독재로 표출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남풍이 침습할 여지도 없다. 6·15 회담으로 남풍이 침습하기는커녕, 63명의 非전향 간첩 등이 북송되어 살아 있는 혁명영웅들에 대한 대대적인 환영식이 거행되면, 이들을 공화국으로 귀환시킨 金正日의 정치 위신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질 것이다.
6·15 頂上회담을 계기로 反美투쟁, 미군철수 투쟁, 국가보안법 폐기 투쟁은 더욱 가열차졌다. 남북연합이 꾸려지고 국가보안법이 폐기되면, 현재는 지하에 있는 조선노동당 남조선분국과 노동당의 對南공작 통일전선체인 한국민족민주전선이 합법을 쟁취하여 지상으로 올라와 大정당·大단화할 것이다. 毛色(모색)이 다르다 할지라도 각종 좌파세력은 모두 그 두리에 결집할 것이다.
남북 頂上회담 공식 수행원이었던 한 정부 관계자는 『인민군 총정치국장인 趙明祿(조명록) 차수가 「조 국방장관은 왜 안 오셨느냐」고 불쑥 물어와 대표단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순간적으로 받아 넘겼지만 상당히 당황했다』며, 『趙차수가 우리 軍 고위 관계자들이 대표단에 포함되길 굉장히 희망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趙차수는 金正日의 정치노선을 인민군 내에서 관철하는 軍 정치공작의 우두머리다. 그런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왜 그렇게 국군 고위 관계자를 만나는 데 조급할까? 국군에 대한 上層 통일전선을 布置(포치)하려는 의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당은 남북연합으로 미국이 개입할 수 없는 국제적 명분을 만든 후 남북연합 내에서 좌파 쿠데타를 획책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통일된 한반도는 언론 자유, 대의제 민주제, 多黨制(다당제), 법치, 私有재산, 사회적 多元주의가 보장되는 발전된 선진국으로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만일 정치권력에 목마른 일부 좌파 야심가의 기만적 술수에 걸려, 선동주의적이고 몽매한 독재적 集産主義(집산주의)사회로 전락한다면 캄보디아의 킬링 필드가 문제 아닌 미증유의 비극이 한반도에서 일어난다.
통일된 한반도를 선진적 자유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공산화의 陷穽(함정)이 숨어 있는 남북연합(방) 통일방안을 폐기하고, 남북 全주민의 의사가 굴절 없이 표현될 수 있는 남북 자유총선거 통일방안을 실시해야 한다. 그렇게 못한다면, 남북연합의 전제로 최소한 북한에도 남한과 같이 언론 자유, 대의제 민주제, 多黨制, 법치, 사유재산, 사회적 다원주의를 구조화하는 선행조치를 취해야 한다. 자유와 私有재산이 없는 어떤 종류의 집산주의에 의한 통일도 노예화의 길에 다름 아니다.●








































